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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Cinetalk

[시네토크] "삼십년 전에 내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었다" - 영화제작자 심재명이 말하는 임권택의 <안개마을>

시네토크

30년 전의 안개마을과 현재의 안개마을

- 영화제작자 심재명이 말하는 임권택의 '안개마을'

 

지난 20, 영화 제작자인 심재명 명필름 대표가 추천한 <안개마을> 상영 후 시네토크가 진행되었다. 심재명은 1984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이 영화를 처음 본 이후 스크린으로 다시 보는 게 삼십여 년만이라며 감회가 새로움을 술회했다. 영화 제작자로서는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심재명은 제작자 지망생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를 전해주기도 하였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안개마을> 1983년 당시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더라. 30년 만에 다시 상영을 하는 게 특별하다고 생각이 든다. 영화를 추천할 때 84년도에 허리우드 극장에서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심재명(영화 제작자): 84년에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 대학교 1학년이었다. 84 3월에 월간 스크린이라는 잡지가 처음으로 창간이 되었다. 거기서 대학생 모니터 기자를 뽑았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매달 15일 마감을 지키는 것뿐이었는데, 그땐 모니터기자가 됐다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기뻤다. 잡지의 창간  이벤트를 허리우드 극장에서 했었다. 80년대뿐만 아니라 당대 대표적인 한국감독이었던 이두용, 하길종 등의 70년대 영화들까지 상영을 했는데, 이분들의 영화를 이때 처음 보게 되었다. 84년도에 영화제를 통해 한국영화를 본 것은 굉장히 충격이었다. 영상문화의 충격. 그 중의 하나가 안개마을이었다. 이 영화를 추천한 이유는 84년도에 봤던 영화가 뭐였는지, 내가 본 것을 다시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비디오테이프가 아닌 스크린으로 보고 싶었다.

 

김성욱: 그 때 당시의 느낌이 어떤 것이었고, 오늘 느낀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다.

심재명: 많은 부분이 다르다. 당시에는 집성촌이라는 한정된 공간 안에서 암묵적으로 무언가 이루어진다는 것의 매혹을 느꼈다. 이 영화는 12일 만에 촬영을 끝냈다고 하는데, 12일 만에 미장센과 주제에 깊이를 만들어낸다는 것에 감탄했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까 영화가 되게 설명적이다. 임권택 감독님을 당시에 알았다면 내레이션을 다 빼면 좋을 거란 생각을 말씀드렸을 것 같다. 하지만 화면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하면서 볼 수 있었다. 30년 만에 안성기 씨나 정윤희 씨 얼굴을 보는 게 굉장히 반가웠다. 조연출의 김상범 씨는 지금은 한국 최고의 편집감독이다. 그런 분들의 이름을 다시 이렇게 보니까 남다르다.

 

 

김성욱: 80년대의 제작자는 감독을 고르는 일에 몰두하고, 감독을 선택하면 모든 걸 감독이 다 하는 식이었다고 하더라. 80년대와 90년대 제작환경의 차이가 있었다면 무엇인지.

심재명: 80년대 제작환경이나 시스템에 대해서는 풍문으로 듣고 경험은 못해봤다. 90년대 중반에 내 또래의, 혹은 바로 윗세대인 젊은 제작자들이 많이 등장했다. 이들은 창작자인 감독과는 또 다른 입장에서 영화란 것에 큰 매력을 느끼고 창작에 존경심을 가지며, 제작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새로운 세대였다. 그들이 봉준호, 박찬욱, 홍상수 등의 젊은 감독들과 만나게 되면서 90년대 중반 이후에 새로운 한국영화의 세계가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제작자님들이 하는 풍문 같은 얘기들을 들어보면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바보들의 행진>(1975, 하길종)을 제작할 당시 하길종 감독님이 제작자 몰래 영사실에 들어가서 제작자가 잘라놓은 걸 다시 붙여 상영을 했다고 한다. 제작자가 처음에는 화를 냈지만 그 이후에는 서로 통쾌한 미소를 지으며 그냥 넘어갔다고 하더라.

  

관객1: 여성 관객으로서 마지막 장면은 깨칠을 정당화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런 부분이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심재명: 개인적으로 성적욕구의 배설구이자 암묵적인 합의하에 벌어지는 이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여성의 욕망을 다룬 것을 보기 힘들기도 했고. 남성 중심적인 영화만 보다가 신선했다.

 

관객2: 상업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하다.

심재명: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한편의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을 것인가 그것이 소재일수도 있고 한 장면의 이미지가 떠오를 때도 있고 제작자의 손에서든 감독의 손에서든 출발한다. 영화 제작은 굉장히 많은 회의와 의구심이 들게 하는 작업이다. 이 시대의 관객에게 효용가치가 있는 것인가가 굉장히 애매한 상태인 것이다.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한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가 수십억 원의 자본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투자사를 설득하고 주연배우를 설득하고, 자신이 욕망하는 것을 상대를 향해서 계속 설득하고 이해시키고 만들어내는 것이 영화작업이다. <안개마을>처럼 12일 만에 프로덕션이 끝나는 경우도 있지만, <건축학개론> 같은 영화는 십년이란 기간 동안 공회전을 하다가 2012년에 간신히 만들어지기도 했다. 콘텐츠를 책임지는 작가의 힘도 중요하지만 투자 배급사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힘의 역학관계가 바뀌는 상황이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지형도를 읽을 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관객3: 임권택 감독님 작품 중에서 가장 높게 평가하는 작품은 무엇인가.

심재명: 대중적으로 정말 재밌게 본 건 <장군의 아들>, 제일 좋아하는 영화는 <만다라>. 작가주의 감독이라기보다는 영화 장인의 선에 서서 새로운 영화문법이나 영화세계를 깨쳐나갔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개마을>을 추천하게 된 데에는 이 영화를 다시 확인하고 싶다는 열망과 동시에 임권택 감독님의 다음 영화를 명필름에서 하게 될 것 같다는 점도 작용했다. 얼마 있으면 팔십이 되시는데 유일한 현역이다. 임권택 감독님의 마지막 영화 세계를 경험하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김성욱: 영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관객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한다.

심재명: 꿈꾸는 일로 먹고 사는 게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영화를 하고자 하는 감독 지망생과 제작자 지망생에게 무엇보다 치열하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제작자도 감독과 함께 궁극의 영화를 꿈꾼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에 의해서 출발을 하고 함께 견디는 거다. 궁극의 영화를 만들고 싶은 열망, 본질적인 영화정신이 갈수록 필요한 때이지 않나 생각하고 있다. 2015년에 파주에서 만들게 될 명필름영화학교는 졸업과 동시에 장편영화 한편을 만들게 된다. 새로운 재능들이 끊임없이 영화계에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그리고 수십 편의 영화를 만든 노하우를 젊은 후배들에게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서 영화학교를 기획하게 되었다. 혹시 지원하실 분이 이 자리에도 계실지 모르겠으나 관심 가지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다.

 

정리: 박민석 (관객에디터)  |  사진: 문지현(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