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




“광화문시네마의 가족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을 얻는 일이다”

- <범죄의 여왕> 상영 후 이요섭, 박지영, 백수장 시네토크






김보년(프로그래머) 오늘은 특별히 감독과 배우들이 관객들과 함께 영화를 보았다.


이요섭(감독) 오랜만에 이렇게 관객과 만나니 정말 떨린다.


박지영(배우) <범죄의 여왕>은 2015년에 촬영했고 2016년에 개봉했다. 그리고 오늘 2년 만에 다시 보았는데 너무 새롭고 좋았다. 2년마다 한 번씩 다시 봐야 할 것 같다. 그때의 기분과 열정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백수장(배우) 내가 이 영화에 소속되어 있다는 게 정말 기쁘다. 요즘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는데 다시 큰 힘을 받았다.


김보년 이 영화의 특징은 여러 장르가 섞여 있다는 것이다. 스릴러도 있고 코미디도 있다. 그런데 박지영 배우는 여러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면서 그 색깔을 혼자서 다 소화해야 했다.


박지영 대본을 처음 받고 양미경은 완전히 나라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쓴 감독님이 누군지 궁금할 정도였다. 내 지인과 가족들도 영화를 보더니 ‘그냥 너’라고 하더라. 행운의 작품이었다. 배우가 자신과 같은 역할을 맡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항상 역할에 맞게 나를 녹여내야 했지만 한 번도 ‘나 같은 사람’을 연기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양미경은 나와 너무 닮았다고 생각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여지가 더 많다고 생각했다.

현장에서도 색깔 없는 옷을 입은 것처럼 덕구와 있을 때는 덕구와 함께, 개태와 있을 때는 개태와 함께 자연스럽게 연기를 했다. 배우로서 굉장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배역은 자주 만나기 어려울 것 같다.


김보년 한 장면에 대해 질문을 하고 싶다. 마지막에 양미경이 범인의 칼을 손으로 잡는다. 그때 영화는 박지영 배우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다음 슬로우모션으로 보여주는데 이때 분노와 웃음, 슬픈 표정이 다 조금씩 섞여 있다.


박지영 그 장면의 표정이 미경을 함축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 여성이자 누나, 엄마, 언니 같은 모습이 다 들어 있다. 거울을 보고 연기하는 게 아니니 내 얼굴은 나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양미경이란 여자가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양미경에게 매력을 느낀 건 그녀가 한 가지 매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누가 양미경이 오지랍이 넓다고 하던데, 그건 그만큼 다양한 모습을 갖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 장면에서 다양한 얼굴이 나온 건 나도 만족스럽다.


김보년 같은 질문을 감독님에게도 하고 싶다. 그 장면의 연출은 영화 전체적으로도 조금 이질적이다.


이요섭 그 장면은 세 테이크 정도만 찍고 바로 오케이를 했다. 그렇게 테이크를 많이 가지 않았는데도 이런 결과물이 나온 건 이미 박지영 배우가 양미경의 캐릭터와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고속 촬영을 했기 때문에 꼼꼼하게 확인하기 전까지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다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 정도면 된 것 같다고 생각했고, 편집실에 가서 확인해 보니 정말 얼굴로 ‘열일’을 하고 있었다(웃음). 믿고 갈 수밖에 없는 배우라고 새삼 생각했다. 콘티에는 클로즈업이라고만 정해놨었는데,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보여준 건 박지영 배우의 힘 때문이었다.


김보년 백수장 배우에게 제일 궁금한 건 촬영 일정이다(웃음). 조금씩 나오는데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 없이 나온다.


백수장 세트 촬영 없이 한 장소에 그냥 앉아서 며칠 동안 찍었는데 영화에 그렇게 골고루 나왔다.


이요섭 5회차 정도 찍었는데 모든 배우들이 백수장 배우를 부러워했다.


백수장 나는 오히려 아쉬웠다.





김보년 조금씩 나오지만 기억에 많이 남는 역할이었다. 특히 덕구의 독특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디테일이 인상적이었다.


백수장 처음에는 덕구를 이런 캐릭터라고 생각하지 않고 ‘평범한’ 모습으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나중에 감독님이 원하는 캐릭터가 있다면서 어떤 팟캐스트를 들려주었다.


이요섭 내가 좋아하는 팟캐스트 중 ‘모태솔로’ 캐릭터가 있다. 말투가 좀 특이한 캐릭터였는데 덕구가 이런 말투를 써도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좀 다가서기 힘든 캐릭터인데 백수장 배우가 연기하면서 특유의 사랑스러움이 녹아들었다.


백수장 옛날 군대 후임을 참고했고 감독님의 모습도 많이 참고했다(웃음). 나도 이런 톤의 연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힘들었는데 감독님이 그런 모습을 잘 끄집어내 주셨다. 이 영화 이후 덕구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박지영 나랑 같이 해야지!(웃음).


김보년 이 영화에서는 웃긴 캐릭터를 맡았지만 백수장 배우의 전체 필모그래피에는 진지한 배역이 더 많다. 그런데 백수장 배우는 코믹한 캐릭터와 진지한 캐릭터 사이의 연기 방식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다.


백수장 코믹한 캐릭터와 진지한 캐릭터를 따로 나눠 연기한 적은 없다. 개인적으로 코믹한 연기를 어려워한다. 그런 역할을 제의받으면 움츠러드는  쪽이다. 유머 센스는 타고나야 하는 면이 있다. 말 한 마디를 해도 재밌게 하는 분들이 있지 않나. 그런데 덕구는 대본과 상황 자체가 재미있었기 때문에 그냥 상황에 맡기려고 했다. 장르에 따라서 톤을 바꾸는 연기는 아직 잘 모르겠다.






김보년 감독님에게 질문을 드리고 싶다. 이번 특별전의 제목은 “함께 영화를 만든다는 것: 광화문시네마의 경우”다. <범죄의 여왕>은 어떤 협업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졌나.


이요섭 일단 시나리오가 나오면 다 모여서 회의를 한다. ‘좋은’ 시나리오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연출자가 원하는 걸 더 뚜렷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 영화의 경우에는 전고운 감독이 각색, 김태곤 감독이 기획을 맡았다. 그리고 권오광 감독과 우문기 감독은 사기 진작을 맡았다(웃음). 현장에 귤을 사오거나 귀여운 사진을 찍어서 단톡방에 올려주었다. 개봉 이후에도 내가 신경쓰지 못한 점을 다들 함께 도와주었다.


김보년 앞으로도 이 시스템이 계속 유지되는 건지 궁금하다.


이요섭 감독들이 다들 장편을 하나씩 찍으면서 한 바퀴 돌았으니 다음 작품까지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하고, 가정이 있고, 영화 이외의 ‘인간의 도리’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광화문시네마의 이름으로 영화를 만들지 않아도 그냥 모여서 이야기하는 자리는 계속 유지될 것이다.



관객 1 미경의 원피스가 너무 예뻤다.


박지영 의상도 캐릭터와 잘 맞았다. 내가 직접 준비한 의상과 의상실장이 준비한 의상이 섞여 있다. 짧고 굵게 한 작품인데 어쩜 이렇게 다들 같은 마음일까 생각했다.

‘양미경’이란 이름도 그렇다. 처음에는 미경이란 이름만 있었는데 미경에 어떤 성을 붙여야 더 강인해 보이고 여성스럽고 촌스러워 보일까 감독님과 이야기했다. 그렇게 서로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모으면서 캐릭터를 만들었다.


관객 1 양미경이 추리를 하고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폭력에 노출되는 장면이 있는데 수위 조절을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범죄의 여왕 2>가 빨리 나오면 좋겠다(웃음).


이요섭 딱히 수위 조절을 염두에 두지는 않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일련의 폭력적인 장면들은 내가 어머니와 가족들 옆에서 직접 경험했던 일이다. 조폭은 아니었지만 무서운 사람들이 일하는 관리사무소에 용감하게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또는 명절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모들의 이야기도 들었다. 누가 바람을 피워서 그 사람을 잡으러 간 이야기, 사채빚을 졌는데 그걸 탕감받으며 한 행동들. 정말 엄청난 이야기들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는 그분들이 아무렇지 않게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정말 멋지고 대단해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이 멋진 분들이 평범하게 지내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했다. 영화를 만들 때 그런 기억과 경험을 녹여서 내가 생각하는 멋진 여성상을 구현해보고 싶었다. 수위 조절은 고민하지 않고 미경을 중심에 놓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려 했다.


김보년 박지영 배우는 <소공녀>에도 출연했다. 짧은 분량이었지만 확실한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박지영 광화문시네마의 가족이 된다는 건 많은 사람을 얻는 일인 것 같다. 김태곤 감독의 <굿바이 싱글>에도 목소리 출연을 했다. 단체 회식을 갔더니 모인 사람 중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개인적으로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광화문시네마 친구들은 서로 엑스트라도 해주고, 앞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같이 작업을 하더라. 그런게 바로 ‘쿨’인 것 같다.

부동산 아줌마 역할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새로운 기회를 얻어서 좋았다. 나도 일을 많이 해봤지만 항상 어떤 역할이 잘 되면 다음에도 비슷한 역할이 들어온다. 그런 걸 피하다 보니 일을 좀 더디게 하는 편인데, 광화문시네마는 이렇게 숙제처럼 새로운 역할을 주어서 좋았다. 크든 작든 유니크하고 새로운 기회를 주는 광화문시네마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관객 2 이 영화의 모든 캐릭터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동료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더 자세하게 듣고 싶다.


이요섭 진지한 이야기를 오래 못 하고 그냥 장난치고 즐겁게 노는 분위기다. 잠깐 자고 일어나면 단톡방에 100개가 넘는 메세지가 올라와 있다. 슬프고 힘든 상황이라도 그냥 술 마시고 웃고 게임하면서 푼다. 그런 분위기가 작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작은 역할이라도 등장과 퇴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퇴장할 때는 등장할 때와 다른 얼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배우를 만나는 일은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새삼 느꼈는데 좋은 배우들과 작업을 한 나는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관객 3 <소공녀>도 그렇고 광화문시네마의 작품들은 서울의 솔직한 모습을 그리는 것 같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서울이 싫을 때도 있는데, 감독님은 서울을 어떻게 그리고 싶었는지 궁금하다.


이요섭 나도 서울에서 꽤 오래 살았다. 소위 ‘강남 8학군’ 학생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부모님의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하고 영화를 하고 있다(웃음). 그때 만난 사람들에게 받은 어떤 공통적인 인상이 있다. 지금은 이곳에 살지만 나중에 여기 못 살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들이 있기도 하다. 그런 맥락에서 나 역시 서울에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노량진이면 노량진, 영등포면 영등포, 이런 식으로 각 공간의 특징을 지도처럼 잡아놓고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작은 공간의 이야기에 집중할 것 같다.




김보년 그러고보면 미경은 서울에 살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그리고 덕구도 알고 보니 부모님이 부자라는 설정이 있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작은 설정이 캐릭터 해석과 연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듣고 싶다.


박지영 원래 미경은 다른 도시 출신이었는데 내가 전주 출신이라 전주로 바꿨다. 참고로 미경의 미용실에 있는 사진은 내가 실제로 88년 미스 춘향 대회에 나갔던 사진을 쓴 것이다(웃음). 미녀 대회 출전자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세계 평화’ 같은 걸 얘기하지 않나. 미경도 그런 캐릭터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크고 거창한 일을 하고 싶었는데 팔자가 기구하여 이렇게 소박하게 살고 있는 캐릭터. 이런 구체적인 설정을 추가하면서 미경의 캐릭터에 더 설득력이 붙은 것 같다.


백수장 나는 덕구가 어떤 출신인지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요섭 과수원집 아들, 부농의 자식으로 설정했었다(웃음). 정말 큰 배밭 같은 걸 갖고 있는 집안.


백수장 그랬었구나(웃음). ‘부자의 자식’이라고 하면 막연히 비호감으로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내 경우에는  주로 구김이 없고 밝은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나도 그런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김보년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다. 고시원 관리인들과 싸우다가 미경이 갑자기 고량주 병을 쓰러뜨리는 장면이 있다. 타이밍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장면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궁금하다.


이요섭 원래 시나리오에 없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리허설을 해보니 좀 밋밋하더라. 그때 박지영 배우가 ‘우리에게 한 시간을 달라, 맞춰보고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배우들이 새로 만들어낸 장면이다. 그 고량주 치는 게 장면의 포인트를 확실히 잡아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얻어 걸렸다’고 생각했다. 배우들에게 잘 받아 먹은 장면이다.


박미경 순간 그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말로도 자꾸 밀리니 미경이라면 그렇게 콩닥콩닥 말대꾸하다가 넘어뜨릴 것 같았다.


김보년 세 분의 근황과 인사말을 듣고 마무리하겠다.


이요섭 지금 다음 작품의 글을 쓰고 있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오늘 다시 보며 반성도 좀 했고,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르다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 열심히 잘해보겠다.


박미경 지금 5월에 방송할 드라마를 촬영하고 있다. <범죄의 여왕> DVD가 있지만 자기 영화를 자기가 혼자 집에서 보는 게 좀 그렇다(웃음). 오늘은 관객들이랑 같이 봐서 너무 좋았다.


백수장 나도 드라마와 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지금 촬영 중인 영화의 감독님이 <범죄의 여왕> 속 덕구를 괜찮게 보셨다고 하더라. 그래서 조금 비슷한 캐릭터인데 어떻게 또 다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광화문시네마와도 또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일시 4월 27일(금) 오후 8시 <범죄의 여왕> 상영 후

정리 하수정 홍보팀장

사진 최현진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