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특별 상영]


처음 가보는 길에서 느끼는 무서움, 그리고 기대감

- <초행>


‘초행’은 처음 가보는 길이자 처음으로 가는 행위 그 자체를 의미한다. 사실상 누구에게나 모든 것의 처음이 있을 테고 엄격히 따져 묻자면 같은 일을 반복할 때조차도 흘러간 시간 앞에서는 그마저도 처음일 수밖에 없다. 또 처음 하는 일에는 얼마간의 낯섦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 그 낯섦이 무서움이라는 감정으로 호명될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는 주춤거리다 못해 잔뜩 움츠러든다. 김대환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초행>은 ‘첫’이 불러일으키는 이 무서움에 대한 영화이자 그 무서움의 실체를 마주하게 하는 방식에 대한 영화 같다. <초행>에선 무엇이 무서움인가. 무서움은 어떻게 발생하는가.

7년간 연애하며 지금은 동거 중인 지영(김새벽)과 수현(조현철)이 있다. 그들은 살던 집보다는 좀 더 가격이 싼 외곽으로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싼다. 싸다 만 이삿짐들 사이에서 이들은 최소한의 식기와 침구만 두고 며칠을 더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 때에 수현은 아버지의 환갑 모임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고 난감해한다. 지영도 함께 오라는 것 같아 수현은 더욱 곤란하다. 곧이어 지영은 수현에게 자신이 생리를 하지 않고 있음을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수현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하며 대답을 회피하거나 대답하길 지연시키고 싶다. 지영 역시 즉각적으로 어떤 말을 더 하거나 무슨 방도를 취하지는 않는다. 낯설고 불편하고 불안하고 그래서 무서워지는 것들이 수면 위로 하나 둘 등장이다. 그들은 새 집으로 이사한 지영의 부모가 있는 인천과 수현의 가족이 있는 삼척을 차례로 오간다. 양쪽 부모는 저마다 정도의 차는 있겠으나 지영과 수현이 조만간 결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 같다. 영화를 좀 더 지켜보면 방송국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지영은 정규직 전환 여부가 확실치 않으며 미술학원 강사인 수현 역시 벌이가 녹록해 보이진 않는다. 지영과 수현은 여러모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초행>은 30대 비혼 커플이 직면할 법한 결혼, 임신, 생계, 주거의 곤경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들이 지영과 수현의 무서움의 대상임에 분명하다. <초행>은 젊은 세대가 일상적으로 겪느라 오히려 익숙해져버릴 지경인 이 ‘무서움’을 공간(성)과 풍경을 통해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데뷔작 <철원기행>에 이어 김대환 감독의 가족 서사는 이 지점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특히 감독에게 집은 원형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초행>의 집부터 말해보자. 지영과 수현은 주거비를 감당하기 위해 이사를 택하지만 이사 갈 집에서도 이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다. 지영의 부모가 장만했다는 집은 시세 차익을 고려한 지영 모가 택한 잠정적 공간이다. 그 집에 지영 모가 꾸민 지영의 방은 지영이 거주하지 않는, 지영의 의사가 반영돼 있지 않은 공간이다. 사실상 주인 없는 텅 빈 방이나 다름없다. 수현의 부모는 각자 따로 산다. 그중 수현의 아버지가 사는 집은 산만하며 느닷없이 들려오는 세탁기 소리가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삼척으로 향하던 지영과 수현이 잠시 들렀던 공가옥도 을씨년스럽긴 마찬가지다. <초행>의 집들은 채워져 있으되 비어 있는 공간이자 임시적이고 한시적인 거처다. 물리적 공간으로서의 집이든 집으로 대변되는 가족이라는 관계든 집은 불안의 요소다. 지영과 수현에게 집은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피곤하고 불편하며 낯설고 무서운 공간으로 자리한다.

로드무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초행>은 길이라는 공간성과 이동의 과정을 일부러 길게 또 중요하게 보여준다. 지영과 수현은 그들의 생활 터전인 서울을 중심으로 인천과 삼척을 횡단한다. 이동 그 자체가 영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그들의 자동차가 그들의 임시 거처로 보일 정도다. 그들은 길 위에서 때론 길을 잃고 때론 목적지를 찾기 어려워 도착하기도 전에 길 위에서 이미 지친다. 삼척으로 가는 길은 특히나 이상하다. 수현이 지영에게 팔다리가 절단된 채 삼척 해변에서 발견됐다는 시체 이야기를 하며 “그런 데야, 삼척이. 너 지금 그런 데로 가고 있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무시무시한 괴담의 유포자가 늘어놓는 엄포다. 하지만 그렇게 말함으로써 이후 이들은 삼척을 생각할 때면 아마도 하나의 강렬한 이미지(시체)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대화 이후가 더 으스스하다. 느닷없이 새떼가 그들의 차로 돌진해 날아든 것이다. 그때 더 크게 놀라는 쪽은 수현이다. 괴담 유포자가 놀라 내리지르는 괴성은 삼척행의 괴괴함이 수현에게 보다 더 크게 다가오고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영화 속에 예고 없이 난입해 들어온 새떼는 그야말로 우발적인 사건이다. 그 우연이 기이하고 그 기이함이 영화 속 무서움을 자극한다.

이동의 방식 중 ‘걷는다’는 행위 역시 말하고 가야 한다. 인천에서 일몰을 배경으로 지영 부모와 지영, 수현이 걸어가는 장면이 와이드 앵글로 이동 촬영돼 있다. 인물들은 서로 다른 거리 차를 두고 일렬로 걸어간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거리가 인물 간의 심리적 간극이 된다. 일렬이라는 하나의 선 위에 있으되 그들은 그 선 위에서 만나지 않는다. 이때 ‘걷기’란 여기서 저기로의 이동이 아니다. ‘걷기’라는 이동은 각자가 자신의 공간을 구획하고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방법이자 마주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회피하는 방식의 한 형태다. <철원기행>에도 이러한 이동의 형태가 있다. 흩어져 살던 가족은 아버지의 정년퇴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철원으로 모인다. 폭설로 그곳에 고립된 가족은 눈밭을 걸어서 아버지의 임시 거처인 관사로 향한다. 나란히 걷기가 아닌 거리를 두고 일렬로 줄지어 가는 이동의 풍경이 등장한다. 게다가 두 영화의 이 걷는 장면은 풍경이 만드는 기세가 극적으로 드러나는 때다. <초행>의 걷는 장면에서는 거센 바람이 분다. 가로수 잎이 꺾일 만큼 거친 바람은 불어오는 바람을 등지고 걷는 가족의 등을 떠밀고 있을 게 분명하다. <철원기행>의 걷는 장면에는 내리는 눈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푹푹 빠져들 정도로 쌓인 눈의 물성이 있다. 앞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게 천근만근일 게 분명한 상황. 눈의 무게감이 고스란히 체감적으로 다가온다. 인물들이 찾아간 공간과 그곳의 풍경은 인물들의 신경을 건드리고 무서움의 실체를 또 다시 자극한다.

그러던 <초행>의 마지막 이동의 공간은 2016년 겨울의 광화문 광장의 촛불 현장이다. 지영과 수현은 나란히 광장을 걸으며 “이리로 가니까 또 다 저리로 가는 것 같은데”라며 촛불 물결의 방향을 가늠한다. 하지만 방향을 바꿔 걸어봐도 그곳에는 또 다른 흐름이 있다. 자신의 상황과 입장과 선택 앞에서, 인천과 삼척을 오가던 내내 지영과 수현은 “모르겠다”고 말해왔다. 지영과 수현의 “모르겠다”는 말은 그들이 “무서웠어”, “나 너무 무서워.”라고 서로에게 각자의 무서움을 고백할 때까지 ‘무섭다’의 간접 화법처럼 들린다. 그러던 그들은 광장의 흐름 앞에서 또 한 번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고 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들은 지금 방향이 명시돼 있는 길이 아닌 사방으로 열려 있는 무정형의 공간인 광장에 있다는 것이다. 이곳은 어디로 가도 상관없다는 의미에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향도를 잡아나가야 하는 건 지영과 수현의 몫이다. 가능성으로서의 열림. 그것은 동시에 또 다른 무서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무서움은 무서움인 채로 남아 있다. 모르겠는 것도 마찬가지다. <초행>이 이동하고, 걷고, 움직여 가며 얻은 자명하고도 잠정적인 결론이다.

 

정지혜 영화 칼럼니스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