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무라 쇼헤이 회고전 今村昌平 回顧展]


산만함을 우회한 단호함 - <돼지와 군함>


<돼지와 군함>의 오프닝 숏은 너무도 명징해서 도리어 의심스럽다. 경쾌한 군대 행진곡을 배경으로 카메라가 미군 부대 성조기에서 출발해 부대 너머 공간까지 패닝한다. 한낮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부감숏으로 이어지던 흐름은 네온사인 위에서 돌연 점프컷하며 밤으로 연결된다. 첫 숏을 성조기에서 시작하는 까닭은 영화가 당대의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은유한 것임을 예고하는 걸까.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미국과 일본의 관계를 은유하기 위해 극적인 서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관계가 서사를 위해 적절히 사용된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 카메라의 흐름은 영화의 주된 공간이 군 부대 근처 환락가임을 드러낼 따름이다.

<돼지와 군함>은 미군 부대 근처에서 삶을 꾸리는 이들을 담은 영화의 전형성에서 한 발 비켜나 있다. 무엇보다 미군과 일본인 사이에 일어난 사건의 비극적 강렬도에 기대지 않는 점에서 그렇다. 영화의 방점이 되는 사건은 미군과 무관하지는 않지만 일본인 간의 다툼으로 빚어지며, 미군과 일본인의 관계는 그들이 처한 상황이나 경제적인 격차를 고려할 때 비교적 평등하다. 주인공 긴타는 미군의 모자를 빼앗아 손님들을 환락업소로 꾄다. 이 때문에 단속에 걸려 미군과 업소 관계자들이 군 경찰과 경찰에게 나란히 체포된다. 이 장면에서 보여주는 미군과 일본인의 관계는 일시적 운명 공동체처럼 보인다. 하루코가 세 명의 미군과 하룻밤을 보낸 뒤 샤워 중이던 미군의 돈을 훔쳐 달아나다 경찰에 붙잡혀 수모를 당하는 장면에서도 실제 굴욕을 맞는 이는 속옷 바람으로 하루코를 쫓아온 미군들이다. 여기에서 어느 쪽의 우월함이나 굴종을 읽어낼 여지는 없다.

그럼에도 영화에는 일본의 상황을 암시하는 듯한 장면을 곳곳에 배치한다. 이를테면 어린 소년이 ‘세계와 일본’이라는 제목의 교과서를 읽는다. 소년이 낭독한 글에 따르면 일본은 이른 시일 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 세계를 놀라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고루한 생각과 악습이 남은 국가다. 하루코의 마지막 선택으로 돌이켜 생각하자면 영화는 ‘고루한 생각과 악습’으로부터 절연해야 함을 지지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루한 생각과 악습’이 영화 속에서 무수한 움직임과 흐름을 만들어내고 그것이 결국 영화의 활력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 고루함은 이중적이다.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실제로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을 그리고 싶다는 자신의 지향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 <돼지와 군함>에서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지 않는 산만함으로 표현되는 듯하다. 대조적인 것들이 분화하여 출몰하는 이 영화에서 장르적인 대조점을 그리는 것은 누아르와 멜로드라마적 요소다. 누아르와 멜로드라마를 뒤섞는 것이 특별한 것은 아니나, 이 둘 간의 힘겨루기의 결과인 비극과 희극의 정조마저 한데 뒤섞인다는 점이 영화의 특별함을 만든다. 하루코와 긴타의 멜로드라마는 긴타가 얽힌 누아르적 상황과 묘한 긴장을 이룬 채 지속된다. 긴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누아르와 멜로는 비극으로 합치되지만, 영화는 그것이 주는 비애를 구태여 강조하지 않는다. 이는 긴타의 죽음을 대하는 하루코의 태도와 연출 방식에서 비롯된다. 구급차에 실려 멀어지는 긴타를 향한 하루코의 감정은 ‘바보야’라는 반복된 외침으로 고조된다. 그러나 슬픔은 곧이어 카메라 앞에 끼어든 거리의 놈팡이 무리에 의해 방해받는다. 하루코는 지쳐 쓰러지지 않을 만큼의 슬픔을 느낀 뒤 이내 긴타의 죽음으로부터 멀어진다.

돼지들이 도심의 골목을 가득 메운 풍경은 영화가 멜로와 누아르 대신 선택한 제 3항처럼 보인다. 돼지 떼는 액션과 리액션으로 구획된 세계를 비집고 나타난 우발적인 사건이며 따라서 실제 세계는 정확히 액션과 리액션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증한다. 이 모든 소동들에도 영화를 당시의 세계 정세와 무관하지 않은 일본의 이중적 정서를 대변한 작품이라 말끔히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명확한 결론이란 예의 삶의 복잡한 과정을 거친 뒤에 겨우 말할 수 있는 것임을 영화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이마무라 쇼헤이가 지향하는 리얼리티의 재현 조건은 아닐까.


김소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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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