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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의 극장 친구들과 예술영화관의 현재를 말하다 - '아트나인' 편

시네마테크의 극장 친구들과 예술영화관의 현재를 말하다 


2015년, 영진위는 예술영화관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이라는 신정책을 강행했다. 독립예술영화계의 의견을 무시한 채 시행된 이 정책은 기존의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의 지원을 중단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기존의 예술영화관 지원 정책이 예술영화관의 공공성을 인정해 극장을 지원하고 그들의 자율적인 작품 선정을 존중한 것과 달리, 신정책은 극장의 자율적 작품 선정을 부정하고 영진위가 선정한 작품을 상영할 때만 지원을 한다는 선별 정책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고, 영진위가 직영하던 독립영화관 인디플러스가 지난해 말 폐관했다. 그리고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 사업은 실패로 끝났고, 여전히 예술영화관, 독립영화관에 대한 지원은 회복되지 않았다. 이에 서울의 대표적인 예술영화관 관계자들과 만나 현재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17년 예술영화관의 새로운 변화를 위해서. 



이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믿고 볼 수 있다는 신뢰를 쌓아야 한다

◆ 아트나인 ◆

  



관객에디터 올해 1월이 개관 4주년이다. 아트나인은 어떻게 개관하게 됐나?


주희(아트나인) 일단 우리 극장은 멀티플렉스에서 시작했다. 극장을 처음 시작하면서 대표님과 ‘극장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려고 했다. 극장은 슈퍼마켓같이 영화를 그냥 소비하고 유통하는 곳이 아니라 그 이상의 본질적인 기능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먼저 하드웨어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다. 제작자나 감독이 의도한 표현을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극장을 만들려고 했다. 사운드, 영사 장비 등에 신경을 많이 썼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즉 영화에 대해서도 고민을 했다. 알다시피 멀티플렉스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다. 수익을 낼 수 있는 영화를 고르기가 쉽지 않다. 결국 상업영화를 상영할 수밖에 없었는데,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이 늘 있었다. 그래서 매달 특별 기획전을 했었다. 3~4년 정도 컬트무비도 상영하고 감독전도 열었다. 처음에는 관객들이 많이 오지 않다가 제대로 정착이 되자 일정 이상의 점유율이 나왔다. 하지만 멀티플렉스 안에서는 여전히 한계가 있었다. 예술영화관, 혹은 다양성영화관을 하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아트나인을 시작하게 됐다. 

 

관객에디터 멀티플렉스에서 기획전을 할 때는 어떤 제약을 받는가.


주희 아무래도 상업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공간이라서 다양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이해가 높지 않았다. 이게 뭐야, 이렇게 말하는 관객들이 많았다. 그래서 극장 주변의 관객이 아니라 점점 더 넓은 지역으로 홍보를 해야 했다. 즉 관객을 유치하는 게 쉽지 않았다. 

 

관객에디터 지금 아트나인을 찾는 관객층은 어떤가?


주희 처음 예상은 20~30대로 보았는데, 점점 연령대가 올라가고 있다. 40~50대가 많다. 낮에는 주부분들이 많이 오고 저녁으로 갈수록 젊은 층들이 많이 온다. 전반적으로 30~40대가 가장 많은 것 같다.

많이 고민 중이다. 우리의 모토는 어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동시대 예술영화, 고전 영화, 도발적인 영화, 정치적 이슈를 다룬 영화, 신인 감독의 영화 등등. 그래서 특정 관객층, 특정 세대를 겨냥하고 영화를 상영하면 결국 우리 목을 우리가 조르게 될 것 같다. 

 

관객에디터 그렇다면 연령층에 맞춰 프로그램을 따로 구성하지 않는 건가.


주희 프로그램 자체를 세대로 나누어 기획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낮에는 주로 30~40대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배치하고, 저녁이나 심야 시간에는 젊은 관객들이 많이 볼 것 같은 영화를 배치한다. 특히 올빼미족들이 있다. 예술영화 보는 관객 중 밤에 오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도 회차를 늘렸다. 밤 11시 30분에서 12시 30분에 사이에 시작하는 “Late Show”를 새로 기획했다. 처음에는 관객들이 많이 들지 않았는데 점차 관객이 많아지고 있다. 이런 건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도 인원 배치 등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 부분이라 고민을 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늦게 상영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좋은 영화’를 상영해야 한다. 영화는 꼭 보고 싶지만 낮, 저녁 시간에 못 오는 관객들을 위한 전략적 프로그램이다.

 

관객에디터 심야에는 주로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가.


주희 ‘코어 타겟’이 있는 영화를 상영한다. 가령 <슈퍼 소닉>이나 <연애담> 같은 영화들. 

 

관객에디터 ‘아트나이너’라는 제도가 눈에 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주희 우리 기획전 중 ‘시네프랑스’가 있다. 프랑스 영화만 매달 네 작품, 매주 화요일마다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시네프랑스를 홍보할 때 조금 부족한 면이 있어서 따로 서포터즈 모집을 했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고,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찾아 주었다. 그래서 시네프랑스만 할 게 아니라 더 다양한 영화로 확대를 했다. 분기별로 모집하는데, 다른 일을 하시는 분들도 있고 학생분들도 있다. 기본적으로 영화를 정말 좋아하시는 분들이다. 개별 리뷰도 쓰고 기획 기사도 쓴다. 정말 열정적으로 열심히 활동하시는 분들이다. 

 

관객에디터 극장에 도착하면 식당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복합 공간으로서의 극장에 대한 철학을 듣고 싶다. 


주희 일단 극장에서 상업적인 홍보는 지양하는 게 모토다. 광고를 하더라도 영화에 관련된 것이나 책, 음반 등 예술에 관련된 것만 한다. 이곳에 와서 영화뿐 아니라 동시대의 문화 정보를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식당에 대해서는… 영화를 보고 나면 극장 바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영화가 끝나면 바로 떠밀려서 집으로 가야 하는 구조다. 그것보다는 영화의 여운을 만끽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담배도 피우고, 차도 마시고, 좋은 음악도 듣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다. 아, 팝콘은 팔고 싶지 않다(웃음). 전반적인 반응은 나쁘지 않다. 음식점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처음 3년은 고생을 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정착이 됐고, 셰프님들도 극장이란 공간을 많이 배려해주신다. 라떼를 주문하면 라떼아트로 자비에 돌란의 얼굴을 그려주기도 한다. ‘식(食)’도 중요한 문화라고 본다. 

 

관객에디터 기획전을 진행할 때 공간에도 변화를 주는 경우가 있는지.


주희 크게는 아니지만 테라스를 이용해서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 ‘미니 토크’라고 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 있다. 때로는 야외 상영을 하기도 한다. 외국에는 와인 등 기본적인 준비를 해놓으면 관객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고도 하는데, 아직 그런 분위기까지 가는 건 좀 힘든 것 같다. 

 


관객에디터 앞으로 특별히 공략하고 싶은 연령층이나 관객층이 있는가?


주희 그런 쪽으로는 딱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20~30대가 오더라도 40~50대와 같이 영화를 보면 좋겠다는 게 우리 소망이다. 물론 완전히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주부 관객들이 많이 오는데 젊은 관객들이 좋아하는 영화만 상영할 수는 없다. <나의 산티아고>(줄리아 폰 하인츠, 2015)는 40~50대 여성 관객이 굉장히 좋아했다. 영화도 보시고 점심도 드시고 그랬다. 하지만 <나의 산티아고>만 계속 상영할 수는 없다. 그런 관객들에게도 <연애담>, <슈퍼소닉>을 추천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예술영화관은 관객들의 충성도가 매우 중요하다. 멀티플렉스와는 다르게 이 영화관에서 상영하는 영화라면 관객들이 믿고 보는, 그런 신뢰를 쌓아야 한다. 

 

관객에디터 아래층에 메가박스가 있다. 새로운 관객들의 유입이 있을 것 같다. 


주희 그게 너무 안 된다. 가끔 팝콘을 찾는 분도 있고, 20분 늦게 와서 왜 입장이 안 되냐고 항의하기도 한다. 몸싸움이 벌어진 적도 있다. 그런 면에서 영화를 보는 태도에 대한 트레이닝이 필요한 것 같다. 정말 막무가내인 분들이 있다. 음식을 던지고, 싸움이 나서 경찰이 오고(웃음). 다른 예술영화관들도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관객에디터 다른 예술영화관과 비교했을 때 아트나인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주희 기획전을 꾸준히 하고 있다. 시네프랑스가 있고, 한 달에 한 번 “헬로 굿바이”라고 3편을 심야 연속 상영으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이건 할 때마다 거의 매진이다.

1년에 한 번은 큰 기획전을 진행하려 한다. 이와이 슌지, 기타노 다케시 특별전 등. 올해는 가능하면 재패니메이션 기획전을 해보고 싶다. 하지만 특정 프로그램으로 차별화를 하기보다는 어딘가에 얽매이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한 관에서는 타르코프스키를 상영하는데 바로 옆에서는 주성치를 상영하는 그런 것들. 큰 틀에서 봤을 때 아트나인이라는 극장에 대한 믿음을 주고 싶다.  

관객에디터 극장 운영과 수입, 배급을 함께하고 있다. 이점이 있을 것 같다.


주희 이점이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가 수입한 영화를 일단 안전하게 상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관객이 별로 들지 않으면 철저히 시장 논리로 접근을 한다(웃음). 관객이 많이 들지 않는데 억지로 상영을 이어가지는 않는다.

우리 극장의 모토 중 하나는 다른 극장에서 잘 상영하지 않는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다. 그래서 토마스 빈터베르그나 라스 폰 트리에의 영화, 북유럽의 신인 감독들의 영화를 많이 소개했었다. 인도 영화도 상영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힘들기는 하다. 고민이다.


관객에디터 아트나인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자비에 돌란이다(웃음).

 

주희 자비에 돌란의 영화를 처음 수입했을 때는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이 젊은 친구의 재능, 다음 행보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수입을 했는데 감독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기뻤다. 그래서 더 좋은 방향으로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어서 이왕이면 우리가 예쁘게 진행하고 싶었다. 그런 우리 마음을 감독도 알아줬고, ‘같이 간다’는 느낌이 있다.

그런데 이제 너무 핫해져버려서(웃음), 비용이라든지 어려운 점이 많다. 돌란으로 우리가 돈 번 건 하나도 없다. <마미>도 마이너스였다. 손해만 보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계속하고 있다. 아시다시피, 애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객에디터 추석특선 영화 관객 투표를 보니 전부 돌란 영화더라.

 

주희 누가 추석에 돌란 제사 지내느냐고 하던데(웃음), 좋아하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이번에 영상 메시지가 왔는데, 다음 작품 개봉 때는 한국에 방문하고 싶다고 하더라.

 

관객에디터 예전에는 강남에 시네마오즈, 뤼미에르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아트나인이 강남의 거의 유일한 예술영화관이다.

 

주희 사실 처음에는 여기서 다양성영화관이 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가 소위 ‘강남의 중심’도 아니고 걱정이 있었다. 그런데 한번 오신 분들의 입소문이 굉장히 컸다. 다른 극장과는 다르다. 프로그램도 재미있고, 식당도 있고, 신선하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다. 지금은 강남의 멀티플렉스에도 ‘아트하우스’관이 많다는 걸 고려해보면, 아트나인이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 같다. 영화를 본다기보다는 그 장소에 가고 싶다는 느낌.

 

관객에디터 상영관의 한쪽 벽이 전부 유리다.


주희 단점이 장점이 된 부분이다. 원래는 이 공간이 일식집이었다. 그런데 극장이 그쪽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해서 고민을 했다. 예전에 대학로에 있던 하이퍼텍 나다가 기억이 났다. 거기도 한쪽 벽이 전부 유리였다. 밖으로 장독대도 보이고 그랬는데, 나는 그 분위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유리를 아예 막을 수도 있었는데, 야경도 볼 수 있고 노을도 볼 수 있게 그대로 살렸다.

 

관객에디터 플리마켓도 열린다.

 

주희 우리 직원 중 플리마켓을 아주 좋아하는 분이 있다. <마미> 상영을 앞두고 한 번 해보자고 했는데 그때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러면서 일 년에 두 세 번 정도 진행하고 있다. 영화사나 수입사 들이 만든 영화 관련 상품들, 소위 ‘굿즈’를 판매하는데, 큰 수익이 발생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디자인하시는 분들, DVD 만드시는 분들, 음반이나 책 쪽에서 일하시는 분들, 다른 아티스트 분들이 영화를 공통 소재로 삼아 함께 모이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음 달에도 할 예정이다.

 

관객에디터 최근 영화와 관련한 굿즈가 많아졌다.

 

주희 나는 원래 굿즈는 절대 만들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단가를 생각하면 할 수가 없다. 그런데 희소성이 있고, 컨텐츠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관객이 있으면 만들어도 되겠다고 생각을 했다. 영화는 안 봐도 굿즈만 사는 분들도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수익을 목표로 하는 건 당연히 아니고, 기본적으로는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준다는 생각으로 접근한다. 일례로 “기타노 다케시 특별전”을 할 때는 굿즈를 절대 팔지 않고 관객들에게 선물로 드렸다.

자비에 돌란 작품을 하면서 배지 같은 것도 만들었는데 반응이 좋았다. 그리고 프로그램 북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만든다. 물론 정보를 인터넷에서 찾아도 되지만 직접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분명히 있다. 그런 걸 만들어서 잘 판매하면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충성도가 높아진다.

 

관객에디터 아트나인의 직원들은 이곳에서 오래 일했나?

 

주희 오래 계신 분들도 있지만, 영화 마케팅이라는 것이 워낙 열악하고 힘드니 변화가 많은 편이기는 하다. 그런데 계속해서 영화를 하는 것 같다. 영화일 다시는 안 하겠다고 하시고는 계속 이쪽에서 일하고 계시고...

 

관객에디터 영진위의 새로운 전용관 지원 사업은 결국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후 대안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주희 ‘26편의 작품’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밍의 자율권을 박탈하는 것이고 극장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굉장히 위험하고 폭력적인 정책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그 지원금이라도 받아야 하는 극장들이 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배급 지원과 극장 지원은 별개라고 본다. 둘을 합치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극장 문을 연다고 관객이 무조건 오는 게 아니다. 관객이 극장을 찾게 할 구체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서는 기관과 프로그래머가 같이 협의를 해야 하는데 이번 정책은 그냥 본인들의 생각으로만 만든 탁상공론이라고 본다. 현실성이 없는 정책이었다.

 

관객에디터 최근 한 멀티플렉스 체인에서 <나의 소녀시대>(진옥산, 2015)를 단독으로 상영한 게 문제가 됐었다.


주희 솔직히 말하면 단독 개봉은 장단점이 있다고 본다. 단독 개봉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지점도 있다. 앞으로 극장 간의 경쟁은 컨텐츠 싸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도 단독 상영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스타워즈>를 단독 개봉하는 것도 아니고 의미 있는 저예산 영화를 작은 규모로 개봉하는 것이다. 그걸 좋게 포장해서 내놓고, 관객이 그걸 보기 위해 한 극장을 찾는 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다. 단독 개봉으로 관을 200개씩 잡는다. 그건 폐해고, 나중에는 모두 다 죽는 거다. 수입사의 경우 이번에는 다행히 단독 개봉으로 성공했다 하더라도 다음에 단독 개봉을 못 하면 또 문제에 처할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더 면밀한 토론과 고민이 필요하다. 물론 단독 개봉을 하면 홍보 비용이 절감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배급망을 확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단독 개봉은 극장 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리스크를 지는 것이다.

이게 전부 컨텐츠의 싸움이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의 교통정리는 필요하다. 멀티플렉스와 예술영화관에는 다른 기준이 필요할 것이고, ‘단독 개봉의 경우 관을 몇 개 이상 열지 않는다.’ 같은 제한도 필요할 것 같다. 더 자세하게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이런 규제가 있으면 단독 개봉도 생각해볼 문제일 것 같다. 안 그래도 영세한 예술영화관들이 컨텐츠로 제약을 받으면 정말 힘들어진다.

 

관객에디터 배급-상영 겸업 금지가 이루어지면 아트나인도 거기에 해당이 되나?

 

주희 대기업이 아니라서 괜찮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웃음). 멀티플렉스의 경우 배급과 상영이 분리되는 건 정말 이상적인 이야기다.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만약 실제로 시행이 되면 제작부터 시작해 엄청나게 큰 혼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되고 매우 많은 고민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본다.

 

관객에디터 예술영화관의 등급분류 면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주희 ‘제한상영’이라고 하는데, 지금 한국에는 제한상영 극장이 없다. 영화를 상영하지 말라는 거다. 그런 등급이 있다는 것 자체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기도 하고, 창작자는 자기 검열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도 <님포매니악>을 할 때 정말 힘든 경험을 겪었다. 심의비만 2000만 원이 들어갔다. 블러 처리를 두고 뭐라 그러면서 심의를 계속 받느라고 그랬다. 도대체 기준이 뭘까.

유난히 영화에만 심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생각도 한다. 영화 본편뿐 아니라, 예고편, 전단에도 제약을 가한다. 키스 장면이 나오면 안 된다, 살이 너무 나오면 안 된다, 뭐 이런 것들이다. 포스터에도 문신이 나오면 안 되고, 가슴골이 보이면 안 되고 등등. 그런데 CF에도 키스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가. 방송, 애니메이션, 문학, 연극은 어느 정도 숨통을 트이게 해주는데 유독 영화만 이렇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건 좀 시대착오적이라 생각한다. <캐롤> 같은 경우에는 손에 담배도 지웠다. 악법도 법이라고 지키고는 있지만 다들 이건 말이 안 된다고 얘기하고 있다.

 

관객에디터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모바일 시장이 커졌다. 극장 운영에 어떤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나?

 

주희 관객 수는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데 공식적으로 ‘개봉’한 작품의 수가 작년보다 300편 정도 늘었다고 하더라. 그 정도로 수입하는 영화가 많아졌다. 그런데 그 작품을 수용할 극장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 많은 영화는 어디로 갈까. 결국 IPTV 등 부가판권 시장으로 직행한다. 이런 과열 경쟁도 부가판권 시장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질적인 하향 평준화라는 위험 요소도 갖고 있다. 이것저것 다 가져오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말하자면 ‘꼭 극장에서 상영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영화들이 있다. 반면 극장에서 꼭 보고 싶은 작품, 우리가 해보려고 했던 작품들이 바로 부가 판권 시장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한 편의 작품이 어느 정도 완성도를 갖고 있으면 관객 1만 명은 거뜬히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1만 명 넘기는 게 정말 어렵다. 또한 영화를 수입할 때 국내 업체 간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에 작품 개런티도 올라간다. 비싸게 사오지만 그만한 성과는 안 나오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중이다. 그래서 안타까운 상황들이 많다. 이 과도기가 지나면 조금 정리가 되길 바란다. 참고로 우리는 한동안 영화를 많이 사지 않으려 한다. 수입하는 가격도 너무 올랐고, 작년 우리가 진행한 영화들이 전부 수입을 내지 못했다. 아, 그래도 돌란은 어떻게든 살 것이다. 엄마의 마음으로(웃음).

 

관객에디터 부가판권이나 다운로드 시장의 발전과 극장을 찾는 관객의 패턴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주희 그래도 영화관에서 보고 싶은 작품은 다 찾아와서 보는 것 같다. <화양연화>를 딱 하루 상영했었다. 그래도 다 와서 보셨다. 이 영화는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극장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지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 수많은 사람과 감정의 연대를 한다. 옆에서 흑 소리 내면서 울면 나도 따라 우는 그런 경험(웃음). 영화를 극장에서 보는 건 일기일회의 경험이라고 하더라. 그날의 기분과 느낌에 따라 영화가 다르게 다가온다. 그래서 극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관객들이 꼭 극장을 찾게 만드는 컨텐츠도 많아지면 좋겠다.

재개봉 열풍도 이런 맥락이 있다고 본다. 나는 재개봉을 일종의 향수라고 생각했었는데, 젊은 관객들에게는 그게 극장에서 보고 싶은 새로운 영화다. <이터널 선샤인> 재개봉 때 ‘10년간 쌓아온 바이럴’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어렴풋이 이 영화가 좋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으며 영화에 대한 기대가 만들어졌고, 그게 극장 방문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작은 규모로 상영이 되는 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관객에디터 외국의 예술영화관들이 폐관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한국의 예술영화관의 미래는 어떨까?

 

주희 밝지는 않다. 내가 일본에서 유학했을 때 시부야를 중심으로 ‘미니시어터’ 붐이 불었다. ‘여기는 내 극장이다’라는 느낌으로 극장을 찾아 영화를 봤었다. 그런데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극장들이 하나씩 사라지고 있더라.

‘대중문화’, ‘순수예술’ 이런 식으로 구분하지만 과거에 시네필들이 좋아하던 ‘예술영화’는 이제 없는 것 같다. 그 폭이 조금 넓어진 것 같다. 이제 극장이 살아남으려면 자기만의 색깔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앞에서 말했지만 단관으로 진행하는 단독 개봉은 필요하다고 본다. 일본에 ‘이미지포럼’이라는 단관 극장이 있다. 다른 예술영화관들은 사양길에 접어드는데 이 극장은 아직 열심히 운영 중이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물으니 자신은 절대 영화의 흥행을 고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내년 프로그램까지 이미 다 준비하고 있고, 정말 ‘힘든’ 영화도 많이 상영한다. 하지만 그 극장을 찾아야만 볼 수 있는 영화를 상영한다. 그 작은 극장을 몇만 명의 관객이 찾는다.

그에 비하면 아트나인은 아직 힘든 편이다. 왜냐하면 영화를 상영할 때 타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관객들이 좋아하고 반응이 좋은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아트나인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싶다. 우리가 처음에 의도했던 것들 – 새로운 영화, 정치적이나 미학적으로 도발적인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하고 싶다. 그리고 멀게 보면 이게 우리가 앞으로 살길이라 본다. 제대로 된 예술영화관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고.

 

관객에디터 과거 시네필들이 좋아하던 예술영화가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주희 어떻게 과거에는 타르코프스키의 영화가 한 관에서 10만이 넘는 관객을 모을 수 있었을까. 그때 그 영화를 본 관객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요즘에는 그런 현상이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한다. 내 생각에 한국의 고정적인 예술영화 관객은 5만 명 정도인 것 같다. 많이 들면 10만이고, ‘대중’들이 보기 시작하면 30만 명 정도 든다. 지금의 관객들은 약간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상영하는 ‘예술영화’도 사실은 예술영화가 아니다. 자국에서는 상업영화인데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에서는 다양성 영화로 분류되기도 한다.

 

관객에디터 극장을 운영하며 4년 동안 힘들었던 점은?

 

주희 유지비. 두 관을 합쳐서 150석밖에 안 된다. 각 92석, 58석이다. 하루 낑낑대면서 운영을 하면 두 관 합쳐 7~8회차 정도 상영할 수 있다. 여기에 점유율은 평일 30~40%, 주말 60~70% 정도 나온다. 이걸로 직원들 인건비를 다 주는 게 정말 힘들다. 겨우 손익분기점을 맞춘다. 그리고 정말 좋은 의자라고 갖다놔도 고장이 난다. 프로젝터도 계속 수리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세 번이나 바꿨다. 1년 단위로 뭔가를 계속 고치면서 유지보수비가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예술영화관 운영을 민간에서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예술영화관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영화를 보여주고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예술영화관의 에너지가 커지고,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예술영화가 돈이 안 된다고 정책도 미흡하게 만들어진다. 지방에서 예술영화관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는 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정책을 아예 무산시켜 버렸다. 정말 많이 화가 났다. 이번에 영진위의 예술영화관 지원 정책이 바뀌면서 지금까지 지원을 받다가 못 받게 된 극장들이 있다. 그 극장들은 타격을 정말 크게 받았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술영화관과 멀티플렉스가 같이 경쟁을 해야 하는데, 알다시피 예술영화관의 운영 조건이 열악하기 때문에 어렵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자체적으로 홍보가 많이 된다. 그리고 극장이 돈을 받고 영화 홍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영화관의 영화는 홍보도 부족할 뿐더러 극장이 직접 영화 홍보를 해야 한다. 

그러니 정부에서 예술영화관을 그냥 다른 멀티플렉스처럼 보지 않고 시민들을 위한 문화를 발전시킨다는 차원으로 지원하면 좋겠다. 굳이 극장에 직접 지원하지 않아도 괜찮다. 프랑스에 그런 비슷한 제도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를테면 학생들이 영화를 10번 보면 그다음부터는 금액을 30% 할인해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관객은 안 오는데 영화관만 운영하는 것도 이상하다. 직접 관객이 올 수 있게 지원을 해주는 정책이 있으면 좋겠다.

또 하나 힘든 게 있다면 관객들의 시선이다. 다양한 문화의 중요성을 공유하는 문화가 있으면 좋겠다. 예술영화관이 오히려 핸디캡을 받는 것 같을 때가 있다. 우리 극장이 영화관람료 현실화를 이야기하면서 처음으로 입장료를 1,000원 올렸었다. 그때 관객들이 예술영화관이 왜 그렇게 비싸게 하냐고 비판을 했었다. 입장료를 올리는 건 극장만 좋은 게 아니라 수입사, 제작사에 전부 골고루 돌아가는 것이다. 전체가 좋은 것이다. 극장과 관객이 함께 영화 문화를 만들어간다는 인식이 생기면 좋겠다.

이건 다른 얘기인데, 우리는 극장에서 어떤 이벤트를 많이 하려고 하지 않는다. 할인도 전혀 없다. 돈을 깎는 게 아니라 관객에게 하나라도 더 주자는 생각이다. 영화를 너무 싸게 보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극장에서는 할인카드 같은 것도 적용되는 게 거의 없다. 


관객에디터 서울시의 지원을 받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주희 옛날 영진위 지원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자유스럽다. 홍보를 더 많이 할 수 있다. 팜플렛이나 뉴스레터 등을 발송할 수 있고, 내부에서 별도의 영상을 만들거나 현수막 교체도 비교적 마음대로 할 수 있다. 그러면서 극장 관리비도 많이 충당되고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너무 간섭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어서 좋다. 올해 지원은 끝났고 다시 신청할까 생각 중이다. 

예술영화관 운영의 자율성을 이야기하니 생각이 나는데, 최근 ‘퐁당퐁당 교차 상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그런데 예술영화관은 조금 다른 문제다. 예술영화관은 많아 봤자 관 두 개로 운영하는데, 상영할 영화는 매우 많다. 한 관에서 하나의 영화만 상영할 수 없는 환경이다. 그리고 예술영화관의 스크린쿼터 문제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 상업영화의 영역에서는 한국영화가 흥행이 잘 된다. 몇백만은 기본이고 천만 영화들이 있다. 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쉽다. 하지만 예술영화관에서 상업영화는 상영하지 않으니 많아도 몇만 명의 관객이 드는 한국 영화로 스크린쿼터를 지켜야 한다(스크린쿼터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날 하루는 한국 영화만 상영해야 한다 - 편집자 주). 그러면 운영이 굉장히 힘들어진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교차 상영은 좀 더 많은 작품을 상영할 선택권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 특히 예술영화관에서 하나의 작품만 상영하기 위해 나머지 세, 네 작품을 상영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다.

 

관객에디터 하고 싶은 기획전이 있다면?


주희 라스 폰 트리에의 <님포매니악>을 진행하면서 차기작도 구매했다. 이번에도 센 작품이다. 살인,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이야기인데 시나리오 마지막에 감독이 그린 지옥도가 있다. 그 지옥의 묘사를 읽으면서 이걸 정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라스 폰 트리에의 옛날 작품까지 다 모아서 기획전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재패니메이션 기획전도 하고 싶다. 지금 <너의 이름은>이 인기인데, 예전에 정말 재패니메이션 붐이 있었다. 곧 <공각기동대> 실사판도 나오고 하니까,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있다. 

 

관객에디터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희 나쁜 관객들은 아주 일부고(웃음), 다들 너무 좋은 분들이다. 이 공간을 많이 사랑해주신다. 엣나인의 카피가 있다. “10을 향한 9의 열정.” 우린 10이 될 수 없고 끝까지 쫓아가는 9다. 끝까지 열정을 갖자는 의미다.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관객들도 이 공간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이 극장을 사랑하고 아껴주면 좋겠다. 내가 여기에서 대접을 받겠다고 생각하면 트러블이 생기는 것 같다. ‘내 공간’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상영관에서 음식물을 시끄럽게 먹는다든가, 늦게 오셔서 다른 관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관객에디터 노쇼(No Show) 문제가 있다고 들었다.


주희 GV나 특별 상영이 있을 경우 미리 사놓고 안 온다든지, 옆자리까지 다 예매하고 직전에 취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영화의 경우에는 무대 인사 예정이었던 아이돌이 안 온다고 하자 한꺼번에 다 빠져나간 경우가 있다. 감독님과 다른 배우분들에게 너무 죄송했다. 그런데 그걸 제도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 공연 같은 건 당일 취소 환불이 안 되는데 영화는 법적으로 20분 전 까지 취소할 수 있다. 예술영화관 모임이 있는데 이 문제는 그 자리에서도 자주 이야기한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l 김창섭, 황선경 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