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드 샤브롤 회고전]


샤브롤은 현실과 주류 영화를 통렬하게 풍자한다

- <야수는 죽어야 한다> 상영 후 이명세 감독 시네토크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프랑스 문화원 시절에 영화들을 보고 다니던 사람들이 고다르, 트뤼포를 얘기할 때 이명세 감독은 유난히 샤브롤 얘기를 많이 했다고 들었다.

이명세(감독) 1970년대 말 불란서문화원의 시네 클럽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봤었다.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릭 로메르, 장 피에르 멜빌의 영화들을 상영했다. 이 감독들은 당시 영화인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고다르를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샤브롤의 영화가 재밌고 좋은데 샤브롤을 얘기하면 조금 무식해 보이는 분위기가 있었다(웃음). 누구나 그렇듯 나도 추리와 서스펜스 장르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샤브롤은 좀 독특했다. 살인이 벌어지는데 시각적으로 드러나지는 않고 이상한 유머도 쓴다. 긴장감을 강조하기 위해 주류 영화와는 다른 방법을 쓰는 것 같았다.


김성욱 샤브롤 영화는 오프닝이 흥미롭다. <야수는 죽어야 한다>에서 자동차에 꼬마 아이가 치이는 장면이 딱 세 개의 커트로 되어 있다. 그 장면이 갑작스럽게 등장하는데, 굉장히 과감한 연출이라는 생각이 든다. 줌의 활용도 특별하다.


이명세 클로드 샤브롤은 줌을 특이하게 많이 사용한다. 특히 60~70년대에는 줌을 안 쓰는 경향이 있었다. 줌을 쓰면 뭔가 촌스럽고, 소위 ‘작가’가 아니라는 분위기가 있다. 그런데 샤브롤은 그런 걸 비웃듯이 거칠게 보이는 연출을 많이 한다. 영화 후반부에는 샤를이 벽돌을 들었다 놓는 장면에서 줌과 패닝이 거칠게 들어간다. 블랙코미디 같다. 줌이 만드는 거친 느낌과 점프 컷의 조화, 그 불협화음이 좋았다.

전체적으로 진지한 영화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코미디 장르의 연극으로 만들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를이 폴의 정비소에서 증거를 찾으려 부품을 뒤적거리는 장면도 그렇다. 연기를 과장되거나 우스꽝스럽게 하는 것도 아닌데 유머가 있다. 관객을 가지고 논다고 말하면 좀 이상하지만 영화와 관객 사이에 오가는 상호작용이 존재한다.

특히 거실 장면에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짙다. 폴의 어머니가 무척 인상적이지 않나. 며느리를 조롱하는 웃음도 그렇고 기괴한 느낌이 있다. 저 인물로 인해서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단순히 하나의 스릴러 서스펜스가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 집중하게 만든다.



김성욱 이 영화의 마지막에 관해서 논란이 조금 있었다. 실제로 기자가 샤브롤에게 묻기도 했다고 한다. 누가 폴을 죽였냐는 것이다. 그때 샤브롤은 “샤를이 폴을 죽인 장면을 당신은 보지 않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명세 『오리엔트 특급 살인』처럼 모든 사람이 폴을 죽였을 것 같지 않나?(웃음) 살인이 일어난 다음 TV 뉴스가 이 사건을 보여준다. 이때 폴의 엄마를 제외한 TV 화면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표정이 전형적인 미스테리 연극처럼 그려진다. 폴을 죽일 이유가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사실 폴의 엄마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폴을 죽일 수 있는 사람들이다. 영화가 진짜 범인을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데 누가 범인이냐고 따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말씀하신 대로 폴은 죽인 진범에 대한 질문은 이 영화의 핵심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레스토랑 장면에서 샤를과 엘렌은 굉장히 진지한 이야기를 하고, 그때 식탁에서는 웨이터가 닭을 자르고 있다. 이야기의 시간을 보면 그때 아마 폴이 죽어 가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이 레스토랑 장면이 샤를이 폴을 죽이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명세 아주 클리셰적인 장면이다. 살인과 육식이 붙는 건 몽타주의 전형이다. 살인 후에 야채를 먹는 장면은 없지 않나(웃음). 그 당시에 만들어졌던 영화들, ‘주류 영화’들을 함께 놓고 생각하면 샤브롤이 무엇을 의도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냉소적인 시선이 있는 장면이라 생각한다.


김성욱 후반부에 모리스 피알라 감독이 형사로 등장한다. 영화를 찍을 수 없던 시절에 연기를 했었는데, 영화 속 그의 인상은 잊을 수가 없다. 그가 샤를이 일기를 쓴 이유가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냐는, 위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면 이 영화에서 샤를의 나레이션이 자기 고백이 아니라 알리바이 그 자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내레이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이상한 말이지만, 샤브롤은 명확하면서도 모호한 영화를 찍고 있다. 명확해 보이지만 자꾸 생각하면 모호하다. 감독님도 잠정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살인자일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샤브롤에 관한 평을 썼던 외국의 평론가는 ‘범죄의 평등성’이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이명세 샤를은 마지막 편지에서 마치 스스로 목숨을 끊을 사람처럼 말한 다음 바다로 떠난다. 그런데 그 장면 자체만 보면 바다가 너무 반짝거린다. 그냥 여행을 떠나는 것 같다. 마지막 그 편지조차 알리바이로 보이기도 한다. 샤를은 처음 등장할 때도 가명으로 등장한다. 이후 자신의 진짜 이름을 드러냈다고 하는데, 그 본명의 진위를 영화 안에서 밝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조차도 관객에게 내세우는 알리바이로 볼 수도 있다.

관객 범죄를 다루는 영화들을 보면 감독이 그 대상에 대해 취한 태도나 시선이 특히 도드라져 보인다. 영화 안에서 잔혹한 일을 묘사하는 것과 현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는 것 같다.

이명세랙코미디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어떤 사람이 목을 매달아 죽으려고 했는데 도중에 의자가 부러지는 바람에 넘어져 죽었다, 같은 이야기들. 요즘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영화 같아서 시나리오를 못 쓰겠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사실 우리가 어떻게 현실에서 살인을 볼 수 있겠나. 실제 인생은 그렇지 않은데 우리는 영화 안에서 항상 살인과 같은 비일상적 요소들과 계속 마주친다. 샤브롤은 이런 이상한 전형성을 통렬하게 풍자한다.

김성욱 사실 샤브롤의 황금기는 아주 초반에 끝났고 이후 1967년에서 1978년 사이의 시기를 2차 전성기라고 한다. 2차 전성기의 샤브롤은 한 명의 제작자와 계속 작업했다. 이때 샤브롤이 계속해서 영화를 찍을 수 있었던 건 그 특별한 제작 환경의 영향이 크다. 샤브롤은 ‘감독은 계속해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명세 감독님도 샤브롤의 입장에 맞는 분이라는 개인적인 느낌이 있다. 작품을 기다리고 있다.


이명세 내년까지는 꼭 새 영화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웃음).


일시 I 3월 31일(금) 오후 7시 30분

정리 I 황선경 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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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2017년 4월 13일(목) ~ 5월 7일(일)

주최│(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서울영상위원회, 주한프랑스대사관, 주한프랑스문화원
장소│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종로구 돈화문로 13 서울극장 1층)
문의│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4월 13일(목)부터 5월 7일(일)까지 “연애의 모럴 -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개최합니다. <녹색 광선>, <해변의 폴린>, <가을 이야기> 등 에릭 로메르의 연출작 20편과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까지 모두 21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이번 회고전은 에릭 로메르의 작품 세계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삶의 아이러니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과 너그러운 시선을 동시에 보여주었던 로메르의 매력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감독 데뷔 전 국어교사, 평론가, 소설가로 활동했던 에릭 로메르는 1950년대에 이미 몇 편의 단편 영화를 만들었으며 1959년에 <사자 자리>를 연출하며 본격적인 감독의 길을 걸었습니다. 프랑수아 트뤼포, 장 뤽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등과 함께 누벨바그의 대표 주자로 꼽혔던 그는 다른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걸었습니다.
로메르의 영화 세계를 간단하게 정리하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입니다. 로메르는 평생에 걸쳐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우리가 삶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특질들이 골고루 섞여 있습니다. 이 중 어느 부분만 따로 내세워 뭉뚱그리는 건 그리 좋은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로메르는 우리의 삶과 가장 닮은 영화를 만든 특별한 감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회고전에서는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시리즈 중 한 편이자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희극과 격언’ 연작에 속하는 <비행사의 아내>, ‘사계절’ 연작인 <겨울 이야기>, 로메르의 역사극 <O 후작 부인>, 국내에 소개될 기회가 적었던 <삼중 스파이>, 유작 <로맨스>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녹색 광선>의 주인공 마리 리비에르가 연출한 에릭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 <에릭 로메르와 함께>도 상영합니다.
또한,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자와 곽영빈 평론가가 강의를 준비했으며, 4월 26일부터 29일까지는 90년대 이후 로메르의 거의 모든 작품을 편집한 마리 스테판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관객들과 만남의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각 작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물론 로메르의 다양한 면모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상영작 소개 Screening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 Ma nuit chez Maud / My Night at Maud's
1969│110min│프랑스│B&W│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장 루이 트랭티냥, 프랑수아즈 파비앙, 마리-크리스틴 바로
정숙한 결혼 상대자를 찾는 카톨릭 신자 장 루이는 친구 비달을 통해 모드라는 자유분방한 여자를 만난다. 장은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매력에 이끌려 모호한 감정이 교차하는 하룻밤을 보낸다.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중 네 번째 작품. 196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클레르의 무릎 Le genou de Claire / Claire's Knee
1970│10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장 클로드 브리알리, 오로라 코르뉘, 베아트리스 로망
결혼을 앞둔 제롬은 혼자만의 휴가를 즐기기 위해 시골로 내려간다. 그는 우연히 옛 친구이자 소설가인 오로라를 만나고, 그녀의 딸인 로라를 소개받는다. 그리고 얼마 후 로라의 이복 자매 클레르도 이곳에 도착한다.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중 다섯 번째 작품. 1971년 산세바스찬영화제 황금조개상(작품상) 수상.



오후의 연정 L'amour l'après-midi / Chloe in the Afternoon
1972│9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베르나르 베를리, 주주, 프랑수아즈 베를리
‘여섯 개의 도덕’ 연작 중 마지막 작품. 유부남인 프레데릭은 우연히 친구의 옛 애인 클로에를 만난다. 프레데릭의 규격화된 삶과 달리 보헤미안적인 삶을 사는 클로에는 프레데릭의 단조로운 일상에 활력을 선사한다.



O 후작 부인 Die Marquise von O... / The Marquise of O
1976│103min│프랑스, 서독│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에디트 클레베, 브루노 간츠, 피터 뤼르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의 1808년 소설을 개작한 작품. 러시아군이 북이탈리아를 침공하자 O 후작 부인은 가족들과 함께 폭격을 피해 대피한다. 이때 러시아 군인들은 그녀를 위기에 빠뜨리지만 마침 그곳을 지나던 러시아 장교가 그녀를 구한다. 에릭 로메르의 첫 번째 시대극. 1976년 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수상.



비행사의 아내 La femme de l'aviateur / The Aviator's Wife
1981│101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필립 마를로, 마리 리비에르, 안나 로르 뫼리
우체국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청년 프랑수아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안느에게 사랑을 느낀다. 어느 날 프랑수아는 안느의 예전 애인 크리스티앙이 그녀의 아파트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다. 질투심을 느낀 프랑수아는 크리스티앙의 뒤를 밟는다. ‘희극과 격언’ 연작 중 첫 번째 작품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라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아름다운 결혼 Le beau mariage / The Good Marriage
1982│97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베아트리스 로망, 앙드레 뒤솔리에, 페오도르 아트킨
사빈은 이별 직후 결혼을 결심하지만 누구와 언제 결혼할지는 자신도 모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로부터 에드몽을 소개받는다. ‘희극과 격언’ 연작 중 두 번째 작품으로, “망상을 안 해 본 이가 어디 있겠는가, 상상의 성을 안 지어 본 이가 어디 있으랴”라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해변의 폴린 Pauline à la plage / Pauline at the Beach
1983│9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아만다 랑글레, 아리엘 동발, 파스칼 그레고리
얼마 전 이혼한 마리온과 그녀의 사촌 동생 폴린이 늦여름 해변가를 찾는다. 마리온은 자신이 연애 전문가라고 자부하지만 정작 지금까지 진정한 사랑을 나눈 적은 없다. ‘희극과 격언’ 연작 중 세 번째 작품으로 “입소문 내기 좋아하다 자기가 다친다”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1983년 베를린영화제 은곰상(감독상) 수상.



보름달이 뜨는 밤 Les nuits de la pleine lune / Full Moon in Paris
1984│102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파스칼 오지에, 체키 카리오, 파브리스 루치니
인테리어 장식가인 루이즈는 건축가 레미와 함께 파리 외곽에서 함께 지낸다. 레미는 루이즈에게 결혼하자고 조르지만 독립적인 삶을 꿈꾸는 루이즈는 이를 거절한다. ‘희극과 격언’ 연작의 네 번째 작품으로 “두 여자를 가진 자는 영혼을 잃고, 두 집을 가진 자는 이성을 잃는다”는 격언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84년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파스칼 오지에).


녹색 광선 Le rayon vert / The Green Ray
1986│98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마리 리비에르, 아미라 셰마키, 실비 리셰즈
내성적이고 소심한 델핀은 여름 휴가를 혼자 보내야 하는 외로운 처지다. 남자 친구를 구하기를 내심 바라지만 성격 탓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쥘 베른의 동명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희극과 격언’ 연작의 다섯 번째 작품. 랭보의 시 구절 “오! 시간이 되니 심장이 뛰는구나!”로 시작한다. 1986년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여우주연상(마리 리비에르) 수상.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 가지 모험 4 aventures de Reinette et Mirabelle / Four Adventures of Reinette and Mirabelle
1987│9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조엘 미켈, 제시카 포드, 필립 로덴바흐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져 곤란해하는 미라벨 앞에 레네트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곧 가까워지고 여러 가지 일을 함께 헤쳐나간다. 시골 소녀 레네트와 도시 소녀 미라벨이 펼치는 네 개의 모험으로 이루어진 귀엽고 유머러스한 작품. <녹색 광선> 촬영 후 즉흥적인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내 여자 친구의 남자 친구 L'ami de mon amie / My Girlfriend's Boyfriend
1987│102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엠마누엘 숄레, 프랑수아 에릭 장드롱, 안 로르 뫼리
‘희극과 격언’ 연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내 친구의 친구들은 내 친구들이다”라는 격언으로 시작한다. 파리 근교의 생 제르맹 앙 라이, 라 데팡스 등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감정과 사랑이 큰 줄거리를 이룬다. 내성적이지만 굳센 성격의 블랑쉬, 영민한 알렉상드르, 변덕이 심한 레아와 착한 파비앙 등이 서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연인을 찾는다.


봄 이야기 Conte de printemps / A Tale of Springtime
1990│108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안느 테세드르, 위그 케스테, 플로랑스 다렐
‘사계절 연작’의 첫 번째 작품. 고등학교 철학 교사인 잔느는 주말에 딱히 머물 곳이 없다. 남자 친구의 집은 온통 어질러져 있고, 잔느의 집에는 이미 다른 친구가 남자 친구와 함께 와 있다. 갑자기 머물 곳을 잃은 잔느는 충동적으로 친구의 파티에 갔다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나타샤를 만나 의기투합하고 그녀의 집에 머문다.



겨울 이야기 Conte d'hiver / A Winter's Tale
1992│114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샬롯 베리, 프레데릭 반 덴 드리에쉬, 미카엘 볼레티
‘사계절 연작’의 두 번째 작품. 휴가지에서 만난 펠리시와 샤를은 짧은 시간 동안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주소를 잘못 알려주는 실수를 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된다. 5년의 세월이 흐른 후, 펠리시아는 딸과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1992년 베를린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 수상.


나무, 시장, 미디어테크 L'arbre, le maire et la médiathèque / The Tree, the Mayor, and the Mediatheque
1993│105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파스칼 그레고리, 파브리세 루치니, 아리엘레 돔바슬
시장은 촌스러운 지방의 외관을 쇄신하기 위해 미디어테크를 세우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인 경력을 동원해 중앙 정부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환경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법학교 교사가 시장의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선다. 하지만 시장은 이에 개의치 않는다.


파리의 랑데부 Les rendez-vous de Paris / Rendez-vous in Paris
1995│100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클라라 벨라, 앙투안 바즐레, 오로르 로셰
남녀의 사랑을 그린 세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 첫 번째 에피소드 “7시의 랑데부”는 자신의 남자친구가 딴 여자를 만난다는 소식을 들은 여자의 복수를, 두 번째 에피소드 “파리의 벤치”는 남자의 구혼을 거절하려는 여성의 이야기를, 그리고 세 번째 에피소드 “어머니와 아이, 1907”은 젊은 화가와 두 여인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다.


여름 이야기 Conte d'été / A Summer's Tale
1996│113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멜빌 푸포, 아만다 랑글레, 그웨나엘 시몽
‘사계절 연작’의 세 번째 작품. 가스파르는 스페인으로 바캉스를 떠난 여자 친구 레나를 만나러 브르타뉴의 휴양지로 온다. 그런데 가스파르는 우연히 카페에서 만난 마고, 그녀의 친구 솔린, 뒤늦게 나타난 레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가을 이야기 Conte d'automne / Autumn Tale
1998│111min│프랑스│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마리 리비에르, 베아트리스 로망, 알랭 리볼트
‘사계절 연작’의 마지막 작품. 장성한 아들과 딸을 둔 45세의 미망인 마갈리는 프랑스 남부에서 포도농장을 운영하며 혼자 살고 있다. 마갈리는 외로워하지만 소극적인 성격 때문에 남자를 만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데 마갈리의 오랜 친구 이자벨은 신문에 몰래 구인 광고를 내고 마갈리에게 소개해 줄 적당한 사람을 찾는다. 1998년 베니스영화제 각본상 수상.


영국 여인과 공작 L'anglaise et le duc / The Lady and the Duke
2001│129min│프랑스│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루시 러셀, 장-클로드 드레이퓌스, 샬롯 베리
프랑스 혁명이 진행 중인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파리로 건너온 귀족 집안의 그레이스 엘리엇 부인은 오를레앙 공작과 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엘리엇 부인은 혁명을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를레앙 공작은 그런 엘리엇 부인을 걱정스러워한다. 에릭 로메르가 처음으로 디지털로 만든 영화로 미술과 독특한 미장센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삼중 스파이 Triple Agent
2004│115min│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카테리나 디다스칼루, 세르주 렌코, 시리엘 클레어
1936년 5월, 러시아인 표도르는 아내와 함께 파리에서 살고 있다. 국내외의 정치 상황이 불안정한 시기, 표도르는 언뜻 러시아 정부를 위해 몰래 일하는 스파이처럼 보이지만 때로는 다른 목적을 가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2004년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로맨스 Les amours d'Astrée et de Céladon / The Romance of Astrea et Celadon
2007│109min│프랑스│Color│35mm│15세 관람가
연출│에릭 로메르 Eric Rohmer
출연│앤디 기레, 스테파니 크레엥쿠르, 세실 카셀
에릭 로메르의 유작으로 17세기 프랑스의 목가 소설 『아스트레』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목동인 셀라동과 아스트레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그러나 마을 축제에서 셀라동이 다른 여자와 춤을 추는 걸 본 아스트레는 셀라동을 차갑게 대하고, 이 때문에 괴로움에 빠진 셀라동은 강물에 몸을 던지고 만다. 2007년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특별상영 Special Screening



에릭 로메르와 함께 En compagnie d'Eric Rohmer / In the Company of Eric Rohmer
2010│100min│프랑스│Color│DigiBeta│15세 관람가
연출│마리 리비에르 Marie Rivière
출연│에릭 로메르, 마리 리비에르
<비행사의 아내>,<녹색 광선>, <가을 이야기> 등 오랜 시간 동안 에릭 로메르와 함께 작업했던 배우 마리 리비에르가 연출한 에릭 로메르에 대한 다큐멘터리. 감독은 작은 카메라를 들고 에릭 로메르와 그의 지인들을 찾아가 그의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강연 Lecture
1. 클레르의 무릎
일시│4월 22일(토) 오후 3시 30분 <클레르의 무릎> 상영 후
강사│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자

2. 영국 여인과 공작
일시│4월 23일(일) 오후 3시 30분 <영국 여인과 공작> 상영 후
강사│곽영빈 미술평론가/영화학 박사

3. 여름 이야기
일시│5월 7일(일) 오후 6시 30분 <여름 이야기> 상영 후
강사│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마리 스테판과의 대화 Talk with Mary Stephen


1. 4월 26일(수) 오후 7시 <여름 이야기> 상영 후

2. 4월 27일(목) 오후 7시 <가을 이야기> 상영 후 

3. 4월 28일(금) 오후 7시 <로맨스> 상영 후 


◆대담 - 에릭 로메르를 말한다 Discussion: On Eric Rohmer

일시│4월 29일(토) 오후 3시 30분 <에릭 로메르와 함께> 상영 후
참석│마리 스테판(영화감독, 편집자),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마리 스테판 Mary Stephen

- 영화감독이자 편집자. <겨울 이야기>(1992), <나무, 시장, 미디어테크>(1993), <파리의 랑데부>(1995), <여름 이야기>(1996), <가을 이야기>(1998), <영국 여인과 공작>(2001), <삼중 스파이>(2004), <로맨스>(2007) 등 1992년 이후 에릭 로메르의 모든 작품에 편집으로 참여했다. 그 외에도 <블라인드 마운틴>(리 양, 2011) 등의 작품을 편집했으며, 연출작으로는 <Justocoeur>(1980), <In Transit, in Transition: Poem from South Africa>(1998)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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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4월 4일(화)부터 9일(일)까지 “짐 자무쉬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자무쉬의 데뷔작 <영원한 휴가>(1980), 대표작인 <천국보다 낯선>(1984), <커피와 담배>(2003) 등 모두 일곱 편의 영화를 상영합니다. 80년대 미국 독립영화의 아이콘으로 시작해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영화감독으로 자리잡은 짐 자무쉬의 1980-90년대 초기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특별히 이번 프로그램에서는 디지털로 새롭게 만든 상영본으로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니 더 큰 기대를 바랍니다. 또한 4월 5일(토)에는 <커피와 담배> 상영 후 “9와 숫자들”의 송재경 가수가 자무쉬 영화의 음악과 그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예정입니다. 인간의 외로움과 따뜻함, 대도시의 삭막함과 위로가 기묘하게 공존하는 짐 자무쉬의 영화 세계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을 초대합니다.

■시네토크 Cine Talk
일시 4월 5일(토) 오후 6시 30분 <커피와 담배> 상영 후
게스트 가수 송재경(“9와 숫자들”)

일시│2017년 4월 4일(화) ~ 9일(일)
주최│(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후원│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서울영상위원회, 안다미로
장소│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종로구 돈화문로 13 서울극장 1층)
문의│02-741-9782 www.cinematheque.seoul.kr

상영작 Screening




영원한 휴가 Permanent Vacation
1980│75min│미국│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크리스 파커, 레일라 가스틸, 존 루리
파커는 거리를 돌아다니고 사람을 만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기 시작한다.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하는 그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도 쉽게 마음 속 외로움을 지우지 못한다. 짐 자무쉬가 27살의 나이에 연출한 데뷔작. 당시 극장에서 개봉하지는 못했지만 영화제 등에서 소수의 관객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았다.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1984│89min│미국, 서독│B&W│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존 루리, 리차드 에드슨, 에스터 벌린트
윌리와 에디는 뉴욕에서 정해진 직업 없이 하루하루 적당히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다. 어느 날, 윌리의 사촌 에바가 헝가리에서 뉴욕으로 온다. 에바는 잠시 이곳에 머물겠다고 하지만 윌리는 그녀의 방문을 반기지 않는다. 1983년에 연출한 동명의 단편을 확장시켜 만들었다. 1984년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수상. 1984년 로카르노영화제 황금표범상 수상.

다운 바이 로우 Down by Law
1986│107min│미국, 서독│B&W│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톰 웨이츠, 존 루리, 로베르토 베니니
잭(Zack)과 잭(Jack)은 각자 다른 죄목으로 뉴올리언스의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못하는 이탈리아인 밥까지 감옥에 수감되면서 세 사람은 일시적으로 가까워진다. 사소한 말싸움과 갈등 끝에 세 사람은 결국 탈옥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다. 1986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미스테리 트레인 Mystery Train
1989│110min│미국, 일본│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나가세 마사토시, 니콜레타 브라스키, 스티브 부세미
멤피스의 밤거리를 배경으로 같은 시간에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다룬 옴니버스 영화. 엘비스 프레슬리를 좋아하는 일본인 커플의 이야기, 최근 남편을 떠나보낸 이탈리아 여성의 이야기, 그리고 술에 취해 충동적인 행동을 저지르는 남자들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진다. 1989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지상의 밤 Night on Earth
1991│128min│프랑스, 영국, 독일│Color│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지나 롤랜즈, 위노나 라이더, 아민 뮬러-스탈
다섯 개의 도시 - LA, 뉴욕, 파리, 로마, 헬싱키 - 를 배경으로 택시 기사와 손님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사건의 대부분은 택시 안의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지나 롤랜즈, 베아트리체 달, 이삭 드 번콜, 로베르토 베니니, 마티 펠론파 등 명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데드 맨 Dead Man
1995│121min│미국, 독일, 일본│B&W│DCP│15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조니 뎁, 개리 파머, 크리스핀 글로버
19세기 후반, 클리블랜드에서 서부로 일을 구하러 온 윌리엄은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아 총격 끝에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부상을 입은 채 길을 헤매던 윌리엄은 노바디라는 괴짜 인디언을 만나는데 그는 윌리엄을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라고 믿는다. 1995년 칸영화제 경쟁부문 상영작.

커피와 담배 Coffee and Cigarettes
2003│97min│미국, 일본, 이탈리아│B&W│DCP│12세 관람가
연출│짐 자무쉬 Jim Jarmusch
출연│로베르토 베니니, 스티브 부세미, 빌 머레이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에 대한 단편들을 묶어 만든 영화. 이미 80년대에 연출한 단편을 포함해 전부 열한 편의 영화로 이루어져 있다. 커피와 담배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 담배를 끊은 사람들이 느끼는 초조함, 또는 그저 문득 떠오른 생각들에 대한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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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침대에 누워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본다. 남자는 자신의 어린 아들을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하고자하는 일념으로 살아가고 있는 샤를이다. 그의 곁에 누워있는 여자는 그가 살인범을 찾기 위해 접근하다가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 엘렌이다. 그들의 얼굴은 침대 옆에 있는 조명과 상대의 얼굴에 가려져, 두 사람 모두 한쪽 눈과 반쪽 얼굴만 카메라에 담긴다. 그런데 이들의 반쪽 얼굴은 또 하나의 얼굴을 이루어서 서로 다른 곳을 응시하는 두 눈을 가진 한 사람의 얼굴처럼 보인다. 샤를의 눈은 허공을 바라보고, 엘렌의 눈은 샤를을 응시한다. 엘렌은 샤를에게 왜 폴을 도와줬냐고 타박하지만, 샤를은 마땅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야수는 죽어야 한다는 마치 샤를의 일기장에 빼곡하게 적혀있는 빨간 글씨들 같다. 차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은 샤를은 범인 찾기에 몰두해왔다. 그러다가 사고 현장에서 범인과 동승하고 있었던 여배우 엘렌을 알게 되고 그녀에게 접근한다. 그는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그녀와 사랑에 빠진 것처럼 행동하다가, 범행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마침내 샤를은 범인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의 집까지 들어온다. 하지만 이곳에서 그가 마주한 것은 범인인 폴 때문에 고통 받는 가족들의 모습과 그들의 폴을 향한 증오였다.


샤를은 특히 폴의 아들인 필립에게 어떤 연민을 느낀다. 그는 자신의 아빠를 죽여 달라고 말하는 필립을 꾸짖으면서 혼란스러워 한다. 홀로 고독하게 복수심을 키워왔던 샤를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다. 이러한 연민 때문에 샤를은 폴을 죽일 수 있는 몇 번의 순간에도 주저하고 죽이기를 실패한다. ‘폴은 죽어야 한다는 당위로 생긴 샤를과 가족들 사이의 연대가 오히려 그 당위를 위협하는 것이다. 엘렌 역시 왜 폴을 도와줬냐면서 폴을 죽여야 한다고 말한다. 앞에서 말한 엘렌의 눈은 당위의 눈빛이었고, 샤를의 눈은 연민과 주저함의 눈빛이었다.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기괴한 얼굴은 샤를의 아이러니한 감정을 대변한다. 그는 다시 자신의 본래 목적을 생각하며 폴을 죽이겠노라고 다짐하지만, 보트 위에서의 계획도 실패로 끝난다.




흥미롭게도 이 영화에서 당위가 흔들리는 지점은 야수에 대한 이해 때문이 아니다. 영화는 절대 악을 부정하지 않는다. 폴의 극악무도한 행동들은 이해하기가 어렵다. 영화는 이해할 수 없는 절대 악의 존재를 인정하되,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써 어떤 연대를 보여준다. 설령 그것이 범인의 아들과의 연대라 하더라도, 샤를은 오히려 그리스 비극처럼 보인다면서 멋지다고 말한다. 결국 야수는 죽고, 연대가 당위를 이기지 못하지만, 샤를과 엘렌 그리고 샤를과 필립 사이의 연대는 사라지지 않는다.


영화에서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게될 장명 중 하나는 야수, 즉 폴이 죽는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폴이 죽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보여주지 않는다. 그저 텔레비전 화면으로 간략하게 사건 현장을 요약할 뿐이다. 이는 영화의 초반부에서 어린 아들에 대한 샤를의 부정(父情)을 영사된 화면과 곰 인형으로만 보여주는 것과 비슷하다. 샤를에게 더 중요한 것은 어린 아들에 대한 복수가 아니라 필립과의 연대다.


마지막 장면에서 샤를은 폴을 죽이고 자수한 필립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범인이라 말해달라고 엘렌에게 부탁의 편지를 남긴다. 편지를 남긴 후 떠나는 샤를은 걷고 또 걷는다. 침대에 누워서 근심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모습과는 다르다. 그는 필립의 희생을 받아들인 자신을 책망하며, 자신이 필립에게 폴을 죽어야한다는 암시를 은연중에 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는 용서를 구하고, 사랑을 고백한다. 그리고 그는 바다로 멀리 멀리 떠난다. ‘야수는 죽어야 했는가에 대한, 그리고 누가 야수였는가에 대한 물음을 간직한 채로 자신의 형벌을 선택한 것이다.

 

김혜령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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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회동굴의 오프닝 크레딧이 지나면 영화는 작은 마을의 전경을 비추며 시작된다. 어딘가 음울하고 스산한 느낌이 들던 석회동굴의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마을의 모습은 조용하고 평범하다. 이어서 영화는 결혼식장으로 카메라를 옮기는데, 이곳은 처음으로 푸줏간 주인 포폴과 사립교사 교장 엘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다음에 진행되는 이야기를 거칠게 설명해보자면 이렇다. 포폴과 엘렌은 친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그러던 중 마을에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몇 차례 일어난다. 영화의 후반부에 밝혀지지만 줄곧 포폴이 범인이 아닐까, 추측하던 관객들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는다.

 

마을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는, 흔히 우리가 설정 쇼트라고 부를 법한 풍경의 장면들이 영화에는 몇 차례 등장한다. 대부분의 경우 이 영화에서 풍경을 보여주는 장면들은 그저 앞으로 일어날 불운한 사태에 대한 조짐, 암시로써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령 포폴이 엘렌의 집에서 자신의 라이터를 발견하게 되는 씬 전에 보이는 풍경의 모습이 그렇다. 점점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여주는 이 장면은 관객들이 무언가 불길한 조짐을 감지하게 만든다. 그러나 영화의 엔딩, 포폴의 죽음 이후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엘렌이 강가에서 밤을 새운 후 아침을 맞이하는 장면에서의 풍경 장면은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종국에 포폴은 (자살이라기보다는) 스스로를 살해하는데, 살인자가 죽은 후 이 마을의 풍경은 어쩐 일인지 여전히 스산하다.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채 강가에 앉아있는 엘렌, 그녀의 뒤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카메라는 이들과 점진적으로 멀어지며, 이른 아침의 뿌연 안개가 퍼진 마을의 풍경을 넓게 몽타주 한다. 평론가 로저 애버트는 엘런이 강가에서 밤을 새우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포폴과 엘렌의 정사 장면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의 말에 대한 동의를 차지하고, 그보다는 이 장면이 관객들에게 어떤 정서를 주는지에 먼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 정서는 아직 사건이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고립감이라고 생각된다.

 

샤브롤의 <도살자>를 범죄가 중심이 되는, 그래서 범인의 처벌로 이야기가 모두 해소되는 장르 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보이는 마을의 풍경이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아직 사건이 다 끝나지 않은 것만 같은 찜찜함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엘렌의 표정, 마을 안에 고립되어 버린 느낌을 주는 컷과 줌 아웃 편집은 이 영화의 긴장감을 만들어 냈던 핵심적인 요소가 아직도 이 마을 안에 잔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살인을 영화의 핵심적 요소라고 보기에 이 영화에서 포폴이 저지르는 살인은 게다가 어떤 긴장감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형사가 수사를 진행하지만 <도살자>에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그보다 <도살자>의 그로테스크함을 만들어 내는 주된 요소는 음식이다. 샤브롤은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가 수반하는 도축, 살육의 야만성을 살인, 죄와 연결한다. 감독은 사람들이 모여 결혼식을 즐기는 장면을 보여주기도 전에 결혼식을 위해 준비된 음식을 더 먼저 보여준다. 샤브롤의 다른 영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인물들이 음식을 먹는다는 원초적인 행위는 <도살자>에서 유난히 강조되어 나타난다. 예컨대 엘렌은 포폴 앞에서 우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체리를 먹고 있다. 샤브롤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야만성을 음식을 먹는다는 일상적인 행위에서 발견한다. 영화의 중반부에 엘렌이 아이들과 함께 석회동굴을 견학하게 되는 장면에서도 나타나듯, 야만성과 문명을 하나의 연장선 안에 놓인다.

 

포폴은 이 영화에서 끔찍한 변태적 살인마로 묘사되지 않는다. 동시에 관객이 그를 완전히 이해하거나 동정하게 되지도 않는다. 가령, 영화에서 그가 가지고 있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 군대에서의 복무 경험이 대사로 제시되고는 있지만 영화는 그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설명할 생각이 없다. 포폴이 관객들에게 어떤 인물로 제시되는지도 모호하다. 그는 범인이지만, 온전한 악인은 아니며, 동정의 대상도 아니다. 중점이 되는 것은 포폴과 일종의 계급적 차이가 뚜렷한 엘렌이 어떻게 그와 내면의 어떤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지에 있다. 포폴이 행한 죄와 그의 내면이 엘렌과 공유됨으로써, 이러한 인간의 야만성은 보편적인 것으로 확장된다. 작은 마을의 안개 서린 풍경은 이러한 야만성이 가진 보편적 성격을 느끼게 만든다. 영화의 초반, 춤추고 있는 하객들 사이로 포폴과 엘렌을 향해 줌인했던 카메라는 이제 마을 전체를 한 컷에 담는 것으로 영화를 끝내고 있다. 말하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았던 엘렌과 포폴의 이야기는 이 마지막에서 마을 전체로 확대되고, 엘렌은 (자기 자신도 가지고 있는) 야만성의 세계 안에 고립된다.

 

황선경 |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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