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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세계 -역사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남겨진 기억들 [ 2017 시네바캉스 서울 ] 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세계-역사 속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 남겨진 기억들 그리스의 영화감독 테오 앙겔로풀로스는 평생 동안 일관된 주제의식과 영화적 스타일을 통해 영화작가로서 분명한 발자취를 남겼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에서는 20세기 그리스와 발칸반도를 배경으로 격동적인 정치적 · 역사적 상황들이 펼쳐지며, 인물들은 그로부터 소외되고 길을 잃어 정처 없이 방황한다. 길을 잃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한 까닭에 그의 영화에서 역사란 무질서하고 혼탁하며 추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 역사는 부재의 이미지로 표상되는데, 이는 다층적인 것들의 결합에 의해 복잡하게 변동하는 세계를 담아내면서 그 부재를 채워나가는 일종의 열린 이미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역사는 인물들.. 더보기
필름 누아르의 불온성을 지우다 - <길다>(찰스 비더) [필름 누아르 특별전]필름 누아르의 불온성을 지우다- (찰스 비더) 는 두 개의 인상적인 만남으로 시작한다. 먼저 도박사 조니와 카지노 주인 밸린, 이 두 남자 사이의 만남이다. 조니는 뉴욕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굴러들어간 과거가 모호한 도박사다. 길거리에서 주사위 사기로 막 한몫을 잡았는데, 현지의 불량배에게 모두 뺏길 판이다. 그때 밸린이 나타나서 조니를 구한다. 얼굴에 흉터가 있는 강인한 인상의 밸린은 끝에 칼이 숨겨진 지팡이로 악당을 물리쳤다. 밤 항구에서 만난 두 미국인 남자는 서로에게 호감을 보이고, 함께 담배를 나눠 피운다. 이들의 만남은 강한 스포트라이트 조명과 투 숏 덕분에 마치 연인들의 설레는 만남처럼 묘사돼 있다.두 번째 만남은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길다의 등장 장면이다. 길다.. 더보기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 <고독한 영혼>(니콜라스 레이) [필름 누아르 특별전] 밤과 도시의 이중적 성격- (니콜라스 레이) 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살인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던 딕슨이 형사 부부를 배우로 삼아 자신이 재구성한 살인현장을 연출하는 장면이다. 딕슨은 살인마 역할을 맡은 형사에게 아내의 목을 더 강하게 조일 것을 요구하면서 광기 어린 눈빛을 드러낸다. 카메라가 포착한 그의 얼굴에는 연원을 알 수 없는 빛이 드리워져 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그러나 지금 딕슨의 얼굴을 강렬하게 뒤덮는 이 빛은 외부의 광원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그의 내부로부터 분출된 가학적 쾌감의 시각화로 이해해야 할 것 같다.딕슨의 광기를 추동하는 빛은 자연광이 아니라 도시의 인공조명이다. ‘황혼의 시인’이라 불린 니콜라스 레이가 선택한 주인공답게 딕슨은 백주의 시.. 더보기
“신부님은 ‘일’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 <내 친구 정일우>의 김동원 감독과의 대화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신부님은 ‘일’보다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의 김동원 감독과의 대화 김성욱(프로그램디렉터) 를 어떻게 처음 기획했는지 궁금하다. 김동원(감독) 개봉할 생각 없이 만든 작품이다. 요즘 개봉 이야기가 나와서 좀 혼란스럽긴 하다(웃음). 처음에는 예수회나 제정구기념사업회도 이 영화를 만들 계획이 없었고,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나중에 예수회와 일반 후원회원들에게 지원을 받아서 만들었다. 김성욱 감독님의 작품 중 (2001)이라는 영화가 있다. 그 작품과 가 연속 선상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에 대해 감독님이 “한 개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상 속에 존재하는 한 사람에 대한 작품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 친분이 있는 사람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건.. 더보기
배우의 표정에 대한 짧은 생각 - <꿈의 제인>에서 이민지 배우의 연기를 보고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배우의 표정에 대한 짧은 생각- 에서 이민지 배우의 연기를 보고 1.영화에서 캐릭터의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배우의 얼굴이다. 물론 손의 작은 움직임이나 어깨의 떨림으로도 감정을 보여줄 수 있지만 가장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건 결국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은 이마의 주름, 눈썹의 각도, 눈가의 주름, 코의 찡긋거림, 굳게 다문 입술 등을 한꺼번에 보여줄 수 있다. 배우들은 자신의 얼굴에 적절한 표정을 만들어 특정한 감정을 표현하고, 관객은 배우가 만들어낸 이목구비의 기표들을 해석하여 캐릭터의 감정을 짐작한다. 이를테면 어떤 배우가 눈을 크게 뜨고 미간을 찌푸린 채 양 눈썹을 위로 올리고 입을 크게 벌리면 우리는 그 캐릭터가 화가 났다고 판단할 수 있다. 즉 배우의 얼굴은 캐릭터.. 더보기
출구는 도처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폭력의 씨앗>(임태규)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출구는 도처에 있고, 어디에도 없다- (임태규) 군대는 더는 비밀의 장소가 아니다. 숨겨진 것을 들추려는 욕망을 공공연히 드러냈던 TV 예능 프로그램은 금지된 공간으로서의 군대를 소재로 삼으며 운신의 폭을 넓혔다. 생활관과 훈련 장면을 공개하면서 군대의 본질을 알려주는 듯 굴었던 TV쇼와는 달리 영화 은 단 한 번도 생활관 내부로 침투하지 않는 이상한 군대 영화다. 카메라는 생활관은커녕 부대 정문조차 통과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첫 번째 숏에서 단체 외출 이후 복귀하는 부대원들의 발걸음은 정문을 통과하지 못한 채 정문 주변을 배회하다 끝난다. 다음 숏은 다른 날처럼 보이는데 이들은 여전히 외출 중이다. 롱테이크 숏은 영화에 필연적인 현장감을 부여하는데, 이때 관객은 상황 외부의 .. 더보기
특수성은 어떻게 보편성이 되는가 -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한국 독립영화 신작전] 특수성은 어떻게 보편성이 되는가- (정윤석) “본 영화는 전체적으로 볼륨이 균일하지 못함. 당신의 불편함을 통해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은유하려는 영화적 시도.” (이하 )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글은 영화가 다루는 2인조 인디밴드 밤섬해적단이 그들의 1집 『서울불바다』 앨범 속지에 적어놓은 ‘사과에 말씀’(“전 트랙에 걸쳐 볼륨이 평등하지 못함. 이는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표현하려는 (청자를 불편케 하는) 음악적인 시도임.”)을 차용한 것이다. 이때 감독 정윤석이 연출자로서 취하는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정윤석은 밤섬해적단의 몇몇 특성을 끌고 들어와 영화에 차용한다. 가사를 적은 PPT를 띄우며 공연하는 밤섬해적단의 방식은 영화에서 스크린을 꽉 채우는 역동적인 타이포그.. 더보기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가능한가 - <분홍신>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특별전] 예술을 위한 예술이란 가능한가 - (1948)은 약 17분간의 동명 발레 상연 시퀀스로 이름 높다. 그런데 이 발레극이 실제 무대에서 상연되는 것이라 가정할 때 의아한 부분이 생긴다. 비키가 구두공에게 분홍신을 건네받는 장면은 분홍신이 비키의 발에 저절로 감겨진 것처럼 표현되는데, 이렇게 느껴진 이유는 영화적 기법인 점프컷을 통해 신발 착용 전후가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즉, 발레 시퀀스는 무대극으로서의 발레가 아니라 ‘영화화된 발레’를 보여준다. 날이 어둑해져 집으로 돌아가려던 비키가 분홍신의 마력에 사로잡히는 장면은 더 이상하다. 마력은 사람의 형상을 한 검은 그림자로 표현되는데, 번뜩이는 조명에 의해 드러난 그것의 실체는 발레극의 내적 맥락과는 무관한 발레.. 더보기
파웰이 완성한 자기만의 방 - <피핑 톰> [마이클 파웰 & 에머릭 프레스버거 특별전] 파웰이 완성한 자기만의 방 - 마이클 파웰의 의 마지막 시퀀스는 아무리 봐도 꺼림칙하다. 카메라 뒤에 숨어 충동적인 살인을 일삼던 주인공은 좋아하는 여자와의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전망이 불투명해지자 돌연 자살을 결심한다. 그리고 자신이 예상한 대로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자 이 순간을 기다려 왔다며 총검 달린 카메라를 향해 거침없이 몸을 던진다. 가장 낯설게 느껴지는 대목은 그가 자기 목에 총검을 찔러 넣기 직전, 카메라를 향해 죽기가 두렵다고 말하면서 두려워서 기쁘다고도 말하는 순간이다. 늘 얼마간 경직돼 있는 그의 얼굴에는 공포도 희열도 희미하게만 어른거린다. 이렇게 작정하고 작위적인 비극적 결말 앞에서는 안타까움도 안도감도 느끼기 어렵다.1960년 개봉 당.. 더보기
“편집자의 역할은 감독의 눈이 되어주는 것이다” - 마리 스테판 감독과의 대화 [에릭 로메르 회고전] “편집자의 역할은 감독의 눈이 되어주는 것이다”- 마리 스테판 감독과의 대화 에릭 로메르 영화의 편집자이자 그의 가까운 친구였던 마리 스테판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지금도 로메르와의 추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그녀는 따뜻한 미소와 차분한 어조로 로메르와 로메르의 영화에 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월 26일(수)부터 29일(토)까지 진행한 네 번의 시네토크 행사 중 두 번의 대화를 정리해 보았다. ◆ 4월 26일(수) 상영 후 ◆ 김성욱(프로그램 디렉터) “에릭 로메르 회고전”을 맞아 특별한 손님을 초대했다. 로메르의 후기 영화인 에서 유작 까지 모든 작품을 편집한 분이다. 를 보면 중간에 잠깐 등장해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는 여성이 기억날 것이다. 바로 그분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