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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Interview

[Interview] "영화를 읽는다는 마음으로 나는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쥴 앤 짐>의 상영이 있던 날, 또 한 편의 프랑스 영화를 보러왔다는 홍상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출판사에서 다양한 세계문학들을 편집해오며 시네마테크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는 그녀는, 읽고 싶은 책을 대신해 영화를 ‘읽는다’는 마음으로 시네마테크를 찾는다고 했다. 문화를 향유하는 대상에 있어서도 시네마테크가 동등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그녀와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시네마테크를 어떻게 알고 오게 되었나. 그 첫 인상이 어땠는지도 궁금하다

시네마테크에서 처음 본 영화는 뮤지컬 영화인 <8 Women>(2002)이다. 대학생 때 학교가 근처라서 오다가다 프로그램 같은 것들을 많이 가져갔었다. 시네마테크는 일단 위치상 낙원악기상가 꼭대기에 있다는 게 특이했다. 그때도 멀티플렉스 극장을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면 정말 문화를 소비했다는 느낌, 여기까지 와서 문화생활을 했다는 느낌과 만족감이 있었다.


이번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시간을 내서 온다고 했는데, 그렇게 시간을 내서 이곳에 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 올 때마다 프랑스 영화들을 많이 보는 것 같은데 취향인 건가.

역시 시네마테크에 오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콘텐츠다. 지금 인천에 사는데 그곳에선 느낄 수 없는 이 근처의 분위기도 좋다. 그러나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영화를 하느냐에 대한 것이다. 또 세계문학을 편집하는 직업의 특성상 아무래도 프랑스 문학들을 많이 접하게 되는데, 그것을 영화로 만든 작품들을 시네마테크에서 꽤 많이 상영하기에 궁금해서 보러 오는 것도 있다. 특히 작년에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과 <인간 야수>를 상영한다기에 기대했었는데, <목로주점>은 결국 필름 상태 때문에 상영을 못 했더라. <인간 야수>는 에밀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에 포함되어 있는 작품인데, 개인적으로 편집을 하고 싶은 작품이기도 하다. 다만 아직 번역이 안 되어 있고 그 가능성도 낮아서 영화로라도 보자는 심정으로 왔던 기억이 난다.


편집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런 고전영화들을 보는 것이 고전문학을 편집하는 작업에도 반영이 되고 도움이 되나.

이미 편집을 한 작품의 경우에는 큰 영향력이 없겠지만, 영화에는 영상이 있으니까 그 시대의 분위기는 알 수 있지 않나. 비단 그 작품만이 아니라 동시대 같은 배경의 다른 책을 편집하게 될 때에도, 사실주의 영화라면 분위기 파악에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오히려 편집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책들을 대할 때, 책 대신 영화로 읽는다는 기분으로 본다.


베르코르의 소설 <바다의 침묵>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작년에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된 장 피에르 멜빌의 동명 영화를 봤다고 했는데, 어떤 느낌이었는지. 원작 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달라.

영화에서는 인물들의 감정을 묘사하기가 너무 힘들지 않나. 연기나 암시에 의존해야 되는데 책은 그 서사가 텍스트로 다 되어 있으니까. <바다의 침묵>은 특히 타자의 감정의 흐름이랄까, 감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느끼는 감정이 중요한 작품인데, 영화에서는 그게 다 내레이션으로 표현이 되었더라. 영화를 보기 전에 그 복잡한 감정들을 어떻게 표현했을까를 기대했던 터라 조금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아마 영화만 봤더라면 좋아했을 것 같다.


고전문학과 고전영화들이 같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작업이나 문화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영화와 문학이 연관이 잘 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영화가 잘 되면 원작도 많이 팔린다. 그런데 문제는 고전문학이나 고전영화가 지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는 것 같다. 고전과 연계된 문화를 즐기는 사람이 소수인데다, 영화도 이런 행사가 아니면 늘 매진되는 게 아니지 않나. 고전 문학이나 영화에 대한 나의 감정은 애잔함이다. 고전문학들을 다양한 형태로 출간하는 것도, 출판의 붐이지 독서의 붐은 아닌 것 같다. 또 당연히 필요한 일이지만 시네마테크 전용관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다. 예술영화나 고전영화들이 대중들에게 더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울타리를 치는 게 아닌가 하는 거다. 물론 전용관의 장점에 비하면 아주 사소한 우려일 뿐이고, 전용관의 운영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는데, 프랑스에 가면 시네마테크 같은 곳에 가서 영화를 찾아볼 의향이 있나.

아직 유럽에 한 번도 안 가봐서 환상일 수도 있는데, 가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꼭 프랑스 영화가 아니더라도 영화 자체에는 관심이 많다. 문제는 자막이 없어진다는 건데(웃음), 지금 잠깐 생각한 바로는 자막이 없어도 꽤 즐길 것 같다. 영화가 대사만으로 전달되는 게 아니고 결국 영상과 연출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아예 못 듣는다고 해도 보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종류도 더 많지 않을까.


시네마테크가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이 공간을 이용했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시네마테크가 어떤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나. 시네마테크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당연히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지만, 제일 현실적인 바람은 없어지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영화도 진입장벽이 너무 높기 때문에 SBI 출판 학교 같은 것처럼 영화인 양성에 어떤 통로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더불어 매니아층만을 위한 것뿐만 아니라, 문화를 향유하는 데에서 소외된 사람들, 대중문화 소비에 어색하고 여건이 안 되는 문화적 약자나 소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들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고전들을 선별해서 관객들이 함께 나눌 수 있는 아카이브도 생긴다면 좋을 것 같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장미경(관객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