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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경계도시 특별상영

7년의 대장정, 그 시간 동안의 거리 두기

<경계도시2>의 홍형숙 감독을 만나다!

지난 3, 4일 양일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한국사회가 낳은 영원한 경계인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영화 <경계도시>와 <경계도시2>의 특별상영이 있었고, 4일 오후 1시 <경계도시2> 상영 후 이 영화를 만든 홍형숙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이 마련되었다.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은 분단국가, 바로 우리 한국사회의 모습을 다시금 들여다보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지라 많은 질문이 오갔던 그 만남의 시간을 일부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 작품이 2003년도와 2004년도를 거치면서 2010년도에 모습을 보이게 됐는데 그 과정의 시간들을 잠깐 얘기해주신다면.
홍형숙(영화감독): 2000년에 <경계도시> 1편 찍으러 베를린에 갔다. 송두율 교수를 처음 뵙고 그때부터 인연을 맺기 시작했는데 빠른 시간 안에 입국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별로 하지 못했다. 다음해에 입국이 가능하다는 소식이 들려가지고 자연스럽게 카메라를 잡게 됐다. 3주 정도의 일정이 7년의 대장정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그 시간 동안에 내 숙제가 뭐였냐면 거리두기였던 것 같다. 나를 비롯해서 당시 사건으로부터 혹은 송 교수로부터, 둘러싸고 있던 모든 것들로부터. 참 그게 어려웠고 그래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김성욱: 이 영화가 잊고 있었던 시간에 대한 기억들로 다시 되돌아가는, 동시에 기억하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해서 반추하게 되는 그런 느낌들이 많이 들었다. 영화에서 보면 인터뷰의 방식이라는 게 두 가지가 있었던 것 같은데 하나는 저널리스트들의 대답을 얻기 위한 질문들이고, 그 대답을 준비되어 있는 대답으로 결정짓기 위해서 계속 질문하는 내용들이 있다. 또 하나는 송두율 씨와 근접해서 촬영을 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거리가 계속 발생하게 되는 그런 식의 경청과 주시가 있는데, 그것도 인터뷰의 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 과정들을 쭉 지켜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 경험하신 것들이 굉장히 많았을 것 같은데.
홍형숙: 각자의 주어진 상황이나 삶의 여건이나, 그런 것에 따라서 텍스트는 정말 많이 다르게 읽힌다. 이게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코드로 다가오는 그런 분들도 계시고, 인권의 문제로 반응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 작은 조각들을 하나씩 가져갈 수 있으면 그걸로 이 다큐멘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역할은 한 게 아닌가 싶다.

관객1:
왜 제목이 <경계도시>가 됐는지. 그리고 촬영하는 내내 거리두기를 하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설명을 했다고 했는데 그게 완전히 객관적이 아닌 것 같은데 이 점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홍형숙: 객관적인 시점이라고 말씀드린 것 같지는 않고, 촬영을 하면서 느꼈던 내면의 갈등 이런 것들이 고스란히 전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경계도시>라는 제목은, 경계를 공간 혹은 지대의 개념으로 이해하고 그 공간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는 역할을 하는 생산적인 제3자를 경계인이라고 규정하는데, 여기에 우리 사회에서 통용되는 경계의 개념, 1편에서 사용했던 베를린의 별칭까지 중첩적으로 사용했다. 사실 <경계도시 2>의 주인공은 송두율 교수가 아니라 나와 우리까지 다 포함된 한국 사회의 모습이고, 그 한국 사회를 가장 잘 이야기해줄 수 있는 타이틀이다.

김성욱: 2편을 보면서는 이게 ‘경계도시’가 아니라 ‘무경계도시’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에서 타자에 대한 지켜야 될 선들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오히려 그걸 계속 월권해 나가는 게 훨씬 더 많이 보였던 것 같고, 그래서 역설적으로 그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게 우리들의 모습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관객2: 신념과 현실이 부딪칠 때, 과연 송 교수님처럼 어느 정도 타협을 하는 게 옳은 건지 아니면 현실을 무시하고 신념만을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지 묻고 싶다.
홍형숙: 신념이라고 하는 것을 총체적으로 돌아본다는 건 참 어렵다.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자신의 그 부족한 측면들, 안에 숨어있던 불편한 모습들, 이런 걸 바닥까지 내려가서 정직하게 응시하지 않으면 내일이라고 하는 건 기대하기가 쉽지가 않다.

관객3: 카메라에 담기는 사람들은 자기를 찍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의식할 것 같은데 여기서는 종종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 듯한 모습들이 많이 비춰진다.
홍형숙: 영화에서 보이는 부분들에 관해서는, 촬영하고 있음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예민한 문제 혹은 개인적으로 불편한 부분이 있으시면 최대한 촬영에 대한 어떤 허락, 과정을 밟아 진행했다.

관객4: 이 영화를 송두율 교수님께서 보셨는지, 허락을 받는 절차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홍형숙: 송두율 교수께서 보셨고 마음이 정말 많이 아프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 이후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의 어떤 말도 없었다는 것이 훨씬 더 큰 상처일 거라고 생각한다. 2003년 송두율은 스파이였고, 2010년 송두율은 스파이가 아니다. 그때 그의 죄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지점에 방점이 찍혀있다고 생각한다.

관객5: 개인적으로 사모님을 흥미 있게 봤다. 실제로 송두율 교수님과 그 사모님이 동지적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었는데.
홍형숙: 정정희 선생님 모습이, 여려 보이나 강단 있는 여성의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이 드는데, 굉장히 강조했다. 내가 판단하기에 정정희 선생님은 송두율의 삶을 함께 살아왔던 사람인 것이다.

관객6: 다큐 전반에서 운동 진영이 계속 나오는데,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매우 부끄러웠다.
홍형숙: 사람에게 어려운 그런 일이 뭘까 생각했을 때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 아닐까 싶다. 아프지만 제대로 정직하게 바라보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혹시 하시고 싶은 얘기가 있으시면.
홍형숙: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린다. 안정적인 극장, 관객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 같은 것들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출발한 게 또 <경계도시 2>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서울아트시네마에 보내 주신 어떤 성원 같은 것과 함께 <경계도시 2>에도 손을 잡아 주시고, 많이 격려해 주었음 좋겠다. (정리: 홍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