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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 최호적시광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카페 뤼미에르> 리뷰 - 오즈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헌사

오즈에 대한 가장 아름다운 헌사

- <카페 뤼미에르>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카페 뤼미에르>는 오즈에 대한 헌정을 내세우는 대신 현대 도쿄의 일상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오즈에게 가능했던 부녀관계의 감정적 밀도, 일본인의 집 내부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바꾸기 위해 허우 샤오시엔은 이방인으로서의 시선을 충실하게 따른다. 카메라는 쉽게 인물들 사이로 들어서거나 서로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하지 않는다. 요코의 방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내밀한 딸의 공간에 선뜻 들어서지 못한 오즈의 영화 속 아버지의 시선을 체득한 허우 샤오시엔의 태도처럼 느껴질 만큼 멀찍이 떨어져서 빨래를 널고 커튼을 치고 피곤에 지쳐 잠이 든 요코를 바라볼 뿐 그녀의 지척으로 다가서지 않는다. 오히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일본의 상점가와 사람들의 일상을 면밀하게 바라보는 그에게 도쿄는 전차가 쉴 새 없이 다니는 복잡한 교각과 거리, 핏줄처럼 얽힌 전차의 노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로 채워진 곳이다. 대만의 한 음악가를 연구하는 요코와 고서점을 운영하는 하지메를 중심으로 한 일본인들은 오즈의 영화 속 인물들과 많이 다르다. 결혼은 하지 않지만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는 독립적인 성격의 요코, 그리고 마치 태내에 있는 아기를 보호하는 것처럼 에워싼 도쿄 전차의 철로와 역에서 안온함과 외로움을 동시에 느끼는 하지메가 서로 만나고 함께 길을 걷고 가끔 까페에서 차를 마시거나 이미 사라진 쇼와 시대의 흔적을 찾아다닌다. 이들은 복잡한 감정의 틈을 표정이나 언어로 메우려하지 않고 예의를 다해 상대방의 마음을 헤치지 않으려 한다. 대만 출신 음악가의 행적을 쫓을 때 요코가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고향의 묘지를 참배하는 행동, 소나기를 피해 찾아간 시골 정류장에서의 대화, 하지메가 매번 다르게 느껴지는 전철의 소리를 녹음하는 행동은 바깥으로 표출되지 않는 섬세한 감정을 품고 있다.



허우 샤오시엔이 전철에 이어 주목한 또 다른 장치는 시계다. 요코가 하지메에게 선물한 ‘대만철도국개국 116 주년’ 기념시계를 비롯한 시간은 대만의 역사적 사건과 일본이 연결되고(일본의 식민 지배, 공적인 시간을 기록하는 기계로서의 시계와 사적인 역사가 얽힌 대만음악가의 시간이 이어지는 요코의 시간), 오즈의 탄생 100주년이라는 시간과 2003년의 허우 샤오시엔으로 연결된다. 그의 영화를 통해 오즈의 도쿄와 현재 도쿄가 만나고 대만 음악가의 흔적은 쇼와 시대의 지명과 현재 사라진 긴자 2번지에 새롭게 새워진 빌딩을 연결 짓는다. 지속되는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이어보려는 허우 샤오시엔의 시선으로 인해 이 영화는 한 예술가가 다른 예술가에게 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헌사가 된다. 필요할 때만 조금씩 움직이는 카메라의 위치와 롱테이크, 롱 쇼트로 포착한 이 영화의 쇼트들은 이야기를 위해 배치되거나 극적인 사건을 위해 소모되지 않는다. 마치 전철이 도쿄를 관통하면서 일본인의 일상을 창문에 반사시키듯 매 쇼트는 시간을 품은 채 흐르고 연결되고 반복된다. 삶의 면면을 이어주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제시하며 혈관처럼 흐르고 있는 시간을 탐사하는 허우 샤오시엔은 오즈의 영화를 답습하기보다 그가 경험하고 감각한 오즈의 세계를 외부인의 목소리와 시선, 과거와 현재의 시간, 현재 이곳에서 잉태된 생명과 교감함으로써 중첩시킨다.

박인호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