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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 최호적시광

[허우 샤오시엔 전작전] <쓰리 타임즈> 리뷰 - 되돌릴 수 없는 세 개의 시간

되돌릴 수 없는 세 개의 시간

- <쓰리 타임즈>



<쓰리 타임즈>의 원제는 ‘最好的時光’이다. 왕가위의 2000년 작품 <화양연화>의 원제는 ‘花樣年華’다. 두 영화의 제목이 비슷한 의미를 띤다고 생각했다가 다시 곰곰이 따져봤다. 전자는 ‘최고의 순간’ 정도의 뜻이 되겠고, 후자는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쯤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전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쓰리 타임즈>에는 시간을 달리해 세 커플이 등장하는데, 그들이 보내는 시간을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히려 그들은 부질없고 힘겹고 아슬아슬한 시간을 보낸다. 그런데 허우 샤오시엔은 거기에다 ‘최고의 순간’이라는 제목을 붙여 놓았다. 그건 역설적인 표현이거나 말장난이 아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이 보내는 시간이 ‘최고의 시간’인 이유는 그것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평자들은 <쓰리 타임즈>의 각 시대와 <펑쿠이에서 온 소년>, <해상화>, <밀레니엄 맘보>를 연결해 읽곤 하는데, 작품의 시작점으로 되돌아가 보면 그건 전혀 의도된 바가 아니다. 원래 <쓰리 타임즈>는 세 명의 감독이 연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허우 샤오시엔이 첫 번째 에피소드인 1966년을 맡고, 후앙 웬잉(그는 이후 미술과 프로듀서로 참여했다)이 1911년을 배경인 두 번째 에피소드를, 펭 웬청이 마지막 에피소드인 1980년을 연출하기로 했었다. 그러다 사정이 생겨 결국 허우 샤오시엔이 전체 작품을 연출하게 되었고, 세 번째 에피소드는 1980년대에서 2005년으로 시간 배경을 바꾸었다. 세 개의 시간 가운데 허우 샤오시엔에게 최고의 시간에 해당하는 것은 1966년이다. 당시 군인 신분이었던 그의 모습은 주인공 첸에 반영되어 있다. 첸처럼 허우 샤오시엔도 당구장에서 일하는 ‘당구장 소녀(남자들은 당구장에서 일하는 여성을 그렇게 불렀다 한다)’와 편지를 주고받고 휴가를 나와서는 만나기도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영화보다 허우 샤오시엔 자신이 더 많이 보인다.


세 개의 에피소드에는 각각 <연애몽>, <자유몽>, <청춘몽>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렇다면 <쓰리 타임즈>는 실재했던 최고의 순간들에 대한 영화가 아니라 최고의 순간에 꾸었던 꿈에 대한 영화일까? 기실 영화의 첫 장면은 그것이 과장된 해석이 아님을 보여준다. (꿈처럼) 다소 나른한 분위기를 배경으로 당구장에서 첸(장첸)이 당구를 치고 있고, 그와 가까운 곁에서 슈메이(서기)가 이런저런 표정을 지으며 서 있다. 극 중 슈메이와 첸이 그 당구장에 있었던 것은, 첸이 입대하기 며칠 전 한 번뿐이다. 그런데 그때 그들이 입고 있는 옷과 도입부의 (같은) 당구장에서 두 사람이 입었던 옷은 다르다. 즉, 그것은 앞과 뒤 둘 중 하나가 꿈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자유몽>은, 남자가 개혁의 모의를 할 동안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가녀린 목소리로 노래하던 여자가 꾸는 꿈일까? <청춘몽>은, 인터넷에 올라온 여자의 사진과 글을 보고 남자가 꾸는 꿈일까?




1966년의 <연애몽>에서는 ‘플래터스’와 ‘아프로티테스 차일드’의 노래가 흐른다. 영화는 당구장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그녀가 대만의 이곳저곳에 자리한 여러 당구장을 옮겨 다닐 뿐이다. 습관적으로 당구장 소녀에게 편지하던 남자는 휴가를 나와 그녀의 이동경로를 따라 움직인다. 1911년의 <자유몽>에는 이상하게 뉴에이지 풍의 피아노 음악이 흐른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유곽 바깥으로 거의 나가지 않는데, 세트가 아닌 오래된 주택에서 촬영한 터라 <해상화>처럼 밀폐된 느낌은 없다. 개혁의 꿈을 품은 남자를 바라보며, 유곽에 얽매인 기녀는 눈물을 훔칠 따름이다. 그녀는 그를 잡을 수 없다. 이 에피소드는 무성영화처럼 찍혔는데(고어를 익힐 시간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이다), 대화 모습 뒤로 자막을 삽입해 지연의 효과를 낸다. 과거에서 대과거로 넘어간 동일한 배우들에게 한 박자 느리게 신중하게 접근하는 느낌이다. 2005년의 <청춘몽>에는 테크노 뮤직과 모던한 노래가 나온다. 과거에서 대과거로, 거기서 점프해 현재로 돌아온 배우들은 50년을, 혹은 100년을 채우지 못한 욕망으로 버틴 뱀파이어처럼 보인다.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나, 이제 쇠락해가는 육체가 그들의 꿈을 막아선다. 그러니까 그녀에게, 그에게 최고의 순간은 바로 지금이다. 하지만 그들은 시간을 붙들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목적지 없이 계속 달린다. 오토바이 뒤에 앉은 그녀는 그의 몸을 붙들고 운다.

이용철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