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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낭만주의 서부극의 정점 [영화읽기] 존 포드의 와이어트 어프와 그의 OK 목장의 결투는 전설처럼 남은 서부의 역사이며, 서부극의 매우 흔한 소재이기도 하다. 존 포드는 이 유명한 전투를 재연하기 위해 이후 7년여 만에 모뉴먼트 벨리로 돌아가, 25만 달러를 들여서 툼스톤 마을의 세트를 지었다. (1946)는 그렇게 탄생한 영화다. 포드는 자신이 서부극에서 세워놓은 전형적인 배경으로 돌아갔지만, 스스로 구축한 클리셰를 살짝 변주한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와이어트와 클랜튼 일가의 대립구도를 통해 결투가 벌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와이어트는 이미 동생을 죽인 범인을 짐작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곧바로 복수를 시도하지 않고 툼스톤에 정착하여 보안관이 된다. 영화의 초반부에서 이미 서부극의 전형적인 대립구도와 긴장이 발생함에도 불구하고,.. 더보기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미국적 이상 [영화읽기] 존 포드의 앙드레 바쟁은 웨스턴에 관한 그의 글에서 서부의 정복과 소비에트 혁명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새로운 질서와 문명의 탄생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미학적 차원을 부여한 유일한 언어는 바로 영화였다고 말한다. 웨스턴 장르는 미국(할리우드)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존 포드의 웨스턴 영화들은 미국에 대해 그가 갖는 역사적 비전을 담아내면서 진화했다. 그 중 1939년에 만들어진 는 미국이 독립전쟁을 치르고 있던 식민지시기를 배경으로 개척정신에 뿌리를 둔 미국의 기원을 그렸다. 존 포드의 첫 테크니컬러 영화이기도 한 이 작품은 자연과 풍경, 계절과 날씨의 변화, 빛과 어둠의 변화를 풍부하게 담아내면서, 이를 통해 인물의 감정과 내러티브를 전달한다... 더보기
인물의 육체, 행위의 기입이 아닌 ‘말’을 찍은 영화 [영화읽기] 장 으스타슈의 세르주 다네의 표현에 따르면 장 으스타슈는 '자신의 독자적인 현실의 민족지학자'다. 인류학의 방법론 중에 하나인 민족지학적 방법론은 오랜 시간동안 현지에 머물면서 그들의 삶의 방식들을 몸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족지학자가 현지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뜻하지 않은 우연적 사건들을 겪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만큼 현지인들의 삶과 문화에 더 젖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편, 으스타슈는 모럴리스트(moralist)다. 에릭 로메르의 말에 따르면 모럴리스트는 인간의 내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정신과 감정의 상태에 관심이 있다고 한다. 이 '관심'이라는 말이 어떻게 영화로 표현되는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는 인간의 외부적 행위나 사고를 다.. 더보기
시네마테크가 있었기에 우리는 이런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거다 시네필 정성일의 선택, 사샤 기트리의 시네토크 2월 11일 특별섹션으로 마련된 카르트 블랑슈: 시네필의 선택작으로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사샤 기트리의 상영 후 정성일 평론가와 관객과의 대화가 있었다. 정성일 평론가는 ‘영화가 상영되는 지금 이 시간에도 시네마테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성욱 프로그래머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자’는 말을 건네며, 에 대한 이야기와 시네필의 강령을 전달했다. 그는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이 극장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만 할 것이라며 행동이 결여된 채 극장에 앉아있다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행위가 아니라고 말했다. 약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강연은, 시네마테크가 처한 위기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자는 ‘선배 시네필’의 지혜와도 같은 것이었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사샤 기트리.. 더보기
장 엡스탱의 <어셔가의 몰락> - 공간으로 환기된 분위기가 압도적인 영화 장 엡스탱은 마르셀 레르비에, 루이 델뤽, 장 그레미옹과 더불어 프랑스 아방가르드를 대표하는 거장이다. ‘포토제니(photognie)’이론을 제창한 루이 델뤽과 더불어 첫 번째 영화이론가이기도 했던 그는 영화와 아방가르드 예술에 관한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며, 동시에 프랑스 아방가르드 영화의 주도적인 감독으로 활동했다. (1928)은 (1922), (1923), (1927) 등 실험적이고 전위적인 엡스탱의 영화들 중에서도 1920년대 후반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아방가르드 예술의 최고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에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모티프로 각색한 이 작품은 이후에도 수없이 많은 버전으로 여러 명의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 되었지만, 엡스탱의 작품은 무성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인상적인 버전, 걸작 중의 걸작으.. 더보기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준 생애의 영화 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루이 푀이야드의 시네토크 2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선택작 루이 푀이야드의 가 하루 종일 상영되었고,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 후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정성일 평론가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박물관이 아니라 현재 진행하는 시간인 동시에 내일을 열어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를 물신화하지 말고 신화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와 똑같은 관람 기분으로 1915년의 영화 를 만나기를 당부했던 그는 거듭해서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이 우리들에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단호하게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 내용을 전한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더보기
정신 분열 그 너머, 부인에 의한 신성모독 [영화읽기] 카르멜로 베네의 여러 방면에 재능이 많은 카르멜로 베네는 모국인 이탈리아에서는 영화보다 소설과 연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도 가장 매혹적이고 특색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는 그의 다섯 작품을 볼 때, 이러한 현실은 다소 당황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영화적 광기라는 베네만의 독특한 특징이 요즘 시대의 관객들에게 얼마나 수용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면 다소 이해가 가는 면도 없지 않다. 1969년에 만들어진 베네의 두 번째 장편영화 는 그의 전작과 같이 현대 이탈리아에서의 삶에 대한 환각적이고 비선형적인, 궁극적으로는 종말론적인 시선을 보여 준다. 베네의 전작들과는 달리 는 특별히 잘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영화 클라이맥스의 난폭한 자동차 사고 장면의 연속은 영화가 만들.. 더보기
완전작가를 탐한 기트리가 삶을 대하는 자세 [영화읽기] 사샤 기트리의 사샤 기트리 영화의 핵심은 ‘역설’에 있다. 역설은 기트리의 영화, 기트리와 영화의 관계를 모두 이해하는 데 근사하게 쓰이는 말이다. 일례를 들어보자. 1912년, 연극에 주력하던 이십대의 기트리는 감히 ‘영화는 정점을 지나버릴 것이다’라고 선언했다. 이후 감독이 되어서도 그는 영화를 얕보는 태도와 주장을 굽히지 않았는데, 그런 자세는 기존의 영화 관습과 약호를 거부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화에 대한 경멸에서 비롯된 기트리의 독창성은 누벨바그 감독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혹자는 그를 ‘모던 시네마의 아버지’로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편, 그를 옹호하지 않는 자들로부터 단조로운 희극, 삼각관계 실내극 정도로 취급받는 기트리의 영화는 사실 반코미디의 정서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