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세상을 향해 단 한순간도 표정을 풀지 않는 한 소녀가 있다. 소녀의 소원은 단 하나,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는 누구에게도 결코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캠프촌의 트레일러에 사는 소녀는 알콜에 찌든 엄마를 보살펴야 하고, 가스와 수도비와 월세를 내야 한다.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소녀의 일상은 언제나 벼랑 끝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런 소녀에게도 어느 날 자신을 다정하게 쳐다봐주는 남자친구가 생긴다. 지긋지긋한 엄마를 피해 남자친구의 집에서 처음으로 일상의 굴레를 잠시 벗어두던 밤, 소녀는 혼자 속삭인다. “넌 친구가 생겼어. 난 친구가 생겼어. 넌 정상적인 삶을 산다. 난 정상적인 삶을 산다. 넌 시궁창을 벗어난다. 난 시궁창을 벗어난다.” 이 작은 기대, 이 간절한 다짐은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다시 반복되는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이 난다. 소녀는 살기 위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아껴주던 남자친구마저 배신해야 한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소녀에게 망설임은 사치다.

장 피에르 다르덴, 뤽 다르덴 형제는 언젠가 자신들의 영화 속 인물들이 계급에서조차 빗겨난 이 시대의 “탈계급화된” 존재들이라고 말한 적 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어온 이주민들이거나, 노동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빈민층이거나, 그리하여 자신의 아이마저 팔아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 자들이다. 다르덴 형제가 이 무력한 존재들이 헤쳐가야 할 시간을 찍는 방식은 (이제는 ‘다르덴 스타일’이라고 일컬어지는) 핸드 헬드로 인물들의 등 뒤에 바짝 붙어 따라가는 것이다. 그 때 우리 눈에 보이는 건 궁지에 몰려 흔들리지만, 그럼에도 힘겹게 나아가야만 하는 육체, 위태로워질수록 더욱 날 것 그대로 드러나는 빈곤한 육신뿐이다. 다르덴 형제는 인물들에게 카메라를 밀착시킴으로서 상황을 전환시킬 드라마틱한 사건도, 지옥 같은 현실을 위로해줄 그 어떤 환상도 개입할 여지를 두지 않는다. 그 흔한 음악도 없으며 인물들의 가파른 숨소리와 그 절박함에 무심한 세계의 소음들만 있다. 그런데 이 집요한 스타일만큼 주목할 것은 다르덴의 영화들이 이후, 다르덴 미학을 매너리즘적으로 취하는 여타의 다른 작품들과 갈라지는 지점이다. 인물들을 좁은 프레임 안에 가두고 끊임없이 밀고 가던 다르덴의 영화적 형식이 결국 도달한 곳을 우리는 보아야 한다. 그 곳은 선택의 자리다. 다르덴의 인물들은 스스로를 내버리지 않기 위한 마지막 안간힘으로 결단의 순간과 마주하곤 하는데, 그 순간은 비록 뒤늦게일지라도 타인의 눈을 비로소 마주하고, 타인의 손을 잡는 자리다.

<로제타> 역시 그러하다. 죽는 것조차 물질적 조건 때문에 마음대로 되지 않는 저 희극적이어서 너무도 비극적인 상황에서, 로제타는 처음으로 부당한 현실이 아닌, 초라한 자신을 향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린다. 이 가여운 소녀를 어찌하시렵니까. 그 때 무너진 소녀를 일으켜 세우는 자는 다름 아닌 그녀에게 무참하게 일자리를 빼앗긴 남자친구다. 이 가난하고 질긴 밑바닥의 작은 새들. 그러니 이 작은 새들은 어찌되었든 다시 살아나갈 것이다.

by 남다은_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