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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의리의 무덤

의리의 무덤 仁義の墓場 / Graveyard of Honor

 

 

1975│94min│일본│B&W+Color

연출│후카사쿠 긴지

원작│후지타 고로

각본│가모이 다히로, 마쓰다 히로, 고나미 후미오

촬영│나카자와 한지로

음악│쓰시마 도시아키

편집│다나카 오사무

출연│와타리 데쓰야, 우메미야 다쓰오, 다나카 구니에


 

<의리의 무덤>은 ‘미친 개'라는 별명을 가진 이시카와라는 야쿠자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다. 1924년에 태어난 이시카와는 어릴 때 어머니를 잃고 폭행으로 소년원을 갔다온 후 자연스럽게 야쿠자의 세계로 흘러든다. 그는 앞뒤 가리지 않는 폭력성 때문에 조직에서도 곤란해 하는 존재인데, 그날도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도박장을 습격해 사람을 죽인다. 이때 이시카와는 경찰을 피해 숨어 들어간 집에서 치에코라는 여성을 처음 만난다. 50년대는 세력을 키운 야쿠자들이 본격적으로 선거에 출마하던 때였다. 이시카와의 가와다 조직도 신주쿠 시장선거에 출마한 노주를 돕고 있었는데, 이 민감한 시기에 이시카와가 상대편 조직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일로 이시카와는 조직의 눈엣가시가 되고, 그 후 이시카와는 아무도 말릴 수 없는 폭주기관차처럼 행동한다. 이시카와가 다른 조직의 도박장에서 행패를 부리고, 심지어 노주의 차를 폭파시켜 버리자 조직은 징계의 의미로 이시카와의 손가락을 자르지만 그는 홧김에 두목을 죽여 버린다. 이 일로 가와다 조직뿐 아니라 야쿠자 세계에서 버려진 이시카와는 살인죄로 징역을 살고 오사카로 보내져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마약중독자인 오자키와 함께 다시 신주쿠로 돌아온 이시카와는 치에코를 애인으로 둔 채 망나니짓을 계속하고, 이번에는 이마이파의 두목을 총으로 쏴죽인다. 결국 다시 경찰에 체포된 이시카와는 10년형을 받는다. 그 후로도 그의 인생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다. 유일하게 그의 곁을 지키던 치에코는 폐결핵에 걸린 채 손목을 그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슬픔에 잠긴 이시카와는 노골적으로 조직에 반기를 든다. 결국 같은 조직원들의 린치를 당한 이시카와는 다시 감옥으로 가고, 그로부터 6년 후 옥상에서 떨어져 목숨을 끊는다. 그는 치에코 곁에 묻히고 묘비에는 그의 희망대로 ‘인의’라는 문구가 새겨진다. 인간의 추악한 본성을 그리는 데 언제나 주저함이 없었던 후카사쿠 긴지는 이 영화에서도 작정한 듯이 밑바닥 인생을 처절하고 생생하게 그린다. 흥미로운 것은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는 이시카와의 악행을 묘사할수록 허무와 슬픔의 정서가 배어난다는 것이다. 내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 채 보통사람으로서는 납득하기 힘든 그의 행동을 가감없이 묘사할수록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페이소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야쿠자를 미화하거나 낭만화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나레이션이 곁들여진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내러티브 진행과 맞물려 단순히 이시카와 개인의 비극적인 인생을 넘어 시대의 단면을 엿보게 하는 효과가 있다. 후카사쿠 긴지 감독이 본 일본의 5-60년대는 어떤 희망도 없는, 폭력과 자기 파괴만이 존재한 시대였던 것이다.

 

김보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