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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시네바캉스 서울

[리뷰] 늑대와 돼지와 인간

늑대와 돼지와 인간 狼と豚と人間 / Wolves, Pigs & Men

 

 

1964│95min│일본│B&W

연출│후카사쿠 긴지

각본│사토 준야, 후카사쿠 긴지

촬영│호시지마 이치로

음악│도미타 이사오

편집│다나카 오사무

출연│다카쿠라 겐, 기타오지 긴야, 에 신지로, 나카하라 사나에


 

후카사쿠 긴지의 <늑대와 돼지와 인간>은 야쿠자를 소재로 하지만 정통 임협물이라기보다는 한정된 공간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갈등과 배신을 그린 심리극에 가깝다. 관객에게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마지막까지 극단적인 상황을 밀어붙이는 이 영화는 당시 삶의 목표를 잃은 젊은이들의 내면이 어떻게 피폐해졌는지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친구는 물론, 형제들도 돈 때문에 서로 배신을 하고 죽고 죽이는 상황이 벌어지는 것이다.지로는 삼형제 중 둘째로 막 감옥에서 나온 참이다. 큰형인 구로키는 이와사키파에 충성을 다하며 캬바레를 운영하고 있고, 동생인 사부는 친구들과 함께 하루하루 시간을 죽이는 양아치다. 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의 갑갑함을 떠나 외국에서 자유를 찾고자 한다. 애인인 교코와 여권까지 준비한 그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와사키파의 운영자금 이천만 엔을 훔치려 한다. 계획의 확실한 성공을 위해 친구인 미즈하라를 합류시킨 지로는 일 인당 5만 엔을 주기로 하고 동생인 사부와 그의 패거리들까지 끌어들인다. 결국 지로 일당은 돈을 훔치는 데는 성공하지만 직접 돈가방을 본 사부가 딴마음을 먹고 만다. 현금과 별도로 2천만 엔 상당의 마약이 있는 걸 안 후 자신의 몫이 너무 적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부는 자신만 아는 곳에 돈가방을 숨긴 후 형과 협상을 시도하지만 지로는 오히려 권총으로 동생 패거리를 협박해 지하실에 가둔 후 잔인한 고문을 시작한다.이때부터 이야기는 빠져나올 길 없는 악순환을 반복한다. 사부의 친구들은 손가락이 잘리거나 강간을 당하거나 심지어 죽어버리고, 한편으로 돈을 뺏긴 이와사키파는 포위망을 좁혀간다. 결국 지로의 아지트를 찾아낸 큰형 구로키는 마지막 협상을 시도하지만 이조차 실패로 돌아서고, 지로와 사부는 이와사키파에 대항하다 비참하게 죽고 만다. 구로키는 참담한 심정으로 돌아서지만 형제가 아닌 조직과 돈을 택한 그에게 마을의 주민들은 죽은 쥐와 돌을 던지며 비난을 보낸다. 그렇게 구로키는 형제 간에 희미하게 존재하던 최소한의 믿음마저 버린 채 다시 도시의 비정한 질서 속으로 돌아간다.


 

                                                                                                 

                                                                                                   김보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