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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마법과도 같은 컬트 스릴러의 전형,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니콜라스 뢰그는 영화계에서 이단아나 다름없는 감독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 <퍼포먼스>는 관객과 평단에게 엄청난 악평을 받았으며, 이후 발표한 <워커바웃>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뢰그의 영화는 내러티브의 시간차를 뒤집는 방식을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서 일부 지지자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장면과 장면 사이에 과거 혹은 미래의 이야기를 서슴없이 집어넣는 독특한 방식의 편집법이 그의 영화를 늘 새롭게 느껴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뢰그의 기법은 흔히 볼 수 없던 것으로, 시간을 자연스레 역행해가며 이야기를 쌓아간다.

뢰그 감독의 세 번째 연출작인 <쳐다보지 마라>는 1973년에 제작된 백스터 부부와 그들의 아이에 관한 이야기다. <닥터 지바고>의 줄리 크리스티와 도널드 서덜랜드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와 <새>의 모토가 되었던 영국 추리작가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소설이 원작이다. 어린 딸 크리스틴을 잃은 후 영국을 떠나 이탈리아의 베니스로 이사를 간 백스터 부부는 딸의 죽음에 대해 잊으려 하지만 베니스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우연적인 일들은 자꾸만 크리스틴을 회상하게 만든다. 되도록 딸아이를 생각하지 않으려는 아버지 존과 베니스의 심령술사를 통해 딸을 자꾸 회상하려하는 어머니 로라는 예기치 않은 갈등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처럼 영화는 아이의 죽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세상과 현실 세계의 충돌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딸이 죽음과 동시에 부부에게 찾아드는 이상한 영적 체험들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비교적 단순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기분 나쁜 음악과 함께 초반부터 급속도로 전개되는 익사사고, 그리고 딸아이가 죽던 날 입고 있던 빨간 우비까지 모든 것들이 공포영화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두 부부의 발목을 묶게 되는 사건을 던져준 후 영화는 그 이후에 불어 닥치는 알 수 없는 재앙들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는데, 불길한 예감 혹은 필연의 사건들을 전개하는 과정은 전작 <워커바웃>에서 보여준 뢰그 특유의 정적인 연출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원작을 충실히 따랐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는 단순하고 대체로 설득력이 없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영화는 오히려 화려한 내러티브를 벗어던지고 비교적 적나라하고 저돌적인 장면들의 연출에만 치중할 수 있게 되었다.

<쳐다보지 마라>는 기괴하고 모호한 기분을 후반이 넘도록 이어가다가 결말에 이르러 공포물로서는 완벽한 집중력을 보여주는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화 속의 교차편집들이다. 미래의 사건을 암시하듯 영화 중간 중간 주기적으로 보여주는 교차편집 씬들은 특별한 설정없이 관객을 옥죄는 공포를 유발시킨다. 특히 가장 주목해야 할 장면은 영화의 초반, 5분여간 벌어지는 백스터 부부의 격정적인 정사장면과 동시에 부부가 외출을 위해 옷을 입는 장면이 중첩되는 부분이다. 도널드 서덜랜드와 줄리 크리스티 두 배우의 전라 연기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던 장면으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조합을 보여준다. 뢰그는 여기서 파격적이고 이질적인 위화감을 효과적으로 나타내었다.

‘심령’에 초점을 맞춘 B급 컬트무비인 <쳐다보지 마라>는 공상이 아닌 현실 세계의 두 부부에 기대어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야기한다. 파격적인 교차편집과 앞뒤가 맞지 않지만 묘하게 자극을 가져다주는 영화의 장면들은 날것 그대로를 보는 것 같아 마치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건들로 느껴질 정도로 섬뜩하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이탈리아의 베니스는 이 영화를 통해 음습하고 불온한 기운이 잔뜩 쌓인 미스터리한 도시로 탈바꿈했다. 호숫가에서 익사한 아이의 혼령이 물로 가득 찬 도시 베니스를 뛰어다니는 후반부의 장면들은 긴장감과 두려움을 극대화시키는데 충분하다. 현란한 장면들 뒤로 관객들의 허를 찌르는 치밀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공포영화로 영화의 간단하고 저돌적인 내러티브 이면에 숨겨진 다양한 장치들은 시종일관 출구를 알 수 없게 만드는 마법 같은 컬트 스릴러의 전형을 보여준다. (강민영)

   * 친구들의 선택 06//박찬욱 영화감독
   쳐다보지 마라//Don't Look Now
   1972|110min|미국/이탈리아|Color|35mm|18세 이상 관람가
  
  * 상영일정
  1/16 (토) 15:00 상영후 시네토크 - 박찬욱
  1/28 (목) 16:00 
  2/4 (목) 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