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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2014 베니스 인 서울

[특집 - 2014 베니스인 서울]파시즘의 시대, <삼총사>를 읽는 마음 - <특별한 날>

[특집 - 2014 베니스인 서울]

 

파시즘의 시대, <삼총사> 읽는 마음

- 에토레 스콜라의 <특별한 >



 

에토레 스콜라의 영화에는 아이러니의 유머가 있다. 이탈리아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풍자는 예리하여 냉소를 유발하고, 사정없는 자기비판의 칼날은 깊은 성찰의 죄의식을 자극한다. 스콜라의 전성기는 1970년대이다. 소위납의 시대라고 불리는 정치적 암흑기다. 공기는 납처럼 무겁고, 정치 테러가 끊이질 않을 때다. 그래서인지 마르코 벨로키오 같은 급진파들의 정치적 공격성은 더욱 날을 세웠다. 스콜라도 벨로키오처럼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좌파 영화인이다. 스콜라는 당시의 이탈리아 공산당의 적극적인 지지자였다. 그런데 그의 매력은 공격성보다는 유머로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놓는 코미디 감각에 있었다. 스콜라는이탈리아식 코미디 전문가다. ‘이탈리아식 코미디 정치적으로 민감한 테마를 전면에 내세운 이탈리아 특유의 희극 형식이다<특별한 >(1977) 1960년대에 유행했던 이런 코미디 전통을 이어받은 스콜라의 대표작이다

 

히틀러가파시스트 로마 방문한


    <특별한 > 다큐멘터리처럼 시작한다. 1938 5 6, 히틀러가 로마를 방문한 역사적인 날에 관한 기록 사진이다. 히틀러가 기차로 도착하는 로마의 테르미니 중앙역은 물론이고, 시내 곳곳이 파시스트 복장을 이탈리아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히틀러는 마치 로마제국의 시저처럼 이탈리아의 왕과 파시스트 리더(Duce: 두체) 무솔리니를 동반한 의기양양하다. 이탈리아인들은 환영의 함성을 내지른다. 스콜라가 보여주는 자료화면에 따르면명예로운레지스탕스 운동의 존재 유무가 의심될 정도로, 당시의 이탈리아인들은 거의 다가 파시스트들이다. 말하자면 스콜라는 이런 자기비판을 하는 같다. “변명하지 말자, 한때 우리는 모두 파시스트들이었다 말이다.

빠른 편집의 자료화면을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환기시킨 , 영화는 롱테이크로 유명한 도입부의 실내 장면을 통해 서민층 아파트에서 벌어진 하루의특별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히틀러가 참석하는 시민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아파트의 거의 모든 주민은 대회에 참여하려고(혹은 참여해야 하므로), 파시스트 복장을 갖추고,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인다. 아파트촌 안엔 파시스트들의 선전 가요인청춘 Giovinezza”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진다. “안녕, 영웅의 국민이여. 안녕, 불멸의 조국이여. 당신의 아들은 다시 태어났다. 믿음과 이상을 품고...”

사람들이 거의 빠져나간 아파트촌은 메마른 사막처럼 보인다. 사막처럼 메말라 보이는 사람이 아파트에 남아 있다. 이들은 행사에 참석하지 않은 안토니에타(소피아 로렌) 가브리엘레(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이다. 여자는 일곱 번째 자식을 임신 중이고, 남자는 오늘 정부에 의해 사르데냐 섬으로 추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토니에타의 남편은 파시스트 군인인데 자식을 낳아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낼 계획이다. 가브리엘레는 반파시스트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추방당했다. 오늘은 짐을 싸는 날이다. 이때부터 영화는 마치 잉마르 베리만의 실내극을 보듯, 사람의 아파트 안에서 거의 모든 이야기가 전개된다.



뒤집혀진 마스트로얀니와 로렌의 전형성


우선 관객의 눈을 뺏는 점은 마스트로얀니와 로렌의 평소와는 대단히 다른 모습이다. 알다시피 배우는 이탈리아 사람의 전형성을 대표해서 유명해졌다. 특히이탈리아식 코미디 나올 때는 그런 점이 과장된다. 남성 우월주의자에 바람둥이로서의 마스트로얀니, 억척스럽지만 관능적인 여성으로서의 로렌의 전형성은 이를테면 비토리오 데시카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1963) 같은 작품을 통해 알려져 있다. 배우는 1960년대이탈리아식 코미디 명콤비였다. 그런데 <특별한 > 그런 전형성을 뒤집는다. 마스트로얀니로부터는 남성성을, 로렌으로부터는 여성성을 뺐다. 그래서 마스트로얀니는 너무 부드럽고, 로렌은 전혀 관능적이지 않다. 삶에 지친회색중년의 모습이 전면에 강조돼 있고, 분장을 통해 이런 특성이 더욱 과장돼 있다. 특히 로렌은 바로크 회화의 시체처럼 핏기 없는 얼굴로 나온다.

인물이 만나게 되는 계기는 안토니에타의 앵무새가 창문을 통해 가브리엘레의 아파트로 날아가면서부터다. 말하자면 영혼을 상징하는 새가 사람의 인연을 연결한다. 마치 안토니에타의 무의식이 원하기나 것처럼 새는 하필이면 가브리엘레의 아파트로 날아갔다. 시간에 남자는 지인들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고 있었는데, 죽음을 의식했던지, 책상 위에는 권총이 하나 보인다. 삶에 희망을 잃은 남자가 혼자 주변을 정리하고 있을 , 안토니에타가 갑자기 들어왔고, 창틀에 앉아 있는 앵무새는 남자의 마음을 아는지, 안토니에타가 다시 잡으려 하자, “혼자 내버려둬!”라는 말을 계속 반복한다.

안토니에타가 새를 다시 잡았을 , 그리고 가슴에 안고 쓰다듬을 , 아마 많은 이탈리아 관객들은 사람 사이의 앞일을 짐작했을 것이다. 이탈리아인들에게 새는 한편으로는 남성(특히 성기관) 상징하는 동물인 탓이다. 인사를 나누다가, 안토니에타가 일곱 번째 아이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자, 가브리엘레는 예상치 못한 웃음을 터뜨린다. 자신은 방금 전에 죽음 가까이 갔었는데, 지금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기다리는 여성이 갑자기 나타난 기막힌 인연에 전율 같은 느껴서다. 가브리엘레는 커피를 대접하려 하고, 그제야 책과 그림으로 장식된 남자의 실내를 구경하던 안토니에타는 자신의 집과 다른 지적인 분위기에 묘한 매력을 느낀다. 책장에서 알렉상드로 뒤마의 『삼총사』를 꺼내 들춰 보기도 한다. 가브리엘레는 어제까지만 해도 이탈리아 국영 방송국의 아나운서였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읽다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는 1848 2 혁명이 일어나기 , 1844년에 발표된 공화주의자인 저자의 시대 풍자 소설이다. 17세기 왕정의 폐해를 풍자한 모험소설로, 다르타냥과 삼총사가 맞닥뜨리는 악인들은 주로 왕정의 맹목적인 추종자들이다. 그들은 하층민들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휘두르는 권력가들이거나, 사회적 약자를 경멸하는 권위주의자들이다. 이런 사회적 불공정, 권력 남용, 무질서는 잘못된 시스템인 왕정에 책임이 있다는 저자의 공화주의적 태도가 일관되게 유지되는 소설로, 말하자면 반파시스트 가브리엘레의 정치적 입장도 투영돼 있는 셈이다. 가브리엘레는 『삼총사』를 선물하고 싶다며 안토니에타의 집을 방문한다.

사람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자기만의 사적인 비밀을 모두 털어놓는다. 가족을 위해 어쩔 없이 파시스트 남편으로부터 무시당하며 사는 안토니에타, 남다른 정치성과 성정체성 때문에 결국 사랑하는 직장에서마저 쫓겨나야 하는 가브리엘레는 고백하고 위로하며 서로를 부둥켜안는다. 가브리엘레를 연행하러 경찰이 다녀간 , 혼자 남은 안토니에타는 그동안 거의 손에 들지 않았던 책을 들고, 뒤마의 『삼총사』를 들고 창가에 앉아 조용히 소리 내어 읽는다. 하루 사이에, 빨랫감과 음식들로 바쁘던 그녀의 손에 아름다운 책이 들려 있는 것이다. “1625 4월의 첫째 목요일. 작가가 태어난 곳이기도 Meung 혼란에 빠졌다. 마치 위그노들이 라로셀 La Rochelle 번째로 공격하는 같았다.”

말하자면 에토레 스콜라는 멀리로부터는 17세기 프랑스 왕정의 불공정을 끌어오고, 직접적으로는 1930년대 이탈리아 파시즘의 전체주의를 끌어와 자신의 당대, 1970년대의 이탈리아를 성찰케 한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파시스트 유니폼을 입고, 명의 지도자를 따르고, 거의 동일한 일과를 보내고, 국가에서 선도하는 노래를 듣고, 만약 이런 흐름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벽지로 유배당하는 배척의 문화는 바로 파시즘이라는 것이다. 스콜라는 1970년대의 이탈리아가 불행하게도 파시즘의 과거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보는 같다.

그런데 스콜라의 이런 시각은 지금도 유효한 같다. 베니스영화제 측이 영화를 특별히 복원한 것은 작품 자체가 걸작이기도 하지만, 스콜라가 비판했던 비틀린 세상이 결코 과거의 역사만은 아니라는 동의가 있기 때문일 터다. 이런 염려는 이탈리아만의, 혹은 베니스만의 문제가 결코 아닐 것이다.


 

한창호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