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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어느 혁명가의 변하지 않은 단호한 고백 - 로버트 레드포드의 <컴퍼니 유 킵>


어느 혁명가의 변하지 않은 단호한 고백

- 로버트 레드포드의 <컴퍼니 유 킵>




미국에서 1968년 『포춘』지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당시 미국 대학생 중 36만 명 이상이 스스로를 혁명가라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한다. 또한 1970년 갤럽의 조사에 의하면 44%가 사회 변화를 위해서라면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으며, 1/3 이상이 스스로를 좌파 혹은 극좌파라 말했다고 한다(안효상, ‘상상의 정치 : 웨더맨의 형성’에서 재인용). 지금으로서는 쉽게 상상하기 힘들지만, 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 미국의 대학가 분위기가 어땠는지 일면을 엿보게 해주는 조사 결과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이른바 ‘혁명적 폭력’을 방법론으로 채택했던 웨더맨의 등장이 전혀 이상스럽지 않게 느껴진다. 독일과 일본의 ‘적군파’만큼 격렬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미국에도 빈 건물을 폭파하는 등 ‘재산상 파괴’를 목적으로(이들은 적군파와 달리 ‘암살’이나 ‘납치’를 방법론에 포함시키지는 않았다) 테러를 벌였던 극좌파 학생단체인 ‘웨더맨’(이후 ‘웨더 그라운드’로 이름을 바꾼다)이 존재했다. 우리는 시드니 루멧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를 통하여, 이렇게 웨더맨으로 활동하다 긴 시간 수배 생활을 해야 했던 가족의 이야기를 이미 접한 바 있다. <컴퍼니 유 킵> 역시 비슷한 소재를 다룬다. 영화는 미시간 주에서 은행강도를 벌이다 경비가 죽으면서 수배되어 30년 이상을 숨어산 과거 웨더맨의 이야기를 다룬다.



자식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 자수를 결심한 샤론 솔라즈(수잔 서랜든)가 미처 자수할 새도 없이 체포되면서 FBI의 추격은 본격화된다. 특종을 잡기 위해 이들의 뒤를 쫓던 기자 벤 셰퍼드(샤이어 라보프)의 기사 때문에 그간 신분을 세탁한 채 변호사로 살고 있던 닉 슬론(로버트 레드포드)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후 영화는 FBI의 추격을 피해 자신의 정치적 동료이자 옛 연인이었던 미미 로리(줄리 크리스티)를 만나기 위한 닉 슬론의 도주 여정과, 사건을 파헤치기 위해 관련 인물들 및 그 주변을 취재해 나가던 벤 셰퍼드의 이야기를 교차하며 진행된다. 닉 슬론의 여정을 통해, 이제 50대의 평범한 생활인이 됐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여전히 신념을 지키며 살고 있는 그의 옛 동료들이 하나하나 스크린에 등장한다.



전혀 뜻밖의 관련 인물, 그리고 사건 뒤에 감춰져 있던 진실이 벤 셰퍼드의 추적을 통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면서 영화는 외형적으로 스릴러의 모양새를 띈다. 그러나 감독은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두뇌 싸움이나 영화와 관객 간 진실게임으로 장르적 쾌감을 전하는 데엔 별 관심이 없다. (영화가 원작으로 삼은 닐 고든의 동명 소설의 분위기는 어떤지 모르겠으나) 그보다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라도 정의와 신념을 실천하고자 했던 이 ‘낯선’ 이들이 실은 얼마나 평범한 청년들이었는지,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접근하며 관객들에 정서적인 동요를 주는 쪽에 치중한다. 그들을 뒤쫓으며 진실을 알게 되는 벤 셰펴드가 바로 이 영화가 겨냥하는 젊은 관객층을 대변하는 기능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영화는 옛 동료들의 끈끈한 우정과 변치 않는 신념,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던 이의 절절한 고백, 딸을 향한 두 아버지의 부정(父情), 그리고 옛 연인이자 동료와의 재회와 같은 정서적인 흐름들을 ‘비밀’과 ‘진실’ 사이에 촘촘하게 채우고 있다. 이러한 의도가 어떤 이들에게는 지나치게 설명적이거나 계몽적으로 느껴질 수는 있겠다. 그러나 휴머니티에 기반해 인물들을 생생하게 이해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로버트 레드포드 연출의 큰 장점 중 하나이다. (또한 훌륭한 배우들의 열연이 이를 너무나 충실히 표현해 주고 있다.) ‘테러는 나쁜 짓’이라는 단죄는 너무나 손쉽다. 그러나 무고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지난 30년이 지옥과 같았다”면서도, “다시 그런 상황이 된다면 똑같이 했을 것”이라던 솔라즈의 떨리는, 그러나 단호한 고백, 그리고 이를 기어이 이해하게 만드는 힘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성취가 아닐까.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