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아날로그, 컴퓨터, 유령

- 앤드류 부잘스키의 <컴퓨터 체스>




UCLA에서 영화를 가르치는 비비안 소브채크는 2013년에 보았던 영화 가운데 셰인 캐러스의  <업스트림 컬러>와 테렌스 맬릭의 <투 더 원더>가 가장 어려웠다고 밝혔다. 좋긴 한데 설명하기엔 어렵고, 영화가 말하려는 바가 머릿속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말이었다. 내겐 <업스트림 컬러>와 함께 앤드류 부잘스키의 <컴퓨터 체스>가 그랬다. 평론가 로버트 콜러가 <업스트림 컬러>에 평했던 것의 도입부를 <컴퓨터 체스>의 그것으로 살짝 바꿔 보면, ‘체스와 컴퓨터 용어에 관심을 기울이지 말 것, 소프트웨어에 목숨을 거는 머저리들에게 신경을 쓰지 말 것, 그리고 3차 대전을 운운하는 정체불명의 남자 따위는 무시할 것!’ 그러나 그렇게 했다간 영화에서 남는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컴퓨터 체스>는 1980년대 초반의 어느 주말, 한적한 호텔에 모인 프로그래머들이 컴퓨터 체스로 실력을 겨룬다는 이야기다. ‘컴퓨터 체스’는 컴퓨터끼리 겨루는 게임일까? 아니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 간의 경기일까? 영화를 보면 전자도 아니고 후자도 아니다. 체스의 말이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건 컴퓨터인데, 컴퓨터의 손이 되어 직접 말을 옮기는 것은 프로그래머다. 그런데 프로그래머들이 그냥 컴퓨터가 지시하는 대로 따르는 사람인 것 같지도 않다. 단지 손만 필요하다면 굳이 개발자가 옆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게다가 그들은 컴퓨터 간의 승패에 따라 자신이 이기고 진 것처럼 군다. 그러므로 ‘컴퓨터 체스’는 개발자의 뇌를 부분적으로 이식한 기계 사이의 경기로 보는 게 맞으며, 일견 <컴퓨터 체스>는 기계를 장착한 신체를 다루는 크로넨버그의 영화를 뒤집어놓은 모양새다.




문제는 ‘차르’라는 프로그램의 반동에서부터 시작된다. 강력한 우승후보인 이 프로그램의 조작자는 컴퓨터공학자가 아니라 실험심리학자다(그렇다면 차르는 인간의 심리까지 반영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일까?). 갑자기 차르가 말을 듣지 않거나 답을 내놓지 않거나 엉뚱한 답을 내놓는다. 여기서 곧바로 ‘기계 속의 유령’을 운운하고 싶지는 않다. 단순한 컴퓨터의 작동 에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전원이 연결되어 있는 한 계속 깜빡이는 초록빛 커서를 기계 유령의 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내가 보기에 <컴퓨터 체스>에 유령이 있다면 그건 가짜 기록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 바로 그 사람들이다. 필름과 빛과 스크린의 만남이 빚은 유령에는 익숙한데, 디지털 시대의 영화에서 유령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컴퓨터 체스>의 유령들은 디지털 시대의 영화에서 처음으로 발견하는 유령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1980년대 초반, 정확하게는 1981년. 전자음악이 전문인 독일 그룹 ‘크라프트베르크’는 《컴퓨터 월드》라는 앨범을 발표했다(이 앨범의 자켓에 쓰인 구형 컴퓨터는 <컴퓨터 체스>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기도 하다). 발매 당시에 그리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으나 어느덧 일렉트로 음악의 명반이 된 이 레코드에서 크라프트베르크는 언젠가 세상 전체는 컴퓨터로 작동될 거라고 예언했다. 심지어 그들은 사랑도 컴퓨터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컴퓨터 체스>의 시대를 살았던 프로그래머들도 크라프트베르크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며, 극 중 인물들이 둘러앉아 컴퓨터가 미래에 ‘데이트’용으로 쓰일 거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쩌면 <컴퓨터 체스>는 컴퓨터의 낙관론자들이 미래의 시점에 도착해 자신들의 신념을 확인하는 것에 관한 영화 같다. 영화를 보는 어느 지점부터 나는 1980년대의 유령이 출현해 내게 던지는 의문 부호들을 해석하려 애쓰고 있었다.



<컴퓨터 체스>는 16미리 필름과 아날로그 비디오로 촬영한 것을 다시 디지털로 전환한 결과물이다. 그리고 영화라는 존재의 첫 모습인 4:3 비율의 흑백 영상과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결합시켜 놓았다. 그렇다면 <컴퓨터 체스>는 아날로그 영화인가, 디지털 영화인가. 지금은 디지털로 찍힌 영화들이 스스로 ‘필름’인 양 행세하는 뻔뻔한 시대인데, <컴퓨터 체스>는 외형으로만 판단하면 비디오테이프 레코더로 찍힌 작품이다. 부잘스키는 왜 이렇게 어정쩡한 포맷을 선택한 것일까? 흑백 비디오테이프가 과연 존재하기나 했던가? 비디오테이프는 ‘필름’과 ‘디지털’ 사이에 생존했던(그리고 지금도 미약하나마 생존 중인) 아주 열악한 매체이면서 동시에 필름과 디지털이 바통을 주고 받는 순간을 기억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디지털이 영화를 지배하기 전, 영화감독을 포함해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은 디지털 매체의 미래에 대해 넘쳐날 정도로 수많은 말을 쏟아냈다. 정작 디지털이 필름을 갈아치운 지금, 디지털로 영화를 찍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고민이 끝난 것인가? 아니면 고민할 것이 없음을 확인해 버린 것인가?


나는 정말 <컴퓨터 체스>가 어떤 영화인지 잘 모르겠다. 모호함과 설명 불가능함이 부잘스키가 의도한 바, 라고 말해 버린다면, 그건 내가 게으르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고양이와 비와 콜리 라이언의 포크송을 제외하면 통째로 농담 같은(혹은 그 반대일지도) <컴퓨터 체스>는 모호하고 미스터리한 것만큼이나 초현실적이고 시적인 장면으로 넘쳐난다. 일례로 촉촉하게 비가 오는 장면은 특히 그러하다. 그것은 인간이 컴퓨터라는 미래의 신을 죽이는 순간이자, 잔뜩 열이 오른 컴퓨터가 스스로 자살한 순간이기도 하다. 인간과 컴퓨터가 서로 죽이고 죽는 사이, 신은 하늘에서 비를 내린다. 그리고 어색하지 않도록 포크송이 분위기를 형성한다. 정말 아름다운 영화의 순간이다.




이용철 /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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