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가 진행되는 극장을 둘러보면, 구석에서 노트북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 누군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바로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웹데일리 팀으로 활동한 서울아트시네마 소속 에디터들이다. 영화제를 딱 일주일 남기고 에디터들은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 날의 대화는 그간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면서도 결의를 다지는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이제 친구들 영화제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인터뷰, 녹취, 리뷰 등 에디터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부터 말해보자.

장지혜:
인터뷰 핑계로 자원 활동가 분들과 얘기 나눈 게 좋았다. 얘기해보면 다들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과 애틋한 마음이 크더라. 녹취는 에디터 활동 전부터 조금씩 했던 것이라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었던 반면에 리뷰를 제대로 쓴 건 이번이 처음이라서 부담이 많이 됐다. 또 리뷰를 쓸 땐 집에서 혼자 영화를 봤는데 영화제가 시작하고 난 뒤에 극장에서 보니까 느낌이 달랐다. 그때서야 ‘왜 글을 이렇게 썼을까’하면서 부끄러워하기도 했다. 극장에서 보는 것과 집에서 보는 게 다른 걸 확실히 알 것 같다.
송은경: 나도 <스카페이스>를 쓰면서 그런 경험을 했다. 브라이언 드 팔마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스카페이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리뷰 쓸 때도 괴로웠다. (웃음) 그런데 극장에서 보고난 뒤에는 글을 이런 방향으로 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정아: <멀홀랜드 드라이브>랑 <로스트 하이웨이>는 필름으로 보니까 색감이 달라서 놀랐다.
손소담: <정복자 펠레>의 상영시간은 150분인데 내가 리뷰를 쓰기 위해 본 건 120분짜리였다. 결말이 다른 건 아니었지만 결말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의 행동 이유가 완전히 달랐다. 영화관에서 150분 버전을 보고나서 ‘내가 이걸 어떻게 다시 써서 사람들에게 보여줄까’하는 생각을 했다.
김준완: <로제타>와 <샤이닝>도 극장에서 보는 것이 집에서 볼 때와는 느낌이 월등히 다른 영화들이었다. 사실 영화를 광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한, 혹은 이 영화에 대해 특정 목적이 있지 않는 한 그렇게 여러 번씩은 안 보게 되지 않나. 그래도 이 두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극장에서 여러 번 볼만한 가치가 있고, 그때서야 반응이 확실히 오는 거 같아서 극장에서의 경험이 중요하단 걸 느꼈다.
이정아: 그래도 이야기의 힘이 강한 영화의 경우에는 변함없는 부분이 있다. <부기나이트>도 물론 영화적인 충격이 크긴 하지만, 이야기 자체의 힘이 워낙 강해서 모니터로 봐도 그게 여실히 다가오는 편이다. 그리고 확실히 혼자서 끄적거리는 글이랑 웹진에 올리는 목적으로 쓰는 글은 다르더라. 녹취는 이전에 녹취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봐서 좀 빠른 편이다. 그런데 녹취를 정리하면 게스트와 진행자가 한마디씩 하는 걸로 올라가지만 실제 대화에서는 서로 끼어들기 때문에 그걸 정리하는 게 쉽지 않더라.

시네마테크 에디터 활동을 통하여 좋았던 점이나 아쉬움, 혹은 변화될 지점 등에 대한 생각은?

송은경: 나는 관객인터뷰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 원래는 모르는 분이었지만 인터뷰 이후 마주치면 눈인사도 하게 되고, 이번 에디터 업무를 하면서 극장 사람들과 좀 더 친해진 것 같아 좋았다. 리뷰 쓰는 건 굉장히 힘들었다. 원래 글 쓰는 걸 굉장히 힘들어하고 나의 글을 보여주는 건 너무 부끄러워해서 피하고 싶었다.
손소담: 그래도 나는 내 글이 실리니까 기분이 좋았다. (웃음) 트위터로 내 글이 링크됐을 때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시네마테크에 자주 오시는 분을 우연히 알게 되어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눴는데 그 분은 서울아트시네마 웹진 블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시더라.
장지혜: 아트시네마를 오래 다닌 관객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정아: 나도 블로그가 있다는 걸 늦게 알았다.
송은경: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웹진에 올라가는 글을 많이 읽는 건 아니라는 생각으로 약간 안심하고 있다. (웃음) 그래도 잘 써야한다는 바람이 있고, 그러면 또 부담감을 갖게 되고, 계속 악순환이 되더라. 에디터들끼리라도 글에 대한 피드백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준완: 나도 그런 생각을 했는데, 현실적으로 일정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지만 필요한 것 같다.
이정아: 이를테면 내가 <스카페이스>를 안 봤더라도 독자로서 물어볼 수 있는 질문들이 있지 않나. 그런 마음으로 편하게 공유하고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송은경: 그런 것들이 영화제 데일리의 한계인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영화제들에서도 보면 매일매일 리뷰가 계속 쏟아지는데 독자와 글 쓰는 사람 간의 의사소통이 안 되고 일방적으로 정보를 전달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친구들 영화제도 ‘영화제’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여긴 시네마테크의 영화제니까 뭔가가 좀 달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이정아: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외에 다른 독자들의 생각을 알 수 없는데 영화를 안 봤더라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은 아무리 주관적인 선택이라 하더라도 좋은 영화라는 공공연한 합의에 따라 튼다.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 영화는 좋은 영화라고 인정을 받았고, 이미 얘기는 다 나와 있는 상태에서 무슨 얘기가 더 나올 수 있을지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이 영화의 이것이 좋아서 쓰는데 나만 새로운 듯이 말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게 어렵고 망설이게 되는 지점이다. 그래도 중요한 얘기는 꼭 써야 하는데. (웃음)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된 영화들은 어땠나?

이정아:
큐브릭의 두 영화가 상영되고 린치의 두 영화가 상영됐는데, 이렇게 감독이 겹치는 경우는 처음인 것 같다. 스탠리 큐브릭의 영화는 <샤이닝>, <롤리타>, <시계태엽 오렌지> 등을 봤는데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내가 기억하고 있던 큐브릭의 이미지와 달라서 조금 놀랐다.
송은경: 영화제가 아직 안 끝났지만 지금까지 본 영화중에서 얘기하자면 나는 <붉은 수염>이 가장 큰 수확이었던 것 같았다. 시네마스코프에 완전히 압도된 느낌이었다. 보리스 바르넷의 영화도 굉장히 큰 기대를 하고 봤는데 기대만큼이나 좋았다.
손소담: 옛날 80년대 영화들은 동시대에 극장에서 못 봐서 항상 아쉬웠다. 그런데 이번 영화제에서 <아비정전>을 보니까 너무 좋더라. <멀홀랜드 드라이브>도 개봉 당시엔 미성년자여서 못 봤는데, 옛날에 못 봤던 영화들을 여기서 다시 만나는 느낌으로 재밌게 봤다.
이정아: 이해영 감독은 자신이 영화학교 출신이 아니어서 영화학도라면 으레 보는 고전들을 교과서 대하듯 접했던 게 아쉬웠다고 얘기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하긴 했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고전을 접하다보니 제대로 와 닿지 못하는 편이었다. 감독님 그런 얘기에 공감이 갔다.
김준완: 어쩔 수 없는 것이기도 하지만, 영화제 특성상 정말 아무도 모르고 지극히 숨겨진, 더 안 알려지고 비대중적이면서 이런 것도 있다는 식으로 선택이 이루어지면 관객들에게도 좋지 않을까. 좋은 영화고 유명한 영화이기도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의의가 있는 영화보다 개인적이고 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를 보고 나서 진짜 ‘친구’가 되는 거다.
이정아: 나는 옛날 영화, 클래식을 늦게 보기 시작했다는 자격지심도 약간 있다. 하지만 당장 <부기 나이트>만 해도 많이들 사랑하는 대중영화였다. 지금 상영하는 영화도 나중에 클래식으로 거론될 수 있는 영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의견인데 다른 분들도 시네마테크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오셨으면 좋겠다.
김준완: 우리 에디터만 해도, 영화를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 같고, 영화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런 경향이 시네마테크의 취지에 부합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렇게 큰 화면으로 영화를 보는 이유는 제대로 느껴 보겠다는 유희의 목적도 있지 않나. 그런 게 시네마테크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글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지만, 그 당시 개봉했던 시기의 평범한 관객의 입장에서 옛날 영화를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힘을 빼고 편하게. (웃음) 시네마테크에 가는 걸 의식하지 말고 그냥 가볍게, 편하게 보는 게 이상적일 것 같다.

영화의 매혹, 혹은 시네필?!

손소담:
개인적으로 나는 내가 시네필리아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에도 영화는 공중파에서 방영하는 심야영화, 토요명화로만 보고 그랬다. 소도시에서 자라서 기회가 없는 편이기도 했고, 영화랑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스무 살 이후부터 영화를 혼자 많이 봤던 편이다. 그런데 그런 나더러 누가 시네필이라고 하는 거다. 그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는 아름다운 이미지에 매혹을 느낀 적이 많았다. 그 이미지를 소유하려는 욕구가 크다.
송은경: 나는 아직 시네필리아가 아닌 것 같다. (웃음) 사실 영화를 볼 때 서사 따라가기에 급급한 편이다. 영화를 무관심하게 보다가 감각적인 이미지를 뽑아내는 훈련이 덜 됐다. 그래서 반복관람이 필수다. 두 번째 보면 좀 풀어져서 보게 되니까.
이정아: <로스트 하이웨이>나 <멀홀랜드 드라이브> 같은 경우는 스토리를 따라가려고 하면 견디기 힘든 영화들이다. 나 역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게 아닌 영화들은 여러 번 보게 되는 것 같다.
장지혜: 영화를 보다보면 누구에게나 특정 순간에 도드라지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걸 계속 붙잡고 얘기를 풀어가기에는 자신이 없다. 이 영화에서 그 장면이 중요한 건지, 너무 쓸데없는 데 매달리는 건지 나도 헷갈릴 때가 많다. 자신감 부족인 것 같은데 그걸 계속 붙들고 생각을 정리해서 글을 쓰는 게 쉽지 않은 거 같다.
김준완: 그것에 대해서는 사람 수만큼 답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절대적인 기준은 있을 수가 없다. 개인적인 자신의 느낌이 확장되고 그걸 표현 하는 게 낫지 않나. 절대다수의 공감을 얻으려는 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손소담: 그래도 좋은 글과 나쁜 글을 가르는 기준은 있지 않나.
이정아: 감상이 개인적이기는 해도, 글은 객관적으로 써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개인적인 취향에는 맞지 않더라도 대부분이 공감할 수 있는 기준은 있는 거 아닌가.

이제 마지막으로, 소감 한마디씩 얘기하고 자리를 정리해보자.

장지혜:
마지막 날 상영하는 <사랑의 행로>를 다들 꼭 봤으면 좋겠다. 영화제를 마무리하기에 정말 좋은 영화다. 다 같이 보면 좋을 것 같다.
김준완: 꼭 보도록 하겠다. (웃음)
손소담: 다들 수고했다.
송은경: 앞으로도 열심히 활동하자.
이정아: 극장에서 자주 보면 좋겠고, 아까 얘기했듯이 서로 의견을 많이 공유했으면 좋겠다.

참석 에디터: 김준완, 손소담, 송은경, 이정아, 장지혜
진행/정리: 송은경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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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hoimyeon 2012.02.26 0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글 고대해왔어요.. 힛

지난 겨울은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리고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에게 말을 걸고픈 이 땅의 시네필들 역시 나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바로 영화를 진흥한다는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의 파행 행정이 빚어낸 일들 때문이다. 영화의 성지라 불리는 시네마테크 사태부터 미디어센터, 독립영화전용관 운영자 선정 공모 비리, 한국영화의 미래를 짊어지고 갈 영화아카데미의 기능 축소 문제까지 영화계 전반적으로 영진위는 폭격탄을 날렸고, 많은 영화인들과 영화학도, 그리고 이 땅의 시네필들이 이에 분노하고 반발하며, 저마다의 행동을 보였다.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찍은 자신의 영화를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에서 틀지 말아달라고 1인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수많은 영화인들이 영진위 정상화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냈고,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시네마테크 독립성 확보를 위한 관객 후원 모금 활동을 벌였으며, 영진위가 공모 전환을 철회하고 지원을 계속 해줄 것을 호소하는 성명서를 내고, 이 내용 전달을 위한 영진위 항의 방문도 했다. 모두 지난 겨울에 있었던 일이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시네마테크를 아끼고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그 운동에 동참했다. 현재도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행보를 기원하고,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보기를 즐기며, 작게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관객 에디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아직 가시적으로 드러난 이렇다 할 성과는 없다. 공공의 적이 된 영진위는 여전히 아무런 해명을 하지 않고 동문서답만 일삼고 있다. 최소한의 신뢰는 무너지지 않길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는데 반성의 기미, 혹은 책임지려는 행동이 보이지 않는다(그렇게 일관되게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발언을 일삼는 일도 힘들어 보일 정도로). 선정 상에 명백히 문제가 있음이 드러난 새로운 독립영화전용관 시네마루는 또 어떠한가. 영화인, 시네필들의 염원을 뒤로 하고 그 곳은 무슨 할인 마트 상품을 내걸 듯이 원 플러스 원 행사에 심지어 무료 상영까지 하며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던가. 이대로 좌초되고 만 것인가. 아니 그렇게 단정 지을 수만은 없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성과가 아니라 해도 그해 겨울의 우리들의 행동은 유의미했고, 진일보한 면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싸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래 버티고 견디는 것만이 살아남는 길이고, 승리하는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여전히 우리들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봄을 기다리며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고 있다. 어떻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글은 이를 함께 고민하고 공유하기 위함이며, 나는 시네마테크 관객으로서 그간의 시네마테크 사태와 관련한 관객 활동을 중심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네마테크는 현재 영진위 지원이 중단된 채 한 달 반을 버티고 있다. 처음 관객 후원 모금 활동을 시작할 당시 목표액은 5억 원 이었다. 극장 임대료를 포함해 1년 여 동안 시네마테크 활동을 보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금액이다. 1년여 동안을 자립적으로 버티어낼 수 있다면, 시네마테크가 존속할 이유로 충분한 근거이며, 그 시간동안 보다 진전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시네마테크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던 그 두 달 여간 최종적으로 모인 후원금 총액은 목표액의 1/10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들의 그 애정과 열의는 시네마테크의 많은 친구들을 감흥에 젖게 했고, 더 많은 친구들을 영입할 수 있게 만드는 동력이 되었다. 영화애호가들의 연대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박찬욱, 봉준호, 류승완, 최동훈, 김지운 등 시네마테크의 친구이자 국내 내노라하는 감독과 김혜수, 원빈 등의 배우들이 맥주 광고 CF 촬영에 임해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기금으로 기부한 것도 이러한 연대의 힘이 작동한 것이다. 이러한 활동은 비단 시네필에게만 국한되지도 않았다. 국회에서도 영진위의 파행적인 정책행정에 대해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하며, 영진위 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하고 있다. 언론에서도 시네마테크 사태를 주시하며 그 어느 때보다 열띤 여론을 형성했다. 결과적으로 시네마테크는 일차적 위기는 벗어난 듯 보인다. 시네마테크를 지지하고 시네마테크의 지속적인 존립을 바라는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노력으로 처음 목표했던 5억 원의 후원금은 모아졌다. 영진위 지원 없이 1년여 정도를 계속 버티어낼 수 있는 자금은 확보한 셈이다. 게다가 이러한 활동이 일파만파 점화되어 각종 뉴스와 신문에 시네마테크 관련 기사들이 나오면서 시네마테크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데도 성공, 시네마테크 브랜드 이미지 구축에도 일조한 바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지난 두 달여간의 시네마테크 후원활동의 성과라면 성과라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후원자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기 위해 지난 3월 12일에는 ‘시네마테크 리로디드'라는 제명의 후원의 밤 행사도 가졌다. 말 그대로 앞으로도 활동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재장전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그날 오후 영진위는 시네마테크 전용관 운영자 재공모 공고를 냈다. 그리고 이 역시 첫 공모 때와 마찬가지로 어떤 지원자도 나오지 않아 무산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일정정도 일이 해결될 기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관료주의 행정상의 절차라는 것도 있으니 이미 뱉은 것을 철회할 수는 없어 재공모를 했지만 재공모까지 무산된 실정에서는 지원 사업으로의 정책 변화가 한층 쉬울 수 있다는 예측에서다. 그간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여준 지지와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금과 영화인들의 CF 기부금, 거기에 영진위 지원금까지 얻어내고, 장기적인 지원 약속을 받아낸다면 실로 ‘해피'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꿈은 그리 쉽게 이뤄지지는 않고 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영진위는 재공모가 무산되자 기존대로 운영자금을 지원해주는 대신 극장 계약 주체는 자신들이 직접 하는 방식의 지정위탁 계약을 하자는 일종의 회유책을 쓰고 있다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극장 임대료는 지원해줄 수 없다는 것. 이는 욕을 먹든지 여부에 상관없이 일정 정도는 자신들이 원하는 바대로 성취해왔던 영진위의 치기어린 자존심, 일종의 앙탈처럼 보인다. 시네마테크만이 유일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잣대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분풀이랄까 뭐 그런 것. 위탁과 지원이 뭐 그리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이는 그간 계속적인 논란이 된 시네마테크 사업 주체, 권리의 문제를 동반하는 사안이며, 운영의 자율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이 문제는 여전히 논의의 중심이 되고 있으며, 빨리 결정되어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이렇듯 근본적이고 뚜렷한 해결책은 아직 없는 실정이지만 시네마테크는 일정 정도 영진위와의 싸움에서 선점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한다. 재공모도 무산되고 회유책이 있었지만 지원사업으로의 전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는 여지가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네마테크에서 계속 영화를 상영하고 있고 우리가 그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시네마테크만이 영진위가 원하는 바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시네마테크의 본질, 목적, 나아가 영화의 본성과 맞닿아 있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 시네마테크는 가치 있는 고전 영화를 보존, 복원하고 상영하는 곳이며, 그 영화들의 가치를 함께 공유하고 연대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로서 영화를 탐구하고 영화를 배우는 가장 기초적인 공간이다. 그리고 이 점은 또한 시네마테크 활동의 가장 중요한 본분이자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고, 키우고 있다. 영화에 대해 풀리지 않는 질문을 제기하고 고민하며 고갈되지 않은 체험을 가능케 하는 곳이다. 게다가 현재의 서울아트시네마는 그러한 활동을 민간 영역에서 십여 년 가까이 힘들게 꾸려온 역사를 자랑한다. 최후의 방어선이기에 많은 시네필들이 시네마테크를 지키고자 갖은 노력을 하고 있고 그것이 또한 현재의 시네마테크가 존속해야 이유, 동력이라 생각한다. 만약 시네마테크가 무너진다면 우리는 영화에 대한 우정 어린 교감을 나눌 장소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를 마지막 방어선이라 부르며 이 공간이 안정적으로 서고,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남아 있길 바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영진위의 지원이 없으면 현재 서울아트시네마의 운영은 버거워 보인다. ‘영진위 지원 따윈 필요 없어'라며 야심차게 ‘시네마테크 관객이 공모한다'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용될 수 있는 대안이 아님을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다. 내년에 똑같은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고, 만약 그러한 일이 반복되어 또 다시 주머니를 털어 힘들게 운영을 지속해야 한다면 시네마테크의 의미, 중요성과 상관없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리고 말 소지도 다분히 있다. 그렇다고 현실에 닥친 문제를 급급하게 해결하기 영진위의 현 제안을 받아들여서도 안 될 것이다. 어느 정도의 타협은 가능하다고 해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윤리, 도덕이라는 것은 있으니까. 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경우는 최소한 지속적인 지원과 민간 영역에서 십여 년간 쌓아온 역사를 져버리지 않는 선에서의 독립성이 보장되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그것이 꾸준히 유지될 수 있도록 시네마테크에게 허해진 자유를 탈환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명분도 근거도 없이 때리는 돌에 맞아 걱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사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마지막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보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나는 영화인도 아니며, 그저 영화를 좋아하는 일개 관객에 지나지 않지만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시네마테크가 존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네마테크를 통해 연대한 우리들이 지금 할 수 있는, 해야 하는 몇 가지 안을 제기해본다. 첫째,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영진위라 하더라도 그곳이 그간의 정책적 판단오류를 인정하고 시네마테크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도록 계속적인 설파가 필요하다고 본다. 무너진 문화적 합의를 다시금 이끌어낼 수 있는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오는 22일 경 서울아트시네마가 ‘시네마테크 사태와 장기적 지원'에 관한 포럼을 연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에 관심을 갖고 동참하여 힘을 보태고, 보다 건설적인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시네마테크와 관련된 논의의 장을 확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잠시 잠깐의 이슈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확히 인식하고 사라진 문화적 합의를 성취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시기이니만큼. 이는 또한 시네마테크의 진정한 주인이며 영화를 최종적으로 완성시키는 우리 관객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행동지침이다.


두 번째로는 안정적인 영화의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서울에 시네마테크를 건립하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지고, 이 활동에 대한 적극적인 지지와 지원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미 지난 1월 15일 ‘서울에 시네마테크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출범을 했고, 각계각층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셋집을 옮겨 다니며 여기 저기 다치고, 흔들리고 있었던 것은 내 집이 없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시네마테크의 관객들 역시 건립 추진위 활동을 예의 주시하며, 진정한 시네마테크의 보금자리가 마련될 수 있는데 보탬이 될 수 있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라도 더 결집시켜 내야 할 것이다.

세 번째로는 그저 영화를 보는 행위 역시 지속시켜 나가고, 영화에게 말 걸기, 영화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엘리아 카잔 특별전이 열리고 있고, 우리들이 그렇게 보고팠던 페데리코 펠리니, 오시마 나기사 등 유수의 회고전, 기획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그러한 프로그램들이 성황리에 열리고, 새로운 담론의 장을 형성하는 것이야말로 시네마테크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자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는 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내일도 내게 시간이 허락되는 한 시네마테크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에 즉각 돌입할 것이다. 그곳은 우리들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마지막 방어선이기에. 그렇게 믿고 견디면서 버티어낸다면 시네마테크는 결코 사라지지도 죽지도 않을 것이다. 설사 유령이 되는 한이 있어도. 하루 빨리 우리들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따사로운 봄 햇살이 가득하길 희망한다.
(신선자)

* 이 글은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69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특별판으로 나온 이번 ACT!는 2010 영진위 파행 봄 컬렉션 - 그해 봄은 더디 왔네...- 란 제목의 지난 겨울 영화계 전반적으로 불어닥친 영진위의 파행적 행동에 대한 고찰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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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2010년 겨울, 시네마테크를 기억하며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영화진흥위원회의 공모사태로부터 네 달, 계약종료에 따른 지원금 지급이 끊긴지 53일이 흘렀다. 주지하다시피 공모와 재 공모 강행에도 불구하고 응모 단체는 없었다. 애초부터 시작하지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집착한 결과, 영진위는 명분도 위신도 다 잃고 말았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영진위는 분풀이라도 할 요량으로 심통을 부리고 있다. 즉 공모제 무산 이후 어떤 후속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서울아트시네마에 대한 지원도 중단한 것이다. 이 상황은 언제까지 계속 될 것인가.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나는 ‘시네마테크 공모제 사태’를 겪으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보았고 희망을 발견했다. 그것은 관객이 시네마테크의 주인이라는 존재증명에 다름 아니었다. 시네필의 힘으로 여론을 이끌어내고 사회적 합의를 도출시킬 수 있으며 그릇된 행정에 일침을 가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서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 지난 4개월 동안 보여준 행동은, 적어도 이전의 행동양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이점이다. 이를테면 공모제 사태 이전의 관객이 ‘시네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이후에는 ‘시네필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혹은 ‘시네필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서 차이가 발견된다. 이 땅의 시네필이 1950년대 유럽의 그들과 비교해 부족하지 않음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비약일까. 지금부터 지난 4개월여 동안 시네마테크 사태와 맞서온 시네필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것은 지난 사건들에 대한 복기일 수 있고 환기일 수도 있으며, 다가올 또 다른 공세를 방어하는 무기가 될 수 도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1. 시네필(cinephile)이란 무엇인가.

나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시네필이라는 호칭에 대해 회의를 품어왔다. 시네필이란 무엇일까? 의심할 바 없이, 영화애호가는 영화를 보는 데 그치지만, 시네필은 끊임없이 영화를 이야기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저널리즘이 포기하고 안전판 위에 정지시켜버린 논의의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영화를 재인식해야 한다. 그런데, 시네필이라는 단어가 이 땅에서 만들어진 개념이 아닌, 1950년대 유럽에서 발로한 영화운동의 지류로부터 탄생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의 영화광들에게 시네필이라는 칭호를 붙이는 게 적절한 일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시네필이 단순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영화를 통해 소통과 연결과 변화까지 만들어내는 동력의 집합이라는 점에서 이 땅의 영화광은 왠지 시네필과는 거리가 있어보였다.

시네마테크 사태 초기, 정확히 말해서 2009년 2월 처음으로 시네마테크 공모제가 대두되었을 때, 그리고 2010년, 같은 일의 반복이 예견되었을 때까지도 시네마테크의 관객의 특별한 움직임은 없었다. 이 땅의 시네필에 대해 의문이 생긴 것도 이런 까닭이다. 대체 무엇 하는 사람들인가. 시네필은, 무슨 시네필? 시네마테크야 어찌되던 내가 볼 영화에 대한 걱정만 하는 게 시네필이란 말인가.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을 때마다(황급히 달려와 영화를 보고 연기처럼 사라지는, 아주 오랜 시간동안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그는 누구일까? 라는), 의문을 품곤 했다. 분명 마주앉아 족보를 따져보면 알만 한 사람일 것 같은 그(들). 적지 않은 사람이 시네마테크를 거쳐 갔고 지금도 시네필이라 자칭하며 그곳을 서성이는 데, 왜 그들의 목소리는 시네마테크 사태에 보태지지 못하는 것일까. 항상 답답한 마음이었다. 혹시라도 필름으로 영화를 볼 수만 있다면 그곳이 특정한 장소가 아니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영진위의 공모가 발표된 2010년 1월 중순까지, 내 눈에 비친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의 모습은 딱 여기까지였다. 그러다 보니 나의 의심은 더욱 견고해졌다. 그것은 한국의 시네필은 시네마테크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그 고색창연한 필모그래피를 켜켜이 쌓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유순하고 평온한ㅡ내일 당장 시네마테크가 없어진다고 해도 나는 오늘 영화를 보겠다는ㅡ태도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당시 서울아트시네마 온라인카페에서는, 영화에 대한 이야기, 상영작과 기대작, 감독과의 대화 등에 대한 호기심과 애정공세가 전부일 정도로, 시네마테크 사태에 관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1950년대 유럽의 시네필은 어땠을까? ‘시네필의 초상’이라 불리는 프랑수아 트뤼포의 경우를 잠시 살펴본다. 



2. ‘시네필의 초상’ 프랑수아 트뤼포 Francois Truffaut

프랑수아 트뤼포는, 한마디로 ‘살기 위해 영화를 만들고 병의 회복을 위해 영화를 찍었으며, 목숨을 걸고 영화를 사랑한 남자’라고 말하면 틀림없을 것이다(카트린느 드뉘브와의 이별의 아픔을 잊기 위해 <두 영국여인과 대륙>을 찍었고 쉴 틈도 없이 <아메리카의 밤>을 촬영하면서 재클린 비셋과 염문에 빠진 후 이 영화로 고다르와 완전히 결별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트뤼포는 하루 3편의 영화와 일주일에 3권의 책을 읽기로 결심한다. 그는 열세 살에 샤샤 기트리의 <사기꾼의 이야기> 숏과 대사를 완전히 외워버리는데, 그보다 몇 년 앞서 시네클럽에 가입해 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르누아르의 <게임의 규칙>을 12번이나 관람한 열네 살의 트뤼포는, 훗날 자신이 공식적으로 게재한 최초의 영화비평의 소재를 이 영화에서 얻는다(열여덟 살에 발표된 트뤼포의 평론 데뷔작 역시 <게임의 규칙>에 관한 글로, ‘라탱 구역’ 시네클럽 회보에 쓰여 졌고 이를 주선한 사람은, 에릭 로메르였다. 당시 라탱 구역 시네클럽에는 클로드 샤브롤과 자크 리베트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열여섯 살이던 1948년 10월 트뤼포는 ‘세르클 시네마’(영화중독자 서클)클럽을 개설하고는 영화상영회를 열기 시작하는데, 일요일 아침 1회를 4,000프랑에 대관하는 조건으로 ‘클뤼니 팔라스’극장과 계약한 후, 필름수급은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협조를 받게 된다. 개막작으로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와 르네 클레르의 <막간> 장 콕토의 <시인의 피>가 정해졌으나, <시인의 피>는 끝내 상영하지 못했다. 트뤼포의 상영회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 그가 야심차게 기획한 프레드 니블로 감독의 1925년 작 <벤허>의 상영회는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는데, 이유인 즉 당일 같은 시간에 ‘노동과 문화’라는 영화클럽에서도 <벤허>를 상영하고 토론을 갖는 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과 문화를 이끌던 인물은 다름 아닌! 앙드레 바쟁이었다. 그리고 트뤼포와 누벨바그의 시작을 세상에 알린 일대 사건, 즉 <카이에 뒤 시네마>에 기고한 ‘경멸의 시대: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에 관한 소고’가 1년에 가까운 수정을 거쳐, ‘프랑스 영화의 어떤 경향’의 제목으로 최종 발표된 것은 그의 나이 스무 살 때의 일이었다. 이렇게 트뤼포는 1950년대 중반까지, 하루 1편의 영화를 보았고, 이틀에 한 편의 글 기고하는 평론가의 생활을 하게 된다. 영화를 제외한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는 각성제와 담배와 커피였음은 두 말 할 나위도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트뤼포를 비롯한 당시 카이에 뒤 시네마의 작가정책은 그들이 주장한 시네필로서의 행동양식과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시네필’이라 불릴 만하려면, 첫째 자발적 애정을 품을 대상(감독 혹은 작품)을 스스로 결정한 후 지속적으로 지지해야 하고, 둘째 그 대상에서 비롯되는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좇으려는 욕구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 트뤼포가 평생에 걸쳐 지지했던 감독으로는 막스 오퓔스와 로베르토 로셀리니, 샤샤 기트리와 오손 웰즈를 꼽을 수 있다. 트뤼포는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감독 샤샤 기트리의 촬영장을 방문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볼 때 1950년대 유럽의 시네필과 한국의 시네필 사이에는 물리적 거리만큼이나 큰 간격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트뤼포 시대의 영화광은 극장에만 머물지 않았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세상과 맞섰고 자신을 세상에 내놓아 단련시키면서 운동을 이어갔다. 서울아트시네마를 오가는 속칭 시네필이라 불리는 관객을 보면서 답답증이 가중된 것도 이런 까닭이다. 시네필은 그저 영화만 보면 그만인가? 시네마테크가 영화를 상영하는 공간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3. 시네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이제 와서 60년 전의 트뤼포와 오늘날 한국의 시네필에 대한 단순비교를 통해 그 명칭의 용법을 왈가왈부할 마음은 없다. 하지만 ‘시네필이 무엇인가’에서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까지를 고민할 때, 시네마테크에 대한 무한 애정의 밀도 또한 높아질 것이란 생각이다. 요컨대 시네필은 단순히 영화를 남보다 많이 보고 많이 아는 수준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다. 시네필은 영화를 통한 확대재생산에 참여하여 마침내 어떤 담론과 운동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어야 한다. 쉽게 말해 자신만의 영화박물관을 짓는 것이 아닌, 영화로 발언하고 그 발언이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환경까지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부단히 움직이는 자들고 집단이다. 예컨대 고다르와 트뤼포, 혹은 로메르와 가렐의 필모그래피를 줄줄 꿰는 데 그치지 않고, 그들의 영화가 어떤 방식으로 비평적 언어와 조우했고 당대 유럽사회와 영화사에 영향을 미쳤으며, 마침내 역사를 만들어왔는지를 영화계보학적으로 논쟁할 준비가 돼있어야 한다. 그것은 영화를 보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글로 남기거나 토론과 학습을 통해 체득되어질 터이다. 그래서 시네필의 첫 째 화두는 ‘연결’과 ‘소통’이다. 남이 볼 새라 남이 먼저 알아챌 새라 고이접어 숨겨놓는 ‘밀봉’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앞서 말한 대로 2010년 1월 중순까지의 시네마테크 관객은 ‘과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힌 영화애호가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4. ‘시네마테크는 관객이 공모한다!’ 시네필의 행동의 성과와 의미

2010년 1월 말, 영화진흥위원회가 기어이 공모제를 강행하자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위기감이 고조되었다. 관객의 힘으로 시네마테크를 지켜내자는 움직임이 일었고, 1월 29일 밤 관객대표의 후원동참호소 발언을 시작으로, ‘시네마테크는 관객이 공모한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후원금 모금 캠페인이 시작된다.

이러한 관객운동 혹은 시네필 행동이 갖는 의미는, 2009년 초 관객회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서명운동보다 진일보 한 것일 뿐 아니라, 단순 관람객이라는 수동적 위치에서 벗어나 관객과 시네필이 시네마테크의 주인임을 천명하는 능동적이면서 적극적인 공세였다는 데 있다. 두 말 할 나위 없이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집’이다. 우리가 집에 들어가는 것은 단지 밥을 먹고 잠을 자기 위함이 아니듯이, 우리가 시네마테크를 찾는 것 또한 영화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제껏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이 단지, 고전영화를 스크린으로 보는 행위의 지속성에 의미를 두었다면, 2010년에 이르러는 ‘영화의 집, 공간으로써의 시네마테크’를 지키려는 노력이 병행된다.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시대임을 비로소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시네필의 움직임은 외부의 관심과 시각 변화를 불러오게 된다.

엄밀히 말해서 관객모금운동이 벌어지기 전까지 언론의 관심은 독립영화전용관과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 선정과정에서의 의혹과 부당성에 집중되어 있었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간이었다고는 하나, 상영작과 감독과의 대화 등, 기획프로그램에 관한 호기심 곁들인 기사로 구색을 맞추는데 불과했다. 프레시안을 제외하고는 시네마테크 공모제의 부당성과 모순을 깊이 있게 지속적으로 다루는 매체가 드물었으니, 이 땅의 언론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물론 이슈가 되기 힘들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소위 제목장사조차 하기 힘든 사안이라고 여겼을 터이다. 그런데, 관객모금 운동이 시작되면서 언론의 태도가 조금씩 변하고 있음이 감지되었다. 시네마테크협의회 측이 아니라 최종수혜자인 관객이 일어섰다는 건, 언론 입장에서 볼 때 기삿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테니까. 쉬운 예로, 분유회사와 산모 사이의 분쟁 혹은 여성단체 사이의 분쟁은 식상하게 받아들여질 테지만, 만약 영아들이 분유 거부 운동을 벌인다면 언론은 앞 다투어 기사를 써댈 게 분명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관객을 주축으로 한 모금운동이 벌어짐으로써, 즉 시네필이 능동적으로 움직임일 때 비로소 언론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는 점은 시사적이라 하겠다. 이 점은 앞으로도 시네마테크에의 홍보와 이슈파이팅에 참고자료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시네필은 영화로 소통하고 사회 문화적으로 다양한 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이면서, 그러한 운동을 통해 영화의 역사(혹은 거시적 의미로 국가의 역사)와 함께 하는 자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시네필이 움직이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시네마테크 사태는 전환점을 맞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훗날 2010년의 시네마테크를 기억할 때, 그 겨울의 한국사회와 정치와 문화를 이야기할 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과 관객이 있었음을 회자하게 될 것인 즉, 시네필의 역할은 이처럼 중요하다.

맺는 말: 시네필의 역할과 기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는 53일 동안 공적지원을 받지 못했다. 두 달을 지원금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버티는 중이다. 관객의 힘으로, 시네필의 운동으로, 시네마테크의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영화인과 시민사회의 도움으로 말이다. 영진위는 상시 상영공간에 대한 지원금을 두 달 동안이나 묶어둠으로써, 영진위 사업에 비판적인 세력에 대해 길들이기를 작정한 것으로 보인다. 이참에 본보기를 보여주겠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땅에 떨어진 자존심이 회복될 리 만무하다. 이에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버텨온 서울아트시네마가 대견하고 고맙다. 심지어 성서 속 예수도 공생애에 들어가기 전 40일을 금식했고, 노아 시대의 대홍수도 40일간 비가 내렸으며,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금식한 기간도 40일이었다. 고난과 시련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의 발돋움을 위한 성서의 상징적 시간이 40일인데 비해, 서울아트시네마는 무려 50여일을 더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농담으로 듣지 마시라. 얼마나 당당하고 믿음직한 일인가. 공모제 수용에 따른 안정된 지원금수입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힘든 길을 자처한 시네마테크에, 우리가 아니면 누가 힘을 보탠다는 말인가. 여전히 시네필로서 당신이 할 일은 많다.

2010년 2월, 시네마테크의 관객들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금운동에 앞장섰고 유독 극심했던 그 겨울의 추위와 세인의 무관심을 이겨내어, 시네마테크의 관객이 고전영화만 보는 ‘이상한 사람들’이 아님을 알렸다. 그로인해 방송매체와 세상은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상대는 변할 마음이 없고 우리도 타협할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아무리 영진위가 공권력을 내세워 예산과 행정을 빌미삼아 시네마테크를 좌지우지 하려 한들 겁낼 것이 없다. 우리는 시네필의 힘을 보여주었고 관객들 스스로 그 힘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나무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나무를 해칠 수 없는 법” 이다. 관객이 흔들리지 않고 서울아트시네마에 무한신뢰를 보내는 한, 영진위의 공모제는 언제나 공염불에 그치고 말 것이다. 영화를 산업과 첨단기술의 범주 안에서 교환가치로써의 효용성에 집착하는 집단이 영화정책을 좌지우지하는 한, 언제나 위태로운 ‘사냥꾼의 밤’을 맞이하겠지만, 그것들을 극복하는 매순간마다 더해지는 견고함과 무언의 신뢰를 바탕으로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일찍이 고대 아테네의 현명한 집정관 페리클레스는 “이처럼 세상의 모든 영광은 지나간다”고 말한 바 있다. 화무십일홍이요 권불십년이다. 정권도 영진위도 시대의 패러다임도 이데올로기도, 그 어떤 것도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이길 수는 없는 법이다. 반면 우리들의 시네마테크는 세월을 벗 삼고 시간을 친구삼아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그 기운을 간직한 공간이다. 시네마테크가 세상의 그 어떤 영광보다 오래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다면, 시네필의 힘이 합쳐진다면 말이다. 지금이야말로 시네필의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 요구되는 때이다. (백건영 영화평론가,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편집장)

* 이 글은 지난 4월 22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 시네마테크 사태를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미에서 연 포럼에서 시네필의 역할에 대해 영화비평웹진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이 발제한 원고의 전문을 실은 것입니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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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 영진위 지원중단 50여 일째, 무엇을 고민해야 하나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가 시네마테크 운영자를 공모하는 파행적인 행각을 벌인 지 대략 넉 달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이 사태는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지난 22일 저녁 시네마테크 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이 사태가 무엇이 문제인지에 대해 되돌아보고 점검해볼 수 있는 포럼을 열었다. 영화평론가인 김영진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는 영화인 대표자연대회의 최현용 사무국장과 영화평론가인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 그리고 시네마테크 후원금 모집 관객 대표로 필름에 관한 짧은 사랑(이하 필사)의 강민영 편집장이 발제를 맡았고, 서울아트시네마 김성욱 프로그래머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간사인 정윤철 영화감독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시네마테크 사태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 포럼은 각자 다른 입장에서 바라 본 '시네마테크 사태'에 대한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본격적인 포럼에 앞서서는 서울아트시네마의 새로운 트레일러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 대한 애정을 담아 제작한 2편의 짧은 UCC 동영상도 상영되었다.

짧은 영상 상영 후 시작된 포럼은 '영진위의 공공지원시스템, 무엇이 문제인가? - 최근 공모 파행 사태와 관련하여'라는 제하의 최현용 사무국장의 발제로 포문을 열었다. 정책적, 행정적인 문제들을 주로 짚은 최 국장은 첫 번째 쟁점으로 공모의 대상이 된 사업의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며, 결론적으로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지원 사업임에도, 계약 방식 상에서 위탁을 택하고 있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두 번째 쟁점으로는 ‘계약의 형태’를 지적하며, "적어도 영진위가 기존의 방식과 다른 일반 경쟁으로 전환하고자 했다면, 전환의 논리적, 정책적 근거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협력적 영화거버넌스’라고 지칭할 수 있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협력적 관계가, ‘관료적 영화행정’으로 지칭할 수 있는 영진위의 우월적이고 독점적인 관계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문화적 측면뿐만 아니라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봤을 때조차도 영진위의 행태는 파행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정책, 행정적인 문제점과 더불어 산업적 문제점까지 꼬집었다.

뒤이어 네오이마주 백건영 편집장은 '시네마테크 사태로 본 시네필의 역할에 관한 소고'에 대해 밝혔다. 그는 '시네필의 초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프랑수와 트뤼포의 예를 들면서 한국의 시네필의 역할과 변화의 양상을 언급했다. 이어 "공모제 사태 이전의 관객이 시네필이란 무엇인가라는 것에만 몰두했다면, 이후에는 시네필이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혹은 시네필은 무엇으로 어떻게 세상과 맞설 수 있는가를 고민했고.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데서 차이가 발견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시네필은 자신만의 영화박물관을 짓는 것이 아닌, 영화로 발언하고 그 발언이 영화와 영화를 둘러싼 환경까지를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오늘에 이를 수 있도록 부단히 움직이는 자들이고 집단'이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이런 시네필의 역할들이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한 관객운동을 형성했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네마테크는 세월을 벗 삼고 시간을 친구삼아 영화의 역사를 만들어 왔고, 그 기운을 간직한 공간"이라며 “서울아트시네마가 53일 동안 영진위로부터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지만, 이렇게 스스로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시네필들의 이러한 적극적 참여와 역할이었고, 이런 역할이 앞으로도 요구될 것임”을 재차 강조했다.

이어 '무엇이 우리를 움직이게 만들었나? - 관객의 입장에서 본 지난 1년의 시네마테크 사태'란 제하로 발제를 한 필사 강민영 편집장은 유사한 맥락에서 젊은 시네필의 필요성에 대해서 언급했다. 그녀는 "시네마테크는 멀티플렉스의 홍수에서 벗어난 지점에서 영화를 상영하고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이어갈 수 있는 중간 지점에 영화를 놓아 끊임없이 담론을 제기하고 함께 보기를 권하는 장소로서 그 중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강 편집장은 "환경에 의한 변화, 소위 말하는 디지털 시대로부터 도착한 외부영향이 짙어지면서 극장을 찾는 시네필들은 점차적으로 휴대기기와 컴퓨터를 이용해 영화를 습득하고 공부하게 되었고,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현상은 주로 젊은 관객들에게 쉽게 일어난다"며 ‘젊은 시네필의 부재’에 대해 지적한 후 "영화에 대한 최소한의 미덕을 지키고 이어나가고자 하는 젊은 관객들이 시네마테크에는 절실히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발제가 끝난 뒤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연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초부터 시작된 시네마테크 사태 공모 논란이 일 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해결되지 않은 채 현재 진행형으로 이야기한다는 거 자체가 부당하다”며 “이 사태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피로감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들에게 웃음을 줬다. 또한 그는 “보이지 않는 내적인 문제가 있었는데, 이것은 관객들의 모금운동이나 감독들의 노고로 인해 헤쳐 나갈 수 있었다”며 감사를 표한 후 영진위가 대체 이렇게까지 계속적으로 이 문제를 무리하게 강행하는 근원적인 힘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던졌다. 이에 대해 최현용 사무국장은 “크게 보면 정권의 운영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며 이번 정권이 영화를 바라보는 두 개의 준거 틀, 즉 정권 지지도구로서의 영화와 산업으로서의 영화에 관해 밝혔다. 최 국장에 따르면 영진위가 표면적으로는 후자(산업으로서의 영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아마도 전자(정권을 위한 영화)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 더불어 그는 “영진위의 인적 네트워크가 매우 열악하다”며 “조직 운영방식의 문제도 이러한 사태를 불러운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시네마테크 건립추진위 간사인 정윤철 감독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고 지지하는 영화감독들이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더욱더 실감하게 됐다”며 “스크린쿼터 이후 영화인들이 합심해서 뭉친 전무후무한 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명서만 발표하는 것에서 그친 게 아니라 여러 방면으로 각자 혹은 함께 노력 중이라는 것 자체가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반증하는 놀라운 일이라는 것. 덧붙여 정 감독은 “여러 가지 선택 중에서 원칙을 지키며 능동적으로 행동해서 지금까지 진척되어 왔으니 이제는 장기적인 플랜을 짜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이외에도 이날 토론에선 시네필의 정의, 역할,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기됐다. 백건영 편집장은 “시네마테크를 찾는 시네필과 그렇지 않은 시네필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며 “이런 벽을 허물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고, 최현용 사무국장은 “영화 자체에 대한 문제에서 더 나아가 영화 정책까지 고민하는 시네필의 측면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최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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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시네필의 선택: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의 변   

첫 번째 (상황).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영년(zero year)’이었다. 그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제로라는 무효의 선언.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로셀리니가 영화 제목에 쓴 말. 그런 다음 고다르가 받아서 21세기에 반복했던 제목.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진공상태. 단지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텅 빈 상태였었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를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종종 중간부터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하였다. 나는 2008년 친구영화제에 슬픈 마음을 안고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修羅)>를 백지수표에 썼다. 그때 내 상황은 비유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해 내내 준비했던 영화는 잘되지 않았다. 나는 할복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그 자리에 온 영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할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칼. 단숨에 창자까지 꺼내 들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섬뜩한 날. 먹물처럼 배어 나올 피. 유혈 낭자한 소개. 나는 친구들이 모인 파티를 피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청하는 감사의 악수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두 번째 (행동). 그 이듬해 다행히도 나는 친구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 그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오해한 것이다. 나를 붙잡은 질문. 대답을 구하려는 간절한 노력. 내게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다른 길. 훨씬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길. 생각이 미리 자리 잡기 전에 작업하면서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개념을 부수는 방법. 내가 책에서 읽은 의심스러운 구절들. 우리는 책에서 읽은 상투적인 구절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개념이 담긴 영화 책이라는 유리병을 세상 속으로 집어던져서 깨버려야 한다. 어떻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배움을 향해서 간절하게 집어던지는 액션이다. 로셀리니는 세상 속에서만 영화는 배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싶었다. 차라리 내 존경을 실천하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는 나의 영화 액션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이 올 것이다. 미래의 관객이라는 기대의 지평.


세 번째 (선택). 나는 올해 열 편의 영화 제목을 썼다. 그중에서 세 편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 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각형이 될 것이다. 대신 열 편을 고르면서 세운 원칙과 세 편에 대한 짧은 추억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런 건 그냥 교과서에 맡겨놓으면 된다. 여기는 교실이 아니다. 우리가 구출해야 할 영화. 영화를 착취하는 기계들. 교실. 멀티플렉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별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의 호소. 우리는 영화를 소개하면 안 된다. 그저 그걸 보아야 한다.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영화사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앙리 랑글루아의 목록에서 배웠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시간표를 매일매일 짜면서 그걸 작가별, 혹은 주제별, 또는 장르별, 배우별, 시대별로 구분되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발명품 영화. 20세기의 타임머신.
 

변주곡, 혹은 엘레지. 김성욱 씨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2010년 친구의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이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정을 나눌 장소는 위기에 빠졌고, 아직 대안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술과 정치의 수상쩍은 구별을 항상 의심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보았다. 여기서 방점은 불행히도 ‘그 동안’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희생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투쟁전선은 고작 해야 방안의 홈 씨어터인가?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당신의 저항은 불법다운로드인가? 우리가 믿는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예술과 짝을 이루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폭격. 점령구역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수방관. 당신은 영화를 본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장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이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은 다시 입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장의 효과(와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유명한 1902년의 정식. “막대가 나쁜 방향으로 구부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즉 곧게 펴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려야만 하며 따라서 그것을 쥐고 튼튼하게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의 내용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거기에는 대답이 없다. 핵심은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혹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바꾸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게 펴기.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이제 흐릿해진 생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 편의 영화. 먼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물론 이 영화는 ‘흡혈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쇄극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어떤 버전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서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다. 다소 무모한 말이긴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생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은 내일 바꿀 수도 있다. 원래 ‘한 편의 영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1993년 1월 마지막 토요일 클레르몽페랑의 파스칼대학 강당에서 밤 10시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상영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처음 보았다. 그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책의 제목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홀렸다. 아니, 그냥 넋을 잃었다는 말이 맞다. 최면상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위대하다거나 혹은 걸작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그냥 영화 자체를 본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탄식. 물론 그런 다음에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새로운 영화들을 보았다. 많은 복원판을 보았다. 추천작들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뿐 내게 지금 이것은 영화,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결국 <뱀파이어>이다.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내 평생의 연인이 릴리안 기쉬인 것처럼. 그때 이 결정에서 릴리안 기쉬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이 동의하건 말건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영화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고백을 통해서 당신에게 내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샤 기트리. 아직 단 한 번도 여기서 사샤 기트리의 회고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거의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언제나 르누아르. 언제나 브레송. 언제나 고다르. 나는 사샤 기트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친구를 찾는 나의 애절한 호소이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 나는 사샤 기트리가 장 르누아르나 브레송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 카르네나 줄리앙 뒤비비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장 콕토보다 본질적으로 시적이다. 사샤 기트리가 없었다면 장 으스타슈가 가능했을까. 앙리 랑글루아는 훨씬 더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을 썼다. “사샤 기트리는 미조구치 겐지, 빈센트 미넬리, 더글라스 서크, 로베르토 로셀리니처럼 중요하다. 이 말은 이상하다. 그렇다. 사샤 기트리는 영화사에서 그렇게 이상한 자리에 있다.” 내가 사샤 기트리를 처음 본 곳은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그때 나는 사샤 기트리의 중요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세대를 건너뛰어 이제 다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를 잘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 사샤 기트리의 전작 회고전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카르멜로 베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였다. 파솔리니는 경외감을 안고 베네를 ‘나의 위대한 동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베네의 영화를 본 다음 달려가서 로마에서 그의 연극 무대를 보았다. 질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에 관해서 한 권의 책을 헌사 했다. 하지만 시네필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를 말하면서 연극에 한정 지어 설명한 것은 좀 의외이다.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에게 바친 한 권의 책 『중첩』은 들뢰즈의 유일한 연극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에 관한 두 번째 책 『영화 2; 이미지-시간’의 제 8장 ‘영화, 신체, 그리고 뇌, 사유』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가 이미지-수정체를 건설한 가장 위대한 시네아스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들뢰즈는 여기서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알랭 레네,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미래의 민중영화를 이야기한다. 카르멜로 베네의 위치. 나는 좀 더 많은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를 보고 싶다.


인사. 그렇다. 우리는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우리들의 두 번째 십 년. 우리들의 21세기의 두 번째 시작. (정성일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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