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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상영작 소개

인간과 자연 사이의 살벌한 전투

[영화읽기]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



영국 출신의 존 부어맨은 18살에 신문에 영화평을 쓰는 평론가로 시작해 예고편 편집기사, BBC 다큐멘터리 감독을 거쳐 1965년에 첫 연출작 <할 수 있으면 잡아봐(Catch Us If You Can)>으로 데뷔했다. 그 후 1967년경 친구 리 마빈의 소개로 할리우드에 진출, 출세작 <포인트 블랭크>를 찍는다. 이후로도 계속 부어맨은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작업했는데, 성공과 실패를 오르내리는 필모그래피를 보여주었다. 1970년 할리우드 제작사와의 갈등으로 영국으로 돌아와 만든 <레오 더 라스트>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타면서 비평적 성공을 얻었으나 동시에 대중적으로는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 후 2년 뒤 만들어진 <서바이벌 게임>은 대중적으로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되었으며 미국신화를 해체한 최고작으로 평가되었다.

 

<서바이벌 게임>(1972)은 미국 시인이자 소설가인 제임스 디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 한 작품이다. 카메라는 댐의 공사현장에서 출발해 카훌라와시 강이 흐르는 숲속으로 들어간다. 존 보이트가 연기한 에드와 버트 레이놀즈가 연기한 루이스를 필두로 한 네 명의 무리는 카누를 하기 위해 머지않아 거대한 인공호수로 사라져버릴 강을 찾아가 자신들의 남성성을 시험한다. 에드와 루이스 역은 애초에 리 마빈과 말론 브란도에게 주어졌는데, 마빈은 시나리오를 읽은 후 부어맨에게 너무 위험한 촬영이라 자신들보다 젊은 배우들을 기용하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거기다 이 영화는 보험조차 거부당해 배우들이 스턴트 없이 몸소 액션을 감행해야만 했다. 당시 영화가 대중적으로 흥행하면서 이듬해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촬영된 차투가 강을 찾았는데, 실제로 30명 정도가 물에 빠져죽기도 했다 한다. 그 때문인지 영화가 그려내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갈등은 정신적으로 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 살벌한 전투를 실감케 한다. 영화에서 인물들은 생존만이 유일한 목표인 자연과의 대결에서 찢기고 부서지고 구멍난 몸을 안은 채로 힘겹게 거대한 댐이 세워지고 있는 에인트리에 도착한다.



 

<서바이벌 게임>의 이야기가 걷잡을 수 없는 폭력과 살인 속으로 빠져들기 전, 불길한 징조는 첫 시퀀스부터 드러난다. 드류가 마을의 한 소년과 함께 기타연주로 들려주는 불안한 하모니 소리, 누군가는 발을 구르고 누군가는 손뼉으로 장단을 맞추지만 신나는 멜로디가 마냥 흥겹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숲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마치 자연을 정복하러 온 듯주요인물 네 명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은 곳곳에 숨어있다. 숲의 시선에 갇힌 듯 움직이는 인물들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은 영화의 전체적 분위기를 이끌어나가고, 그들을 편집증과 광기의 상태로 몰아간다. 그리고 그들은 결국 미지의 자연 속에서 길을 잃은 채 스스로의 나약함을 드러내고 만다.

 

2007년에 한 인터뷰에서 부어맨은 "전쟁의 기억 탓에 자연이 위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복수를 행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서바이벌 게임>은 그것을 표현한 영화"라고 밝힌 바 있다. 그의 말처럼 영화는 전쟁과 자연의 복수에 관한 이야기를 미국에 대한 직접적 은유로 사용한다. 부어맨은 루이스의 대사처럼 미대륙을 발견한 탐험가들의 모험을 네 명의 남자들을 통해 다시 써내려갔고, 미국 건국 신화의 야만성을 증오와 공포라는 양가성을 통해 보여주면서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이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