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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청춘이 말하고 카메라가 듣다: 한국 다큐멘터리 특별전

[대담] 우리 시대의 청춘을 담아내다 - 미처 못다 한 청춘들의 이야기

 

 

 

지난 10월 28일, 서울아트시네마에는 다섯 편의 각기 다른 청춘이 등장하는 다큐멘터리를 찍은 감독 다섯 명이 모였다. <개청춘>의 지민 감독(여성영상집단 반이다), <나의 교실>의 한자영 감독, <간지들의 하루>의 이숙경 감독, <아무도 꾸지 않은 꿈>의 홍효은 감독, <청춘 유예>의 안창규 감독이 바로 그들이다. 이숙경 감독의 사회로 진행한 이날의 진지하고 유쾌한 대화를 일부 옮긴다.

 

 

이숙경(영화감독): 청춘이라 불리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사람들과 어떻게 작업을 시작했는지 이야기하면서 오늘 대담을 시작해보자.

안창규(<청춘유예>): 2008년에 대학 등록금과 관련된 단편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대학 등록금 문제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서 청년들이 어떻게 생활하는지 심도 있게 담아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2008년 한 대학생이 생활고에 시달리다 자살을 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많이 받아서 그 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하다 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홍효은(<아무도 꾸지 않은 꿈>): 사실 이 영화는 다큐로 시작한 것은 아니다. 2007년부터 2009년 초까지 울산에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서 영상 만드는 일을 했다. 이후 극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시나리오가 안 써지더라. 내가 노조에서 일을 하면서 영상을 만들고 있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것들에 대해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2010년에 구미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그때 만났던 15명의 친구들의 얘기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이숙경(<간지들의 하루>): 나는 18살에서 20살까지 3년의 시간을 보낸 세 명의 청소년들을 만나서 영화를 찍었다. 그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고 집을 나와서 쉘터라 불리는 임시거처에서 생활 중이다. 그 친구들을 ‘방문자’의 입장에서 찍으려 했다.

지민(<개청춘>): 당시 <개청춘>을 만들 때 우리는 소위 ‘유예된 청춘’들이었다. 당시 ‘88만원 세대’ 담론이 나오면서 청년층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지만 단지 취업 문제로만 좁게 다루는 것이 화가 났다. 직업만 구하면 다 해결되고 행복해질까? 이런 고민을 하다가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을 찍기로 했다. 이렇게 매력적이고 빛나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도 불행하다면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닐 거라는 문제제기를 하고 싶었다.

한자영(<나의 교실>): 우선 졸업을 위해 영화를 찍었다(웃음). 한편으로는 이전부터 갖고 있던 관심사이자 내가 직접 지나온 과정이기도 했다. 내 친구들이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를, 그리고 우리의 목소리가 온전하게 담겨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어서 다큐를 찍었다.

 

이숙경: 나는 쉰 살이 된 젊은 노인이라(웃음) 18살 청춘을 만날 때 전혀 다른 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 같았다. 한자영 감독이 가장 ‘청춘’에 가까운 감독인데 영화를 찍으면서 겪은 어려움이나 좋았던 점이 궁금하다.

한자영: 내 옛날 생각도 많이 나고 친구들의 현재 모습이 너무 예뻐서 좋았다. 반면 내가 겪었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 안타까웠다. 결국에는 무슨 거창한 것을 하기보다 친구들이 각자, 개인으로서 행복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찍어나갔다.

이숙경: 공감한다. 카메라로 현실을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게 아닌데 막상 그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무기력함을 느끼고 이 삶이 앞으로도 크게 바뀌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면 마음이 힘들다.

홍효은: 촬영할 때는 같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서 몰랐는데 편집을 위해 서울로 올라오니 출연자들과 거리감을 느꼈다. 찍을 당시의 내 정체성은 노동자였는데 서울로 올라오니 나란 존재가 많이 달라진 느낌이었다.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 많이 고민을 했다.

이숙경: 영화 상영 후 출연한 친구들과 GV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한 관객이 질문을 했다. 영화에 출연한 후 당신의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거다. 관객들은 영화에서 어떤 식으로든 뭔가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이지만 친구들은 이 질문 자체를 불쾌해했다. 이게 친구들에게 상처가 된다 싶어서 다음부터는 GV에 동행을 안 했다.

홍효은: 아무도 울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는데, 막상 울산에서 같이 활동하던 분들과 영화를 보는데 내가 눈물이 나더라. 누구와 같이 보느냐에 따라 영화의 감상이 달라진다.

지민: 소위 명문대에서 상영할 때와 지방의 대학에서 상영할 때, 그리고 아저씨들을 대상으로 상영할 때가 분위기가 전부 다르다. 서울의 학생들은 왜 우리 이야기는 없냐고 불만을 표하거나 ‘내가 지금 공부를 열심히 안 하면 저 사람들처럼 살겠구나’ 라고 자신이 상상하지 않은 미래를 간접적으로 본다. 반면 지방의 대학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며 이런 영화를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한다. 그리고 아저씨들은 ‘젊은 애들이 너무 나이브하다’라고 이야기한다. 모두 좋은 경험이었다.

한자영: 영화에 출연한 친구들을 어려운 환경 때문에 대학에 못 간 젊은 노동자로 묘사한 기사가 나와서 아이들이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다. 또는 저 친구들은 왜 노조 활동을 안 하냐며 훈계하듯 물어보거나 그래도 대기업에 취직하면 좋은 거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숙경: 기획전 제목에 ‘청춘’이 들어가지만 달달한 장면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찍으면서 이것만은 안 하려고 했던 게 있다면? 나는 청승맞아 보이지 않게 하려고 했다. 아이들의 재미있는 모습이 좋아서 찍기 시작했는데 다 찍고 보니 청승맞더라(웃음).

안창규: 주인공을 불쌍하게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 주인공들과 같이 생활을 해보면 다들 밝고 건강하다.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욕심도 있었지만 그건 나를 신뢰해서 카메라 앞에 선 친구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홍효은: 인터뷰를 할 때 카메라에 신경을 안 쓰려고 했다. 그냥 카메라를 켜놓고 만담을 했다. 그러다보니 보기에 안 좋은 화면이 나왔지만(웃음) 카메라에 신경을 썼다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민: 처음 인물을 섭외할 때는 보편성을 추구하려 했는데 그러다보니 오히려 너무 평이해지더라. 그래서 편집할 때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인 거라 생각하면서 특정 사례가 아닌 한 명의 ‘사람’으로 보이게 하려 했다.

한자영: 나도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거나 출연자들을 연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일차 목표였다. 그리고 보편적인 주제로 확장시키면 함정에 빠질 것 같아서 그건 내려놓고 아이들에게만 집중했다. 인터뷰를 할 때도 주인공들의 감상이나 기분을 묻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기분이나 심경을 물으면 그 사람은 생각을 하고 필터링을 해서 말을 한다. 출연자들의 감정에 개입하지 않으려 신경을 많이 썼다.

 

 

 

관객 1: 출연자들이 카메라를 앞에 두고도 별로 어색해하지 않는다. 출연자와 연출자 사이에 믿음을 어떻게 쌓아나갔는지 궁금하다.

안창규: 나는 믿음을 못 준 것 같다. 오히려 짐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 나를 안쓰럽게 생각했다(웃음). 나를 감독으로 대하기보다는 ‘힘들어 보이니까 도와주고 싶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숙경: 주인공들은 일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서 촬영을 귀찮아했다. 다행인 건 나를 포함한 스태프들이 무심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억지로 위로하려고 하지 않았다. 상황을 별로 바꾸려고 하지 않았다.

지민: 주인공들에게 카메라를 한 대씩 줬다. 초반에는 어색해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더라. 원래 친구였던 출연자는 오히려 우리를 너무 배려해서 곤란을 겪기도 했다.

한자영: 내가 매일 카메라를 갖고 있으니까 그냥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나이 또래 애들이 셀카 찍는 걸 좋아해서 핸디캠을 나눠줬었다.

 

관객 2: 영화 속 인물이 자신의 깊은 속마음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할 때, 또는 너무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낼 때 그 사이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궁금하다.

이숙경: 욕심이라는 게 있다. 끝까지 찍고 싶고, 또 끝까지 찍고 있다. 그러다 정신이 퍼뜩 들기도 하고, 편집할 때 고민을 많이 하기도 한다. 이런 갈등이 너무 힘들어 극영화를 찍었는데 또 다큐를 찍고 있더라(웃음). 현실의 일면이 주는 강렬함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괴로워한다. 나름 자기 검열을 하는데 촬영하기 전부터 어떤 상황이 벌어져 있는 경우에는 카메라를 대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한자영: 보는 게 불편하거나 찍는 게 불편하면 안 보고 안 찍는 게 맞는 것 같다. 책임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것이고 만약 불편함이 있다면 왜 그런 불편함이 생기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홍효은: 아무 사건도 없고 변화도 없는 것을 찍는다는 말이 기억난다. 울산에 있을 때 여성 노동자들이 일하는 공장에 들어가 보고 싶었는데 결국 못 했다. 투쟁을 하거나 극한 상황에 연루되지 않는 이상 공장 노동자들의 일상 이야기를 볼 수 없어서 답답했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에 대한 얘기를 할 수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결들이 풍부해지지 않을까.

 

이숙경: 마지막으로 차기작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자. 나는 지금도 <간지들의 하루>에 출연한 친구들을 찍고 있다. 완성을 해 후속작을 만들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이 작업과는 별도로 나이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안창규: 앞으로도 청춘 이야기에 관심을 쏟을 생각이다. 일본에도 청년유니온과 같은 단체들이 많다. 그런데 청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극우들이 다시 활개를 친다. 일본 우익 청년들의 이야기를 찍어보고 싶다.

홍효은: 미국에서 자기 고향을 속이고 한국으로 들어온 소와 후쿠시마에서 자기 고향을 속이고 한국으로 들어온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민: 반이다의 멤버들은 <개청춘> 이후 차기작을 하나씩 찍었다. 지금 나는 친족성폭력에 대한 다큐멘터리의 스태프로 일하고 있고 다른 친구는 낙태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한자영: 나는 비밀입니다(웃음).

 

정리 : 송은경 관객에디터 / 사진 : 황초희 자원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