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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전/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리뷰] 순수한 사람들 연극과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했던 비스콘티는 거의 평생 동안 멜로드라마에 탐닉했다. 유작인 에서 그는 19세기 이탈리아 상류 사회에서 벌어지는 불륜과 정조의 문제를 다루며 다시 한 번 멜로드라마로 돌아온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은 사교계의 살롱과 귀족들의 저택인 실내 공간들로, 소품들의 화려함과 다채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주인공들을 비롯한 모든 인물들의 의상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화려하고 아름답다. 장면이 바뀔 때, 동일한 공간이나 의상이 다시 등장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사물들은 원래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정점에 달한 영화미술, 숏 하나하나가 회화 작품과도 같은 프레이밍으로 이뤄진 미장센은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극 전체의 분위기와 상황, 인물들의 감정을 매우 .. 더보기
[리뷰] 루드비히 만년의 대작 는 19세기 바이에른의 왕이었던 루드비히 2세의 기이했던 삶의 궤적을 장엄하게 담아낸다. 영화는 루드비히 2세(헬무트 베르거)의 즉위식으로 시작한다.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막대한 부와 왕이라는 지위가 주는 거대한 권력은 그에게 부담감으로 다가올 뿐이다. 이제 곧 그를 둘러싼 권력자들의 정치적 압력이, 제복의 높은 깃이 목을 감싸는 것처럼 그를 옭죄어 올 것이다. 자신을 옭죄는 왕좌로부터 벗어나 그가 택한 것은 예술에 대한 탐닉이다. 그는 왕위에 즉위하자마자 시종들에게 바그너를 찾아오라는 지시를 내리고 바그너를 성으로 초대해 거의 우상처럼 떠받든다. 바그너는 루드비히의 거울이미지와도 같은 자유로운 인물이다. 그의 방탕한 생활은 왕실의 재정을 탕진시킨다. 재상들의 압력에 굴복한 루드비히는 결국 .. 더보기
[리뷰] 저주받은 자들 젊은 시절 네오리얼리즘의 기수로 불리던 루키노 비스콘티는 50년대 무렵 멜로드라마에 심취하는데, 이런 경향은 말년에 이르러 탐미주의로 치닫는다. 이러한 비스콘티의 탐미주의를 가장 잘 보여주는 독일 3부작의 서두를 여는 작품이 바로 이다. 특유의 멜로드라마 연출과 연극적 특징, 동성애적 성향과 역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이 한 편의 대작에 농도 짙게 뒤엉켜있다. 나치가 차츰 그 세를 불려나가던 1933년 독일. 루르 지방의 세도가 요하임 폰 에센벡이 운영하는 철강회사는 나치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회사를 넘겨받은 SA의 일원 콘스탄틴, 진보적이고 반나치적인 아들 허버트와 권력욕에 사로잡힌 사촌 아셴바흐(헬무트 그리엠), 에센벡 철강을 관리하고 있는 프레드릭(더크 보가드)과 그의 연인 소피(잉그리드 툴.. 더보기
[리뷰] 베니스에서의 죽음 은 비스콘티의 탐미주의적 성향이 극에 달한 후기 걸작이다. 중년의 작곡가가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에게 반한다는 이야기는 순수한 절대미에의 매혹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미적 요소들이 과잉된 바로크적인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엄격한 고전주의적 면모가 보인다. 영화의 아름다움이 절제된 움직임과 형식 안에서 돋보이기 때문이다. 전작 의 무도회에서 보여준 화려한 색의 향연과 달리 색채도 절제되어있다. 영화 속 베니스는 온통 잿빛이며 도입부터 시종일관 습하고 어두운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의상도 거의 흰색이나 검정색이다. 이 도시에서 원색은 광대들에게나 어울리는 조롱거리이다. 마치 드라이플라워 같은 인물들은 우아하지만 생기가 없다. 덕분에 이 죽음을 배경 삼아 더욱 빛나는 건 황금빛 소년의 아름다움과 젊음이다.. 더보기
Luchino Visconti Special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3월 프로그램으로 이탈리아 영화사를 대표하는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대표작 6편을 모은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을 개최합니다. 루키노 비스콘티는 네오리얼리즘의 태동을 알린 (1943)을 통해 데뷔했지만 메마른 대지의 영화에만 머무르지 않고 (1954) 이후 화려한 시대극의 세계로 관심사를 넓혀갔습니다. 1970년대 들어서는 (1971) (1974) 등을 발표하면서 암울한 이야기를 극도의 아름다움으로 탐미하며 그만의 영화세계를 창조하는 데 이르렀습니다. 네오리얼리즘부터 탐미주의까지, 파장이 넓은 관심사를 펼쳐 보인 비스콘티의 영화적 주제는 다름 아닌 그의 인생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공산주의자로 청년 시절을 보내고 파시즘에 적극적으로 투쟁하면서도 오페라.. 더보기
루키노 비스콘티: 늦어버린 자의 통절한 시선 자신이 매혹된 대상을 향해 격정적으로 타오르는 눈빛, 그리고 그 대상을 소유할 수 없음을 깨달은 후 내비치는 쓸쓸한 눈빛. 루키노 비스콘티의 중·후기 영화들에서는 인물들의 이러한 눈빛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비스콘티가 창조한 인물들은 늘 무언가에 매혹된다. 그것은 주로 이성이나 동성에 대해 느끼는 사랑이나 욕정인데, 그 매혹은 스스로의 생명을 갉아먹을 만큼 치명적이다. 그들은 그 대상을 먼발치에서 은밀히 응시하거나, 혹은 품에 안고 격정적으로 바라본다. 인물들의 응시는 비스콘티의 영화가 작동하는 핵심적인 동력임에 틀림없다. 카메라는 무언가를 응시하는 인물들의 눈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준다. 그 눈은 매혹의 대상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으로 불타오르다가, 이내 허망한 느낌으로 변한다.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