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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Review] 대중유토피아를 향한 집단적인 꿈 - 보리스 바르넷의 <저 푸른 바다로> 대중유토피아를 건설하는 것은 20세기의 꿈이었다. 그것은 자본주의 혹은 사회주의 형식을 지닌 산업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강력한 추진력이기도 했다. 대중유토피아를 향한 집합적 꿈은 그것의 역사의 추인에 필요한 신화와 전설을 필요로 했다. 동시에 거대한 규모로 이 꿈은 투사되어야만 했다. 개인의 행복과 함께하는 사회와 세계를 감히 상상하는 것, 그리고 그 사회와 세계가 실현될 추진력을 획득하려는 노력이 영화를 필요로 했다. 영화는 무엇보다 확대의 기술이었고 꿈을 투사하는 예술이었기 때문이다. 35mm의 작은 직사각형에 담긴 세계는 크게 확대된 스크린에 투사되어 대성당이나 피라미드보다 더 큰 세계로 비춰진다. 20세기 초의 카메라는 기차, 전차 등의 대중교통 수단이나 대도시 군중, 집단의 움직임을 담아냈고 영.. 더보기
[Review] 그럼에도 삶은 계속된다 - 알랭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은 누벨바그의 진정한 출발을 알리는 선구적인 작품이자 감독 알랭 레네와 누보로망 작가인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만남으로 유명하다. 관습적이고 선형적인 이야기에만 매달려온 기존의 영화 작업에 의문을 제기했던 레네는 새로운 형식과 기교를 구사하는 누보로망 작가인 뒤라스에게 직접 시나리오를 부탁했다. 뒤라스는 상식적인 전개 방식 대신 그녀의 소설에서나 접했을 법한 다양한 실험 구조를 영화에 적용시킨다. 뒤라스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을 전하며 이후 시나리오를 쓰게 된 동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다. “의 시나리오를 주문받지 않았다면, 나는 히로시마에 대한 글은 아무것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의 시나리오를 쓰게 되었을 때, 나는 히로시마의 엄청난 사망자 수를 보고 내가 만들어 .. 더보기
[Review] 추악한 욕망의 끝을 마주하다 - 브라이언 드 팔마의 <스카페이스> 브라이언 드 팔마의 는 “이 영화를 하워드 혹스와 벤 헥트에게 바친다”는 자막으로 끝난다. 드 팔마의 는 하워드 혹스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것이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이 쓴 각본은 원작의 골격과 일부 디테일을 따라갈 뿐, 어두운 시카고의 거리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마이애미로, 금주법과 마피아의 시대였던 1920년대는 불법 마약 거래가 횡행하던 1980년대로 바뀌었다. 영화는 실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미국이 아닌 쿠바에서 시작한다. 1980년 카스트로는 마리엘 항구를 개방하면서 미국 선주들에게 쿠바의 범죄자들을 싣고 떠나기를 요구했다. 드 팔마는 영화의 서두에서 시대적 상황을 설명하는 자막 이후, 카스트로의 연설, 환호하는 대중, 그리고 망명자들의 모습이 담긴 기록 .. 더보기
[Review] 잠 못 드는 밤은 한 꺼풀의 성장이 되고 - 빌 오거스트의 <정복자 펠레> 는 19세기 말 덴마크의 집단 농장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스웨덴에서 늙은 아버지와 함께 덴마크의 작은 항구도시로 이민 온 소년 펠레는 집단 농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고향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곳에서의 삶이 척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펠레는 바다를 건너는 배 위에서 아버지에게 ‘아이들이 일하지 않고 종일 놀기만 하는 곳’을 원하지만 그의 소망은 이내 좌절된다. 그들이 도착한 농장에서 그들은 축사의 한편에 거처를 마련하고 끊임없는 노동을 부과 받는다. 19세기 스웨덴은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들 중 하나였다. 농업 국가였던 스웨덴은 산업혁명과 함께 봉건 제도가 붕괴되면서 농촌의 빈곤화가 일어났고 많은 스웨덴인들이 기근에 시달리다가 덴마크나 미국 등지로 이주해야 했다. 영화 속 펠레와 그의.. 더보기
[Review] 영웅 없는 스파이 세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 존 부어맨의 <테일러 오브 파나마> 다수의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 역을 맡았던 피어스 브로스넌이 ‘안티-본드’ 영화에 출연한다면? 첩보 소설의 거장 존 르 카레가 그 영화의 원작과 각색에 참여했다면? 존 부어맨의 (2001)가 그런 작품이다. 이 영화는 파나마를 배경으로 운하운영권을 둘러싼 음모와 거짓을 그린다. 이제 막 파나마로 발령을 받은 영국비밀정보국(MI6)의 요원 앤드류(피어스 브로스넌)는 고위 인사들의 양복을 재단하는 해리(제프리 러쉬)에게 접근한다. 파나마에 정착한 영국인 재단사 해리는 그동안 거짓으로 꾸며낸 자신의 과거 경력을 기반으로 삶을 꾸려왔는데, 그런 해리의 비밀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앤드류는 그 사실을 빌미로 파나마 운영권을 둘러싼 고급 정보들을 캐내올 것을 요구한다. 평범한 재단사가 엉뚱하게 꾸며낸 정보.. 더보기
[Review] 시대의 몰락과 비참을 담아내는 편견 없는 시선 -폴 토마스 앤더슨의 <부기 나이트> 이모션즈(Emotions)의 'Best of my love'가 경쾌하게 울려 퍼지며 영화의 제목 '부기 나이트'가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화면 가득 들어온다. 오프닝 크레딧의 일부이면서 영화 속 클럽이 위치한 동네의 실제 간판이다. 시작과 동시에 흘러나오던 음악은 인물들이 하나 둘 등장하며 인사를 나누고 대화를 나누는데도 볼륨이 줄지 않고 이어진다. 이 흥겨운 노래는 영화 의 시작을 알리는 테마곡이자 인물들이 만나는 클럽의 배경음악이다. 영화가 시작됨과 동시에 우리는 파티가 펼쳐지는 낯설고 시끄럽지만 어딘가 신나 보이는 신세계에 툭 던져진다. 그리고 이곳에서 모든 것이 시작된다. (1977)는 (1996)로 데뷔한 폴 토마스 앤더슨의 두 번째 작품이자 시대의 요란을 유난 맞지 않은 시선으로 담아낸 영화다. .. 더보기
[Review] 죄절된 부르주아의 만찬 - 루이스 부뉴엘의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루이스 부뉴엘의 (1972)은 부르주아의 계급적 허위의식을 냉소적으로 풍자한다. 영화는 6명의 부르주아들이 그들만의 의식인‘만찬’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다룬다. 놀랍게도 이 부르주아들은 티타임까지 포함하여 총 8번의 좌절을 겪는다. 그들은 시간을 착각하거나 때로는 시의적절치 못한 성적욕망으로 약속을 위반한다. 그런가 하면 갈망하던 만찬이 시작되는 순간에는 식사에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에 의해서 만찬이 중단되기도 하는 등 만찬을 성사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욕망은 수없이 고배를 마신다. 게다가 영화에는 중심 내러티브와 상관없는 꿈 이야기가 세 차례나 삽입되고 부르주아가 꾸는 꿈이 세 차례 덧붙어있다. 6명의 부르주아가 하릴없이 들판을 걸어가는 극적맥락과 긴밀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시퀀스가 또.. 더보기
[Review] 세상은 변해 가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 -제리 샤츠버그의 <허수아비> 제리 샤츠버그는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전에, 보그, 에스콰이어 등에서 사진을 찍으며 이미 사진작가로서 이름을 알렸다. 그의 사진 작업 중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미지는 아마도 밥 딜런의 앨범 의 커버일 것이다. 그는 70년대부터 뒤늦게 영화경력을 시작했지만, 사실 당시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젊은’ 감독들보다 윗세대에 속한다(그는 1927년생이다). 데뷔작 이후 그가 만든 장편 또한 모두 12편으로, 과작인 탓에 뉴 아메리칸 시네마 안에서 다른 감독들에 비해 그의 존재는 오랫동안 잊혀져 왔었다. 그런 그가 다시금 주목받게 된 데에는 2011년 칸 영화제의 영향이 컸다. 1970년, 제리 샤츠버그가 담은 페이 더너웨이의 사진이 공식포스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