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채플린은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어머니를 봐야 하는 고통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가 완전히 정신병원에 갇힌 뒤에는 경찰의 일제 단속에 걸려드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켄싱턴 로드의 벽을 따라 숨어 다니던 9살짜리 부랑아였던 것이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사회의 하층계급'에 속했다. 자주 이야기되어온 그의 유년 시절을 내가 다시 언급하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 속에 폭발적인 것이 있음을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영화들을 찍기 위해 키스턴 영화사에 들어가려 할 때 채플린은 뮤직홀의 동료들보다 빨리, 멀리 뛰었을 것이다. 그는 배고픔을 묘사한 유일한 영화인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겪은 유일한 영화인이기 때문이다. 1914년 그의 영화필름들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전 세계의 관객들은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 프랑수아 트뤼포, 앙드레 바쟁의 <찰리 채플린> 서문에서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은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시대>다. 개막작 후보로 언급된 몇 작품이 있었지만 이견 없이 <황금광시대>로 모아졌다. '이것이 영화다'라는 이번 영화제의 콘셉트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었던 까닭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1925년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90년 가까운 시간동안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으리라. 이는 어떤 점에서 <황금광시대>가 품고 있는 현대적인 면모의 한 증거이기도 하다. 한 예로, 지금의 주류영화라는 것은 일방적인 감정 전달 방식의 드라마투르기에 목매고 있는 형국이라 할만하다. 그 훨씬 이전에 찰리 채플린은 이미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그 중 <황금광시대>는 채플린 본인이 후세에 이름이 알려질 작품이라고 자평했을 만큼 뛰어난 영화다. 희극과는 전혀 무관한 배경과 소재를 통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금을 손에 넣겠다며 광활한 설원을 찾은 수천 만 명 모험가의 광경을 담은 첫 장면의 풀 쇼트는 확실히 비극의 오라(aura)를 군데군데 담아낸다. 추운 날씨를 못 이겨,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대오를 이탈하는 이들의 모습은 당대의 노동자 혹은 서민들이 처한 녹녹치 않은 현실을 감지케 한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떠돌이 역시 그런 모험가 중 한 명이지만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 중산모와 콧수염과 지팡이, 그리고 꽉 조인 재킷과 펑퍼짐한 바지 - 덕에 처음부터 비극적인 요소를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서민의 모습을 염두에 둔 떠돌이의 복장은 그 자체로 희극의 소재지만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장치로 고안됐다는 점에서 찰리 채플린이 가지고 있는 웃음의 철학이 농축된 미장센이다. 이에 대해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My Autobiography>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역설적이지만, 한 편의 희극을 창조함에 있어 그 희극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이용되는 것은 비극성입니다. 희극성이라는 것이 반항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전지전능한 자연 앞에 선 우리의 미약함을 발견하고 취할 수 있는 대처 수단이란 웃음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면 미쳐버리고 말겠지요." 그러니까, 비극적인 떠돌이의 모습을 통해 많은 웃음을 자아내는 채플린의 영화 혹은 연기는 웃음과 눈물이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원초적 감정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황금광시대>에 대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헌 구두짝을 삶아 먹는 장면이다. 설원을 헤매던 중 길을 잃고 찾아간 외딴 집에서 떠돌이는 어느 모험가를 만나지만 이들은 먹을 게 없어 굵어죽기 일보직전이다. 이때 떠돌이는 꺼진 등의 양초를 시험 삼아 씹어 먹다가 별 이상이 없자 구두 한 짝을 저녁식사로 해결하는 엽기적인(?) 행위를 선보인다. 스파게티 면발을 먹듯 구두끈을 후루룩 삼키고 못이 박힌 구두 밑창은 생선 가시를 골라내듯 발려 먹는데, 이 장면이 제공하는 웃음의 이면에는 인생역전을 꿈꿨다가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신세로 떨어진 보통사람들의 애환이 그림자처럼 엎드려있다. (촬영에 쓰인 구두는 감초로 만든 것이었다. 해당 장면의 촬영이 끝난 후 채플린은 3일 동안 복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웃음과 눈물의 밀접한 관계성을 기막히게 살려내는 찰리 채플린의 감각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수인 아버지와 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각각 알코올중독과 정신분열을 겪는 부모 밑에서 지독한 궁핍과 허기에 시달린 불우한 어린 시절은 잘 알려져 있다. 열 살 때 아동극단에서 탭댄스를 배우고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는 희극의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황금광시대>에는 그런 경험의 소산이라 할 만한 장면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조지아 헤일)와의 식사 장면에서 떠돌이가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두 개의 빵에 포크를 꼽아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얼마나 열렬했는지 극장 측은 이 장면을 연이어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고 한다.)


결국 현실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것은 이를 잊게 해주는 웃음이다. 이 웃음의 정체는 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끼리 부딪히는 관계의 과정 속에서 생성된다. 안 그래도 <황금광시대>는 떠돌이가 부자가 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은 조지아와의 사랑이 맺어지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채플린이 <황금광시대> 이후 <시티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 등에서 일관되게 역설해온 바다. 돈이 잠시간의 행복을 가져올지 몰라도 해피엔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황금광시대>에서 우연히 금광을 찾아 부자가 된 떠돌이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도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와 맺어지는 장면에서다. 그 둘은 미국으로 향하는 뱃속에서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고 마는데 한때 잘나갔던 조지아는 밀항자 신세로 전락한 상태다. 하지만 떠돌이는 이에 개의치 않고 조지아를 받아들이며 환하게 웃음 짓는다.

<황금광시대>에 대해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부분 때문이다. 채플린의 영화가 어필을 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날로 기계화되어 가는 시대 속에서 빠르게 잊히는 인간적인 가치에 대해 역설했던 까닭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재도 물질의 가치에 현저히 밀리고 있는 인간성의 회복을 목격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대다수다. 그런 까닭에 최근 영화들 역시 메시지 전달보다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전달하는 이야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채플린이 희극과 비극이라는 두 감정의 이미지 충돌을 통한 몽타주를 구사하며 영화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다면 현대의 영화들은 전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면서 감정을 전달하는 일방향 연출에 매진하는 추세다.

장 콕토는 "채플린의 도움으로 인류는 바벨탑의 건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만국공용어로 작용하는 그의 연기와 영화에 대해 극찬을 표한 바 있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작 <황금광시대>는 '희극이라는 이름의 애수'로 불리는 찰리 채플린 영화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상품으로 기능하는 현대영화가 잊은 '영화란 무엇인가'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글|허남웅 영화칼럼니스트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두 개의 다른 엔딩


1942년, 찰리 채플린은 애초에 무성영화로 만들어진 <황금광 시대>에 자신의 내레이션과 그가 작곡한 음악을 삽입했다. 이 때 몇몇 장면들이 삭제되거나 수정되면서 재개봉 버전의 러닝타임은 오리지널보다 20여 분 짧아진 형태로 완성되었다.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다름 아닌 영화의 엔딩이다. 이번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942년의 재개봉 버전의 엔딩은 다음과 같다. 떠돌이 찰리는 금광을 찾아내 백만장자가 되고, 그가 탄 배에서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와 우연히 재회한다. 둘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갑판의 계단을 오르고 화면은 페이드 아웃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또 다른 엔딩이 숨겨져 있다. 1925년의 오리지널 버전에서 두 사람은 계단을 오른 뒤, 사진 기자의 카메라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다. 마주 본 두 사람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사진 기자의 투덜거림에도 아랑곳 않고 행복한 키스를 나누며 영화는 끝난다. 그로부터 17년 후, 재개봉을 위한 편집 과정에서 채플린은 이 장면을 삭제해 버린다. 대신 그는 계단을 오르는 두 사람의 뒷모습과 함께 ‘해피엔딩’이라고 읊조리는 내레이션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본래의 엔딩에 비하면 재편집된 버전의 엔딩은 내러티브나 화면 구도에 있어서 조금은 어색하고 불안정해 보인다. 어째서 채플린은 이 마지막 키스 씬을 잘라낸 걸까?

찰리 이후의 채플린


그의 영화에서 희극과 비극은 늘 맞물려 있지만, <황금광 시대>에는 분명 어떤 낙관주의가 남아있다. 당시 채플린은 당대의 스타 배우들, 감독과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영화사를 창립했는데, 이로써 그는 기존 스튜디오와의 착취적인 계약관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게 된다. <황금광 시대>는 그가 바로 이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시절에 감독과 주연을 겸하여 만든 첫 영화이다. 채플린은 종종 이 영화로 자신이 기억될 거라 말하곤 했다고 한다. ‘좋은 시절’로 기억되는 미국의 20년대, 채플린 역시 어떤 기대와 믿음, 낙관의 정서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고, 황금과 여인, 모두를 얻는 <황금광 시대>의 이야기는 그의 영화에서 유일한 키스 씬으로 행복하게 끝맺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영화들에서 ‘해피엔딩’은 점차 사라진다. 마지막에 이르면, 결국 모두가 떠나버리고 홀로 남겨지거나(<서커스>(1928)), 시력을 되찾은 소녀의 앞에서 깨어진 꿈으로 남거나(<시티 라이트>(1931)), 애잔한 뒷모습으로 멀어져만 간다(<모던 타임즈>(1936)). 특히 떠돌이 찰리 캐릭터와 작별한 이후, 그의 영화는 더욱 어두워진다. <위대한 독재자>(1940)에서는 고통 받는 연인에게 목소리만이 간신히 가닿을 뿐이고, <살인광 시대>(1946)에서는 ‘살인이 사업의 연장’인 베르두 씨로 등장해 무심히 교수대에 오른다. 대공황, 산업화, 전쟁, 학살의 시간을 지나면서 그의 영화는 점점 세상을 향해 비판과 근심, 냉소를 내비치고 있었다. <황금광 시대>가 처음 만들어진 1925년의 채플린과 재편집된 1942년의 채플린, 이 둘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간극의 흔적이 이 영화의 삭제된 엔딩에 남아있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곱씹어 생각하게 되는 것은 삭제된 장면 그 자체보다, 그러한 차이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한 예술가의 ‘선택’이다. 당시 채플린은 이미 유명한 ‘할리우드 스타’ 그 이상이었다. 그것은 단지 그가 <황금광 시대>가 재개봉하던 1942년에도 전쟁과 관련된 수많은 대중 집회에서 연설하는 등 사회적 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는 것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영화사상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인물을 창조해낸 그는 어느 순간 영화가 단지 대중의 꿈이 투사되는 것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거부하고서, 이 통렬한 과정을 이후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따라서 채플린의 후기 영화들은 보는 것은 작품들 하나하나가 지닌 흥미와 놀라움 뿐 아니라, 용기 있고, 열정적인 한 예술가가 자신의 시대를 예민하게 바라보는 방식과 만나는 것이며, ‘찰리’ 이후의 시기에 재편집된 버전의 <황금광 시대> 역시 미묘하게나마 그러한 과정 안에 있다.

by 장지혜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유토피아를 향한 첫번째 여행


왜 영화의 정전(canon)이 필요한가? 왜 최고의 영화들을 시네마테크는 선정하는가? 왜 걸작선의 분류가 필요하고, 작품들을 상영하려 하는가? 시네마테크의 취향을 보여주려 함은 아니다. 영화의 과장된 지식과 정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함도 물론 아니다. 평론가인 조나단 로젠봄이 ‘영화 정전의 필요성에 대하여’라는 글에서 했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가 영화의 정전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다면 대학의 칠판이나 학생들이 읽는 영화 교과서, 혹은 케이블 채널의 프로그램에 기재된 목록들로, 혹은 박스오피스 성적의 결과로 영화들이 남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시네마테크가 정전의 목록을 만드는 것은 앤드루 새리스가 1960년대에 영화의 판테온을 세우려 했던 것과는 다른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영화의 위계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영화의 정전이란 높은 가치를 지닌 예술 작품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정전에 포함될 것인가는 논쟁적이다. 선정자들의 영화에 대한 판단과 취향, 선별의 기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제임스 아제, 마니 파베르, 앙드레 바쟁, 폴린 카엘, 피터 보그다노비치, 앤드루 새리스, 로저 에버트, 조나단 로젠봄, 하스미 시게이코 등이 선정한 다양한 목록들이 있다. 이미 폴 슈레이더는 영화 정전을 위한 흥미로운 7가지 표준을 제시한 바 있다. 아름다움, 기묘함, 형식과 주제의 단일성, 전통, 반복 가능성, 관객들의 참여, 모럴리티 등이 어떤 작품이 정전인가를 결정하는 표준들이다. 평론가인 애드리안 마틴 또한 세 가지 정전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첫째, 스타워즈 정전.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영화들의 목록이다. 둘째, 시민 케인 정전. 1950년대와 60년대의 아트하우스와 누벨바그 시절에 비평가들이 구축한 오래된 정전이다. 셋째, 키아로스타미 정전.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정전에서 결핍되고 누락된 영화들을 보완한 새로운 정전을 말한다.

살아남은 영화들은 오직 그 작품에 속하는 이중적인 시간을 통해서 우리에게 이르게 된다. 이중적인 시간이란 곧 작가의 시간과 우리의 시간을 의미한다. 영화의 정전을 만드는 것은 그런 시간들에 간섭해서 과거의 작품에 현재의 생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개관 10주년을 맞아 시네마테크가 선보이는 ‘100편의 시네마 오디세이’도 그런 이유 때문에 시작되었다. 이 목록들이 그럼에도 결핍과 불완전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말하고 싶다.


‘유토피아로의 여행’이라는 부제가 딸린 첫 번째 여행에서 소개하는 작품들은 20세기 초두에서 21세기의 시작에 나온 8편의 영화들이다. 유토피아는 단지 알려진 공간의 바깥에 존재하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 바깥에 존재하는 곳이다. 유토피아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만족스럽지 못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이끈다. 영화는 그런 점에서 비록 공포와 비극을 수반할지언정 언제나 유토피아로의 여행을 그린다고 할 수 있다. 에이젠슈테인과 동시대의 작가이지만 세계 영화사의 정전에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보리스 바르넷의 아름다운 작품 <저 푸른 바다로>(1933)가 보여주는 세계가 그러하다. 세계영화사의 정전에 주로 몽타주 학파들의 감독들이 기재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자면 보리스 바르넷은 여전히 미지의 작가이다. 두 선원과 해변의 여인의 사랑의 트라이앵글을 그린 <저 푸른 바다로>는 유토피아적인 세계로의 여행을 다룬 내용만큼이나 토키의 여명에 새로운 미학적 여정을 시도한 작품이다. 동시대 장 비고의 <라탈랑트>(1934), 루이스 부뉴엘, 살바도르 달리의 <황금시대>(1930)와 견주어 볼 만한하다. 무성영화 시대의 도상을 유지하면서 순수하고 단순한 사랑과 발견의 이야기가 감미롭다. 프랑스 시적 리얼리즘의 작가들, 르네 클레르, 자크 타티, 장 르누아르, 혹은 오타르 이오셀리아니의 세계를 이 영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지도가 유토피아라는 땅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지도를 들여다 볼 가치란 전혀 없다’고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지난 세기는 한 때 유토피아의 꿈을 간직했지만 실패로 끝난 역사이기도 했다. 찰리 채플린은 언제나 침대 머리맡에 찰스 디킨스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를 두었다고 한다. 이 단순한 습관은 채플린이 빈곤과 궁핍 속에서 자라난 자신의 유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환경을 평생 잊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황금사냥에 나선 사람들의 정신 이상적 행동을 코미디로 극화한 <황금광 시대>(1925)에서 폭소를 유발하는 것이 그런 배고픔이다.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비극이 도리어 웃음의 정신을 자극해 준다. 생각건대 웃음이란 곧 반항의 태도인 까닭이다. 우리들은 자연의 위력이라는 것 앞에 서서 자신의 무력함을 웃을 수밖에 없다. 웃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식으로 채플린은 통렬한 비극의 기록에서 희극적인 장면을 떠올렸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찰리는 낡아빠진 헌 구두 한 짝으로 저녁 식사를 때운다. 그는 정성들여 요리한 구두를 식탁에 내놓고는 맛스런 스파게티라도 먹는 듯 구두끈을 음미하고 고급 생선 요리처럼 구두 밑창을 접시에 올려놓고 생선 가시를 발라가듯 천연덕스럽게 못을 먹어치운다. 터무니없는 상상 불가능한 연출이지만 이보다 더 강렬하게 빈곤을 표현한 장면을 찾기 힘들 정도로 지극히 사실적인 장면이다. 롤랑 바르트의 지적대로 그는 ‘허기의 작가’로 언제나 배고픔을 과장되게 표현했다. 그는 배고픔과 허기를 영화에 담아낸 거의 유일한 예술가였다.


감동적일수록 더 웃겨야만 한다. 채플린의 이러한 원칙이 후기의 걸작 <독재자>(1940)에서도 활용된다. 작은 유태인 이발사 찰리가 자신과 닮은 독재자 힝켈(히틀러를 희화한 인물이다)을 대신한다는 간단한 이야기로 나치의 살인광증을 조롱하는 코미디다. 채플린이 1인 2역을 소화한 ‘찰리-힝켈’은 실제로 작은 차이를 지닌 인물로 사람들에게 오인된다. 채플린과 독재자 히틀러, 둘은 콧수염만큼이나 서로 닮았지만 그로부터 엄청난 거리를 지닌 다른 상황, 즉 웃음과 공포가 발생한다. 그런 점에서 채플린은 독재자를 조롱의 대상이나 비판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았다. 막스 피카르트가 ‘우리 안의 히틀러’라 말했던 것처럼 채플린은 사회와 시대, 심지어 평범한 사람들 안에 독재자와 살인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한스 위르겐 지버베르그가 영화로 탈구축을 시도하려 했던 것인 그러한 ‘우리 안의 히틀러’이다. 7시간 반에 달하는 대작 <히틀러>(1977)에서 지버베르그는 히틀러의 성공이 대중의 시대, 민주주의의 시대에 호소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그는 히틀러가 독일 대중의 비합리성에 철저하게 호소했기에 히틀러를 이해하고, ‘우리 안의 히틀러’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비판의 도구가 아니라 그들의 언어를 빌려오는 것이 필요하며, 적들의 도구로 공격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화와 비합리성의 권능을 환기시키는 것으로만 히틀러에 대한 비판이 가능하다. 아우슈비츠의 통계학, 나치 경제에 대한 사회학적 분석으로는 히틀러와 싸울 수 없다. 차라리 리하르트 바그너와 모차르트를 끌어들여 싸워야만 한다. 지버베르그가 상정한 것은 그래서 채플린과 마찬가지로 개인으로서의 히틀러는 아니었다. 그가 고민한 ‘우리 안의 히틀러’는 들뢰즈의 표현을 빌자면, “단지 히틀러가 우리를 만들었듯 우리가 히틀러를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우리 모두 또한 잠재적인 파시스트적 요소들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히틀러는 우리 자신 안에 그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정보를 통해서만 존재한다”는 그런 의미이다.


더글라스 서크는 전쟁의 비극에서 가장 멜로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사랑할 때와 죽을 때>(1958)는 미국영화로서는 드물게 패전국인 독일의 입장에서 전쟁의 비참을 그린 작품이다. 1944년 이른 봄의 러시아 전선. 독일군 병사 에른스트는 삼주의 휴가를 얻어 2년 만에 고향 베를린에 돌아온다. 그러나 도시는 이미 폐허가 되어버렸고 부모님의 행방도 묘연해 망연자실한다. 가까스로 어린 시절의 여자 친구 엘리자베스와 재회하고, 이내 서로 마음이 끌린 둘은 결혼을 올리고 자그마한 행복에 잠긴다. 하지만 에른스트는 곧 전선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러시아 전선으로 보내진 에른스트는 전장으로 떠나기 전 아름다운 여인과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죽음과 사랑의 끔찍한 부조화가 여기에 있다. 서크는 이 영화에서 전쟁으로 폐허가 된 풍경과 두 연인에 주목한다. 기이한 사랑이 그렇게 시작한다. 전쟁의 와중에 연인들에게는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다. 에른스트와 엘리자베스가 레스토랑에서 잠깐의 행복한 시간을 보낼 때, 그들의 유예된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비행기의 공습이다. 그들에게는 사랑을 나눌 장소가 허용되어 있지 않다. 극단적인 상황에 내몰린 두 연인은 공습을 받은 폐허에 절반은 화상을 입고, 남은 가지에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의 이미지와 닮았다. 폭격의 열이 이른 봄에 주위를 따듯하게 해서 꽃이 빨리 피었던 것이다.

또 다른 연애의 지도. 왕가위의 <아비정전>(1990)은 <열혈남아>(1987)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자 <화양연화>(2000), <2046>(2004)로 이어지는 ‘1960년대 홍콩 삼부작’의 첫 번째 여행을 다룬 영화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라는 장국영의 대사는 이 영화의 시간성을 환기시키는데, 그렇다고 1960년대라는 시대의 고유명이 사실적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왕가위는 전체적인 스타일과 분위기로 시대를 담아낸다. 당시의 체육관 매표소, 작은 매점, 오래된 코카콜라, 담배, 야간 순회의 경관의 출근부, 구식의 전화박스, 여기에 옛 음악과 댄스가 시대의 분위기를 더한다. ‘아비’라는 말 자체가 시대의 상징이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전후에 태어난 젊은 세대의 사회적 문제, 청소년의 교육 문제가 당시에 주목받게 되면서 ‘아비’라는 말은 젊은이에 대한 회의적, 경멸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또한 니콜라스 레이의 <이유 없는 반항>(1955)의 홍콩 공개시의 제목이기도 했다. 1966년의 문화대혁명, 1967년의 홍콩의 대규모 폭동 등으로 홍콩의 1960년대는 정치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시대였다.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연애 감정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에는 그런 시대의 애매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시간의 어긋남, 과거에의 후회, 연애의 파탄과 반복이라는 왕가위적 연애가 그렇게 작동한다.


여행은 그렇게 지도에서는 찾을 수 없는 영토로의 일탈을 내포한다. 소요하기, 경로를 벗어난 항해, 방랑하기, 배회하기, 그리고 심지어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영화-여행의 본질이다. 짐 자무쉬의 <데드맨>(1996)은 서부극의 스타일을 빌려 생과 죽음의 의미를 묻는 내면세계로의 여정을 다룬 영화다. 자무쉬의 표현을 빌자면, 이 영화의 테마는 ‘인생은 마지막이 없는 사이클’이라는 것. 전작들에서 도시의 다양한 표정을 그려왔던 자무쉬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신비적인 대자연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런데 <데드맨>의 여행이란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역사적, 문화적 여정과는 거리가 있다. 공간을 통과하는 여정은 횡단하는 대지의 리듬에 따라 영화가 전개되고 지리적 공간과 관계를 맺는 것으로 시간이 형성되는 독특한 영화 형식을 창조한다. 영화의 모두에 인용되는 ‘사망자와는 여행하지 않는 편이 좋다’라는 앙리 미쇼의 시는 이러한 여정의 독특성을 예고한다.

그리하여, 뇌와 정신의 여정이 있다. 아이덴티티, 기억, 트라우마, 혼란스런 시각으로 구성된 가장 현대적인 경향의 영화들이 그것이다. 데이비드 린치의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는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21세기의 새로운 영화다. 마치 뫼비우스 띠처럼 뒤얽힌 이 영화는 고전 영화의 선형적 논리에 의문을 가한다. 깨어나지 않는 악몽과도 같은 종결 없는 순환이 작동하고, 관객으로서 우리는 플레이, 리플레이 되는 게임에 참여하듯 영화를 보게 된다. 여기에 질문이 있다. 영화는 우리의 정신 바깥에서 발행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우리가 보는 이 이미지들은 순수이 시각적인 것인가, 아니면 몸과 의식을 필요로 하는 육화된 것인가?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영화를 정신적 여정으로 이해하게 한다. 영상의 움직임이 인간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모방해 만들어졌기에 영화는 인간의 정신에 호소할 수 있다. 심리적으로 말하자면, 영화는 필름이나 화면 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에 그 사실성을 부여하는 관객의 정신 속에 존재할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는 움직임의 재생산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단계에서부터 감정과 허구의 가장 정교한 단계에 이르는 정신의 기능을 재현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의 주관적 이미지를 정신적으로 혼란에 빠진 주인공들을 통해 보여준다. 그것은 일종의 마인드 게임이다. 유령적인 캐릭터들, 혹은 이미 죽었거나 거의 죽음 상태의 인물들의 이야기이다. 여기서 영화는 우리들에게 무의식을 포함한 밤의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제 마지막 여행이 남았다. 오디세이의 귀착지에는 존 카사베츠의 <사랑의 행로>(1984)가 있다. 피터 보그다노비치가 ‘오손 웰즈 이래 가장 눈부신 미국의 이단적인 영화감독’이라 불렀던 카사베츠의 영화는 생전에 너무 독특해서 무시당했고, 종종 어설프고 조잡한 영화로 비판 받았다. 이미지의 연결은 불합리하고, 줄거리와 플롯은 느슨하고 인과관계는 불명확하며 인물들의 연기는 어색하고 과장스럽다. 하지만 카사베츠의 영화에 담긴 즉흥성과 서투름은 존재의 공복에 시달리며 강렬한 삶을 욕망하는 인간의 내밀한 삶의 비밀에 접근하는 태도에서 나온 것이다. 카사베츠의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미완성의 예술이다. 그는 완성의 작가가 아니라 ‘과정’, 혹은 ‘됨 becoming’의 작가이다. 그의 카메라는 마치 폭풍 속을 돌아다니는 것처럼 인물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프리재즈처럼 즉흥적으로 인물을 담아낸다. 그렇다고 영화 속 사건들이 실제로 즉흥적인 것은 아니다. 카사베츠는 ‘생생한 경험은 드라마틱한 경험만큼이나 관습의 산물일 수 있다’고 여겼다. 가령, 그의 영화에서 즉흥적인 것은 대사가 아니라 무대화된 연출이다. 그는 대사를 배우에게 제공하지만 그럼에도 그 역할이 무엇인지는 결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배우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가 뒤따른다. 마치 다큐멘터리에서 카메라가 실제 발생하는 사건을 포착하는 것처럼 배우들의 퍼포먼스에서 발생하는 사건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랑의 행로>의 한 장면에서 지나 롤랜즈는 택시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발 참을성을 갖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면 해요. 왜냐하면 내가 정확하게 지금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카사베츠는 방향 잃은 사람들의 여정을 흐름으로 포착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랑의 흐름이다. 사랑은 존재의 모든 부분을 생기 넘치게 해주는 강렬한 에너지이다. 카사베츠는 자신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자기만의 철학을 갖길 원했고, 그 철학이란 어떻게 사랑할지를 아는 것이고, 어디에서 사랑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분노와 적대감, 그리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그의 영화에서 흐릿한 빛과 어둠, 화면을 파괴하는 예측 불가능한 움직임들은 에너지와도 같은 사랑의 흔적이자 자취다. 그는 공간을 점유하는 대상과 인물보다는 그들을 감싸는 힘과 흐름, 그것의 분위기, 존재의 내적 움직임, 순간의 열정을 포착하는 것을 중요시했다. 인물들은 알코올로, 광기로, 사랑의 실패로 쓰러진다. 그들은 모두 영향력 아래에 있다. 카사베츠는 해체의 순간을 추적한다. 그는 몸을 붕괴시키는 것에 관심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체는 회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들뢰즈가 지적하듯이 앙토냉 아르토가 “나는 삶을 잃고, 모든 수단을 통해 나의 자리를 되찾으려 하는 사람”이라 말했던 것을 카사베츠에게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붕괴의 지점에서 존재가 갱신되는 것을 기대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지나 롤랜즈가 놀라운 방식으로 연기하는 인물들의 상황이다. 카사베츠의 독창성은 불안에 사로잡힌 인물들의 내적 여정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영화화했다는 점에 있다.

글|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천국은 어떤 임금이 자기 아들을 위하여 베푼 혼인잔치의 상황과 같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 구절은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입은 자는 적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문득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이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선택’이란 표현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2006년에 시작한 이 영화제는 참여하는 영화인들이 그들 각자의 영화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백지수표’라 부르는 이런 방식은 영화가 선택하는 영화인에 의해 소환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영화는 우리가 다 볼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렇기에 언제나 선택해 보는 사람에 의존하게 됩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 것이 영화의 진실입니다. 선택받는 영화가 있는 만큼 결국 선택받지 못하는 영화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낙원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이 초대에 응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 중에서도 일부만이 잔치에 참여합니다. 이 구절에 따르자면 이들 중에서도 아마 일부만이 택함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문득 떠오른 이 구절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택함’입니다. 영화를 선택하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나 영화를 보러 오는 관객들 모두는 선택하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보는 행위는 적극적인 선택의 과정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화를 선택하고 있다는 말은 어쩐지 이상해 보입니다. 영화에 관한 한 우리는 언제나 피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가 아니라 영화가 우리들을 선택해 왔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의 세르주 다네가 시네필의 상황과 관련해 ‘우리의 유년시절을 지켜보았던 영화들’이라고 말할 때, 영화와 우리의 관계는 역전됩니다. 그 비슷한 경험을 하는 이들도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끄러미 스크린에 떠오르는 얼굴을 쳐다볼 때, 우리가 그들을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인지 혼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령, 이번에 개막작으로 선정된 1925년에 만들어진 <황금광 시대>는 90여년의 시간 동안 극장에 앉아 영화를 보는 관객들을 지켜보았던 것입니다. 관객은 영화의 초대에 응했던 손님들이고 그들 중 택함을 받은 이들이 다시 이 영화를 선택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결국, 친구들의 선택은 거주할 장소를 잃어버린 영화를 시네마테크라는 장소에 입양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왜 영화들을 이곳에 입양하려 할까요? 다네의 표현을 빌자면 그것은 영화들이 보답으로 우리를 입양해주기 바라서입니다. 영화의 천국에 택함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영화가 우리를 지켜보았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이 아닙니다. 시네마테크가 처음 문을 연 것은 우리들의 의지일 수 있겠지만, 그 이후의 모든 일들은 결국 영화가 해왔던 것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지만 결국 영화들 덕분에 시네마테크는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재정적 지원이나 친구들의 후원, 관객들의 노력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영화가 아니었다면 이곳은 유지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어떤 해에는 ‘이번이 마지막 영화제일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치렀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올해에도 영화제가 열리는 것은 영화가 우리를 지켜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시네마테크에서 보았던 영화만이 아니라 시네마테크가 자라는 것을 지켜보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2012년은 시네마테크가 개관한지 10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년은 되돌아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영화의 오랜 역사를 반복해 체험하는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교훈은 이런 것입니다. 당연히 존재하는 영화란 없다는 것입니다. 영화제를 치르는 것은 사실 선택이 아니라 언제나 수십 편의 영화들을 목록에서 지우는 것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언제나 부재와 마주하면서 만이 영화의 존재를 긍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10년의 시간이 의미를 지닌다면 결국 이제 우리를 지켜볼 수 있는 영화들을 얻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글|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