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똘>, <어이그 저 귓것>, <이어도>까지 본격 제주도 영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오멸 감독이 일본을 오가는 바쁜 일정 중에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제주도 4.3사건을 배경으로 한 <이어도>는 전작의 유쾌함과는 정 반대로 깊은 무게감을 지닌 영화였다. 같은 주제로 벌써 또 다른 영화 촬영을 끝마쳤다는 그는 제주도의 아름다운 공간들이 아직 4.3사건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작품이 언제나 궁금해지는 오멸 감독과의 <이어도> 상영 후 이어진 2월 ‘작가를 만나다’ 현장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까지 공연 때문에 일본에 있다가 어제 귀국하셨다. <이어도>는 정말 극장에서 봐야할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최근에 봤던 어떠한 한국영화보다도 강력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먼저 마지막에 나오는 건 하나의 노래인지 자막이 뜰 때 잠깐 나왔는데 어떤 노래인지 궁금하다.
오멸(영화감독): 제주도 시인인 고정국 시의 일부분에 박순동이라는 친한 후배가 곡을 붙였다. 가사가 워낙 힘들어서 멜로디만 만들어두고 도저히 곡을 못 붙이겠더란다. 그래서 멜로디를 계속 밤새도록 틀어놓고 읊조리면서 자기 연습실에서 MP3로 곧바로 녹음을 한 거다. 8분이 좀 넘는 곡이다. 그게 원곡인데 앞에 몇 초 정도 간주를 1시간 20분으로 늘렸다.

김성욱: 시는 영상으로 봤을 때는 4.3사건을 다룬 것 같다.
오멸: 맞다. 1948년에서 54년까지, 제주도에서 정확하지는 않은데 약 3만 명에서 많게는 8만 명이 학살되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쓴 시다.

김성욱: 영화전체의 느낌과 이미지는 시와 노래에서 대부분 착상된 건가?
오멸: 아니다. 원래 시나리오를 먼저 쓰고 영화 찍기를 준비하던 중 이 음악을 듣게 되었다. 원래 저런 형식의 영화를 하고 싶었는데 음악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본가는 배에서 듣다가 뜬눈으로 밤을 새게 되었다. 그때 썼던 시나리오를 이 음악이 싹 가져가버리는 느낌을 받았다. 오히려 영화처럼 선명한 영상들이 스쳐가서 이 음악 자체가 영화이지 않을까 생각을 했고, 모든 다른 계획을 포기하고 이 음악 하나만 사운드로 써야지 하고 작업 했다.

김성욱: 최근에 촬영을 다 마친 영화도 4.3사건이 주제다. 제주도에서 태어나고 자라셨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더 각별할 거라고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에게 있어서 4.3은 어떤 의미인지.
오멸: 솔직히 대학 때까지 4.3이 그렇게 큰 사건인지 몰랐다. 워낙에 쉬쉬했던 일이라서 부모님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 페스티발을 한 8년 정도 운영하며 가는 데마다 마을 주민들한테 4.3 관련한 얘기를 듣게 되는 거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국제공항 활주로에서도 아직 시신 발굴이 안 되어 있다. 많이 아시는 전방폭포도 그렇고. 제주도의 아름다운 풍경이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곳들이 많은 분들의 피가 뿌려졌던 곳이라는 걸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작품을 준비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공간은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침묵)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져서.. 이 이야기만 하려면 계속 가슴이 답답해진다. 오름이 구름으로 덮이는 장면이 있는데, CG를 쓴 게 아니다. 군인헬멧을 조연출이 안 가져와서 2시간 거리에 다녀와야 했다. 촬영이 미뤄지다가, 두 번째 테이크에 갑자기 순식간에 구름이 하늘을 다 덮었다. 그 순간, 바람도 구름도 햇빛도 억새, 모든 것들이 우리가 찍는 걸 기다렸다는 느낌을 받았다. 4.3과 관련된 작품을 또 하고 있는데, 4.3 영혼들이 있다면 공간, 자연, 바람들이 기억했다가 우리와 만나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성욱: 아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한 컷도 없었던 것 같다. 혹시나 아이도 죽은 게 아닐까, 엄마가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했는데, 후반부에 군인이 등장한 후 아이는 사라진다. 마지막 장면을 염두에 두고 아이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오멸: 우선은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면 실제 아이를 감히 쓸 수가 없었다. 촬영하는 내내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아이는 살아있는 대상일까 죽어있는 대상일까, 있나 없나, 여러 가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보여준다, 안 보여준다를 떠나서 누군가는 허술하다 볼 수 있겠지만 누군가는 또 자신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라는 얘기도 한다. 실제로 엄마는 서로를 마주보는 포즈로 아이를 바라본다. 그래서 아이는 거울일 수도 있다. 찍으면서 나름대로 아이한테 이어도라고 이름 붙였다. 희망의 공간인 거다. 그런데 실제 아이가 있다면 제주도 사람들한테는 희망이었으니까.

김성욱: 단순하게 자연을 찍었다는 느낌을 초과하는 느낌이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볼 수 없겠다는 몇몇 장면이 있는데 물질을 하기 위해 들어가는 발자국이 있고, 들어가고 나서 순간적으로 커트가 되고 나서, 뭔가를 끌고 나오는 자국이 선명하게 남고 여인은 화면에서 사라지고, 그 이후에도 카메라는 여전히 보여준다. 말씀하신대로 하면 풍경 안에서 남겨져있는 흔적을 담아내려는 느낌이 있어서, 그런 장면이 있었던 것 같다. 한편, 여인이 항아리에서 뱀인지, 구렁인지를 빼서 던지는 순간이 있다. 뒤에 이어지는 것으로 보면 앞으로 있을 위험이나 불안이 강화되는 느낌이 있었다.
오멸: 우리나라 시골 정서는 그러지 않을까 하는데, 제주도에서는 한 집 당 한 마리의 구렁이가 산다고 했다. 집 뱀이라고 집을 지키는 구렁이이다. 그런데 어린 엄마는 삶의 무게를 이제야 체험하고 있다. 우리도 아직 뱀을 경계의 대상으로 알고 있지 않나. 할머니들은 품고, 그냥 둔다. 아직 미숙한 어린 엄마가 대처하는 방안은 뱀을 몰아내는 것이다. 집을 지킨다는 개념의 구렁이가 물독에 빠져 죽어있는 건 전체에 대한 암시로 작업했다. 그리고 그 시대에 집 안에 제일 가까이에 있는 동물이라 생각했다.

관객1: 제주도에 최근에 다녀온 느낌과 겹쳤는지 모르겠는데 전체적으로 계속 영화가 흔들리는 것에서 배를 타고 뭔가를 바라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도민의 시선이라기 보단 타지의 시선이라고 느껴지는 게 있었다.
오멸: 장면 하나하나 어떻게 앵글을 잡을지 초반에 고민했을 때, 사진 찍듯 하려고 했다. 그렇게 마음을 먹게 된 건 카메라가 5Dmark2였기 때문이다. 사진기로 찍는데 영화처럼 액션을 화려하게 하기보단 사진처럼 앵글을 잡아보자, 했던 거다. 그런데 조금 흔들리면 배처럼 그런 무빙이 생긴다. 그걸 의도해서 만든 건 아닌데 카메라감독이 이 공간 안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핸드헬드로 작업하면서 바라보는 사람의 호흡을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처음엔 장비가 부족해서 무게중심을 못 맞췄다. 그러다보니 초반에 다른 때보다 움직임이 과하다.


관객2: 흑백으로 찍은 이유와 대사가 하나도 없는 이유가 궁금하고, 해녀 물질하러 가기 전에 우뚝 서있는 장면은 어떻게 이해해야하는가.
오멸: 해녀의 그 모습은 어떻게 보면 제주도가 갖고 있는 이미지 중에 불편한 모습이다. 예전에 선데이 서울 이런 잡지들을 보면 해녀들이 저런 포즈로 달력에 있는 사진이 있었다. 제주도 해녀의 모습을 비하하려고 한 게 아니라, 영이라는 친구를 바라볼 때 어떤 때는 비참해 보이는 장면에서부터, 그 장면에선 달력사진처럼 작업을 해서 해녀의 고단한 삶을 다른 눈으로 보는 모습으로 표현을 하려 했다. 그리고 흑백은 40년대 누군가 영화를 만들었다면 당연히 여건상 흑백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더 솔직한 답변은 칼라로 시대극을 찍으면 감당이 안 되는 부분이 많다. 그리고 전공이 한국화여서 흑백이 갖고 있는 색의 깊이는 무한하다고 알고 있다. 소리 역시 눈으로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작업한다. 바람소리와 음악소리에 영이가 하고 싶은 말이 묻어나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영이가 우는 장면이 있다. 편집하는데 계속 누군가가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그러더라. 개인적으로는 소리가 없어서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마지막 8분으로 가는 과정의 다리라고 치면 말을 많이 아낌으로써 8분의 가사에 힘을 더 실어주기로 했다.

관객3: 정확히 기억이 안 나는데 중간에 2~3초 정도 암전이 있었던 걸로 기억이 된다. 특별한 의미가 있나.
오멸: 여자와 군인이 만나는 첫 장면, 그 순간의 통증이 지금 살아오고 있는 시점까지 지속이 되고 있기 때문에 만남의 순간을 돌아보면 체험했던 분들에겐 숨이 끊길 것 같은 지점이 아닐까. 그래서 유일하게 그 지점만은 암전을 주었고, 소리를 끊고 정적을 주어서 시작점에 대한 개념으로 작업했다.

김성욱: 영화에서 아이가 하나의 이어도라고 하면, 보이지 않으니 부재하는 느낌도 있다. 그런데 마지막에 이르면 정말로 부재하거나 사라지게 되거나 빼앗기게 되는데,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부재하는 남편의 느낌이 상대적으로 적게 표현이 되고, 학살의 느낌이 아이에게 더 집중이 되는 듯한 느낌이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이와 남편을 다 잃게 되는 상황이지 않나. 전자의 경우가 상대적으로 좀 더 약화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의 설정이 있었을 것 같다. 영화의 마지막에 군인이 여인의 시점에서 굉장히 분명하게 보여 지고 있는데, 그 부분도 어떻게 할지도 고민을 하셨을 것 같다.
오멸: 군인이 나오는 장면들도 이야기에서 보면 부담이 되는 상황인데, 이 역시 일상에 들어오는 순간으로 맞이하자고 했다. 이 작업을 대하는 태도는 뭐였냐면 드라마로 이야기로 전달을 해 주는 게 아니라 이미지가 중첩 되서 드라마가 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드라마의 줄기를 강화시킨다기보다 이미지의 중첩을 주면서 드라마를 찾을 수 있는 방법, 그쪽으로 고민을 많이 했다. 이미지가 주는 힘은 시간을 초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드라마에 대해서 설명이 모호하거나 굳이 제가 설명하려고 애쓰지 않았던 부분도 있고 이미지 안에서 유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군인에 대한 건 솔직히 돈 있으면 뒤에 아주 SF로 하고 싶었다. (웃음) 영화의 끝 지점을 ‘왜 이 긴 시간 동안 참아왔는데 이게 나타나지’ 이렇게 표현하고 싶었다. 또 뒤에 가사가 있으면 좋겠다, 없으면 좋겠다, 말이 많았다. 선명하게 얘기하자, 끝 지점에 오면 명쾌하게 밝히는 게 좋지 않겠나 싶어서 그렇게 작업했다.


김성욱: 마지막으로 최근에 촬영을 끝낸 4.3사건 관련 작품 제목이 특이하다.
오멸: 가제가 <꿀꿀꿀>이다. 가제여서 제목이 바뀔지 어떨지 모르겠는데 왜 돼지우는소리냐 하도 많이 들었다. (웃음) 동양철학에 보면 십이지신에 용은 십이지신의 다른 동물들의 형체를 가진 동물이고, 돼지는 다른 동물의 기운을 흐르게 하는 동물이라 한다. 조지오웰 보면 돼지가 대장으로 나오는데 그만큼 영리한 동물이다. 그런데 그 기운을 이제 용한테 뺏겨서 바보가 됐다는 이야기가 있다. 돼지가 울 때 평소에 꿀꿀꿀 하며 울지만, 죽을 때는 돼지 멱따는 소리라고 표현하지 않나. 그런데 그 울음소리가 다른 여러 가지 동물의 울음을 섞은 소리라고 한다. 다른 동물들의 고통을 합친 소리이다. 이게 제주도민들의 울음소리이다. 어감으로는 밝아 보이지만, 응어리진 가슴에 대한 이야기를 말 못하고 살아왔다. 그 응어리진 울음을 <꿀꿀꿀>이라고 가제를 붙여 놨다. 내가 살아온 이야기들, 느낀 것들에 다가서려고 하다보니까 제주도라는 섬을 많이 다루게 된다. 제주도를 바라보실 때 관광지로 많이 바라보시긴 하는데, 요즘 강정도 그렇고 여전히 통증이 있는 섬이니까 다른 시선으로 보아주셨으면 한다. 여행자의 눈으로 와주시면 좋겠다. 여행자는 삶에 대한 관심이 많은 눈으로 걸어 다니니까. 제주도를 다른 눈으로, 애정 있는 눈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정리: 김휴리(관객 에디터) | 사진: 최용혁(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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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작가를 만나다 -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

올해 첫 ‘작가를 만나다’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가운데 좀 특별한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주로 고전영화를 틀고 즐기는 이곳에서 배창호 감독의 신작 <여행>의 프리미어 상영이 있었던 것. 올해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에서 열정적인 축사로 관객들을 감동에 빠지게 만들었던 배창호 감독이기에 이 시간은 더 각별했다. 배창호 감독은 “2008년에 특별전을 하면서 다음 작품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첫 시사를 했으면 했는데, 원한바대로 여기서 상영하게 되어 기쁘고 첫 데뷔처럼 가슴이 설렌다”며, “일상 속에서 건져 올린 작고 소박한 이야기가 담긴 제주도로의 즐거운 여행을 같이 떠나자”고 말했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펼쳐진 배창호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 짧아 아쉬웠으나 진실한 감동으로 교감했던 그 만남의 순간들을 옮겨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를 보면서 세 편의 에피소드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를 생각했다. 한편으로 보면 제주도가 삼다도라 돌, 여자, 바람이 각각의 에피소드를 구성하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에피소드를 구성하면서 어떤 점에 착안하셨는지, 그리고 영화를 만든 배경도 간략히 밝혀주신다면.

배창호(영화감독): 우선 좋은 기획을 해준 오동진 대표, 회사 분들, 무엇보다도 내 짜증을 묵묵히 받아준 스텝들의 노고가 아주 컸다. 지난 3월에 영화사 대표로부터 한국의 자연이 소개되기만 한다면 나머지는 완전히 자유로운 영화를 저예산으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원래 나는 자연을 넣는 것을 좋아해서 흔쾌히 받아들였고, 두 사람의 상의 끝에 제주도로 의견이 모아졌다. 제주도는 우리나라 자연 중에서 가장 독특하며,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서다. 곧 여행이라는 제목과 가장 보편성 있게 제주도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첨엔 세 편을 다 여행이야기로 구성할까도 했다. 세대를 달리하여 20대의 여행, 신혼부부의 여행, 중년여성의 여행으로. 그러나 1부를 찍고 나서, 세 편 다 여행이면 모두 외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삶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2부는 여기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다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1부는 같이 각본을 썼던 제자들의 체험이 바탕이다. 제목처럼 큰 욕심 없이 산뜻한 제주도의 경관을 보면서 추억도 남기고, 티격태격 싸움도 하고, 사랑도 하고 하는 과정을 만들자는 거였다. 2부는 아침 촬영 전 산책을 하다가 한 해녀가 물질하고 나오는 것을 보고, 여기 사람들을 찍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2부 여중생의 대사는 딸의 상상력을 통해 썼고, 3부는 나의 아내 김유미 씨랑 같이 썼다.


누구나 배우가 될 수 있다!

김성욱: 시간이 짧게 준비돼 있으니, 곧바로 영화를 보신 관객 분들의 이야기와 질문을 받아보도록 하겠다.

관객1: 영화 너무 잘 봤다. 1부에 스쿠터 여인이 나온다. 갑작스럽게 정체불명의 여인이 나타나서, 그녀가 3부에서 김유미 씨가 연기한 여인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맥거핀 효과를 노린 것인가.

배창호: 맥거핀적인 효과를 주려고 한 것에 대해서라면 반은 맞다. 남녀 둘만 가면 밋밋한 구조니까 궁금증을 주려 했다. 특별히 미스터리가 있는 여자는 아니지만, 그런 여자의 삶을 우리가 가까이 들여다보면 3부의 여인 같은 삶처럼 될 것이다. 만약 프리프로덕션을 1년 정도 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했더라면 그렇게 출연이 겹치게 됐을지도 모르겠다. 2부와 3부는 은희가 빵집에서 울고 있는 여중생을 만나는 장면을 통해 연결하려 했는데, 너무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될 것 같아 뺐다. 우리가 여행 중에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삶을 가까이 느끼면 그러한 삶이 있고, 우리가 수수께끼로 여기는 여자의 삶도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면 그런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쓴 거다.

 

관객2: 와 닿는 대사가 많았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남자는 디카를, 여자는 필카를 가지고 사진을 찍는데, 그렇게 나눈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여자가 디카, 남자가 필카의 감성이 더 잘 어울린다 생각 했는데. 그리고 한 가지 영화 속 인물들이 전부 전문 배우들 같지는 않은데 특히 두 번째 에피소드는 제주도 현지 사람 얘기라 제주도 출신 비전문 배우도 있었을 것 같다. 어떻게 캐스팅을 한 건지.

배창호: 디카와 필카의 문제는 많은 회의 끝에, 젊은 스텝들의 판단에 맡겼다. 심리구조의 깊이까진 생각 못했지만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 연극배우는 있지만, 영화출연 경험자는 김유미 씨를 제외하곤 거의 전무하다. 나는 집중력과 편안함을 주면 모두 다 배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자기와 비슷한 삶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의 체험밖에 없다. 2부의 해녀와 여중생의 경우 두 팀으로 나눠서 캐스팅을 했었다. 연기 경험자를 오디션해보니 감정이 깊고 좋았으나, 제주도 사람 같은 사실감의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비경험자의 진짜 제주도 느낌이 나오는 덜 가공된 느낌으로 가기로 한 거다. 캐스팅은 일종의 용병술로, 영화 영화마다 다르다.

 

삶의 한 때를 되돌아보는 정서적 느낌 주고파!

 

관객3: 2부에서 엄마가 수원에 있다가 제주도로 돌아온 이유가 궁금하다.

배창호: 엄마 캐릭터는 내가 비금도라는 섬에서 민박을 했을 때, 실제 그 민박집의 집나간 며느리의 사연을 들었는데, 그 이야기와 접목한 것이다. 섬이란 곳은 외부인들에게는 들어와서 아늑한 곳이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떠나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외지로 나가더라도, 귀소 본능이라는 것이 있고, 삶이라는 게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런 여자의 삶을 그렸다.

 

관객4: 감독님을 다시 뵙게 될 날을 2년간 기다렸는데, 다시 이렇게 영화로 만나 뵙게 되어서 감동적이다. 김유미 씨는 너무 아름다웠다. 3부에서 김유미 씨가 ‘긴 머리 소녀’ 노래를 부를 때 타원형의 거울을 본다. 이때 그것이 거울이 아니라 사진을 포착하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학창시절 사진으로 넘어간다.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사진이나 메모를 하는 것들이 중요한 매개체로서 서로 회복시키고, 관계를 개선시키고, 추억하는 역할로 나오던데, 그런 장면을 넣은 의도가 있으신지. 개인적으로 사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거울처럼 현재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반영하는 매개물이라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 배웠다. 감독님이 오래오래 사셔서 오늘 이 영화처럼 우리를 항상 회복시키고 치유해주는 영화들을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

배창호: 고맙다. 나도 그 사진장면을 좋아한다. 영화에서 본질적으로 하려고 한 이야기를 잘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아까 누구든지 연기를 할 수 있다고 한 것처럼, 삶의 모든 것이 다 영화화 될 수 있다. 이번에는 사진 자체의 느낌들이 영화의 성격에 맞는다고 느껴서 의도적으로 넣었고, 3부의 여주인공 사진은 삶의 한 때 모습을 되돌아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삶을 드라마틱하게 인위적으로 구성하지 않더라도, 일상에 있는 것을 잘 선택하여 배열하면 우리에게 정서적 느낌을 줄 수 있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김성욱: 오늘 객석에는 여러 감독 분들이 관객으로 와 계신다. 봉준호 감독도 오셨는데 한마디 하신다면.

봉준호: 영화 너무 잘 봤다. 여중생 연기한 학생의 얼굴이 인상적이고 좋았다. 물론 학생이니까 비직업 배우겠지만, 학생 극단 같은 것도 아닌 평범한 여중생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는데, 어떻게 작업을 하셨는지 궁금하다.

배창호: 여중생 지은 양은 제주도 연기학원에 몇 년간 다닌 친구다. 연기 경험은 처음이었고, 극중 할머니는 모노드라마를 하는 민속극 배우셨다. 연출부에게서 지은 양이 두세 시까지 대본연습을 하고 잘 때도 시나리오를 배에다 올려두고 잤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 정도로 열의가 있었던 것 같다.

 

허물을 벗고, 인물 그대로 소박하게 그리려 했다!


 

김성욱: 나는 이 영화가 굉장히 젊은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님 이름이 없다면 대사나 전체적인 구성 면에서 학생이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는 관객도 있을 거 같았다. 예전의 영화들과 비교해보면 색다른 ‘젊은’ 느낌이었다. 마지막으로 작업하신 소회를 말씀해 달라.

배창호: 대학교수직을 사임하고 나의 연출적인 면을 많이 뒤돌아 봤다. 연출자적인 것을 좀 버려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이런 소재를 만나서, 내가 보는 시선보다는 그냥 인물이 느끼는 대로 소박하고 겸손하게 가려고 했다. <황진이> 이후의 작업들이 사실 화려하고 멋있게 연출해보고 싶은 욕심을 버려오는 과정이었는데, 이번에는 허물을 벗듯이 확 벗어버리려 했다. 사실 내가 동시대의 영화, 동시대 젊은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를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 인간의 열등감, 어둡고, 비겁한 면들을 냉소적으로 그리는 영화들이 유행처럼 많이 만들어지는 상황에서 말이다. 그런데 같이 일한 사람들을 통해 아직 우리 영화계가 건강한 구석이 남아 있듯이 인간에게도 그것이 남아있다는 자신감을 얻어서 영화를 할 수 있었다. 이번에 고집을 많이 버렸다. 많이 열어놓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소중히 들으니, 소박하고 보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된 것 같다. 나는 언젠가는 밋밋하지만 생수 같은 영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믿는다. 요즘은 양념을 많이 치고 자극성이 강한 영화들이 많은데, 결국 탈이 나면 찾는 것은 물이고, 물맛은 밋밋하지 않은가. 이 영화가 제주도의 삼다수와 같은 영화가 되길 바랐고, 여기 계신 분들이 그 영화를 좋아하셨다면, 앞으로 이런 분들의 숫자가 더 많아져서, 자극적이지 않고 밋밋하지만 우리 몸에 좋고 시원한, 물리지 않는 생수 같은, 물 같은 깨끗한 영화가 더 나오기를 바란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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