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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Review

[Review] 가족 집단의 붕괴를 다룬 영화 -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은 아버지의 폭력으로 인한 가족 집단의 붕괴를 다룬 영화다. 콜로라도 주 오버룩 호텔의 겨울 관리인으로 일하게 된 소설가 지망생 잭 토런스(잭 니콜슨)가 서서히 미쳐가면서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려 한다는 단순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큐브릭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대중 관객들의 호흡에 밀착해 있다. 또한 공포영화로서 충격 효과와 서스펜스를 유발하는 데 있어서 단연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영화의 리듬은 관객이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할 만큼 탄력적인 속도감을 드러낸다. 비주얼과 사운드의 조응은 거의 교과서적으로 보일 정도다. 영화는 원작 기본 플롯을 그대로 가져오되, 주인공 잭 토런스의 캐릭터를 좀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잭은 직업 윤리에 집착하지만 아내 웬디(셸리 듀발)에 .. 더보기
개막작: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 시대'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채플린은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어머니를 봐야 하는 고통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가 완전히 정신병원에 갇힌 뒤에는 경찰의 일제 단속에 걸려드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켄싱턴 로드의 벽을 따라 숨어 다니던 9살짜리 부랑아였던 것이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사회의 하층계급'에 속했다. 자주 이야기되어온 그의 유년 시절을 내가 다시 언급하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 속에 폭발적인 것이 있음을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영화들을 찍기 위해 키스턴 영화사에 들어가려 할 때 채플린은 뮤직홀의 동료들보다 빨리, 멀리 뛰었을 것이다. 그는 배고픔을 묘사한 유일한 영화인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겪은 유일한 영화인이기 때문이다. 1914년 그의 영화필름들이 유통되기.. 더보기
[Review] 허무와 무의미, 무기력의 뜬구름 - 나루세 미키오의 '부운'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대표작 은 일본에서든 서구에서든 가장 사랑받는 영화이자 대표작이라 할 만하다. 이 작품 역시 나루세 감독이 즐겨 영화화했던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원작으로, 나루세 미키오의 ‘여신’ 다카미네 히데코가 주연을 맡았다. 그러나 은 여러모로 감독의 다른 영화들과 다른 면모를 보인다. 단적으로, 주인공 유키코는 나루세 감독의 다른 여주인공들과 달리 주체적이지도, 자립적이며 생활력이 강하지도 않다.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피하며 가는 곳마다 여자들과 정분이 나는 남자 도미오카에게 한없이 매달리고 그의 사랑을 갈구한다. 심지어 그녀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도 그녀는 번번이 그를 따라나선다. 그런가 하면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미군과 연애(!)를 하거나, 자신을 겁탈했던 사촌오빠를 찾아가 기.. 더보기
[Review] 스탠리 큐브릭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스탠리 큐브릭은 21세기 들어 재평가의 목소리가 가장 높은 작가 중 한명일 것이다. 좋은 의미로서의 재평가는 아니다. 이를테면 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엄격한 의미에서 말하자면 큐브릭은 작가가 아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쓴 적이 없고, 대부분의 영화가 소설 각색물이며, 또한 어떤 이야기가 가장 센세이셔널할 것인가를 고민했기 때문에 오히려 스튜디오 시스템에 가장 적합한 감독이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는 '작가'라는 이름 자체에 거품이 지나치게 낀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큐브릭은 오히려 테크놀로지 미학 자체를 이야기에 융합시키거나, 둘의 불균질함을 영화적 해법으로 이용하는 감독이었다. 그리고 그 큐브릭 특유의 영화적 특징이 가장 먼저 막을 올린 영화가 다. 피터 조지의.. 더보기
[Review] 구로사와 아키라의 '붉은 수염' 구로사와 아키라와 도시로 미후네 콤비의 마지막 작품인 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구로사와 아키라의 영화 작품 중 분기점에 해당하는 영화이다. 이후로 그의 영화는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갔으며, 미후네 도시로와 함께 했던 시기의 파워풀하고 오락적인 측면은 이후 1970년대 그의 영화들에서는 볼 수 없다. 1950~60년대가 그의 커리어에서 있어서 전성기였다고 하면, 1970년대 이후의 영화들은 일본 영화의 천황이라는 아이러니한 명칭으로 불리면서도 거대한 스케일의 실험을 거듭했던 후기 구로사와 영화의 또 다른 행보이다. 은 도시로 미후네의 매력뿐만 아니라 1960년대 구로사와 아키라가 보여주었던 모든 영화적 요소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에도 시대 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는 .. 더보기
[Review] 탈계급화된 인물과 마주하다 -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 여기 세상을 향해 단 한순간도 표정을 풀지 않는 한 소녀가 있다. 소녀의 소원은 단 하나, 빼앗긴 일자리를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시는 누구에게도 결코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캠프촌의 트레일러에 사는 소녀는 알콜에 찌든 엄마를 보살펴야 하고, 가스와 수도비와 월세를 내야 한다. 모든 것을 혼자 책임져야 하는 소녀의 일상은 언제나 벼랑 끝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다. 그런 소녀에게도 어느 날 자신을 다정하게 쳐다봐주는 남자친구가 생긴다. 지긋지긋한 엄마를 피해 남자친구의 집에서 처음으로 일상의 굴레를 잠시 벗어두던 밤, 소녀는 혼자 속삭인다. “넌 친구가 생겼어. 난 친구가 생겼어. 넌 정상적인 삶을 산다. 난 정상적인 삶을 산다. 넌 시궁창을 벗어난다. 난 시궁창을 벗어난다.” 이 작은 .. 더보기
[Review] 스필버그 키드의 새로운 스필버그 영화 - J.J 에이브람스의 <슈퍼 에이트> 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발화되는 열차 전복 장면은 꽤 상징적이다. 뤼미에르 형제의 (1895)이 영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것처럼 의 괴수를 실은 '열차의 도착'은 '스티븐 스필버그'라는 장르의 본격적인 출현을 예고한다. 지난해만 해도 의 그렉 모톨라, 의 숀 레비 등 스필버그에게 영향을 받은 '스필버그 키드'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 중 의 J. J. 에이브람스는 (1977)와 (1982)에 대한 오마주로 를 제작, 연출함으로써 좀 더 직접적인 계보를 형성한다. 스필버그 특유의 가족신화를 2010년대 버전으로 갈무리하는 것이다. 에이브람스 버전의 특수 분장에 관심이 많은 조이(조엘 코트니)를 필두로 감독지망생 찰스(라일리 그리피스)와 마틴(가브리엘 바소), 캐리(라이언 리), 프레스턴(작 밀스), 그리.. 더보기
[Review] 탐색의 곤경 - 존 카사베츠의 <사랑의 행로> 꿈의 파탄과 사랑의 붕괴의 지점에서 삶을 회복하기. 존 카사베츠의 실질적 유작인 (1984)는 이런 탐색의 곤경을 보여준다. 영화의 한 장면에서 지나 롤랜즈는 택시 운전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제발 참을성을 갖고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면 해요. 왜냐하면 내가 정확하게 지금 어디로 갈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카사베츠는 방향 잃은 인물들의 여정을 흐름으로 포착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사랑의 흐름이다. 사랑은 존재의 모든 부분을 생기 넘치게 해주는 강렬한 에너지이다. 카사베츠는 인물들이 자기만의 철학을 갖길 원했다. 그 철학이란 어떻게 사랑할지를 아는 것, 어디에서 사랑을 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이다. 분노와 적대감, 그리고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그의 영화에서 흐릿..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