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지속적으로 파장을 주며,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다”

시인 김경주가 말하는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지난 2월 16일,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의 상영이 끝나고 이 영화를 추천한 시인 김경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그는 영화 속의 크리스토퍼와 같이 곧 알래스카로 여행을 떠날 것 같은 차림이었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여행에 관한 책을 쓴 그는 <인투 더 와일드>와의 특별한 만남과 영화에 대한 각별한 인상을 전했다. 시인의 언어로 표현된 <인투 더 와일드>에 대한 대화의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영화평론가): 보고 나면 시인이 추천할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여행에 관한 영화로서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 중에 <인투 더 와일드>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영화도 드물다. 김경주 시인은 실제로 여행에 관한 책을 쓰기도 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여행이라는 테마에 집중했을 거 같다. 어떻게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고, 어떤 점을 좋아하셨는지.

김경주(시인): 이 영화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상당히 늦게 알게 되었다. 홍대에서 오랫동안 작업해오고 있는데, 유명한 레코드 가게인 레코드포럼을 지나가다가 <인투 더 와일드>의 영화음악을 듣게 되었다. 인상 깊은 음악들은 펄잼이라는 밴드의 보이스 보컬로 활동했던 에디 베더가 작업한 것이다. 음악이 주는 느낌이 좋아서 가게로 들어가 에디 베더가 새로운 음반을 냈느냐고 주인에게 여쭈었다. 에디 베더는 더 이상 새로운 음반을 내지 않는데 한 영화감독이 그에게 특별히 영화음악을 의뢰해서 탄생한 음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데 여행을 갈 때마다 이 음악을 들었다. 음악만 듣다가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고, 어떤 영화인지 궁금해서 찾아보았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꼈고, 함께 보고 싶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고, 삶에 대한 이야기이긴 하나,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가 어떤 책을 가지고 다녔는지에 대해 밀도 있게 설명되어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는 헨리 소로의 책이나 잭 런던의 책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크리스토퍼의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여행을 좋아하고, 또 책을 쓰는 사람으로서 상당히 밀도 높은 경험을 제공해줬던 영화였기 때문에 여러분들과 교감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으로 추천했다.


김성욱: 원작과 영화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인가.

김경주: 다큐멘터리북이기 때문에 구성이나 편집은 거의 비슷하다. 동생의 내레이션으로 표현되는 크리스토퍼에 대한 정보는 책에서도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특히나 크리스토퍼가 좋아해서 틈틈이 ‘중얼거리는’ 다양한 문장들이 책에서는 자세히 다루어진다. 원작을 보면 크리스토퍼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그는 사숙으로 책만이 진실을 전해준다고 믿었는데 여행을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삶의 진실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그렇게 사소하지만 놓치고 싶지 않은 작은 결들을 내 언어로 데려오기 위해서 그 ‘중얼거림’들이 중요했던 것 같다.


김성욱: 개인적으로 이 영화가 다루고 있는 시간성이 매혹적이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90년대 안에서 부모의 시간이었던 60년대가 느껴지기도 한다. 또 크리스토퍼는 1968년에 태어났고, 시대적으로 봤을 때 1990년대는 걸프전이 일어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인투 더 와일드>는 60년대에서 90년대로의 여행과도 같고, 크리스토퍼는 그 속에서 히피나 사회에서 뛰어났던 인물들을 만나는 것과 같다.

김경주: 물론 영화에서 68세대의 히피문화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비트세대라고 부르는 잭 런던, 잭 케루악, 앨런 긴즈버그에 대한 강한 오마주가 영화에서 느껴진다. 그러한 이 영화만이 가진 결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한 정보를 찾다보면 재밌는 이야기들이 많다. 80년대 말, 90년대 초반의 미국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떠나는 배낭여행지 1순위로 크리스토퍼의 버스가 꼽혔었다고 한다. 좋은 영화를 보면 공유하고 체험하고 싶지 않나. 이 영화를 보면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든다. <인투 더 와일드>는 그만큼 지속적인 파장을 주는 영화다.


김성욱: 나이가 드니까 떠나는 청년보다 청년을 바라보는 나이든 사람들의 모습이 와 닿았다. 시대적 맥락에서 보았을 때 90년대 초는 부시에 의해 걸프전이 일어났던 시기였고, 영화의 중간 중간에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서 그 점이 환기된다.

김경주: 크리스토퍼가 죽기 전에 ‘행복은 실재할 때, 함께 할 때만 존재한다’라는 자신의 생각을 헨리 소로의 『월던』의 행간에 새겨 넣는다. 개인의 가족사나 행복의 공유도 매우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개별적 관점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나의 가족사, 내가 겪은 일들에 대해 반추하게 되었다.



관객1: 현실을 봉합하지 않더라도 크리스토퍼가 가족들에게 돌아가기를 원했다. 크리스토퍼가 가족문제를 집착을 하고, 가족에게 복수하는 느낌이 강해서 안타까웠다.

김경주: 당시의 미국의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켰을 때 이해의 폭이 좀 더 넓어질 것 같다. 당시 68세대에 대한 시대적인 혼란, 가부장, 억압된 미국 사회 등 크리스토퍼가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이 가족이라는 결속력뿐만 아니라고 본다. 영화에 삽입된 에디 베더의 ‘Society'라는 곡에는 ‘내가 사라지면 사회는 나를 그리워해줄까’라는 가사가 등장하기도 한다. 가족에 대한 내러티브 외에도 또 다른 내러티브가 음악에서 등장한다.


관객2: 크리스토퍼는 화폐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돈을 태워버린다. 사실 가족주의는 자본주의에 포획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원작의 주인공은 가족주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데 감독은 오히려 가족주의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었다.

김경주: 비슷한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로드무비를 동생의 목소리를 통해서 가족주의로 이끌고 가는 느낌이었고, 생선의 비늘처럼 자꾸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의 작가는 크리스토퍼의 여동생이 그를 가장 잘 이해했던 사람으로 보았다. 원작이 르포 형식이기 때문에 감독 숀 펜이 그것들을 모두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크리스토퍼가 가족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여행을 시작했다고만 보기도 어렵다. 시대적인 결을 보면, 인물을 이해하기 더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알 듯, 모를 듯싶지만 분명히 다른 곳으로 건너간다는 느낌이 든다. 답을 찾기 보다는 그 느낌에 충실하면 좋을 것 같다.


김성욱: 끝으로 시인들이 영화를 볼 때 어떠한가가 궁금하다. 어떤 영화에 매혹을 느끼는지. 그리고 이야기를 하면서 다하지 못한 점이 있다면 들으면서 이 자리를 마치고자 한다.

김경주: 예술 장르마다 그러한 것들이 있겠지만 시만이 줄 수 있는 고유한 것들이 있다. 시에서 그것은 행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서 시의 행간과 같은 존재는 침묵인 것 같다. 속도가 빠른, 목적이 분명한 영화들도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침묵이 잘 표현된 영화를 좋아한다. 내러티브에 빨려 들어가지 않고 견디면서 생기는 균열들이 매혹적으로 다가온다.


정리: 배동미(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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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작은 몸짓과 시선이 전하는 통렬함

김성욱 프로그램디렉터가 말하는 시네마테크 선택작 ‘내일을 위한 길’

 

지난 1월 30일,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인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 상영 후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 영화는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작품 중 하나'라는 소회로 시작된 강연은 영화의 감흥을 곱씹을 수 있도록 한 시간이었다. 그 일부를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을 고르며 고민하던 중 문득 생각했던 작품이 레오 맥커리의 <내일을 위한 길>이었다. 노년이 되신 분들이 시대의 흐름에서 느끼는 고립감을 다룬 작품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 있지 않나. 무인도에 가져가고 싶은 영화의 목록들도 있지만, 삶의 마지막에 아마도 보고 싶은 영화들도 있다. 예를 들어 파스빈더는 삶의 마지막에 죽어가면서 더글라스 서크의 영화를 봤다고 한다. 나에게는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그랬지만, 후반부가 아주 인상 깊다. 부부가 작별을 고하기 위해 허니문을 떠났던 도시를 다시 방문하는 부분이다. 앞으로 서로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해 가는지,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왠지 뭉클하다. 영화가 아주 정갈하다.

이 영화에 대해 할 말은 많지 않다. 다만 몇 가지 사전적인 정보를 말씀드리고 싶다. 이 영화를 만들었던 시기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경제 불황이 계속되던 때다. 그렇기 때문에 은행의 차압이나, 일자리 부족 같은 문제가 많았다. 시기적으로만 보자면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와 비슷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또한 루즈벨트에 의해 사회보장제도가 처음 마련되던 시기였다. 영화의 후반부, "젊은 때 저축하라"는 표어가 나오는데, 그게 바로 이 보장제도에 대한 것이다. 사회적인 맥락에서만 보자면, 이 시대에 노년의 부부가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 것은 결혼 생활동안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주다 보니 아무 것도 남지 않은 불행인 것이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레오 맥커리의 개인적인 사정이다. 1936년에 레오 맥커리는 상한 우유를 먹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경험이 맥커리에게 죽음에 대한 불안과 민감성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개인적인 사연 때문인지 맥커리의 영화 인물들은 동시대 비고되는 프랭크 카프라의 영화 속의 인물들보다 어둡고 자기비하적이거나 불안, 혹은 민감함이 더 커 보인다. 비슷한 스크루볼 코미디를 찍어왔음에도 이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로, 1936년에 맥커리가 건강을 회복 한 후에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이와 관련해 영화 속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유추해 볼 수 있다. 1937년에 노인을 다루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레오 맥커리는 로렐과 하디, 막스 브라더스와 함께 코미디 영화를 찍어왔던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이렇게 슬픈 멜로 드라마를 만든 것이다. 노년의 멜로드라마, 이것은 장르적으로도 특별한 경우다. 이 영화가 맥커리의 가장 웃긴 영화라고 하는 <놀라운 진실>과 같은 해에 나왔다는 것은 놀랍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영화의 시대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일반적인 멜로드라마와 비슷하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레오 맥커리의 섬세한 연출이 돋보인다. 장면 편집, 카메라 워킹에는 화려한 부분이 전혀 없다. 하지만 한 장면 안에서 인물들을 위치시켜놓고 찍어 나가는 그 순간, 그 안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통렬함이 잘 표현되어있다.

 

공간 속에 있는 인물들이 보여주는 아주 작은 표정, 시선, 몸짓들이 관객에게 감정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브리지 게임을 하는 중, 헤어진 아내에게 남편의 전화가 걸려오는 장면을 보자. 카메라는 앞에서 전화를 받고 있는 그 아내를 관객들이 정명으로 보게끔 만든다.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은 중심인물들을 정면으로 보도록 만들거나 반대로 거꾸로 등져 보이도록 한다. 마치 중심인물들이 무대의 객석에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남편이라는 보이지 않는 대상을 향해서 아내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브리지 게임을 하고 있던 사람들은 소리가 커져가자 게임을 중단하고 그 모습을 바라본다. 이 장면이 지속되는 내내 그녀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며 그녀가 이 장면에서 초래하는 결과들, 그녀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바로 이런 것이 멜로드라마적인 통렬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영화 속에 많이있다. 양로원에서 온 편지를 보는 장면, 이 장면은 아주 심플하게 구성되어 있다. 양로원에 가겠다고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자 아들의 표정에는 잠깐 미소가 번지다가 다시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다. 하나의 장면 안에서 감정의 미묘한 상태가 변해가는 미니멀한 부분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한 위치와 시선, 몇 개 정도의 짧은 컷들이 복합되어 감정을 컨트롤 해 나간다. 특히 관객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하며 구성해 나가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17살 손녀딸 로다와 할머니가 이야기 하는 장면을 보자. 할머니는 손녀딸에게 17살 때는 모든 게 아름답게 보였고, 70살이 되면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고, 받아들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편의적으로 3막으로 보자면, 영화의 초반에 주인공의 집이 저당 잡히는 순간으로부터 모든 파국이 발생한다. 사실 이 출발점은 작은 사건에 불과해 보인다(아마도 얼마 후에 부부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라는 대사처럼). 이후의 이야기는 작은 헤어짐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알 수 없는 일로 흘러가는 것이다. 2막에서 부부는 헤어졌다가, 3막에서 다시 만난다. 1막과 2막은 가족의 이야기다. 그런데 3막이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는 이야기가 가족에서 소셜한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태도가 사회적인 영영에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자동차 장면을 보자. 노부부는 1막에서부터 '짐짓 그런 것인 척 한다'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3막에서 노부부에게 차를 판매하려던 사람 역시 차를 태워주며 그런척한다. 결국 부부가 차를 자랑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며 차를 살 형편은 아니다 라고 말 했을 때, 그 또한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다음부터 호텔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가족 관계에서는 잘 기능하기 힘들었던 일이사회적인 규모로 확장되어 진행된다. 가족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서 정작 노부부는 대우를 받고 있다. 3막의 부분은, 감독이 생각하는 가족을 넘어선 사회적 관계에 의한 대우랄까, 관계성의 회복에 대한 사회적 비전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 영화는 감정을 분명히 토로하지 않으면서도 감정을 관객들이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간다. 이 영화의 세계는 잘 구성된 세계인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이유가 다 있지 않나. 부모도, 자식들도 (부모를 모실 수 없는) 이유가 있고,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계 내에서 조그만 하나의 변화가 어떻게 이 전체를 교란시켜나가는가를 보여준다. 조화로운 질서의 파괴가 어떻게 작은 것에서 번져나가는지를 보게 된다.

 

정리: 김경민(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주원탁(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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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리뷰

전형적 장르 문법과 작가적 야심의 기묘한 충돌

- 알란 파커의 '페임'

 

시장통과 다름없는 예술고의 오디션 장면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더없이 진지한 얼굴로 자신과 어머니의 관계를 얘기하다 선생의 눈치를 보는 몽고메리의 자기소개에서 시작한 화면은 곧 무용과와 연기과, 음악과에 응시한 아이들의 실기시험 장면들을 빠른 속도로 훑는다. 그리고 지원서조차 제대로 내지 않은 아이가 오로지 실력으로 높은 점수를 얻어 합격하는가 하면 이른바 ‘문 닫고 합격’을 하는 아이도 있고, 친구는 붙었는데 자신은 떨어지자 온갖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눈물과 함께 퇴장하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 학교에 지원한 것인지 잘 모르겠는, 춤도 악기도 잘 다룰 줄 모르면서 무용과와 음악과를 차례로 순방했다가 결과적으로 연극과에서 합격한 아이도 있다. 이렇게 높은 경쟁률을 뚫고 예술고에 합격한 이들의 4년을 다루는 영화가 바로 <페임>이다. 영화는 이 중에서도 연극과의 3인방 맥닐리와 도리스, 랄프, 그리고 무용과의 리로이와 코코, 음악과의 브루노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페임>에 대해 “꿈을 가진 10대 예비 예술가들의 좌충우돌과 좌절과 성장” 운운하는 건 너무 뻔한 소개가 될 것이다. 그보다, 영화평론가 구회영이 그의 저서에서 8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장르의 해체’를 지적한 면을 상기하고자 한다. 어쩌면 이 영화야말로 애초 ‘뮤지컬’ 제작을 염두에 두고 기획되었으면서도 전형적인 뮤지컬 공식은 한사코 피하며 ‘장르의 해체’ 경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10대의 방황과 성장을 다룬 점에서 청춘영화로, 예술고가 배경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뮤지컬 장르의 전매특허라 할 만한 잼 공연 장면이 두 시퀀스나 삽입돼 있다는 점에서 뮤지컬로 볼 수도 있다. 특히나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차지하기도 한 아이린 카라의 주제곡이 큰 인기를 끌었는가 하면 그녀가 직접 주인공 중 한 명으로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부 ‘전형적인 외형’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결코 ‘전형적인 장르영화’로 이어지지 않는다. 특정한 한두 명이 아닌 다수의 주인공들이 무더기로 등장하는 캐릭터 구성, 영화의 클래이막스가 될 만한 중심적인 사건 대신 이들의 4년의 일상적인 학교생활을 스케치하듯 그려나가는 이야기 구조, 그리고 이를 위해 이들의 소소한 사연들을 빠르고 훑고 교차시키는 편집.

 

결정적으로, 이 영화의 두 번의 잼 공연 장면은 한 번은 일부 주인공들의 참여 거부와 황급한 퇴장으로, 또 한 번은 주변 인물들의 격렬한 항의와 싸움으로 이어진다. 뮤지컬 공연 장면의 전형적인 대단위적 ‘동화와 참여’ 대신 ‘불화와 방해’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이는 시퀀스를 넘어서, 전형적인 상업적 장르영화의 외피와 작가적 야심이 기묘하게 충돌하고 부조화를 이루며 오히려 독특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이 영화의 전체적 특성을 만들어낸다. 그렇기에 다른 영화도 아닌 <록키 호러 픽쳐쇼>를 이 영화가 중요하게 인용하는 장면이 더욱 의미심장해지는 것이다.

 

김숙현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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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사람의 기억은 머리에 남을까,

마음에 남을까?!”

- 배우 배수빈이 말하는 미셀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2013년 여덟 번 째 친구들 영화제가 한창인 지난 24일,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 상영 후 배우 배수빈과 함께 한 시네토크 자리가 마련되었다. 배수빈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를 함께 볼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인사를 전하며, 삶과 영화에 대한 진심어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배수빈(배우): <이터널 선샤인>을 네다섯 번 정도 봤는데, 볼 때마다 가슴에 와 닿는 장면이나 대사가 달랐다. 볼 때마다 그 느낌이 달라서 신기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인 후 다시 본다면 또 어떤 장면과 대사가 나에게 영감을 줄까하는 기대감에 이 영화를 같이 보자고 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자주 보게 됐던 건 이 영화 속 주인공처럼 뭔가 잊고 싶은 게 있었던 건가?

배수빈: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운명인 것 같다. 나와 너무 달라서 혹은 나와 너무 비슷해서, 자기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끌림들 때문에 상대를 사랑하게 되고 그래서 그 사람과 함께 무언가를 경험하게 되지 않나. 잘 끝났건, 잘 끝나지 못했건 그 기억들은 소중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 기억들로 인해 우리는 한 사람으로서 성숙한 연애를 할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영화를 선택하게 됐다. 딱히 나에게 안 좋은 기억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나는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는 긍정적인 사람이다.

 

김성욱: 영화 속 조엘(짐 캐리)이라는 인물은 과거의 상처 때문에 기억을 지웠다. 상대역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도 그렇다. 짐 캐리는 이런 캐릭터를 많이 맡아왔다. 나에게는 트라우마를 지닌 인물의 캐릭터로서 조엘이라는 인물이 특별하게 와 닿는다. 배우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이는가?

배수빈: <이터널 선샤인> 속의 짐 캐리를 보면 당시에 어떤 트라우마에 시달렸던 것 같은 모습이다. 얼굴에서 그런 분위기가 나지 않나. 나도 연기를 하면서 상처를 갖고 있고, 결핍을 가진 인물들에게 끌리곤 했다. 작년에 작업한 <26년>이라는 작품 같은 경우, 혼자만의 트라우마가 아닌 전 국가적인 트라우마를 다루고 있다. 나는 트라우마가 너무 크다면 살아가는 힘마저도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감당하기 어려운 아픔들이 올 수도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이겨내다 보면 또 다른 삶이 펼쳐지지 않을까. 영화 속에서는 트라우마에 빠져버린다 해도 최소한 삶에서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욱: <이터널 선샤인>과 함께 추천했던 작품은 <태양은 가득히>였다. 이 작품은 어떤 점에서 끌렸나?

배수빈: 그 영화 역시 알랭 들롱의 부와 명예에 대한 결핍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짓말에 거짓말이 더해지고. 자신이 따라가고 있는 욕망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작품이다. 내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배우로서 추구해 나가야하는 방향성 같은 것을 되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김성욱: 이 영화를 보며 짐 캐리라는 배우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초기작 <마스크>나 <케이블 가이>를 보면 몸으로 CG를 구현하는 듯한 배우였는데(웃음), 2000년대 초반에는 진지한 역할을 자주 맡았다. <트루먼 쇼>도 그렇지 않나. 오늘 영화에서 인상 깊은 탁자 장면을 보면, 한편으론 진지하면서도 한편으론 이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위트 있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낸다. 배우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배수빈: 굉장히 특별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나도 배역을 맡다보면 한 쪽으로 치우쳐진 경우가 많다. 짐 캐리 같은 캐릭터 소화가 가능한 것은 여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초반에는 나이도 어리고 경험치도 없는 배우가 본인의 개성으로 이슈화되어 나오다가, 시간이 흘러 여유가 생기면 그 개성이 페이소스 있게 풀어지는 게 아닐까. 나도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 여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을 특히 좋아하나? 내 경우에는 탁자 장면이 인상 깊다.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장면이다.

배수빈: 짐 캐리가 어린 시절 자위행위 하던 기억으로 돌아간 장면. 중고등학생때 누구나 경험해봄직한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다 경험하지는 않는다. (웃음)

배수빈: 미셸 공드리의 편집도 좋다. 그러니까 중간 중간 갑자기 인물이 사라지고 거꾸로 진행되고, 신기할 정도로 편집을 잘 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천재 감독 같다고 생각했다. 사람의 기억을 없애는 방법이 머릿속의 점들을 지우는 것이란 아이디어 자체도 신기했다. 사람의 기억은 머리에 남아있나, 마음에 남아있나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이 영화를 촬영했을 당시 이야기를 들어보면, 짐캐리가 몇몇 장면들에서 편집에 의존한 게 아니었다고 한다. 어떤 장면은 카메라 뒤로 돌았다가 본인이 직접 다시 카메라 앞으로 나타나고. 두 명이 나오는 장면도 각기 찍은 것이 아니라고 한다. 인터뷰에서 미셸 공드리는 이런 방식이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그 때 한 대답이 “해보지도 않고 가능하냐고 묻느냐”는 것이었다. 배우로서 감독과의 그런 경험이나 일화가 있는지.

배수빈: 유지태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마이 라띠마>에서 함께 촬영을 했는데, 매 장면마다 2테이크 씩 간 것 같다. 한 장면 장면을 위해 합심해서 노력 했다. 감독의 의지가 이렇다고 해서 이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그렇지 않나. 함께 합의를 한다면 몇 테이크인들 촬영 못하고, 거꾸로 찍는 것인들 못하겠나. 배우는 자신의 역할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심이 있다. 그런데 그건 어떻게 보면 사족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라는 매체는 내가 느끼는 것보다 관객들이 느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김성욱: 그런 식의 경험이 있있던 장면이 있나? <26년> 같은 작품에서는 많았을 것 같다.

배수빈: <마이 라띠마>를 찍을 때 스테디캠으로 1분 이상 지속되는 장면이 있었다. 출연 인원만 30-40명이 얽혀서 나오는 건데, 그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서 8시간 정도를 투자한 것 같다. 딱 한 테이크를 위해서. 거기에는 주연, 조연 배우도 있겠지만 보조출연 하시는 분들도 있고 스탭분들도 있다. 정말 작은 역할부터 스탭들까지 전부. 한 장면을 만들기 위해서 다 함께 힘을 기울였던 장면이 생각난다.

 

김성욱: 짐 캐리는 <이터널 선샤인> 시나리오를 받고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배우로서 활동하면 여러 종류의 시나리오를 받을 텐데, 어떤 식으로 판단을 하나?

배수빈: 반반이다. 정말 잘 될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시나리오는 그렇게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광해>의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광해>의 영화 시나리오를 봤는데 이 영화는 될 것 같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시나리오가 주는 묵직함이 있었다. 배우들은 내 생각에 감인 것 같다. 내 경우에는 잘 넘어가느냐, 읽는 중간에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잘 넘어가느냐, 시나리오를 다 읽고 딱 덮었을 때 '재미있다‘는 생각이 드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들은 거의 그런 식이었다.

 

김성욱: 첫 영화, 첫 작품을 한지 거의 10년 가까이 된 것으로 안다. 어떤 계기로 배우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배수빈: 사실 처음에는 배우가 될 생각이 없었다. 원래 나는 사진을 하고 싶었다. 어린 시절엔 사진, 음악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다. 우연찮게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거다. 배우로 지내다보니 결국 과연 무엇 때문에 내가 창작 활동을 좋아했을까 궁금해졌다. 결국 그것은 사람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들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연기를 하면 캐릭터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상처들을 감싸 안으면서 따뜻한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도 휴머니티가 살아있는 작품들을 위주로 선택하고자 한다.

 

관객: 지금까지 TV나 영화에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캐릭터 위주로 선택했던 것 같다. 사극도 그렇고. 생각하고 있는 롤모델 배우나 감독이 있나? <26년>, <마이 라띠마>, <무서운 이야기> 등 영화 선택이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다.

배수빈: 마음이 가면 그냥 한다. 그게 정답인 거 같다. 어디에 구애 받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연기만 할 뿐이다. 실험적인 작품에 가능한 한 많이 출연하고 싶다. 본받고 싶은 배우라고 하면, 상(像)이 없는 배우가 되고 싶다. 고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싶지 않다. 상을 부수상이 없는 배우. 고정적으로 저런 느낌이야, 이런 상을 갖는 게 싫다. 상을 부수는 작업을 해나갈 생각이다.

 

정리: 김경민(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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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과 함께 감정을 공유하는 공간, 시네마테크

2013 친구들 영화제, 성황리에 개막!

 

1월 17일, 어느덧 여덟 번째를 맞는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그 성대한 막을 올렸다. 이번 영화제의 개막작은 ‘관객들의 선택’을 통해 선정된 우디 알렌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 여느 때 보다 뜨거운 관객들의 호응으로 객석은 모두 매진되었고, 극장은 개막작과 영화제에 대한 기대들로 가득 찼다. 성황리에 열린 ‘2013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의 이모저모를 전한다.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

지난 1 17, 저녁 7 30분 종로 3가 낙원동에 위치하고 서울 유일의 민간 비영리 시네마테크전용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2013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개막식이 열렸다. 추운 날씨였음에도 불구하고 극장 앞 매표소에는 표를 구하려는 관객들로 가득 찼고, 올해의 친구들을 비롯한 영화문화계 인사들이 극장을 찾았다. 이날 행사의 사회는 2006년 첫 영화제 때부터 한 해도 빠지지 않고 함께해준 권해효 배우가 맡았다. 사회자 권해효 배우는 첫 영화제 때 이 공간은 참 춥게 느껴졌지만, 오늘 관객으로 꽉 찬 이 극장을 보면서 8년의 시간 동안 조금씩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말로 영화제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서 지난 한 해, 서울아트시네마가 10주년을 맞이해 다채롭게 진행했던 부대행사들을 소개했다. 여러 스폰서들의 다양한 재능기부와 참여로 시네마테크의 발전 기금이 마련되었고, 시네마테크의 활동을 알리는데 보다 큰 힘이 되었다. 특히 지난해 말에는시네마테크 어워즈를 개최해 지난 10년 동안 시네마테크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줬던 감독과 배우, 단체들에베스트 프렌즈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후원보고가 끝난 후 최정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대표의 개막 선언 인사가 이어졌다. 그는오랫동안 함께해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선정해주신 영화 하나하나가 모두 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화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뜻 깊은 시간이 아닌가 한다. 영화제 기간 동안 좋은 영화,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우리들의 이상한 우정

다음 순서로는 영화제 상영작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함께 트레일러 상영이 이어졌다. 2012, 시네마테크 10주년을 맞이해 만들어진 김종관 감독의 트레일러에 이어 올 한 해 동안 상영될 새로운 트레일러의 연출은 윤성호 감독이 맡았다. 권해효 배우는충격적인 트레일러였다앞으로 모든 관객들이 이상한 기분으로 극장을 나서지 않을까 싶다며 농담을 던졌고, 트레일러에 출연해열연을 보여준 정우열 작가는그냥 그림 하나 그리면 된다고 해서 왔다가 현장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설명했다. 윤성호 감독은현장에 와 준 연기자들이 할 수 있는 제일 값어치 있는 일을 시켰던 것 같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제가 1년 동안 극장에 앉아 두고두고 보려고 만든 트레일러다라고 말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윤성호 감독은 트레일러의 자막에 대한 질문에, 중간의 자막들은 <전함 포템킨>의 대사, 마지막에우리들의 이상한 우정은 시네마테크가 후원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어느 작가가 자신의 후원자에게 보낸 편지의 마지막 구절을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영화제에 참여하는친구들을 대표해 무대에 오른 김태용 감독은 추천작인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이사쿠의 아내>를 소개하면서, “옛날 영화를 볼 때마다 격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법에 대해 계속 배워가는 것 같다. 60년대 영화를 보면 감정을 어떻게 추스르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비극적 결말을 가져왔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매혹

마지막으로 영화제 개막작인 <카이로의 붉은 장미>에 대한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의 소개가 이어졌다. “관객들의 선택작이기도 한 이 영화와 시네마테크의 선택작은 모두 1930년대 대불황기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지금이 꽤 어려운 시기이기도 해서 이 영화가 선택된 데에도 어떤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1930년대에 미국에선 영화관을 영화를 보러 가는 공간만으로 여기진 않았다고 한다. 할 일 없을 때 어떤 사람들은 잠을 자기 위해, 젊은 친구들은 부모님의 눈을 피해 연애를 하기 위해서 영화관을 찾기도 했었고, 거리가 추울 때 영화관은 사람들의 휴양소로서 기능하기도 했다. 오늘 보실 <카이로의 붉은 장미>는 그런 영화관에 대한 매혹을 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현실과 환상 간의 선택이라는 어려운 질문이 담겨 있는 영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 부딪히는 질문을 담고 있는 영화라고 말한다. 저는 이번에 보면서 조금 다른 생각을 했다. 정말 어려운 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삶의 조건에서 일탈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관이라는 공간은 사람들에게 그나마 삶의 조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아주 예외적인 일탈의 장소였고, 지금 여기에서 다른 위치와 장소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이 영화를 통해서 슬픔과 기쁨을 같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로 11년을 맞고, 8번째를 맞은 친구들 영화제가 이런 기쁨과 슬픔, 감정들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서 꾸준히 진행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개막식이 끝나고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가 상영되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영화를 보며 함께 웃었고, 슬픔 또한 함께 공감하고 있음이 전해졌다. 극장에서 영화를 만나는 기쁨과 매혹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던 이 날의 상영이 모두 끝나고, 극장 근처의 공간에서 진행된후원 파티에서 관객들은 다시 삼삼오오 모여 술과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_송은경, 장지혜(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 사진_김윤슬(시네마테크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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