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들을 한 자리에 모아 이야기를 나눠보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첫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6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여에 걸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돌파구를 찾다’라는 주제로 열렸다. 다양한 개성을 지닌 김동주, 김종관, 민용근, 이응일, 정호현 감독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펼쳐진 이색적이며 특별했던 포럼 현장의 일부를 담아본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최근 2009~2011년 사이에 새로운 영화들이 많이 나왔고, 이 다양한 영화를 만든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한 편의 영화가 시장 안에서 나오면서도, 자신의 예술적 표현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어 나갈 때 하게 되는 고민들이 말하자면 하나의 작가 전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고민들과 앞으로 어떤 영화들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같이 나누는 시간이 되면 좋겠다. 우선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경우 영화의 소재가 갖는 현실성과 영화를 만들 때의 스타일 적인 면이 굳건하게 공존한다.
김동주(영화감독): 기존의 일반적인 영화의 특징인 이야기, 즉 내러티브를 위주로 한 영화보다는 이미지 중심으로 영화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스타일 면을 더 고민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결정적인 것은 고시원이라는 공간을 보고 난 후였기 때문이다. 고시원에 대한 이미지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떠오르는 영감을 담고 싶었다. 벌집 같이 정형화된 구조라든지 하는 것들. 한국 사회에 매우 많이 있는 고시원이라는 곳에서 너무나 많은 젊은이들과 소외받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오년이나 십년 후에 다시 봤을 때 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타협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고 구사하고 싶은 스타일대로, 없는 제작비를 쪼개서라도 해보자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김성욱: 이 자리가 동시대성 안에서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인데, 이응일 감독의 경우, 비디오 세대의 역습이랄까, 비디오적인 소비나 디시갤러리에 대한 언급 등 세대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영화에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응일(영화감독): 개봉을 염두에 두거나 영화제에 내려고 한 것이 아니고, 입시용 포트폴리오로 단편을 만들려고 하다가 점점 불어나서 <불청객>이 되었다. 우린 비디오 세대의 끝물이고 DVD로 막 넘어가기 시작하는 끼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90년대 디지털 캠코더가 등장하면서 학생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그 중에는 골방 영화가 많았다. 어떡하면 간단하게 집에서 찍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신림동에서 반 지하 자취방에서 같이 살던 형들을 배우로 써서 만든 영화다. 예산의 제약으로 조명도 삼파장 스탠드에 비닐봉지 씌워서 하고, 깜빡거리는 효과는 조연출이 스위치를 껐다 켰다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보진 않았지만, 언론에서 생각보다 많이 다뤄줘서 스스로도 놀랐다. 국내에 이런 B급 SF가 드물다 보니까, 이슈화시키기가 좋았다는 생각도 든다.

김성욱: 김종관 감독의 경우, 특정 장르, 즉 멜로 영화를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 
김종관(영화감독): 이렇게 모여 있는 자리에 어떤 유대가 있는 것 같다. 모두들 상업적인 영화 시스템 안에서 만들지 않은 영화들을 가지고 개봉을 했고. <혜화,동>을 보면서도 들었던 생각이 동시대에 지나왔던 시간들의 상처를 볼 수 있다는 것이었고, 이에 많은 위로를 받았다. 또한 창작자 입장에서 영화들을 서로 많이 보고 생긴 그런 유대가 느껴졌고, 그런 동료들이 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영화를 단순화해서 작은 작업으로 하려다보니 처음엔 멜로적인 구성이 편했다. <조금만 더 가까이>는 배우들이 조금 더 유명한 사람들이 되고 시스템이 조금 커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기존의 작업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그렇지만 개봉을 하게 되면서 그 전하고는 다른 책임감이 생기더라.

김성욱: <혜화,동>의 제작비는 얼마였나? 그리고 찍을 때 고심한 점이 있다면?
민용근(영화감독): 제작비는 2억 정도다. 시나리오를 쓸 때 어떤 규모의 영화로 만들어지고 어떤 배우로 하자고 정해놓은 게 전혀 없었다. 스텝들에게 미안해하지 않으면서 영화를 찍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다. 그래서 여배우를 이름이 있는 사람을 캐스팅해서 투자를 더 많이 받아보자는 생각도 했다. 어떤 상황이 되면 그 상황에 맞춰 하자는 주의인 것 같다. 운 좋게 영진위와 스튜디오 느림보에서 지원을 받으면서 촬영에 들어갔다. 그 전의 더 열악한 환경의 작업에 비하면 비교적 풍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참여했던 스태프들의 경우 다른 영화들에 비하면 빈곤했던 거다. 한겨울에 촬영해서 고생이 많았는데, 보상이 제대로 안 이뤄지니 미안함이 컸다.

김성욱: 네 분의 영화가 닫힌 세계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이었는데, 정호현 감독은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룬다. 쿠바에서 찍었고 다큐멘터리이며, 개인 작업에서 시작해서 극장에 걸리는 작품이 됐고, TV에서도 소개되면서 연관성들을 만들어냈다.
정호현(영화감독): 처음부터 극장 상영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고 공동체 상영 정도를 생각했다. 그러다가 첫 극장 개봉을 하게 됐는데, 사실 극장 시스템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영화라는 게 이런 식으로 개봉되고 관객들과 이런 식으로 소통 되는구나 싶었다. 다큐멘터리의 경우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이슈화하기 쉬운데 반해, 사랑이야기나 사적 이야기들은 극장에서 상영된 경우가 매우 적은 것 같다. 앞으로도 물론 상업 다큐멘터리를 만들진 않을 거지만, 그렇다 해도 이번 극장 상영을 계기로 어떤 관객들이 보겠구나 하고 미리 좀 생각해 두고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어떤 영화를 만들 때 마이너리티 성향의 특정 관객을 염두에 두는지, 아니면 일반적인 관객들이 이정도면 즐길 수 있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김동주: 어떤 영화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반드시 한 사람이라도 생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한 번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들었을 때 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조금 씩은 더 생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김성욱: 극장 개봉에 대해 듣고 싶다. 현실적인 문제들을 경험했을 텐데.
김동주: 어느 정도의 틀이 갖춰진 영화라면 지속적으로 국가에서 상영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국영화에 활력을 불어넣는 일은 거기서 출발해야 하지 않겠냐고 생각한다.

김성욱: 민용근 감독의 경우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적극적으로 관객들과 만나는 자리를 마련했고, 이응일 감독은 퍼포먼스들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김종관 감독은 관조적으로 점잖게 보냈던 것 같은데(웃음).
김종관: 영화는 기본적으로 혼자 보려고 찍진 않고 친구를 찾는 건데, 약간 더 은밀한 방식으로 만들어서 약간 더 은밀한 친구를 사귄다는 느낌이 있다. 주어진 예산에 맞춰서 영화를 찍는 방식들에 지금은 익숙해져 있다. 꾸준하게 보는 사람들의 범위들이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 매우 소중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민용근: <혜화,동> 같은 경우 GV를 하면 관객들이 조금 많이 오시는 편이지만, 극장 측에 양해도 구해야 하니 번거롭기도 하고 쉽진 않다. 그래서 생각한 게 찾아가는 관객과의 대화라고 해서 10명 이상 신청을 하면, 끝나고 같이 차라도 마신다든가, 극장 로비에서 커피라도 마시든가 하는 거다. 남들이 볼 때 극성을 떤 다고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해야 좀 티가 나는 것 같다. 독립영화의 경우 2~3주 정도 극장에 걸려있어야 관객들에게 회자되고 인지되는 것 같다. 그런 리듬에 맞는 독립영화만의 마케팅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에 많이 배웠다.
이응일: 열악한 상황에 뭐라도 하자 싶어서 생각한 게, 우주쇼라든가, 캐릭터의 옷을 입고 나가거나, 만담처럼 이야기를 하거나 하는 거였다. 원천적인 한계가 있는 게 인구가 너무 적은 것 같다. 결국 통일을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웃음) 영진위에서도 저예산 영화는 무료로 DCP를 해주는 상설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재는 영진위의 제작지원이나 홍보마케팅 지원제도도 사라진 상황 아닌가.

김성욱: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어떤가? TV에서 상영될 수도 있지만, 극영화와는 다른 어려움이 많을 텐데.
정호현: 작품의 성격이 극장 상영에 적합한지, 아니면 시민단체라든지 하는 곳들에 가서 하는 것이 맞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극장 상영이 의미 있는 이유는, 국내에서는 극영화적인 미장센이 없거나 TV 다큐멘터리적인 클리셰가 없으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편견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다. 그 편견을 깰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여전히 극장에서 이런 영화들이 상영될 수 있고 관객들은 그것을 볼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의미가 있다.

김성욱: 최근 1~2년 사이에 저예산 영화의 성과가 놀라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이 갖는 의미나 미학적인 측면들에서. 좀 더 자신감을 낸다면 영화 전체적인 활력을 낼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든다. 작가 고유의 개성도 있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공동성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연합적인 흐름이 큰 힘을 발휘하게 되지 않나.
김종관: 우리가 어떤 면의 내용적으로 공감을 느끼는 부분도 있고, 그런 게 아니더라도 사실은 사슬처럼 묶여있는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요즘 트위터를 좀 하는데 여기에서 영화를 통해 만난 관객들이 있다. 어떤 영화를 본 사람들이 다른 영화들로 전파되어가는 것들을 본다. 그런 게 긍정적인 기운이라 본다. 아쉬운 건, 우리가 만든 영화들의 스태프나 배우들 다 사실은 노개런티로 찍은 거다. 그런데 계속 이렇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영화들이 많아져서 관객들을 조금씩 늘리는 것도 중요하고, 감독과 마찬가지로 극장들도 투자사도 각자의 분야에서 꾸준히 하면서 브랜드로서 키워지면 작은 영화들의 네트워크를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좋아질 수 있으리라 본다.
민용근: 영화를 하면서 조금씩 다른 감독님들도 알게 된다. 적극적인 행동이 아니더라도 같은 시대를 살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연대가 영화를 만드는 큰 동력이 되는 것 같다. 인디 밴드의 경우 합동 공연 같은 것을 하기에 보다 용이한데, 영화도 이런 연합이 필요하다. 또한 영화만이 아니라, 음악, 문학 미술 등 다른 예술과의 공감대의 지평을 넓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김동주: 감독들의 성향은 다들 개인적이다. 사실은 그것들을 존중해 줘야 된다. 하지만, 감독들도 결국에는 어느 정도의 프로듀서 마인드를 가져야 된다. 감독들이 스스로 서로 공유하려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면서, 나중에는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나중에는 자연스러운 하나의 단체나 흐름이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김성욱: 극장을 하는 입장에서도 시대적인 트렌드, 젊은이들의 어떤 특정한 것들에 대해 관객들과의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방식의 전략을 짜게 되지만, 동시에 또 흥행 강박이 되진 말자는 생각을 한다. 키아로스타미는 문화 활동이나 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영화를 둘러싼 환경에 대한 마인드가 없기 때문에 영화계가 어려움에 빠져있다고 말했었다. 그러므로 영화의 진가를 아는 사람들이 스스로 자립을 해야 한다. 자립에 대한 것이나 지속적인 영화 만들기에 대한 고민이나 모델들이 있다면 마지막으로 듣고 싶다.
정호현: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고 선택한 매체가 영화다. 다큐멘터리에서 가장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만나는 사람들과 발생하는 완전한 현실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것에 대한 재미를 느낀다.
이응일: 영화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재미있고 훌륭한 이야기가 뭘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는 어디에 쓸모가 있는가, 늘 고민한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자신의 삶에 대한 느낌을 얻어 가게 하는 것. 그게 영화의 기능이고 영화인의 사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거기에 각자의 전략을 만들어내야 한다.
민용근: 생계적인 전략도 중요하다. 그게 곧 작가적인 전략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하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이 많이 필요하다. 영화라는 매체가 있을 뿐이지 자기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무언가를 만드는 건 다 비슷한 것 같다. 꼭 영화에서만 국한 짓지 않고 생활도 놓치지 않는 환경들을 꾸준히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종관: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나만 보면서 이야기를 하면 주제는 쉽게 메마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랑 타자의 관계 속에서 나를 찾거나, 다른 세계 안에서 내 안의 것들을 끄집어내서 그 관계들에서 주제를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영화를 하면서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다.
김동주: 창작을 할 때 자기만의 색깔을 가진 영화를 만들수록 대중성이나 흥행성이랑 멀어지기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랑 연관이 늘 된다. 창작의 고통을 알지만, 또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알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다. 다음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만든다는 생각이다. 흥행이나 생계를 위해 영화를 선택하지 않고 오로지 하고 싶은 대상으로만 영화를 대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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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김종관 감독의 ‘조금만 더 가까이’

지난 22일 저녁, ‘한국 영화의 새로운 작가 전략’을 들어보는 첫 번째 자리로 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상영 후 김종관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이 날은 특별히 혜영 역할로 출연과 영화 음악을 겸한 배우 요조씨가 자리를 함께해 한층 소중한 자리였다. 배우와 감독, 관객의 영화에 대한 애정이 조곤조곤 오간 따뜻했던 그 시간의 일부를 지면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원래 김종관 감독이 서울아트시네마를 자주 찾는 만큼 이 영화가 개봉하기 전에 여기에서 프리미어 시사를 하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오고 갔었다. 그 때는 사정상 결국 못했지만 극장에서 내린 오늘에서야 상영하게 되었다. 특히 요조씨가 함께 해주셨는데, 영화의 내부 관찰자로써의 이야기 해주시면 좋겠다. 일단 이 영화는 김종관 감독의 공식적인 장편 데뷔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를 만들 때의 생각과 개봉 후 관객들 만날 때의 느낌들 등, 돌이켜봤을 때 이 영화가 감독에게 어떻게 남았는지 들어보고 싶다.
김종관(영화감독): 촬영 때는 장편 데뷔작을 찍는다고 크게 마음먹은 것은 없었다. 기존에 작업해왔던 중․단편들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생각이었다. 원래 다른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KT&G에서 1억원을 지원받아 영화를 찍을 기회가 생겼다. 이 예산에 맞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옴니버스 식으로 하면 이전 작업들을 사용할 수 있고, 앞으로 다른 작업하기 전에 그 간의 작업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어 의미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개봉을 하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애를 써주셔야 했고, 극장에 배급되는 걸 보며 장편 데뷔라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김성욱:
저라면 이런 영화를 만들 때 가장 먼저 요조씨에게 캐스팅 제의를 했을 것 같다. 음악과 함께 영화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요조가 없으면 영화가 다른 방향으로 갔을 것이다. 실제로는 어땠는가?
김종관: 실제로 제일 먼저 시나리오 보여주고 캐스팅을 했다. 제가 이 영화를 생각했을 때 마지막의 공연 장면부터 떠올렸기 때문에, 거기에 의미가 있었어야 했고 심사숙고하다가 요조를 만나게 되었다.

김성욱: 요조씨는 처음 캐스팅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출연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요조(배우, 뮤지션): 무척 마음에 들었었다. 일단 인물의 나이나 하고 있는 일, 사랑에 대한 가치관 등 많은 부분이 저 스스로와 부합되었다. 사실 만약 연기만 따로 놓고 생각했다면 그렇게 욕심을 안냈을 것 같은데, 영화 음악에 대해 제가 적극적으로 욕심을 내왔던 터라, 음악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무척 매력적이었고, 처음부터 하고 싶었다.

김성욱: 대사에도 나오지만  이 영화가 일종의 연애불구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의 사랑으로 인해서 감정이 피어나지 못하는 커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 같다. 장편으로써 다섯 개의 에피소드에서 다섯 개의 커플 이야기를 다루며 연애의 어떤 점을 고민했는지?
김종관: 2, 30대 지나며 저에게 연애라는 게 중요했다. 모두 실패였기 때문에 뭐 하나 내가 정의내릴 수 있는 것도 없고 완전한 게 없었다. 그런 실패한 연애담에 대한 이야기다. 이 나이엔 뭘 정의내리기 힘들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한 사람들의 젊은 날의 혼란 같은 게 들어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에피소드는 내게서 먼 감정이고 어떤 것은 가까운 감정이다. 그런 것들이 다 매듭지어지지 않고 혼란스러운 마음에서 만들어졌으므로, 그런 혼란이 있는 실패하고 불안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김성욱: 김태용 감독의 <만추>랑 비슷한 인상을 받은 게, 그 영화는 가을을 배경으로 해가 뜨고 안개 끼고 비 내리고 다시 해가 뜨는 기상 변화를 영화 전체의 맥락으로 넣었는데, 이 영화도 날이 흐리고 비가 그치고 마지막에 이르면 찬란한 빛이랄까, 에피소드 전반에 그런 기후적, 계절적인 느낌, 빛의 느낌이 많았다. 처음부터 염두에 두었는가?
김종관: 일단, 로케이션 할 때부터 가을의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처음 기획할 때 남산 가서 좋은 사람들과 재밌게 놀며 이 계절을 남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다. 애착이 있었다. 한편으론 촬영하면서 왜 이 좋은 계절에 나는 영화를 찍고 있는가 생각했다.(웃음) 기후적인 매력이 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예산이 적고, 공간감을 크게 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사운드 등을 통해서 사람들이 공간감을 상상할 수 있고 그 느낌이 배어들어있는 게 좋다.


김성욱: 첫 번째 에피소드는 저런 일이 있을 수는 있겠다 싶기는 하지만, 어디서 착상했는지 그 계기가 궁금하다.
김종관: 첫 로테르담 에피소드가 가장 개인적인 역사가 깃든 에피소드다. 4,5년 전에 영화제 때문에 로테르담을 갔다가 유럽을 여행했었다. 그 당시 핸디캠으로 찍었던 영상들이다. 그리고 그 당시의 내 사연에도 약간 그런 감정이 있었다. 호텔에서 다른 외국사람 수첩을 주운 적이 있는데 그런 기억들도 재밌고. 로테르담은 2차 대전 때 폭격을 당해서 전부 새 건물에, 외국인들이 많고 항상 공사 중인 느낌이다. 다른 오래되고 예쁜 유럽도시들과는 다른 공간의 분위기와 이방인적인 느낌이 있었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에피소드지만 알고 보면 오히려 다큐적 소스들도 들어있다는 부분이 재밌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두 번째 에피소드를 영화의 전반에 배치한 것이 관객들에게 기묘한 충격을 주는 것 같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구성을 하면서 어떤 부분을 주로 생각하셨는지?
김종관: 두 남녀가 성적인 설렘을 겪는 시간을 묘사한 거고, 남자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거다. 이 영화 전체가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것을 묘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드러나는 에피소드다. 일반적인 영화는 생략으로 서사를 만들어간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생략하는 지점 없이 그 과정들을 묘사해보고 싶었고, 관계묘사에 집중하면, 그런 지점, 그런 느낌에서 뭔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영화 음악은 영화의 장면들을 보면서 느낌 안에서 한 건지 어떻게 작업했는지 그 과정이 궁금하다.
요조: 처음에는 추상적인 단어들로 시작했다. 감독님도 쓸쓸함, 아련함 이런 식으로 단어를 툭툭 던지시고, 넓게 시작해서, 이런 느낌은 어떨까 멀리부터 맞춰가다가, 영화 제목처럼 음악 감독님도 함께 셋이 조금만 더 가까이가 성립되면서, 나중엔 감독님이 가사도 적어오시고(사용하지 않았지만), 음악감독님도 멜로디를 이렇게 하면 어떨까 제안하시고, 마지막엔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건 나지만 밴드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늘 혼자 노래를 만들고 가사를 쓰고 부르는 게 편하면서도 쓸쓸한 게 있는데, 감독님들과 함께 만드는 게 재밌었다. ‘우리는 선처럼 가만히 누워’라는 노래는 외롭지만 만드는 과정은 아주 즐거웠다.

관객1: 영화 잘 봤다. 전작들을 보며 대사보다는 클로즈업이나 감정 선에 집중해서 영화를 구성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아무래도 단편이나 중편의 그런 감성들을 장편에서 이어나간다는 것은 아무리 옴니버스라고 해도 템포 조절 등이 어렵고 이전과는 다른 작업이었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어려움이나 새로운 시도는 무엇이 있었는지?
김종관: 작업을 하며 크게 변하는 편은 아닌데, 나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여기서는 다섯 개 에피소드의 다이얼로그 방식이 다 다르다. 앞으로 작업들을 해나가기 전에 이런 여러 가지 스타일의 대사를 쓰고 연출해보고 싶었다. 가령 윤계상과 정유미가 나오는 에피소드도 연애에 대해 직설적인 대사들이고, 게이 커플의 에피소드도 직설적이지만 그 둘은 방식이 다르다. 각각 다른 스타일의 다이얼로그에 대한 시도가 재미있고 배울 게 많았다. 일부 성공도 있었고 실패한 점도 있었던 것 같다.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비슷한 형식일 수는 있지만 화법은 다르다. 이걸 한 편으로 묶기가 힘들었다. 형식적이기 보단 정서적인 연관성에서 하나의 이야기로 보이길 원했다. 전에도 말했었는데, 에릭 로메르의 <파리의 랑데부>라는 영화가 다른 도시에서 비슷한 테마의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그런 구성이 도움이 되었고, 원래 그런 류의 옴니버스를 좋아한다.


관객2: 요조씨 팬인데 머리 커트하신 게 더 예쁘신 것 같다. (좌중 웃음) 질문은 감독님께 하겠다. 낙엽이란 게 새로운 사랑보다 오래된 사랑이나, 이미 사랑을 할 만큼 해 본 두 남녀의 대화를 다루는 점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낙엽이 떨어지는 장면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제목 자체가 공간성을 띠고 있고 그래서 인지 영화 전체가 클로즈업이 많다. 또 첫 시작은 먼 곳에서 걸려온 전화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소재다. 이 거리감이라는 게 보통의 공간감인건지 사랑의 감정의 거리를 표현하신 건지?
김종관: 마지막 에피소드부터 이야기하자면 그게 마무리인 것 같지만, 실은 그들도 진행형이고 거기 나오는 사랑에 대한 대사들이 미련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술자리에서 ‘사랑은 이런 거야’, ‘뭐야’ 하는 것들이 전부 허튼소리고, 내가 다 안다고 하지만 그 아는 부분에서 늘 헝클어진다. 저는 뒤에 요조가 하는 독백의 독살스러운 느낌이 좋은데, 그런 미련함과 못난 모습들이 드러나는 게 에피소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낙엽은 제가 어떤 느낌을 지녀서 넣은 것이긴 한데, 말하기 보다는 그냥 놓아두어야 할 것 같다. 거리감 얘기가 좋다. 그런 거리감이 좋아서 제목도 ‘조금만 더 가까이’라고 짓게 되었다. 주변에서는 ‘조금만 더 멀리’가 아니냐고 했지만. (웃음) 첫 에피소드는 서로가 모르기 때문에 더 밀접한 대화를 하고, 그 뒤의 인물들은 서로가 잘 알지만 오히려 더 멀어져 있다. 그런 느낌들을 생각했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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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만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를 주목해서 볼 것을 주문했다. 특히 “장편 데뷔작 중에서 발견의 희열을 제공하는 작품이 많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양익준의 <똥파리>, 손영성의 <약탈자들>, 백승빈의 <장례식의 멤버>, 노경태의 <허수아비들의 땅> 등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두드러진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부산에서도 이 프로그래머는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한국영화 중에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많다.” 홍상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찌질한 연애담에 우디 알렌의 입담이 더해진 것 같은 소상민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 형부와 처제의 금지된 사랑을 다양한 회화적 묘사를 통해 풍요롭게 만드는 임우성의 <채식주의자>,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카페 느와르> 등 이들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종류와 시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주류의 한국영화가 철저히 계산된 연출과 규모의 경제학 속에 고만고만해진 사이, 고전적인 연출에 안주하지 않는 창의적인 영화문법, 사회가 처한 현실에 한눈팔지 않는 의식적인 이야기, 주류에 손 벌리지 않고(?) 자신만의 제작방식으로 개봉에 이르는 전략까지, 눈길을 끄는 한국영화의 목록은 주류 바깥에서 신투차세대(新偸次世代), 즉 장편 데뷔작을 발표한 ‘신진작가’들에 의해 다시 쓰이는 중이다.

참신한 재능이 일군 낯선 이야기

2010년과 2011년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 중 <빗자루, 금붕어 되다> <이파네마 소년>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혜화, 동> <파수꾼> 등등,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의 영화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주류에서였다면 이중 상당수의 영화가 아마도 원 제목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극중 이야기를 쉽게 함축하는 제목이야말로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주류영화계에 팽배한 까닭이다. 바꿔 말해, 대부분의 주류영화가 예상 가능한 이야기 속에 연출을 운용하는 것에 반해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가늠하기 힘든 제목과 설정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펼쳐가며 관객의 흥미를 돋운다.
예컨대,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신림동 고시원을 무대로 주인공 장필(유순웅)의 일상을 리얼한 필체로 묘사한다. 얼핏 제목과 극중 이야기가 전혀 연관되지 않지만 김동주의 말에 따르면, “빗자루는 고시원 총무의 상징이다. 빗자루로 늘 복도를 쓸기 때문에 장필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금붕어는 그가 키우는 생명체다. 어항에 담겨있고, 갇혀 있다. 그 두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지만 고시원 속에 갇힌 장필의 처지는 초현실에 육박할 만큼 고난에 처한 상황임을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사실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보여주는 배경과 말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렇기에 또한 외면 받는 현실이다. 그것은 곧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류영화계가 꺼리는 소재로 작용해왔다. 하여 2010년과 2011년의 신투차세대들이 보여주는 영화는 무심히 지나칠 뿐 아니라 마주보기 꺼려하는 현실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참신한 종류의 재능이라 할만하다. 지금 한창 호평을 받고 있는 민용근의 <혜화, 동>은 18세에 낳은 아이가 살아있는지 모른 채 생활해온 23세의 ‘혜화’(유다인)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린 나이에 낳았다는 이유로 미혼모인 그녀가 ‘아이’(童) 때문에 이 땅에서 겪을 법한 고통과 절망을 ‘겨울’(冬)동안의 사랑이야기로 풀어간다. (이 작품은 또한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요소를 취함으로써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붙들어 맨다.) 2010년의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평가받는 장철수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여성을 착취하는 폭력적인 시스템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방관을 비판한다. 동시에 이를 향한 복남(서영희)의 잔혹한 복수를 하이라이트처럼 전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서술의 시도내지는 장르의 부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화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 홍영근, 장윤정, 오영두, 류훈의 <이웃집 좀비>, 이응일의 <불청객> 등이 속할 텐데 비슷한 구석 하나 없이 그들 각자의 장르와 이야기를 택하고 있어 흥미롭다.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 백승화가 연출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밴드를 다룬 음악다큐멘터리다. 흔히 음악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연상되는 공연 영상 대신 극중 밴드 멤버들의 일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에 더욱 집중한다.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은 2000년대 초반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붐을 이뤘다가 빠르게 관객의 외면을 받은 이후 맥이 끊긴 한국 청춘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당대 청소년의 심리를 반영한 영화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태훈(서준영)과 미정(이민지)의 사랑과 헤어짐을 묘사하되 감독의 섣부른 의견 개입 없이 방황하는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청춘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웃집 좀비>와 <불청객>은 요 몇 년 새 주류영화의 한 축이 된 장르물을 따른다. 다르다면, 두 영화는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정서와 괴리됐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시당했던 좀비물과 SF를 과감히 차용했다. 물론 <이웃집 좀비>의 경우,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좀비물은 아니다. 다만 이전의 작품들이 장르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이웃집 좀비>는 장르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녹아내며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소수자로써 고통 받고 차별받는 우리 이웃의 ‘좀비’를 다루며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날카롭게 세운다는 점에서 재미와 메시지 사이의 균형 잡힌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낯선 이야기에 적합한 화용론

 

<불청객>은 <이웃집 좀비>와 장르적 감성을 공유하지만 화용론 자체는 완전히 다른 영화에 속한다. 은하계 저 너머 안드로메다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응일의 B급감수성과 막장(?)상상력은 그동안 경직된 한국의 토양 위에서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다. 그러니까 <불청객>의 출현은 <고무인간의 최후>와 같은 유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일종의 사건에 다름 아니다. 자취방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하던 진식(김진식)과 그의 동생들이 외계로 납치된 후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불청객>은 빈약한 제작환경을 의도적인 조잡함과 유치찬란함으로 극복한 말 그대로의 독립영화다. ‘고작’ 2천만 원의 제작비와 ‘무려’ 5년의 제작기간이 대변하듯 상영시간 67분에 불과한 <불청객>은 별다른 투자와 지원 없는 각개전투 식 영화 만들기의 지난함과 고통을 능히 짐작케 한다.
그런 감독 이하 배우, 스태프들의 노고 여하에 상관없이 <불청객>에는 험난한 현실을 유희로써 극복하는 지금 세대의 특징적인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호환마마’ 운운하는 과거 비디오 영상물과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칩니다.’라는 문구만 보더라도 <불청객>의 감성이 맞닿아있는 지점은 분명하다. 청년백수가 양산되는 작금의 현실을 비관으로 일관하기보다 가벼운 유머의 소재삼아 툭툭 털고 일어서자는 젊은 세대만의 일종의 결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대가 인터넷과 게임으로 세대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공유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래서 종합예술매체로써 영화 역시 게임과 인터넷에 능한 감독들에 의해 기존의 화용론과 안녕을 고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미 2009년 장르의 경계가 모호했던 중편 <남매의 방>으로 새로운 영상언어의 출현을 알렸던 조성희는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에서도 예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모든 기기가 동작을 멈춘 시골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녀를 내세운 이 영화에서 조성희는 조이스틱을 다루는 것처럼 인물을 조종하고 단계를 넘어가듯 이야기를 작동시킨다. 게임과 다르다면, <짐승의 끝>은 유희를 목적으로 삼은 영화가 아니다. 단지 게임의 작동 방식을 극에 끌어들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들어있다. 그가 보건데, 이 세상은 사공이 많은 배가 아니다. 소수의 절대자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되고 은밀하게 운영되는 게임과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 <짐승의 끝>은 게이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 ‘게임 세대’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조성희와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생인 윤성현의 <파수꾼>은 올 상반기 한국영화 화제작이라고 불릴 만큼 정의하기 힘든 청춘의 모순된 이미지를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형태로 구현한다. 특히 한 고등학생의 자살 이유를 파헤치는, 어찌 보면 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윤성현은 인물별, 시기별로 장면을 교차하며 복잡한 양태 속에 가려진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처럼 진실은 개인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라서 <파수꾼>의 교차 서술은 극중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의 파장을 잡아내는 가장 적합한 이야기 형태라 할만하다.
이처럼 신인들의 영화에서 유독 두드러진 화용론의 운용은 한편으론 주류영화의 도식화된 서술법에 대한 반발로도 읽힌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들 영화에게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감지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서 결국 어떻게 말하는지 그 형식이 중요하게 영화의 만듦새를 결정하는 법인데 주류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용을 통해 재생산하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 좀 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는 작품들의 경우, 해당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끌어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관객의 취향과 타협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개성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부와 음악 하는 중학생 아들의 희망과 용기를 다룬 <레인보우>는 소위 클리셰(Cliché)라고 부르는 뻔한 장면이나 기승전결의 서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야기의 자유로움을 획득한 경우다. 정호현의 <쿠바의 연인>은 원래 쿠바의 사회주의와 춤과 노래가 궁금했던 감독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구성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연하의 남자친구 오리엘비스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면서 갑작스럽게 한국여자와 쿠바남자의 결합에 따른 사회적 편견에 대항한 인생 도전기로 개비되었다. 만약 주류에서 기획된 작품이었다면 촬영 중간 영화의 콘셉트가 바뀐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애초 영화에 대한 계획 없이 달랑 카메라만 들고 쿠바에 왔던 정호현은 무서운 흡수력으로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변수와 일탈을 끌어들여 다큐멘터리 특유의 재미로 치환, 희귀한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배경을 살펴본 바, 그 특징을 일러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 듯싶다. 과거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신(新)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박진성의 <마녀의 관>, 김기훈의 <이파네마 소년>, 김종관의 <조금만 더 가까이>가 보여주는 영화적 전략도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배경으로 뒷받침된 결과다. 러시아 작가 고골의 <비이 VIY>를 각색한 <마녀의 관>은 원작을 가진 여느 영화와 달리 세 가지 에피소드 구성을 통해 다채로운 변형을 가한다. 배우 오디션 현장이 배경인 1막 ‘이상한 여자’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연극무대를 끌어들인 2막 ‘마녀의 관’은 (3D로 촬영된) 무대극으로, 장님음악가의 환상을 그린 3막 ‘커튼콜’은 기담으로 구성한 것. 공통된 원작에 속하되 각기 다른 장르로 펼쳐 보이는 박진성은 <마녀의 관>을 통해 서사와 형식에 관한 일종의 영화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파네마 소년>과 <조금만 더 가까이>는 두 편 모두 사랑을 소재로 하지만 서술법이나 표현하는 방식은 특색 있는 제목만큼이나 상이하다. <조금만 더 가까이>가 설레는 첫사랑부터 감정의 앙금이 남은 이별 커플까지,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은 이성커플부터 권태를 느끼는 게이커플까지, 네 커플의 에피소드식 구성을 통해 무수한 관계의 교류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감정변화의 줄 잇기를 시도하는 현대적인 서술법을 선보인다면 <이파네마 소년>은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의 ‘두 번째 사랑’을 고도로 이미지화한다. 한국과 계절 주기가 정반대인 브라질의 이파네마 해변을 제목으로 차용한데 착안, 주인공 소년과 소녀의 경우를 둘로 나눠 현실과 공상을 오가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첫 번째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이미지와 형식으로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최근의 주목할 만한 장편데뷔작들은 이미지를 우선한 서사 전달과 형식 자체로 이야기와의 통일을 꾀하는 영화 만들기로 거칠게 요약이 가능하다. 다만 전략이라고 붙여도 무관한 이유는 주류영화계에서 잊어버린 영화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22일부터 4월 6일까지, 2010년과 2011년에 데뷔한 주요한 장편 14편을 모아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거창하게 ‘코리아 뉴 웨이브 Korean New Wave'라고 명명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영화계의 기저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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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김종관 감독의 연기지도법

지난 11일 오후 네 번째 시네클럽이 열렸다. 주인공은 지난 해 <조금만 더 가까이>로 장편 데뷔한 김종관 감독이다. 그간 신선하고 빛나는 배우들과의 다양한 작업들로 주목받아왔던 만큼 “어떻게 배우와 작업하는가?”라는 주제로 관객들과 만났다. 연출을 꿈꾸는 영화학도들의 열띤 질문이 잇따르고 배우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느껴지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김종관(영화감독): 영화 연출을 단순히 말하자면 시나리오를 영화로 구성화해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에 따른 몇 가지 연출덕목이 있다. 첫째로 공간을 연출하여 분위기를 만드는 것. 둘째로 연기자와 이야기하는 것. 셋째로 하나하나의 쇼트들을 찍어내는 것. 마지막으로 그것을 연결시키고 어떤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것. 그 중 특히 중요한건 현장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고 실제로 재현해내며 얻는 감동이 있다. 어떤 공간, 현장 안에 들어감으로써 배우가 기대치 못한 면을 보이며 나의 이야기를 만들어주는데서 오는 감동. 딱 정답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공간은 무드를 주고, 배우는 드라마를 만들어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드라마를 주는 배우를 만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일단 연기 연출에서,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이다. 아무리 능력이 탁월해도 나쁜 연기자를 좋은 연기를 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반대로 좋은 연기자를 나쁜 연기로 끌어내릴 수는 있다. 따라서 좋은 배우를 만나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좋은 배우와 내가 쓴 시나리오가 만나게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두 번째로는 촬영할 때 오케이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오케이, 킵, 엔지'라는 세 가지 싸인 중에 상황에 잘 맞춰 판단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 외에 대단한 디렉션은 없다. 찍으면 찍을 수록 배우에게 의존하게 되는 것 같고 그를 더 많이 믿을 때 더 재미있는 결과물이 나오는 것 같다.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연기패턴의 배우들이 있다. 그에 따라 연출자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배우를 이미지로만 쓰는 사람이 있고, 기술적으로 뛰어난 연기를 통해 뭔가 얻어내는 사람이 있다. 따라서 연기자와 만나기 전에 연출자는 스스로와 그 자신의 영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독립영화작업을 하며 배운 것은 우연을 잘 활용해야한단 거다. 배우와 인물이 잘 안 맞을 때는 최대한 그 배우가 할 수 있는 쪽으로 시나리오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연기자는 자기애가 강하고 예민하면서도 예민하지 않은 척 하는, 불확실성 사이에서 모험하는 사람들이다. 연출자는 연기자를 달래고 예뻐하며 그들에게 모든 걸 의존할 수밖에 없다. 내가 쓰는 모든 이야기가 그들을 통해서만 실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 자신은 솔직하기보단 자기 방어가 많은 편이다. 배우들 중에도 그런 경우가 있다. 그리고 영화는 허구다. 그 거짓말이라는 틀 안에서 나도 어떤 해방감을 느끼고 가장 솔직해지는 순간이 있고 연기자들 역시 그럴 때가 있는 것 같다. 결론적으로 배우를 사랑한다.

관객1: 시나리오를 쓸 때 정석대로 한 씬을 설계하듯 만드는가 하면 구체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기도 한다. 감독님의 경우에는 어떤 방식이 더 나았는지?
김종관: 구성이 먼저냐 캐릭터가 먼저냐 하는 말씀인 것 같다. 사람마다 다를 텐데, 여태까지 내 경우에는 캐릭터를 먼저 형성하고 그 안에서 알맞은 구성을 찾아왔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목표이고 거기까지 가는 길을 만드는 게 구성인데, 길이 먼저 있는 경우는 없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 있어야 하고, 그 길을 가는 게 캐릭터니까 캐릭터가 먼저인가... 어렵다.(웃음) 이야기 따라 각각 다르다. 하지만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논리적 구성 요소들을 따지는 편이다. 시나리오를 쓰는데 시간이 별로 안 걸리는 편이지만, 실은 그걸 쓰게 되기까지는 2년이고 3년이고 걸린다. 이야기를 해야 하는 어느 순간이 온다. <폴라로이드 작동법>의 경우, 집에 오래있던 낡은 카메라와, 가족에 대한 질문과, 첫사랑이란 이런 느낌이라는 게 어느 순간 맞물려서 만들어졌다. 일전에 이창동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네가 이야기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이야기가 네게 말을 걸어줄 때까지 기다려라’란 말을 하셨는데 느낌으로 이해가 됐었다. 처음엔 두루뭉술한 이야기들이 생기고 그걸 가지고 있으면, 개연성을 추구하는 사람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구성이 생긴다. 다만 영화를 보고 공부하면 구성이 만들어지는 몇 가지 길을 알게 되고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한편 캐릭터는 아이디어라는 느낌이다. 어떤 캐릭터로부터 내가 자극을 받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랄까.


관객2: 감독님에게 정말 좋은 배우란?
김종관: 제게 좋은 배우는, 사실 이건 수시로 바뀔 건데, 자신을 버릴 줄 아는 사람이 멋있다. 부끄러움이 많건, 어떻건 자기에게 창피하고 부끄러운 부분을 내어주는 사람이 젤 고맙다. 못날 때 못나 보일 줄도 알고. 추함과 아름다움을 같이 보여주는 사람. 배우들, 특히 여배우들은 매 컷 아름다움을 유지시키고 싶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부끄러운 부분을 보여줘야 가장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는 것 같다. 그런 순간의 아름다움을 보일 수 있는 사람들. 조금은 못난 부분도 보이고 인간적으로 나를 싱크 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배우들이 좋다.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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