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에이'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10.03.17 탐구할 가치를 생성시켜주는 위대한 시네아스트

[현장중계] 홍성남 영화평론가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계’ 강연

지난 11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에서 3월 첫 프로그램으로 열리고 있는 ‘마스무라 야스조 회고전’ 작품 중 <붉은 천사> 상영 후 일본영화 전문가인 홍성남 영화평론가의 마스무라 야스조의 세계에 대한 강연이 있었다. 일본 뉴웨이브에 전조가 되었다고 뒤늦게 재평가된 마스무라 야스조를 보다 폭넓게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강연 일부를 옮긴다.


홍성남(영화평론가):
마스무라 야스조의 영화가 한국에서 스크린으로 처음 소개된 것은 2005년이었고 가장 먼저 소개된 작품은 <눈 먼 짐승>이다. <눈 먼 짐승>이나 <붉은 천사> 등은 너무 센세이션해서 간혹 그의 영화에 대해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의 색깔에 대해 ‘과도한 욕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자칫 잘못 이해하면 어떤 엽기를 추구하는 감독이 아닌가 착각할 수 도 있는데, 그 엽기적인 측면은 단순히 욕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야스조만의 상상이 담긴 엽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야스조는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시스템 안에서 오랜 시간동안 영화를 만들었다. 총 58편의 영화를 만든 야스조의 영화스펙트럼은 굉장히 넓다. 미국에서 마스무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평론가 조너던 로젠봄은 반자본주의를 표방하는 영화들은 <거인과 완구>, <검정 테스트카>, 반전영화는 <붉은 천사>와 <세이사쿠의 아내>, <야쿠자 군대>, 변태적인 섹스영화는 <만지>, <붉은 사랑>, <눈 먼 짐승> 등이고 강한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아내는 고백한다>와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 <문신> 등이 있다고 분류했다. 그만큼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였다. 하스미 시게이코는 예전에 마스무라를 높게 평가하며 ‘마스무라 야스조는 대표작이 없는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비평가로도 활동한 야스조는 아키라의 이미지와 구도, 그리고 편집능력을 호평하며 아키라를 지지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키라의 편집방식이 빠르고 리드미컬하지 않음을 비판하기도 했다. 야스조는 편집리듬이 강렬하고 빠르며 이것에 플러스해서 사회를 분석적으로 볼 수 있는 지성을 가진 감독을 원했고 당시 이런 마스무라의 이야기가 앞으로 그가 영화를 만들며 추구했던 바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야스조는 탁월한 시각적 능력을 스크린에 구사할 줄 아는 감독이었고 냉철한 분석과 지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1950년대 중반에 이탈리아로 간 야스조는 그곳에서 유명한 영화학교를 다녔고 이탈리아에서 일본영화에 대한 글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탈리아의 유명 영화잡지 등에 일본영화에 대한 평도 썼는데 항상 마지막에 ‘왜 서구는 일본의 한 측면, 특히 정련되고 오밀조밀하고 서구적이지 않다고 느끼는 미학에만 열광할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한다. 이것은 오즈의 영화에 반하는 것으로 굉장히 현실적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의 다름 아니다. 이탈리아 유학 후 일본 다이에이사에 들어와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처음 미조구치 겐지의 조감독을 지냈는데 야스조의 영화는 어떤 면으로는 이찌가와 곤과 맞닿아있다. 이를테면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의 사람, 사회 상층에 있는 집단보다 아래, 주변인들에 대해 공감했다는 측면이 그렇다.


마스무라 감독은 시스템에 대한 반대, 특히 인간을 억누르고 질식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반대가 자주 보인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붉은 천사>에서도 확실하게 알 수 있듯 욕망이 이상 분출된다. 하지만 선정적으로만 흐를 수 있는 것을 비판적시선과 결합시키는 능력을 마스무라는 가지고 있다. 마스무라는 인간의 욕망을 그리되 그것을 현실적 욕망, 일상에서 보는 욕망보다 과도하게 표출하고 그걸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미친 사람들’을 그리고 싶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마무라 쇼헤이도 마스무라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사고 자체가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데 바로 그것은 ‘리얼 재팬’의 모습을 그렸다는 것이다. 강인하고 늠름하고 그 이전의 일본에서는 찾을 수 없던, 예전에는 일본에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사라져버린 새로운 일본인상의 모색이 아닐까 싶다.

 

다른 한편으론 마스무라는 일본 뉴웨이브 그룹에게 감화를 주고 호의를 받고 작업할 바탕을 마련해준 뉴웨이브 이전의 뉴웨이브-‘프리 뉴웨이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일본 뉴웨이브와 매우 미묘한 위치에 있었으며 모더니즘적 태도의 미세한 위치에 놓였던 감독이다. 하나로 설명될 수 없는 분류들이 마스무라의 위치를 제대로 잡아주기 어려우면서도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매혹을 주고 새로운 이정표를 세워주는 역할을 했던 그는 계속해서 탐구할 가치를 생성시켜주는 자원이 풍부한 시네아스트로 생각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강민영)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