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특별전/2014 체코 영화제 : 역사적 순간들

60년대 체코 뉴웨이브의 두 얼굴 - <소방수의 무도회>와 <모두 착한 사람들>

60년대 체코 뉴웨이브의 두 얼굴

- 밀로스 포먼의 <소방수의 무도회>와 보히테흐 야스니의 <모두 착한 사람들>




60년대 중반의 체코 영화는 세계적으로 주목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냈는데, 근 십 년 만의 일이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체코에서는 1956년에서 58년까지 첫 번째 체코 뉴웨이브의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검열과 상영금지 등의 조치로 새로운 영화운동은 손쉽게 일단락되어 버린다. 하지만 이후, 경제 위기 등으로 정부의 권력이 약해지고 매우 엄하던 영화의 검열이 완화되면서 1963년에 일련의 새로운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돌파구를 연 것은 스테판 우헤르의 <선 인 어 네트>(1962)로, 젊은이들의 불안과 환멸을 그리는 작품이다. 당국은 이 작품을 상영 금지시키려 했지만 영화인들이 반발했고, 체코 비평가들에 의한 상을 수상하면서 체코 영화의 신세계가 열리기 시작한다. 그해 체코 영화 두 편이 칸영화제와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이후 몇 년간 체코 영화는 국제영화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1963년은 기념비적인 해로 밀로스 포먼과 얼마 전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베라 히틸로바 등의 새로운 작가들의 데뷔작이 나왔다. 이들은 모두 프라하 영화학교의 졸업생으로 장래의 체코 뉴웨이브의 대표적인 작가들이 된다.


밀로스 포먼은 데뷔작 <블랙 피터>(1963)에서부터 그의 특유의 유머감각과 날카로운 풍자를 보여주는데, 이 작품은 스튜디오에서 나와 야외 촬영을 아마추어 배우를 기용해 이뤄냈다는 점에서도 선구적인 작품이 됐다. <금발 소녀의 사랑>(1965)을 거쳐 <소방수의 무도회>(1967)에서도 포먼 특유의 신랄한 유머는 계속된다. 참혹한 유머, 추한 아름다움이 결합해 섬뜩하면서도 재치 있게 시대상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야기의 무대는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방서가 주최한 무도회다. 경품 추첨과 미인 대회가 열리는데, 미인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서장의 증정품을 전하는 임무가 주어진다. 하지만 대회의 주최자는 의심받고 추첨 경품은 이벤트 중 차례로 사라지면서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에는 파티장의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소방대원들, 미인 대회에 나선 여성들, 화재로 저택을 잃은 노인들의 이야기가 서로 얽히면서 실로 좌충우돌하는 슬랩스틱 코미디가 다큐멘터리처럼 생생하게 전개된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후보로 지명되는 등 높은 평가를 받았지만 공산주의 비판이라는 이유로 불과 일 주일 만에 상영 중지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밀로스 포먼은 미국으로 건너가 <탈의>(1971)로 칸영화제에서 수상했고, 이어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1976)의 성공으로 할리우드 작가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거치면서 체코 영화는 점점 쇠퇴하기 시작해, 국제적으로 흥미를 끄는 새로운 영화작가의 탄생도 주목할 만한 작품도 만들어지지 못했다. 이후 이리 멘첼이나 히틸로바가 영화계로 다시 복귀하는 데에도 5년의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이 엄혹한 시기의 서막을 알린 영화가 보이테흐 야스니Vojtěch Jasný의 <모두 착한 사람들>(1969)이다. 국내에서는 덜 알려진 작가이지만 밀로스 포먼의 표현을 따르자면 ‘체코 뉴웨이브의 정신적인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중요한 작가이다. <모두 착한 사람들>은 체코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서정적인 걸작이다. 이 영화는 ‘프라하의 봄’이 벌어지던 1968년에 촬영된 작품으로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논의, 정치적 견해로서의 코뮤니즘에 대한 토론 등, 모든 것이 급진적으로 변화된 시대의 분위기를 담고 있어 시대를 비판한 정치적인 영화로 남았다.



최근 체코 영화들은 매년 과거의 작품들을 카를로비바리영화제를 통해 복원해 소개하고 있는데, 이 영화는 지난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소개한 <마가레타 라자로바>, 그리고 이번 상영작에 있는 밀로스 포먼의 <소방수의 무도회>에 이어 세 번째로 복원된 체코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영화에는 작은 마을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대략 일곱 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야기는 게다가 몇 달, 혹은 훌쩍 계절을 넘거나 몇 년을 지나 전개된다. 시작은 1945년 5월, 2차 대전의 종전기로, 여기서 이야기는 1948년의 3월의 프라하의 공산주의 혁명, 그리고 1951년과 1957년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날짜가 정해지지 않은 에필로그의 시기로 이행한다. 아마도 1968년의 ‘지금’을 의미할 것이다. 시간과 시대의 이야기가 구체적인 디테일 없이 전개되기에 이는 거대하게 예견된 운명으로 향하는 듯한 효과를 발휘한다. 1960년대의 다른 체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감독은 사회주의 체제에 대한 환멸을 담아낸다. 어떻게 집단농장화가 성취되었는지가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그렇다고 어둡다기보다는 차라리 애가에 가깝다. 공산주의 통치 하의 전후의 시대를 살아가는 시골 사람들의 모습이 풍경과 어우러져 있다.


통상적으로 체코 뉴웨이브는 1960년대 초, 공산주의 체제 지배의 이완에서 시작해 1968년의 소비에트의 침공 이전까지 지속된 창조성의 예외적인 시기를 말한다. 정치와 사회체제에 대한 비평을 시도한 뉴웨이브의 작품들은 ‘프라하의 봄’ 이후에 체코 내에서 검열로 오랫동안 상영이 금지되기도 했다. 이제 오랜 시간의 결박에서 풀려난 영화와 만날 기회다.


김성욱 |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