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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가위

릴레이 칼럼 8 | 극장이야기 - 뉴욕의 로즈메리 극장 그러니까 지금의 뉴욕은 그때의 뉴욕이 아니다. 25년 전의 얘기다. 카메라를 메고 사냥꾼처럼 맨해튼의 거리를 킁킁거리며 돌아다니던 때, 유독 나를 사로잡았던 장소가 있었다. 카날 스트릿을 중심으로 로어 맨해튼에 펼쳐진 중국 본토 이민자들의 거주지, 차이나타운. 그곳은 센트럴파크를 중심으로 유명한 뮤지엄들이 자리 잡은 어퍼 맨해튼과는 냄새부터 달랐다. 지하철역 계단을 올라오면 매운 양념으로 철판에 볶은 숙주와 국수 냄새, 협심당파 똘마니 같은 사내들이 뿜어내는 담배 냄새, 팔딱팔딱 생선가게 바닥에서 뛰어오르는 물고기들의 바다 냄새, 만두가게 찜통에서 연신 뿜어내는 증기 냄새, 한때는 1,000명도 넘게 살았다는 작고 오래된 건물의 벽돌 냄새, 젖은 신문지 쪼가리와 검은 흙탕물이 군데군데 고여있던 길바닥 냄.. 더보기
[Essay] 왕가위 영화의 남자들에 대하여 ‘A는 B의 뮤즈 혹은 페르소나’라는 표현을 쉽게 접할 수 있다. 두 단어 모두 주로 대중문화에서 자주 쓰는 표현으로 뮤즈는 작가나 화가 등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는 사람을, 페르소나는 주로 영화에서 많이 쓰이는데 감독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는 배우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이 단어가 갖는 무게에 비하여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누가 보아도 그 관계가 ‘페르소나’로 표현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왕가위와 장국영, 양조위’를 빼놓을 수 없다. 누군가는 왕가위의 페르소나는 장국영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양조위, 누군가는 장국영과 양조위라고 말한다. 페르소나가 다른 배우로 옮겨가는 경우는 간혹 있는데, 이들의 관계에 유독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장국영의 죽음(2003)이.. 더보기
왕가위의 <열혈남아> - 암울한 홍콩의 미래를 이야기하다 (1988)는 왕가위 감독의 첫 번째 영화다. 홍콩 느와르가 인기 절정을 누리던 80년대는 한편의 히트작에 관한 속편과 아류작들이 대량으로 제작되어 영화감독과 스태프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로 인해 많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으로 데뷔했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왕가위도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나섰다. 당시 왕가위는 흑사회를 소재로 한 ‘홍콩 느와르’ 장르를 정착시킨 등광영 밑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일하고 있었는데, 친구인 유진위가 왕가위를 추천하게 되면서 등광영의 지원, 제작으로 연출하게 되었다 한다. 는 줄거리 상으로는 80년대 홍콩영화의 주류장르였던 홍콩 느와르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왕가위는 느와르 혹은 갱스터 장르의 정석적인 틀만을 유지하고 있다. 구룡의 어두운 뒷골목을 방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