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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르

[Essay] 길티플레저- 영화를 보는 어떤 사소한 강박 극장이 암전되고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온전한 긴장감으로 충만해지는데, 이 긴장감은 영화 속 인물들의 대사 하나하나를 다 기억하겠다는 나의 우스운 강박에서 비롯되었다. 때문에 영화를 보는 동안 어떤 순간에 와 닿는 대사들을 내내 상기하거나 어딘가에 적어두지 않으면 곧 잊어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그 순간의 강렬함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해 이어지는 화면을 아깝게 허비해 버리기도 한다. 대사의 개별성에 집착하게 된 이러한 습관 탓에 언제부턴가 나는 아주 미시적인 감상자가 되어버렸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면 전체를 가늠하는 일에는 완전히 실패한 채 그 순간순간의 대사로 영화를 기억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대사를 만나면 고유한 시간이나 기다림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한두 줄에 농축된 타인의 삶.. 더보기
“시네마테크는 내게 놀이터다” 자원 활동가 최미연 양(24) 작년 ‘시네바캉스’ 때부터 자원활동가로서 서울아트시네마의 여러 일들을 도맡고 있는 최미연(24)양을 만났다. 극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기대되고, 앞으로 보게 될 영화들이 기대된다는 최미연양은 요즘 날마다 극장에서 ‘논다’. 매일 이 공간에 놓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고, 운이 좋다고 말하는 최미연양의 시네마테크 이야기를 옮긴다. 어떻게 서울아트시네마를 알게 되었나? 2007년, 고3일 때, 친하게 지낸 언니에게 과외를 받았다. 언니를 따라 처음 서울아트시네마에 와서 영화를 봤다. 처음으로 혼자 영화를 보러왔던 건, 영화과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고다르 특별전을 봤는데, 그 때만 해도 고다르에 대해 잘 몰랐고, 영화를 보면서 거의 다 졸았는데, 그 졸았던 기억마저도 좋았다. 세.. 더보기
장 뤽 고다르의 '카르멘이란 이름' 1983년은 카르멘의 전성시대였다. 프란체스코 로지, 카를로스 사우라, 피터 브룩이 마치 경연이라도 하듯이 카르멘을 영화로 만들었던 것은 당시 비제의 오페라가 저작권 소멸상태가 됐기 때문이었다. 고다르 또한 작업에 착수했다. 다른 작가들과 달리 그는 비제의 오페라를 느슨하게 차용만 했을 뿐 그 유명한 음악을 쓸 생각이 없었다. 오토 프레민저의 (1954)처럼 이야기를 현대로 옮겨왔고, 처음엔 이자벨 아자니를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었다. 아자니의 바쁜 일정 탓에 당시 신인이었던 마루츠카 데트메르스가 최종적으로 카르멘 역에 캐스팅되었다(그녀는 국내에는 (1989)으로 잘 알려진 배우다). 고다르의 계획은 급진적이었다. 그는 음악을 따라가는 이야기, 혹은 음악이 이야기의 전체가 되는 영화를 구상했다. 카르멘은 .. 더보기
데자뷰, 혹은 되찾은 시간 1980년대에 고다르는 우리가 총체적 권력을 지니고 있는 온갖 형태의 수사학의 시기, 언어적 테러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고다르는 자신이 영화의 평범한 고용인으로서 말과 이름이 지배하기 이전의 사물에 대해 말하고 싶고, 아빠와 엄마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전의 아이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이는 아직 이름을 갖기 전의 바다, 파도, 자유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이전(以前)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기원으로의 회귀를 의미합니다. 구스타브 쿠르베의 논란적인 그림이 상기시키듯이 기원으로의 회귀는 세계의 기원, 미스터리의 기원, 불명료함과 순수한 나체의 지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고다르는 의 2A에서 사티아지트 레이의 (1959)와 쿠르베의 ‘세계의 기원’의 이미지를 혼합..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