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드는 밤> 장건재 감독과의 대화 지상중계

 

지난 9월 2일 <잠 못 드는 밤> 상영 후 영화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과 주연 배우 김주령 씨가 함께 하는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감독과 배우의 삶이 반영되고 녹아든 영화였던 만큼 시네토크 역시 영화 안팎을 오가며 흥미롭고 진솔하게 이야기 나눈 시간이었다. 이 날의 이야기를 일부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장건재 감독의 첫 번째 영화 <회오리 바람>이 청소년기의 성장담을 다뤘다면 <잠 못 드는 밤>은 좀 더 성숙한 일상의 문제들이 담겨있다. 어떻게 이 영화를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로 시나리오 작업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장건재(영화감독): 이 영화는 작년 봄 쯤 기획했다. 제 아내이기도 한, 김우리 프로듀서와 이 영화에 대해서 맨 처음 이야기할 때 사실은 논외의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는데,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을 반영한 작업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에 종종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사진이든 글이든 무언가로 우리의 삶을 남기고 싶다는 것, 수면 위로 드러내는 이슈들은 아니지만 우리가 갖는 일상적인 고민들이 담겨진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단편이나 중편 정도라면 우리가 작업을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보통의 순서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내고 어떤 역할로 함께 작업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것일 텐데, 이 영화를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배우를 일단 만나서 아직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고, 일상적인 삶과 고민을 담은 영화를 찍어보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작업이 시작되었다.

 

김성욱: 오늘 같이 자리해주신 배우 분의 얘기도 듣고 싶다. 장건재 감독이 <잠 못 드는 밤> 같은 영화를 만들겠다고 제안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 지가 궁금하다. 영화의 장면들이 굉장히 긴데 특히나 싸울 때의 장면은 배우들 간의 호흡도 정말 중요했을 것 같다.

김주령(영화배우): 먼저 이런 자리에서 관객들을 만날 수 있게 돼서 영광이다.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연기로 작품을 보여드리면 그게 다인데 이런 자리에서 영화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굉장히 부담스럽다. (웃음) 결혼한 지 일 년 반 되던 차에 장건재 감독님이 이런 영화를 찍겠다 해서 만났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회오리 바람>을 제가 너무 잘 봐서 감독님이 어떤 영화를 하든 흔쾌히 찍겠다고 했다. 일반영화처럼 시나리오가 다 나와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감독님이 배우들과 함께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작업하면서 상대배우와도 얘기를 많이 했지만 늘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했고, 찍는 과정에서 찾아갔던 것 같다. 그런 면이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저도 결혼을 했기 때문에 함께 고민을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성욱: 영화의 첫 장면들의 이미지들은 어디에서 떠올렸을까 궁금하다.

장건재: 아이들이 사진 찍는 장면은 영화 처음 크랭크인 하던 날 저 역 주변에서 촬영했는데, 저희 영화가 100% 동시녹음이라 아이들 때문에 촬영이 계속 지연되었었다. 연출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들이 저렇게 놀고 있었다. 촬영감독한테 일단 찍어두자고 했고, 사실 영화에 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장면이었는데, 편집 후반부 때 저 장면을 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생각했던 오프닝의 느낌이 번잡한 도로의 느낌에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라, 왔다갔다하는 차라든가, 길가의 아이들로 시작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이 영화의 가장 과격한 씬은 꿈 장면이었던 것 같다. 현장소리들이 굉장히 적극적으로 활용이 되고 있어서 롱 테이크의 화면 안에서도 내부와 외부의 느낌이 같이 연결된다. 꿈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이질적인 순간이기도 한데, 그럼에도 이 꿈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장건재: 원래 이 영화는 꿈 장면 같은 것들이 들어오지 않고서 시간 순으로 쭉 진행되는 이야기였고, 두 사람의 일상에서 시작해서 어떤 결심의 순간을 다루자고 생각했었다. 작업 초기에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이 꾸는 꿈 장면들을 삽입을 해보자 싶었다. 그러면서 남자는 어떤 것을 이야기하지 않고 꿈으로 꿀까, 여자의 무의식은 어떻게 꿈으로 드러날까를 생각하면서 지금과 같은 구성을 떠올리게 되었다. 남자가 계속 걱정하는 생활의 불안함이 있을 것이고, 여자의 경우는 관계에 관한 고민들이 저럼 느낌으로 꿈에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의 부부의 묘사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상적이다. 나란히 자전거를 타는 장면이나 대화를 나눌 때도 그렇고 심지어 싸울 때조차도, 부부라기보다는 굉장히 친한 친구 같은 느낌이 있다. 부부의 관계를 묘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거의 대부분이고 영화를 볼 때 굉장히 인상적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런 관계의 묘사에서 느낌을 만들어가는 데에 어떤 점들을 염두에 두었나.

장건재: 기본적으로 대화 씬이 굉장히 많았다. 만약 밥을 먹으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찍는다고 했을 때, 배우들에게 내가 담고 싶은 액션은 밥을 먹는 것이고, 그러면서 어떤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얘기를 드리는데 그게 대화의 주제로 드러나는 방식이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톤 안에서 희미하게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제 의견과 배우들 의견을 듣고 톤을 조절해가며 한 씬 한 씬씩 찍었다. 그렇게 한 컷을 찍고 나면 거의 하루가 가는 경우가 많았고, 한 3일 정도에 한 컷을 찍고 못 쓰게 된 장면도 많았다. 배우들과 얘기 하면서 같이 만들어간 장면들이기 때문에, 배우들의 실제 본인들의 고민도 영화 속에 많이 들어와 있다. 그러면서 이 영화의 방향성이 영화를 찍어가면서 좀 더 흐릿해진 부분이 있다. 사실 원래 계획은 여자는 아이를 갖고 싶어 하고, 남자는 그걸 거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보다 색깔이 강했다. 결과물은 훨씬 옅게 나온 것 같고, 어떤 주제의 영화라기보다 저희 두 사람에 관한 영화 쪽으로 방향을 가져갔던 것도 있었던 것 같다.

김주령: 일단 부부 이야기이기 때문에 상대 배우와 친해지는 것이 급선무였다. 사실 만나서 대화를 많이 나누고 시간을 나눌 여유가 많지 않았고, 짧은 시간 내에 정확한 시나리오가 없으니까 서로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다른 것보다 상대배우와 어떻게든 가까워져야된다는 목표가 뚜렷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을 했던 것 같고, 다행히 상대배우도 함께 노력해 주어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괜찮았다. 사실 이렇게 대화를 많이 나누면서 사는 부부는 없지 않나. 알고 보니 장감독님 부부가 그렇게 사시더라. 저도 그렇고 상대 배우도 그렇고 평소에 그렇게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어서, 그런 부분이 처음에는 서로 좀 힘들었던 것 같다. 사실 영화를 찍으면서 이게 과연 어떻게 영화가 될까 싶었는데, 중요한 건 감독님이 생각하시는 구체적인 주제를 믿고 따라가는 것이었고, 감독님이 워낙 배우들한테 많이 열어놓으셔서 함께 얘기하고 고민하고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작품이 나온 것 같다. 저에게 정말 의미 있는 작업이었고, 영화를 보고나서도 정말 좋았다.

장건재: 이 영화에서의 대화 장면에서 촬영된 쇼트/리버스 쇼트는 없지만, 한 프레임 안에 대화에서의 쇼트/리버스 쇼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좀 더 역동적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렇지 않고 그냥 일상적인 대화라면 표현적으로 굉장히 지루해질 수 있다.

 

 

관객1: 영화 속 부부는 제 주변에선 보기 힘든 커플의 모습이다. 사실 언제 이 커플이 어긋나게 될까를 생각하면서 봤는데, 싸우는 장면도 결국 꿈이었고, 그러면서 결말도 부드럽게 끝나서 전체적으로 영화가 판타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건재: 사실 세상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고 행복하다는 느낌으로 찍은 건 아니었다. 그 안에도 첨예한 어떤 것이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찍으면서 발견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이런 톤으로 영화가 나온 것에 대해선, 어쨌든 이 영화가 다큐멘터리가 아니니까, 어떻게 보면 저를 반영하고 있기도 하지만, 어떤 바람이 깃든 영화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김성욱: 실제로 현실 안에서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고, 이 영화의 대사 안에서도 어느 정도 녹아있다고 생각된다. 최종적으로는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거기에는 이 영화 속에서의 인물의 결정도 있고, 영화를 찍어나갔던 감독의 결정도 있었을 것 같다.

장건재: 이 영화를 찍기 전에 아내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그 선택 안에서 또 어떤 삶을 선택해서 살 것인가를 가지고 끈질기게 매일 밤을 몇 달에 걸쳐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늘 결론이 잘 안 나더라. 얘기 끝에 아이를 낳는 삶 속으로 뛰어들자고 결정을 하게 됐고, 그 즈음에 영화를 만들게 됐던 것 같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저의 삶 안에서 그런 문제들을 훨씬 더 깊게 얘기 나눴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부부가 마치 봉합되듯이 해피엔딩의 선택으로써 아이를 낳기로 결심하는 뉘앙스를 주고 있을 수도 있지만,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결혼기념일에 사랑을 나누고 어쩌면 그 날 아이가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짐작으로 영화가 끝나는 것이 단순히 해피엔딩의 방식이라기보다 좀 더 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좀 더 궁금증을 자아내는 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의 삶 안에서도 결론의 방식이 아니라 과정 안에서 선택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관객2: <회오리 바람>에서도 그렇고 이 영화의 마지막에 꿈 장면을 정확하게 얘기해주지 않고 지나가는데 어떤 의도셨는지 궁금하다.

장건재: 제가 바라보는 세상인 것 같다. 저는 저의 무의식이 정직하게 투영되는 꿈을 꾸는데, 그래서 꿈을 보면 제가 숨기고 있던 감정들이 다 드러난다. 꿈 장면이 현실적인 느낌으로 찍는 것에 대해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저 뿐 아니라 많은 영화들에서 그런 방식을 쓰는데, 저의 영화에서는 꿈으로 들어가는 장면은 없고 나오는 장면만 있다. 제가 꿈을 꾸는 방식이기도 하다. 보통 언제 꿈이 시작되는지는 잘 모르고, 꿈의 끄트머리에서나 깼을 때서야 꿈을 인식하게 되는데, 영화에서의 꿈을 인식하는 관객들의 방식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욱: 영화가 표현하기 굉장히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일상적인 친밀함인데, <잠 못 드는 밤>은 일상적 친밀함들을 굉장히 잘 표현한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작업자체도 일반적인 영화와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도 굉장히 예외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영화가 소비되는 방식 안에서 또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는 기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하실 얘기가 있다면.

김주령: 배우는 본인이 출연한 영화가 좀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기를 가장 바라게 된다. 앞으로 이 영화가 개봉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더 많은 관객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이렇게 함께 공감하시는 모습들을 보니까 저도 기분 좋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다. 감사드린다.

장건재: 서울아트시네마는 저에겐 남다른 공간이다. 여기서 관객들을 만나 얘기할 때 어쩔 수 없이 제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영화와 저를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생각하면서 많이 긴장을 했었다. 영화를 찍을 때마다 계속 저에 대한 얘기를 함께 해야하고, 삶 안에서의 저의 고민을 영화와 계속 같이 가져가는 부분이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고, 관객들과 만나 부딪혀보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얘기가 어떤 분들에게는 다가올 삶에 대한 얘길 수도 있고, 또 어떤 분들에게는 지나간 삶의 얘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저나 여러분이나 멈추지 말고 계속 삶에 대해 얘기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사진: 황초희(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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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들의 저녁식사>로 데뷔한 임상수 감독 편

 

지난 16일부터 19일까지 나흘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그들의 데뷔작을 만나다’라는 제명으로 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 4인의 데뷔작을 상영하고 매 저녁마다 관객과 아카데미 출신 선후배 감독들이 함께 만나는 특별 대담 행사를 가졌다. 마지막 날이었던 19일 저녁에는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상영한 후, 임상수 감독과 그의 후배인 <효자동 이발사>의 임찬상 감독, <회오리 바람>의 장건재 감독이 참여하여 대담을 벌였다. 며칠 전 여섯 번째 연출작인 <하녀> 촬영을 끝냈다던 임상수 감독의 솔직하고 거침없는 입담이 눈길을 모았던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 데뷔작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는데, 그 과정을 간단하게 들려 달라.

임상수(영화감독): 사실은 <눈물> 시나리오를 먼저 썼는데 투자자, 제작자들로부터 거절당해서 잠시 좌절의 시기를 보냈다. 그때 극장에서 혼자 <초록물고기>를 보면서 성묘사가 강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처녀들의 저녁식사>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독서와 취재를 했다. 자기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여자들이 이 영화를 많이 비난했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여자들이 쓴 책, 여자들이 고백한 것들에 대해서 취재를 상당히 많이 했었다.

임찬상(영화감독): 영화를 다시 봤는데 지금 봐도 그렇게 촌스럽거나 담론이 뒤떨어진 영화가 아니었다. 감독님의 다른 영화와 비교해 봐도 이 영화가 고유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계사회를 추구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 당시는 불편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오늘 다시 보니 너무 좋다.

장건재(영화감독): 뒤에 만드신 <바람난 가족>이 많이 생각났다. <바람난 가족>이 <처녀들의 저녁식사>와 <눈물>을 거치면서 못 다한 이야기를 풀어내려고 했던 것인지 궁금하다.

임상수: 나는 뜻대로는 안 되지만 포부, 야심이 큰 사람이다. 내 영화가 한국 사회 젊은 남녀들의 성생활 패턴의 변화에 영향을 끼쳤다고 우기고 싶다. 나는 상업적으로 아슬아슬한 감독이고 거대한 혁명적인 영화를 찍는 감독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영화를 찍어보려고 했는데, 결과는 잘 모르겠지만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 생각한다. 가령 어린 여자들이 내 섹스는 무엇이고 내가 상대할 남자의 섹스는 뭐냐를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면 더 이상의 영광은 없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꿈꿨던 거다.

 

장건재: 당시 배우들도 이런 연기를 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도 인물에 밀착되어 있고. 또한 당시 진희경 씨나 강수연 씨 같은 경우 자기 위치를 갖고 있었던 여배우 같은데, 프로덕션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듣고 싶다.

임상수: 진짜 어려웠다. 여배우들이 옷을 벗어야 했는데, 제대로 된 작품에서 벗으면 괜찮지만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그게 제대로 된 작품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불안해했다.

 

관객1: 정작 담론은 여성의 입장에서 얘기하고 있지만 여자들이 대상화된다는 불편함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신선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고, 재미있게 봤다.

임상수: 여성을 대상화했다는 비판은 영화를 찍었을 때부터 들었는데,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의 육체를 찍기 위해서도 대단히 노력했다. 그런 비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김성욱: 노출은 약한데 카메라 움직임이 의식적으로 가릴 수밖에 없는 위치로 이동하고, 그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검열이나 영화를 찍는 환경이 그 정도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그런 점들이 더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느낌이 있었다.

임상수: 영화를 완성했을 때 공연윤리위원회에서 심의필이 안 나와 문제가 되었다. 위원회를 찾아갔는데 이른 아침이고 아무도 우리를 만나주지 않았기 때문에 (웃음) 제작자였던 차승재 대표와 함께 벤치에서 술이 덜 깨 자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서 학생들이 고다르에 대해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더라. 상당히 미묘한 경험이었다.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비디오 출시되었을 때 멋대로 편집된 경험도 있고. 사실 오늘 내가 완결한 것과 얼마나 다른 판본이 틀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게 한국 사회에서 사는 슬픔 중의 하나다.

 

관객2: 연구를 많이 하셨다고 했는데, 기존 영화들도 많이 연구하시는지. 그리고 야망이 크다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야망을 다하신 영화를 만드셨는지 궁금하다.

임상수: 예술가들은 다른 예술가들을 베끼는데,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들키지 않고 베끼는가가 관건이다. 나는 영화를 베끼지 않는다. 야망이나 야심에 대한 얘기는 간단한 거다. 나는 <처녀들의 저녁식사>가 어떤 사회적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제 작품이 예술 작품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겠지만 위대한 예술 작품이란 당대 사람들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대한 거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한 발 끼고 싶은 욕망이 있다.

 

장건재: 혹시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으신지.

임상수: 나는 사회적인 베이스를 갖고 계속 작품을 찍어왔는데 이제는 한국 사회에 대해 그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 너무 뻔하기 때문에. 한국이란 굉장히 작은 나라인데, 거기서 태어난 예술가가 세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아무 얘기도 할 수 없다는 게 정답이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얘기를 해보려고 꿈틀거리고 있지 않나 싶다.
(정리: 홍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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