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우리> 상영 후 한창호 평론가 강연 지상중계

 

지난 12월 22일 ‘2012 베니스 인 서울’ 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했던 파솔리니의 <돼지우리> 상영 후 이탈리아영화에 정통인 한창호 영화평론가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파솔리니의 영화세계’란 주제로 그의 작품 스틸들을 함께 보며 흥미로운 이야기가 오갔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한창호(영화평론가): 파솔리니는 이탈리아 출신으로 1922년생이다. 볼로냐 대학에서 원래는 문학을 전공했는데 미술사학자인 로베르토 롱기의 눈에 띄어 르네상스 미술사, 매너리즘 미술사로 논문 준비를 하고 있었다. 2차 대전이 일어나자 학업을 중단하고 징집을 피해 어머니의 고향 프리올리로 피신을 하는데 그곳에서 인생의 큰 변화를 겪는다. 그곳에서 파솔리니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공산당에 가입하지만,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공산당에서 출당 당한다. 60년대까지도 이탈리아 뿐 아니라 공산당 내에서도 동성애자, 소수자에 대해 편견이 있었다. 그렇지만 파솔리니는 평생 맑시스트로 남았고, 이탈리아 공산당과는 일정한 긴장관계에 있었다. 파솔리니에게는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티토가 이끄는 파르티잔 조직에 가담해 파시스트와 맞서 전투를 벌이다 사고로 죽게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볼로냐로 돌아온 파졸리니는 원래 전공이었던 문학으로 돌아가 이탈리아 낭만주의 시인 파스콜리와 관련된 논문으로 졸업한다. 파시스트 장교였던 아버지와 사이가 아주 안 좋았던 파솔리니는 그 즈음 결국 어머니와 둘이 야반도주 하듯 집을 떠난다. 로마로 건너간 파솔리니는 시인, 문학 평론가로 활동하며 생활했지만 대단히 가난했다. 당시 전후 이탈리아 현대시 그룹을 이끌었던 시인 아틸리오 베르톨루치는 문학잡지에 파솔리니가 자신의 시에 대해 쓴 글을 보고 이 젊은 비평가를 만나보고 싶어 하게 된다. 그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아버지이기도 한데, 그렇게 해서 파솔리니는 베르토루치 집안과 관계를 맺는다. 너무나 가난했던 파솔리니에게 아틸리오 베르톨루치는 사립학교의 교사 자리를 마련해주고, 파솔리니는 교사 생활을 하면서 소설 『폭력적인 삶』을 쓴다. 네오리얼리즘의 전통 속에 있는 소설로, 로마 근교의 하층민 철거민들, 청년들이 어떻게 해서 사회 문제에까지 눈 뜨게 되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생생한 문장을 쓰기 위해 파솔리니는 당시 하층민 청년들이 쓰는 구어와 속어들을 마치 언어학자가 공부를 하듯이 채록하기도 했다. 그만큼 문장이 살아있다. 펠리니가 <카비리아의 밤>을 발표할 때, 파솔리니를 초대해 하층민들이 쓰는 로마 사투리를 감수를 받게 된다. 물론 파솔리니는 그 이전부터 이미 영화계에 들어와서 시나리오를 쓰며 활동을 하고 있었다. 1961년 <아카토네>로 데뷔할 때 파솔리니는 베르톨루치를 조감독으로 썼고, 베르톨루치의 데뷔작을 만들 때 시나리오를 파솔리니가 썼다. 어찌 보면 그의 아버지에 대한 은혜를 갚은 셈이었다.

 

파솔리니의 영화가 낯설고 어려운 것은 어떤 영화든지 그의 영화에 깔려있는 것은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이다. 그리스 비극을 굉장히 좋아해서 <오이디푸스>나 <메데아>를 각색해 영화로 만들기도 했고, 코뮤니스트이지만 항상 종교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예수를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마태복음>을 만들고, <맘마로마>도 마리아를 많이 의식한 작품이다. 그의 모든 작품에 그리스 신화와 기독교, 유럽 코뮤니스트의 이데올로기 이 세 가지가 항상 바탕이 된다. 그런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일반 관객과 소통하는 데에 어려움이 좀 있는 것 같다. 1969년에 나온 <돼지우리>는 정치적 알레고리의 영화이다. 68혁명으로 유럽의 지식인들이 많이 흥분해있을 때 파솔리니가 자기 나름대로 자신의 의견을 제기한 작품이다. 두 개의 에피소드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16세기의 이야기와 20세기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데 본질적인 면에서는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고 있다. 즉 현대의 어느 나라에나 알레고리의 매트릭스를 적용시킬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영화가 시작하면 처음에 석판문이 보인다. 석판의 내용은 중간에 아버지 클로츠에 의해 다시 한 번 얘기된다. 그는 ‘아내와 오랫동안 숙고했는데, 만약 아들이 복종하지 않는다면 잡아먹기로 했다’면서 ‘그런데 나의 아들은 복종하는 것도, 복종 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라며 말을 흐린다. 복종한다면 나의 부를 같이 향유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잡아먹겠다는 것이다. 시작과 함께 이 영화의 메인 테마, 즉 세대 간의 착취와 갈등이라는 것이 나타나있다. 영화는 독일의 본에 있는 성에서 진행되는 이야기, 에트나 화산에서의 이야기가 함께 진행된다. 현대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클로츠는 대대로 이어져오며 부를 독점하는 자본가이다. 그의 라이벌인 헤르디히츠는 나치 출신으로, 부당한 정세 속에서 부당한 이득을 취한 자본가이다. 독일을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파솔리니는 단지 독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든 것이다. 당시 아들들이 마치 승리한 듯한 기분에 취해있을 때였다. 전후에도 여전히 기득권을 갖고 있던 아버지 세대에 대해 젊은 세대들이 일종의 세대교체를 이룬 것이 68혁명이었다. 그런데 클로츠와 헤르디히츠의 만남에서 보이는 것은 과거로부터 물려받거나 나치를 통해 부당하게 이득을 취한 사람들의 권력, 금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으니 흥분해 있을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버지 클로츠는 히틀러의 외모를 패러디하고 있다. 그는 반복해서 브레히트와 그로츠의 시대가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히틀러의 청년들처럼 복종을 해주면 좋을 텐데 그렇게 안 되는 것에 대한 염려가 있는 것이다. 그로츠는 소위 다다 시절의 대표적인 작가로 독일과 독일인을 돼지우리의 돼지에 비유했다. 파솔리니도 그 점에서 이 영화를 착안한 듯하다. 클로츠는 부인과 얘기할 때도, 그로츠가 살았다면 분명히 우리를 돼지로 그렸을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디히츠는 이름에서부터 히틀러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소위 학살자, 나치였다. 그가 과거에 유태인 볼세비키 코뮤니스트의 껍질을 벗기는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비유법이다. 클로츠에게는 율리안이라는 아들이 있다. 그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는데,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그가 돼지우리에 들어가 아날 섹스를 한다는 것이다. 헤르디히츠는 이 사실을 캐내 클로츠를 협박하고 합병에 성공한다. 합병을 축하하던 날 율리안은 돼지우리에서 죽는데, 그것이 살해된 것인지, 자살인지는 분명하지 않고 모호하다.

 

이 영화에서 동물애호증은 중요한 테마로 제시된다. 돼지우리는 분명 이 세상을, 모조리 다 먹어치우는 아버지 세대를 은유한다. 그리고 율리안은 여기에 들어가 아날 섹스를 한다. 파솔리니가 과연 무엇을 강조하려고 하는지는 모호하다. 모호함으로 제시함으로써 모든 것을 포괄시키는 것이 파솔리니 영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돼지라는 비유는 굉장히 노골적이고 모욕적인 것이다. 율리안이 이 돼지우리에 가서 하는 행위는 부친 세대에 대한 모욕이고, 자기 나름의 소극적인 저항이다. 대단히 소극적인 68세대의 남성상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처음에는 저항에서 시작됐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기 쾌락이 되어가기 때문에 모호해진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어쨌든 아들이 나치 시대의 아이들처럼 복종하든지, 복종하지 않는다면 먹어버릴 텐데, 율리안의 행위는 결국 복종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잡아먹는다.

율리안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이다는 17살의 학생으로 파솔리니가 비판하는 68세대의 전형이다. 파솔리니가 특히 혐오했던 것이 학생들이었다. 경찰들과 충동했을 때 학생들은 파솔리니가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경찰들을 옹호하고 연민을 가졌다. 그는 노동자들이나 하층민, 철거민들의 입장은 지지했지만 학생들에 대해선 관념적인 아마추어, 극단주의자로 보았다. 학생들에 대한 그러한 시선이 이다라는 인물로 표현되어 있다. 이다를 연기한 안느 비아젬스키는 당시 고다르의 아내였고, 고다르가 정치영화를 만들 때거나 많이 나왔기 때문에 소위 68세대를 상징하는 배우로 많이 각인되어 있었는데, 이 영화에선 아이러니하게도 파솔리니가 손가락질했던 그런 학생으로 나온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사가 전혀 없고 마치 무성 영화를 찍듯이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인물이 쓰고 있는 철모나 조총으로 보아 대략 16세기 쯤 일거라 짐작하게 된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동물애호증이 문제였다면, 두 번째 에피소드는 식인이 문제가 된다. 한 청년이 산에서 사람을 잡아 죽이고, 식인을 하고, 여자를 겁탈하기도 한다. 나중에는 동료들도 생기도 교회로 짐작되는 곳에 신고 되어 처형당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 청년이 군인을 죽인다는 점에서 국가권력 질서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는 여자도 죽인다. 첫 번째 에피소드와 비슷하다. 청년이 처음에 군인을 죽이고 남자를 죽였던 것은 부친살해에 대한 반복으로 느꼈다. 그렇지만 제도권에 반역하는 리더처럼 영웅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상하게 나중엔 살해 자체가 일상화되어버리는 불한당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버지를 왜 죽였는지 설명은 하지 않지만, 도피해서 그곳에서도 충동이 올라왔는지 또 군인을 죽이고, 나중에는 본질적인 것은 없어지고 나쁜 행위만 남게 되었다. 처형되기 직전에 청년은 네 번을 반복해서 말한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사람의 고기를 먹었고, 기쁨에 몸이 떨린다.’ 기쁨에 떨린다고 말하면서 청년은 울고 있다. 분명 부친 살해를 저지른 반역자, 저항한 반역자가 맞다. 그렇지만 한 개인으로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율린안과는 다르다. 율리안이 소극적이었다면 이 청년은 강력하게 저항하고서 처벌을 받는다. 두 청년이 아버지와의 관계 안에서 결과적으로는 아버지에게 잡아먹히지만 좀 다르다.

 

파솔리니의 영화를 많이 안 본 분들이라면 자유간접화법이라고 하는 것이 많이 낯설었을 것이다. 파솔리니는 자유간접화법에 대한 자기 확신이 강했고 그것에 근거해서 찍었다. 파솔리니의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잘 몰입이 안 된다. 시선을 둘 곳이 없어서 그렇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카메라의 시선(객관적 시선), 캐릭터의 시선(주관적 시선) 두 가지를 본다. 영화를 볼 때 자연스럽게 이 둘 중 하나를 따라가게 되어 있는데, 파솔리니는 그런 부분들을 자꾼 깨뜨린다. 이를테면 첫 장면에서 나비가 나타나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카메라가 휙 돌더니 청년이 그 나비를 보고 있는 것을 보여준다. 그 때 일어나는 약간의 혼란 같은 것이 있다. 관객은 이 두 시선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일반적인 영화와 많이 다라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한 시선에 대해 파솔리니가 시적 영화라고 부르며 주장했던 것이 점점 현대영화의 특징을 설명하는 부분이 되었다. 파솔리니의 자유간접화법 이후에 생긴 현대영화의 흐름이라고 보면 되겠다.

 

정리: 장지혜(관객에디터) | 사진: 박지연(자원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베니스 영화제의 공식 섹션 가운데 하나인 ‘베니스 클래식’은 복원된 필름을 상영하는 프로그램이다. 매년 베니스는 고전들을 새로 복원하여 영화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곤 했는데 올해도 마이클 치미노의 <천국의 문>(1980), 오손 웰스의 <팔스타프 심야의 종소리>(1982), 빌리 와일더의 <선셋 대로>(1950) 등의 클래식들을 복원해 공개했다. 특히 그동안 말도 많았던 <천국의 문>이 219분짜리 감독판으로 소개되며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천국의 문>은 1980년 개봉 당시 흥행참패로 제작사인 UA(United Artists)를 파산케 했던, 말 그대로 ‘저주 받은 작품’이었는데 1981년 칸영화제에 초대되며 조금씩 명예를 회복하기도 했다. 그러나 통제력을 잃어버린 감독에게 제작 전권을 넘겼을 때 어떤 불행이 일어나는지를 말할 때면 어김없이 <천국의 문>이 거론될 정도로 최근까지 악명을 날리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베니스를 통해 감독이 원했던 판본에 가장 가까운 작품이 소개되며 과거에 그렇게 오명을 뒤집어쓰던 <천국의 문>이 이제 미국이라는 국가의 탄생에 대한 대서사시라는 호평을 받았고, 올해 내내 비평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마이클 치미노는 베니스의 시사에 직접 참여하여 “아직 최종적인 편집은 끝난 게 아니”라며 새로운 판본의 제작 가능성에 대해 말하기도 했다. <천국의 문>이 새로 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베니스영화제와 볼로냐시네마테크의 협업

칸영화제 같은 다른 영화제도 최근 들어 복원된 필름을 소개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를테면 올해 칸을 통해서는 세르지오 레오네의 <옛날 옛적 미국에서>(1984)가 복원판으로 상영되기도 했다. 디지털 복원작업의 발전 이후 이런 변화는 더욱 확산되고 있는데, 베니스영화제가 복원 사업에서 남다른 성과를 내는 가장 큰 이유는 ‘볼로냐시네마테크’의 꾸준한 복원사업 덕분이다. 이곳은 1980년대부터 초기 영화 복원사업을 꾸준히 벌여 왔고, 특히 1986년부터 복원된 필름을 상영하는 영화제인 ‘치네마 리트로바토’(Cinema Ritrovato, 되찾은 시네마라는 뜻)를 매년 6월마다 열고 있다. 초기영화 전문가인 비평가 비토리오 마르티넬리 등이 주도한 이 영화제는 이제 26년째를 맞았고, 지금은 복원 필름 영화제에 관련해선 최고의 국제영화제로 평가 받고 있다. 볼로냐 영화제의 성공은 다른 나라의 시네마테크에도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각국의 주요 시네마테크는 그동안 해오던 3대 주요 사업, 곧 ‘상영, 보관, 연구’ 이외에 ‘복원’이라는 또 다른 사업도 병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베니스의 복원 작업도 볼로냐시네마테크가 주도했다. 이번에 서울에서 소개되는 네 작품은 물론, 칸에서 로버트 드 니로가 소개했던 <옛날 옛적 미국에서>도 볼로냐시네마테크가 복원한 필름들이다. ‘베니스 클래식’은 이탈리아 영화들, 특히 초기의 무성영화들을 복원하며 명성을 얻었는데, 이제는 볼로냐시네마테크의 특별한 기술력 때문인지 전 세계의 영화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번에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소개되는 영화들은 모두 이탈리아 작품들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작품은 프란체스코 로지의 <마테이 사건>(1972)이다. 소위 말하는 ‘납의 시대’인 1970년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유럽은 1968년 이후 극단적인 정치적 충돌의 시대로 돌입했고, 저널리즘은 이 시대를 ‘무거운’ 납으로 비유했다. 프란체스코 로지는 루키노 비스콘티의 조감독 출신인데, 자신의 스승처럼 좌파였고, 70년대는 엘리오 페트리와 더불어 이탈리아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감독이었다. <마테이 사건>은 엔리코 마테이라는 이탈리아 국영에너지회사의 리더에 관한 영화다. 무솔리니는 파시즘 시절 국민들을 선동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석유를 개발한다며 국영석유회사(Agip)를 설립했다. 전후의 이탈리아 공화국은 파시즘의 망령이 떠오르는 이 회사를 폐쇄하려고 했는데, 엔리코 마테이는 회사를 맡은 뒤 더욱 사업을 확장하여 다른 선진국과 경쟁하는 국영에너지회사(Eni)로 발전시켰다.

그런데 그의 사업 방식이 문제였다. 천연가스를 발견하고, 또 소량이지만 석유도 발굴한 엔리코 마테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에너지 시장에서 경쟁하고자 했다. 이탈리아가 에너지 선진국의 장벽을 뚫기란 대단히 힘들었지만 마테이는 저돌적으로 도전했다. 그래서 마테이는 미국의 눈 밖에 나는 행동을 자주 했다. 그는 옛 소련과 적극적으로 손을 잡았고, 또 50대 50이 관습이던 이익분배를 산유국에 75를 주는 식으로 바꾸어 미국 주도의 시장 관습을 깨뜨렸다. 자신감에 넘치던 마테이는 급기야 “미국의 독점시대는 끝났다”는 등 당시의 에너지 시장질서, 곧 권력 질서에 도전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마테이는 1962년 10월 27일 갑자기 전용 비행기의 사고로 죽는다. ‘추락’인지, ‘공중폭발’인지, 따라서 사고인지 살해인지 의혹이 끊이지 않았고 무엇이 진실인지는 지금도 오리무중으로 남아 있다.

마테이 역에 장 마리아 볼론테가 주연으로 나오는데 그는 당대의 배우 가운데 가장 유명한 좌파였다. 곧 좌파 감독과 좌파 배우의 협업이 탄생시킨 문제작이 <마테이 사건>인데, 이 작품은 엘리오 페트리의 <노동자 계급 천국에 가다>와 더불어 그해 칸에서 최고상을 공동수상함으로써 70년대 정치영화의 포문을 연 작품으로 기록된다. 특히 올해 베니스는 프란체스코 로지에게 평생공로상을 수여했고, 그래서 이 영화의 복원은 더욱 뜻 깊은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폐쇄적인 섬, 돼지우리, 그리고 혁명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의 <돼지우리>(1969)는 감독 특유의 알레고리 극이다. 두 개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먼저 대략 15세기를 배경으로 황야에서 살아가는 한 젊은이를 다룬다. 허름한 복장에 르네상스 시대의 철모 하나만 달랑 쓰고 황무지를 돌아다니는 그는 처음엔 곤충, 뱀 등을 먹고 살았는데, 어느 날 사람을 죽인 뒤 그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식인을 배운다. 더 나아가 다른 부랑자를 만난 뒤 식인과 여인 겁탈 등 더욱 못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으로 변한다. 결국 어느 문명 지역의 사람들에게 붙들린 두 남자는 모두 사형에 처해진다. 다른 남자는 마지막에 죄를 뉘우치고 참회하지만 청년은 처형을 앞두고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대사를 반복한다. “나는 아버지를 죽였고, 사람을 먹었으며, 기쁨에 몸이 떨린다.”

또 다른 이야기는 현대의 독일에서 진행된다. 나치 경력이 있는 어느 갑부의 아들이 있는데 그 청년에겐 정말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민망하게도 그는 돼지우리에 들어가서 돼지들과 관계를 맺는 수간(獸姦)에서 오르가즘을 느끼는 일종의 변태다. 그에겐 아름다운 애인도 있지만 그의 이런 성적 취향 때문인지 두 사람의 관계는 더 이상 진척되지 않는다. 역시 나치 전력이 있는 또 다른 기업인이 아들의 이런 비밀을 이용하여 기업합병을 기획하고, 그와 청년의 부친이 회사의 번영을 자축하는 사이 아들은 돼지우리에서 또 수간을 시도하다 이번에는 그만 돼지들에게 먹혀서(식인) 죽고 만다.

<돼지우리>는 발표 당시에도 센세이셔널을 불러일으킨 파솔리니의 정치드라마로 파시즘의 잔재(특히 경제계), 식인으로 치닫는 문화, 죽음을 불사하는 부자간 혹은 세대간의 갈등 등이 적나라하게 표현돼 있다. 사실 어떤 해설을 내놓는 게 무의미해보일 정도로 사건은 직접적이고 노골적이다. 한편 독일 에피소드에서 기업가의 비서로 나오는 수염 난 남자는 파솔리니만큼이나 진보적인 태도와 활동으로 유명했던 마르코 페레리 감독이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스트롬볼리>(1950)는 당시 감독의 사실상 아내였던 잉그리드 버그먼이 출연하여 더 유명한 작품이다. 지중해의 화산섬인 스트롬볼리로 오게 된 리투아니아 출신의 금발 여성(버그먼)이 이곳의 척박한 자연환경, 그리고 그만큼 척박한 문명에 부딪혀 고통을 겪는 내용이다. 외부인의 눈에 비친 이탈리아의 폐쇄적인 문명에 대한 표현도 돋보이지만, 로셀리니 특유의 리얼리즘이 발휘되는 점은 역시 그의 천재성을 재확인하게 한다. 그의 영화는 늘 현실 같은 허구, 허구 같은 현실을 뒤섞어 놓는다. 말하자면 로셀리니의 리얼리즘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흐릿한 데서 그 독특함이 돋보이는데, 이런 점에서 이 영화의 고기잡이 시퀀스는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평가된다.

 

마지막으로 <붉은 셔츠>(1952)는 일반 관객에겐 비교적 생소한 고프레도 알레산드리니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파시즘 시절 전설적인 감독이던 알레산드로 블라제티의 조감독 출신인데, 전쟁 전의 파시즘 경력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테크니션으로서의 장점 덕분에 블라제티와 더불어 전후에도 살아남은 감독이다(그러나 두 감독 모두 결국에는 과거의 경력 때문인지 오랫동안 활동하지는 못했다).

<붉은 셔츠>는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인 주세페 가리발디의 이야기다. 남미에서 혁명가로 이름을 날리던 그는 1848년 유럽의 곳곳에서 혁명이 일어나자 조국인 이탈리아로 들어와 통일운동을 모색했다. 그러나 외세의 개입에 의해 가리발디의 첫 도전은 가혹한 패배를 맛보는데, 알레산드리니는 가리발디의 ‘붉은 셔츠’(가리발디 군대의 색깔)가 외세에 밀려 로마부터 베네치아까지 도주하는 과정을 마치 중국의 장정(長征)처럼 묘사하고 있다. 다시 말해 영웅으로서의 가리발디가 아니라 패배를 맛보며 와신상담하는 상처 받은 남자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끝없이 도주 중인 가리발디의 고생은 테크니션 알레산드리니에 의해 한때는 존 포드의 서부극을 보듯, 또 한때는 도브첸코의 광활한 러시아의 대지를 보듯 시각적 현란함으로 장식돼 있다. 한편 이 영화에서 가리발디의 아내인 아니타 가리발디 역을 맡은 안나 마냐니는 당시 감독의 아내였는데, 촬영 중에 자기 분량을 너무 요구한 나머지 감독과 큰 알력을 빚었고, 마지막에 알레산드리니는 이 영화를 끝내지 않고 촬영장을 떠나버렸다. 결국 영화는 올해 평생공로상을 받은 프란체스코 로지에 의해 겨우 완성된다. <붉은 셔츠>가 간혹 ‘아니타 가리발디’로 소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인 로셀리니의 작품부터, 알레산드리니의 중국의 혁명을 의식한 작품을 거쳐, 70년대 정치 드라마의 맹장인 파졸리니와 로지의 작품까지, 이번의 ‘베니스 클래식’은 이탈리아의 진보적 영화인들의 고민을 일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이주민, 노동자, 메소드

 

존 카사베츠는 그리스계 미국인이다. 이민 2세로 뉴욕에서 자랐다. 말하자면 부모들은 미국이 이민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던 20세기 초에 이주했다. 이들의 신분이 어땠는지는 쉽게 짐작이 될 터이다. 작고, 가무잡잡하고, 곱슬머리의 지중해 혈통 소년은 온전한 미국인으로 대접 받지 못 했다(지금도 그런 차별은 일부 남아 있다). 카사베츠의 사회 주변부에 대한 통렬한 시선은 운명적으로 새겨져 있는 것이다.

<영향 아래의 여자>도 그런 시선이 드러나 있다. 닉 롱게티(피터 포크)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으로 L.A.의 건설노동자다. 주연을 맡은 피터 포크는 <형사 콜롬보>로 유명한데, 지중해 쪽 사람들과 외모가 닮은 유대인이다. 게다가 피터 포크의 오른쪽 눈동자가 인공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평생 육체노동만 해온, 그래서 사고를 한 번쯤은 경험했을 것 같은 40대 이탈리아계 노동자를 연기하기엔 이 보다 더 적합한 배우가 없을 듯싶다. 카사베츠의 영화는 캐스팅에서부터 이처럼 현실성이 강하다. 닉의 친구들도 거의 다 이탈리아 남자들이거나 흑인들이다. 신분이 불안하고,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다.

닉의 아내 메이블(지나 롤랜즈)은 전업주부다. 남편을 사랑하는데, 그 방식이 좀 지나치다. 일종의 조울증이다. 너무 사랑하고, 또 갑자기 너무 우울해진다. 다시 말해 기분이 취한 듯 종잡을 수 없게 변한다. 제목의 ‘영향 아래’라는 말은 그런 의미에서 나왔다. 닉은 정신병원으로 보내라는 주위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힘으로 아내를 보호하고 싶다. 이들 부부의 역경이 주요 내용이다.

카사베츠는 원래 연극배우 출신이다. 연기도 하고, 또 심리 표현에 기반한 메소드(Method) 연기를 가르치면서 예술계에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카사베츠는 물론이고 동료들, 특히 지나 롤랜즈, 피터 포크, 벤 가차라 등은 전부 메소드 연기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들이다. 1950년대부터 발전해온 이런 연기법은 지금도 할리우드의 자랑이다. 그런데 메소드 연기는 칼의 양날 같아서 잘못 쓰면 심리가 넘쳐, 보기 민망할 정도로 과장되고 유치해지기도 하는 위험이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에 메소드 같은 건 없는 점을 떠올려보라.

나는 메소드는 누구에게나 맞는 연기법이기 보다는, 특정 배우에게 태생적으로 맞는 연기법이라고 본다. 그런 타고난 배우를 보고 싶으면, 지나 롤랜즈가 제격이다. 금발의 빛나는 외모를 갖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외롭고 불안한 눈빛을 자주 드러내는 롤랜즈의 연기가 <영향 아래의 여자>의 최고의 매력이다. 닉의 친구들이 모두 몰려와 이탈리아 사람들답게 왁자지껄하며 스파게티를 만들어 먹는 자리에서, 롤랜즈가 펼치는 흥분한 여성의 조증은 그게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다. 원래 이 작품은 카사베츠가 연극으로 발표하려 했는데, 주연을 맡은 롤랜즈가 너무 강한 심리 연기를 1주일에 8번 무대에서 펼치는 것은 무리라고 반대해, 영화로 바꿔 발표했다. (한창호 / 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강연] 데카당스라는 비스콘티의 낙인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그동안 여러 차례 비스콘티의 영화세계에 들려줬던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다시 한 번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다. 그는 비스콘티의 유작 <순수한 사람들> 상영 후 이어진 강연에서, 비스콘티의 미학적 유산에 대해 풍부한 그림 자료들을 곁들이며 들려주었다.


한창호(영화평론가):
<순수한 사람들>이 비스콘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마지막 미학적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맡게 됐다. 먼저 <순수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나중에 그림 자료들을 보면서 데카당스라는 비스콘티의 낙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이 영화는 비스콘티가 만 70세가 좀 안 됐을 때 발표된 작품이다. 영화를 찍을 때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결국 3월 정도에 세상을 뜨고 말았고, 5월에 칸에서 최초로 소개가 됐다. 칸이 많이 사랑했던 감독이었고 유럽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던 감독이었으니, 많은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다. 영화가 비관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흥행 8위를 했다. 죽기 직전까지 영화를 만들고 어느 정도 흥행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책을 넘기는 손은 비스콘티의 오른손이다. 이때 왼쪽 반신은 마비된 상태였다. 3년 전에 <루드비히>를 찍다가 무리해서 쓰려졌고 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후에 재활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하여 <가족의 초상>을 만든 후, 불행하게도 다시 쓰러져서 이 영화는 휠체어에서 연출을 했다. 비스콘티는 1차 편집본을 보고 대단히 실망하여 대대적으로 수정을 하겠다고 말한 후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이후 각본과 촬영감독이 합심하여 수정해서 만든 작품이 지금의 버전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 가브리엘 단누치오는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초인에 대한 세속적 욕망이 컸다. 보편적인 평범함에 대해 경멸이 있었고, 여성편력이 대단했다. 소설의 주제는 주로 쾌락과 죽음에 집중되어 있었다. 죄의식을 자극하거나 자기 파멸적인 쾌락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몰락시켜가는 죽음 등 금지의 선을 넘어서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범죄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그 당시 세기말적 유럽의 정후와 맞아서 그런지 몰라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비스콘티 본인이 갖고 있는 데카당스, 부패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 같은 게 단누치오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다.

비스콘티는 툴리오라는 캐릭터에 매혹을 느꼈다. 대표적인 상층 부르주아 계급인데, 이 남자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다.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있고, 누구도 자기를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기적인 존재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부분에 대해 견뎌내지 못하고 광기에 빠져서 아이를 죽이게 된다. 그 남자에 대해 비스콘티가 동병상련이나 자기 연민을 느낀 것 같다. 비스콘티 전공자들은, 이 작품 또한 상층 부르주아 남자를 통해 그 당시 이탈리아 상층부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반사회성이나 윤리적인 부분을 데카당스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에는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의 작품에 그런 사회적인 부분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코뮤니스트였던 비스콘티가 <센소>를 내놨을 때 사람들이 많이 실망했는데, 공격한 것도 옹호한 것도 좌파 비평가였다. 비스콘티를 옹호한 사람들은 루카치의 리얼리즘에 대한 옹호자들이었다. 루카치의 리얼리즘은 외관과는 상관없이 세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진실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더 리얼리즘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례로 든 것이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다. <센소>가 루카치적인 리얼리즘의 영화적인 모범이며, 제대로 된 리얼리즘의 사례를 보여준 것이 비스콘티라는 주장이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의 영화들에는 패배주의와 개인주의자들이 체념 등이 드러나 있으며 필멸의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한 성찰이 있다. 데카당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리얼리즘이나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순수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인형의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장식된 공간과 의상, 마리오네트처럼 의례화 된 행동만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반쯤 죽은 존재들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준다. 활기가 없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인다. 데카당스의 멜로드라마 표현법이 더 멜랑콜리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프린트 상태가 좀 안 좋고 컬러가 탈색돼 있어서 좀 아쉬웠다. 덧붙이자면 툴리오를 연기한 남자배우 지안카를로 지안니니는 당시에 코미디 배우였다. 능청스럽고 여성스럽게 빈대 붙는 남자 역할을 굉장히 잘했다. 여기에서 단누치오와 병든 비스콘티의 분신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줄리아나를 연기한 여자배우 로라 안토넬리는 70년대에 주로 벗는 역할을 했었다. 비스콘티는 육체적 외양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비스콘티가 데카당스 멜로드라마를 표현하는 방식은 대단히 회화적이다. 그림자료를 보면서 비스콘티의 회화적으로 표현된 데카당스의 멜로드라마 미학에 대해 알아보자. 비스콘티는 데카당스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죽음을 회화적인 도상을 통해 표현한다. <강박관념>의 남자주인공 지노는 대단히 어두운 집 내부에서 살인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유령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히스테릭하게 나온다. 어둠이라는 자극을 도상적으로 잘 보여줬다. 남자가 불안감에 빠져있으니 여자주인공 죠반나가 남자를 달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를 한다. 파티 준비를 할 때, 멕베스와 멕베스 부인이 살인을 공모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사자를 상징하는 여자가 낫을 가지고 등장한다. 데카당스 시절의 독일권 화가인 뵈클린의 <페스트>(1898)의 그림과 유사하다.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죽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데카당스라는 테마가 미술을 통해 표현됐다. 또한 죠반나가 영화의 도입부에서 지노를 만나자마자 사랑을 나눈 후 돈만 많은 남자랑 사는 것에 대해 의자에 앉에 몸을 비비 꼬면서 한탄하는 장면은 모딜리아니의 <장 에뷔테른>(1918)을 참조했다. 눈동자가 없는, 데스마스크. 체념, 자극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를 표현했다.


<센소>는 그림자, 육신이 없는 것, 유령에 대한 영화다. 오페라 시퀀스가 지나고 나서 베니스의 밤에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나를 당신의 그림자로 받아주면 되지 않겠느냐" 라는 남자의 대사가 나온다. 농담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여자는 발이 안 보이고, 남자는 흰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두 사람 모두 유령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다가가 있는 모습을 밤에 길거리를 방황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대한 무덤 속을 걷고 있는 두 그림자처럼 영화가 시작된다. 이 때부터 데카당스라는 테마가 비스콘티의 영화에 들어온 것이라고 본다. <레오파드>는 죽음과 소녀의 테마를 다룬다. 영화 마지막의 가장 아름다운 춤 장면에서, 비스콘티는 죽음과 소녀라는 서양 미술사의 오래된 테마를 변주한다. 검은 옷을 입은 버트 랭커스터가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이고,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순결한 소녀를 상징하는 것처럼 대조시켜놨다. 한스 발둥의 <죽음과 소녀>(1517)의 메멘토 모리, 비어츠의 <죽음과 소녀>(1848)를 참조했다. 낭만주의 시기에는 죽음이 센슈얼하게 그려진다. 뭉크의 <죽음과 소녀>(1893)에서는 소녀가 죽음을 끌어안고 적극적으로 사랑의 행위를 표현한다. 죽음을 사랑의 대상으로, 죽음에 더 방점이 찍힌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레오파드>에서는 랭커스터에 방점이 있으며, 죽음을 상징하는 그 남자가 더 아름답게 나온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질병의 멜랑콜리와 염을 다룬다. 마지막 시퀀스 바로 전에 아센바흐가 이발소에서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음날 그 복장 그대로 해변에 나갔다가 타치오를 보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화장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죽은 자가 하는 의례로서의 염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또한 이 장면에서는 말러의 교양곡 5번 2악장 아다지에토 장송곡이 나온다. <루드비히>는 밤의 찬가다. 푸른색의 영화다. 비스콘티는 컬러에 대한 해석이 참 섬세한 사람이다. 루드비히라는 달의 왕에 관련된 이야기다. 비스콘티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루드비히는 예술가로 태어나야할 사람이 왕으로 태어난 것이다. 첫사랑에의 실패를 위무하기 위해 바그너의 음악에 빠지며, 중간에 동성애자로 변하는 상황을 운명의 저주처럼 받아들인다. 그런 부분에 비스콘티의 삶이 들어가 있다. 병든 사람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루드비히가 자기 왕궁 안에 인조 호수를 만들어 놓고 백조의 왕자처럼 거기에서 놀고 있는 장면이 있다. 건물 내부의 컴컴한 물이 있는 공간은 일종의 자궁이다. 차라리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본능적으로 죽음으로 돌아가려는 심경이 드러난다. 비통함과 우울함을 증폭시키는 장면이다. <센소>를 만들 때 주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스스로 알았을 텐데, 그런 점을 이겨낸 것은 멋진 행동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천성과,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한 천성을 계속해서 표현해 낸 것에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낭만주의 시기의 예술가의 초상에 맞도록 자기 자신이 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4]

서울아트시네마의 '한겨울의 클래식' 기획전 기간에 영화에 대한 즐거움을 한층 더할 수 있도록 '영화, 역사, 풍경'을 테마로 한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지난 1월 9일,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 상영 후에는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데카당스와 빛"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맡았다. 그는 <레오파드>에서 드러나는 오페라에서 가져온 4막 구성을 따라, 공간과 미장센을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비스콘티의 데카당스 미학에 대해 들려주었다.


한창호(영화평론가): 2년 전에 비스콘티의 <루드비히>와 관련된 강좌 이후, 비스콘티로 여러분들과 만나는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데카당스와 빛"이란 제목으로 준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대부분 왕정이었는데,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있는 사보이 왕가를 중심으로, 모든 왕국들이 사보이 왕가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흡수 통일이 시작됐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라는 왕과 '카부르'라는 재상, 직접 전투를 벌이는 '주세페 가리발디' 세 사람이 그 중심이었다. 그들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큰 대의에는 합의를 했지만, 어떻게 통일하느냐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사보이 왕가는 입헌군주제를 원했다. 귀족과 부르주아가 서로 합의하여 권력을 분점하려 한 것이다. 반면, 가리발디는 국민주권의 공화국 건설을 하려 했다. 그런데, 가리발디가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왕가 입장에서 그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사람이 된다. 귀족들은 가리발디에게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먼저 가리발디를 숙청한다. 영화의 끝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것이 현재 이탈리아의 출발이다. 이탈리아는 비록 통일은 했지만, 그것은 처음에 목표했던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미흡한 상태로, 정치적 타협을 한 상태로 이뤄졌다. <레오파드>의 주인공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는 구시대에 속한 사람의 본능처럼 가리발디를 적대한다. 반면, 조카인 탄크레디(알렝 들롱)는 세상의 변화를 알고 있고, 가리발디에 자신의 미래를 건다. 상식적으로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레오파드>에서 가리발디는 공포를 주는 대상이자 무뢰한처럼 나온다. 이는 주인공인 귀족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레오파드>부터 비스콘티가 데카당스의 미학을 시작한다. 비스콘티는 1953년에 만든 <센소>에서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처음 드러내며, <레오파드>부터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죽음이 된다. 비스콘티는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한데, 점점 대 서사를 지닌 멜로드라마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오페라의 영향일 것이다. 그는 <레오파드>부터 본격적으로 오페라의 4막 형식을 영화에 가져온다. 1막에서 큰 줄거리를 던져놓고, 2막은 아다지오처럼 살짝 내려갔다가, 3막에서 다시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해, 마지막 4막에서 종결되는 오페라의 전형적 구성이다. 이에 따라, 공간 구성도 명백하게 분리돼 있다.
1막의 경우, 황금빛 저택이 주위에 아무 것도 없이 홀로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다들 검정색 옷을 입고 성직자의 안내를 따라 가족의례를 하고 있다. 곧 그 평화가 깨지고 밖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군인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는 그 군인이 속한 구질서의 종말을 뜻하며, 돈 파브리치오의 운명을 암시한다. 2막에서는 돈 파브리치오 일가가 팔레르모에서 돈 나푸가타까지 거의 대각선으로 시칠리 섬을 가로질러 피난을 간다. 그 과정에서 사막 같은 죽은 공간이 펼쳐진다. 시칠리아의 색깔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비스콘티는 그 메마른 색이라고 잡은 것이다. 2막 부분은 분위기가 소강상태로 변한다. 가족들이 돈나푸가타의 교회에 도착하고, 교회에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평 트래킹 숏은 명백하고 노골적인 죽음의 암시다. 곧 밀려나는 세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때 나오는 오르간 음악은 <라 트라비아타>의 격정적인 아리아이다. 즉 대단히 세속적인 음악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한 것이다. 또한 1막에서는 커튼을 살랑살랑 거리게 만들던 바람이 2막에서는 매우 거센 모래 바람이 된다.

3막은 탄크레디가 비오는 날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막에서는 안젤리카(클라우디오 카르디날레)의 집안이 상승하는데, 안젤리카의 행동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처음 안젤리카가 그 집안에 들어올 때는 심호흡을 하고 들어오는데, 3막의 시작에서는 별다른 예의를 차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들어와서 탄크레디와 포옹하고 키스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복도에서 키스하는 장면에서 그 성의 폐허 같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산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먼지도 많으며, 쥐가 많다고 하지만 심지어 쥐도 없을 것 같은, 살아있는 생명이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남녀가 사랑을 한다. 잉태될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하는 비스콘티의 수법으로, 죽은 공간에 인물을 배치하여, 그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실을 맺지 못하리라는 표현이다. 3막부터 데카당스에 관련된 테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토리노에서 온 정치인이 돈 파브리치오에게 상원 의원을 해달라고 부탁할 때, 돈 파브리치오의 대답은 "시칠리아인들은 늘 피곤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고 싶다. 시칠리아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멸이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불멸이라는 것은 죽음이다. 그렇게 죽음을 원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정치인을 배웅하면서, "우리는 표범와 사자였는데, 지금은 하이에나와 양들의 세상이 우리를 대체했다."라고 말한다. 돈 파브리치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시스템이 바뀐다면 사실상 자신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새로운 질서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마지막 4막은 45분 동안 이어지는 무도회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가 185분 쯤 되는데, 오페라처럼 시간도 배분하여 각 막이 45분 정도가 된다. 여기서는 중요한 춤이 세 번 등장한다. 춤추는 장면 이전에 비스콘티가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자기의 코뮤니스트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4막이 시작되면서 나오는, 외부에서 왈츠가 들려오는데, 농부들은 노동을 하는 숏이 있다. 독점하고 있는 계층만 바뀔 뿐이지 혁명이라는 건 없으며, 농부들은 여전히 땅을 파고 끊임없이 노동하며, 착취당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춤을 추는 첫 번째 커플은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다. 이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결합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자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소녀들이 떠드는 장면을 보며 현기증을 느낀다. 사회적인 죽음은 이미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물리적 죽음도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두 번째 커플은 그 무도회를 주최한 공주와 가리발디를 패배시킨 대령이다. 승자들의 춤이며 정치적인 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집주인의 서재에 들어가 프랑스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임종을 맞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장소로 들어오던 탄크레디는 "삼촌, 지금 죽음에게 구애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돈 파브리치오는 "나의 죽음도 저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시트가 더 깨끗하고 자식들의 복장도 더 단정하면 좋겠다."라고 대답한다.

세 번째가 돈 파브리치오와 안젤리카의 춤이다. 3분 동안의 가장 중요한 춤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버트 랭커스터가 처음 캐스팅 됐을 때, 비스콘티는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한다. 비스콘티는 랭커스터에게 춤 선생을 붙여 유럽의 사교춤을 가르치게 한 후, 귀족들이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1주일 후에 왈츠 스텝을 보러 온 비스콘티는 랭커스터가 귀족식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큰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랭커스터도 화가 나 짐을 싸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하고 일을 해야겠다는 어떤 무언의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다. 내가 볼 때는 랭커스터가 대인이었다. 비스콘티의 질책을 예술적인 야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친구였다. 세 번째 춤은 4막의 피날레이자 이 극 전체의 피날레이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와 검은 옷을 입은 나이든 남자의 춤이다. 소녀가 상징하는 사랑과 돈 파브리치오가 상징하는 죽음이 동시에 만나면서, 죽음과 순결한 사랑이 더 강조되는 대조법을 쓴 장면이다. 이 장면이 끝난 후 돈 파브리치오는 죽을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밤새도록 벌어진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에필로그에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마차를 타고 가며, 돈 파브리치오는 걸어간다. 마차를 타고 갈 때 들리는 소리는 총소리이며, 파브리치오가 홀로 길을 걸어갈 때는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는 죽음을 앞둔 돈 파브리치오의 영혼은 위로하는 일종의 진혼처럼 들린다. 앞을 쳐다보니 좁고 깊은 검은 색 골목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랭커스터가 워낙 연기를 잘했다.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는 남자가 물리적으로도 죽게 되는 데 이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일종의 의례로서의 춤을 전개시키는 이러한 형식은 다른 영화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부>인데, 결혼식을 통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 다음에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과 소품은 세트디자인이 아니라 모두 진짜다. 시칠리아의 귀족에게 빌린 실제 성이다. 살레모라는 지역에서 매일 꽃을 공수했으며, 초는 매 시간마다 갈았다. 춤추는 홀 바로 옆방에 부엌을 설치해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했다고 한다. 조명을 많이 쓰지 않고 거의 양초로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중에 스탠리 큐브릭이 <배리 린든>에서 양초를 활용한다. 귀족들의 파티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스콘티는 같은 영화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왕족 내부자가 그린 귀족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비스콘티 이외에, 극소수 계급을 대표하는 내부자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권위를 잘 표현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정리: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관객 2011.01.17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에는 이 분 강의를 꼭 들어야겠습니다. 정리해놓으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