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개봉 이후 <지옥의 묵시록>은 베트남전에 관한 한 가장 유서 깊고 영향력 있는 영화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일부 평자들에게는 사이공에서 캄보디아 정글로 향하는 윌라드(마틴 쉰)의 행적을 좇는 내러티브의 궤적이 의혹을 사기도 했다. 엔딩 장면이 김빠지고 실망스럽다는 지적에서부터 마지막 30분은 조리에 닿지 않는 억지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힐난이 눈엣가시였음인지 코폴라는 묵혀둔 푸티지들을 가지고 새로운 장면들을 취택하여 디렉터스컷을 내놓았다. 2001년 칸영화제에서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이하 <리덕스>)라는 이름으로 디렉터스컷이 상영됐을 때 안팎의 관심은 비상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판본에 덧붙인 코폴라의 일성은 다음과 같다. “<리덕스>에는 1979년 버전에 삽입하지 못했던 장면들을 넣음으로써 캐릭터의 내면에 설득력을 주었고, 나 자신조차 모호하게 느꼈던 라스트를 정리했다."

코폴라의 작의(作意)에 가장 근접하게 재편집되었다는 <리덕스>는 원본과 몇 가지 차이를 보여준다. 조셉 콘라드의 원작 <어둠의 심장>을 느슨하게 참조한 스토리는 변함이 없지만, 거의 50분의 분량이 첨가된 <리덕스>에서 코폴라는 두 가지 의도를 드러낸다. 하나는 통상의 전쟁영화들이 그러하듯 전쟁의 부조리를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이라는 특별한 사태가 인간의 영혼을 잠식하는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다. <플래툰>(1986)이나 <풀 메탈 자켓>(1987) 같은 베트남전 영화와 다르게 <지옥의 묵시록>은 그다지 정치적이거나 논쟁적이지 않다. 리하르트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발퀴레의 기행’이 장엄하게 깔리면서 네이팜탄을 퍼붓는 미군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 선연한 광기의 구체를 보여주지만, 이 장면을 제외하고 베트남 인민을 학살하는 미국의 흉포함을 집요하게 추궁하진 않는다. 도리어 코폴라는 베트남에서 벌어진 특별한 전쟁을 다루기보다 근원으로부터 추출된 인간의 심리, 이를테면 미스터리한 공포를 다룬다. 윌라드는 영화를 안내하는 가이드 역할을 하지만 영화 안에서 개인사와 관련된 세부묘사는 극히 빈약하다. 이야기가 클라이맥스에 도달할 무렵 우리는 윌라드의 종잡기 힘든 여정의 종착지인 커츠(말론 브란도)라는 존재를 만나는데, <지옥의 묵시록>의 진짜 목표는 이 남자의 심부로 침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키지 않는 임무를 위해 죽어가는 윌라드의 정체성은 여전히 수수께끼이다.


창작자로서야 본래 의도를 살리고픈 심정의 발로이겠으나, 꼭 이 디렉터스컷이 원본보다 더 훌륭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종종 고난의 흔적이 여실한 상처투성이 판본이 더 웅숭깊은 의미를 갖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옥의 묵시록>의 제작과정에 대한 1991년 다큐멘터리 <어둠의 심장: 영화감독의 묵시록>은 생지옥과 같았던 영화의 제작과정을 잘 보여준다. 촬영 기간 동안 마주친 예기치 않은 문제들은 코폴라를 기진하게 만들었다. 4개월 반으로 예정되어 있던 촬영은 16개월로 늘어졌고, 동남아에 출몰하는 태풍 때문에 촬영은 중단됐으며, 로케이션 장소를 폐허로 만들었다. 주연 배우 마틴 쉰은 건강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버티기 힘든 지경이 되었지만 과체중이 되어 나타난 말론 브란도는 허리 선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도록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찍어달라고 생떼(어둠 속에 웅크린 커츠의 시각화는 브란도의 고집 때문이다)를 썼다. <리덕스>가 공개되었을 때 반응은 양극으로 갈렸다. 어느 쪽이든 <리덕스>는 창작자의 의도가 반영된 디렉터스컷과 불비함의 마성이 흐드러진 원본 사이를 견주어 볼 흥미로운 텍스트임은 분명하다. (장병원_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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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시네바캉스가 한창이던 지난 8월 8일은 특별히 정한 <대부>의 날이었다. 비록 안타까운 사정으로 <대부2>의 상영이 취소되긴 했지만, 김영진 영화평론가의 강연으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극장의 큰 스크린으로 만난 <대부>의 위력에 모두 큰 감흥에 젖은 가운데, 김영진 평론가는 촌철살인의 짧고도 굵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김영진(영화평론가, 명지대 교수): 언제 봐도 재미있는 영화다. 83년에 처음 봤다. 서울극장 리바이벌 상영이었는데, 학교 졸업하고 당당하게 본 첫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였다. 너무 쇼킹했고 특히 마지막 교차편집이 너무 쇼킹해서, 그 다음날 한 번 더 봤다. 한 동안 코폴라의 광팬이 됐었다. 국내 출시된 DVD의 서플이나 피터 비스킨드 프리미어 수석기자가 쓴 책(『할리우드의 르네상스』라는 제목으로 국내 번역)에 영화에 대한 많은 비화가 있다. 처음부터 코폴라가 연출하고 싶어서 한 영화는 아니었다. 60년대 코폴라는 미국에서 펠리니나 고다르 같은 영화를 만들려 했었다 한다. 대학의 유명한 수제였다는데, 대학 3학년 무렵 로저 코먼이라는 B급 영화 제작자에게 스카우트되어서 시나리오도 쓰고 온갖 일들을 다 했다고 한다. 구소련 SF 영화를 사와서 원본 시나리오 없이 대충 화면 보면서 더빙용 시나리오를 쓰는 등 많은 작품을 했다. 특히 <패튼>의 시나리오가 유명하다. 아카데미상도 받았다. 그렇게 시나리오를 써 가면서 연출도 했는데 찍는 족족 망했다. 연출한 영화 중 <빗속의 연인>이라는 영화가 있다. 미국의 주부가 가출하는데, 가출 동기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녀가 자아를 찾는 여행을 해 나가는 로드무비다. 하지만 이 영화도 큰 빚을 졌다. 프레드 아스테어를 데려다가 고전 뮤지컬에 대한 오마주 영화를 찍었는데 그것도 망했다.

거의 할리우드의 기피 인물이 된 상황에서 갑자기 <대부>의 연출을 맡게 된 거다. 대부라는 소설이 그렇게 베스트셀러가 될 줄 몰랐다가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니까 급히 6개월 내에 영화를 찍으려고 한 거다. 그런데 아무도 안 하려 해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사람이 코폴라였던 것. 코폴라가 이탈리아 계통이라서, 같은 이탈리아 계통끼리 마피아를 욕되게 하는 영화를 찍겠냐 해서 택했다고 한다.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인들의 전화를 받고, 코폴라 나름대로도 굉장히 창피해하면서 내키지 않아했다고 하며, 촬영 중에도 일주일마다 해고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해고 즉시 투입할 감독도 늘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해고 위협을 받은 결정적 이유는 말론 브란도와 알 파치노를 캐스팅한 것, 시실리 로케이션 고집한 것 등이었다. 당시에 알파치노는 인물도 안 되고 키도 작고 연기도 못하는 배우였다. 브로드웨이 초짜 배우도 저것보단 잘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한 여러 가지 악조건들을 무릎 쓰고 나온 영화가 <대부>다. 그런데 영화가 개봉하자 마자 박스 오피스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그 당시에 드물게 와일드 릴리즈 상영되었다. 그래서 코폴라는 그 날로 바로 로버트 에반스에게 백지수표를 받았으며, 그걸로 페라리를 샀다가 그날 저녁에 술 먹고 사고내서 파손됐다고 한다. 코폴라에게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있었다는 거다. 말론 브란도는 당시에 퇴물배우이자 말썽꾸러기였다. 코폴라가 브란도의 집에 오디션하러 찾아갔다고 하는데, 브란도는 코폴라를 맞이할 때 입안에 뭘 물고 영화 속의 그 모습처럼 준비해서 맞이했다고 한다.

코폴라는 '사이트 앤 사운드'와의 인터뷰에서 영화에 대한 세 가지 착안점을 밝혔는데, 마피아는 아메리카에 대한 메타포라는 거다. 세 가지 지점에서 같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 이익을 위해선 뭐든지 할 수 있는, 무자비하게 적을 살상할 수도 있는 집단. 그리고 둘 다 자기 내가 매우 자비로운 집단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코폴라는 더 나아가서 차라리 마피아가 미국보다 낫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적어도 마피아는 자기 구성원들은 배신을 하지 않는 이상은 확실하게 보호해주니까 말이다. <대부> 1편은 굉장히 마피아가 미화되어 있다. 그래서 코폴라는 2편에서는 그것을 반성하고 굉장히 차갑게 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편이 더 좋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우리는 판타지를 갖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회시스템(자본주의)을 충실히 할수록 가족주의가 깨진다. 비토 콜레오네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첫 살인을 저지르고 가족 내에 들어와서 어린 마이클과 노는 장면 등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클 콜레오네는 아버지 못지않게 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소외된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계속 배신하고, 그래서 죽이게 된다. 이런 주제를 마르크시즘 적인 텍스트보다 더 깊은 레벨에서, 이와 같이 다뤄낸 영화가 또 없는 것 같다. 처음 40분의 결혼식 시퀀스에서 이 모든 게 다 나타난다. 어둠 속에서는 청탁이 이뤄지고 있다. 바깥에선 밝은 햇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을 누리고 있다. 계속해서 안과 바깥이 대비되며, 모든 등장인물이 소개된다. 유일하게 거기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마이클이다. 케이가 계속 물어보는데, 마이클만이 거기에서 분리되어 양지의 세계에 있다. 그런데 어쩌다보니 패밀리 속으로 들어오고 변해버린다. 영화의 마지막, "이번만은 대답해 줄게. 아니야"라고 말하는 소름끼치는 모습. 그러면서 마이클은 계속 고립된다.

형식적으로 이 영화는 아메리칸 뉴시네마 중에서 가장 고전적 방식으로 찍혀있다. 주제 상으로는 급진적이지만. 일종의 권력이동 드라마다. 시점이동에 관해 굉장히 신중하고 영민한 방법을 쓰고 있다. 영화의 첫 숏에서 카메라가 줌 아웃되면 그것이 비토의 시선임이 밝혀진다. 한편, 비토가 암살시도를 당할 때, 카메라가 부감으로 올라가는데, 거기서부터 시점이동이 시작된다. 병원에서 마이클이 아버지를 구해낼 때 감동적인 숏-리버스숏이 나온다. 정말 믿을 만한 게 마이클 밖에 없는 상태인 거다. 유일하게 아버지를 닮은 아들. 비토가 울자 서서히 마이클에게 시점이 이동한다. 영화의 첫 숏과 대구를 이루는 숏이 솔로노와 협상 건을 놓고 의논할 때 마이클이 하지 말자고 말할 때, 카메라가 틸 다운하고 천천히 이동하면서 마이클에게 이동하여 클로즈업으로 끝나는 숏이다. 첫 장면의 비토 콜레오네와 대구를 이루는 숏으로, 아주 훌륭한 테크닉이다. 부자간의 마무리를 짓는 건, 정원에서 부자간의 대화 장면이다. 둘이 얘기를 할 때, 아주 사적인 친밀한 얘기와 비즈니스 얘기를 번갈아가며 한다. 아들 얘기, 전화국 얘기. 블로킹이 바뀌면서 카메라 포지션도 바뀌고 두 사람의 더블 클로즈업을 잡고 있다. 비토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한다. "나는 네가 거물이 되면 했다. 상원의원...." 그러자 마이클이 이것도 좋다고 한다. 아주 뛰어나게 연출하고 있는 장면이다. 거의 무장해제 된다. 손자와 노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마이클이 어떻게 새로운 보스가 되는 지를 보여줄 때에도, 톰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다 처리해 버린다. 새로운 보스가 되는, 즉 또 다른 인간이 되어버리는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생생함이다. 마리오 푸조의 원작도 굉장히 뛰어난 소설이다. 직접 취재하거나 그러지 않으면 쓸 수가 없는 소설이다. 꼴레오네가 말하는 "바르지니와 협상을 주선하는 사람이 오면 그 사람이 배신자다"라는 대사는 결코 책상에 앉아서 쓸 수 없다. 정말 그 세계의 사람들을 많이 취재한 사람마이 쓸 수 있는 대사다. 풍부한 디테일들을 가지고 할리우드의 엄청난 물적 지원을 받으면서 많은 배우들을 캐스팅해서 만들어낸 기적 같은 작품이다. 코폴라는 계속해서 이 영화를 능가하는 작품을 찍고 싶어 했으나, 내 견해로는 결국 그러지 못했다. 요즘 <테트로> 같은 영화를 보면, 오히려 자기가 젊었을 때 찍고자 했던 영화를 이제서야 찍는 거 같다. 코폴라 필생의 테마인, 선과 악, 밝음과 어둠을 가지고 말이다. <지옥의 묵시록>도 마찬가지다. 이 양면성의 측면에서. 이와 관련된 일화가 있는데, 코폴라 할아버지가 코폴라 아버지를 교육을 시키는데, 어느 날 아버지가 창고에서 플룻을 부는데 마피아가 나타났다고 한다. 코폴라 할아버지는 마피아들에게 총들을 전해주었고, 마피아들이 얘는 누구냐고 하자, "걱정 안 해도 된다, 내 아들이다."라고 했다는데, 코폴라 아버지는 이 때 마피아 앞에서 플룻을 불었다고 한다. 그들이 잘한다고 돈을 더 주고 갔다고 한다. 코폴라는 아버지의 이 일화를 굉장하다고 여겼다. 가장 잔인한 것과 따스한 것이 공존하는 순간이라 여긴 거다.


관객1: 대부를 한 다섯 번째 보는데 이해가 안 되는 장면 중 하나가 다섯 개 패밀리를 다 소집해서 돌아오는 길에, '내 아들을 죽인 것이 바르지니인 것을 알았다'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복선이 나왔는지?
김영진: 그것은 결국 감일 게다. 회합의 주도권을 쥐고 분위기를 리드하는 것이 바르자니인데, 아마도 거기서 눈치를 챈 것이 아닐까 싶다. 나도 이 영화를 열 번 이상 본 것 같다. 학생들과 수업 중에도 곧잘 본다. 의외로 학생들은 이 영화를 많이 안 봤더라. 내 기억으론 <7인의 사무라이>를 보여주면 자는데, <대부>는 안잔다. 더 젊을 때는 <대부2>를 더 좋아했는데, 지금은 <대부1>이 더 좋다. <대부2>는 너무 날이 서 있어서 좀 괴롭다. <대부1>은 날도 서 있지만, 정서적으로도 우리를 위로해주는 측면이 있다. 대중영화로서 완벽하고, 할리우드가 아니면 만들어낼 수 없는, 개인의 기량과 시스템의 힘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작품이 아닌가 싶다. (정리 :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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