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채플린은 정신병원에 끌려가는 어머니를 봐야 하는 고통 속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가 완전히 정신병원에 갇힌 뒤에는 경찰의 일제 단속에 걸려드는 고통을 겪었다. 그는 켄싱턴 로드의 벽을 따라 숨어 다니던 9살짜리 부랑아였던 것이다. 그의 회고록에 따르면, 그는 '사회의 하층계급'에 속했다. 자주 이야기되어온 그의 유년 시절을 내가 다시 언급하는 것은 절대적인 빈곤 속에 폭발적인 것이 있음을 모두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쫓고 쫓기는 영화들을 찍기 위해 키스턴 영화사에 들어가려 할 때 채플린은 뮤직홀의 동료들보다 빨리, 멀리 뛰었을 것이다. 그는 배고픔을 묘사한 유일한 영화인은 아니더라도 그것을 겪은 유일한 영화인이기 때문이다. 1914년 그의 영화필름들이 유통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전 세계의 관객들은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 프랑수아 트뤼포, 앙드레 바쟁의 <찰리 채플린> 서문에서

2012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은 찰리 채플린의 <황금광시대>다. 개막작 후보로 언급된 몇 작품이 있었지만 이견 없이 <황금광시대>로 모아졌다. '이것이 영화다'라는 이번 영화제의 콘셉트에 가장 부합하는 작품이었던 까닭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1925년 발표된 이후 지금까지 90년 가까운 시간동안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으리라. 이는 어떤 점에서 <황금광시대>가 품고 있는 현대적인 면모의 한 증거이기도 하다. 한 예로, 지금의 주류영화라는 것은 일방적인 감정 전달 방식의 드라마투르기에 목매고 있는 형국이라 할만하다. 그 훨씬 이전에 찰리 채플린은 이미 관객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인 배우이자 연출가였다.

그 중 <황금광시대>는 채플린 본인이 후세에 이름이 알려질 작품이라고 자평했을 만큼 뛰어난 영화다. 희극과는 전혀 무관한 배경과 소재를 통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는 점이 결정적인 이유였다. 금을 손에 넣겠다며 광활한 설원을 찾은 수천 만 명 모험가의 광경을 담은 첫 장면의 풀 쇼트는 확실히 비극의 오라(aura)를 군데군데 담아낸다. 추운 날씨를 못 이겨,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대오를 이탈하는 이들의 모습은 당대의 노동자 혹은 서민들이 처한 녹녹치 않은 현실을 감지케 한다. 찰리 채플린이 연기한 떠돌이 역시 그런 모험가 중 한 명이지만 특유의 우스꽝스러운 복장 - 중산모와 콧수염과 지팡이, 그리고 꽉 조인 재킷과 펑퍼짐한 바지 - 덕에 처음부터 비극적인 요소를 눈치 채기가 쉽지 않다.

서민의 모습을 염두에 둔 떠돌이의 복장은 그 자체로 희극의 소재지만 고단한 현실을 이겨내기 위한 장치로 고안됐다는 점에서 찰리 채플린이 가지고 있는 웃음의 철학이 농축된 미장센이다. 이에 대해 채플린은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My Autobiography>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역설적이지만, 한 편의 희극을 창조함에 있어 그 희극성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로 이용되는 것은 비극성입니다. 희극성이라는 것이 반항적인 태도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겁니다. 전지전능한 자연 앞에 선 우리의 미약함을 발견하고 취할 수 있는 대처 수단이란 웃음밖에 없을 것입니다. 아니면 미쳐버리고 말겠지요." 그러니까, 비극적인 떠돌이의 모습을 통해 많은 웃음을 자아내는 채플린의 영화 혹은 연기는 웃음과 눈물이 결코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원초적 감정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다.


<황금광시대>에 대해 가장 많은 이들이 언급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헌 구두짝을 삶아 먹는 장면이다. 설원을 헤매던 중 길을 잃고 찾아간 외딴 집에서 떠돌이는 어느 모험가를 만나지만 이들은 먹을 게 없어 굵어죽기 일보직전이다. 이때 떠돌이는 꺼진 등의 양초를 시험 삼아 씹어 먹다가 별 이상이 없자 구두 한 짝을 저녁식사로 해결하는 엽기적인(?) 행위를 선보인다. 스파게티 면발을 먹듯 구두끈을 후루룩 삼키고 못이 박힌 구두 밑창은 생선 가시를 골라내듯 발려 먹는데, 이 장면이 제공하는 웃음의 이면에는 인생역전을 꿈꿨다가 먹을 것 하나 구하지 못하는 신세로 떨어진 보통사람들의 애환이 그림자처럼 엎드려있다. (촬영에 쓰인 구두는 감초로 만든 것이었다. 해당 장면의 촬영이 끝난 후 채플린은 3일 동안 복통에 시달렸다고 한다.)

웃음과 눈물의 밀접한 관계성을 기막히게 살려내는 찰리 채플린의 감각은 본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수인 아버지와 배우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각각 알코올중독과 정신분열을 겪는 부모 밑에서 지독한 궁핍과 허기에 시달린 불우한 어린 시절은 잘 알려져 있다. 열 살 때 아동극단에서 탭댄스를 배우고 무대에 서게 되면서 그는 희극의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황금광시대>에는 그런 경험의 소산이라 할 만한 장면이 등장한다.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조지아 헤일)와의 식사 장면에서 떠돌이가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두 개의 빵에 포크를 꼽아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다. (이에 대한 당시 관객들의 반응이 얼마나 열렬했는지 극장 측은 이 장면을 연이어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고 한다.)


결국 현실의 고단함을 이겨내는 것은 이를 잊게 해주는 웃음이다. 이 웃음의 정체는 혼자가 아닌 사람과 사람끼리 부딪히는 관계의 과정 속에서 생성된다. 안 그래도 <황금광시대>는 떠돌이가 부자가 되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은 조지아와의 사랑이 맺어지는 구조로 진행된다. 이는 채플린이 <황금광시대> 이후 <시티라이트>(1931) <모던 타임즈>(1936) 등에서 일관되게 역설해온 바다. 돈이 잠시간의 행복을 가져올지 몰라도 해피엔딩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 오히려 <황금광시대>에서 우연히 금광을 찾아 부자가 된 떠돌이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도 사랑하는 여인 조지아와 맺어지는 장면에서다. 그 둘은 미국으로 향하는 뱃속에서 관계가 완전히 역전되고 마는데 한때 잘나갔던 조지아는 밀항자 신세로 전락한 상태다. 하지만 떠돌이는 이에 개의치 않고 조지아를 받아들이며 환하게 웃음 짓는다.

<황금광시대>에 대해 현대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부분 때문이다. 채플린의 영화가 어필을 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날로 기계화되어 가는 시대 속에서 빠르게 잊히는 인간적인 가치에 대해 역설했던 까닭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신자유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재도 물질의 가치에 현저히 밀리고 있는 인간성의 회복을 목격하기 위해 극장을 찾는 관객이 대다수다. 그런 까닭에 최근 영화들 역시 메시지 전달보다는 희로애락의 감정을 전달하는 이야기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채플린이 희극과 비극이라는 두 감정의 이미지 충돌을 통한 몽타주를 구사하며 영화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였다면 현대의 영화들은 전혀 생각할 틈을 주지 않으면서 감정을 전달하는 일방향 연출에 매진하는 추세다.

장 콕토는 "채플린의 도움으로 인류는 바벨탑의 건설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만국공용어로 작용하는 그의 연기와 영화에 대해 극찬을 표한 바 있다. 올해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작 <황금광시대>는 '희극이라는 이름의 애수'로 불리는 찰리 채플린 영화의 정수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한 상품으로 기능하는 현대영화가 잊은 '영화란 무엇인가'의 가치에 대해 다시금 돌아보는 시간을 제공할 것이다.

글|허남웅 영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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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분노하라』는 한 프랑스 노투사의 짧은 외침이 담긴 책이 한국에 출간되면서 큰 호응을 불러일으켰다. 단 몇 십 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가 프랑스에서만 60만부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되었는데, 레지스탕스 정신의 현대적 부활을 요구하는 이 책에서 저자(스테판 에셀)는 흥미롭게도 트뤼포의 영화 <쥴 앤 짐>에 대해 주목할 만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세 살 때 그의 어머니(엘렌 에셀)가 아버지(프란츠 에셀)의 절친한 친구인 앙리 피에르 로셰(원작 소설 『쥴 앤 짐』의 저자)와 사랑에 빠져 함께 살게 된 경험을 밝히면서 이후 그가 견지하게 된 윤리관을 이렇게 밝힌다. “제 입장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아닌 다른 남자와 산다는 것은 거슬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버지도 그 사랑에 동의했으니까요. 아버지는 이를 비도덕적인 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일찍부터 저는 세간의 도덕이나 윤리 같은 것과는 거리를 두게 된 것 같습니다. 결국 도덕이란 타인들과 사회가 만들고 우리에게 강요하는 규범에 순응하는 것일 터입니다. 또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할 것, 즉 발명이며 창조(말하자면 결국 각자 자기만의 자유를 얻어내는 일)일 테니까요.”


트뤼포는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로셰의 원작 소설에 매혹되었고 일찍이 작품의 영화화를 결심했다고 한다. 엘렌 에셀과 프란츠 에셀, 앙리 피에르 로셰 사이의 삼각관계를 다룬 그의 자전적 소설에 대해 트뤼포는 “내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현대 소설 가운데 하나”라며 “미에 관해 끊임없이 새로운 윤리를 반복 부여함으로써 아무런 충돌 없이 서로에 대한 감동적인 사랑을 이루어간다”고 공개적으로 극찬했다. 그러나 자신의 첫 영화에 대한 고민으로 <쥴 앤 짐>의 영화화 계획은 계속 연기되었다. 데뷔작 <400번의 구타>로 인상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 차기작 <피아니스트를 쏴라>로 굴곡이 심한 실패를 맛본 트뤼포는 그 즈음 다시 만나게 된 잔 모로에게서 위안을 찾으며 미뤄온 각색 작업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60년, 트뤼포는 카트린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언어와 문학에 대해 조예 깊은 대화를 나누며 돈독한 우정을 쌓는 친구인 쥴과 짐에게 카트린은 ‘하나의 출현’이었다. 셋이 처음 한 자리에서 만나던 날 남장을 하고 거리로 뛰쳐나갔던 장난 같은 에피소드부터 그녀는 역할의 전위를 암시하며 이들 사이의 관계를 끝없이 맴돈다. 카트린은 모든 규범에 앞서 자유의지와 동등함을 내세우며, 때마다의 감정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여성이다. 불쾌함을 느꼈을 때 기꺼이 세느강에 몸을 던지는 것처럼 카트린은 세간의 인습에 온몸으로 투항한다.


이들 관계에서 카트린은 절대적이며, 반박 불가능한 존재이다. 그녀는 관계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탐색하고, 자신의 순수함 감정에 이끌리는 순수한 여인이다. 그만큼 카트린은 두 남자 앞에서 가장 행복했던 여자이기도 하다. 카트린은 이전에는 웃는 법이 없었다며 쥴과 짐을 만나 비로소 행복해졌다고 말한다. 셋이 함께 있음으로써 완성된 형태를 갖춘 듯 행복한 미소를 보이는 카트린의 표정 변화를 트뤼포는 가장 아름답게 포착해낸다. 그 덕분에 카트린의 잔상은 아련한 회상처럼 오래 기억된다.




전쟁이 끝난 뒤 짐이 돌아오며 다시 만나게 된 셋은 급격한 관계의 전환을 맞는다. 쥴은 짐에게 카트린과 새로이 결혼해 줄 것을 요구한다. “짐! 그녈 사랑하게, 그녀와 결혼하게. 내가 그녈 볼 수만 있게 해주게.”라고 쥴은 간청한다. 쥴은 오로지 카트린을 잃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모든 것을 희생하고자 한다. 이제 쥴에게 그 자신의 사랑은 비교 불가능한, 절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카트린의 연이은 변덕에 신뢰할 수 없는 짐은 그녀와의 결혼을 포기하고, 약혼녀에게 돌아갈 것을 결심한다. 짐은 ‘우린 생의 원천을 가볍게 여겼고 패했다’며 어떤 열패감을 확인한다. 짐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게 된 카트린은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구조와 규범에 항거한다. 트뤼포는 이 영화에 대해 ‘외설스러우면서도 대단히 도덕적인 멜로드라마’라고 언급했는데, 이는 앞서 스테판 에셀이 말했던 것처럼 윤리란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라는 데에 대한 오래된 동의일 것이다.


영화 <쥴 앤 짐>은 트뤼포와 잔 모로가 함께 한 사실상의 첫 작품이다. 이후 트뤼포는 카트린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잔 모로에 대해 “카트린이란 인물을 잔 모로는 우리의 눈앞에 실재하는 설득력 있는 인물로 만들어냈다”며 “무분별하고 도를 넘어서고 격렬하지만 무엇보다 경배할 만한 인물로, 한마디로 말해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평했다. 영화의 본격적인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당시 트뤼포는 라 가르드-프레네에 있는 잔 모로의 집에 몇 차례 머물렀다고 한다. 그곳은 트뤼포에게 일종의 은신처가 되었다. 이 시기 동안 트뤼포와 잔 모로는 창조적인 교류를 나누며 유의미한 시간을 보냈다. 조감독으로 참여했던 플로랑스 말로의 회고에 따르면 이미 그곳에 <쥴 앤 짐>의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쥴 앤 짐>은 트뤼포와 잔 모로의 관계와 체험을 동시에 드러낸 영화이기도 하다. (장미경 | 에디터)


1.19(목) 13:00
1.26(목) 17:30
2.11(토) 19:00 상영후 배우 윤진서 시네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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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영화는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프랑수아 트뤼포는 무인도에서도 영화를 만들 감독들이 있다고 말했지만, 사실 거의 모든 감독들은 대중들이 자신의 영화를 보아줄 것이라 생각하며 영화를 만듭니다. 그러나 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에는 거리가 있습니다. 이 거리를 좁히기 위해 감독들은 새로운 장치들과 전략들을 고안합니다. 관객들에게 영화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예상하고 그것에 변화를 주기 위해 히치콕은 관객들의 정서적 참여를 증진시키는 서스펜스를 구상했고, 파스빈더는 동일시와 거리두기의 새로운 전략을 멜로드라마에서 찾았습니다. 로셀리니와 고다르는 그들 각자의 교육학을 구상했고 어떤 이는 정치적, 이념적 관점을 영화에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3월의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최근에 개봉한 새로운 한국영화들을 소개하는 행사가 있습니다. 이 영화들은 모두 그들 각자의 데뷔작이기도 합니다. 이 행사는 단지 영화를 보여주는 것만은 아니고, 무언가의 질문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묻고 싶은 것은 이러한 작가들이 영화의 지배적인 제도성에 어떤 방식으로 거리를 취하면서 동시에 새롭게 관객의 기대에 어떻게 접근하고 있는가, 입니다. 즉, ‘새로운 작가 전략’을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그것이 의도된 것이던 그렇지 않든 간에 지금에 있어서 영화는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합니다. 물론, 작가들의 전략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는 이들 또한 적극적인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떤 영화를 보는가, 어떤 영화를 새롭게 확인하고 가치를 부여하는가는 고스란히 관객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영화 상영과 더불어 진행되는 관객과의 대화와 두 차례 진행되는 포럼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찾아보려는 기회입니다.


이제 더 이상 자국에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현재의 영화를 둘러싼 위기적 상황이 글로벌한 문제라며, 어디에서나 문화 활동에의 예산이 줄고 문화인이 아닌 사람들이 예산에 대한 결정권을 잡고 있기에 영화계가 어중간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말합니다. 키아로스타미는 그럼에도 영화인이 자립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인디펜던트 영화 제작자들이 새로운 방법으로 영화를 만들고, 영화의 진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영화를 지켜내지 않으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류 영화가 점점 심심한 작품들을 내놓고 있는 이 상황은 반대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고, 새로운 관객과의 만남을 이뤄낼 수 있는 호기이기도 합니다. (글: 김성욱 _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 작가를 만나다: 포럼

포럼1: 3월 26일(토) 19:00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의 돌파구를 찾다'
패널: 김동주, 김종관, 민용근, 이응일, 윤성현 장철수, 정호현

포럼2: 3월 27일(일) 16:30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
패널: 김기훈, 박진성, 백승화, 신수원, 오영두, 장건재, 홍영근

 
* 상영작과 상영시간표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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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3.22 15: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웹블로그 디자인이 뭔가 더 이뻐진 거 같아요 ㅎㅎㅎ


프랑수아 트뤼포는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이 제목이 사실 트뤼포 본인에게 해당된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적어도 트뤼포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사랑에 빠진 여배우들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싶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말이 그리 큰 과장은 아니리라. 트뤼포 영화의 여성 캐릭터들이 얼마나 매력적이었던가. 그의 영화를 보다 보면, 여배우들에 대한 감독의 사적인 매혹과 열정, 그리고 사랑이 영화 속에 그대로 드러나면서 영화 자체에 매력과 활력을 부여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트뤼포가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이라 불리며 불러일으키는 낭만은 그 자체로 영화와도 같았던 그의 열정적인 삶과 사랑에서 기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트뤼포가 단순히 여배우들의 외적인 매력에만 이끌렸던 것은 아니다. 가령 트뤼포는 <부드러운 살결>에 출연한 프랑스와즈 도를레악에 대해 처음에는 안 좋은 선입견을 갖고 있었는데, 책을 빌려주고 대화를 나누는 등의 감정 교류를 통해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한편 도를레악은 처음에는 니콜이라는 캐릭터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그녀의 분위기와 성격에 맞도록 많은 변경이 이루어졌다. 그녀는 극중 인물에 자신만의 음성과 율동과 동작을 불어넣었으며, 결국 니콜은 도를레악 본인과 거의 비슷한 인물이 되었다.

카트린느 드뇌브는 트뤼포가 열렬히 사랑했던 여인 중 하나다. 그녀는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의 촬영을 마치고, 트뤼포의 영화 <미시시피 인어>에 출연했다. 영화는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으나, 그들은 영화를 촬영하며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다. 트뤼포는 드뇌브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으로 여겼으며, 그의 인생에서 이 관계는 하나의 축복이자 심적 동요의 근원이었다. 그들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 결별을 맞이한다. 아이를 갖고 싶어 했던 드뇌브와 그렇지 않았던 트뤼포 간의 갈등이 그 원인이었다고 알려졌는데, 이 이별은 트뤼포를 매우 중대한 정신적 위기에 빠뜨린다. 그러나 이별 후 십여 년이 지난 후에 이 둘은 재회한다. 바로 <마지막 지하철>을 통해서이다. 트뤼포는 <마지막 지하철>의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카트린느 드뇌브를 염두에 두고 마리옹이라는 배역을 전개시켜나갔다 한다. 그의 판단으로 영화의 구심점을 이루는 대단히 중요한 인물, 강하면서도 냉정한 이 인물을 구현하기에 최상의 여배우가 그녀였던 것. <마지막 지하철>이 거둔 대단한 성공에 카트린 드뇌브와 제라르 드파르디외의 역할이 매우 컸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파니 아르당은 트뤼포의 마지막 거대한 사랑이었다. 트뤼포는 TV드라마에 출연한 아르당의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해버렸다. 트뤼포는 아르당에게 편지를 보내 만나자고 제안했으며, 곧바로 "다음 영화는 당신의 작품이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전해진다. 트뤼포는 그녀의 큰 입, 독특한 억양을 지닌 낮은 음성, 검은 큰 눈, 역삼각형 모양의 얼굴에 매혹되었으며,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연기, 열정과 유머 감각, 내밀한 것을 좋아하는 내성적 성격, 다소의 비사교성, 특히 감수성이 강한 면들을 좋아했다. <이웃집 여인>을 찍을 때 그들의 사랑은 막 시작되어 아직은 비밀스러운 것이었고, 이 사랑은 분명 이 영화에서의 아르당의 치명적 매력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트뤼포는 그녀에게 "촬영이 시작되면 그녀의 얼굴은 피어나고, 침묵을 지키다가 미소를 떠올린다. 그 미소는 '나는 만족스럽고, 충족되었고, 부족함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듯하다"라는 찬사를 보냈다. 그의 유작이 된 <신나는 일요일!>은 아르당의 얼굴에서 '그녀의 외모가 필름 누아르의 여주인공과 얼마나 잘 어울리는가'를 발견한 트뤼포가 그녀에게 어울릴 만한 탐정 소설을 찾아내 각색하여 만든, 온전히 그녀를 위한 영화였다. 이 순간들이 파니 아르당의 배우 인생에 있어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음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들은 동거는 하지 않은 채 이웃에 살면서 독립적인 생활을 했으며 정신적으로 매우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르당은 트뤼포가 병으로 죽어가던 최후의 순간까지 그의 곁에 있었고, 그의 아이를 낳았다. 파니 아르당이야말로 트뤼포의 최후의 여인이었으며, 트뤼포 영화의 마지막 여주인공인 셈이다.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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