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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1.13 [개막작] 페이 무의 <작은 마을의 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작]

 

- 페이 무의 <작은 마을의 봄>의 모순과 충돌

 

 

 

침울함 가득한 작은 마을,

일렁이는 정념을 품고 있는 사람들

死氣沈沈的小城, 春心蕩漾的人們

 

지아장커는 <플랫폼>의 선전 책자에 이 글귀를 써 넣음으로써, 작은 마을 속 무너진 성벽 위에서 어찌할 도리 없는 심경을 토로하던 <작은 마을의 봄 小城之春>(1948)의 위원(玉紋) 30년 뒤 펀양(汾陽)의 젊은이들을 오버랩시킨다. <해상전기> <베니스 70 : 미래 재장전>에서 그는 다시 한 번 <작은 마을의 봄>의 성벽을 보여줌으로써, 잊혀진영화를 기념하고자 했다. <해상전기>에서는 상하이의 기억과 함께 페이 무(費穆)를 다시 불러들였고, <베니스 70 : 미래 재장전>에서는 넓은 홀 안 대형 스크린을 통해 <작은 마을의 봄>의 공공연한 상연을 꾀한 것이다.

 

지아장커의 이러한 시도는 중국 대륙에서 <작은 마을의 봄>과 페이 무가 너무나 오랫동안 망각과 부정을 강요당하고 있었음에 대한 한 가지 이의 제기라 할 것이다. 오늘날 페이 무의 <작은 마을의 봄>이 중국 영화사상 최고 걸작으로 상찬받고 있음을 생각할 때, 지아장커의 이러한 시도는 의아하게 보일지도 모른다.

 

<작은 마을의 봄>은 중국 영화사상 최초로 카메라의 내적인 주관 시점을 확립한 영화이자, 섬세한 묘사, 다원적인 시공간, 단선적인 서사 진행을 깨뜨린 환형 서사 구조를 이룬 영화로서 미학적 성취와 영화사적 의의를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점들이 페이 무와 <작은 마을의 봄>을 오랫동안 대륙에서 쫓아낸 이유였으며, 페이 무 자신과 <작은 마을의 봄>이 품고 있는 모순이기도 하다.

 

 

 

1932 <도시의 밤 城市之夜>으로 데뷔한 페이 무는 1951년 홍콩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미완성작을 포함해 스무 편에 가까운 영화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고전 문화에 대한 소양을 익혔고, 자라서는 서구식 신식 교육을 받은 그는 동서 문물에 대한 조예가 깊은 지식인 영화 인사로서 상하이 영화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영화가그림자 연극 影戱으로 불리고 있었고, 서사 면에서는 고래로부터 이어져 온 소설, 극 전통에서 비롯한 전기傳奇 형식이 우세했던 시절, 페이 무는 연극이 문학으로부터 분리될 수 있었듯 영화 역시 독립된 예술 형식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는 영화가 연극과는 달리 시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롭고, 동일한 내용이 어떤 형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무수히 변주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그는 감독으로서 자신이 지켜야 할 한 가지 원칙으로, 관객을 극 중 인물이 처한 환경에 동화시켜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그 영화만의 분위기를 창조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카메라 운용, 리듬감, 사운드, 정서를 통해 영화 특유의 분위기를 창출해낼 수 있다는 구체적 방법의 제시로 이어졌다. ‘신영희新影戱라고 명명된 이 주장은 중국의 사회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을 통해 중국 영화를 정의하고자 했던 당시의소설적전통에 대해시詩로써 응수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그의 주장은 당시 시대적 정황 속에서 거처할 바를 얻을 수 없었다.

 

페이 무가 영화를 만들던 때는 항일전쟁과 국공내전 시기와 겹친다. 국민당과 공산당을 막론하고 영화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형성하고 선전하는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당시의 중국 영화들에 대해 내용이 형식을 초월해 버리는 경향이 종종 보인다며 우려를 표하던 그 역시 그 경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도시의 밤>은 빈민과 부르주아의 명확한 대비를 이루었다며 좌익 평론가들에게 상찬을 받았고, <랑산첩혈기 狼山喋血記>(1936)는 시골 촌부가 늑대를 잡는 이야기를 통해 침략자 일본에 대항하는 항전 선전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고, 돌아온 탕자의 참회와 인류애를 그린 <천륜 天倫>(1935)은 가정 윤리의 회복을 그림으로써 공산당의 계급 투쟁론에 대한 응수로 유교적 전통 윤리관을 강조한 국민당의 신생활운동에 영합하는 영화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작 페이 무는 공산당과 국민당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았으나, 이 둘 양쪽으로부터 그의 영화는 종종 오해를 받았고, 비난을 받았다. 이런 와중에 어찌 낙담하지 않고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작은 마을의 봄> 직전에 그는 <금수강산 錦繡江山>이란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미완성으로 끝난 이 영화는 항일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며 모두가 하나되어 새로운 나라를 세운다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항일 전쟁 승리 후 <금수강산>을 통해 어떤 기대를 표시하고자 했던 시도는 국공내전의 재시작으로 좌절되었고, 아마 이때 그가 맛보았을 피로감이 <작은 마을의 봄> 전반에 깔렸을 터.

 

 

 

1949년 신중국이 성립하고 나서, 주류로 등극한 좌익적 시선이 모든 분야에 걸친 역사 다시 쓰기를 시도하면서 페이 무는 철저한 부정을 당하게 된다. 이는 <도시의 밤> 이후 페이 무의 영화들이 형식주의로 향하는 퇴보를 계속했다고 보던 3, 40년대 좌익 평론가들의 시선을 계승한 것이었고, 드물기는 하나영혼의 현실주의라며 그의 영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던 목소리들은 삭제한 것이다. 페이 무의 재발견이 이루어지는 80년대 말이 오기 전까지, 신중국에서 페이무를 언급한 문헌은 단 하나. 1962년에 출판된 청지화程季華의 『중국전영발전사』다. 이 책에서 페이 무는계급 투쟁에 대해 소심하고 불안정한 태도를 보였고, 퇴폐로 기울었다고 서술되었고, <작은 마을의 봄>쁘티 부르주아 계급 예술가로서 페이 무가 지닌 이중성과 허약함을 반영하며, 위대한 (인민) 해방 전쟁 시대에 대한 그의 우울, 모순, 소심함을 반영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책은 비록 청지화의 이름을 달고는 있었으나, 편찬 과정에서 샤옌夏衍을 비롯한 문화부 주요 인사들의 검토와 협의를 일일이 거쳤다고 한다. 중국 영화사의 정본으로 오랫동안 권위를 갖고 있던 이 책은 그러므로 신중국이라는 집단의 시각을 반영한 것이 되며, <작은 마을의 봄>은 그렇게 70년대 말까지도 대륙에서는 공개적으로 상영될 수가 없었다.

 

그랬던 것이, 80년대 말에 이르러 대륙에서 페이 무와 <작은 마을의 봄>에 대한 재조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는 바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먼저 1982년에 이탈리아에서 중국 초기 영화 회고전이 열렸고, 홍콩과 타이완 인사들의 평론과 연구 성과가 소개되었다. <작은 마을의 봄>형식주의는 영화 예술 본연의 가능성을 개척한 시도라 재평가되었고, 화면 중의 정지 화면으로 제시되는난초는 동양화와 고전 시가의 사의寫意를 재현한 것이라며 중국의 전통 미학을 영화 속에 구현한 사례로 상찬되었다. 그리고 2006, 페이 무 탄생 백 주년을 기리는 토론회가 열렸다, 잠깐 동안의 홍콩 피난을 거쳐 신중국에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희망을 품고 돌아갔다가 냉대와 모욕을 당하고 쫓겨났던 바로 그 베이징에서.

 

지역성이 강조되고 다원적인 헤게모니가 공존하리라는 전지구화적 세계 전망 아래, <작은 마을의 봄>은 할리우드로 대표되는 일원론적인 영화 중심에 대항할 중국 영화의중국다움의 지표로 재정의되고 있다. 여기에는 시장을 통해 전지구화적 주도권 다툼에 참여하고자 하는 중국 영화의 야심과화어전영 華語電影이 자기정체성을 기대고자 하는 중화 문화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하는 일종의 초조감이 작용한다. 대륙에서 근래 나오고 있는 <작은 마을의 봄>에 대한 연구들이 이 영화가 지닌 중국다움을 강조하며, 오늘날의 중국 영화가 참고해야만 할중국 영화의 원 텍스트로서 의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 우연이 아니다. 5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어떤 한 영화를 둘러싼 평가는 이렇게뒤집어졌다’. 이것이 <작은 마을의 봄>이 품고 있는 모순이다.

 

한 가지 더, 글을 마치기 전에 <작은 마을의 봄>의 현대성을 두고 홍콩의 영화 평론가 리주오타오 李焯桃가 제기한 문제를 소개하고자 한다. <작은 마을의 봄> 9일간 다섯 명의 인물들이 닫혀 있는 작은 마을 안에서 겪게 되는 육肉과 영靈, 정情과 이理의 충돌을 그린 영화다. 위원이 전자라면, 그녀의 남편 리옌 禮言은 후자를 대표한다. 영화의 목소리가 관객들로 하여금 위원에 동감하게 했지만, 카메라는 리옌의 눈높이를 취함으로써 리옌을 동정하게 한다. 이렇게 소리와 영상은 충돌을 이루며, 우리를 욕망과 도리 사이에서 머뭇거리게 한다. 동과 서, 공산당과 국민당, 내용과 형식, 계몽과 봉건 사이를 오가는 페이 무의 모순이 거처한 바다.

 

홍지영푸단대 연극영화학 석사과정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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