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3] 

지난 1월 7일 한겨울의 클래식 상영작 중 <내 이름은 튜니티> 상영 후에 세 번째 영화사 강좌로서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강좌가 이어졌다.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 전체를 포괄하기 보다는 ‘포스트 세르지오 레오네’를 중심으로 진화한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를 살펴보며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오간 그 현장을 전한다.


주성철(씨네21 기자):
오늘 주제는 ‘스파게티 웨스턴의 불량한 매력’이다. 처음에 제목 정하면서 주어진 시간 안에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 전체를 포괄하기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 어떻게 좁힐까 하다가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예전에 레오네 영화를 했었기 때문에 ‘포스트 세르지오 레오네’ 그런 이야기로 서두를 열고자 한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정치적으로 말하자면 이탈리아 웨스턴이라고 하는 게 맞다. 그 당시에 이탈리아 웨스턴 영화들이 스페인에서도 만들어졌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제작비를 아끼려고 스페인의 황야에 와서 영화를 찍고 돌아갔다. 그래서 스페인의 영화인들이 우리도 저렇게 찍어보자고 해서 웨스턴이 만들어지고, 독일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웨스턴을 만들었다. 그런데 그 영화들은 전부 내수용이었다. 예를 들자면 그 당시에 우리나라의 <북청물장수> 같은 영화들이 우리나라에서 만 즐기는 영화였지, 홍콩으로 가진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이후 굉장히 많이 만들어 지게 되는데 아시아에서도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주로 한국과 일본에서는 마카로니 웨스턴이라 부르고, 북미지역에서는 스파게티 웨스턴이라고 불렀다. 스콜세지는 누벨바그, 네오리얼리즘에 맞먹는 사조로 이탈리아웨스턴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면서 이탈리아웨스턴을 쓰자는 주장을 했다. 왠지 스파게티 웨스턴은 낮게 보는 느낌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아무튼 대중들에겐 스파게티 웨스턴이 익숙하기 때문에 오늘 이야기를 할 때 스파게티 웨스턴이라 하려고 한다.

올해 나온 책 중에 배리 랭포드가 쓴 영화의 장르라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보면 서부극은 서부 개척지의 생활양식 같은 것들이 밀접하게 되어있는 미국의 로컬 한 장르인데 단지 황무지라는 공간의 특성만 가지고 유럽, 아시아 등 왜 전세계로 퍼져 나갔을까? 그런 재미있는 분석을 했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가 나온 시기는 이탈리아 영화계의 전성기였다. 그 때 웨스턴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 당시 페플룸(고대 로마, 그리스 당시에 입었던 의상에 착안해서 만든 영화) 이라는 장르가 막대한 예산과 세트를 바탕으로 해서 쇠퇴해 갔다. 그런데 이 페플룸이 쇠퇴해 나가는 시기랑 스파게티 웨스턴이 도래한 시기랑 교차한다. <황야의 무법자> 이후에 스파게티 웨스턴 만들어진 통계를 보면, 일년에 만드는 영화편수의 3분의1 이었다고 하니 굉장히 많이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영화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이다 보니 한 배우가 출연할 수 있는 영화에 한계가 있다. 홍콩도 그렇다. 그 당시 모든 영화는 주윤발에게 시나리오를 줬는데 주윤발이 나오지 않는 영화는 다른 사람에게 갔다. 같은 맥락으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모든 영화에 출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보니, 그 뒤에 리 반 클리프가 다른 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모든 배우를 똑 같이 출연 시킬 수 없어서 영화의 레벨이 나누어지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다.




스파게티 웨스턴을 세가지 측면에서 정의를 하자면, 가장 첫 번째로 윤리적인 측면의 부재 혹은 주인공의 타락이다. <수색자> 이전의 영화들을 보면 기병대의 정의, 가족을 지키는 수호가 있다. 그러나 <튜니티>에선 형제끼리 총을 쏜다. 그런 세속적인 인물들에 대한 매혹이 스파게티 웨스턴의 가장 중요한 성격 인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기존 웨스턴 장르에 대한 과장과 풍자라는 생각이 든다. 웨스턴의 가장 큰 매력은 액션이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이 쓰지 않는 기술을 영화에서 쓰는 게 영화를 부각 시키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래서 세르지오 코르부치는 <장고> 에서 기관총을 등장시킨다. 그걸 눈 여겨본 셈 페킨파가 <와일드 번치>에서 똑같이 쓴다. 정통 웨스턴에 대한 반작용으로 이탈리안 웨스턴이 만들어졌는데 그걸 미국에서도 베껴 쓰는 걸 보면 엄청난 혼용이 일어나고 있는걸 볼 수 있다. 90년대 할리우드 영화 <퀵앤데드>를 보면 할리우드 웨스턴이라기보단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또 <황야의 대추적>에선 마지막 액션 씬에 단검을 던지는 싸움 장면이 있다.
<튜니티>는 서부극이라고 하긴 민망할 정도로 마지막에 패싸움을 한다. 사실 서부극이라기 뭐한 영화다. 그러나 당시 <튜니티>는 이탈리아에서 역대 최고흥행작으로 남았던 영화다. 그리고 그 기록이 깨지는데 10년이 걸렸다. 2년 뒤에 나온 <튜니티라 불러다오>는 그 해 최고 흥행 기록를 세웠지만 1편은 넘어서지 못한다. 그리고 <튜니티> 의 형제 버드 스펜서와 테렌스 힐은 이후에도 같이 영화를 많이 찍었다. 두 사람의 인기요인은 할리우드로 치면 백인남자 흑인남자의 우정. <리셀웨폰> 같은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스파게티 웨스턴의 다른 매력을 말하자면 기존의 다른 감독들이 하지 않았던 동작이라던가 액션만큼이나 영화의 유머가 있다. <튜니티>의 예를 들면 애비 없는 놈들 이라고 하면. “야 맞잖아 참아”라고 하고 “주님의 승낙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하니까 밤비노가 “그럼 빨리 승낙 받아오라”고 한다. 요즘으로 치면 막 던지는 개그를 한다. <튜니티> 시리즈의 코드는 막 던지는 개그와 더불어 허무개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적으론 <튜니티> 시리즈의 흥행요인이 전혀 다른 개성의 두 남자가 티격태격 하며 벌어지는 내용이고 기본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에서 유래하긴 했지만 이탈리아 전통 코미디 양식과 결합한 것으로 생각된다.
테렌스 힐이 보여주었던 개그들은 상당히 웃기다. 나중엔 그 동작을 2편에서 하고, 헨리 폰다와 찍었던 <무숙자> 에서도 한다. 그것이 테렌스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이다. 프랑코 네로가 기관총을 쏘는 모습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면, 테렌스 힐은 없어 보이는 손동작이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스파게티 웨스턴 장르의 뻔뻔한 매력에서 <튜니티>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매력은 더럽다는거다. 튜니티가 입고 있는 옷은 내복이다. 스스로 튀는 캐릭터를 하려고 그런 거 같다. 그래서 또 등장 한 게 당근이다. 똑 같은 숏에서 <황야의 무법자>는 시가를 물었다면 <튜니티>에선 당근을 먹는다. 당시 이탈리아 관객들은 이걸 보고 <총알 탄 사나이>를 보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파게티 웨스턴은 태생적으로 불균질한 영화가 될 수밖에 없다. 이 시기 스파게티 웨스턴은 이전보다 흥행을 해야 하고, 그 중에서 자신들의 영화가 돈을 벌어야 하니까 이상한 캐릭터, 제스쳐 그리고 동작을 끌어안아야 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온갖 디테일과 캐릭터가 엉키게 된다. 그럼 당연히 영화의 레벨이 낮아져야 하는 데, 그런 요소가 본의 아니게 상승효과를 빚어서 좋은 결과로 나오는 경우가 있지 않았나 싶다. 아까 말씀 드린 <와일드 번치>처럼 세르지오 레오네 자신도 다른 동료 들의 영화들에서 영향을 받은 게 있다. <황야의 대추적>을 보면 거의 <석양의 갱들>과 비슷하다. 그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석양의 갱들> 이후에 나온 거라고 생각하고 이 사람이 <석양의 갱들>을 보고 만들었구나 라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황야의 대추적>이 <석양의 갱들> 보다 앞에 만들어진 영화였다. 그렇게 그들의 영화는 서로 다르게 보이려 하지만 괜찮은 디테일 요소들은 가져오면서 다양한 영화를 만들었다.


개인적으로 제일 처음 웨스턴을 본 것이  TV에서 해준 <튜니티>와 <장고>여서 그전에 나온 <리오 브라보> 같은 영화들이 적응이 안되었다. 거꾸로 웨스턴을 접한 경우다. 이 시기에 꼭 주목해서 봐야 하는 게 <무숙자>라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의 리 폰다, <튜니티>의 테렌스 힐이 만난 영화다.  헨리 폰다는 정통 웨스턴의 장르의 굉장히 멋진 정의의 수호신인데 그를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 에서 조폭으로 다루면서 위엄을 해체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무숙자> 같은 경우 감독은 토리노 발레리라고 알려져 있지만, 조감독인 레오네가 거의 다 연출 한 것으로 보는 게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무숙자> 같은 경우는 세르지오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의 전통을 스스로 마무리 지으려고 하는 느낌이 있는 작품이다. 이전에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웨스트>에서 악인인 헨리 폰다를 다시 멋진 남자로 등장시키기도 하고, 스파게티 웨스턴이 시도했던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창밖에 있는 남자를 한방에 보내는 장면도 있고 150명의 악당들과 싸우는 장면도 있다. 영화의 마지막에 헨리 폰다가 죽으면서 하는 대사를 보면 “앞으로 자네에게는 더 큰 폭력의 시대가 시작될 것이다”라는 말을 하고 죽는데 그걸 보면서 레오네가 스파게티 웨스턴이라는 장르를 자기가 정리를 하고 떠나가는 기분이 들어서 굉장히 뭉클했다. 그리고 그것은 할리우드 갱스터 무비라던가 스릴러 누아르 혹은 샘 페킨파라던지 또 다른 감독의 새로운 웨스턴 영화가 등장하는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웨스턴장르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스파게티가 기존 웨스턴 장르의 기존 공식을 해체하면서 또 다른 장르가 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라고 볼 수 있다. 호러를 보면 중간에 이렇게 나타났다가 소멸하는 장르는 없다. 그러나 스파게티 웨스턴은 일년에 40~50편이 만들어지다가 생명을 다했지만 여러 장르에 영향을 줬다. 개인적으로 스파게티 웨스턴은 한 순간에 불타올랐지만 자기의 운명을 알고 자기의 자양분을 다른 장르에 넘기면서 사라졌던, 시작과 소멸의 모습이 너무나 짧고 굵었던 장르이기도 해서 좋아한다. (정리: 정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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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1.17 15: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만큼이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8월 작가를 만나다 -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지난 21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작가를 만나다’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줬던 불멸의 걸작,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를 상영하고, 상영 후에 장준환 감독이 직접 참석하여 관객과의 만남을 가졌다.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진행으로 이뤄진 이 자리는 유수 영화제와 평단의 호응에도 불구하고 개봉 당시 쓴 맛을 보아야 했지만 여전히 영화적 힘을 갖고 있는 <지구를 지켜라>에 관한 못다 푼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장준환 감독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그 현장을 전한다.


주성철(씨네21기자): 돌이켜 생각을 해보면 <지구를 지켜라>가 2000년대 한국영화 중 크게 흥행하진 못했지만, 끊임없이 얘기되고 있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컬트영화가 아닌가 싶다. 병구는 지구를 지키느라 애썼는데 우리는 이 영화를 지키지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전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었다. 모든 장르를 아우르면서도 그 어떤 장르도 아닐 뿐 더러, 병구의 개인사로 시작해 인류의 역사로까지 나가는 영화였기 때문에. 너무 슬퍼 울었던 기억도 난다. 처음엔 단지 개인적인 복수일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마지막에 지구를 폭파시키는 장면으로 까지 나아가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마케팅이나 홍보 방식에 있어 좀 더 다른 방향으로 했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감독님은 처음에 어떻게 이 영화에 접근했었는지 궁금하다.
장준환(영화감독): 영화를 보시고 영화 마니아가 만든 게 아닐까 많이들 생각하시는데, 자라오면서 봐왔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시나리오에 녹아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영화들에 대한 오마주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다.

주성철: 유인원 연기를 신하균 씨가 직접 하셨다고 들었다.
장준환: 그 땐 왜 그랬는지 고집을 피웠다. 병구와 유인원의 눈빛이 연결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신하균 씨가 꼭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웃음) 태안반도의 해수욕장에 암석이 많은 곳이 있는데 거기서 마지막 촬영을 했다. 찍고 보니까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정말 비슷하더라. 전엔 그렇게 까지 비슷할 줄은 몰랐었는데 말이다.

주성철:
백윤식 씨의 출세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장준환: 사실 그때만 해도 배우들이 영화와 텔레비전의 활동 구분이 많았는데 백윤식 씨는 삼십 몇 년간 텔레비전 활동만 거의 하셨다. 백 선생님이 맛깔스럽게 연기하시는 부분들이 좋아서 백 선생님께 배역을 드리기로 마음먹었었다. 보셔서 아시겠지만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옷도 거의 못입고. (웃음) 근데 데뷔작이라 열의가 너무 많아서 일부러 제가 고생시키는 줄 아시고 사실 초반엔 오해도 좀 있었다. 머리를 면도하는 것도 그렇고, 많이 괴롭혀드렸는데, 너무나 열심히 하시고 끝날 때는 영화적으로 친구가 되었다.

주성철: <지구를 지켜라>는 얼마 만에 다시 보시는지?
장준환: 저도 극장에서 굉장히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오늘 보니까 영화의 강도가 최근의 <악마를 보았다>라든지 <아저씨>같은 영화들 못지않은 것 같다. 인육을 개한테 먹이는 장면도 있는데 <지구를 지켜라>에선 안 잘리고 들어가 있다. 강도 높은 장면들 중 고심 끝에 뺀 장면들도 있다.
주성철: 그 당시에는 연쇄살인마의 공간 같은 것을 이렇게 미술적으로 표현한 영화가 거의 없었는데 오히려 지금 다시 보니 놀랍다. 시대를 앞서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관객1: 캐스팅하실 때 배우들의 반응이 어떠했는지?
장준환: 신하균 씨 같은 경우는 꼭 같이 하고 싶었다. 신하균 씨의 취향이 이런 류의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것 같다. 작업하면서 신하균 씨는 완전 영화에 빠져있었고, 결과도 너무 흡족하다. 백선생님은 당시 시나리오를 받고 하루는 하고 싶다가도 하루는 너무 힘들 것 같아 망설이고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다가 아드님이 특이하고 재밌을 것 같다고 추천을 해서 결국은 함께 작업을 하게 됐다. 그리고 목화라는 극단에 박희순 씨와 친구여서 자주 가서 공연을 봤는데, 황정민 씨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저 친구는 꼭 한번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순이 캐릭터는 어떻게 보면 남자가 가지는 ‘대지와도 같은 구원의 여인’이라는 판타지가 들어가 있다.

관객2:
2003년 봄에 개봉 당시 함께 영화를 본 사람들이 이 영화를 대부분 코미디영화라고 생각했다. 호러도 나오고 SF도 나오고 해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장준환: 당시 조폭 코미디를 비롯해서 코미디 영화가 대세였다. 마케팅팀에서도 이 영화를 보고 어디에 맞춰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코미디가 대세니까 그렇게 밀고가자고 했던 것 같다.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그건 사실 영화에 대해 거짓말을 한 거였다. 한 부분만을 뽑아서 그게 전부인 것처럼 설명한 셈이니까 말이다. 마케팅 업계에서는 이 영화가 실패의 한 사례로 계속 회자되기도 했다. (웃음)

관객3: <지구를 지켜라>가 영상적으로도 뛰어나지만 스토리가 굉장히 독특한데,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는지? 그리고 처음에는 병구라는 인물의 복수극으로 착각했다가 결국 모든 게 진실인 것으로 가는데, 처음부터 염두에 둔 것인지?
장준환: <미저리>란 영화를 너무 재밌게, 손을 땀을 쥐며 봤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 결국에 미저리가 처참하게 죽게 되는데, 가슴에 뭔가 남게 되었다. 영화에서 케시 베이츠는 악녀, 미친 사람으로만 표현되어있다. 그 사람이 그 정도까지 갔다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슬픔이나 어떤 고통이 있었을 텐데, 그런 부분이 보이지 않고 끝나버리는 부분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그들의 입장에서 풀어나간다면 어떨까 생각했었다. 지구가 폭파되고 병구의 다큐멘터리 같은 일상사가 보여진다는 것은 이 영화의 스토리를 생각하면서 분명히 머릿속에 그려져 있었다. 어려웠던 것은 관객들과 일종의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

관객4: 감독님 팬으로서 차기작이 기대된다. 요즘의 큰 관심사는 무엇인지?
장준환: 오랜만에 필름 작업한 게 있다. 부산프로젝트라고 해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기획한 영화다. 한국, 태국, 일본의 세 감독이 부산을 배경으로 만드는 사랑이야기다. 올 겨울에 만들었고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게 된다. 제목은 <러브 포 세일>이라는 SF다. 머릿속의 사랑의 기억을 사람들에게 팔게 되면서 그것이 상품이 되고 밀거래가 되기도 한다. 최근의 관심사는 제 다음 작품은 뭘까이다. (웃음) 사실 솔직히 요즘 ‘나는 왜 하고 싶은 얘기가 없지’ 이런 생각이 든다. 뭔가 나를 막 끌어 오르게 하는 그런 게 안 생기는 게 요즘의 고민이다.

관객5:
영화를 보면서 설마 했던 일들이 진짜 진행되어 놀라웠다. 일종의 자신감의 표출이었을 것 같고, 사람들이 이래서 천재감독님이라는 얘기를 하나보다 싶었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에게 제일 망설여졌던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
장준환: 제일 망설여졌던 부분은 마지막에 지구를 폭파하는 장면이었다. 여러 가지 필터가 자꾸 걸리면서 이렇게 까지 하려면 내가 이 영화에 진실한 감정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화 안에 웃음도 많고 패러디도 많지만 이 영화를 장난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겠다, 진심을 가지고 마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세상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 어떤 메시지를 담았다기보다는 제게는 이 영화가 어떤 물음표다.

주성철: 병구의 노트는 직접 다 만드신건지?
장준환: 제가 한 부분도 있고, 미술팀이 한 것 도 있다. 그 작업도 해보니까 상당히 쉽지 않더라. 병구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작업이다. 나름대로 즐거운 작업이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그 노트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겠다.

관객6: 감독님 영화엔 판타지의 경향이 많은데, 원래 판타지 문학도 좋아하는지?
장준환: 사실은 책도 많이 안 읽는다. 우연히 보다가 재밌는 거 같으면 좀 읽고 하는 식인데, 아이작 아시모프 단편 같은 걸 굉장히 재밌게 봤다. 인류사 같은 종류의 책들을 관심 있게 본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어렸을 때부터 과학 잡지들을 좋아하고 재밌게 보곤 했다. 지금도 인터넷 뉴스를 보면 과학 기사들을 재밌게 보기도 한다. 텔레비전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관객7: 지구를 폭파하고 난 이후에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왕자는 지구엔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저지르는 포악한 짓에 병구는 저항을 하는데, 왜 병구의 그런 저항을 보면서도 희망이 없다고 하는지 궁금하다.
장준환: 영화상에서 설명되는 것으로는 고통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유전자 결합구조가 느슨해지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실험대상으로 쓰게 되고, 그 유전자 구조가 바뀔 수 있으면 성공이니까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았던 거다. 괴롭힘을 일부러 주기도 했었다는 부분도 있다. 이란의 사람들이 치타들을 관리하듯 관리하다가, 병구에게 납치 되는 것을 계기로 인간의 마음이 되어서 느끼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병구의 일기를 보면서 울부짖는 장면이 있습니다. 관리직으로서 실험대상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진짜 희망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식으로 감성적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성철: 마지막으로 못 다한 말씀이 있다면 해달라.
장준환: 더운데 많이들 오셔서 이 오래된 영화를 봐주시고, 질문도 해주셔서 실은 저한텐 좋기도 하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즐거운 부담이라고 생각한다. 할 이야기가 없어 고민이었는데, 제 안에서 이제는 조금 시동이 걸리는 것 같다. 다시 좋은 영화로 찾아뵐 수 있기를, 무지개 너머 어디에 더 재밌고 아름다운 영화가 있기를 바란다. (정리: 장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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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작가를 만나다 -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

지난 7월 31일 ‘작가를 만나다’에서는 첫 장편연출작으로 호평을 받은 김광식 감독의 <내 깡패 같은 애인>을 상영하고, 상영 후에는 김광식 감독과 관객들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영화계의 입담꾼인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진행 하에 시종일관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이야기가 펼쳐졌던 그 시간의 일부를 여기에 담아본다.


주성철(씨네21 기자): 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감독이 박중훈이라는 배우에 대해 갖는 애정이 드러나고. 취직을 하려면 무릎을 꿇고 빌라고 말하는데, <게임의 법칙>에도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이 있다.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아우라 그런 것이 생각났다.
김광식(영화감독): <게임의 법칙>을 보고 박중훈 씨를 매우 좋아했다. 특별히 그 영화를 연상하거나 그런 것은 없지만, 박중훈 씨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이 영화에서 그런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박중훈 씨는 영화 내에서 죽은 지 십 년은 됐으니 자꾸 자기 배역을 죽여 달라고 했는데, 죽이지 않았다. 계단에서 쓰러졌을 때 박중훈 씨는 동철이가 죽기를 원했다. 촬영할 때, 죽는 것처럼 자꾸 눈을 감기도 했다.

주성철: 박중훈 씨는 코믹배우로서의 힘과 누아르 장르에서 가진 파괴력이라는 양극단을 잘 오가는 배우다. 영화에서 합기도 도장 사범들하고 싸우는 첫 장면이 매우 중요할 것이라 봤다. 과장되게 웃기게 할 수 있는데, 진짜로 딱 그 나이 대의 퇴물 조폭이 당할 것처럼 정말 당하더라.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의 정서나 감정이 이렇게 흘러가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첫 등장을 어떻게 시킬까, 첫 액션을 할 때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했는지?
김광식: 시나리오를 쓸 때 주인공의 이미지를 잘 잡아야 한다. 특별한 계획보다는 보여지는 그대로, 좀 찌질한 사람 정도로 보였음 싶었다.

주성철:
두 사람이 하룻밤 자고 난 그 다음날의 느낌이 이채로웠다. 그 다음날의 대화나 이후의 관계 및 정서와 같은 것들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김광식: 바닷가에서 뽀뽀를 할 때나 감정이 드러나지 하룻밤 장면은 사실 그냥 하룻밤의 일회적인 관계라고 생각했다.

주성철: 여기저기에서 읽어 본 영화평 중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가 88만원세대라는 말이다. 그런 것들이 두 남녀, 자기 조직 내에서 밀려나고 있는 한 퇴물 건달과 기를 쓰고 취업을 해보려하는 사회 초년병 여자의 관계를 통해 매칭이 된다.
김광식: 88만원 세대에 대한 글은 많이 봤지만, 이 영화에서는 홍보를 할 때도 그것만은 좀 빼달라고 말했다. 그들의 고통이 상업적으로 이용될까봐 부담이 됐던 거다. 영화에서는 의도했다기보다는 거의 무의식중에 나온, 친구들을 보면서 느꼈던 고통 등을 담아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주성철: 이창동 감독님의 연출부 생활을 하셨는데, 도움이 됐던 가르침이라면?
김광식: 이창동 감독님께는 주로 영화적인 것을 하지 말라고 배웠다. 영화적인, 인위적인, 화면상의 아름다움, 현실에서 있을 것 같지 않은 아름다움을 배제하고 현실적인 것, 구질구질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라는 거다. 그런데 저는 한편으론 이명세 감독님의 영화의 표현적인 방식, 영상적인 아름다움의 느낌 등을 좋아하기도 한다. 일본 영화에 한때 경도되어 있던 적도 있었다. 이와이 슌지, 기타노 다케시, 왕가위 등. 이미지적인 것에 경도되어 있었고, 이 영화에도 그런 것들의 흔적이 남은 것 같다. 여전히 그 두 가지를 갖춘 감독이 되고 싶다.

주성철:
본인이 쓴 시나리오와 별개로 미묘하게라도 달라진 부분이 있나?
김광식: 시나리오를 갖고 이견을 보인 적은 없고, 약속한 촬영시간을 어긴 것에 대한 문제는 있었다. 계단에서 죽느냐 사느냐를 두고 박중훈 씨랑 가장 많은 토론을 했다. 또한 엔딩에서 다시 만나는 것은 사족이라는 말이 많았다. 하지만 앞부분의 코믹한 터치와 조응을 이루기 위해서도 그러하고, 죽음을 딛고 선 취직이라는 것이 저의 윤리 상 용납이 안 되기도 해서 엔딩에서의 재회가 필요했던 거다.

주성철: 관객들이 많이 웃은 장면들에서 의도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게 있다면?
김광식: 어이없는 부분에서 유머가 작렬하는데 아무도 안 웃더라. 가령 동철이가 세진이를 기다리며 "한세진 씨"하고 부르며 "면접실이 저기에요?"라고 하자, 비서가 "한세진 씨 세요?" 라고 말할 때, 저는 정말 웃긴데, 잘 안 웃더라. 또 동철이가 전단 붙이는데 세진이 "그런거 하면 얼마줘?" 하자 "너 이런 거 나오려고? 이런거 하려면 이뻐야 돼" 이럴 때도 마찬가지다. 뉴트리션 나오는 부분은, 뉴트리션이 뭔지 다들 모르시다가 영양제라고 하니까 그 때서야 웃으시더라. (웃음)

관객1: 영화 잘 봤다. 몇 년 후에 봐도 재밌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조연 배우들도 인상적이다. 조폭 맡으신 분들이나. 재혁 역의 권세인 배우. 캐스팅을 한 이유 같은 것이 있는지?
김광식: 감독과의 대화 같은 것을 하고 있는데, 지금 감독 된지 두 달 됐다. 권위나 신비화 같은 것들이 싫은 느낌이 있어서 재밌게 하고 싶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솔직하게 말하기 위해서다. 권세인 씨는 사실 정유미 씨 소속사의 압박으로 캐스팅하게 됐다. 근데 만나보니까 유머코드도 있고 참 재밌더라. 사람이 재미있어야 영화 속에서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재미없으면 같이 일하고픈 생각도 잘 안 든다.

관객2: 스토리상에서 궁금한 것이 있다. 부산에서 아버지하고 인사하고 나서 동철이 밖에서 시비가 붙는데, 몇 번 참다가 옷자락이 열리면서 문신이 보이고, 그 때부터 폭발하면서 시비남을 구타하기 시작하잖나. 시나리오 상에서 폭발하는 부분을 어떻게 설정했는지?
김광식: 시나리오를 처음 썼을 때는 때리는 장면이 없었다. 문신이 보여지면서 끝나는 거였다. 그런데 조폭을 다루니까 아무래도 장르적으로 필요하다 싶어서 구타장면을 추가한 것이다. 이런 질문이 나와서 놀랐다. 제가 공주출신인데 아직도 서울이 낯설다. 어디를 가나 고향을 잃어버린 이방인이란 느낌을 갖고 살았다. 그 감정을 세진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시켜볼 생각이었다.

관객3: 제목은 직접 지으셨는지?
김광식: 제목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왜 그따위로 지었냐는 말도 들었다. 마돈나가 숀 펜이랑 사귀다 헤어졌는데, 그를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 '마이 디어 데스페라도' 라고 표현했던 것이 인상 깊었다. 박중훈 씨가 감탄했던 제목인 '무릎 꿇지마'로 바꿨다가 다시 바꿨다. 윤제균 대표님과 머리를 맞대다가 '개의 밤'으로 할까 했다가 우여곡절 끝에 이 제목을 하게 된 거다.


관객4: 대학교 4학년으로서 정유미 역할에 공감하며 봤다. 대리가 된 다음에 신입사원들이 들어오는 부분은 꿈이 아닌데 장면이 환하게 비치면서 마치 꿈처럼 묘사된 거 같다.
김광식: 꿈처럼 묘사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모든 상황이 끝났고 환한 느낌이 들긴 할 것 같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그 공간 자체가 창이 많고 밝았다. 그 장면에서 신입사원들에게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한다. 이동진 기자님이 제가 그걸 중요하게 여겼다고 쓰셨는데, 맞다. 그 장면은 꼭 하고 싶었던, 중요한 포인트였다.

관객5: 무거운 소재를 유머러스하게 연출하셔서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이 영화의 속편을 만들거나 연극으로 만들거나 할 계획은 있는지?
김광식: 속편을 만들 생각은 전혀 없다. 조폭이 나오는 영화는 가능하면 이제 하고 싶지 않다. 미화될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고 해서. 사실 뮤지컬 제의가 들어왔었는데, 거절했다. 왜냐하면 <내 깡패 같은 애인>을 이제 잊고 싶어서다. 다른 곳에서 결과물로 돌아다니면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주성철: 끝으로 못다한 얘기가 있다면 해달라.
김광식: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고 처음이고 해서 긴장이 됐고 안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는데, 첫 영화고 보러 와주신 분들이 고마워서 여러분들 때문에 하게 됐다. 와주셔서 고맙고 다음 작품 빨리 결정해서 더 재밌는 걸로 돌아오겠다. 감사드린다. (정리: 박영석)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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