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릴없이 미술관에 앉아 있었다. 무슨 전시였는지는 가기 전에도 몰랐지만 보면서도 잘 몰랐다. 사람이 크게 붐비지 않은 걸 보니 인기 있는 작가는 아니었지 싶다. 그림체가 일관되지 않았던 걸 보면 개인전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단지 나는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미술관에 앉아 있었던 거니까. 매일 집에서 집밥 같은 섹스가 있기는 있어 왔다. 허나, 엄밀히 말하면 그건 성행위를 모사한 집안일에 불과했다. 성감도 뭣도 없이 마냥 고단한 노동일 뿐. 어쩌면 내 팔자의 섹스는 고작 이런 식으로 끝나버릴지 모르겠다는 상실감에 명상삼아 머리도 씻을 겸 세 시간쯤 벽을 보고 있고 싶었는데, 벽만 마냥 봐도 미쳤다 소리 안 들을 공간이 미술관 말고는 딱히 떠오르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술관에 마냥 앉아 있었다. 한참 그렇게 있으니 현실 감각도 좀 되돌아왔다. 집에 가는 길에 칠면조를 사가야 한다는 사실도 떠올랐던 걸 보면. 그런데 그 순간, 정말이지 기적처럼. 나는 ‘세상이 두 쪽 날지라도 지금 당장 섹스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낯선 이를 만났다. 미술관에서 섹스를 하고 싶은 사람을 만나다니 도무지 말이 되지를 않지만, 그보다 더욱 비현실적이었던 건 그 다음이었다. 눈이 마주친 우리는 서로 몇 차례 더 시선을 교환하게 됐고, 합승을 가장한 택시 뒷좌석에서 마른하늘의 날벼락보다 더 기막힌 섬광처럼, 섹스를 하게 됐다. 택시 기사의 노골적인 염탐질도 아랑곳 않고 계속 되던 행위는 그 사람의 집까지 이어졌고, 밤새 우리는 맺힌 욕망을 짐승처럼 풀고 털고 뱉었다. 그건 눈물이 쏙 빠질 정도의 근사하고 우렁찬 섹스였다. 자, 여기까지만 보면 이건 꽤 완벽한 엔딩이다. 허나 그 후의 에필로그는 말하자면 별로 유쾌하지 않은 쪽이었다. 제정신이 돌아온 후 황급히 그 사람의 아파트에서 빠져나오던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면도칼로 난자되어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목격자들이 있었던 와중에도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 한 채 말이다.”


<드레스드 투 킬>의 초반 30분을 대략 정리하자면 이런 식일 것이다. 글로만 읽으면 개연성과 진부함의 경계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고 있는 듯 보인다. 무엇보다 단선적이지도 않고 미묘하고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캐릭터의 감정을 어떻게 영화로 풀어낼 수 있을지, 가늠이 되지를 않는다. 이 감정들을 커트 단위로 썰어 내다보면 얼마나 많은 뉘앙스들이 휘발되겠는가. 자칫하면 그냥저냥 졸속 제작되는 에로물들과 차별점 하나 없이 딱 그 짝이기 십상 아니겠는가. 이런저런 의구심과 의혹이 가짓수 많게 펼쳐지기 마련인데, 구태여 그걸 스스로 누를 필요는 없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모든 기우들은 순식간에 부서져버리기 때문이다. 30분짜리의 거대한 오프닝 시퀀스는 단 한 호흡으로 휘몰아치며 쉼 없이 질주한다. 지독히 처절한 상실감부터 우아하고 짜릿한데다가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인 성감, 보는 사람의 뇌와 가슴에까지 반드시 생채기를 내고야 마는 살인까지. 그게 전부, 쉼표 하나 없이 덩어리 딱 하나로 그냥이다. 프레임 바이 프레임으로 잘라 뜯어보더라도 연출의 섬세함과 치밀함은 부실한 구석을 찾기 힘들다. 영화 속 여성의 가슴 노출 횟수, 베드신 등장 횟수, 살인 음모 반전의 타이밍 맞춘 플롯 포인트까지, 투자자의 요구에 모범답안을 정확히 제시하는 와중에도 감독 스스로 끝까지 유희하는 밸런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이건, 깎아지른 완벽이다. ‘모름지기 이런 것이 상업영화’라는, 다음 세기가 되더라도 명증한 레퍼런스의 하나로 남을 작품임에 틀림없다.

글/이해영(영화감독 <페스티벌> <천하장사 마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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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를 만나다]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

지난 4월 23일 저녁 6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간판 정기 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상영회가 있었다. 특히 이번 달부터는 단순히 연출자를 모시고 질의응답 형태의 관객과의 대화 형식을 넘어 보다 심도 깊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담과 장면에 대한 해설까지 더한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담자로는 김태용 감독이 함께했으며 이해영 감독과 김태용 감독이 직접 선택한 장면을 함께 보며, 해당 장면을 선택한 이유와 더불어 영화작업에 대한 소회를 들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페스티발>에는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골방에 갇혀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종의 ‘커밍아웃 프롬 더 클로젯’을 하게 되고, 후반부에 엄정화씨의 노래가 나오면서 굉장히 흥겨운 순간을 자아낸다. 개봉 때에는 영화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굉장히 용기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이해영(영화감독) 사실 용기를 갖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당연히 이 영화가 나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웃음)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내고 <29년>이라는 작품을 2년 정도 준비했었다. 어떤 이유로 그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되자 개인적으로 내 야망의 무게에 스스로 짓눌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9년>과는 완벽히 다른, 굉장히 사적인 영역에서 유희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페스티발>은 개인적으로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이고 나의 명찰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이해영 감독이 꼽은 장면들 -
#1 (백진희가 섹스용품을 파는 봉고차에 찾아간다.)

이해영:
크랭크 인하고 첫 날 찍은 씬이다. 봉고차 내부에 생각보다 미술이 많이 들어갔다. 반짝이 천이나 원색의 느낌들이 본의 아니게 영화 전체의 색감을 규정하는 색깔이 되었다. 이 씬은 <페스티발>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많은 농담의 질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씬이라고 생각된다. 현장에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무기 중의 하나가 정확한 콘티여서, 첫 작품을 찍을 때부터 콘티를 정확히 준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봉고차가 굉장히 좁아서 동선이 전혀 나오지 않다보니 콘티를 짤 수가 없었다. 크랭크 인 첫날 현장에서 콘티 없이 찍었던 씬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모험과 같았다.

#2 (오달수가 여자 속옷을 입는다.)
이해영: 코미디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코미디 화법의 본질에 가까운 장면 같다. 이를테면,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고등학교 남학생이 여자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쎈’ 이미지일 수 있는데, 이것을 호들갑 떨거나 하지 않고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코미디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진심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도 마찬가지로 물론 코미디를 위해 찍은 씬이기는 하지만 이성의 속옷을 입게 되는 행위를 굉장히 호들갑 떨거나 선정적으로 몰고 가지 않고 약간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인물을 덜 희화화하는 거란 생각을 했다.

김성욱: 오달수 씨의 캐릭터가 독특한데 이러한 캐릭터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몇 년 전 일본에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신주쿠 거리를 걷는 중 정말 평범한 동네아저씨 같은 분이 무지개 색 비키니를 입고 지나갔다. 그 분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는데 그 분한테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서 자신의 세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페스티발>을 처음 구사할 때 단초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분을 목격하고 나서는 복장도착과 같은 정신 병리학적 용어로 말고, 일상에서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어떤 캐릭터에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들에 대해서 어떤 깊이를 가지고 다뤘다기보다는 묘사했다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그런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을 했다.
김태용(영화감독): 이 영화에 나온 커플 중에 가장 인상적인 커플은 오달수 씨 부부이다. 이 영화는 어쨌든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뭉쳐서 잘 살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한다. 류승범 씨는 자신의 취향을 버리고 상대를 만나는 느낌이라면, 심혜진 씨·성동일 씨 커플은 서로 잘 맞는 취향의 사람들이 만남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신하균 씨·엄지원 씨는 서로가 이미 충분히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이에서 생긴 오해가 풀리는 느낌이었고. 그런데 오달수 씨 커플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해결이 된다. 어떤 실망이든 슬픔이든 가지고는 있지만 그걸로 됐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심혜진 씨가 밖으로 나가자고 선동을 하고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는데, 그것보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오달수 씨 부부의 에피소드가 훨씬 더 파워풀하게 영화의 무언가를 담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3
(심혜진, 성동일의 목을 짝! 때린다. 그러자 둘 모두 웃음이 터진다.)
이해영: 이 장면을 꼽은 이유는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서다. 이 씬을 보면 아직까지도 반성하게 되고, 헷갈리는 지점들이 남아있다. 연기하신 심혜진 씨나 성동일 씨 모두 선배이시고 아직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 두 분께 ‘이런 식으로 웃으세요’라고 미리 주문을 할 수 없었다. 두 분이 웃는다면 어떤 느낌일 것이다,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현장에 나갔다. 첫 테이크에 가서야 배우의 연기를 실제로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촬영 시간이나 조건들이 여유롭지 못했다. 항상 드는 고민은 현장에서 사전에 확인할 수 없는 연기를 어떻게 요구하고 짐작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원래 계획되지 않은 컷을 현장에서 어떻게 배우에게 주문해야 할지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김태용 감독님께 꼭 물어보고 싶었다. (웃음)
김태용: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굉장히 재밌었다. 이해영 감독 특유의 유머를 좋아한다. 이 씬 역시 이해영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인 것 같다. 배우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배우와 그리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이해영: 작품들에 대해서 많이 들었던 얘기 중의 하나가 ‘일본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의 이런 식의 호흡 같은 것들이 아마도 그런 요소들 중 하나일 것 같다.
김성욱: 아마 ‘일본적’이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액션을 무화시켜가는 방식들 같은 거다. 그 때 인물들의 표정이 굉장히 중성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성동일 씨나 심혜진 씨, 오달수 씨 같은 분들이 그런 방식의 장면들을 구성하기에 좋은 것이다. 무표정한 느낌이기 때문에 장면이 넘어가면서 시간차가 있고, 행동이 이뤄질 때 이게 무슨 행동인 건지 간파가 잘 안 된다. 그 때 순간적으로 웃음이 발생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웃음’은 사회적이다. 이 장면에서의 웃음은 둘 사이의 교감과 연관된다. 두 사람 간의 어떤 코드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동참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어떤 점에서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물에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저들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다 .

#4 (소파에 쓰러져 자고 있는 신하균을 보던 엄지원, 다시 침대에 가서 잠든다.)
이해영: 누군가 <페스티발>을 보고 나서, ‘페티쉬 발’이라고 하는 얘길 들었다. (웃음) 의식하진 않았는데, 실제로 발 인서트가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좌식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사이끼리도 식당 같은 곳에서 흔하게 신발을 벗고 함께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완벽하게 갖춰 입은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허물어뜨리고 같이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발로 이어지는 이 장면들에 묘한 정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5 (심혜진의 해금 연주를 시작으로 SM 던전이 만들어진다.)
이해영: 사람들이 가장 낯설어하고, 가장 이해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장면이다. SM을 다룰 때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부분은 큰 숙제였다. SM을 단순히 가학과 피학이라는 폭력의 권력구도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영호의 톤에 맞지 않는, 상당히 보기 불편할 수 있는 성향으로 보일 수 있었다. SM을 보다 부드럽고 귀엽게 풀기 위해서 서로 나눠서 하는 역할놀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철물점 뒤에 있던 차고의 공간이 SM 던전으로 꾸며진다는 것을 두 사람만의 놀이터를 건설한다는 식으로 풀어갔다.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당황스럽고 기묘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김태용: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서 이 장면은 잘 이해가 안 갔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SM이라고 하면 폭력적인 쾌감인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 즐거워 보인다.
이해영: 보통 SM 커플들 중에 실제 행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역할을 맡느냐, 어떤 관계로 어떤 긴장감을 갖느냐가 행위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 김태용 감독이 꼽은 장면들 -

#6 (차안에서 자위를 하던 류승범, 절정의 순간 신하균에게 걸린다.)
김태용: 여태껏 본 영화중에 가장 지저분한 씬이었던 것 같다. (웃음) 영화를 보다보면, 특히 이 영화처럼 많은 인물들이 나오게 되면 그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페스티발>을 보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신하균 씨와 류승범 씨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해영: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 씬은 없었다. 두 사람이 캐스팅되고 나서 그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나중에 쓴 장면이다. 신하균 씨는 재밌는 배우다. 리허설 때는 자신의 연기를 잘 안보여주다가 자신이 준비한 것을 현장에서, 첫 번째 테이크에 터트린다. 이 장면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신하균 씨의 연기를 상상하며 쓴 부분이 있는데, 첫 테이크에 정확히 그 부분들을 보여줬다.

#7 (신하균의 상상 속에서 엄지원이 거대한 바이브레이터를 타고 있다.)
이해영: 엄지원 씨가 타고 있는 바이브레이터 안에는 승마기구가 있다. 그런데 기구의 리듬이 너무 희한하다보니 편집할 때 어떻게 컷을 잘라도 잘 붙질 않았다. 다만 이 씬의 목표는 엄지원 씨라는 배우가 가진 섹시함을 잘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태용: 이 장면은 사실 신하균 씨의 판타지인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 애매하게 엄지원 씨의 판타지 혹은 욕망인 것처럼 편집되어 있다.
이해영: 이 장면에서는 단순히 대상화되어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씬처럼 만들어야했다. 그래서 약간 중의적인 씬이 되었다.

#8
(심혜진과 성동일과 오달수 공원에서 맞닥뜨린 후 신하균에 맞서 싸운다.)
김태용: 이 영화의 인물들이 만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이 장면이 본질적인 키워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만남의 어색함을 풀어가는 데에 있어서 상상하기 어려운 유머가 발생하고, 다시 공손하게 헤어지게 된다. 무언가가 충돌되어 영화 안에서 힘이 발생됐을 때 이해영 감독은 잠깐 그것을 지연시키고 무화시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영화적인 감정과 사건의 충돌에 맞닥뜨렸을 때, 이해영 감독은 약간 옆길로 새는 느낌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보호하려는 연출자의 마인드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에 본 어떤 한국영화보다도 이만큼 인물들을 사랑하는 연출자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를 사랑하고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를 돌보고, 이 영화에서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영화 밖의 실제 사람들을 돌보는 방식은, 영화가 가져야하는 윤리를 넘어서 어떤 세계의 동질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용기를 낼 때 보통은 적이 있어서 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용기를 내는데, 이해영 감독은 싸움을 걸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서 잘살래, 우리 지옥가지 뭐’ 하는 대사와 함께 갑자기 뭉쳐지는 이상한 커뮤니티가 있다. 그 커뮤니티가 닫혀져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 커뮤니티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싸움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이해영: 인물들이 만났으면 바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과 감정이 정점을 찍을 때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줘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인 성향이 비틀거나 돌아가거나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만났을 때 빵 터지는 걸 잘 못한다. 터지려고 하면 내가 약간 부끄러워지고 멋쩍다.


김태용: 영화가 계속 옆으로 가고, 충돌의 지점에서 정확하게 대면하는 걸 겁내하는 게 뭘까 고민하다보면 이 영화의 관객이 바로 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다른 성적 취향을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깊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이 그들을 알량한 여유나 교양으로 이해하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두렵다는 태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해영: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 때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해피엔딩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척박한 우리들의 삶에 이런 기적 같은 해피엔딩이 한번정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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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이해영 감독에게 듣는 '타인의 취향과 대중영화의 상상력'

다섯 번째 시네클럽의 주인공은 최근 영화 <페스티발>으로 관객과 만났던 이해영 감독이다. 영화적 취향이라는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해영 감독은 취향이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다고 말한다. 참석한 관객들은 다양한 질문들을 쏟아냈고, 감독은 즐겁게 답했던 즐거운 시간을 전한다.


이해영(영화감독): 내가 생각하는 영화라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겠다. 나는 기껏해야 성장기에 할리우드 영화를 비디오로 보거나 극장에서 가끔 봤던 것 외에는 영화를 심도 있게 본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몰라서 터무니없이 시작한 것 같다. 영화전공자도 아니었다. 영화란 게 있는데 내가 하면 잘하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90년대, 한국영화의 상업성이 새로이 규정되기 시작한 시기에 기획영화를 접하면서 영화가 상품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영화가 ‘작가적인 어떤 매체다’ 라고 생각 했다면 접근을 못 했을 텐데, 당시엔 어려서 쉽게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기획영화들이 한국영화 21세기를 여는 초석이지만, 당시에 내가 볼 땐 수입해온 부실한 레시피 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저런 레시피를 흉내 내거나 관습을 따르면서 하는 게 아니라 '뭔가 새로운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을 키워드로 치면 취향 같다.

나의 취향은 주류나 컨벤션에서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얻게 된 것이다. 처음에 영화 하겠다고 생각한 게 군대에 있을 때인데 막연하게 시나리오를 썼다. 개인적 취향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습작으로 몇 개 썼는데 그 글들은 시나리오 작법을 전혀 모르고 쓴 거라 돌이켜보면 시나리오라고 하기엔 좀 그렇다. 그러다가 영화사 봄의 오정완 이사님이 습작시나리오를 보게 되셨는데 굉장히 놀라셨던 것 같다.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본 적 없는 대사나 캐릭터들에서 이사님이 뭔가 가능성을 읽으셨던 거 같다. 그때 쓴 시나리오들은 완성도 있게 보이지는 않았겠지만 이사님이 선택하셨던 것은 작가의 취향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본격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다. 같이 <천하장사 마돈나>를 만들었던 이해준 감독과 공동작업을 했다. 새롭고 희한한 작가들이 나타났다라고 회자가 되면서 본질보다 과장되게 팔려나갔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보다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내 생각에 취향 밖에 없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취향이라는 게 막연하고 지엽적으로 보이는데 내가 생각할 때 취향 이라는 게 이런 것 같다. 이는 좋은 생각이라는 개념인 것 같은데, 좋은 생각이라면 남들이 해왔거나 큰 생각 없이 답습했던 관습을 답습하려고 하지 않는 태도,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시비를 걸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관객1:
한계에 대해 묻고 싶다. 취향이라든지 소수자의 이야기를 하려고 할 때 대중들에게 어느 정도까지 이야기 할 수 있나?

이해영: 그 한계점을 <천하장사 마돈나> 때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이 이야기를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하지? <페스티발>도 비슷하다. 내가 용감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고 약간 착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 <천하장사 마돈나>와 <페스티발>의 차이점은, <천하장사 마돈나>가 ‘이런 사람은 이런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라면 <페스티발>은 그것보다 친절도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그냥 제시하는 차원이랄까.

관객2: 컨벤션을 비틀고 구성하려면 어떻게 훈련하는지?
이해영: 드라마에서 참고 하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가 막힐 때 옛날 할리우드 장르영화를 많이 본다. 그게 도움이 된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때 그 장르의 초석이라 불리는 영화들을 보게 되면 복잡한 것 없이 소박하게 이야기를 가져가는데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것이 굉장히 많은 도움을 주는 것 같다. 결국에는 자기 언어라는 게 필요한데, 그건 어디서 누가 주는 게 아니니까 감으로 갈 수밖에 없고 영화를 많이 보는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참고로 나는 호러 영화에 대한 컨벤션은 잘 모르겠다. 미지의 장르다.


(정리 : 정태형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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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신인감독들은 장르 컨벤션의 변용을 통해 흥미로운 데뷔작을 발표하고는 했다.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는 서부극이 SF적 감수성과 만나면 얼마만큼의 파괴력을 갖는지 보여주는 유례없는 사례다.

영웅이 사라진 가까운 미래. 순찰대원 맥스는 고속도로에서 활개치는 폭주족들을 단속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경찰력이 악화된 무정부주의 상태에서 일개 순찰대원이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동료 순찰대원의 죽음이후 오히려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휴가를 떠나는 맥스는 급기야 오토바이 폭주족들에게 가족을 잃고 만다. 법과 질서 따위 개나 줘버리라지. 맥스는 가족의 복수를 위해 운전대를 잡고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대지에서의 추격, 가족을 위협하는 악당, 선의 가치를 지키려는 영웅과 마지막 퇴장. <매드 맥스>는 어느 모로 보나 서부극의 장르 진행을 따른다. 다만 서부개척시대가 암울한 미래로, 모뉴먼트 밸리가 고속도로로, 말과 마차가 각각 오토바이와 자동차로 도상을 달리했을 뿐. 무엇보다 조지 밀러는 미국의 이념적 거울 역할을 해왔던 서부극에 유아적인 남성의 판타지, 즉 자동차 애호와 속도광의 집착과 같은 원초적인 마초의 에너지를 불어넣음으로써 세기말의 오라를 더한다. 이와 같은 암울한 정서는 한편으로 영웅 탄생 신화를 위한 완벽한 서막 역할에 다름 아니다. 이제는 복수의 화신, 아니 '미친 맥스'가 된 우리의 주인공은 반쯤 넋 나간 사람처럼 폭주족들을 뒤쫓아 하나하나 잔인하게 처단한다. 지극히 본능적이고 야수적인 맥스의 복수에서 일체의 자비나 관용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결국 고독한 영웅의 지위를 획득하기 전 반영웅으로서 벌이는 개인적 원한에 대한 분풀이는 거침없는 스피드와 무자비한 폭력 묘사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모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데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매드 맥스>가 영화광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작품으로 회자되는 이유는 영화자체도 물론이거나와 제작을 둘러싼 거짓말 같은 일화 때문이다. 조지 밀러는 감독이기 이전 수련의로 근무하며 틈틈이 단편영화를 만들어왔고 병원 근무 당시 모은 돈으로 데뷔작 <매드 맥스>를 완성하며 할리우드에 무혈(?)입성한 입지전적 인물이기도 하다. <매드 맥스>가 할리우드에 던진 충격파가 얼마나 컸던지 이후 여러 감독들에 의해 패러디되고 오마주되며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다.

우선, 한국 팬들에게도 낯익은 <전격Z작전>(1982)은 <매드 맥스>에 등장하는 악당의 이름 '밤의 기사'를 드라마의 원제로 차용했는가 하면 맥스가 모는 '옐로우 인터셉터'를 모델로 '키트'를 창조했다. 그 외에 코엔 형제가 <아리조나 유괴사건>(1987)에서 아기를 사이에 두고 자동차가 지나가는 장면을 인용한 것은 이미 유명하다. 무엇보다 압권은 멜 깁슨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리셀 웨폰>(1987)이다. 리처드 도너 감독은 맥스의 캐릭터 배경을 그대로 가져와 멜 깁슨이 연기한 마틴 릭스 형사를 창조했다. 사고로 아내와 자식을 읽고 해변의 트레일러에서 홀로 산다는 설정이 맥스와 그대로 겹치는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매드 맥스>의 예고편이 소개될 당시 무명의 멜 깁슨 등장 부분이 모두 잘려나간 것을 생각하면 실로 엄청난 변화였다. 그렇게 <매드 맥스>와 멜 깁슨은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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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이해영 감독이 추천한 조지 밀러의 <매드 맥스>

지난 20일 오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로 처음 참여하게 된 이해영 감독이 <매드 맥스>로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았다. 함께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영화 속에 등장하는 폭주족과 그들을 추격하는 경찰들의 강렬한 속도감에 놀랐고 복합장르의 원전답게 숱한 문화 현상들을 흡수하며 창조해낸 이야기를 만끽했다. 상영 후에는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의 진행으로 이해영 감독과 함께 나눈 풍성한 관객과의 대화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로서 처음 참여하게 된 소감을 듣고 이야기를 시작할까 한다.
이해영(영화감독): 그동안 관객석에서 ‘친구들’을 동경하는 무리 중에 한 명으로 지켜봤었다. 보통 친구들 영화제에 ‘친구들’로 나오시는 감독님들이 훌륭한 감독들이지 않나. 나도 끼면 훌륭해 보이지 않을까 하는 로망과 판타지를 갖고 있었다. (웃음) 이번에 처음 참여하게 되면서 어떤 영화를 추천하는 게 좋을까 고민했다. 소위 말하는 낯선 영화들, 작가주의 아트 영화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그보다 영화에서 다루고 싶은 생각들이나 욕망을 어떤 틀에 담아서 소통할 것인가, 상업주의 작가주의 이런 구분보다 감독들이 어떻게 하면 관객과 편하게 소통할까 하는 개인적인 화두가 있었다. 결정적인 계기는 <페스티발>의 흥행 스코어와 상관있을 것이다. (웃음)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관객 분들이 영화를 편하게 쉽게 보게 되는 안전장치가 장르라는 약속이라는 생각에, 장르적 컨벤션이 생겨날 때 초석 같은 역할을 했던 영화를 보면 어떨까 해서 추천작 몇 개를 적었다. <글로리아>, <미지와의 조우>, <이블 데드>, <매드 맥스> 같은 영화였다. 사실 <매드 맥스>는 똑 떨어지는 장르 영화라기보다 짬뽕 장르 같은 영화다. 웨스턴부터 SF 등등 여러 가지가 섞여있고 복합장르 영화의 최초 원안 같은 역할을 했다. 사실 <매드 맥스>가 유명한 영화고 제목은 다 알고 있지만 스크린에서 볼 기회가 많은 영화는 아니다. 다시 보게 되면 당시 관객들을 열광시켰던 어떤 것들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이 작품을 추천하게 됐다.

허남웅:
감독님은 30년 전에 비디오로 보았다고 했고 많은 관객 분들도 비디오로 보지 않았을까 싶다. 30년 만에 영화를 보시니 기억이 매우 새로울 것 같은데 어떠신지?
이해영: 사실 제가 나이가 어려서 정확히 30년은 아니고 (웃음) 굉장히 오랜만에 보긴 했는데 이 영화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은 내러티브에 대한 것보다는 이미지에 대한 기억이다. <터미네이터>나 <다이하드> 같은 청소년기에 본 다른 영화들은 정확히 플롯으로 기억되고 이야기의 앞과 중간과 끝이 삼장구조로 똑 떨어지는 데 반해 <매드 맥스>는 플롯보다 이미지로 기억되어있던 영화다. 자동차가 질주하고 자동차와 오토바이가 충돌하거나 폭발하고 전복되는 이미지로 기억됐었고, 그걸 스크린으로 다시 보면 정말 즐겁지 않을까 생각했다. 호환마마보다 무섭다는 조악한 화질의 삐짜 테이프로 배불뚝이 텔레비전 앞에 친구들과 모여서 본 기억이 난다. 여기서 다시 보니까 강렬하게 기억했던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게 느껴져서 놀랐다. 무엇보다 다시 보니까 멜 깁슨의 젊었을 때의 얼굴이 놀랍다. 많이 달라 보인다. 약간 인종이 달라진 느낌이다. (좌중 웃음) 멜 깁슨의 클로즈업 숏들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역시 봄날을 가는구나. 저렇게 질 줄 아는 꽃이었으면 아예 피지 말 것을.’ 하고 생각했다. (좌중 웃음) 아름다웠지만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웃음)

허남웅: 어떻게 보면 살 빠진 러셀 크로우 같은 느낌도 있는 것 같다. 원래 멜 깁슨이 오디션을 보는 날 전날 바에서 싸움을 해서 얼굴에 멍이 많이 들었었는데 조지 밀러가 그것을 보고 저 녀석이 주인공 하면 딱이겠다 싶어서 캐스팅됐다는 일화도 있다. 이런 남성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감독님은 멜 깁슨의 매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이해영: 멜 깁슨은 당시 무명이었다. 잘 생기고 몸도 좋으면서 연기도 좀 할 줄 알았지만 할리우드에 비해 변방인 호주 출신이니, 사실 혜성처럼 등장한 셈이다. 그 포문을 연 것은 <매드 맥스> 시리즈지만 할리우드에서 이 사람의 매력이 본격적으로 발현된 것은 <리썰 웨폰>이다. <리썰 웨폰>에서 멜 깁슨을 기억하는 건 굉장히 능글맞은 눈빛과 농담과 느끼할 정도로 유머 섞인 모습들이었고 그게 이 사람을 더 섹시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딱딱하고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유들유들하거나 능글맞은 자기 특유의 코드를 만들기 이전이어서 나름대로 신선했다. 여타 터프한 남자들의 이미지와 비교하자면 눈매가 언제나 촉촉하고 깊어 보인다. 눈빛 자체로 멜로와 사랑을 말할 수 있는 배우여서 상품성이 두드러질 수 있지 않았을까. 아까 러셀 크로우 말씀도 하셨는데 러셀 크로우도 요즘은 살이 좀 많이 붙었지만 전성기 때 모습을 보면 소도 맨손으로 때려잡을 수 있을 터프가이 이미지인 동시에 눈빛은 멜로를 얘기할 수 있는 눈빛이다. 웃을 때 그 웃음도 굉장히 선하고 그래서 여심에 다가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러셀 크로우는 보디가드를 향해 전화기를 던졌다거나 호텔 프런트에서 누구에게 욕을 해서 소동이 벌어졌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들림에도 계속 안전한 남자, 사랑을 얘기할 수 있는 남자로 통용된다. 멜 깁슨도 그런 코드를 갖고 있어서 굉장히 신선했다. 본인이 아직 그런 코드를 갖고 있다고 자각하기 전의 모습인 것 같다. 그것을 계발하기 전에 원석을 보는 느낌이어서 흥미로웠다.

허남웅:
<매드 맥스>가 할리우드로 넘어가서 개봉할 당시에는 멜 깁슨이 너무 무명이어서 미국판 예고편이 만들어질 때 자동차 액션 장면만 치중해서 나오고 멜 깁슨은 아예 안 나왔다. <리썰 웨폰>을 거치면서 대스타가 돼서 흥미로운 인생역전을 맞이한 일화도 있다. 그런데 <매드 맥스> 자체가 일화가 굉장히 많은 작품이지 않나. 조지 밀러 감독 같은 경우만 해도 의사를 하며 단편을 계속 찍다가, 의사 일로 모은 돈으로 <매드 맥스>를 찍었다. 제작비를 아끼려고 멜 깁슨이 입고 있는 경찰복만 유일하게 가죽으로 하고 다른 사람은 다 비닐로 했다고 한다. 감독님이 알고 계신 <매드 맥스>와 관련된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이해영: 저예산으로 미래를 찍고 있는 것이지 않나. 미래의 영화를 찍고 있는데 배경을 그리기가 굉장히 어려웠다는 게 보인다. 감독이 사비를 털어서 찍다보니까 계속 영화의 배경이 평야, 바다, 숲 이런 식이다.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심형래 감독님이 초기에 만들었던 <우뢰매> 같은 영화를 보면 숲에 가서 굉장히 많이 싸운다. 파워 레인저도 숲과 자연을 배경으로 많이 싸운다. 사실 도시를 배경으로 하거나 랜드마크가 될 만한 어떤 것을 만들기 시작하면 제작비가 엄청나게 오버된다. 그래서 엉뚱하게도 자연친화적인 영화처럼 보이게 된다. 예산 제약 때문인 게 뻔한데. 엄밀히 말하면 <매드 맥스> 시리즈에서 2편이나 3편에 비해서 1편이 와이드 릴리즈된 것도 아니고 엄청 흥행한 것도 아닌데, 특정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다. 외국에 나가면 LGBT, 말하자면 레즈비언, 게이 이런 분들이 퍼레이드를 한다. 그런 퍼레이드를 에스에머(SMer)들도 하는데 에스에머들에게 <매드 맥스>가 특정한 아이콘으로 작용하고 있더라. 에스에머들은 특정한 코스프레를 하진 않는데, 그럼에도 반드시 들어가는 게 <매드 맥스> 코스프레다. 맥스 캐릭터나 나이트라이더 추종자들을 코스튬 하는 것이다. 이 영화 보면서 놀란 것이 에스엠 코드가 있더라. 가죽 소품이나 마지막에 악당에게 수갑을 사용하는 방식도 그렇고, 여성 피해자 목 쇠사슬 같은 게 걸린 것도 그렇다.

관객1: 무릎과 팔이 밟히면서도 절뚝거리며 가는 것이 장철 영화 느낌도 난다. 중간에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장면이 나오기도 해서 밀러 감독이 홍콩 영화 취향이 있지 않았나 생각했다. 70년대의 타란티노 같은 느낌도 난다. 그런데 나중에 만든 영화를 보면 이렇게 막 나가는 스타일도 없는 것 같아서 <매드 맥스> 시리즈가 연대기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클로즈업 장면은 홍콩 영화의 느낌이기도 하고 얇게 나오는 미국 만화의 느낌, 팝아트의 느낌도 있다. 웨스턴의 영향을 받아서 모사를 하고 있거나 자기 방식으로 변주하는 느낌도 영화 속에 명징하게 보인다. 또 79년도 작품이니까 80년대에 본격적으로 팝 문화가 폭발하기 전에 징후 같은 것이 많이 엿보인다. 이를테면 폭주족 부두목 캐릭터로 나오는 분의 눈 화장이나 폭주족 우두머리가 왼쪽 오른쪽 눈썹을 달리 해서 반은 스모키고 반은 문신한 눈썹처럼 만들어놓은 메이크업이 80년대 팝 밴드들의 이미지 메이킹에 굉장히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봐도 신선하게 느껴지는데 여기 나온 여러 가지 코드들이 당시에 굉장히 첨단의 트렌드를 섭취한 것이라고 본다. 플롯이나 캐릭터 이런 것들이 뜬금없고 불균질하다는 생각이 많이 들고, 어떤 것은 편의에 의해서 마구 갖다 쓴 느낌이 있다. 영향 받은 코드들을 자기 그릇에 유기적으로 섞어서 뭔가 하나를 만들었다기보다는, 코드들을 마구 펼쳐놓는 쾌감이 있다. 감독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맥스가 살고 있는 집의 내부 미술 인테리어를 보면 히피 같은 느낌이 든다. 색감이나 패턴이나 집 안에 화초 같은 식물이 있는 것이 히피적인 문화 코드를 여과 없이 반영하고 있다. 패브릭을 늘어뜨린 해먹이 있는 것도 의도적으로 세팅된 것 같고. 조지 밀러는 당시 문화적인 세계의 흐름을 잘 읽으려고 노력했고 첨단의 트렌드가 어떤 것인지 나름의 기준이 있었고 그것을 갖다 쓰는 것에 크게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인 것 같다. 하지만 여러 가지 코드를 자기화해서 어떤 것을 갖고 와도 자기 것으로 배설하는 타란티노 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그 점이 조지 밀러의 후기 모습과 연관되어있는지도 모른다.


관객2: 이 영화는 서부극보다 형사 영화에서 발전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더티 해리>가 당시 제일 유명하기도 했고. 또 변방이란 느낌에서 타란티노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에 가깝지 않나. 둘 다 미국은 아니고 떨어져 있는데 다양한 문화를 흡수한 상태고 상징적인 코드들을 많이 담은 느낌이 있다. 그런 점에서 어떻게 보셨는지?
이해영: 로드리게즈에 빗댄 것은 크게 공감한다. 로드리게즈도 할리우드에서 메이저에서 영화를 만들 때보다 자국의 언어로 만들 때 더 돋보이고 날카로운 느낌이 있다. 그리고 <더티 해리>는 사실 원톱의 영웅물이지 않나. 또 <더티 해리>가 이미 웨스턴에서 현대물로 파생된 것으로 봐서 상류로 올라가면 결국 웨스턴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물론 웨스턴이란 게 여전히 현대 영화에서 선과 악을 어떻게 배치시키고 그들의 대결을 어떻게 비장하게 보여줄 것인가 하는 데 관해서 선구가 되는 레퍼런스이기 때문에, 굳이 이 영화만의 특수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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