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레드 히치콕'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1.08.02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리끄'
  2. 2011.08.02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
  3. 2011.07.27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

<디아볼리끄>의 영화화 판권을 두고 앙리 조르주 클루조와 알프레드 히치콕이 맞붙은 일화는 유명하다. 피에르 부왈로와 토마스 나르세작의 <악마 같은 여자 Celle qui n'était plus>판권 확보를 위해 두 감독이 모두 달라붙었다가 히치콕에 몇 시간 앞서 클루조 감독이 극적으로 구입한 것. 이를 놓친 히치콕의 격노는 대단했는데, (이 때문에 부왈로와 나르세작은 히치콕을 위해 특별히 <죽음의 입구 D'Entre les Morts>를 집필했고 후에 <현기증>(1958)으로 영화화됐다.) 그가 평생의 라이벌로 생각한 감독이 앙리 조르주 클루조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그 심정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후에 제레미아 체칙 감독이 샤론 스톤과 이자벨 아자니를 기용해 리메이크하기도 했던 <디아볼리끄>는 1명의 남자를 사이에 두고 2명의 여자가 신경전을 벌이는 빗나간 사랑의 정략에 대한 영화다. 기숙사 학교 교장으로 군림하고 있는 미셸 들라살은 인정이라고는 코딱지만큼도 없는 인물이다. 학생들에게는 싸구려 음식을 먹여도 양심의 거리낌이 없고, 무엇보다 부인 크리스티나와 정부 니콜에게 서슴지 않고 폭력을 휘두르는 폭군이기도 하다. 이에 격분한 크리스티나와 니콜은 공모 하에 미셸을 살해하려 한다. 니콜은 위스키에 독약을 타고 크리스티나는 남편을 외딴 방에 불려들어 일을 꾸미는 것. 하지만 그 후로 미셸의 양복이 배달되고 그를 봤다는 목격담이 전달되면서 크리스티나와 니콜은 공포에 휩싸인다.

클루조와 히치콕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은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온도 차에 있다. 히치콕이 스크루볼 코미디의 감성으로 스릴러를 운용함으로써 따뜻한 감성을 발하는 것에 반해 <디아볼리끄>의 클루조는 사랑을 소재 삼아도 남녀 사이에 권력 관계를 형성해놓고 약육강식의 세계 속에 약자의 위치를 점한 인물을 메몰 차리만치 몰아붙이는 것이다. 안 그래도 클루조의 영화 속에서 불운한 최후를 맞는 인물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고향으로 갈 날을 학수고대하는 트럭 노동자(<공포의 보수>)이거나 남편에게 대접 못 받아, 천성적으로 심장은 약해, 가까운 인물에게 이용당하는 여자(<디아볼리끄>)처럼 약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클루조의 미스터리는 종종 호러의 관점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디아볼리끄>에서 관을 연상시키는 기다란 네모 상자는 미셸을 물속에 처넣어 익사시키는 욕조로, 시체를 숨기기 위한 옷상자로, 실제 관으로 형태를 달리하며 극중 중요한 도구의 콘셉트를 이루는 것은 물론 극한 상황에 처한 여자, 그중 크리스티나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대리하기도 한다. 그것은 미셸로 상징되는 기득권에 대한 도전으로 시작해 살해를 실제로 옮기는 행위의 과감함, 하지만 그 자신의 행위가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더한 최후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크리스티나의 처지, 즉 남성에 의해 삶의 지위를 박탈당하는 여성의 공포가 담겨 있는 것이다.

클루조의 메마르고 음산하며 한기가 서려 있는 <디아볼리끄>를 감상한 히치콕은 이를 넘어서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절치부심했고 <사이코>(1960) 완성 후에는 그의 영화가 훨씬 뛰어나다며 호들갑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원작소설 <사이코>의 저자 로버트 블록은 어느 인터뷰에서 그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호러영화로 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리끄>를 꼽기도 했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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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의 필모그래피 안에서 <현기증>(1958)은 가장 미스터리하며, 시각적으로 풍요로운 작품 중 하나로 간주되어왔다. 히치콕의 작가적 완숙미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를 대표하는 이 영화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가는 스토리, 인간의 강박증에 대한 심리학적 탐구로 히치콕 영화에 빈발하는 '거짓 정체성'을 다룬 여러 이야기들 중 최고작으로 꼽힌다. 토마 나르스자크와 피에르 브알로(앙리 조르주 클루조의 <디아볼리끄>의 원작자이다)의 소설 <죽은 자들 사이에서>를 원안으로 한 <현기증>은 무려 네 사람의 시나리오 작가의 손을 거쳐 개작되었다. 히치콕은 여기서 시각적 진술의 명료함과 위력을 통해 역동적인 영화 정보의 흐름을 만들어낼 뿐 아니라 지극히 단순한 장면에서조차 정보전달 이상의 의미를 추구하는 작가적 완벽함을 보여준다.


<현기증>의 플롯은 고소공포증에 시달리는 경찰관 존 퍼거슨(‘스코티’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제임스 스튜어트)의 병리적 여정을 따른다. 직업적으로 큰 결격사유가 될 수도 있는 병증으로 동료 경찰을 잃은 스코티는 경찰 일을 그만두고 사설탐정으로 소일하는데, 대학 친구 개빈 엘스터로부터 부인 마들렌(킴 노박)의 뒷조사를 의뢰받는다. 스코티는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 마들렌의 뒤를 밟으며 점차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지만 마들렌은 교회 종탑 꼭대기에서 갑작스레 추락사하고 만다. 자괴와 절망으로 자책에 빠진 스코티는 어느 날 마들렌을 꼭 닮은 여인 주디 바튼(킴 노박)을 만나고, 마들렌에 대한 감정을 투사하여 주디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

<현기증>은 압도적인 시각적 상징과 히치콕 스타일의 원숙미를 예증한다. 영화예술에 특정적인 거의 모든 요소들이 이 영화를 잊기 힘든 걸작으로 만든다. 스코티의 내면은 어두운 벨벳과 같은 색으로 디자인되는데, 일관성 있는 색채의 사용은 스코티가 마들렌에 대해 내밀하게 품게 되는 감정에 대한 전조로 기능하면서 마들렌을 좇는 미행 시퀀스들에서 그의 내면 정경을 시각적으로 기술한다. 그래픽 디자이너 솔 바스가 디자인한 기하학적 타이틀 시퀀스에서부터 주문을 걸 듯 관객의 의식을 지배하는 녹색의 사용도 눈에 띈다. 무엇보다 <현기증>을 영화사의 걸작으로 추대한 것은 시종일관 꿈과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면서 강력한 몰입을 유도한 창의적인 연출이다. 스코티가 시달리는 아득한 고소공포증을 형상화한 줌 인-트랙 아웃 만큼이나 <현기증>의 창조적 스타일은 느리게 움직이는 이동 촬영 장면들로 완성되고 있다. 이를테면 스코티가 마들렌을 처음 만나게 되는 레스토랑 신에서, 카메라는 느리게 팬 하여 레스토랑의 거의 모든 사람들을 훑는다. 이 장면에서부터 카메라는 레스토랑의 여기저기를 느리게 이동하면서 종내에는 마들렌의 등에 가닿는다. 스타일의 효과에 대한 상식을 따른다면, 카메라의 이동은 캐릭터의 관심사에 의해 동기화되며 그 속도는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대개 주 인물의 관심이 쏠려 있는 대상의 얼굴에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는데 반해 히치콕은 이러한 형식의 준거를 완연히 거스른다.


무엇보다 미려한 카메라 움직임은 삶과 죽음 사이의 미로를 헤매고 있는 듯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흡사 터널 또는 미로에 대한 페티시라고 칭할 수 있을 만큼 이러한 움직임의 형상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들이 퍼뜩 떠오른다. 교회에서 마들렌의 뒤를 밟을 때 스코티의 현기증을 유발하는 미로의 형상,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자동차 미행,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휩싸인 마들렌의 뒤를 밟아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터널의 이미지 따위. 이미지의 심상은 <현기증>에서 다분히 상징적인 차원을 갖는다. 앞서 말한 숲 장면에서 마들렌은 스코티에게 “계속 터널 속을 걷고 있는 꿈을 꾼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이 상식 밖의 기교가 야기하는 스타일적 효과는 관객들이 스코티의 심리 상태에 젖어들게 만들고 마들렌을 향한 그의 동경에 연루되도록 한다.

<현기증>은 히치콕의 걸작들이 걸어왔던 길처럼, 무수히 많은 평자들에 의해 다채로운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심리학과 정신분석학, 리얼리즘과 상징주의의 혼융, 페미니즘, 신화 분석의 틀을 빌어 이 영화를 읽어내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그 중 흥미진진한 해석은 신화와의 연관성이다. 존재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다룬 영화의 내용은 즉각적으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의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여인의 이미지를 ‘갈라테’의 조각으로 완성한다. 그는 갈라테와 진짜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이를 동정한 신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을 위해 조각에 생명을 불어 넣는다. <현기증>에서 피그말리온과 갈라테의 신화는 스코티와 주디에 의해 재현된다. 스코티는 주디를 자신의 갈라테로 변형하는데, 마들렌이 입었던 회색 드레스와 신발을 착용하고 머리 모양과 색깔을 변형하면서 그녀에게 집착한다. ‘이상화된 이미지에 대한 재현’이라는 점에서 스코티의 강박은 영화의 욕망과 상통하는 지점이 있다. 이미지에 홀리는 영화적 인간을 다룬 이토록 매혹적인 영화를 나는 본 적이 없다.

글/
장병원(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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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드 히치콕에게 <새>(1963)는 그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도전이었다. 몇 번의 TV 출연을 제외하면 연기 경험이 아주 없었던 무명 여배우와의 작업, 살아있는 새와 애니메이션 새를 혼합해 실제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하는 특수효과, 식별 가능한 음악 없이 오로지 새의 음산한 울음소리로만 구성한 사운드 트랙, 그리고 그의 연출작 중에서 최고의 제작비에 해당하는 330만 달러까지, 줄곧 작업해 오던 파라마운트를 떠나 유니버설로 회사를 옮겨 처음 작업하는 <새>는 여러 모에서 히치콕에게는 도전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싸이코> 등으로 경력의 정점을 찍은 그에게 <새>의 여러 불리한 조건들은 완성도를 방해할만한 위험 요소가 전혀 아니었다. “처음부터 특수효과의 난제들을 맞닥뜨리는 것에 절대로 겁을 집어먹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나는 임기응변으로 일을 처리해 나갔습니다.” 심지어 <자마이카 인>(1939) <레베카>(1940)에 이어 <새>까지, 세 번째로 작업하게 되는 다프네 뒤 모리에의 원작소설이었지만 그 사실에도 예민한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나는 그 소설을 딱 한 번 읽었습니다. 지금도 그게 무슨 내용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히치콕이 뒤 모리에의 소설 <새>를 떠올린 것은 수천 마리의 바닷새들이 지상으로 내려와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난 뒤였다. 당시 그레이스 켈리의 <마니>(1964) 캐스팅에 난항을 겪고 있던 (모나코의 왕세자비였던 켈리는 국민들의 저항에 끝내 출연을 거절하고 말았다.) 히치콕은 주저하지 않고 <새>의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새들이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공격한다는 원작 소설의 설정과 새들에게 눈동자를 쪼여 죽은 시체를 발견하는 장면, 새들의 최후의 공격에 대비해 집안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등의 특정 장면을 그대로 취하는 한편 히치콕은 영화의 배경이 되는 보데가 만을 직접 찾아 원형의 호수와 초등학교 건물을 목격하고는 이에서 얻은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여 이야기에 사실성을 부여했다.

멜라니 다니엘스(티피 헤드런, 히치콕은 헤드런의 딸 멜라니 그리피스의 이름을 따와 캐릭터 이름을 지었다.)는 신문 사주의 딸이지만 제 멋대로인 성격으로 유명하다. 그런 그녀가 샌프란시스코의 새 가게에서 젊은 변호사 미치 브레너(로드 테일러)를 만나 매력을 느낀다. 미치와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멜라니는 잉꼬 한 쌍을 선물로 준비해 그가 사는 보데가 만으로 향한다. 미치가 없는 동안 그의 집에 잠입해 잉꼬를 두고 오는데 성공하지만 돌아가는 모터보트 안에서 멜라니는 갈매기의 공격을 받고 이마를 다치는 사고를 당한다. 선착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미치는 멜라니의 상처를 치료해주고 그 둘은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다음날 미치의 어린 여동생의 생일을 기념하는 야외 파티장에서 새들이 아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히치콕의 영화를 일러 ‘스크루볼 코미디'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확실히 히치콕의 영화는 스릴러 혹은 미스터리와 같은 장르적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남녀의 결합을 이어주는 과정에서 두드러지는 까닭에 이야기의 측면에서는 스크루볼 코미디인 경우가 대다수다. 하여 히치콕의 라이벌로 평가받는 프랑스의 앙리 조르주 클루조 영화와 비교해도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거실의 벽난로처럼 온기 있는 영화로 인식된다. 다만 <새>의 경우는 멜라니와 미치 간의 스크루볼 코미디로 시작해 새가 사람을 공격하는 공포로 발전한다는 점에서 다소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컨대, 새의 소리를 제외하고 음악이 부재되어 있는 연출은 (크레딧에 올라 있는 버나드 허먼의 역할은 ‘music by’가 아닌 ‘sound consult’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전체적으로 을씨년스러운 기운을 체험토록 한다.

평화로운 일상에 새의 소리로 급작스럽게 균열을 가하는 음악적 모티브는 극중 새들의 공격에 설명 가능한 이유가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실제로 히치콕이 <새>의 시나리오 작업에서 끝까지 신경을 썼던 부분이 바로 새의 공격 이유에 대한 확실한 설명보다는 불친절한 모호함이었다. 대신 히치콕은 새와 사람의 관계를 역전시킨 설정을 통해 마음의 철창(새장)에 갇힌 인간관계의 묘사를 강화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특히 미치를 가운데 두고 ‘소유’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보여주는 미치의 어머니 리디아(제시카 탠디)와 애니 헤이워스(수잔 플레셔트), 멜라니의 신경전은 극 중 이야기의 중요한 한 축을 이룬다. (흥미롭게도 미치는 사람을 철창으로 보내는 변호사를 직업으로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극 중 인물들의 감정 상태는 다름 아닌 ‘결핍’이다. 리디아는 남편을 잃고 아들에게 의지하는 과부 신세이고, 멜라니는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여 그녀를 떠난 지 오래다. 애니도 예외는 아니어서 미치와는 한때 연인 사이였지만 리디아의 질투로 지금은 멀찍이서 미치를 바라보는 상태다. 다시 말해, 그런 결핍이 더욱 소유에 대한 욕구를 강하게 부채질하고 있다는 점을 영화는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히치콕은 새가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에 대해 은근히 암시한다. 새장 속에 새를 가두는 행위로 상징되는 인간관계의 결핍에서 비롯된 소유욕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새>는 후에 수많은 영화에서 인용되고 패러디 되었다. 그 중 조지 로메로의 <살아난 시체들의 밤>(1968)이나 나이트 M.샤말란의 <싸인>(2002)은 <새>의 설정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면을 가장 잘 활용한 영화로 평가 받는다. 집안에 갇힌 주인공들이 각각 좀비와 외계인의 공격을 받는다는 설정 외에도 ‘결핍’의 테마, 흑인을 좀비 취급하는 백인의 우월주의(<살아난 시체들의 밤>), 부인의 죽음 이후 세상에 대한 희망을 잃은 신부 캐릭터 (<싸인>) 등 창조적으로 <새>를 계승한 것이다. 그렇게 히치콕의 모험적인 프로젝트였던 <새>는 개봉 당시 흥행 성공은 물론 후대 영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고전의 지휘에 올랐다.

글/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 본문에 언급된 히치콕의 말은 패트릭 맥길리건이 쓰고 윤철희가 옮긴 을유문화사의 <히치콕>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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