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간 열리는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 한국 시네마테크의 미래를 본다

 

2010년에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찾아온다. 2006년 시네마테크의 설립취지에 공감하고 활동을 지지하는 영화인들의 참여로 처음 열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영화인들이 직접 참여해 영화를 선택하고, 관객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독특한 형식으로 매년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렸다. 시네마테크로서는 연일 매진을 기록할 만큼 ‘흥행’ 영화제이자 영화를 추천한 영화인들과 관객이 만나 함께 대화하는 소중한 자리였다. 하지만 최근 시네마테크의 안정적 운영을 위협하는 대내외적 요인이 불거지면서 과연 이 친구들을 내년에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부터 든다. 그래서 이 영화제가 시작된 이래로 염원해온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을 위한 구체적인 활동이 이번 영화제를 통해 시작된다. 그동안 시네마테크를 후원하기 위해 모였던 영화감독, 배우, 교수, 영화평론가 등 영화인들이 참여해 ‘전용관을 설립하기 위한 추진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다. 1월15일 개막식과 후원의 밤을 시작으로 막을 열어 2월28일까지 약 두달간 종로 낙원상가 4층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우리의 친구들을 내년에도 만날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한다.

 

메인 섹션 ‘시네마테크의 선택’ 상영작, <사냥꾼의 밤>

개막식을 빛낼 작품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1915)다. 민완 신문기자 필립 게랑드가 전직 범죄자인 마자메트와 함께 범죄집단 ‘뱀파이어’ 일당을 추적하는 이야기며, 1915년부터 1916년까지 제작된 총 10편의 무성영화 시리즈로 당시에 대중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이후 프리츠 랑, 앨프리드 히치콕, 알랭 레네, 자크 리베트,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에 영감을 주었던 이 영화는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를 통해 처음으로 국내에 소개된다. 개막식에는 10편의 에피소드 중 첫 번째와 두 번째 에피소드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과 <전우치>(2009) 등을 작업한 장영규 음악감독의 라이브 연주로 상영된다. 그리고 매년 시네마테크가 선택한 작품을 상영하는 메인 섹션 ‘시네마테크의 선택’으로는 시네마테크가 고전영화 라이브러리로 직접 구매한 찰스 로튼의 <사냥꾼의 밤>(1955)이 새로운 프린트로 처음 소개된다. 손가락에 ‘LOVE’를 새겨 넣은 로버트 미첨의 무표정한 스틸만으로도 인구에 회자돼온 <사냥꾼의 밤>은 히치콕의 <자메이카 인> 등에 출연하며 특이한 용모로 잘 알려진 배우 찰스 로튼의 유일한 연출작이자, 누아르영화 사상 가장 개성적인 작품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친구들이 올해엔 더 늘었네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이 직접 자신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영화를 선택해 상영하고 작품에 대한 소개를 진행하며, 상영 뒤에는 관객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섹션 ‘친구들의 선택’은 알 만한 사람들은 일찌감치 예매를 서두를 정도로 가장 인기 높은 파트다. 이처럼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홍상수, 류승완, 안성기 등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인들이 참여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관객과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들의 선택’, 관객의 손으로 직접 뽑은 영화를 상영하는 ‘관객들의 선택’ 두 섹션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개최된 이래 지속적으로 관객에게 선보인 프로그램으로 올해는 더욱 많은 친구들이 참여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예수의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 유다의 배신을 담아낸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문제작 <마태복음>(1964, 김지운 감독의 추천), 68혁명 이후 프랑스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70년대 최고 걸작 중 한편으로 평가받는 장 외스타슈의 <엄마와 창녀>(1973, 김한민·윤종빈 감독의 추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은 마이크 리의 <네이키드>(1993, 박찬옥 감독의 추천), 존 워터스가 ‘영화역사상 가장 상스럽고 더러운 영화’라는 평가까지 받은 <핑크 플라밍고>(1972)의 성공 뒤 2년 만에 내놓은 그와 별다르지 않은 저예산 장편영화 <디바인 대소동>(1974, 이재용·전계수 감독의 추천), 2002년 감독 복원판으로 특별 상영되는 <아마데우스>(1984, 배우 안성기의 추천), 가족의 해체를 다루는 존 포드의 휴먼드라마 걸작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김영진 평론가의 추천) 등도 눈길을 끈다.

 

영화평론가 마스터클래스와 시네클럽


시네마테크가 2008년부터 매년 구축하는 고전영화 라이브러리를 2010년에도 관객에게 처음 소개할 예정이며, ‘카르트 블랑슈-시네필의 선택’에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과 해외 게스트로 저널리스트, 편집자, 저술가로 활동하는 영화평론가 크리스 후지와라가 초청되어 그들이 선택한 영화를 상영하고 영화비평에 대한 마스터클래스를 개최할 예정이다. 정성일은 개막작 <뱀파이어> 외에 사샤 기트리의 <어느 사기꾼의 이야기>(1936), 카르멜로 베네의 <카프리치>(1969), 크리스 후지와라는 프리츠 랑의 <이유없는 의심>(1956), 존 포드의 <말 위의 두 사나이>(1961), 테렌스 피셔의 <프랑켄슈타인 죽이기>(1969)를 각각 선정했다.


한편, 시네마테크에서는 시대의 고전을 소개하기 위해 2007년부터 고전영화의 프린트를 직접 구매하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필름 라이브러리’를 운영해오고 있는데, 2009년에는 서부극의 거장 존 포드의 걸작 6편을 구매했으며 이번 영화제를 통해 ‘존 포드 걸작선’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프린트를 선보인다.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와 <철마>(1924), <굽이 도는 증기선>(1935), <모호크족의 북소리>(1939), <분노의 포도>(1940) 등 총 8편이다. 또한 이번 영화제 기간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젊은 친구들과 봉준호, 류승완, 오승욱 감독이 참여해 영화 연출 및 시나리오 등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처음으로 열린다.(주성철)

 

박찬욱 감독의 추천: 니콜라스 뢰그의 <쳐다보지 마라>

Don’t Look Now
니콜라스 뢰그 | 도널드 서덜런드, 줄리 크리스티 | 1973년 | 110분 | 미국, 이탈리아

빨간 코트를 걸친 딸아이가 강가에서 혼자 놀고 있고, 그와 멀지 않은 집에서 교회 슬라이드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던 벡스터(도널드 서덜런드)는 잔을 엎지르면서 피 같은 얼룩이 슬라이드 표면에 번지자, 불현듯 밖으로 달려나간다. 물에서 이미 죽어버린 딸을 건져올려 울부짖는 벡스터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이 인상적인 오프닝은 강박관념과 죄의식이라는 테마를 풍부한 시각적 암시와 상징으로 묘사한다. 히치콕이 할리우드에서 만든 첫 번째 영화 <레베카>(1940)의 원작자로도 유명한 다프네 드 모리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삼았다.

부부는 베니스로 이사를 가 슬픔을 잊어보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심령술사 여성과 그 언니를 만나면서 그 아픔은 좀더 불길하게 번져간다. 심령술사가 죽은 딸의 영혼과 만나게 해준 것. 이런 음울한 환상과의 조우는 맨해튼의 아파트로 이주해 한 노부부와 가깝게 지내던 <악마의 씨>(1968)의 로즈마리 부부를 떠올리게 한다. 영화의 불길하고도 강렬한 힘을 강화하는 것은 파격적인 교차편집이다. 그럼으로써 니콜라스 뢰그는 영화 속 인물들만큼이나 관객으로 하여금 보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는 기묘한 마술을 부린다. 특히 두 부부의 갑작스런 정사신은 영화역사상 가장 이상하고도 매력적인 정사신이라 해도 좋을 만큼 인상적이다. 낭만의 도시로 그려지던 베니스를 시체와 유령의 도시로 만든 음습한 공기도 계속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물론 그 어느 것도 예상 못한 반전에 비할 바 아니지만.

 

홍상수 감독의 추천: <오데트>

Ordet
칼 드레이어 | 한 아그센, 크리스틴 안드레센 | 1955년 | 126분 | 덴마크

보르겐 농가의 둘째아들 요하네스(프레벤 레도로프 라이)는 정신이 쇠약해진 뒤 자신이 예수라고 생각하며 여기저기서 성경구절들을 인용해 설교한다. 한편, 셋째아들 안데르스(케이 크리스티안센)는 종교적으로 대립되는 재단사 집안의 딸과 결혼하려 한다. 어느 날, 임신 중이던 장남 미켈(에밀 하스 크리스텐센)의 아내가 출산 도중 의식을 잃고, 보르겐가에는 신앙의 위기가 찾아온다.

목사이기도 했던 극작가 카이 뭉크의 <말씀>을 원작으로 삼은 <오데트>는 믿음에 관한 영화다. 아버지는 요하네스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지만 ‘변화’는 일어나지 않고 주변에서는 그래도 기도를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 여기서 기도를 멈춘다면 그때까지의 오랜 기도는 모두 물거품이란 얘긴가. 믿음에 회의를 지닌 냉소적인 아들과 다른 신을 섬긴다는 이유로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양쪽 집안의 아버지들. 그렇게 <오데트>는 믿음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흑백 영상에다 주로 실내 공간에서 촬영했지만 그 빛과 인물이 오가는 구도는 그야말로 경건하다. 믿음 없는 세상에서 바라보는 칼 드레이어의 최고 걸작.

 

봉준호 감독의 추천: 존 부어맨의 <서바이벌 게임>

Deliverance
존 부어맨 | 존 보이트, 버트 레이놀스, 네드 비티 | 1972년 | 110분 | 미국

네 남자가 급류 카누 여행을 떠난다. 댐 건설로 말미암아 수면 아래로 사라지게 될 강 주변 마을에서 그들은 남자다움을 시험하지만 곧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끔찍한 악몽으로 변한다. 에드(존 보이트)가 숲에서 변태적인 마을 주민 두명에게 성폭행당하기 직전 루이스(버트 레이놀스)가 활을 쏘아 한명을 살해한 뒤부터 예기치 않은 위기가 계속되는 것.

영화는 유려한 풍경의 강 상류로 시작하지만 이내 폭파와 벌목 등 개발장면을 군데군데 삽입한다. 곧 수몰될 자연과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대조를 이루면서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스러져가는 인물들의 모습이 무척 상징적이다. 패기 넘치는 영국 감독이 비판적 시선으로 완성한 영화이기에 댐 건설을 둘러싼 파괴의 풍경은 ‘위대한 미국’이라는 허울 좋은 신화와 자연스레 겹친다. 밴조를 연주하는 정신지체 소년, 내부를 들여다보기 힘든 숲의 정경은 그 어느 영화보다 음산하고 공포스럽다. 와이드스크린으로 담아낸 급류 강 장면이 감탄을 자아내며 서서히 광기에 휩싸여가는 존 보이트와 버트 레이놀스의 모습은 단연 압권.

 

오승욱 감독의 추천: 조셉 로지의 <트로츠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Trotsky
조셉 로지 | 알랭 들롱, 리처드 버튼 | 1972년 | 103분 |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트로츠키 암살>은 실제 1940년 8월 멕시코에서 살해당한 유랑의 혁명가 트로츠키의 마지막 몇달간의 기록이다. 스탈린은 자객을 보내 트로츠키의 암살을 지시했고 결국 날카로운 등산용 지팡이인 피켈로 죽임을 당했다. 하지만 사건에 이르기까지 비어 있는 시간들을 조셉 로지 특유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했다. 그것의 가장 극명한 예는 트로츠키 암살을 위해 보내진 자객, 심지어 알랭 들롱이 연기하는 ‘프랭크 잭슨’의 존재다. 그는 또 다른 트로츠키 신봉자 여성을 유혹해 트로츠키 일가에 접근한다. 레인코트를 입고 트로츠키의 주위를 맴돌다, 결국 스스로 번뇌에 빠져 자신의 임무에 갈등하는 그의 모습은 스탈린이 아니라 장 피에르 멜빌이 보낸 킬러 같다. 아니, 예정된 운명 앞에 심각한 회의와 비탄에 휩싸인 햄릿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잭슨이 여자와 함께 투우를 보러 간 장면이다. 피를 흘리며 죽어가는 소의 모습은 누가 봐도 트로츠키에 대한 은유다. 그 음산하고 질식할 것 같은 분위기와 음악은 압도적이다. 이처럼 표현주의적인 장면들이 뒤섞인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조셉 로지가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과 만난 것 같은 느낌이다. 트로츠키만큼이나 그 역시 지역적 감성에 녹아들었던 걸까. 그렇게 조셉 로지는 누구나 알고 있는 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영화를 하나의 ‘의식’처럼 완성했다.

 

류승완 감독의 선택: 왕가위의 <열혈남아>

旺角下問
왕가위 | 유덕화, 장만옥, 장학우 | 1987년 | 94분 | 홍콩

건달 소화(유덕화)에게는 창파(장학우)라는 고향 후배가 있는데 늘 말썽만 부려 골치다. 그러던 중 란타우섬에 살고 있는 아화(장만옥)라는 먼 친척이 찾아온다. 왕가위 감독 스스로도 밝혔듯 <열혈남아>는 홍콩 누아르라는 선배들의 자산 위에 마틴 스코시즈의 <비열한 거리>(1983)와 <천국보다 낯선>(1984)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장학우는 충동적이고 다혈질인 <비열한 거리>의 자니 보이(로버트 드 니로)와 닮았고, 장만옥의 존재는 잠시 함께 머물다 떠나간 <천국보다 낯선>의 사촌 여자 에바(에스터 벌린트)와 비슷하다.

왕가위의 데뷔작 <열혈남아>를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다만 상영 버전은 기존에 개봉한 대만 버전이 아닌 홍콩 버전(감독판)으로 엔딩 등 일부 장면이 다르다. 그래서 왕걸의 음악을 들을 수 없다는 게 아쉽고 유덕화와 장만옥이 마지막으로 만나는 엔딩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유덕화가 장학우의 복수를 위해 포장마차에서 펼치는 스탭프린트 ‘활극’ 등의 감동은 여전하다. 시작은 선배 영화들로부터의 탈주였으나 이후 아시아 감독들에게는 또 하나의 ‘전범’이 된 청춘잔혹 영화.

 

최동훈 감독의 선택: 더글러스 서크의 <바람에 사라지다>

Written on the Wind
더글러스 서크 | 록 허드슨, 로렌 바콜 | 1956년 | 99분 | 미국

석유회사 사원 미치(록 허드슨)와 난봉꾼인 젊은 사장 카일(로버트 스탁)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다. 미치는 방계 회사의 비서인 루시(로렌 바콜)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는 카일을 택하고 미치는 친구를 위해 물러선다. 하지만 루시의 불임으로 카일은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고, 급기야 루시를 싫어하는 카일의 여동생은 미치가 자신의 유혹에 넘어오지 않자 가까스로 임신한 루시의 상대가 미치라고 카일에게 말한다.

더글러스 서크의 멜로영화는 당대 그 누구의 멜로영화보다 낭만적이고도 화려한 세트를 선보였지만, 결코 그 낭만성에 잠식당하지 않았다. 가령 <바람에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인공호수의 외관을 보라. 공간이 화려할수록 인물들의 비극성은 더욱 강조됐다. 무엇보다 그의 영화들은 수많은 현대 감독들이 리메이크에 공을 들일 만큼 세련된 태도와 기품을 품고 있었다. 본질적으로 당시 가부장적 사회와 문화에 대한 비판을 내재하고 있으면서 또한 당대 최고의 흥행작들이기도 했다. <하늘이 허락한 모든 것>(1955)과 더불어 더글러스 서크의 최고 걸작.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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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씨네필 2010.01.20 01: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데트'에 대한 글은 너무 성의가 없어서 무지 실망했어요. 전에 '오데트' 상영할 때 누가 쓴 글 그대로 옮긴 부분도 있고 저도 저거보다는 잘 쓸 수 있을 것 같더라구요. '오데트'가 굉장한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팬심에서 나온 생각인지도 모르겠네요.

다섯 번째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서막 열어

2010년 1월 15일 저녁 7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제5회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이하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식이 열렸다. 이번 친구들 영화제는 5주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전용관 문제로 겪고 있는 위기를 감독, 배우, 영화관계자, 관객들이 힘을 모아 헤쳐 나가자는 취지가 반영되어 그 어느 때보다 이목이 집중된다. 개막식에 앞서서는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전용관 추진위)’의 발족식도 거행했다. 그래서인지 이전의 친구들 영화제 개막과는 사뭇 다른 표정이다. 예년보다 많은 사람들이 들뜬 표정들로 모여 영화에 집에 대한 공감과 사랑으로 뜨겁게 타올랐던 밤. 그렇게 시작한 2010 친구들 영화제 개막식 현장을 여기에 옮긴다.


1월 15일 저녁 7시경 서울아트시마에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다섯 번째의 생일잔치가 시작되었다. 초기부터 친구들 영화제의 사회를 진행하던 권해효 씨는 매년 한 해의 마무리를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한다면, 새 해의 시작은 친구들 영화제와 함께 한다는 말로 인사말을 시작했고, 예지원 씨와 함께 했던 작년을 떠올리며 올해는 쓸쓸히 혼자라는 재치 있는 말로 다소 엄숙했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리고 바로 개막영상이 상영됐다. 개막영상에는 이번 친구들 영화제에 참석한 친구들의 영상인사와 추천의 변이 담겨 있다.

이후 본격적으로 참석한 인사들의 소개와 축사가 이어졌다. 첫 스타트를 끊은 인사는 영화진흥위원회 조희문 위원장. 그는 현재 서울아트시네마가 처한 상황으로 미루어, 존재감만으로도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라 더욱 이목이 집중됐다. 조 위원장은 “시네마테크 활동을 보면 대단하기도 하고 이상하게 느껴진다. 과거에 필름으로만 영화를 보던 시기에는 개인의 힘으로 영화를 볼 방법이 없었기에 프랑스 문화원을 비롯한 곳에서 여럿이 모여서 영화를 봤지만 요즈음에는 DVD 등을 통해 개인적으로 영화를 볼 수가 있는 환경의 변화가 발생했는데, 시네마테크를 계속 고집하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면서도 그 열정이 소중하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 분들이 영화를 즐기는 것인지, 친구들과 교감을 위해 이 공간에 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앞으로 저도 친구들의 명단에 포함되면 좋겠다. 앞서 기자회견이 진행된 것을 알고 있는데, 시네마테크가 있어야 된다는 것에 백퍼센트 동의하기 때문에, 앞으로 전용관 확보 문제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좋은 결과를 얻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뒤이어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이사장이 참석하신 분들에게 감사드린 말과 함께 친구들 영화제의 성격과 프로그램 및 부가행사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다. 그 다음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대표인 박찬욱 감독의 차례로 이어졌다. 그는 “시네마테크에서 고전영화들을 보고 자란 젊은이들이 영화를 만들고, 또 그들이 먼 훗날 대가가 되어 시네마테크에서 자신들의 영화를 상영하는 날이 온다면 좋을 것이라는 꿈을 꾸어본다”고 말했다. 이어서 이두용 감독이 등장했다. 그는 “전 세계의 좋은 영화들을 모아 상영하는 친구들 영화제에 대해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게 생각한다. 영화를 정말로 좋아하는 진지한 관객들의 모습에 깊이 매료됐다. 전용관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협조를 구한다”는 말로 인사를 마무리했다.

다음에 등장한 배창호 감독은 따로 준비해온 원고를 펼쳐들며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그러나 이 탄성은 시작에 불과했다. 배창호 감독은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의 진정한 가치에 대해 토로했다. 영화를 통한 진정 강력한 체험이란 감독이나 작가가 자기의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느낀 체험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해서,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주는 체험이라는 것. 그의 진실하며 열정적인 호소는 많은 사람들을 진심어린 감동에 젖게 했으며, 장내가 떠나갈 듯한 함성, 박수갈채와 함께 개막식에서 가장 뜨거운 순간을 이끌어냈다. 기립 박수를 치는 관객도 있었다.

이어서 시네마테크 전용관 추진위 위원장을 맡은 이명세 감독이 무대에 나왔다. 이명세 감독은 앙드레 바쟁을 인용하며, “영화관은 한편으로 미사를 드리는 서원 같고, 한편으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열정을 되살릴 수 있는 시장판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이중적 속성을 가진 영화관의 시작이 바로 시네마테크라는 것. 마지막 인사말을 해준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집행위원장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생기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부산 시네마테크의 경우 내후년에 1600억 원을 들여 새롭게 짓는 공간에 이주할 예정이라는 말로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사회자는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집 없는 서러움은 이제 끝내야 한다”라고 한 목소리로 정리했다.

한편 이 영화제는 물론 서울아트시네마의 모든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김성욱 프로그래머도 이번 영화제가 남다르다며 한마디를 전했다. 그는 “90년대부터 비디오테크를 해왔다. 열악한 조건에서 영화를 보았던 그 시절에도 꿈꾸었던 것은 온전하게 영화를 보고, 영화를 좀 더 알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집을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영화에 있어서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영화작업은 결국에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용관 추진위가 발족한 오늘은 저 자신으로서는 가장 경이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 시네마테크에 애정을 가져주는 감독들을 비롯한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개막작 <뱀파이어>는 영화사 고몽의 쓰레기통에서 건져 올려 되살아난 영화다. 이처럼 쓰레기통에 처박혔던 영화들을 구제하는 것이 시네마테크가 할 일일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개막식에 참석한 인사들을 짧게나마 소개하는 시간도 있었다. 개막식 행사에는 한국영상자료원 이병훈 원장, 부산 시네마테크의 허문영 원장 등 많은 영화계 인사들과 민규동, 김종관, 김정, 양해훈, 이서 감독, 그리고 유지태, 송강호, 신해균, 김상호, 박시연, 김옥빈, 정재영, 김윤석 등의 배우들이 바쁜 와중에도 서울아트시네마를 찾아 자리를 빛내 주었다. 또한 이날 개막 상영작에 음악을 입혀 라이브로 들려줄 장영규 음악 감독 역시 일찌감치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50분여의 흥분에 가득 찼던 개막식이 끝나고, 개막작 <뱀파이어>의 에피소드 1편과 2편이 상영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현장에서 만들어낸 다양한 효과음들, 그리고 국악 악기 연주를 통해 영화의 일부처럼 잘 녹아든 엠비언트풍의 사운드는 영화감상의 집중도를 최대한 끌어올렸다.

영화 상영이 끝난 후에는 극장 로비에서 리셉션도 진행했다.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먹거리 뷔페가 차려져 있었고 로비를 가득 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즐거운 분위기 속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음식과 음료를 즐겼다. 이렇게 시네마테크 전용관 설립에 대한 한 뜻으로 뭉쳐, 친구들 영화제의 개막을 축하했던 많은 사람들의 열정적이고 즐거운 밤은 끝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축제는 이제부터다. 이제 우리를 반길 준비를 하고 있는 위대한 고전영화들을 만나러 갈 차례다. 영화의 친구들과 함께. (박영석)




▶▶배창호 감독으로부터 영화의 성전에 날아온 편지

영화를 사랑하셔서 이렇게 한자리에 모이신 여러분께 새해인사를 먼저 드립니다. 새해 건강하시고 복 많이 받으십시오. 이 극장에 오려면 멀티플렉스의 고소한 팝콘냄새가 아니라 돼지머리 고기 냄새가 풀풀 풍기는 비좁은 순대 골목을 지나야 합니다. 지난 60년대 말인가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 이 허리우드 극장이 최초로 개장돼서 최신영사기를 갖춰 떠들썩하게 개봉한 <전쟁 프로페셔널>이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그때도 이 순대골목을 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오래된 극장에 몇 해 전부터 시네마테크라는 귀중한 공간이 자리 잡아 이제껏 일반 극장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개성 있는 감독들의 영화들이나 고전들을 비디오나 DVD나 PC모니터나 휴대폰이 아닌, 스크린으로 원판으로 볼 수 있는 영화의 도서관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습니다.

요즘 거대한 자본과 최신 과학기술이 결합에 만들어진 한 편의 3D 방식의 영화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크나큰 호응을 얻으면서, 미래의 영화는 3D 영화일 것이라고 언론매체와 영화 산업계는 기대와 흥분을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히 위안거리로 생각하는 대중들의 눈과 귀를 최대히 즐겁게 하려는 시도들과 노력의 결실은 이제 영화관을 깨인 체험관으로 변화시켜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행은 앞으로도 당분간 성행하리라 여겨집니다. 영화는 과학과 자본의 결합일 뿐 아니라 우리의 정신적 산물이기도 합니다. 벌써 천 몇백년 전, 로마의 한 철학자는 “무지한자는 예술의 쾌락을 음미하고 현명한자는 예술의 의미를 음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의 최신 유행영화들이 극장 의자도 흔들어 진동을 느끼게 하고 연기도 피우고 냄새도 맡게 하더라도, 그 체험은 일회성의 육체적인 자극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화를 통한 진정으로 강력한 체험이란 감독이나 작가가 자기의 삶에서 몸과 마음으로 절실히 느낀 체험을 관객들과 함께 느끼고 공유해서, 관객의 생각과 마음을 깊고 넓게 확장시켜주는 그런 체험입니다.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은 단순히 깨인 체험장의 역할뿐 아니라, 영화라는 표현매체의 즐거움을 통해서 인생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줄 수 있는 학교이자 도서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잘 연출된 영화는 일부러 입체안경을 끼지 않더라도,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마음과 감각으로 3D, 흥미체험, 현실세계를 입체적으로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관객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이성과 감성이라는 맑고 투명한 안경을 쓰고 영화를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매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꾸준히 다양한 영화들과 프로그램을 10년 가까이 소개해 오고 있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노력을 늘 놀라움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영화도서관의 사서가 되고자 하는 이분들이 그토록 바라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하루빨리 세워질 수 있도록 여러분께서 성원해주시기 바라며, 영화를 사랑하는 영화인들과 관객들의 즐겁고도 진지한 데이트 같은 이 친구들 영화제의 다섯 번째 생일을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 개막식에서 청중들을 감격에 젖게 한 배창호 감독의 축사 전문을 인용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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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

2010년 1월 15일, 5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선 실로 기념비적인 일이 일어났다. 국내 내로라하는 영화감독, 배우들이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를 결성하고 바로 이날, 그 뜻 깊은 결의를 알리고 다지는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도 참가, 공감대를 나눈 이 자리는 영화를 꿈꾸는,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의 염원을 모아 자발적으로 이뤄진 것이다. 온전한 영화의 집을 짓기 위해 스스로 깃발을 들고 나서 이제 시작을 외치는 추진위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추운 겨울이지만 열기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불탔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 발족식 현장을 전한다.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서울에 있는 많은 시네필들의 동면을 깨워주었던 친구들 영화제는 쉬지 않고 5년을 내리 달려왔다. 하지만 지금의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섯 번째 생일을 맞은 친구들 영화제와 맞물려서 가장 큰 위기에 처해있다. 그건 바로 ‘공간’의 문제로, 어쩌면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서울아트시네마는 또 다시 보따리를 싸서 어딘가로 떠나야할 지도 모른다. 인구 천만이 넘는 이 대도시에 변변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없어서다. 사실 전용관 설립 추진은 소격동 시절부터 끊임없이 논의되었던 사항이다. 2007년에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와 서울시가 구체화하려했던 ‘다양성영화 복합상영관 건립’이 그 염원의 실체다. 그런데 정책담당자가 바뀌면서 불현 듯 수포로 돌아가 결국 좌초되고 말았고, 그 결과 서울아트시네마는 5번의 친구들 영화제와 창립 10년을 앞둔 시점에도 여전히 안정적인 공간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시네마테크의 고질적인 문제를 헤쳐 나가기 위해 시네마테크는 2010년 1월 15일 오후 5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이하 시네마테크 건립 추진위) 발족식과 기자회견을 가졌다. 정윤철 감독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는 추진위원장에 위촉된 이명세 감독과 친구들 영화제 대표인 박찬욱 감독을 비롯해 봉준호, 최동훈, 김지운, 윤제균, 류승완, 이경미 등 8명의 감독들과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가 동참했다. 이날 발족식은 기자들뿐만 아니라 일반관객들도 자유롭게 시네마테크에 관한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자리였고, 참석한 감독들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던 시네마테크에 관한 이야기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이 없는 것은 문화의 수치다 - 박찬욱

정윤철 감독: 서울시에는 시청이 있어야하고 기독교인들에게는 교회, 불교인들에게는 절이 필요하듯 영화인들에게는 시네마테크라는 곳이 필요하다.
최동훈 감독: 시네마테크에 와서 영화를 보는 게 영화를 만드는 만큼이나 재밌다는 걸 느꼈다. 단순 영화인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일반관객들이 다른 국가들과 한국영화의 클래식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기를 바란다.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영화관이지 않을까.
박찬욱 감독: 영화 공부 하던 때 교과서에 실리는 꼭 봐야 하는 영화들을 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감독이 되었고, 그렇게 영화를 만들다보니까 아시다시피 족보 없는 영화가 자꾸 만들어진다(웃음). 영화를 배우고 감독이 되려하는 후배들이 더 이상 그런 길을 밟지 않기에라도 이런 곳이 있어야한다. 만약 불법 다운로드를 일삼는 사람들이 ‘도대체 고전예술영화들은 어디서 보냐’라고 물었을 때 ‘시네마테크에서 그런 영화들을 볼 수 있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경제나 인구로 이런 어마어마한 도시인 서울에 시네마테크하나 유지하지 못한다면 이건 수치라고 생각한다.

시네마테크가 있는 부산이 부럽다 - 봉준호

이명세 감독: 말로만 듣던 시네마테크를 미국 ‘필름포럼’이라는 공간에서 만났다. 그로 인해 여태 찍었던 영화 속에서 나름의 체계적인 정리를 했고, 서울에 시네마테크가 생겼다고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기뻤다. 이런 귀중한 공간들이 영화인들이나 목말라했던 후배감독들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줘야 하는데 왜 이렇게 찾지 않는지 궁금했다. 이 보물창고를 유지해야 보물들이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봉준호 감독: 한 나라 영화산업 문화의 자존인 시네마테크가 몇 년마다 옮기면서 번듯한 보금자리 하나 없다는 게 부끄러운 일인 것 같다. 프랑스에 가볼 일이 있다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둘러보시기를 바란다. 입이 딱 벌어질 정도다. 참 부러웠다. 멀리가 아니더라도 부산에 가보시면 훌륭한 시설이 있는데 어쩌다가 없는 게 없는 서울은 이렇게 되었을까. 반성하고 있다.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도서관이다 - 윤제균

윤제균 감독:
일반적인 책들을 파는 서점이 있다. 그곳에는 베스트셀러 되는 작품과 이슈화되는 작품들이 놓여있다. 하지만 도서관이라는 곳도 책을 보유하고 있다. 철이 지났지만 보고 싶은 책이 있거나 서점에 팔지 않는 책들이 있을 때 그런 것들을 보관하는 도서관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쉽게 생각해서 서점과 도서관의 차이가 아닌가.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도서관이다.
김지운 감독: 90년도 초반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무작정 유럽에 갔다가 두 달 동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100편의 영화를 봤는데 보잘것없었던 영혼을 가졌던 사람이 좋은 영화를 통해 더 나빠지지는 않는 경험을 했던 것 같다(웃음). 그런 의미에서 시네마테크는 은총의 공간이고 인생의 질을 고민하게 만들었던 공부방이다.
류승완 감독: 최근에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영화가 사라지고 있다. 단관개봉시절에 한 편의 영화를 두 달 세 달보고 그런 시절은 오지 않는 거잖나. 역사에 기록되는 영화 뿐 아니라 불량식품처럼 취급되었던 영화도 보는 등 더 재밌게 즐기며 살아갈 수 있는 좋은 공간이 시네마테크다.
이경미 감독: 영화공부도 늦게 시작한 편이고 영화도 못 본 것이 많은데, 지금도 시네마테크를 통해서 재미있는 영화들을 본다는 생각을 하면 흥분이 된다. 잘 지켜졌으면 좋겠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이처럼 이날 발족식 참석자 모두는 하나같이 상기된 모습을 보이며 시네마테크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식이 굉장히 기념비적인 순간이라는 것을 강조하며, 시네마테크의 연혁을 간단히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1990년대 초반 비디오테크부터 출발해 영화사 100주년을 기념하며 전국시네마테크연합이 창립되었고, 2002년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가 사단법인 인가를 받으며 발족, 이후 서울아트시네마는 소격동 아트선재 공간을 대관해서 수많은 회고전과 특별전을 진행해왔다 한다. 2004년 재임대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서울아트시네마는 존폐위기를 맞지만, 2005년도에 안국동 시기를 마감하고 낙원 허리우드극장으로 옮겨오면서 서울아트시네마는 다시 전용관을 마련했다. 그 다음 해 1월 시네마테크 지원을 결의해주었던 다수의 영화감독들이 주축이 되어 처음으로 친구들 영화제가 열리고 그렇게 2010년 5주년의 해가 찾아온 것이다. 시네마테크 부산의 경우 창립때인 1999년부터 전용관으로서 역할을 다해왔지만, 서울은 안정적인 전용관 마련이 불투명한 상황이다. 김성욱 프로그래머는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창립 10주년이 머지않은 시점에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2008년 서울시와 영진위가 영화인들과 시네마테크의 요청으로 진행하다 정책결정자들이 바뀌면서 좌초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다시 나서야 한다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간단한 경과보고가 끝난 후, 추진위원장인 이명세 감독의 발족 취지문 낭독순서를 거쳐 시네마테크를 지지하는 감독들과 영화사 스폰지, 퍼시픽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참여한 필름 프린트 기증식이 이어졌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 봉준호 감독의 <마더> 등 기증자들은 자신의 흥행작 혹은 최근작 프린트를 시네마테크에 기증했다. 감독들에게는 분신인 프린트를 기증함으로 극장의 중요성과 영화박물관의 중요성을 상기시켰던 기증식은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최정운 대표의 손을 통해 소중하게 전달되었다.

극장 안을 가득 메운 기자들의 질의응답을 마지막으로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 발족식’은 막을 내렸다. 여러 감독들의 담소로 인해 편하고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발족식은 서울에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던 뜻 깊은 자리였다. 이명세 감독이 말하듯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녹아있는 소중한 ‘보물창고’이며 이 보물창고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시네마테크의 안정된 공간 즉 ‘시네마테크 전용관 건립’ 문제에 모든 힘을 실어주어야만 한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을 건립하기 위한 추진위원회가 스스로 발족식을 거행했듯이 시네마테크를 사랑하는 관객들과 영화인들의 관심 또한 시급하다. 정윤철 감독이 말하듯 교회와 절간은 신도들의 열정과 참여로 인해 세워지듯 시네마테크의 전용관 건립 또한 영화의 보물창고를 소중하게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관객운동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이다.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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