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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21 루키노 비스콘티의 세계 [1] - 비스콘티의 미학적 유산
  2. 2011.01.12 데카당스와 빛 (1)

[강연] 데카당스라는 비스콘티의 낙인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그동안 여러 차례 비스콘티의 영화세계에 들려줬던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다시 한 번 서울아트시네마를 방문했다. 그는 비스콘티의 유작 <순수한 사람들> 상영 후 이어진 강연에서, 비스콘티의 미학적 유산에 대해 풍부한 그림 자료들을 곁들이며 들려주었다.


한창호(영화평론가):
<순수한 사람들>이 비스콘티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의미에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마지막 미학적 유산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맡게 됐다. 먼저 <순수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한 후, 나중에 그림 자료들을 보면서 데카당스라는 비스콘티의 낙인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이 영화는 비스콘티가 만 70세가 좀 안 됐을 때 발표된 작품이다. 영화를 찍을 때 몸이 굉장히 안 좋았다. 결국 3월 정도에 세상을 뜨고 말았고, 5월에 칸에서 최초로 소개가 됐다. 칸이 많이 사랑했던 감독이었고 유럽 사람들에게 많이 사랑받던 감독이었으니, 많은 대접을 받는 분위기였다. 영화가 비관적이고 우울한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에서 흥행 8위를 했다. 죽기 직전까지 영화를 만들고 어느 정도 흥행을 유지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이 된다. 영화가 시작할 때 책을 넘기는 손은 비스콘티의 오른손이다. 이때 왼쪽 반신은 마비된 상태였다. 3년 전에 <루드비히>를 찍다가 무리해서 쓰려졌고 반신이 마비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 후에 재활을 통해 어느 정도 회복하여 <가족의 초상>을 만든 후, 불행하게도 다시 쓰러져서 이 영화는 휠체어에서 연출을 했다. 비스콘티는 1차 편집본을 보고 대단히 실망하여 대대적으로 수정을 하겠다고 말한 후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 이후 각본과 촬영감독이 합심하여 수정해서 만든 작품이 지금의 버전이다. 원작 소설의 작가 가브리엘 단누치오는 이탈리아 데카당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기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초인에 대한 세속적 욕망이 컸다. 보편적인 평범함에 대해 경멸이 있었고, 여성편력이 대단했다. 소설의 주제는 주로 쾌락과 죽음에 집중되어 있었다. 죄의식을 자극하거나 자기 파멸적인 쾌락과 자기 자신을 스스로 몰락시켜가는 죽음 등 금지의 선을 넘어서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범죄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그 당시 세기말적 유럽의 정후와 맞아서 그런지 몰라도 독자들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비스콘티 본인이 갖고 있는 데카당스, 부패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 같은 게 단누치오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영화로 만들게 된 것이다.

비스콘티는 툴리오라는 캐릭터에 매혹을 느꼈다. 대표적인 상층 부르주아 계급인데, 이 남자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받는 것이다. 자기만의 공간에 갇혀 있고, 누구도 자기를 심판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기적인 존재다. 그는 인간관계에서 자기가 일방적으로 버림받는 부분에 대해 견뎌내지 못하고 광기에 빠져서 아이를 죽이게 된다. 그 남자에 대해 비스콘티가 동병상련이나 자기 연민을 느낀 것 같다. 비스콘티 전공자들은, 이 작품 또한 상층 부르주아 남자를 통해 그 당시 이탈리아 상층부를 형성하는 사람들의 반사회성이나 윤리적인 부분을 데카당스라는 방법을 통해 표현했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에는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의 작품에 그런 사회적인 부분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코뮤니스트였던 비스콘티가 <센소>를 내놨을 때 사람들이 많이 실망했는데, 공격한 것도 옹호한 것도 좌파 비평가였다. 비스콘티를 옹호한 사람들은 루카치의 리얼리즘에 대한 옹호자들이었다. 루카치의 리얼리즘은 외관과는 상관없이 세상에 대한 세밀한 묘사와 진실을 담고 있다면 오히려 더 리얼리즘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그들이 사례로 든 것이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이다. <센소>가 루카치적인 리얼리즘의 영화적인 모범이며, 제대로 된 리얼리즘의 사례를 보여준 것이 비스콘티라는 주장이다. 비스콘티의 <베니스에서의 죽음> 이후의 영화들에는 패배주의와 개인주의자들이 체념 등이 드러나 있으며 필멸의 존재가 피할 수 없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대한 성찰이 있다. 데카당스의 정수를 보여준다. 리얼리즘이나 사회적인 맥락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동의하지 않는다.

<순수한 사람들>을 볼 때마다 '인형의 집'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게 장식된 공간과 의상, 마리오네트처럼 의례화 된 행동만 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어떻게 보면 반쯤 죽은 존재들이다.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느낌을 준다. 활기가 없고 느릿느릿하게 움직인다. 데카당스의 멜로드라마 표현법이 더 멜랑콜리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프린트 상태가 좀 안 좋고 컬러가 탈색돼 있어서 좀 아쉬웠다. 덧붙이자면 툴리오를 연기한 남자배우 지안카를로 지안니니는 당시에 코미디 배우였다. 능청스럽고 여성스럽게 빈대 붙는 남자 역할을 굉장히 잘했다. 여기에서 단누치오와 병든 비스콘티의 분신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줄리아나를 연기한 여자배우 로라 안토넬리는 70년대에 주로 벗는 역할을 했었다. 비스콘티는 육체적 외양에 대한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다.
비스콘티가 데카당스 멜로드라마를 표현하는 방식은 대단히 회화적이다. 그림자료를 보면서 비스콘티의 회화적으로 표현된 데카당스의 멜로드라마 미학에 대해 알아보자. 비스콘티는 데카당스의 가장 중요한 테마인 죽음을 회화적인 도상을 통해 표현한다. <강박관념>의 남자주인공 지노는 대단히 어두운 집 내부에서 살인에 대한 죄의식 때문에 유령에 대한 공포감을 가지고 히스테릭하게 나온다. 어둠이라는 자극을 도상적으로 잘 보여줬다. 남자가 불안감에 빠져있으니 여자주인공 죠반나가 남자를 달래기 위해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파티를 한다. 파티 준비를 할 때, 멕베스와 멕베스 부인이 살인을 공모하는 것처럼, 직접적으로 사자를 상징하는 여자가 낫을 가지고 등장한다. 데카당스 시절의 독일권 화가인 뵈클린의 <페스트>(1898)의 그림과 유사하다. 공포의 대상으로서의 죽음을 표현한 그림이다. 데카당스라는 테마가 미술을 통해 표현됐다. 또한 죠반나가 영화의 도입부에서 지노를 만나자마자 사랑을 나눈 후 돈만 많은 남자랑 사는 것에 대해 의자에 앉에 몸을 비비 꼬면서 한탄하는 장면은 모딜리아니의 <장 에뷔테른>(1918)을 참조했다. 눈동자가 없는, 데스마스크. 체념, 자극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를 표현했다.


<센소>는 그림자, 육신이 없는 것, 유령에 대한 영화다. 오페라 시퀀스가 지나고 나서 베니스의 밤에 데이트를 하는 장면에서, "나를 당신의 그림자로 받아주면 되지 않겠느냐" 라는 남자의 대사가 나온다. 농담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설명해주는 부분이다. 여자는 발이 안 보이고, 남자는 흰 망토를 두르고 있어서 두 사람 모두 유령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이 영화는 죽음이라는 운명에 다가가 있는 모습을 밤에 길거리를 방황하는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거대한 무덤 속을 걷고 있는 두 그림자처럼 영화가 시작된다. 이 때부터 데카당스라는 테마가 비스콘티의 영화에 들어온 것이라고 본다. <레오파드>는 죽음과 소녀의 테마를 다룬다. 영화 마지막의 가장 아름다운 춤 장면에서, 비스콘티는 죽음과 소녀라는 서양 미술사의 오래된 테마를 변주한다. 검은 옷을 입은 버트 랭커스터가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보이고,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순결한 소녀를 상징하는 것처럼 대조시켜놨다. 한스 발둥의 <죽음과 소녀>(1517)의 메멘토 모리, 비어츠의 <죽음과 소녀>(1848)를 참조했다. 낭만주의 시기에는 죽음이 센슈얼하게 그려진다. 뭉크의 <죽음과 소녀>(1893)에서는 소녀가 죽음을 끌어안고 적극적으로 사랑의 행위를 표현한다. 죽음을 사랑의 대상으로, 죽음에 더 방점이 찍힌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레오파드>에서는 랭커스터에 방점이 있으며, 죽음을 상징하는 그 남자가 더 아름답게 나온다.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는 질병의 멜랑콜리와 염을 다룬다. 마지막 시퀀스 바로 전에 아센바흐가 이발소에서 화장을 하고 거울을 보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다음날 그 복장 그대로 해변에 나갔다가 타치오를 보며 죽음을 맞이하는데, 이 화장은 자신을 꾸미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죽은 자가 하는 의례로서의 염과 동일한 기능을 한다. 또한 이 장면에서는 말러의 교양곡 5번 2악장 아다지에토 장송곡이 나온다. <루드비히>는 밤의 찬가다. 푸른색의 영화다. 비스콘티는 컬러에 대한 해석이 참 섬세한 사람이다. 루드비히라는 달의 왕에 관련된 이야기다. 비스콘티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루드비히는 예술가로 태어나야할 사람이 왕으로 태어난 것이다. 첫사랑에의 실패를 위무하기 위해 바그너의 음악에 빠지며, 중간에 동성애자로 변하는 상황을 운명의 저주처럼 받아들인다. 그런 부분에 비스콘티의 삶이 들어가 있다. 병든 사람의 정서가 잘 드러나 있다. 루드비히가 자기 왕궁 안에 인조 호수를 만들어 놓고 백조의 왕자처럼 거기에서 놀고 있는 장면이 있다. 건물 내부의 컴컴한 물이 있는 공간은 일종의 자궁이다. 차라리 엄마 뱃속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 본능적으로 죽음으로 돌아가려는 심경이 드러난다. 비통함과 우울함을 증폭시키는 장면이다. <센소>를 만들 때 주변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판을 받을 것을 스스로 알았을 텐데, 그런 점을 이겨낸 것은 멋진 행동으로 생각된다. 자신의 천성과, 그것이 보편적인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것이다. 병들고 죽는 것에 대한 천성을 계속해서 표현해 낸 것에서,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낭만주의 시기의 예술가의 초상에 맞도록 자기 자신이 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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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의 클래식 영화사 강좌 [4]

서울아트시네마의 '한겨울의 클래식' 기획전 기간에 영화에 대한 즐거움을 한층 더할 수 있도록 '영화, 역사, 풍경'을 테마로 한 영화사 강좌가 마련되었다. 지난 1월 9일,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 상영 후에는 그 마지막 시간으로 한창호 영화평론가가 "데카당스와 빛"이라는 제목으로 강좌를 맡았다. 그는 <레오파드>에서 드러나는 오페라에서 가져온 4막 구성을 따라, 공간과 미장센을 중심으로 풀어내면서, 비스콘티의 데카당스 미학에 대해 들려주었다.


한창호(영화평론가): 2년 전에 비스콘티의 <루드비히>와 관련된 강좌 이후, 비스콘티로 여러분들과 만나는 두 번째 시간이다. 오늘은 "데카당스와 빛"이란 제목으로 준비했다.
영화는 이탈리아 통일 운동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 당시 이탈리아는 대부분 왕정이었는데,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에 있는 사보이 왕가를 중심으로, 모든 왕국들이 사보이 왕가에게 충성 맹세를 하는 흡수 통일이 시작됐다. '비토리오 엠마누엘레'라는 왕과 '카부르'라는 재상, 직접 전투를 벌이는 '주세페 가리발디' 세 사람이 그 중심이었다. 그들은 통일의 필요성에 대한 큰 대의에는 합의를 했지만, 어떻게 통일하느냐에 있어서는 생각하는 방식이 달랐다. 사보이 왕가는 입헌군주제를 원했다. 귀족과 부르주아가 서로 합의하여 권력을 분점하려 한 것이다. 반면, 가리발디는 국민주권의 공화국 건설을 하려 했다. 그런데, 가리발디가 국민적 영웅으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왕가 입장에서 그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사람이 된다. 귀족들은 가리발디에게 밀려날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에 먼저 가리발디를 숙청한다. 영화의 끝부분이 바로 그 부분이다. 그것이 현재 이탈리아의 출발이다. 이탈리아는 비록 통일은 했지만, 그것은 처음에 목표했던 '혁명'이라는 단어를 쓰기엔 미흡한 상태로, 정치적 타협을 한 상태로 이뤄졌다. <레오파드>의 주인공 돈 파브리치오(버트 랭카스터)는 구시대에 속한 사람의 본능처럼 가리발디를 적대한다. 반면, 조카인 탄크레디(알렝 들롱)는 세상의 변화를 알고 있고, 가리발디에 자신의 미래를 건다. 상식적으로 가리발디는 이탈리아의 국민적 영웅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레오파드>에서 가리발디는 공포를 주는 대상이자 무뢰한처럼 나온다. 이는 주인공인 귀족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이다.

<레오파드>부터 비스콘티가 데카당스의 미학을 시작한다. 비스콘티는 1953년에 만든 <센소>에서 자신의 어두운 부분을 처음 드러내며, <레오파드>부터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죽음이 된다. 비스콘티는 유명한 오페라 연출가이기도 한데, 점점 대 서사를 지닌 멜로드라마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은 오페라의 영향일 것이다. 그는 <레오파드>부터 본격적으로 오페라의 4막 형식을 영화에 가져온다. 1막에서 큰 줄거리를 던져놓고, 2막은 아다지오처럼 살짝 내려갔다가, 3막에서 다시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해, 마지막 4막에서 종결되는 오페라의 전형적 구성이다. 이에 따라, 공간 구성도 명백하게 분리돼 있다.
1막의 경우, 황금빛 저택이 주위에 아무 것도 없이 홀로 서 있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들이 다들 검정색 옷을 입고 성직자의 안내를 따라 가족의례를 하고 있다. 곧 그 평화가 깨지고 밖에서 소음이 들리더니, 군인의 시체가 발견됐다고 한다. 이는 그 군인이 속한 구질서의 종말을 뜻하며, 돈 파브리치오의 운명을 암시한다. 2막에서는 돈 파브리치오 일가가 팔레르모에서 돈 나푸가타까지 거의 대각선으로 시칠리 섬을 가로질러 피난을 간다. 그 과정에서 사막 같은 죽은 공간이 펼쳐진다. 시칠리아의 색깔은 무엇인가라고 했을 때, 비스콘티는 그 메마른 색이라고 잡은 것이다. 2막 부분은 분위기가 소강상태로 변한다. 가족들이 돈나푸가타의 교회에 도착하고, 교회에 나란히 앉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평 트래킹 숏은 명백하고 노골적인 죽음의 암시다. 곧 밀려나는 세대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 때 나오는 오르간 음악은 <라 트라비아타>의 격정적인 아리아이다. 즉 대단히 세속적인 음악을 파이프 오르간으로 연주한 것이다. 또한 1막에서는 커튼을 살랑살랑 거리게 만들던 바람이 2막에서는 매우 거센 모래 바람이 된다.

3막은 탄크레디가 비오는 날 돌아오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3막에서는 안젤리카(클라우디오 카르디날레)의 집안이 상승하는데, 안젤리카의 행동이 그것을 잘 보여준다. 처음 안젤리카가 그 집안에 들어올 때는 심호흡을 하고 들어오는데, 3막의 시작에서는 별다른 예의를 차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들어와서 탄크레디와 포옹하고 키스를 나누는 것이다. 영화는 복도에서 키스하는 장면에서 그 성의 폐허 같은 공간으로 이동한다. 산 사람이 있을 만한 공간과는 거리가 멀다. 먼지도 많으며, 쥐가 많다고 하지만 심지어 쥐도 없을 것 같은, 살아있는 생명이 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남녀가 사랑을 한다. 잉태될 수 없는 사랑을 암시하는 비스콘티의 수법으로, 죽은 공간에 인물을 배치하여, 그 사랑이 시작되기도 전에 결실을 맺지 못하리라는 표현이다. 3막부터 데카당스에 관련된 테마 이야기를 많이 한다. 토리노에서 온 정치인이 돈 파브리치오에게 상원 의원을 해달라고 부탁할 때, 돈 파브리치오의 대답은 "시칠리아인들은 늘 피곤하다. 우리는 계속해서 자고 싶다. 시칠리아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불멸이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불멸이라는 것은 죽음이다. 그렇게 죽음을 원한다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는 정치인을 배웅하면서, "우리는 표범와 사자였는데, 지금은 하이에나와 양들의 세상이 우리를 대체했다."라고 말한다. 돈 파브리치오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과 시스템이 바뀐다면 사실상 자신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를 새로운 질서에 적응시키기 위해서 노력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마지막 4막은 45분 동안 이어지는 무도회 장면이다.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가 185분 쯤 되는데, 오페라처럼 시간도 배분하여 각 막이 45분 정도가 된다. 여기서는 중요한 춤이 세 번 등장한다. 춤추는 장면 이전에 비스콘티가 유머러스한 장면으로 자기의 코뮤니스트적인 입장을 보여준다. 4막이 시작되면서 나오는, 외부에서 왈츠가 들려오는데, 농부들은 노동을 하는 숏이 있다. 독점하고 있는 계층만 바뀔 뿐이지 혁명이라는 건 없으며, 농부들은 여전히 땅을 파고 끊임없이 노동하며, 착취당하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춤을 추는 첫 번째 커플은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다. 이들은 귀족과 부르주아의 결합으로,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갈 자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소녀들이 떠드는 장면을 보며 현기증을 느낀다. 사회적인 죽음은 이미 받아들였고, 머지않아 물리적 죽음도 올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두 번째 커플은 그 무도회를 주최한 공주와 가리발디를 패배시킨 대령이다. 승자들의 춤이며 정치적인 춤이다. 이때 돈 파브리치오는 집주인의 서재에 들어가 프랑스 화가의 그림을 보고 있다. 거기에는 아버지의 임종을 맞는 가족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그 장소로 들어오던 탄크레디는 "삼촌, 지금 죽음에게 구애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돈 파브리치오는 "나의 죽음도 저런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시트가 더 깨끗하고 자식들의 복장도 더 단정하면 좋겠다."라고 대답한다.

세 번째가 돈 파브리치오와 안젤리카의 춤이다. 3분 동안의 가장 중요한 춤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버트 랭커스터가 처음 캐스팅 됐을 때, 비스콘티는 대단히 화를 냈다고 한다. 비스콘티는 랭커스터에게 춤 선생을 붙여 유럽의 사교춤을 가르치게 한 후, 귀족들이 인사하는 법을 가르쳐 줬다. 1주일 후에 왈츠 스텝을 보러 온 비스콘티는 랭커스터가 귀족식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큰 모욕을 주었다고 한다. 랭커스터도 화가 나 짐을 싸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 사람하고 일을 해야겠다는 어떤 무언의 소리가 들리더라는 거다. 내가 볼 때는 랭커스터가 대인이었다. 비스콘티의 질책을 예술적인 야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 이후로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친구였다. 세 번째 춤은 4막의 피날레이자 이 극 전체의 피날레이다. 하얀 옷을 입은 소녀와 검은 옷을 입은 나이든 남자의 춤이다. 소녀가 상징하는 사랑과 돈 파브리치오가 상징하는 죽음이 동시에 만나면서, 죽음과 순결한 사랑이 더 강조되는 대조법을 쓴 장면이다. 이 장면이 끝난 후 돈 파브리치오는 죽을 것이라는 걸, 우리 모두는 안다. 밤새도록 벌어진 파티가 끝나고 돌아가는 에필로그에서, 탄크레디와 안젤리카는 마차를 타고 가며, 돈 파브리치오는 걸어간다. 마차를 타고 갈 때 들리는 소리는 총소리이며, 파브리치오가 홀로 길을 걸어갈 때는 교회 종소리가 들린다. 종소리는 죽음을 앞둔 돈 파브리치오의 영혼은 위로하는 일종의 진혼처럼 들린다. 앞을 쳐다보니 좁고 깊은 검은 색 골목이 눈  앞에 펼쳐지고, 그는 어깨를 당당히 펴고 걸어 들어간다. 자신의 죽음을 맞이하러 들어가는 것이다. 랭커스터가 워낙 연기를 잘했다. 사회적으로도 자신의 죽음을 인지하는 남자가 물리적으로도 죽게 되는 데 이르며, 영화는 끝이 난다. 일종의 의례로서의 춤을 전개시키는 이러한 형식은 다른 영화들에게도 큰 영향을 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대부>인데, 결혼식을 통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보여준 다음에 영화가 전개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공간과 소품은 세트디자인이 아니라 모두 진짜다. 시칠리아의 귀족에게 빌린 실제 성이다. 살레모라는 지역에서 매일 꽃을 공수했으며, 초는 매 시간마다 갈았다. 춤추는 홀 바로 옆방에 부엌을 설치해서 실제로 음식을 만들어 먹게 했다고 한다. 조명을 많이 쓰지 않고 거의 양초로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중에 스탠리 큐브릭이 <배리 린든>에서 양초를 활용한다. 귀족들의 파티를 재현했다기보다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만들어 낸 것이다. 비스콘티는 같은 영화는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 사실 왕족 내부자가 그린 귀족들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이다. 비스콘티 이외에, 극소수 계급을 대표하는 내부자의 긍정적인 의미로서의 권위를 잘 표현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가 유일하지 않을까 한다. (정리: 박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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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관객 2011.01.17 15: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에는 이 분 강의를 꼭 들어야겠습니다. 정리해놓으신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