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김동주 감독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

지난 4월 2일, <빗자루, 금붕어 되다>의 상영 후 영화를 연출한 김동주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이어졌다. 이날 김동주 감독은 영화만큼이나 진지한 자세로, 영화를 연출할 때 했던 스타일적 고민들과 감독으로서의 소신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런 영화는 설명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고, 본 사람들이 느끼는 바에 따라 영화가 달리 이해될 것 같기도 하다. 굉장히 독특한 영화다. 서로 다른 것들이 결합되어 있는 방식이 흥미롭다.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처럼 하나가 다른 하나를 치환한다던가, 이질적인 것들이 결합하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 영화를 구상할 때 어떤 지점을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김동주(영화감독): 고등학교 동기가 고시원을 오픈했다고 해서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사오년 전 일이다. 신림동 지역은 아니고 도심지에 있는 곳이었다. 고시원이라는 곳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보고 느끼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시원에 대한 영화를 하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는 고시원이 매우 많고,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살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사회의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그리고 싶었다. 공간이 주는 어떤 느낌, 영감 같은 게 있었다. 스타일 측면에서 욕심이 있어서, 공간에 대해서 실험적인 시도를 해보려 했다.

김성욱:
영화감독 중에는 영화 속에 카메라가 비추는 세계만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과 외부적인 세계의 여지를 남겨놓는 감독들이 있다. 김동주 감독의 경우는 스타일적으로만 보면 전자인 것 같다. 고정된 카메라에 의해서만 비춰지고 화면 안의 세계만이 존재하며, 그 바깥의 영역이 어떻게 존재할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고시원이라는 닫힌 공간의 특성도 있지만, 카메라가 공간을 비추는 방식 자체가 닫힌 체계를 가지고 있다.
김동주: 일단은 주인공이 살아가는 일상의 범위가 굉장히 단순한 것에 착상을 맞췄다. 사람이 극도로 궁핍하다 보면 행동반경이 굉장히 단조롭고 한계가 있지 않나. 시나리오를 쓸 때 고시원에서 잠깐 살아봤는데, 거기 분들하고 이야기하면서 그런 걸 느꼈다. 이 사람의 일상의 범위를 공간적으로 함축하고 단순화해서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핸드헬드를 사용해서 공간을 자유롭고 열린 상태로 표현할 수도 있었지만, 이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모든 곳에 초점이 맞는 공간의 느낌과 편집되지 않은 실제시간을 보여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카메라가 고정되어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것은 끝까지 그 스타일대로 해보자는 원칙을 정해서 밀고 나가본 것이다. 카메라 앵글을 아이레벨 보다는 약간 틀었는데, 이런 느낌이 뭔가 좀 신선하고 주관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면서 관객들로 하여금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김성욱:
카메라가 고정되어 저 멀리 있는 배경까지 왜곡된 화면에 담겨지는데, 소리의 거리감은 거의 없다. 모니터를 흥정하는 장면을 보면 인물들이 후경으로 움직였지만, 소리의 크기는 차이가 없다.
김동주: 소리도 거리에 따라 조절할 수도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이 영화의 기본적인 내러티브 정보를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선택을 했다. 중요한 장면이 시각적으로 멀리 있는 것만도 모호한데 소리까지 작으면 너무 정보가 없고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소한의 정보를 주기 위해서 소리를 잘 들리도록 담아냈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 다른 장면들은 컷과 컷이 직접 연결되는데, 여자를 골목에서 벽돌로 때리는 순간과 산에서 시체를 묻는 장면에서는 페이드 아웃을 사용했다. 그리고 살인 이전과 이후의 표현 방식이 달라졌다는 느낌이 든다. 여자를 죽인 후의 에피소드는 환상 같기도 하다.
김동주: 살인사건까지는 우리가 보는 일반적인 영화의 리듬을 따라서 전개가 되는데, 살인사건 이후는 갑자기 시간적 비약을 하는 등의 변화를 줬다. 그 다음부터는 주인공의 내면과 심리, 욕망에 더 무게를 두고 싶었다. 카메라도 변화를 주는 게 어떨까도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면 영화가 너무 구분되는 것 같아 그냥 카메라랑 시점이나 숏의 느낌은 그대로 가면서 인물의 내면으로 좀 들어가 보자고 했다.

관객1: 장필은 사회 속에 매몰된 수동적인 사람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능동적이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히 얻은 돈으로 여자를 사서 성욕을 해결한다거나. 자위한 정액을 물고기에게 준다거나.
김동주: 사실 장필은 수동적으로 돈 없이 사는 사람이며, 그 주인공을 쫒아가 보자는 설정이다. 우발적인 살인이라는 게 흔히 일어나는 사건은 아니다. 그것은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그 이후에 굉장히 그 사람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생각으로 설정한 것이다. 사실적인 것 보단 좀 더 독특하고 일관성에서 벗어나는 심리적인 측면에 집중하고자 했다.

관객2:
장필은 초반부터 계속 약탈을 당하는 입장이다. 모니터 사기를 당하는 등 막다른 길목까지 갔을 때,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의도적으로 약탈한다. 단순히 우발적인 적의에 의해서만 했다기보다는 그 여자의 지갑 속의 돈도 작용했다고 봤다. 그 붉은 지갑이 이후로도 모텔에서 여성이 볼 때와 차에서 몰래 훔칠 때 다시 나온다. 그리고 마지막에 같은 골목에서 다시 그 지갑을 약탈당한다. 그 지갑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셨는지?
김동주: 사실은 그 보다 앞에서 목각을 사는 여자 장면에서도 그 지갑을 썼다. 여성도 같은 인물로 하고. 이를 통해 지갑이 흘러가는 순환의 구조, 변해가는 것들을 보여주려 했다. 정상적으로 인간적인 측면이 배제된 거래 관계의 지갑과 그 지갑이 스스로 뺏고 뺏기는 과정, 다양한 돈의 흐름을 그 지갑을 통해서 좀 인상적으로 보여지길 바랐다. 여성 캐릭터들을 같은 배우가 맡았는데, 그 여성이 다양한 역할을 함으로 인해 영화에 색다른 측면이 드러날 수도 있다 생각했다.

김성욱: 있는 걸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영화라기보다는, 어떤 예술 작가의 구상에 따라서 배치된 작품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이 남자에게 모든 여자는 결국 하나인 게 아닌가 싶다. 주관적인 느낌이지만, 카메라에 의해 비춰지는 것들은 모두 현실성을 갖는다. 영화 장면이 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개별적인 장면들이 서로 이질적인 시적 언어로 치환되고 대치되고, 반복과 대구와 치환의 느낌이 있다. 시나리오 단계에서도 이런 식의 구성과 설정을 하셨는지, 촬영을 하면서 변경된 부분이 있는지?
김동주: 90% 이상은 시나리오 단계에서 결정했다. 미리 설정하지 않았던 것은 여성과 골목을 동일 인물과 공간으로 하지 않았던 정도다. 이 영화에는 찍어 놓고 안 쓴 컷이 하나 밖에 없다. 편집도 거의 할 일이 없이 그냥 붙여놓으면 끝이었다. 아주 효율적으로 작업했다. 워낙 저예산이기도 했고 직접 제작도 하다보니까 효율적이고 치밀하게 하기 위해 미리 생각을 많이 했다.

관객3:
길거리에서 목각 공예품을 팔다가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장필 안에서 약간의 파토스가 생겨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여성에게 품었던 파토스가 다른 여성에게 분출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다시 모니터가 등장하는 장면하고, 여성에게 화장을 하는 장면들이, 살인 사건을 꿈이나 환상처럼 만들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김동주: 영화를 많이 보신 관객인 거 같다. 창작은 이론과 논리를 가지고 끼워 맞출 수가 없는 부분이 많다. 창작자들이 영감을 떠올리기 위해 많은 경험도 하고 고민도 하는데, 사실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느낌들,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표현된 것이다. 특정 의도대로 해석되기를 바라는 부분도 있지만, 세상에는 실제로 모호한 것들이 많고 무의식적으로 나온 부분들도 많기 때문에, 관객이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인다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영화가 기본적으로는 사실적이지만, 매우 비현실적인 부분도 있어서 애매한 느낌을 준다. 상징적인 느낌 같기도 하고. 돈의 순환이 강탈이든 대가에 따른 지불이든,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어진다면, 하나의 사건이 개별적으로 머물 수 없고 모두 연루되는 것인데, 그것이 갖는 사회적 공범의식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반면 가장 인간적인 접촉을 이뤄내는 것은 TV, 냉장고 산다고 돌아다니는 할아버지와 장필의 유대가 아니었나 싶다. 장필의 안위를 걱정하듯 고시원 앞을 내다보다 가는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
김동주: 장필의 인간적인 면도 보이고 싶었다. 폐지도 모아보고 모니터도 가져가고 어떤 미안한 마음도 있는 거다. 윤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었다. 영화가 어둡고 싸늘한 구석이 있지만, 그래도 소극적이라도 희망이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김성욱: 이 영화는 다루는 내용과 표현하는 방식에 있어 독특한 결합을 이뤄내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면의 수도 제한되어 있는데, 각각의 개별적 장면이 밀도 있고 정확하게 배치돼 있어서 영화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오히려 더 어려워진다. 앞으로의 작업에 있어서도 이런 스타일들이 지속이 될 지, 내용과 주제에 따라 다른 스타일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동주: 이야기를 잘 풀어가기 위해 카메라와 모든 소도구 음향 등이 구축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영상 고유의 언어 자체에 대해 흥미를 갖고 집중을 하고자 한다. 재밌는 이야기도 하고 싶긴 하지만, 그 보다는 우리 안의 고민, 인간적인 문제점,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다. (정리: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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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만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를 주목해서 볼 것을 주문했다. 특히 “장편 데뷔작 중에서 발견의 희열을 제공하는 작품이 많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양익준의 <똥파리>, 손영성의 <약탈자들>, 백승빈의 <장례식의 멤버>, 노경태의 <허수아비들의 땅> 등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두드러진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부산에서도 이 프로그래머는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한국영화 중에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많다.” 홍상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찌질한 연애담에 우디 알렌의 입담이 더해진 것 같은 소상민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 형부와 처제의 금지된 사랑을 다양한 회화적 묘사를 통해 풍요롭게 만드는 임우성의 <채식주의자>,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카페 느와르> 등 이들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종류와 시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주류의 한국영화가 철저히 계산된 연출과 규모의 경제학 속에 고만고만해진 사이, 고전적인 연출에 안주하지 않는 창의적인 영화문법, 사회가 처한 현실에 한눈팔지 않는 의식적인 이야기, 주류에 손 벌리지 않고(?) 자신만의 제작방식으로 개봉에 이르는 전략까지, 눈길을 끄는 한국영화의 목록은 주류 바깥에서 신투차세대(新偸次世代), 즉 장편 데뷔작을 발표한 ‘신진작가’들에 의해 다시 쓰이는 중이다.

참신한 재능이 일군 낯선 이야기

2010년과 2011년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 중 <빗자루, 금붕어 되다> <이파네마 소년>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혜화, 동> <파수꾼> 등등,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의 영화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주류에서였다면 이중 상당수의 영화가 아마도 원 제목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극중 이야기를 쉽게 함축하는 제목이야말로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주류영화계에 팽배한 까닭이다. 바꿔 말해, 대부분의 주류영화가 예상 가능한 이야기 속에 연출을 운용하는 것에 반해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가늠하기 힘든 제목과 설정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펼쳐가며 관객의 흥미를 돋운다.
예컨대,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신림동 고시원을 무대로 주인공 장필(유순웅)의 일상을 리얼한 필체로 묘사한다. 얼핏 제목과 극중 이야기가 전혀 연관되지 않지만 김동주의 말에 따르면, “빗자루는 고시원 총무의 상징이다. 빗자루로 늘 복도를 쓸기 때문에 장필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금붕어는 그가 키우는 생명체다. 어항에 담겨있고, 갇혀 있다. 그 두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지만 고시원 속에 갇힌 장필의 처지는 초현실에 육박할 만큼 고난에 처한 상황임을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사실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보여주는 배경과 말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렇기에 또한 외면 받는 현실이다. 그것은 곧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류영화계가 꺼리는 소재로 작용해왔다. 하여 2010년과 2011년의 신투차세대들이 보여주는 영화는 무심히 지나칠 뿐 아니라 마주보기 꺼려하는 현실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참신한 종류의 재능이라 할만하다. 지금 한창 호평을 받고 있는 민용근의 <혜화, 동>은 18세에 낳은 아이가 살아있는지 모른 채 생활해온 23세의 ‘혜화’(유다인)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린 나이에 낳았다는 이유로 미혼모인 그녀가 ‘아이’(童) 때문에 이 땅에서 겪을 법한 고통과 절망을 ‘겨울’(冬)동안의 사랑이야기로 풀어간다. (이 작품은 또한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요소를 취함으로써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붙들어 맨다.) 2010년의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평가받는 장철수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여성을 착취하는 폭력적인 시스템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방관을 비판한다. 동시에 이를 향한 복남(서영희)의 잔혹한 복수를 하이라이트처럼 전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서술의 시도내지는 장르의 부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화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 홍영근, 장윤정, 오영두, 류훈의 <이웃집 좀비>, 이응일의 <불청객> 등이 속할 텐데 비슷한 구석 하나 없이 그들 각자의 장르와 이야기를 택하고 있어 흥미롭다.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 백승화가 연출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밴드를 다룬 음악다큐멘터리다. 흔히 음악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연상되는 공연 영상 대신 극중 밴드 멤버들의 일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에 더욱 집중한다.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은 2000년대 초반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붐을 이뤘다가 빠르게 관객의 외면을 받은 이후 맥이 끊긴 한국 청춘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당대 청소년의 심리를 반영한 영화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태훈(서준영)과 미정(이민지)의 사랑과 헤어짐을 묘사하되 감독의 섣부른 의견 개입 없이 방황하는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청춘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웃집 좀비>와 <불청객>은 요 몇 년 새 주류영화의 한 축이 된 장르물을 따른다. 다르다면, 두 영화는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정서와 괴리됐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시당했던 좀비물과 SF를 과감히 차용했다. 물론 <이웃집 좀비>의 경우,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좀비물은 아니다. 다만 이전의 작품들이 장르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이웃집 좀비>는 장르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녹아내며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소수자로써 고통 받고 차별받는 우리 이웃의 ‘좀비’를 다루며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날카롭게 세운다는 점에서 재미와 메시지 사이의 균형 잡힌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낯선 이야기에 적합한 화용론

 

<불청객>은 <이웃집 좀비>와 장르적 감성을 공유하지만 화용론 자체는 완전히 다른 영화에 속한다. 은하계 저 너머 안드로메다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응일의 B급감수성과 막장(?)상상력은 그동안 경직된 한국의 토양 위에서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다. 그러니까 <불청객>의 출현은 <고무인간의 최후>와 같은 유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일종의 사건에 다름 아니다. 자취방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하던 진식(김진식)과 그의 동생들이 외계로 납치된 후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불청객>은 빈약한 제작환경을 의도적인 조잡함과 유치찬란함으로 극복한 말 그대로의 독립영화다. ‘고작’ 2천만 원의 제작비와 ‘무려’ 5년의 제작기간이 대변하듯 상영시간 67분에 불과한 <불청객>은 별다른 투자와 지원 없는 각개전투 식 영화 만들기의 지난함과 고통을 능히 짐작케 한다.
그런 감독 이하 배우, 스태프들의 노고 여하에 상관없이 <불청객>에는 험난한 현실을 유희로써 극복하는 지금 세대의 특징적인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호환마마’ 운운하는 과거 비디오 영상물과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칩니다.’라는 문구만 보더라도 <불청객>의 감성이 맞닿아있는 지점은 분명하다. 청년백수가 양산되는 작금의 현실을 비관으로 일관하기보다 가벼운 유머의 소재삼아 툭툭 털고 일어서자는 젊은 세대만의 일종의 결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대가 인터넷과 게임으로 세대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공유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래서 종합예술매체로써 영화 역시 게임과 인터넷에 능한 감독들에 의해 기존의 화용론과 안녕을 고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미 2009년 장르의 경계가 모호했던 중편 <남매의 방>으로 새로운 영상언어의 출현을 알렸던 조성희는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에서도 예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모든 기기가 동작을 멈춘 시골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녀를 내세운 이 영화에서 조성희는 조이스틱을 다루는 것처럼 인물을 조종하고 단계를 넘어가듯 이야기를 작동시킨다. 게임과 다르다면, <짐승의 끝>은 유희를 목적으로 삼은 영화가 아니다. 단지 게임의 작동 방식을 극에 끌어들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들어있다. 그가 보건데, 이 세상은 사공이 많은 배가 아니다. 소수의 절대자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되고 은밀하게 운영되는 게임과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 <짐승의 끝>은 게이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 ‘게임 세대’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조성희와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생인 윤성현의 <파수꾼>은 올 상반기 한국영화 화제작이라고 불릴 만큼 정의하기 힘든 청춘의 모순된 이미지를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형태로 구현한다. 특히 한 고등학생의 자살 이유를 파헤치는, 어찌 보면 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윤성현은 인물별, 시기별로 장면을 교차하며 복잡한 양태 속에 가려진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처럼 진실은 개인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라서 <파수꾼>의 교차 서술은 극중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의 파장을 잡아내는 가장 적합한 이야기 형태라 할만하다.
이처럼 신인들의 영화에서 유독 두드러진 화용론의 운용은 한편으론 주류영화의 도식화된 서술법에 대한 반발로도 읽힌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들 영화에게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감지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서 결국 어떻게 말하는지 그 형식이 중요하게 영화의 만듦새를 결정하는 법인데 주류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용을 통해 재생산하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 좀 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는 작품들의 경우, 해당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끌어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관객의 취향과 타협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개성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부와 음악 하는 중학생 아들의 희망과 용기를 다룬 <레인보우>는 소위 클리셰(Cliché)라고 부르는 뻔한 장면이나 기승전결의 서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야기의 자유로움을 획득한 경우다. 정호현의 <쿠바의 연인>은 원래 쿠바의 사회주의와 춤과 노래가 궁금했던 감독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구성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연하의 남자친구 오리엘비스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면서 갑작스럽게 한국여자와 쿠바남자의 결합에 따른 사회적 편견에 대항한 인생 도전기로 개비되었다. 만약 주류에서 기획된 작품이었다면 촬영 중간 영화의 콘셉트가 바뀐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애초 영화에 대한 계획 없이 달랑 카메라만 들고 쿠바에 왔던 정호현은 무서운 흡수력으로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변수와 일탈을 끌어들여 다큐멘터리 특유의 재미로 치환, 희귀한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배경을 살펴본 바, 그 특징을 일러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 듯싶다. 과거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신(新)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박진성의 <마녀의 관>, 김기훈의 <이파네마 소년>, 김종관의 <조금만 더 가까이>가 보여주는 영화적 전략도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배경으로 뒷받침된 결과다. 러시아 작가 고골의 <비이 VIY>를 각색한 <마녀의 관>은 원작을 가진 여느 영화와 달리 세 가지 에피소드 구성을 통해 다채로운 변형을 가한다. 배우 오디션 현장이 배경인 1막 ‘이상한 여자’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연극무대를 끌어들인 2막 ‘마녀의 관’은 (3D로 촬영된) 무대극으로, 장님음악가의 환상을 그린 3막 ‘커튼콜’은 기담으로 구성한 것. 공통된 원작에 속하되 각기 다른 장르로 펼쳐 보이는 박진성은 <마녀의 관>을 통해 서사와 형식에 관한 일종의 영화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파네마 소년>과 <조금만 더 가까이>는 두 편 모두 사랑을 소재로 하지만 서술법이나 표현하는 방식은 특색 있는 제목만큼이나 상이하다. <조금만 더 가까이>가 설레는 첫사랑부터 감정의 앙금이 남은 이별 커플까지,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은 이성커플부터 권태를 느끼는 게이커플까지, 네 커플의 에피소드식 구성을 통해 무수한 관계의 교류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감정변화의 줄 잇기를 시도하는 현대적인 서술법을 선보인다면 <이파네마 소년>은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의 ‘두 번째 사랑’을 고도로 이미지화한다. 한국과 계절 주기가 정반대인 브라질의 이파네마 해변을 제목으로 차용한데 착안, 주인공 소년과 소녀의 경우를 둘로 나눠 현실과 공상을 오가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첫 번째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이미지와 형식으로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최근의 주목할 만한 장편데뷔작들은 이미지를 우선한 서사 전달과 형식 자체로 이야기와의 통일을 꾀하는 영화 만들기로 거칠게 요약이 가능하다. 다만 전략이라고 붙여도 무관한 이유는 주류영화계에서 잊어버린 영화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22일부터 4월 6일까지, 2010년과 2011년에 데뷔한 주요한 장편 14편을 모아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거창하게 ‘코리아 뉴 웨이브 Korean New Wave'라고 명명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영화계의 기저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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