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에서의 죽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1.03.14 진정한 리얼리즘의 재발견
  2. 2011.03.14 [리뷰] 베니스에서의 죽음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


최근 이탈리아영화의 약진을 보면 이미지의 힘과 우아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탈리아 특유의 고풍스럽고 귀족적인 분위기를 아름답게 잡아낸 일련의 영화 속 아름다운 화면들은 일정 부분 루키노 비스콘티의 미학적 성취에 빚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감히 말하건대 루키노 비스콘티는 리얼리스트이다. 단지 그가 네오리얼리즘의 태동을 알린 <강박관념>(1943)의 감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실 후기 대표작으로 익히 알려진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의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화면들을 떠올려볼 때, 이러한 선언에 선뜻 동의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가 진정 리얼리스트인 까닭은 영화에 자신을 온전히 투영해냈기 때문이다. 네오리얼리즘의 선구자에서 출발하여 극단적 탐미주의까지, 작품의 폭넓은 스펙트럼은 스스로의 삶이자 인생 그 자체이다. 낭만과 퇴폐에 익숙한 귀족 가문의 자제로서, 행동하는 공산주의자로서, 그리고 솔직했던 동성애자로서, 타인도 자신도 속이지 않았던 그의 정직함이야말로 그를 모든 리얼리스트들의 위에 설 수 있도록 허락한다. 오는 3월10일부터 20일까지 열흘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리는 ‘루키노 비스콘티 특별전’을 통해 이러한 그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이번 특별전은 지난해 가을 있었던 비스콘티 특별전에서 소개되지 않았던 6편의 작품을 중심으로, 리얼리즘 형식 안에 존재하는 인간적 감성의 실재를 포착한 비스콘티의 진정한 미학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안나 마냐니의 극성스런 모성연기가 돋보이는 <벨리시마>(1951)는 어린 연기자 딸을 둔 엄마 막달레아를 통해 영화산업의 생리를 비판하는 네오리얼리즘 색채의 영화이다. 비교적 단순한 모녀간 멜로드라마를 흥미로운 현실비판으로 이끄는 것은 쇼비즈니스의 추악한 현장의 생생함을 잡아낸 비스콘티의 세밀한 관찰력이다. <흔들리는 대지> <레오파드>와 함께 시칠리아 삼부작 중 하나로 불리는 <로코와 그의 형제들>(1960)은 핍박받는 노동자 계급의 악순환을 담담히 포착한 네오리얼리즘의 걸작이다. 남부 이탈리아에서 북부 시칠리아로 이주한 가족의 삶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이 작품은 단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아름다울 준비를 마친 화면들을 제시함으로써 이후 탐미주의로 나아갈 징후들을 드러낸다.

독일 삼부작으로 불리는 <저주받은 자들>(1969), <베니스에서의 죽음>(1971), <루드비히>(1972)는 이번에 모두 상영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탐미주의로 전환한 비스콘티 극적인 변화의 끝에 있는 이 세 작품은 비스콘티의 인생, 취향, 문화적 자의식을 모두 투영한 비스콘티 미학의 완성을 보여준다. 익히 알려진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의 미학적 성취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4시간에 걸쳐 바바리아의 왕 루드비히 2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다룬 대작 <루드비히>는 실로 극단적 유미주의의 절정을 이룬다. 실제 그의 마지막 연인이기도 했던 헬무트 그리엠이 출연한 <저주받은 자들>은 1930년대 독일의 재벌 에센벡가의 비극적 사건에 대해 다루는데,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 나치가 배경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순수한 사람들>(1976) 역시 비스콘티 스스로 끝내 공개되는 것을 보지 못했던 유작이라는 주목할 만한 사실 이외에도 최근 이탈리아영화의 화려함과 가장 밀접한 감성을 보여주는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글: 송경원 영화평론가)

* 이 글은 영화전문주간지 씨네21 794호에 실린 기사를 발췌 게재한 것입니다. 원본은 씨네21 794호 96p나 http://www.cine21.com/Article/article_view.php?mm=001002005&article_id=65127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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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에서의 죽음>은 비스콘티의 탐미주의적 성향이 극에 달한 후기 걸작이다. 중년의 작곡가가 갓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에게 반한다는 이야기는 순수한 절대미에의 매혹을 보여주지만, 그렇다고 미적 요소들이 과잉된 바로크적인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엄격한 고전주의적 면모가 보인다. 영화의 아름다움이 절제된 움직임과 형식 안에서 돋보이기 때문이다. 전작 <레오파드>의 무도회에서 보여준 화려한 색의 향연과 달리 색채도 절제되어있다. 영화 속 베니스는 온통 잿빛이며 도입부터 시종일관 습하고 어두운 죽음의 기운을 품고 있다. 의상도 거의 흰색이나 검정색이다. 이 도시에서 원색은 광대들에게나 어울리는 조롱거리이다. 마치 드라이플라워 같은 인물들은 우아하지만 생기가 없다. 덕분에 이 죽음을 배경 삼아 더욱 빛나는 건 황금빛 소년의 아름다움과 젊음이다.


유명 작곡가 구스타프 아쉔바흐(더크 보가드)는 요양 차 베니스를 찾았다가 소년 타지오(비요른 안데르센)와 같은 호텔에 묵게 되고 그 아름다움에 한 눈에 사로잡힌다. 그의 눈은 계속해서 타지오를 쫓고, 귀는 그 이름을 들으며, 입은 비탄에 젖은 혼잣말로 사랑을 고백한다. 동시에 그는 젊음 앞에서 늙고 병든 몸의 비통함, 수치심, 질투 같은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된다. 한편 미로 같은 도시 베니스에는 전염병이 쉬쉬하며 돌고 있다. 구스타프는 도시를 당장 떠나라는 충고를 받지만, 소년에의 매혹은 그를 죽음으로 이끈다.


주연 더크 보가드의 연기는 실로 감동적이다. 토마스 만의 원작 소설은 환희와 비애와 애증이 뒤범벅 된 예술가의 복잡하고 예민한 심리를 길고 자세히 묘사하는데, 보가드는 젖어있는 눈동자의 흔들림, 눈썹과 입가의 미세한 경련, 지친 몸짓과 표정만으로 이 모든 언어들을 대신한다. 클로즈업의 인물과 소년을 좇는 카메라의 절제된 움직임만으로도 그 심정의 미묘한 뉘앙스들이 충분히 마음을 울리며 전해온다. 순수하면서도 요염하고 앳되면서도 성숙한 비요른 안데르센의 자태는 취향을 뛰어넘어 절대적인, 하지만 결국 시간 앞에 사라질 것이기에 더욱 배가되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말러의 교향곡 5번 2악장이 선택된 마지막 해변에 다다르면 음악, 빛, 파도와 함께 감동이 밀려온다. 말러와 만과 비스콘티. 각각의 영역에서 종합적이고 완벽한 미의 세계를 추구했던 세 예술가의 모습이 여기서 겹쳐진다. 지극히 아름답고 쓸쓸한 레퀴엠이다.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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