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칼 드레이어의 <뱀파이어> 상영 후 “유리 속의 어둠 <뱀파이어>”라는 제목으로 세계적인 영화사가 고마츠 히로시 초청 특강이 열렸다. 이 날의 특강은 서울아트시네마와 영상원 트랜스아시아 연구소가 공동으로 주최한 것이었다. 고마츠 히로시에 따르면, <뱀파이어>는 논리적 인과관계를 벗어나 몽롱한 분위기만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뱀파이어>의 몽롱한 세계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던 그날의 현장을 전한다.


김소영(트랜스아시아 연구소 공동소장, 영상원 교수): 오늘 강의를 해주실 고마츠 히로시 선생님은 스웨덴에서 공부하셨다. 와세다대학교 영화과 교수이자 영화사가로서 일본과 유럽의 초창기영화, 희귀영화에 대한 식견이 굉장히 뛰어나시다. 오늘 강연에서는 <뱀파이어>의 소상한 제작과정과 칼 드레이어 감독에 대해서 상세한 말씀을 해주실 것이다.

고마츠 히로시(영화사가, 와세대학교 교수): 먼저 <뱀파이어>에 대한 제 개인적 체험부터 말씀드릴까 한다. 70년대 도쿄 필름센터에서 화재가 일어나기 전, 칼 드레이어의 <뱀파이어> 상영이 몇 번 있었다. 그때 자막은 이중인화된 옛날 일어 문자로 표현이 돼 있었다. 아마 일본에서는 변사가 공연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외견상 이 영화는 무성영화처럼 보이는 것도 있었고, 이미지 자체나 자막, 음악이 주는 느낌 때문에 오래된 극영화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주었다. <뱀파이어>의 매력은 뿌옇고 낡은 영상이 주는 인상이다. 이는 프린트가 오래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드레이어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이건 매우 놀랄만한 일이다. 당대에 사운드가 개발되고 사운드의 박진성을 향해 기술이 발전하는데, 드레이어는 이와 역행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뱀파이어>에서는 시각적, 청각적인 것이 애매하게 그려져 있다. 이는 마치 셰리든 르 파뉴 소설집의 제목일 것 같은 ‘유리 속에 음침하게’ 잠복하고 있는 세계이다.

드레이어의 독립 프로덕션

1927년 <잔 다르크의 수난>이 예술영화를 넘어 전위예술로 받아들여지면서, 드레이어 주변에 전위 예술가들이 모여들게 된다. 이후 1929년 에티엔느 드 보몽 백작의 저택에서 무도회가 열렸는데, 드레이어가 초대 되었다. 이 무도회에는 러시아계 귀족 리콜라 드 귄쯔부르크도 참석했는데, 그는 당시 배우로서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었다. 드레이어는 사교계에 관심이 없었던 사람인데 빅토르 위고의 증손 부부가 귄쯔부르크 남작을 소개시키기 위해 드레이어를 초대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무도회에서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귄쯔부르크 남작은 드레이어에게 자신이 영화에 출연하고 싶은 꿈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당시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수난>의 제작사와 분쟁이 있어서 제작사의 의향과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작업을 하고 싶었다. 드레이어는 파리에 자신의 독립 프로덕션 ‘칼 테오르드 드레이어 영화프로덕션’을 설립하고, 남작은 자신이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에 배우로 출연하는 조건을 걸었다. 귄쯔부르크 남작은 줄리안 웨스트라는 이름을 써서 <뱀파이어>에 출연하게 된다.

<뱀파이어>의 제작


드레이어는 초자연적인 주제로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셰리든 르 파뉴의 소설집 중 <카밀라>라는 소설을 소재로 취했다. 그러나 여성 뱀파이어가 나온다는 걸 제외하면, 원작 소설과 영화의 내러티브는 전혀 다르다. <뱀파이어>는 처음부터 독일, 프랑스, 영국 3개국어판이 제작될 예정이었다. 각본에도 3개 국어로 대사가 기입되었고, 대사 장면은 각 국어별로 여러 번의 테이크로 촬영되었다. 이 영화의 제작 당시는 유성영화가 처음 등장한 시기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감독들은 대사를 많이 넣으려고 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드레이어는 대사를 억제하려고 했다. <뱀파이어>는 유성영화로 설계되었지만 촬영 자체는 무성으로 촬영을 했고, 스튜디오에서 후시녹음을 했다. 입을 더빙할 때는 3개 국어로 후시녹음을 했다.
이후에 드레이어의 유성영화가 배우들에게 고도의 연기를 요구하는 것에 비해, <뱀파이어>는 연극적인 연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렇다고 <뱀파이어>의 등장인물이 무성영화의 등장인물과 같은 것도 아니다. 드레이어는 유리 속의 어두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적합한 등장인물의 연기를 요구했다. 이 영화의 배우는 모두 아마추어들이다. 드레이어는 배우들을 일상에서 배역의 신체적인 특징에 맞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리고 1930년부터 촬영이 시작됐다. <잔 다르크 수난>이 전부 세트 안에서 촬영되었던 반면에, <뱀파이어>는 드레이어의 독립프로덕션이 제작을 맡았기에 예산이 부족해서 로케이션 촬영을 했다.
<뱀파이어>를 보면 뿌옇고 몽롱한 질감의 영상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질감을 내기 위해 촬영자 루돌프 마테는 고심 끝에 렌즈 앞에 검은 천을 걸고 태양광선을 통과시켰다. 정작 귄쯔부르크 남작은 모든 효과가 자연스럽게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나 자신이 실험한 결과 천이나 필터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드레이어는 <뱀파이어>를 백일몽처럼 표현하고자 했다. 앨런 그레이의 혼이 빠져나가는 장면이 특히 그렇다. 한편, 앨런 그레이와 지젤이 배를 타고 숲을 탈출하는 장면은 남작의 말대로 안개가 껴서 특수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드레이어의 전작 <잔 다르크의 수난>은 리얼리티를 강화하기위해 팬크로마틱 필름으로 촬영됐지만, <뱀파이어>는 리얼리티를 줄이는 방향으로 촬영된 것이다.

<뱀파이어>의 미적 특징

뱀파이어는 극영화이긴 하지만 이야기 요소가 희박하다. 드레이어의 전작들이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에 비해 이질적이다. 이에 영향을 준 것은 무르나우의 <노스페라투>(1922)가 아닐까. <뱀파이어>가 <노스페라투>를 차용한 것으로 생각되는 결정적인 특징은 고서적의 페이지를 중간자막으로 도입하는 장면이다. 책의 페이지를 중간자막으로 넣는 건 무성영화적인 특징인데, 유성영화로 기획, 제작된 <뱀파이어>가 이렇게 촬영된 건 의아한 일이다. 무르나우의 영화와의 차이점은, <노스페라투>는 고서적 페이지가 비밀을 폭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반면에, 이 영화에서는 오히려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능을 더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고서적 페이지를 보여주는 장면이 없다면, 내러티브를 알기 어려울 것이다. 페이지 자막과 더불어 중간자막 또한 무성영화적인 느낌을 준다. 이것도 유성영화로서는 매우 이례적인 방법이다. 중간자막은 드레이어가 문자로 내러티브를 사용하는 걸 선호하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뱀파이어>의 영상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이런 문자적인 설명이 있어야만 했고, 문자는 애매모호한 영상을 분명하게 규정해준다.
<뱀파이어>는 문자의 사용이 굉장히 독립적이며, 문자가 내러티브를 전달한다. 극영화의 경우 보통 액션이 내러티브를 구성하고 문자가 이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것이 뒤바뀌어 있다. 시각적인 것들은 막연히 분위기를 만드는 쪽으로 진행이 된다. <뱀파이어>는 분위기만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뱀파이어>를 1인칭 영화로 파악할 수 있는 이유는, 거의 대부분의 장면에서 앨런 그레이가 등장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 앨런 그레이가 프레임에서 보이지 않을 때조차 잠재적으로 그가 보고 있는 장면으로 생각할 수 있다. 창문 밖에서 집 안을 들여다보는 쇼트가 나오는데, 이 쇼트가 상징적으로 제시하듯 앨런 그레이는 어쨌든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드레이어가 무성영화 시기에도 자주 사용하던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근거는, 영화의 무대가 현실과는 먼 불가사의한 광경이라는 것과 연관된다. 첫 시작 자막에서 앨런 그레이는 몽상가로 기술된다. 현실과 초자연의 경계가 모호한 것이다. 이후에 그려지는 장면은 몽상가 앨런 그레이의 내적 세계로 볼 수 있다. 자기가 자신의 내적 세계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불가사의한 체험은 앨런 그레이 내면의 수수께끼에 의해 초래된다. 그곳에선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를 월경하게 된다.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자기가 보고 있다는 점에서 뱀파이어는 일인칭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드레이어는 영화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뱀파이어>에선 초자연과 현실을 탐구한다.
<잔 다르크의 수난>에서 드레이어는 입체파처럼 공간을 분해하는 실험을 했다. 그러나 <뱀파이어>에서는 공간을 통합하여 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카메라 워크를 보인다. 공간 안에 있는 모든 요소(빛, 미장센, 색조 등)들은 영상의 무늬 같은 것이 된다. 이러한 무늬가 합쳐져 앨런 그레이의 내면세계를 만들어낸다. 어디도 현전하는 편재적 인물 앨런 그레이가 중심축이 되고, 주변 인물들이 그의 내적인 세계에서 액션의 앙상블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앨런 그레이가 계속 나오는 건 두루마리 그림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 이와 병렬적으로 대응하는 청각적인 걸 생각해보면, 볼프강 젤러가 만든 음악이 어디서나 들린다. 물론 이것은 음악이 반주로 사용되던 무성영화시대의 발상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앨런 그레이를 축으로 다른 사람들의 액션이 앙상블이 이루는 것처럼 음악도 영상의 일부분으로 파악될 수 있다. 즉 음악이 액션을 보조하는 비유적 표현이기보다는 영상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방앗간에서 의사가 죽는 장면과 앨런 그레이와 지젤이 탈출하는 장면이 교차편집 될 때의 사운드는 청각적인 차원에서 영상을 만들고 있다.

<뱀파이어>의 프린트 문제

<뱀파이어>는 3가지 언어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약간씩 다른 버전의 <뱀파이어>가 전쟁 전에 개봉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중 전후까지 남은 건 완결된 프린트인 독어판과 프랑스어판, 영어판의 단편들이었다. 가장 많이 상영된 건 스위스의 로하워가 복원한 버전인데, 그때까지 남아있었던 독일어판을 원판으로 사용했고 부족한 건 나머지에서 가져오는 방식이었다. 이 프린트는 당시로서는 가장 긴 버전이었고, 이후 16mm나 비디오로 만들어져 가장 많이 상영되는 판이 되었다. 한편, 로하워의 복원판과 별개로 덴마크 영화박물관은 <뱀파이어>의 덴마크어판 자막 버전을 만들었다. 이 프린트에는 로하워판과 다른 누락된 쇼트가 포함되어 있다.
<뱀파이어>는 완성된 후에 당분간 상영되지 않다가 1932년 UFA 극장에서 프리미어 상영되었다. 이 때 필름의 길이는 2271m였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 3개국어판 모두 재편집되어 길이가 짧아졌다. 전후까지 남겨진 <뱀파이어>의 어떤 버전을 보더라도 누락된 쇼트가 있다. 로하워 복원판도 영화의 복원이라기보다는 액션의 보완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즉 액션 자체가 이야기를 많이 전달하지 않는 이 영화는 쇼트의 결함으로 영화 의미가 불명확해졌다. 그러나 현존하는 어떤 판을 보더라도 내러티브는 불명확하며, 원래 드레이어는 그러한 것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다.
러시아의 고스필모폰드에 보존된 독어판 <뱀파이어>는 2004m로 현존하는 가장 긴 프린트이다. 볼로냐 시네마테크 복원판은 독일어판을 기반으로 복원한 현 최상의 필름이다. 오늘 여러분이 보신 크라이테리언 DVD는 이 프린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조차도 드레이어가 재편집하기 전의 필름보다 270미터 가량이 짧다. 액션이 명확히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은 <뱀파이어>의 내러티브 자체가 주관적인 망상 같은 것이고, 액션의 인과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관객1: 당시 1930년대에 나라별로 흐름, 사조가 있었다고 들었다.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영향이나 독일의 표현주의 계열 같기도 하고, 이 영화의 사조적 정체성이 뭔지 궁금하다.
고마츠 히로시: <뱀파이어>는 1930년에 제작되었고 2년 뒤에 공개되었는데, 어떠한 예술 경향도 수용하지 않았다. 드레이어는 어떤 당시의 예술 사조에 소속된 적이 없었다. 대신 그는 유파들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은 하고 있었다. 이 작품도 유파나 사조에 영향을 받았다고 하기 어렵다. <잔 다르크의 수난>은 드레이어가 프랑스에 살고 있어서 초현실주의자하고는 교류하던 시기의 영화다. 그러나 <잔 다르크의 수난>도 초현실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이 영화는 전위적이기는 하나 어떤 경향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관객2:
뱀파이어라는 소재는 당대의 사회적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고, 또한 인간이 영생을 영위하기 위한 욕망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 영화는 뱀파이어 소재를 사용함에 있어서 어떤 목적 혹은 의미가 있는지 궁금하다.고마츠 히로시: 본질적으로 뱀파이어 영화는 말씀하신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굳이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영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건 유니버설이 호러 장르영화를 만들 때 드라큘라나 프랑켄슈타인, 미라 등등 그것들 자체가 죽은 인간을 되살리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즉 인간이 사후세계를 얼마나 추구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또한 앙드레 바쟁이 말했듯, 영화 자체가 미라와도 같다. 인간이 생명을 보존하려는 데에서 영화 미디어의 특징이 있다. 말씀하신 것과 이 작품을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뱀파이어라는 소재 자체는 불사에 대한 욕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관객3: 유성영화 기술이 발전하고 세계를 자연에 가깝게 재현할 수 있게 된 시기에, 드레이어는 이와 반대로 가려고 했다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이후에도 드레이어가 제작한 영화에도 그러한 경향이 있는지, 그것이 드레이어의 어떤 생각에 의한 것인지 궁금하다.
고마츠 히로시: 드레이어를 작가로 봤을 때 그의 모든 작품이 각각 다르다. 대부분의 예술가는 작품만 봐도 이게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고, 일관적인 스타일이나 세계관을 보여준다. 하지만 드레이어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다. 이 때문에 재밌기도 하다. 데뷔작부터 유작 <게르트루드>까지 모든 양식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뱀파이어>같은 경우에도, 그의 작품으로서 그 전까지도 다르고 그 이후에도 이런 작품은 없다. 드레이어는 당시 지배적 무드와는 반대된 영화를 만들었다. 초기부터 그런 건 아니고, <잔 다르크의 수난>을 만들었던 시기부터 그랬던 거라고 생각한다. <잔 다르크의 수난>도 동시대 할리우드나 유럽의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따라서 드레이어의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당대의 지배적인 것과는 다른 영화였기 때문에 보통의 관객들이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한편, 당대 지배적인 것에 반한다는 데에서 아방가르드 내지는 전위적이라는 말을 쓸 수도 있다. 하지만 아방가르드, 전위영화에도 아방가르드한 스타일이 분명 있기 때문에 이 말을 드레이어를 지칭하면서 쓰기엔 저어된다. 드레이어의 마지막 작품 <게르트루드>는 당대의 영화와 다르다는 점에서 드레이어적이라고 생각한다. 즉 ‘드레이어가 또 새로운 걸 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김소영: <뱀파이어>를 중심으로 상세하면서도 포괄적인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 몰락해가는 귀족이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과정, 영화 속에서 보이는 쇠락의 기운, 드레이어 영화의 상반되면서도 통합적인 경향들 등, <뱀파이어>를 통해서 많은 세계로 들어갈 수 있었던 강의였다. 여러분들이 좋은 질문을 해주셔서 저도 많이 배운 것 같다. 감사드린다.

정리: 송은경(관객 에디터) 사진: 최미연(자원 활동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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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 에필로그] 2010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남긴 것들

2010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대망의 막을 내렸다. 폐막 하루 전날인 지난 27일 아직 냉기가 감돌고 먼지가 흩뿌려진 극장 카페테리아에 8명의 데일리, 에디터팀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번 영화제와 그간의 활동을 돌아보는 마지막 모임인 셈이다. 웹데일리팀과 관객에디터들은 예년보다 길게 이뤄진 한 달 반 시간 동안 갖가지 영화제 소식을 알리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며, 관객후원 모금운동까지 많은 활동을 했다. 특히 이들 모두는 이번 영화제가 영화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고민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던 자리였으며 시네마테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는 장이었다는 한 목소리다. 유난히 길고 여전히 끝이 아닌 친구들 영화제를 마치면서도 극장에 대한 걱정을 떨치지 못했던 데일리/에디터 친구들의 이야기를 여기에 옮긴다.



신선자(웹데일리 편집/관객에디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때마다 웹데일리를 통해 소식을 전한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이번은 특히 좀 남다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 것 같다. 영화제를 마감하면서 각자 개인적으로 느끼는 바들이 많았을 것 같다. 데일리팀은 준비기간부터 치면 두 달여의 기간이 흐른 셈이다. 각자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관객모금운동 자원도 하고 영화도 보고 글도 쓰고 하느라 정말 수고 많았다. 인상 깊게 생각했던 부분들이나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일어났던 일련의 일들에 대해 느끼는 바를 한마디씩 자유롭게 이야기 봤음 좋겠다. 나부터 간단히 말해 보자면 사실 우리가 운영하던 웹데일리가 친구들 영화제의 소식지인지 시네마테크 사태에 관한 논의의 장인지 모호하다는 느낌도 약간 있었다. 장단점은 있었던 것 같다. 해야 하고 필요하다 느껴 일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좀 피곤하기도 했다. 영화는 그래도 꽤 봤긴 한데 영화 보면서 영화에 집중하기보다는 다른 부분들을 신경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후회하진 않지만 이런 상황에 봉착한 현실이 짜증나긴 했다. 결과적으로 처음에 후원모금 활동 시작하면서 모금액자체가 목표했던 금액의 1/10수준이지만, 그 전에 후원모금으로 모아지는 금액을 비교해보면 한 달 여간 짧은 기간 동안 성과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눈앞에 보여지는 돈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의 성격이나 브랜드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가 아닌가 싶다.
홍성원(관객에디터): 예전에 CMS로 시네마테크를 후원해주신 분들 이름을 오프라인 소식지를 통해 보았는데 짧은 기간에 많이 모였으니 이젠 너무 많아 세어보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웃음)
선자: 시네마테크 문제가 작년 친구들 영화제가 불거져 나왔고 CMS 제도를 그때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 대략 100명 정도 모였다고 하는데, 보다 긴박한 상황이 되어 우리 관객들 스스로 모금운동을 펼치면서는 그 수가 거의 배가 되었다. 후원금도 두 배정도 모인 거다. 기존 CMS 후원회원의 모금액까지 합치면 이제 안정적으로 대략 한달에 4, 5백만원 정도가 시네마테크를 위해 쓰여지게 된다. 완벽한 독립은 어렵지만 그래도 이 정도까지 호응을 얻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성원: 액수로 따지면 적을지 모르지만, 모두가 같이 도와주시는 분들이었으니까 여기까지 가능했던 것 같다.

박영석(웹데일리/관객에디터): 이번 영화제는 길고 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 상황이 급변했었고 처음에는 데일리에 영화에 관한 글만 쓰면 한가해지겠지 싶었는데, 그 다음에는 소식지를 준비해야했고, 소식지 준비가 끝나자마자 영진위 일이 터지고 전용관 문제 등이 다가왔다. 동시에 독립영화전용관이랑 미디액트일도 생겼다. 기분이 내내 이상했다.
강민영(웹데일리/관객에디터): 사실 나는 작년부터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너무 극장에서 보고 싶었다. 작년 무성영화들을 챙겨보면서 내가 도대체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볼 날이 과연 올까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 영화제 상영작 목록에 있는 것을 보고 뛸 듯이 기뻤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번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들을 보면서 소중한 것을 손 안에 꼭 쥐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최혁규(관객에디터): 개별 영화에 대한 느낌이라는 것보다 영화 자체에 대해 소중하게 느껴졌던 게 너무 좋았고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 것 같다.
영석: 나도 비슷한데 주로 어떤 영화가 어떤 뜻을 담고 있냐에 대해 생각했다기보다 극장일로 만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모금운동하면서 만난 사람들도 있고 하니까 영화가 도대체 무엇인가, 시네마테크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하면서 두 달을 보낸 것 같다.
성원: <뱀파이어> 시네토크 때 정성일 평론가는 <뱀파이어>를 ‘내 생애의 영화’라고 표현했고, 크리스 후지와라도 프리츠 랑의 영화를 보며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었다. 관객들뿐 아니라 영화를 추천한 감독이나 평론가들도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선자: 그런데 영화는 다들 볼 만큼 봤는지 궁금하다. (일동 고개 끄덕 끄덕, 웃음)
혁규: 틈나는 대로 보긴 했는데 사실 영화를 봤단 느낌이 안 든다. (웃음)
영석: 그나마 영화제 후반부에 몰린 존 포드 영화를 보면서 ‘아 내가 영화를 보고 있구나’라는 느낌이 들긴 했었던 것같다.
성원: 나는 이번 영화제에서 존 포드의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와 카르멜로 베네의 <카프리치>빼고는 다 챙겨봤다.
장지혜(웹데일리): 난 사실 이번 영화제는 완전정복을 꿈꾸었는데, 여러 일들이 생기면서 완전정복은 물 건너 갔구나 했다. 언론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는데, 관객발언 때도 그렇고 나는 항상 서울아트시네마가 소중한 공간이고 가치 있는 공간이라는 이야기를 했었다. 근데 그 이야기를 한번 내뱉고 마는 게 아닌지 고민스러웠다. 그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가치가 어떤 것이고, 또 이야기를 해놓고도 질문이 다시 돌아오고 다시 생각하게 되고. 영화제 시작하며 영화 리뷰 등을 열심히 쓰고 작품 분석해야지라는 생각만 했다가 여러 일들을 겪으면서 ‘영화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해보게 된다.

성원: 영진위의 처사는 분명 잘못된 것인데 오히려 그게 소중한 공간이라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 같다.
영석: 연대감이 생성된 거지.
민영: 처음 모금부스를 운영할 때는 우리 데일리, 에디터들이 주축이 되어 움직였지만 자원봉사하겠다는 친구들이 하나씩 늘지 않았나. 그 친구들 중에 가은이나 예하, 재욱 같은 경우는 다들 고등학생이고 한데 추운 날에도 나와서 도와드릴 것 없냐고 물어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마음이 참 짠했다.
지혜: 고등학교 친구들뿐만 아니라 카페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닉네임으로만 알았던 분들과 이야기하는 것들도 좋았던 것 같다.
영석: 시네마테크가 친구들을 만나는 공간이라는 걸 절실히 깨닫게 된다.
성원: 얼굴만 보고 간단히 인사만 건네던 사람들이 함께 극장을 걱정하고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김보년(웹데일리): 나는 이번 일이 터지면서 사람들을 본다는 것 자체가 되게 중요한 경험이란 생각을 했다. 서울아트시네마 관객들이 유난히 많이 웃지 않나. <사냥꾼의 밤> 같은 경우도 영화를 보면서 엄청 웃었다. 사실 한 번 웃을 거 괜히 두 번 웃고 하는 것 같아 싫기도 했고 그런 게 때때로 감상에 방해를 주고 그랬는데 되돌아보면 참 좋은 경험인 것 같다. 사람들과 같이 영화 본다는 게 특별한 경험이구나, 영화 이상의 특별한 경험이구나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성원: 예전에는 그런 것 싫다는 사람도 많았다. 나는 심각하게 영화를 보고 있는데 남들이 큰 소리로 웃으면 흐름이 깨지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지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영화를 보면 마음에 약간 여유가 생기고 한 번 웃을 것도 두 번 웃고 그러는 것 같다. 나는 그런 분위기가 좋다.
보년: 때때로 과시적으로 웃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 때도 있다. (웃음)
영석: 특히 <뱀파이어>는 완전무성이었는데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지 않았나. 그런 경험을 할 곳은 여기밖에 없다.
성원: 영화를 그냥 심심풀이가 아니라 좋은 걸 보러가는구나 할 때 느끼는 기대감이나 이런 게 서울아트시네마에는 있는 것 같다.
보년: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들은 질문도 터프하게 하는 것 같다. (웃음) 친구들 영화제 기간이어서 사람이 많아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당장 다음 주 되면 또 바뀌겠지.

영석: 데일리하면서는 사실 우리가 쓴 영화리뷰보다 기사들을 더 열심히 읽었다. 영화보다 워낙 기사들이 드라마틱하다보니까.
보년: 프리뷰를 드라마틱하게 쓸 수는 없잖나. (웃음) 트위터를 통해 사람이 엄청 많이 들어온 날도 있었는데, 여하튼 이번 사태들 때문에 데일리를 찾아보는 사람도 많았던 것 같다.
선자: 이번 데일리에는 카테고리에 변화가 심하게 있진 않았지만 추가된 건 관객 후원릴레이 정도였는데, 정말 사건사고가 많았으니 그 뉴스들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했던 것 같다. 가장 많이 언론에 노출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혁규: 데일리 뿐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대해서 궁금했다. 아침에도 그렇고 뭘 하든 간에 계속 변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극장 밖에 있으면서도 극장 안에 있는 느낌이었다. 같이 기사보고 같이 화도 내고 그런 게 참 재밌었는데 말이지.
선자: 영석이 말대로 정말 드라마틱한 날들이었다. 영화보다 TV보다 임시국회가 더 재밌지 않았나? 그런데 여러모로 시네마테크에 대한 인식은 넓어졌으나 명증하게 설명되지는 못했던 부분들도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우리는 관객이고 자원봉사 차원에서 활동을 한 것인데, 나를 포함해 우리 모두 수위 조절을 잘 못했던 것은 아닌지 싶기도 하다. 인터뷰를 받을 때도 어떤 친구는 사무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듯, 꼭 우리가 운영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것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서 그런 면도 있다. 그때마다 우리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생각을 했다. 원하고 스스로 필요하다 생각했으니까 이 일들을 진행하고 다들 수고하면서 고생했는데, 운영적인 측면에서도 원활하게 쉽게 할 수 는 방법을 우리가 찾지 못한 것도 있다면 추후에는 그런 지점들을 제고해봐야 할 듯 하다. 어쨌든 오프라인 모금부스는 이번 영화제를 끝으로 정리한다. 보년 씨 이야기처럼 다음 주면 또 다른 일이 시작되겠지. 시끌벅적했던 극장이 조용해질지도 모를 일이이고. 영화제를 끝맺으면서 이걸 어떤 식으로 마무리 시켜야 또 다른 시작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연계하는 게 좋을까라는 생각. 그런 부분의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성원: 예전에 할아버지 한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서울아트시네마의 관객회원제도는 기간이 끝나면 언제 끝나는가에 대해 안내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시더라. 메일로도 안내를 안 해주고 소식도 알려주지 않고, 이건 고쳐야 하지 않나.
혁규: 후원회원은 기간 여부에 상관없이 메일로 안내되지 않나?
선자: 확인하지 않으면 사전에 알지 못하는 게 있긴 하다.
영석: 그런 경험 나도 있었다.
지혜: 관객회원에 가입하면 온라인으로 로그인해서 기록들을 볼 수 있고 마이페이지가 뜨는 게 가능하면 좋을 텐데. 그리고 우리는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모호한 위치였던 것 같다. 모금활동을 진행한 사람들이 분명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같은 관객이지만 모든 사람이 여기의 친구들 같지 않으니 거리감이 생겨서 관객들조차도 관계자에게 정보를 묻듯이 우리에게 질문하곤 한다. 그런걸 보면서 우리가 만든 거리감은 아닌데 의문이 들었다. 모두 같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영석: 관객으로서는 어디든지 말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주체이기 때문에 다른 데서 빌미를 잡힐 만한 위험성 있는 행동들은 자제를 해줘야 한다. 책임감도 동시에 있는 것 같다.
성원: 정치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건 맞는데 한쪽으로 쏠려있으니까 거부감을 가질 수도 있다. 정치적성향이 강하다보니까 정치적으로 흘러들어간다는 것으로 빠질 수도 있고.
영석: 각종 상관없는 매체들에서 우리 얘길 기사화한다고 할 때 우리가 한 얘기가 아니고 의견이 모아진 것이 아닌데도 같은 부류로 모아서 비판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앞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나를 전제한 후에 고민해야 한다. 모금부스는 끝났지만 이후에도 홍보활동을 어떻게 할 건지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선자: 우리의 활동이 훨씬 더 긍정적인 성과를 내왔다는 것은 분명한 듯 하다.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이지만 그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것 같지는 않다. 가능성이 많고 오히려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일단 지혜도 얘기했듯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아 그리고 우리는 이번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런 모임들을 지속시켜나갈 수 있는 방안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어떤 방법들이 있을까.
혁규: 예를 들면 바자회 같은 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우리가 지속시킬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진행할 수 있다면 좋은 것 같다. 자연스레 관객 만남도 이뤄지고. 관객차원에서의 행사라는 것 자체가 중요한 거니까.
민영: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 광주극장에서는 한 달에 한 번씩 회원들끼리 모여서 간식도 먹고 베이킹 파티도 하고 했었다. 같이 뭔가를 만들고 나누기도 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것이 참 좋아보였다.
성원: 지금까지는 관객들이 선택한 영화가 친구들이나 시네바캉스때 상영했는데, 관객들이 원하는 영화를 DVD로라도 한 번씩 편히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상영이 없을 때 날을 잡아서 말이다.
혁규: DVD로 틀면 영사실에서 장비를 빌려와야하는 문제가 있다.
영석: 자막이 없을 경우에 우리가 자막을 만들어야하긴 한다.
신윤하(웹데일리): 관객들이 자체적으로 시네클럽을 결성하는 건 어떨까. 적정한 강의비만 내서 극장이나 카페 등 장소를 잡아서 모여서 지식을 공유하거나 강사를 초빙하는 행사. 그런 행사들이 별로 없었다.
성원: 학교강의실이나 이런 곳을 빌려서 해도 좋을 것 같다.
선자: 시네클럽이든 바자회든 뭐든 좋을 것 같다. 이제 다시 시작이니까 관객들이 지금처럼의 결속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웹데일리는 이제 시네마테크의 이후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는 웹블로그로 전환 계획에 있다. 우리의 만남이 여기서 끝이 아니고 앞으로도 더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 한 달 반간의 영화제를 통해 모두 조금 성숙해진 느낌이다. 고생해서 그런가. (웃음) 이후에 더 좋은 모습으로 만났음 한다. 모두 고생 많았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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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일 평론가가 추천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시네토크

2월 10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선택작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가 하루 종일 상영되었고, 마지막 에피소드가 끝난 후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이 이어졌다. 이 자리에서 정성일 평론가 “시네마테크는 영화의 박물관이 아니라 현재 진행하는 시간인 동시에 내일을 열어가는 장소라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를 물신화하지 말고 신화화하지 말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멀티플렉스에서 상영되는 <아바타>와 똑같은 관람 기분으로 1915년의 영화 <뱀파이어>를 만나기를 당부했던 그는 거듭해서 시네마테크라는 공간이 우리들에게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단호하게 ‘이 영화는 내 인생의 영화’라고 말하는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 내용을 전한다.


정성일(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영화를 선택하는 친구들에게 백지수표를 주었고 보통 친구들은 그것에 10편의 영화를 써서 냈다. 이번에 내가 가장 처음으로 상영 희망목록에 작성했던 영화는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였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나에게 ‘생애의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유념해서 생각해주시기 바란다. 생애의 영화라는 건 최고의 걸작과 같은 말이 아니다. 생애의 영화라는 건 영화가 나에게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나는 32세가 될 때까지 이 영화를 보지 못했고 그때까지 <뱀파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정보로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1993년 서울단편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있을 때 끌레르몽 페랑 영화제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그곳의 대학생들이 주최하는 심야상영에서 <뱀파이어>를 처음 봤다. 그때 영화를 소개하던 학생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들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 모두 이 영화를 1915년 당시 <뱀파이어>가 상영되었던 때와 동일하게 관람해봅시다. 영화를 보며 담배를 피워도 되고 술을 마셔도 되고 자다가 다시 와서 보셔도 되고 1915년의 상영과 같은 방식으로 이 영화를 봅시다.” <뱀파이어>의 첫 번째 에피소드가 끝날 즈음 이건 내 인생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에도 마음속으로 ‘이건 내 인생의 영화야’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이 영화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생겼다. 그러다가 8년 후 키노를 만들던 시절 <뱀파이어>를 마침내 필름으로 다시 보며 나는 비로소 안심했다.

 

<뱀파이어>는 내 생애의 영화

 

푀이야드가 영화를 찍을 때만해도 연출은 기술자의 개념이었지 예술가의 개념이 아니었다. 푀이야드는 작업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자신을 예술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그가 자서전에서 존경하는 예술가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 그의 영화적 비밀을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의젠느 앗제이라는 사진작가를 존경하며 그의 작업을 위대하다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의젠느 앗제는 평생 동안 사진을 기록의 매체로 생각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발터 벤야민의 말을 빌면, 범행 현장을 미리 답사하는 느낌, 즉 파리라는 도시에 행해진 모더니즘의 비밀을 열어 보여준 느낌을 준다.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또한 그런 느낌을 준다. 푀이야드는 ‘자신이 만드는 영화는 미래의 관객을 위해 담아놓은 지금의 시간’이라는 말을 했다. 즉 그는 95년 후에 이 영화를 볼 우리를 위해 필름에 당대의 시간을 봉인해서 넘겨준 것이다. 그는 이미지의 개념들을 바쟁이 영화적으로 설명하기 이전에 영화로 인해 실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푀이야드의 비극은 너무 빠른 속도로 영화를 찍어야했다는 것이다. 처음 이 영화를 볼 때는 잘 몰랐지만 두 번째 보았을 때는 즉각적으로 영화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푀이야드에게는 <뱀파이어>의 전체 시나리오가 없었다. 당시의 영화가 거의 그렇듯 첫 상영을 시작한 후 인기가 없으면 빨리 끝내거나 혹은 관객의 반응이 좋으면 2편을 준비하곤 했다. 때문에 푀이야드는 <뱀파이어>의 에피소드를 2주 간격으로 준비했어야 하는데 이건 정말 고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가 가지는 불균질성, 밸런스 감각을 갖지 않고 있다는 것, 이것이 <뱀파이어>를 재밌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푀이야드는 <뱀파이어>를 찍기 전인 1913년까지 매년 80편의 영화를 찍었다. 물론 대부분 단편영화였지만 그래도 80편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심지어 디지털 세대가 도래하기 전이었으니 그 고충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것이다. 그러던 중 미국영화들이 넘어오기 시작했고 짧던 연쇄극들의 길이가 길어지며 프랑스 영화도 이에 동등한 경쟁력을 갖기 위해 미국의 체제에 돌입했다. 다소 따분하지만 미국영화들과의 경쟁은 전 세계영화들이 피할 수 없던 것이었다. 푀이야드가 <뱀파이어>를 찍고 4년 후에 채플린은 <키드>를 만들었고, 1915년에 그리피스는 <국가의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전 세계적으로 갑자기 영화가 고전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인들은 재빨리 영화의 편집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았고 러시아인들이 영화사에 도착하기 이전에 천재적인 수법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고 이때 톰 거닝의 논쟁 또한 시작되었다. 푀이야드는 이런 영화의 개념들이 동원되기 시작했을 때 그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 그 길은 영화의 길이 아니라 생각했던 거다. 희곡작가 아르토는 이렇게 말했다. ‘영화는 대중적으로 이끌리는 순간 천박해지지만 실험에 이끌리는 순간 부서질 거다.’ 푀이야드는 제3의 길을 믿었다. 그가 이 영화 속에서 사용했던 편집의 방식이나 딥 포커스, 그리고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더블액션을 받는 대목들이었다. 푀이야드는 의도적으로 매치 컷을 피해서 더블액션을 남겼다. 시간을 중복시켜서 중복데드타임을 자체로 활용해서 보여주고 진행하는 방식을 택했다. 다시 말하는 <뱀파이어>의 장점 두 가지. 하나는 리얼리티를 관찰하는 재능, 다른 하나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멈출 수 없는 사랑이다. 종종 두 가지는 병행할 수 없는 것으로 이야기하지만 그는 두 개를 연결시켰다.

 

‘파리’라는 도시의 기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영화

 

무엇보다 <뱀파이어>가 훌륭한 결정적 이유는 1915년 파리를 고스란히 찍고 있다는 것이다. 기술을 동원하지 않고 고스란히 말이다. 이 정신은 다소 맥락은 다르지만 한참 후에 갑자기 장 르누아르의 영화에서 재현되어 보여지는 것, 그리고 다시 르누아르의 연출부였던 이탈리아감독들의 네오리얼리즘으로 확장된 개념을 갖고 체계화되어 발전한 것, 또 그것이 누벨바그 세대들로 이어지고 디지털카메라가 도착했을 때 중국이 그의 정신을 재조명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푀이야드는 표면을 잡으면 내부로 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와 함께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인상주의화가들이었고 푀이야드는 그들과 어울리며 같은 시대정신을 가지고 살았던 것이다. 여하튼 <뱀파이어>로 푀이야드가 찍어 보여준 ‘20세기 파리’의 의미는 이론적으로 말하자면 ‘모더니즘’을 찍는 것이다. <뱀파이어>의 핵심은 도시 그 자체에 있다. 그 안에서 이야기는 어떻게 작동하기 시작하는가.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에서 무엇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보여주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감독이 푀이야드다. 그는 그리피스가 영화의 길을 잘못 들어섰다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사적으로 푀이야드는 틀렸고 그리피스는 맞았다. 영화에서 어떤 이의 천재적인 방법을 받아들이고 발전한 후 그 방법은 시간이 지나서 돌아볼 때 올드패션한 느낌을 준다. 푀이야드는 역사 속에서 저주받는 것이 꼭 역사 속에서 미학적 패배인가는 질문도 던진다. 그는 고유한 자기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며 이미지를 부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졌다.

 

‘왜 나는 <뱀파이어>를 보면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되는가’하는 질문을 이 영화를 보면서 종종 가져왔다. 나는 가끔 영화가 언제부터 영화답게 된 것일까라는 질문 또한 종종 던진다. 이 영화는 정말 영화다운가. 사실 웃겼던 건 생전영화의 미래를 고민하지지 않던 천만 명이 어느 날 갑자기 <아바타>를 보고 영화의 미래를 근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맙고 참 심금을 울리는 행동이었다. (웃음)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야 한다. 영화를 보며 질문해보자. 무엇이 영화다운 것이고 어디서부터 영화다움이 이루어졌는가. 나는 거슬러 올라가고 싶었다. 그리고 <뱀파이어>에 도착하는 순간 이 영화가 어느 지점에서는 연극, 어느 지점에서는 사진,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는 소설의 방식을 취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부서지기 쉬운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친 채 영화다움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영화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혹적이었다. 어느 날 문득 이 영화를 보며 ‘아, 영화는 교양으로 보는 것이구나, 상식으로 보는 것이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1차 세계대전과 온전하게 겹치는 <뱀파이어>에는 전쟁이야기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으면서 불안의 공기를 온전히 영화 안에 끌어안고 활동하는 느낌을 전달받았을 때 바로 이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테면 바로 이런 영화들이 보고 싶은 거다.

 

결정적으로 나는 왜 이 영화에 매혹되었을까. 첫 번째, 영화 전체의 경계들 사이로 사진이 절반정도 들어와 있었고 폐쇄된 공간에서 문을 열면 다른 세계가 나온다는 소설과 연극이 뒤섞인 공간이 존재했기 때문. 두 번째, 가장 놀라웠던 지점은 이르마 베프의 존재였다. 이게 거의 나를 미치게 만들었다. 이르마 베프의 동선 자체가 영화의 존재론을 알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이후 이런 경이적인 체험을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이건 고다르도 불가능하다. 주인공 자체가 사라지고 불투명하고 비가시적이었다가 가시적이고 또 그것이 유동적인 존재. (요즘은 조금 지났지만)유행어로, 그러니까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운동이미지 안에서 활동을 개시하는 시간이미지인 셈이다. 두 가지가 완벽하게 공존하고 있다. 이르마 베프라는 존재는 영화를 보기 위해서 절대적인 독해기호가 되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혹은 <뱀파이어>를 보고 나서 ‘이 영화가 참 훌륭했구나’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런데 내 생애의 영화는 뭐지?’라고 의문을 가졌으면 좋겠다. 최고 걸작을 뽑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집어던지는 작품이 어떤 것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걸 껴안을 수 있을 때, 내게 질문을 던지는 영화를 껴안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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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시네필의 선택: 정성일 평론가의 추천의 변   

첫 번째 (상황). 2008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내건 슬로건은 ‘영년(zero year)’이었다. 그건 마치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제로라는 무효의 선언. 다시 시작하겠다는 각오. 로셀리니가 영화 제목에 쓴 말. 그런 다음 고다르가 받아서 21세기에 반복했던 제목. 하지만 내게 그 의미는 다른 것이었다. 말 그대로 진공상태. 단지 길을 잃었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나는 텅 빈 상태였었고, 거의 매일같이 술을 마시는 것처럼 영화를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어제 본 영화와 오늘 본 영화가 잘 구별되지 않았다. 종종 중간부터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보다가 지쳐서 자기도 하였다. 나는 2008년 친구영화제에 슬픈 마음을 안고 마츠모토 토시오의 <수라(修羅)>를 백지수표에 썼다. 그때 내 상황은 비유 없이 아수라장이었다. 그 해 내내 준비했던 영화는 잘되지 않았다. 나는 할복자살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그 자리에 온 영화의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아니, 그건 그냥 할복이라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마츠모토 토시오라는 칼. 단숨에 창자까지 꺼내 들 수 있게 잘 만들어진 섬뜩한 날. 먹물처럼 배어 나올 피. 유혈 낭자한 소개. 나는 친구들이 모인 파티를 피바다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도 내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않았다. 모두는 아니지만, 그 중 몇몇은 재미있게 보았다. 심지어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있었다. 맙소사!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청하는 감사의 악수보다 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을까.


두 번째 (행동). 그 이듬해 다행히도 나는 친구 영화제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었다. 영화를 찍었다. 그건 내게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단지 영화를 찍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건 나를 오해한 것이다. 나를 붙잡은 질문. 대답을 구하려는 간절한 노력. 내게서 영화를 찍는다는 건 질문에 대답하는 활동이다. 말하자면 사랑의 다른 길. 훨씬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길. 생각이 미리 자리 잡기 전에 작업하면서 고정적이고 기계적인 개념을 부수는 방법. 내가 책에서 읽은 의심스러운 구절들. 우리는 책에서 읽은 상투적인 구절들과 싸워야 한다. 아니,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개념이 담긴 영화 책이라는 유리병을 세상 속으로 집어던져서 깨버려야 한다. 어떻게? 나는 영화를 만드는 것만이 방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내가 배움을 향해서 간절하게 집어던지는 액션이다. 로셀리니는 세상 속에서만 영화는 배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말에 대한 믿음을 실천하고 싶었다. 차라리 내 존경을 실천하고 싶었다. <카페 느와르>는 나의 영화 액션이다. 우리는 이 영화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아니, 그 시간이 올 것이다. 미래의 관객이라는 기대의 지평.


세 번째 (선택). 나는 올해 열 편의 영화 제목을 썼다. 그중에서 세 편이 결정되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세 편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혹은 억지로 만들어내는 삼각형이 될 것이다. 대신 열 편을 고르면서 세운 원칙과 세 편에 대한 짧은 추억을 말하는 것으로 소개를 대신하겠다.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소개하다니! 그런 건 그냥 교과서에 맡겨놓으면 된다. 여기는 교실이 아니다. 우리가 구출해야 할 영화. 영화를 착취하는 기계들. 교실. 멀티플렉스. 아마도 그런 곳에서는 소개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별점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일을 하는 건 바보짓이다. 나의 호소. 우리는 영화를 소개하면 안 된다. 그저 그걸 보아야 한다. 보고 또 보아야 한다. 그런 다음 각자의 영화사를 창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앙리 랑글루아의 목록에서 배웠다. 랑글루아는 시네마테크의 시간표를 매일매일 짜면서 그걸 작가별, 혹은 주제별, 또는 장르별, 배우별, 시대별로 구분되지 않게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는 슈퍼마켓이 아니다. 우리 시대의 발명품 영화. 20세기의 타임머신.
 

변주곡, 혹은 엘레지. 김성욱 씨로부터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어쩌면 2010년 친구의 영화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했다. 이유는 여러분이 잘 아는 그대로이다. 끔찍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 우정을 나눌 장소는 위기에 빠졌고, 아직 대안은 없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나는 예술과 정치의 수상쩍은 구별을 항상 의심한다. 물론 시네마테크 친구들의 희생적인 노력 덕분에 우리는 그동안 아무 걱정 없이 영화를 보았다. 여기서 방점은 불행히도 ‘그 동안’이다. 하지만 이제 그 희생의 노력만으로 충분하지 않게 되었을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당신의 투쟁전선은 고작 해야 방안의 홈 씨어터인가? 보고 싶은 영화를 위한 당신의 저항은 불법다운로드인가? 우리가 믿는 정의를 옹호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행동을 결정해야 할 시간. 우리는 예술과 짝을 이루는 정치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 사방에서 벌어지는 폭격. 점령구역들. 하지만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만 움직이기 시작하는 수수방관. 당신은 영화를 본다는 것 말고는 아무 이해관계도 없는 장소를 방어하기 위해서 (어떤 형식이건) 희생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것은 다시 입장의 문제이다. 그리고 입장의 효과(와 결과)를 생각해야 한다. 유명한 1902년의 정식. “막대가 나쁜 방향으로 구부러졌을 때,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즉 곧게 펴기 위해서는, 우선 막대를 반대방향으로 구부려야만 하며 따라서 그것을 쥐고 튼튼하게 반대방향으로 잡아당겨야 한다.”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결정의 내용을 아무리 따져보아야 거기에는 대답이 없다. 핵심은 결정을 바꾸는 것이다. 혹은 결정을 내리는 자리를 바꾸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다. 곧게 펴기. 하지만 어떻게? 우리는 이제 흐릿해진 생각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


세 편의 영화. 먼저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 물론 이 영화는 ‘흡혈귀’와 아무 상관이 없다. 연쇄극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의 어떤 버전이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될지에 대해서 나는 아직 아무 정보도 없다. 나는 이 영화를 이번 영화제에서 진심으로 ‘공유’하고 싶다. 다소 무모한 말이긴 하지만 당신들과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생애 한 편의 영화’가 있다. 물론 이 영화 제목은 내일 바꿀 수도 있다. 원래 ‘한 편의 영화’라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1993년 1월 마지막 토요일 클레르몽페랑의 파스칼대학 강당에서 밤 10시에 시작해서 밤새도록 상영된 루이 푀이야드의 <뱀파이어>를 처음 보았다. 그 전에 나는 이 영화를 책의 제목에서만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이 영화를 추천해주지 않았다. 나는 완전히 홀렸다. 아니, 그냥 넋을 잃었다는 말이 맞다. 최면상태. 아름답다거나 훌륭하다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이건 위대하다거나 혹은 걸작이라는 말과는 근본적으로 어울리지 않는 결정이다. 그냥 영화 자체를 본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영화구나.’ 라는 탄식. 물론 그런 다음에도 쉬지 않고 영화를 보았다. 놓친 영화들을 찾아보았고, 새로운 영화들을 보았다. 많은 복원판을 보았다. 추천작들도 보았다. 하지만 어떤 영화도 자기의 자리를 차지할 뿐 내게 지금 이것은 영화, 라고 선언하지 못했다. 나에게 영화는 결국 <뱀파이어>이다. 나는 내 믿음을 의심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거의 십 년이 지났을 때 다시 보았다. 이번에는 뉴욕에서 보았다. 그때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국 이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마치 내 평생의 연인이 릴리안 기쉬인 것처럼. 그때 이 결정에서 릴리안 기쉬가 얼마나 연기를 잘하느냐는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당신이 동의하건 말건 그건 내 관심이 아니다. 아마도 당신에게 영화라고 선언하는 또 다른 영화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놓고 경쟁할 생각이 없다. 다만 이 자리에서 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을 뿐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고백을 통해서 당신에게 내가 친구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하긴 여기가 아니라면 어디서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두 번째. 사샤 기트리. 아직 단 한 번도 여기서 사샤 기트리의 회고전이 없었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이다. 게다가 거의 이야기도 되지 않는다. 언제나 르누아르. 언제나 브레송. 언제나 고다르. 나는 사샤 기트리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할 친구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하지만 불행히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러므로 이 선택은 친구를 찾는 나의 애절한 호소이다. 우리가 우정을 나누는 방식. 나는 사샤 기트리가 장 르누아르나 브레송만큼은 아니지만 마르셀 카르네나 줄리앙 뒤비비에보다는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장 콕토보다 본질적으로 시적이다. 사샤 기트리가 없었다면 장 으스타슈가 가능했을까. 앙리 랑글루아는 훨씬 더 확신을 갖고 프로그램을 썼다. “사샤 기트리는 미조구치 겐지, 빈센트 미넬리, 더글라스 서크, 로베르토 로셀리니처럼 중요하다. 이 말은 이상하다. 그렇다. 사샤 기트리는 영화사에서 그렇게 이상한 자리에 있다.” 내가 사샤 기트리를 처음 본 곳은 프랑스 문화원이었다. 그때 나는 사샤 기트리의 중요함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던 친구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나는 세대를 건너뛰어 이제 다시 당신에게 동의를 구한다. 하지만 사샤 기트리의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를 잘 알게 된 것처럼 말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내 꿈 중의 하나는 살아생전 사샤 기트리의 전작 회고전을 보는 것이다.


세 번째. 카르멜로 베네를 가장 먼저 언급한 사람은 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였다. 파솔리니는 경외감을 안고 베네를 ‘나의 위대한 동지’라고 불렀다. 그 다음은 고다르이다. 고다르는 베네의 영화를 본 다음 달려가서 로마에서 그의 연극 무대를 보았다. 질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에 관해서 한 권의 책을 헌사 했다. 하지만 시네필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를 말하면서 연극에 한정 지어 설명한 것은 좀 의외이다. 들뢰즈가 카르멜로 베네에게 바친 한 권의 책 『중첩』은 들뢰즈의 유일한 연극에 대한 책이(라고 나는 알고 있)다. 그런 다음 영화에 관한 두 번째 책 『영화 2; 이미지-시간’의 제 8장 ‘영화, 신체, 그리고 뇌, 사유』에서 짧게 다루고 있다. 하지만 들뢰즈는 카르멜로 베네가 이미지-수정체를 건설한 가장 위대한 시네아스트 중의 한 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런 다음 들뢰즈는 여기서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알랭 레네, 장-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그리고 미래의 민중영화를 이야기한다. 카르멜로 베네의 위치. 나는 좀 더 많은 카르멜로 베네의 영화를 보고 싶다.


인사. 그렇다. 우리는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더 많은 영화에게 인사를 해야 한다. 우리들의 두 번째 십 년. 우리들의 21세기의 두 번째 시작. (정성일_영화평론가)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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