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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6.09 "잊을 수 없는 어떤 순간을 그리고 싶었다"

5월 작가를 만나다 -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

지난 5월 15일 저녁 서울아트시네마의 대표적인 정기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행사가 열렸다. 상영작은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 이날 극장 안은 개봉한지 꽤 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들이 함께 해 <사랑니>에 대한 여전한 팬심을 보여주었다. 사랑의 시작과 끝, 매혹, 그에 대한 기억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만들었다는 <사랑니>에 대해 정지우 감독과 관객들이 나눈 시네토크 현장의 일부를 이곳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사랑니>는 어떤 영화였고, 또 어떤 생각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지?
정지우(영화감독): 긴 시간 독립영화를 하다가 <해피 엔드>로 장편 상업영화 데뷔를 하게 됐고, 그게 생각이 많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를 정말 잘 해보고 싶다고 열렬히 고민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5년 만에 영화를 하게 됐다. 하고 싶은 기분 그대로 끝까지 가서 만들었다.

김성욱: 이 영화는 어떤 이미지에서 시작 되었는지 아니면 어떤 이야기에서 착상 됐는지 궁금하다.
정지우: 여기 여자 관객 분들이 그동안 연애한 남자친구들을 하나하나 생각을 해보면 어떤 공통점이 있을 거다. 자기가 매혹되는 어떤 포인트가 있는 것 같다. 시작과 끝이 맺어져 있고, 매혹은 바뀌지 않고, 그런 기억들은 놓치지 않고 만들어야 되겠다는 기분이 있었다.

김성욱:
과거와 현재의 두 인물이 반복되고 치환되고, 또 보상 같기도 한데 영화 안에서는 그게 또 일관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우: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대로이기도 하고 바뀌기도 하는 수많은 것들이 과거의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또 다른 이미지로 되고, 이러면서 사람은 조금씩 변화하고. 영화를 마치면서 그래도 살만한 거 아니냐는 기분을 끝까지 던진 것 같다. 반복과 변주가 뱅뱅 돌면서 답답하고 괴롭기 보다는 변하고 달라지고 있는 것은 맞다.

김성욱: 공간들이 특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정지우: 공간에서 한옥을 사용했는데 안과 밖이 섞여 있는 공간으로서의 한옥이 너무 좋았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전체적으로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고 과거의 장면 같은 것은 대단히 모던하고 현대적인 공간으로. 그것이 서로 섞이는 그런 계획으로 구성되고 촬영됐다.

김성욱: 이 영화에서는 사실적인 레벨보다는 조금 떠 있는 듯한 순간들이 있다.
정지우: 현실의 물리적인 법칙들로부터 벗어난다든가 하는 그런 어떤 순간, 잊을 수 없는 순간들을 영화적으로 묘사하고 싶은 꿈이 있다.

김성욱: 그럴 경우에 배우들을 설득하는 편인가?
정지우: 배우가 불편해하는 건 거의 안 하는 편이다. 연애할 때 발이 땅에 안 닿아있는 기분, 그런 말로 설명을 했는데 이심전심으로 알아듣는 그런 상황들은 감독으로서 행복하다.

관객1:
어떻게 보면 어린 인영이 서른 살로 점프하는 꿈을 꾸는 걸로 보인다.
정지우: 그것이 구별되지 않는 상태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관객2: 혹시 2편을 만드신다면 사랑니를 빼버릴 건지, 놔둘 건지 궁금하다.
정지우: 그냥 아픈데 못 뽑는 상태를 또 만들고 싶다.

관객3: 인영이와 동거하는 친구 정우의 캐릭터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드린다.
정지우: 에로틱한 우정, 너무너무 좋은 내 편인 친구 같은 캐릭터를 원했다.

관객4: 이수가 지구본을 좋아한다. 특별히 지구본을 설정한 이유와 석이가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장면, 김정은이 모텔에서 화분을 들고 도망 나오는 것, 마지막 장면에서 정유미의 뒤에 배경으로 나왔던 벚꽃이 너무 화사한 이유 등을 묻고 싶다.
정지우: 같은 프레임 안에 소년이 지구본을 갖고 있는 상태가 되게 하고 싶었다. 엘리베이터 공사는, 일상적인 공간임에도 위태롭고 휘청한 느낌을 영화에서 만들고 싶었다. 벚꽃, 그렇게 하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그랬다. 여관에서 화분을 갖고 도망가는 건 그게 훨씬 더 재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관객5: 금기관 같은 게 있는가?
정지우: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이야기를 지지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 않다.


관객6: 영화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이것만큼은 꼭 찍어보고 싶었다는 어떤 이미지라든지 설정 같은 게 있다면 무엇인지 혹은 영화를 찍다가 우연하게 충동적으로 찍고 싶었던 장면이 있다면?
정지우: 용기를 얻고 살만하다고 여기는 서른 살 조인영의 마음을 놓치지 않고 만들려고 했다. 정유미 양이 일식집에서 전화를 받고 난 다음에 뛰쳐나와서 김정은 씨한테 다가오던 장면이, 계획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카메라가 배우의 움직임을 어쩔 수 없이 따라가는 움직임이 생겼다. 그런 순간이 너무너무 행복하다.

김성욱: 정유미 씨가 양호실에서 드러눕고 양호선생님이 구두를 갈아 신는 장면이 있다.
정지우: 운동화신고 완전히 나자빠진 유미랑 구두신고 좋은 사람 만나러 나갈 것 같은 양호선생님이 한 공간에 있는 걸 찍고 싶었다.

김성욱: 이 영화 다음에 <모던보이>가 있고, 그리고 나서도 2년 정도 이상의 시간이 지났는데 이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갖는 의문과 질문들도 있었을 것 같다.
정지우: 2000년대 중반부터 와이드 릴리즈가 급격히 들어오고 다양한 영화들을 보기가 점점 어려운 환경으로 가고 있다. 나는 동시대 관객한테 말을 걸고 현실에 영향을 미치려고 영화를 시작을 했고, 그것을 포기한 건 아니기 때문에 힘겹기는 하지만 그 끈을 놓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한 번 해보고 싶다. 절충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만들겠다. (홍성원)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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