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님들과 함께하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7일 오후에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을 주제로 열렸다. 최근 2년 사이 동안 데뷔작을 선보인 김기훈, 박진성, 백승화, 신수원, 장건재, 오영두, 홍영근 감독 등 8명의 작가들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데뷔작을 선보인 이후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들의 고민과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타이틀과 연동하여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는데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이라는 주제로 8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데뷔작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 혹은 새로운 방식의 작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 개별적인 작가들의 영화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모여 하나의 연대비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갖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데뷔작을 만들며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기획들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자구책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박진성(영화감독): 관객으로서 원래 장르영화, 그 중에서도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개봉된 웬만한 공포영화는 모두 보는 편이고, 그게 즐겁다. <마녀의 관>에는 인형극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일본에서 하는 분라쿠라는 인형극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이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경험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그런 기억과 함께 어렸을 때 읽었던 <마녀의 관>이라는 작품이 결합되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1억 미만의 예산에 비해 효과가 볼만하게 나왔다면 다행이지만, 여러 가지로 요령이나 눈속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공포영화인 <이웃집 좀비>의 경우 특이하게도 집단창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집단을 구성되게 된 과정은 어떤가? 
오영두(영화감독): 사실 창작집단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고 나니 이름이 필요했는데, 제 아내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그냥 그 앞에 키노만 붙여서 키노 망고스틴을 만든 것이다. (웃음) 일단 저와 장윤정 씨는 부부사이고, 홍영근 씨는 군대에서 만나게 되어 쭉 같이 지내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류훈 씨는 <텔 미 썸딩>이라는 영화를 할 때 처음 만났는데 뒤에 다시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뭔가를 해보자고 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 시기에 다들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만들게 된 경우라서 크게 계산을 했던 부분은 없다. 저희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뭔가 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캐주얼하고 심각하지 않은 관계다. 옴니버스 형식 역시 처음부터 그런 기획을 했던 것이 아니라, 류훈 씨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투자가 잘 되지 않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단편을 찍되 그것을 한 대여섯 편 묶으면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좀비 아이디어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홍영근(영화감독): 정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노는 식구들이 영화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참여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 도와줄 수도 있고.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이다.

김성욱
: 김기훈 감독의 경우에는 <이파네마 소년> 이전에 다큐멘터리나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은, 완전히 장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청춘 로맨스물이다.
김기훈(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영화 마니아로 감독의 영감이나 동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갖고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매체적인 특성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있는 장르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매체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영화 작업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관객들은 역시 영화를 장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장르나 관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 스릴러 작품이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너무 지겨웠다. 칙칙한 스릴러의 서스펜스만 생각하다보니 더 늙기 전에 샤방샤방한 멜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 바람>도 일종의 청춘물이다. 청춘영화라는 특정한 카테고리의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 같은데.
장건재(영화감독): 사실은 전에 준비하던 시나리오도 일종의 성장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에는 소설을 각색해보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원래 제가 갖고 있었던 <회오리바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편 규모의 시나리오를 버전 업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아주 많이 반영된 이야기인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형태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데뷔작들이 감독 스스로의 어린 시절이나 청춘기를 그리는데 그런 영화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작은 규모로 자신의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만들면 스스로 어떤 면에서 충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사실 <회오리바람>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제법 꼴이 갖추어진 영화로 나온 편이다. 사실 기획을 할 때는 <이웃집 좀비> 감독님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어진 조건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절감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었고, 시나리오와 제작까지 오랫동안 준비를 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쓰고 바로 찍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최초의 기획이었다.

김성욱
: 신수원 감독님의 <레인보우>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동시에 음악이 부분적으로 매개되어있고 영화를 만든다는 자각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편 극영화로 맞춰나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신수원(영화감독): 34살에 영상원에 들어갔으니 굉장히 늦게 영화를 시작한 편이고, 그 이후로 충무로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레인보우>는 제작방식이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상업영화 같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듣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애초에 영화사에서 작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투자사에 팔리면서 감독 명함이 두 번 정도 생겼었다. 2006년에 충무로에 붐이 일면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될 때 제 영화도 들어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었다. 그 이후에 바로 거의 쓰나미처럼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기 힘든 상황이 왔는데, 써두었던 고등학생 밴드에 대한 시나리오를 들고 그나마 돈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영화사로 갔다. 재미있게 보셔서 일단 계약을 하고 다시 감독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사 역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결국 다른 데 가서 그 시나리오로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1년 후에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제가 있었던 영화사는 거의 섬 같은 공간이었다. 다른 영화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감독들에게 월급까지 줬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1년 정도 그 시나리오를 혼자 다시 고쳤다. 당시가 막 2009년이 된 시기였는데, 올해 안에 영화를 찍겠다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한 거다. 그렇게 시작했고 작업을 준비하면서는 그냥 자유롭게 열어두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을 하면서 생긴 한 가지 원칙은 의미 없이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거다. 앞으로 상업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고 독립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되든 스스로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음악영화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백승화 감독은 원래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음악 다큐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저는 하는 일이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취미도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 다큐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니까, 좋아하고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악 다큐나 음악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목마른 부분이 있었다. 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저는 인터뷰 할 때마다 스스로 근본이 없는 놈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부담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 꼭 개봉을 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음악과 영화가 다른 점이, 음악은 사실 적은 돈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영화는 큰돈이 드는 작업이다. 누군가 투자를 해주고 그걸로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그냥 즐기는 걸 넘어서서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경우에는 음악 다큐가 잘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음악 영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영화로 음악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잘할 수 있는 것 먼저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신수원 감독님의 표현대로 요즘의 상황은 데뷔 감독들에게 엄청난 쓰나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전보다 장편 데뷔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장편 데뷔를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된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가 갖는 어려움도 있을테고, 동시에 어떤 제도 안에 들어간 것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날 때는 또 다른 고민이나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장건재: <회오리바람>을 기획하고 민들 때는 이 영화를 시장에 소개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영화제들로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나 시나리오를 쓸 때, 회의 할 때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비슷한 규모의 영화 몇 편을 롤 모델로 삼고, 그런 영화에 참여했던 분들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전략을 짜보았다. 사실 영화제로 너무 유통이 되면 어떤 아트하우스용 영화처럼 비쳐지게 될 것 같았고, 저는 그것을 그리 원하지 않았다.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이야기를 하자면 마케팅과 배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인데, 직접 제작과 연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극장까지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공부하는 자세가 있었다. 고민스런 부분은 배급이다. 당시에 멀티플렉스들의 상영 시설이 디지털 영사 시스템으로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파일로 배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급 비용을 조금 줄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했지만 그렇지도 않더라. 또, 이전에는 독립영화 편수가 지금보다는 적어서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조금 더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10개관에서 10명씩 보는 것 보다는 1개관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나는 것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영두
: 개봉관이 8, 10, 15개관 되더라도 교차상영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 저는 이번에도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장건재 감독님 말씀대로 단관이나 한두 개 상영관을 쭉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차상영을 하게 되면 특정 시간에 맞춰 특정 극장에 가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어느 극장에 가면 그 영화는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낫다. 계속 상영해줄 수 있는 환경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또 지금 상업영화도 그렇지만, 마케팅비의 개념 자체가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찾아서 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거나, 집에서 TV를 보거나, 극장에 가면 또 다른 영화들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다 돈인데 그렇게 광고를 뿌리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들은 다 묻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를 찾아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소위 자본의 논리로 조금 더 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영화들의 꼭 개봉관이 아니어도 100인치, 200인치짜리 스크린을 놓고서라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국가의 공적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박진성: 말씀하신대로 촬영하고 개봉 준비할 때까지는 사실 그것만 목표로 삼고 달려오다가, 막상 <마녀의 관>처럼 전국 2개관 개봉, 전국 관객 수 500명, 이렇게 되면 이게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제가 고민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라는 것의 단초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 해결이 되는 문제인지조차 사실은 자신이 없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어떤 부분에서는 기초가 잘못 되어서 극단적으로는 부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더 많은 지원이 주어져서 제가 혜택을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해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김기훈: 앞선 감독님들 말씀에 많이 공감했다. 저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시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었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배급의 문제로 고민들이 귀착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감독으로서 포괄적인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선순환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 사실상 힘들 것 같다. 데뷔작을 만들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부분이고, 어떤 것이든 간에 한국영화에 지금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그 영화들 끼리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극장개봉에 모든 수익을 의존해야 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창작자들의 고민을 대변해줄 어떠한 조합이나 단체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스템 안에서 그냥 그런 영화를 만들든지, 자신의 색깔이 확실히 할 수 있는 영화를 시스템 밖에서 만들든지.


백승화: 사실 마케팅과 배급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줄 몰랐다. 장편 개봉을 하면서 저 역시 처음 그런 방식이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냥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먹고 사는 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다. 사실 이런 논의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꼭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 역시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전부터 논의들은 계속 있어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저는 다음 작품으로 음악 영화를 하다 보니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하다가 사람들이 들을만한 것이 되면 투자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만드는 사람 역시 끊임없이 다른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데뷔를 하신 분들이니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다. 지속가능한 제작이 어떻게 가능할지, 끝으로 데뷔 작가로서의 향후 전략이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오영두: 어차피 지금뿐만이 아니라 영화 시장 안에서 늘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영화나 상업영화나 힘들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면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업영화로 올라가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때, 잊지 말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저예산에서 시작을 했다가 50억짜리 영화를 찍고 나면 다시 또 60억을 찍으려고 6, 7년 정도를 마냥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명함만 감독이지 영화를 10년 이상 찍지 않는 감독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베이스를 잊지 않고,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잊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승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주신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만들면 되는 것 같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기훈: 사실 신인감독들이 대부분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래한다. 예전에는 계약을 하고, 진행비를 받으며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진 상황이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생존하기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제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것이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창작의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하려면 배급이나 부가판권, 기타 여러 가지 어떤 방식으로든 저변 확대가 필요한 것 같다.


장건재
: 저는 여전히 저예산 작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 <낙타들>이라는 영화를 연출하셨던 박기홍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이 생각난다. 스스로의 영화에 대한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 저작권이나 판권의 문제에 단순히 창작자나 예술가로서의 태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세일즈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또는 마케터로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전 안에서 자기 시스템을 고민해가면서 일단은 각개격파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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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박진성 감독의 ‘마녀의 관’

지난 30일 저녁, <마녀의 관> 상영이 끝난 후 영화를 연출한 박진성 감독과의 시네토크가 있었다. 영화가 그려내는 아름다운 공포에 대해 진중한 말투로 짚어나가던 박진성 감독과의 솔직담백한 대화의 시간을 이곳에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오늘 보신 영화의 연출자인 박진성 감독을 모셨다. 전에 시나리오 작업했던 영화 <기담>도 그렇고 오늘 상영한 데뷔작 <마녀의 관>도 그렇고 다 공포물이다. 원래 괴담과 기담에 관심이 많았던 것인가?
박진성(영화감독): 무서운 영화를 좋아하는 편이기도 하고 아름다운 공포 쪽에 매료되는 지점이 많은 것 같다.

허남웅: 시나리오는 동생분과 같이 작업하셨고, 편집을 맡으신 분은 부인이시다. 주변의 지인이나 가족들과 작업을 하시는 게 편해서 그렇게 하신 것인지 아니면 상황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하다.
박진성: 동생과는 시나리오를 항상 같이 쓴다. 동생의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편집 역시 아내의 방식을 좋아한다. 오래된 친구들과 작업하는 것이 마음 편하기도 해서 그렇게 작업한 것 같다. 오늘 객석에 자리한 미술감독 역시 오래된 친구이다. 그런데 이 작품 하면서 헤어질 뻔 했다. (웃음) 어쨌든 그런 부분들이 참 좋고 계속 같이 작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허남웅:
<마녀의 관>은 고골의 <VIY>라는 작품을 각색한 영화다. 어떻게 해서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게 되셨는지?
박진성: 어릴 때 집에 청소년 세계명작 시리즈 같은 문고판 책들이 있었다. 그 중에 <마녀의 관>이라고 해서 어린이용으로 줄인 버전의 책이 있었다. 그 책에 삽화가 굉장히 무서웠다. 철이 들어서 다시 읽어보니 아름다운 구석이 있더라. 대부분의 데뷔작들이 그렇겠지만 언젠가 이걸 영화로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다, 하는 부분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것 같다.

허남웅: 아름다운 공포라는 것이 이 영화의 핵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에 시나리오 작업하신 <기담> 같은 경우도 굉장히 미적인 부분이 돋보였던 이야기였다. 공포 중에서도 특히 아름다움과 관련한 부분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박진성: 말씀하신대로다. 아름다운 것에는 폐쇄적인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공포영화는 굉장히 피하고 싶은 감정을 다루는 장르 아닌가. 동시에 하위문화로 취급되는 장르이기도 하고. 그런 부분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진다는 생각이 든다.

허남웅: 영화는 3부 구성으로 되어있다. 고골의 원작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영화만 봤을 때는 원작을 조금 느슨한 형태로 각색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3부 구성이라는 것이 굉장히 특이하게 느껴지는데.
박진성: 사실 고골의 원작은 2부의 연극 이야기에 거의 그대로 옮겨져 있다. 1막, 3막의 이야기는 말씀하신대로 원작과 느슨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짧은 이야기를 여러 개 쓰는 게 훨씬 즐겁다. 또한 특히 공포영화의 경우에는 짧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늘리면 굉장히 힘들어지는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관객들에게 옴니버스란 그리 친절한 구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이야기로 밀고 나가는 장편을 만드는 요령에 대해 조금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다.
허남웅: 최근에 시나리오 작업하는데 있어서도 그런 연습을 하고 계시는지?
박진성: 그렇다. 어떻게든 액자 구성이나 에피소드의 나열 같은 것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공부하려고 한다. 하지만 또 짧은 이야기들을 쓰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어서 마음을 다시 다잡고 쓰곤 한다. (웃음)

허남웅:
이렇게 말씀하시긴 했지만 <마녀의 관>의 각 에피소드들이 이어지는 부분도 많이 등장한다. 그런 부분으로 인해서 느슨하지만 장편의 구성이 만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동시에 이 영화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은 본다는 것에 대한 질문이다. 마지막 커튼콜에 장님으로 등장하는 캐릭터도 있고, 2부에서는 무대와 현실이 교차되고 1부 역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든다. 이런 부분을 통해서 보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같다.
박진성: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 동시에 그것을 해석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안에 있으니까 밖에 나가서 해석할 수가 없다. 그런데 방금 말씀을 듣고 나니 그렇게 읽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직하게 말씀드리자면 그런 부분을 서브텍스트를 가지고 이야기를 만든 것은 아니다. 대신 다소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동일 사건을 볼 때도 사람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지 않나. 1막의 기분 나쁜 감독의 경우에, 본인에게는 정말 절실한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저 같은 사람이 볼 때는 뭔가 이상하게 자의식만 비대해진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다. 굉장히 불행해 보인다. 반면에 3막의 인물 같은 경우에 굉장히 비루하게 볼 수도 있겠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 그것 역시 제가 볼 때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바라보는 지점의 차이를 모든 에피소드에서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지어낸 것 같다.

허남웅: <마녀의 관>은 시각적인 공포를 준다기보다는 분위기를 유도하면서 공포를 주는 영화인 것 같다. 배우에게 이런 부분들을 이해시키는 작업이 어떨지 굉장히 흥미롭게 느껴졌다. 배우에게 영화를 이해시키기 위해 어떤 과정들을 거치셨는지?
박진성: 정승길 씨는 연극도 오래 했고, 굉장히 영리한 연기자이다. 그래서 시나리오에 대해 둘이서 회의를 한다거나 하는 작업을 거칠 필요를 거의 못 느꼈다. 워낙 준비를 많이 해 오시는 분이다. 자신이 해석해서 ‘이렇게 하겠다’고 가져온 것들이 대부분 제가 하려고 했던 것과 일치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경우가 거의 없었고, 설사 그럴 경우에도 제 의견을 이야기 하면 바로 그렇게 한다. 그쪽으로도 준비가 되어있다는 이야기다. 사실 개인적으로 시나리오가 어떤 의미를 전달해야하는가에 대해서 조심스러워하는 편이다. 사실 따져보면 극 속에 있는 인물은 자기가 관객들에게 어떤 느낌을 자아내야 하는지 그 목표에 대해 모르고 있어야 맞는 것이지 않나. 배우에게도 첫 대사, 그리고 그 전의 5분 정도의 상황만 준비해서 오면 된다고 주문했다.

허남웅: 여자 주인공 임지영 씨 같은 경우는 처음 영화에 출연하신 신인배우라고 들었다. 특히 첫 번째 ‘이상한 여자’ 같은 경우는 임지영 씨라는 배우가 갖고 있는 분위기가 영화의 분위기를 지배한다고 느껴진다. 감독님이 캐스팅 하실 때 공을 들이셨을 것 같은데, 그 과정은 어땠는지?
박진성: 미술감독의 친구 분이 소개를 시켜주셔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들어보니 러시아의 영화 학교에서 연기 전공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별로 안 된 배우였다. 사실상 볼 수 있는 전작이 없기 때문에 연기를 잘 하는지 어떤지는 사실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본인이 연극했던 DVD를 주더라. 4년 동안 훈련된 연기를 전공한 연극배우인 셈이다. 영화 속의 캐릭터처럼 음험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든가 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무척 밝은 사람이다.


허남웅: ‘이상한 여자’ 같은 경우는 일종의 영화에 대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감독님은 이 영화를 연출하시기 전에 <기담>의 시나리오를 쓰시기도 했고, 토니 레인즈가 만든 <장선우 변주곡>에서는 라인 프로듀서로 계셨고,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메이킹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편집하시기도 하셨다. 이렇듯 영화 현장에서의 경험이 많으셨기 때문에 ‘이상한 여자’가 영화에 대한 영화가 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데.
박진성: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은 1년 넘게 촬영했던 것 같은데 메이킹 기사로 활동할 때 굉장히 즐거웠다. 100명 가까운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당연히 여러 가지 문제가 있긴 했지만 즐거운 기간이었다. 말하자면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다들 존중받은 자격이 된다는 생각을 했다. ‘이상한 여자’의 경우에는 영화 만드는 일을 소재로 삼고 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영화에 대한 영화, 즉 메타 영화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메타 영화라고 하려면 영화 만들기, 혹은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 질문을 하려면 영화를 많이 찍어봐야 할 것 같다.

허남웅: ‘이상한 여자’에 등장하는 감독은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이 작품이 감독님에게는 첫 연출작이기도 했는데, 연출 할 때의 과정과 경험도 궁금하다.
박진성: 1막에 나오는 감독 같은 사람들이 싫다. 굉장히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은 알겠지만 사실 그것은 다른 사람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런데 이 감독은 주변 사람들을 아프게 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될 텐데, 하는 공포는 있다. 그에 비해서 <마녀의 관>에 대해서는 후회가 없다. 영진위 제작 지원을 받아서 촬영을 하게 되었고, 흥행의 부담 같은 것도 전혀 없었다. 문제는 스텝들이 굉장히 고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또 제가 성격상 스텝들한테 고맙다는 이야기를 못한다. 고맙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없다. (웃음) 어쨌든 저는 현장에서 굉장히 즐거웠다. 사실 저만 좋았다. 다른 사람들 다 힘들었는데. (웃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수월하게 촬영했다.


허남웅: 이제 정리할 시간이다. 끝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들고 싶다.
박진성: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나리오, 어떻게든 우격다짐을 해서라도 제작사를 통과시켜서 빨리 찍을 생각이다. 오늘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와주셨으니 다음에는 좀 더 볼만한 작품으로 찾아뵙겠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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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만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를 주목해서 볼 것을 주문했다. 특히 “장편 데뷔작 중에서 발견의 희열을 제공하는 작품이 많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양익준의 <똥파리>, 손영성의 <약탈자들>, 백승빈의 <장례식의 멤버>, 노경태의 <허수아비들의 땅> 등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두드러진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부산에서도 이 프로그래머는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한국영화 중에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많다.” 홍상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찌질한 연애담에 우디 알렌의 입담이 더해진 것 같은 소상민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 형부와 처제의 금지된 사랑을 다양한 회화적 묘사를 통해 풍요롭게 만드는 임우성의 <채식주의자>,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카페 느와르> 등 이들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종류와 시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주류의 한국영화가 철저히 계산된 연출과 규모의 경제학 속에 고만고만해진 사이, 고전적인 연출에 안주하지 않는 창의적인 영화문법, 사회가 처한 현실에 한눈팔지 않는 의식적인 이야기, 주류에 손 벌리지 않고(?) 자신만의 제작방식으로 개봉에 이르는 전략까지, 눈길을 끄는 한국영화의 목록은 주류 바깥에서 신투차세대(新偸次世代), 즉 장편 데뷔작을 발표한 ‘신진작가’들에 의해 다시 쓰이는 중이다.

참신한 재능이 일군 낯선 이야기

2010년과 2011년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 중 <빗자루, 금붕어 되다> <이파네마 소년>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혜화, 동> <파수꾼> 등등,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의 영화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주류에서였다면 이중 상당수의 영화가 아마도 원 제목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극중 이야기를 쉽게 함축하는 제목이야말로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주류영화계에 팽배한 까닭이다. 바꿔 말해, 대부분의 주류영화가 예상 가능한 이야기 속에 연출을 운용하는 것에 반해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가늠하기 힘든 제목과 설정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펼쳐가며 관객의 흥미를 돋운다.
예컨대,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신림동 고시원을 무대로 주인공 장필(유순웅)의 일상을 리얼한 필체로 묘사한다. 얼핏 제목과 극중 이야기가 전혀 연관되지 않지만 김동주의 말에 따르면, “빗자루는 고시원 총무의 상징이다. 빗자루로 늘 복도를 쓸기 때문에 장필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금붕어는 그가 키우는 생명체다. 어항에 담겨있고, 갇혀 있다. 그 두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지만 고시원 속에 갇힌 장필의 처지는 초현실에 육박할 만큼 고난에 처한 상황임을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사실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보여주는 배경과 말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렇기에 또한 외면 받는 현실이다. 그것은 곧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류영화계가 꺼리는 소재로 작용해왔다. 하여 2010년과 2011년의 신투차세대들이 보여주는 영화는 무심히 지나칠 뿐 아니라 마주보기 꺼려하는 현실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참신한 종류의 재능이라 할만하다. 지금 한창 호평을 받고 있는 민용근의 <혜화, 동>은 18세에 낳은 아이가 살아있는지 모른 채 생활해온 23세의 ‘혜화’(유다인)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린 나이에 낳았다는 이유로 미혼모인 그녀가 ‘아이’(童) 때문에 이 땅에서 겪을 법한 고통과 절망을 ‘겨울’(冬)동안의 사랑이야기로 풀어간다. (이 작품은 또한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요소를 취함으로써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붙들어 맨다.) 2010년의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평가받는 장철수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여성을 착취하는 폭력적인 시스템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방관을 비판한다. 동시에 이를 향한 복남(서영희)의 잔혹한 복수를 하이라이트처럼 전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서술의 시도내지는 장르의 부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화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 홍영근, 장윤정, 오영두, 류훈의 <이웃집 좀비>, 이응일의 <불청객> 등이 속할 텐데 비슷한 구석 하나 없이 그들 각자의 장르와 이야기를 택하고 있어 흥미롭다.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 백승화가 연출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밴드를 다룬 음악다큐멘터리다. 흔히 음악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연상되는 공연 영상 대신 극중 밴드 멤버들의 일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에 더욱 집중한다.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은 2000년대 초반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붐을 이뤘다가 빠르게 관객의 외면을 받은 이후 맥이 끊긴 한국 청춘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당대 청소년의 심리를 반영한 영화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태훈(서준영)과 미정(이민지)의 사랑과 헤어짐을 묘사하되 감독의 섣부른 의견 개입 없이 방황하는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청춘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웃집 좀비>와 <불청객>은 요 몇 년 새 주류영화의 한 축이 된 장르물을 따른다. 다르다면, 두 영화는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정서와 괴리됐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시당했던 좀비물과 SF를 과감히 차용했다. 물론 <이웃집 좀비>의 경우,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좀비물은 아니다. 다만 이전의 작품들이 장르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이웃집 좀비>는 장르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녹아내며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소수자로써 고통 받고 차별받는 우리 이웃의 ‘좀비’를 다루며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날카롭게 세운다는 점에서 재미와 메시지 사이의 균형 잡힌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낯선 이야기에 적합한 화용론

 

<불청객>은 <이웃집 좀비>와 장르적 감성을 공유하지만 화용론 자체는 완전히 다른 영화에 속한다. 은하계 저 너머 안드로메다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응일의 B급감수성과 막장(?)상상력은 그동안 경직된 한국의 토양 위에서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다. 그러니까 <불청객>의 출현은 <고무인간의 최후>와 같은 유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일종의 사건에 다름 아니다. 자취방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하던 진식(김진식)과 그의 동생들이 외계로 납치된 후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불청객>은 빈약한 제작환경을 의도적인 조잡함과 유치찬란함으로 극복한 말 그대로의 독립영화다. ‘고작’ 2천만 원의 제작비와 ‘무려’ 5년의 제작기간이 대변하듯 상영시간 67분에 불과한 <불청객>은 별다른 투자와 지원 없는 각개전투 식 영화 만들기의 지난함과 고통을 능히 짐작케 한다.
그런 감독 이하 배우, 스태프들의 노고 여하에 상관없이 <불청객>에는 험난한 현실을 유희로써 극복하는 지금 세대의 특징적인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호환마마’ 운운하는 과거 비디오 영상물과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칩니다.’라는 문구만 보더라도 <불청객>의 감성이 맞닿아있는 지점은 분명하다. 청년백수가 양산되는 작금의 현실을 비관으로 일관하기보다 가벼운 유머의 소재삼아 툭툭 털고 일어서자는 젊은 세대만의 일종의 결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대가 인터넷과 게임으로 세대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공유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래서 종합예술매체로써 영화 역시 게임과 인터넷에 능한 감독들에 의해 기존의 화용론과 안녕을 고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미 2009년 장르의 경계가 모호했던 중편 <남매의 방>으로 새로운 영상언어의 출현을 알렸던 조성희는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에서도 예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모든 기기가 동작을 멈춘 시골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녀를 내세운 이 영화에서 조성희는 조이스틱을 다루는 것처럼 인물을 조종하고 단계를 넘어가듯 이야기를 작동시킨다. 게임과 다르다면, <짐승의 끝>은 유희를 목적으로 삼은 영화가 아니다. 단지 게임의 작동 방식을 극에 끌어들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들어있다. 그가 보건데, 이 세상은 사공이 많은 배가 아니다. 소수의 절대자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되고 은밀하게 운영되는 게임과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 <짐승의 끝>은 게이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 ‘게임 세대’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조성희와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생인 윤성현의 <파수꾼>은 올 상반기 한국영화 화제작이라고 불릴 만큼 정의하기 힘든 청춘의 모순된 이미지를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형태로 구현한다. 특히 한 고등학생의 자살 이유를 파헤치는, 어찌 보면 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윤성현은 인물별, 시기별로 장면을 교차하며 복잡한 양태 속에 가려진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처럼 진실은 개인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라서 <파수꾼>의 교차 서술은 극중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의 파장을 잡아내는 가장 적합한 이야기 형태라 할만하다.
이처럼 신인들의 영화에서 유독 두드러진 화용론의 운용은 한편으론 주류영화의 도식화된 서술법에 대한 반발로도 읽힌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들 영화에게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감지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서 결국 어떻게 말하는지 그 형식이 중요하게 영화의 만듦새를 결정하는 법인데 주류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용을 통해 재생산하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 좀 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는 작품들의 경우, 해당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끌어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관객의 취향과 타협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개성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부와 음악 하는 중학생 아들의 희망과 용기를 다룬 <레인보우>는 소위 클리셰(Cliché)라고 부르는 뻔한 장면이나 기승전결의 서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야기의 자유로움을 획득한 경우다. 정호현의 <쿠바의 연인>은 원래 쿠바의 사회주의와 춤과 노래가 궁금했던 감독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구성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연하의 남자친구 오리엘비스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면서 갑작스럽게 한국여자와 쿠바남자의 결합에 따른 사회적 편견에 대항한 인생 도전기로 개비되었다. 만약 주류에서 기획된 작품이었다면 촬영 중간 영화의 콘셉트가 바뀐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애초 영화에 대한 계획 없이 달랑 카메라만 들고 쿠바에 왔던 정호현은 무서운 흡수력으로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변수와 일탈을 끌어들여 다큐멘터리 특유의 재미로 치환, 희귀한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배경을 살펴본 바, 그 특징을 일러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 듯싶다. 과거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신(新)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박진성의 <마녀의 관>, 김기훈의 <이파네마 소년>, 김종관의 <조금만 더 가까이>가 보여주는 영화적 전략도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배경으로 뒷받침된 결과다. 러시아 작가 고골의 <비이 VIY>를 각색한 <마녀의 관>은 원작을 가진 여느 영화와 달리 세 가지 에피소드 구성을 통해 다채로운 변형을 가한다. 배우 오디션 현장이 배경인 1막 ‘이상한 여자’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연극무대를 끌어들인 2막 ‘마녀의 관’은 (3D로 촬영된) 무대극으로, 장님음악가의 환상을 그린 3막 ‘커튼콜’은 기담으로 구성한 것. 공통된 원작에 속하되 각기 다른 장르로 펼쳐 보이는 박진성은 <마녀의 관>을 통해 서사와 형식에 관한 일종의 영화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파네마 소년>과 <조금만 더 가까이>는 두 편 모두 사랑을 소재로 하지만 서술법이나 표현하는 방식은 특색 있는 제목만큼이나 상이하다. <조금만 더 가까이>가 설레는 첫사랑부터 감정의 앙금이 남은 이별 커플까지,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은 이성커플부터 권태를 느끼는 게이커플까지, 네 커플의 에피소드식 구성을 통해 무수한 관계의 교류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감정변화의 줄 잇기를 시도하는 현대적인 서술법을 선보인다면 <이파네마 소년>은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의 ‘두 번째 사랑’을 고도로 이미지화한다. 한국과 계절 주기가 정반대인 브라질의 이파네마 해변을 제목으로 차용한데 착안, 주인공 소년과 소녀의 경우를 둘로 나눠 현실과 공상을 오가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첫 번째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이미지와 형식으로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최근의 주목할 만한 장편데뷔작들은 이미지를 우선한 서사 전달과 형식 자체로 이야기와의 통일을 꾀하는 영화 만들기로 거칠게 요약이 가능하다. 다만 전략이라고 붙여도 무관한 이유는 주류영화계에서 잊어버린 영화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22일부터 4월 6일까지, 2010년과 2011년에 데뷔한 주요한 장편 14편을 모아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거창하게 ‘코리아 뉴 웨이브 Korean New Wave'라고 명명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영화계의 기저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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