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토크]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전략’ 기획전이 막바지로 접어들던 지난 4월 3일 일요일 저녁. 영화 <레인보우> 상영 후 신수원 감독이 관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영화를 찍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부라는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만큼, 실제로 영화를 촬영하고 제작하며 겪었던 고군분투를 들어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재치 있고 솔직한 대화로 객석에 웃음이 터져 나왔던 그 시간의 일부를 전한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독특하게도 학교 교사로 있다가 굉장히 늦은 나이에 연출자로 데뷔 했다. 그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신수원(영화감독): 2009년에 찍고 작년 11월에 개봉한 영화인데, 원래 좀 오랫동안 중학교 사회 선생을 하다가, 영화 첫 장면 같은 과정들을 좀 겪었다. 처음엔 학교생활이 너무 지겨워서 도망 칠 궁리를 하던 중 영화 학교 등록금이 싸기에 ‘여기 들어가서 좀 쉬자’는 마음으로 들어갔는데, 시나리오를 써보니 재미있고, 16미리 영화를 찍었는데 역시 재밌었다. 그 후 먹고 살기 위해 복직은 했는데, 보니까 내가 남편 몰래 꼬박꼬박 영화를 찍으려고 적금을 붓고 있더라. 그걸로 35미리 중편을 찍었다. 그런데 이렇게 한 다리 걸치고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스스로를 강제하고 싶었다. 방학의 어느 날 교장 선생님께 사표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영화를 시작하게 됐다.

허남웅: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디까지 본인의 이야기인가?
신수원: 도입부에서 선생을 하다 사표 쓰고 영화, 음악 영화를 준비한다는 것 등은 실제와 겹치는 부분인데, 프로듀서나 옆방 감독님 등 인물 설정은 영화적 장치를 위해 많이 바꿨다. 원래 제 옆방 감독님은 굉장히 진지하신 분이다. 운동도 안하시고. 실제랑 똑같이 간다면 다큐를 찍는 게 맞는 거라 생각했다. 주인공 지완도 나와 많이 다르다. 나는 그렇게 추리닝만 입고 다니지도 않고, 무엇보다 아들도 학교에서 맞고 다닌 적 없다. (웃음) 기타는 오히려 학원 조금 다니더니 흥미를 잃더라. 나 역시 뺨 맞아본 건 어릴 때 선생님한테 맞은 적 이후 없었던 것 같고.

허남웅: 특정 장르로 분류하기 힘든 영화다. 음악영화 같기도 하고 성장영화이기도 하고, 가족영화이기도 하고, 다큐적인 부분도 삽입되어 있다. 이런 모험적인 시도를 끝까지 밀어붙이신 이유가 궁금하다. 어떤 확신이 있었던 건가?
신수원: 원래 판타지를 좋아한다. 첫 시나리오도 싸이파이 장르였고 평소 공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심리상황을 대변하기 위해 개미에 대한 환상을, 이상으로써는 무지개를 자연스레 집어넣게 된 것 같다. 평이하게 가는 것은 스스로에게 재미가 없었다. 등장하는 ‘레인보우’란 음악 밴드는 일전에 음악영화를 준비하며 취재했던 ‘토닉’이란 실제 밴드다. 그 때 그 때 스케치해둔 장면들을 썼다. 이렇게 다큐적 측면과 리얼리티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 또 자막을 쓰는 부분에는 타이핑 소리를 넣기도 하고. 사실 이 시나리오를 쓰고 주변 친구들에게 보여줬을 때 ‘재미는 있는데 톤이 일정치 않아 걱정 된다’ 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몇 부분을 빼려 해봤지만, 그걸 빼면 ‘이게 뭐지’란 생각이 들었다. 원래 상업 영화를 찍으려다보면 일정한 톤을 따라가야 하는데, 스스로 거기에 대한 답답함을 느껴왔던 것 같다. 이번에는 적은 예산으로 독립적으로 가는 거니까 하고 싶은 데로 자유롭게 찍고 어떤 그림이 나오는지 보겠다고 촬영 전에 마음먹었다.

허남웅: 마음대로 찍는 게 가장 좋지만, 요즘 영화판이 주류 제작사와 투자사의 관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제작까지의 과정도 순탄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신수원: 애초에 상업영화 제작사나 투자사에 갈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적은 예산을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 그러다보니 배경도 옆방 감독님, 집으로 한정짓고, 펜타포트 페스티벌은 허락만 받으면 촬영도 가능하고 그림이 되기 때문에 넣었다. 원래 3천5백 정도의 예산이 필요했는데, 남편 몰래 숨겨놓은 퇴직금 2천5백만원이 있었다. 나머지 천만원이 필요했는데, 어려운 와중에 지인이 이 시나리오를 좋게 보고 장기대출로 돈을 빌려줬다. 사실 후반에 돈이 더 들어가서 총 4천7백만원 가량 들었다. 마지막에는 아르바이트나 일이 들어오면 고맙게 받고 다했다. 근데 저예산이니까 스태프들에게 돈을 거의 못주고 노개런티로 진행하느라 어려움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촬영 회차를 적게 가야해서, 20회차에 한번 보충해서 찍었는데, 절대 놓칠 수 없었던 부분은 어떻게든 찍었지만 대신 포기 가능한 부분은 빠르게 포기했다. 지금 영화를 봐도 그런 부분이 보이는데, 그건 영화라는 게 여건 내에서 찍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아무래도 음악 영화다 보니 돈이 후반에 더 들었다. 이번에 영화제 버전으로 틀어달라고 했는데,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에 나온 한국 밴드와 외국 밴드의 곡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이라 개봉 때 뺐었다. 대신 기획전에서만 틀고 있다. 힘들었지만 배운 점이 많았던 것 같다. 특히 감독이지만 연출 뿐 아니라 프로듀서 역할도 겸해야 했던 것. 또 작은 규모의 영화에 대한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허남웅:
지난 1월에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로 작가를 만나다 행사를 진행했는데, 한 관객분이 힘든 상황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위기가 닮아서 <레인보우>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 둘은 분위기가 굉장히 다르다. <레인보우>의 톤은 힘든 상황에도 되게 밝다. 처음부터 이런 밝은 분위기를 의도한 건가?
신수원: 원래 성격은 우울한데 시나리오는 늘 코미디다. 처음에 써서 팔았던 시나리오도 코미디었고, 밴드 이야기도 소소한 코미디였다. 레인보우는 처음에 좀 진지하게 접근했었는데, 쓰다가 던져버리게 되더라. 그래서 ‘에라 이렇게 된 거 그냥 재밌게 쓰자’고 생각했다. 물론 아주 웃기진 않지만. 중간 중간 의도적인 건 아닌데, 그냥 관객들이 재밌었으면 했다. 촬영할 때 배우분이 시나리오 찢는 부분에서 감정이입이 되어 울었다. 그 전까지는 이해를 못했는데, 감독의 마음이 어떤 건지 알 것 같다고 하더라. 근데 그 때 그 장면을 킵 하고, 배우에게 울지 말기를 부탁하고 다시 테이크를 갔다. 그 장면을 웃기게 혹은 슬프게 느끼는 건 관객의 몫이라고 봤다. 훌쩍이는 소리도 넣었다가 빼고 기계가 지잉 울리는 소리로 대신했다. 그게 제가 영화에서 원했던 톤이었던 것 같다.

허남웅: 배우들 캐스팅 과정도 흥미롭다. 아들 역의 백소명군 경우는 강호동의 ‘스타킹’에도 나온 음악 하던 친구라고 들었는데.
신수원: 사춘기 소년이 변성기의 목소리로 아주 열심히 노래하는 장면으로 끝났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고로 일단 변성기의 중학생이 필요했고 기타를 직접 칠 줄 아는 게 연기보다 중요했다. 그런데 조건에 맞는 배우가 없었다. 결국 촬영 앞두고 인터넷을 막 뒤지다가 초등학생 밴드 ‘페네키’를 보았다. 기타 치는 백소명군을 검색하니 중학교에 반까지 나오기에 연락을 해서 만났다. 원래 초등학교 때는 장발에 간지폭풍(좌중 웃음)이었는데 딱 시나리오에서 튀어나온 듯한 보통의 중학생이 있었다. 영화 해볼 생각 없냐고 물었더니 음악만 한다고 답하더라. 바로 이게 필이라며 또 그 모습에 반했다. 다음 날 어머님께 소명이가 한다고 했다며 전화가 왔다. 어떻게 된 거냐고 했더니 소명이가 ‘엄마 워낭소리가 독립영화였지’라고 물어봤다고 하더라. (좌중 웃음) 2,3백만 들 줄 알았는지 흔쾌히 오케이 해줬다.

허남웅: '레인보우'라는 제목도 갖가지 색이 영화랑 무척 잘 어울리는 한편 평이한 감이 있어서 고민도 있으셨을 것 같다. 영어 제목인 'passerby#3'가 더 멋있는 것 같기도 하고.
신수원: 처음 시나리오 쓸 때는 레인보우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다. 어떤 책에서 ‘음악은 칼라다’라는 문구를 보고는 ‘그래 음악은 도레미파솔라시지만 빨주노초파남보일 수도 있겠다’는 연상이 됐다. 또 레인보우라는게 이상이란 의미도 있잖나. 근데 시나리오를 다 써놓고 나니까, 아들이 “엄마 나는 엄마 영화에 행인3으로 출연하고 싶어”라고 했던 대사가 자꾸 생각났다. 그래서 ‘행인3’으로 제목을 고쳤다. 근데 집안 촬영 할 때 정말 우연히 무지개가 떴다. 황급히 찍어놓고는 막상 편집 땐 무지개가 제목인 영화에 무지개는 좀 촌스러운 것 같아서 안 쓰려고 했다. 그런데 편집기사님이 좋은 데 왜 안쓰냐며 넣으셨다. 결국 고민하다 장면도 넣고 제목도 레인보우로 했지만 ‘행인3’도 버릴 수 없어서 야비하게 영문 제목으로 ‘passerby #3'으로 정했다. (좌중 웃음)


관객1: 저는 장편 다큐를 준비하는 영화학도다. 어머니가 제게 ‘영화를 취미로 하고 싶은거냐’고 물으셨다.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하니까 수입 없는 직업은 직업이 아니라고 하셨다.(좌중 웃음) 영화를 보면 돈 벌이를 하던 사람이 그걸 그만두고 영화를 하겠다고 한다. 함께 부담하던 걸 남편이 혼자 지고 가정을 먹여 살리게 된다. 작품의 밝은 톤 때문인지 이런 상황에 대해, 남편이 자는 모습이 나오긴 했지만, 갈등이 드러나지 않는데 이에 대해 어떤 생각이었는지?
신수원: 실제로 남편의 시점도 좀 보여주는 게 옳지 않겠냐는 분들도 계셨다. 주인공 시점으로 가는 영화를 찍고 싶었기 때문에 남편 입장은 잘 안 나온다. 그렇지만 잠깐 등장할 때마다 남편이 느끼는 고단함 등이 충분히 느껴질 거라고 생각했다. 술 취해 돌아와서 “나도 때려치우고 싶어”라고 한다든지. 나중엔 배터리 던지고 폭발하는 장면도 있지 않은가.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족영화가 아니라 카메라를 든 가정주부이자 영화를 하고자 하는 사람의 꿈과 욕망, 갈등을 그리려 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통제하며 가려했다.

관객2: 좀 우문일 수도 있을 텐데, 감독님은 영화를 왜 하시는지?
신수원: 계속 고민 중인 질문을 하셨다. 뭔가 새로운 걸 찾는 것 같다. 그게 꿈이 될 수도 있고,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을 시도하고 싶은 욕망이나 모험일 수도 있겠고. 요즘 다큐 하나를 진행하고 있는데 계속 되묻는 지점이 여기다. 역으로 질문하신 분은 영화를 하고 계신다면 왜 하시는지?
관객2: 저는 창작보단 비평 쪽 공부를 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극장이라는 공간과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자기만 힘들고 죽고 싶단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위안 받고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것 같다. 영화가 의식주는 아니니까 없어도 죽지는 않겠지만 삶이 퍽퍽하고 재미없을 것 같다
신수원: 저도 그냥 사는 건 재미가 없을 것 같아서 영화를 시작하게 된 것 같다. (웃음)
(정리: 백희원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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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기획전에 맞춰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는 이번에 상영하는 데뷔작들을 만든 감독님들과 함께하는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다. 그 두 번째 자리가 지난 3월 27일 오후에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을 주제로 열렸다. 최근 2년 사이 동안 데뷔작을 선보인 김기훈, 박진성, 백승화, 신수원, 장건재, 오영두, 홍영근 감독 등 8명의 작가들이 패널로 참여하고 김성욱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의 진행으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데뷔작을 선보인 이후 다음 영화, 또 그 다음 영화를 지속적으로 만들기 위한 이들의 고민과 전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이번에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타이틀과 연동하여 두 차례의 포럼을 마련했는데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에의 질문’이라는 주제로 8명의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다. 데뷔작으로 극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방식의 기획, 혹은 새로운 방식의 작가 전략을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생각과 고민을 갖고 있는 개별적인 작가들의 영화가 어떤 특정한 시기에 모여 하나의 연대비행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도 갖고 있다. 오늘 이 자리에서는 데뷔작을 만들며 어떤 환경 속에서 어떤 영화에 대한 기획들을 하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작업을 지속해 나가기 위한 자구책은 어떤 것들인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박진성(영화감독): 관객으로서 원래 장르영화, 그 중에서도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개봉된 웬만한 공포영화는 모두 보는 편이고, 그게 즐겁다. <마녀의 관>에는 인형극 이야기가 나오는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TV에서 일본에서 하는 분라쿠라는 인형극을 보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다. 인형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가리려는 어떠한 시도도 없이 오히려 그것을 즐거운 경험의 일부로 활용하는 것이 무척 놀라웠다. 그런 기억과 함께 어렸을 때 읽었던 <마녀의 관>이라는 작품이 결합되어 이런 영화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1억 미만의 예산에 비해 효과가 볼만하게 나왔다면 다행이지만, 여러 가지로 요령이나 눈속임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공포영화인 <이웃집 좀비>의 경우 특이하게도 집단창작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집단을 구성되게 된 과정은 어떤가? 
오영두(영화감독): 사실 창작집단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만들고 나니 이름이 필요했는데, 제 아내가 망고스틴을 좋아해서 그냥 그 앞에 키노만 붙여서 키노 망고스틴을 만든 것이다. (웃음) 일단 저와 장윤정 씨는 부부사이고, 홍영근 씨는 군대에서 만나게 되어 쭉 같이 지내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다. 류훈 씨는 <텔 미 썸딩>이라는 영화를 할 때 처음 만났는데 뒤에 다시 만나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의기투합해서 뭔가를 해보자고 한 것은 전혀 아니고, 그 시기에 다들 일이 없어서 집에 있다가 만들게 된 경우라서 크게 계산을 했던 부분은 없다. 저희는 정기적으로 모여서 뭔가 한다거나 하지도 않고, 캐주얼하고 심각하지 않은 관계다. 옴니버스 형식 역시 처음부터 그런 기획을 했던 것이 아니라, 류훈 씨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다 투자가 잘 되지 않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단편을 찍되 그것을 한 대여섯 편 묶으면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막상 이야기를 시작했는데 아이디어들이 굉장히 많이 나왔다. 그 중에서 좀비 아이디어를 채택하게 된 것이다.
홍영근(영화감독): 정말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같이 모여서 노는 식구들이 영화 한 번 만들어 보자고 시작한 것이다. 참여하고 싶으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고, 아이디어도 공유하고, 언제든지 개인적으로 다른 영화를 준비하면 도와줄 수도 있고.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이다.

김성욱
: 김기훈 감독의 경우에는 <이파네마 소년> 이전에 다큐멘터리나 실험적인 영화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은, 완전히 장르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일종의 청춘 로맨스물이다.
김기훈(영화감독): 개인적으로 영화 마니아로 감독의 영감이나 동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영화가 갖고 있는 종합 예술이라는 매체적인 특성 때문에 영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공부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기존에 있는 장르나 관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내가 매체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부분들을 포괄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계속 영화 작업을 하고 관객들을 만나면서, 관객들은 역시 영화를 장르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 장르나 관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고민하다가 시나리오를 쓰게 된 것이 스릴러 작품이었다. 그런데 1년 정도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너무 지겨웠다. 칙칙한 스릴러의 서스펜스만 생각하다보니 더 늙기 전에 샤방샤방한 멜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성욱: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하지만 장건재 감독의 <회오리 바람>도 일종의 청춘물이다. 청춘영화라는 특정한 카테고리의 영화를 만든다는 생각이 강했을 것 같은데.
장건재(영화감독): 사실은 전에 준비하던 시나리오도 일종의 성장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준비하기 전에는 소설을 각색해보고 있었는데 잘 풀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원래 제가 갖고 있었던 <회오리바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편 규모의 시나리오를 버전 업 시켜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생들의 이야기, 그리고 개인적 체험이 아주 많이 반영된 이야기인데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었던 형태의 이야기였다. 수많은 데뷔작들이 감독 스스로의 어린 시절이나 청춘기를 그리는데 그런 영화들을 개인적으로 좋아했다. 작은 규모로 자신의 이야기를 첫 장편으로 만들면 스스로 어떤 면에서 충족이 될 것 같은 생각이 있었다. 사실 <회오리바람>은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는 제법 꼴이 갖추어진 영화로 나온 편이다. 사실 기획을 할 때는 <이웃집 좀비> 감독님들께서 말씀하셨듯이 주어진 조건에서 찍을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계절감 같은 것들을 염두에 두었고, 시나리오와 제작까지 오랫동안 준비를 하는 방식이라기보다는 쓰고 바로 찍을 수 있는 방식으로 만들어보자는 게 최초의 기획이었다.

김성욱
: 신수원 감독님의 <레인보우> 역시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데, 동시에 음악이 부분적으로 매개되어있고 영화를 만든다는 자각이 포함되어 있다. 전체적인 장편 극영화로 맞춰나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신수원(영화감독): 34살에 영상원에 들어갔으니 굉장히 늦게 영화를 시작한 편이고, 그 이후로 충무로 생활을 오랫동안 했다. <레인보우>는 제작방식이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는 상업영화 같다는 이야기도 동시에 듣고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은데 저는 애초에 영화사에서 작가로 영화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시나리오가 투자사에 팔리면서 감독 명함이 두 번 정도 생겼었다. 2006년에 충무로에 붐이 일면서 많은 영화들이 제작될 때 제 영화도 들어가게 될 줄 알았는데 그게 안 되었다. 그 이후에 바로 거의 쓰나미처럼 신인 감독들이 데뷔하기 힘든 상황이 왔는데, 써두었던 고등학생 밴드에 대한 시나리오를 들고 그나마 돈이 있다고 소문이 난 영화사로 갔다. 재미있게 보셔서 일단 계약을 하고 다시 감독으로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영화사 역시 상황이 안 좋아졌고 결국 다른 데 가서 그 시나리오로 만들어보겠다고 하고 1년 후에 그곳을 나왔다. 그런데 나와 보니 제가 있었던 영화사는 거의 섬 같은 공간이었다. 다른 영화사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가운데 감독들에게 월급까지 줬다. 그런 상황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1년 정도 그 시나리오를 혼자 다시 고쳤다. 당시가 막 2009년이 된 시기였는데, 올해 안에 영화를 찍겠다고 스스로 마지노선을 정한 거다. 그렇게 시작했고 작업을 준비하면서는 그냥 자유롭게 열어두었다. 그리고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내 이야기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작품을 하면서 생긴 한 가지 원칙은 의미 없이 수정하지는 않겠다는 거다. 앞으로 상업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고 독립영화를 찍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어떻게 되든 스스로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김성욱
: 또 다른 음악영화인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백승화 감독은 원래 음악을 하시는 분으로서 음악 다큐작업을 했는데 어떻게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지.
백승화(영화감독, 뮤지션): 저는 하는 일이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취미도 두 개인데 영화랑 음악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음악 다큐를 찍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음악을 하니까, 좋아하고 몸담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또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음악 다큐나 음악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고 목마른 부분이 있었다. 다 별로 재미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쯤 해보고 싶어서 시작한 것 같다. 저는 인터뷰 할 때마다 스스로 근본이 없는 놈이라고 이야기 한다. 영화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음악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좋아서 하는 것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크게 부담을 가지고 만들지 않았다. 꼭 개봉을 해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없었고 만들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했었다. 음악과 영화가 다른 점이, 음악은 사실 적은 돈으로 혼자서도 할 수 있지만 영화는 큰돈이 드는 작업이다. 누군가 투자를 해주고 그걸로 작업을 하는 경우라면 그냥 즐기는 걸 넘어서서 더 잘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경우에는 음악 다큐가 잘할 수 있는 것이었고, 음악 영화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다음 영화로 음악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잘할 수 있는 것 먼저 해보려고 준비하고 있다.

김성욱: 신수원 감독님의 표현대로 요즘의 상황은 데뷔 감독들에게 엄청난 쓰나미나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전보다 장편 데뷔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인데, 결과적으로만 보자면 여기 계신 분들은 그래도 장편 데뷔를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선택된 위치에 올랐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은 그 자리가 갖는 어려움도 있을테고, 동시에 어떤 제도 안에 들어간 것으로 그것이 작동하는 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날 때는 또 다른 고민이나 느낌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장건재: <회오리바람>을 기획하고 민들 때는 이 영화를 시장에 소개하자는 생각이 더 컸다. 그래서 이 영화가 만들어지고 나서 영화제들로 유통되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그래서 프리 프로덕션 때나 시나리오를 쓸 때, 회의 할 때도 손익분기점을 넘긴 비슷한 규모의 영화 몇 편을 롤 모델로 삼고, 그런 영화에 참여했던 분들께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전략을 짜보았다. 사실 영화제로 너무 유통이 되면 어떤 아트하우스용 영화처럼 비쳐지게 될 것 같았고, 저는 그것을 그리 원하지 않았다.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이야기를 하자면 마케팅과 배급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독립영화의 장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던 부분인데, 직접 제작과 연출을 했기 때문에 이 영화가 극장까지 가는 과정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공부하는 자세가 있었다. 고민스런 부분은 배급이다. 당시에 멀티플렉스들의 상영 시설이 디지털 영사 시스템으로 바뀌는 시기였기 때문에 파일로 배급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배급 비용을 조금 줄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했지만 그렇지도 않더라. 또, 이전에는 독립영화 편수가 지금보다는 적어서 독립영화 전용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과 조금 더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어렵다. 10개관에서 10명씩 보는 것 보다는 1개관에서 100명의 관객과 만나는 것이 조금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오영두
: 개봉관이 8, 10, 15개관 되더라도 교차상영 시스템 자체의 문제가 심각하다. 저는 이번에도 영화를 하나 찍었는데, 장건재 감독님 말씀대로 단관이나 한두 개 상영관을 쭉 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차상영을 하게 되면 특정 시간에 맞춰 특정 극장에 가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라리 어느 극장에 가면 그 영화는 볼 수 있는 것이 훨씬 낫다. 계속 상영해줄 수 있는 환경이 더 필요한 것 같다. 또 지금 상업영화도 그렇지만, 마케팅비의 개념 자체가 과거와 너무 달라졌다. 전에는 사람들이 영화를 찾아서 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길을 걷거나, 집에서 TV를 보거나, 극장에 가면 또 다른 영화들의 광고를 볼 수 있다. 그것 자체가 다 돈인데 그렇게 광고를 뿌리는 영화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에 반대로 그럴 수 없는 영화들은 다 묻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관객들은 더 이상 영화를 찾아서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소위 자본의 논리로 조금 더 가게 되는 현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 상황 자체를 우리가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작은 영화들의 꼭 개봉관이 아니어도 100인치, 200인치짜리 스크린을 놓고서라도 지속적으로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국가의 공적지원이 필요한 것 같다.
박진성: 말씀하신대로 촬영하고 개봉 준비할 때까지는 사실 그것만 목표로 삼고 달려오다가, 막상 <마녀의 관>처럼 전국 2개관 개봉, 전국 관객 수 500명, 이렇게 되면 이게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제가 고민이 너무 부족했던 것 같다.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라는 것의 단초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나라에서 더 많은 지원을 해줘서 해결이 되는 문제인지조차 사실은 자신이 없다.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 어떤 부분에서는 기초가 잘못 되어서 극단적으로는 부패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더 많은 지원이 주어져서 제가 혜택을 보면 좋겠다는 속마음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생각하면 그게 해답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김기훈: 앞선 감독님들 말씀에 많이 공감했다. 저 혼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시 다들 비슷한 고민들을 하면서 영화를 시작하고 만들었구나 싶다. 자연스럽게 배급의 문제로 고민들이 귀착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우리가 감독으로서 포괄적인 전체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버거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선순환 구조로는 지속 가능한 영화 제작이 사실상 힘들 것 같다. 데뷔작을 만들면서 체험적으로 느낀 부분이고, 어떤 것이든 간에 한국영화에 지금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보다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를 배급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고, 그 영화들 끼리 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극장개봉에 모든 수익을 의존해야 하는 것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창작자들의 고민을 대변해줄 어떠한 조합이나 단체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지금 시스템이 계속 유지된다면 어떤 결단을 해야 할 것 같다. 시스템 안에서 그냥 그런 영화를 만들든지, 자신의 색깔이 확실히 할 수 있는 영화를 시스템 밖에서 만들든지.


백승화: 사실 마케팅과 배급에 그렇게 많은 돈이 드는 줄 몰랐다. 장편 개봉을 하면서 저 역시 처음 그런 방식이나 시스템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냥 지속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은데, 먹고 사는 게 지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문제일 것 같다. 사실 이런 논의를 한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꼭 영화뿐만이 아니라 다른 문제들 역시 쉽게 달라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전부터 논의들은 계속 있어왔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다양하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저는 다음 작품으로 음악 영화를 하다 보니 투자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공동체 라디오 같은 곳에서 시나리오로 라디오 드라마를 진행하다가 사람들이 들을만한 것이 되면 투자자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어떨까 하는 식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다. 만드는 사람 역시 끊임없이 다른 방법들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성욱
: 데뷔를 하신 분들이니 차기작에 대한 고민이 있을 거다. 지속가능한 제작이 어떻게 가능할지, 끝으로 데뷔 작가로서의 향후 전략이나 차기작에 대한 계획을 듣고 싶다.
오영두: 어차피 지금뿐만이 아니라 영화 시장 안에서 늘 힘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독립영화나 상업영화나 힘들다. 물론 그 안에서 살아남는 사람이 있고 죽는 사람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단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하고, 끊임없이 꿈틀거리면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최선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상업영화로 올라가서 어느 정도 성공을 이루었을 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고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때, 잊지 말고 무언가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도태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저예산에서 시작을 했다가 50억짜리 영화를 찍고 나면 다시 또 60억을 찍으려고 6, 7년 정도를 마냥 기다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명함만 감독이지 영화를 10년 이상 찍지 않는 감독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가진 베이스를 잊지 않고, 왜 영화를 시작했는지 잊지 않고, 계속 영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소중하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백승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주신 것 같다. 말씀하신 것처럼 계속 만들면 되는 것 같다. 그냥 자신이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계속 하다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원하는 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김기훈: 사실 신인감독들이 대부분 시나리오 작업을 굉장히 오래한다. 예전에는 계약을 하고, 진행비를 받으며 진행했지만 이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진 상황이고, 그런 면에서 계속적으로 생존하기 힘든 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부분은 충분히 제도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영화라는 것이 시스템 안에서 작동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창작의 의지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지속적으로 영화를 하려면 배급이나 부가판권, 기타 여러 가지 어떤 방식으로든 저변 확대가 필요한 것 같다.


장건재
: 저는 여전히 저예산 작업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예전에 <낙타들>이라는 영화를 연출하셨던 박기홍 감독님으로부터 들은 조언이 생각난다. 스스로의 영화에 대한 주체로서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점, 저작권이나 판권의 문제에 단순히 창작자나 예술가로서의 태도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세일즈를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 또는 마케터로서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비전 안에서 자기 시스템을 고민해가면서 일단은 각개격파를 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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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만난 이상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를 주목해서 볼 것을 주문했다. 특히 “장편 데뷔작 중에서 발견의 희열을 제공하는 작품이 많다.”고 전했다. 그의 말처럼 양익준의 <똥파리>, 손영성의 <약탈자들>, 백승빈의 <장례식의 멤버>, 노경태의 <허수아비들의 땅> 등 신인감독들의 작품이 두드러진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부산에서도 이 프로그래머는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꺼냈다. “한국영화 중에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이 많다.” 홍상수 영화를 연상케 하는 찌질한 연애담에 우디 알렌의 입담이 더해진 것 같은 소상민의 <나는 곤경에 처했다!>, 형부와 처제의 금지된 사랑을 다양한 회화적 묘사를 통해 풍요롭게 만드는 임우성의 <채식주의자>, 영화평론가로 유명한 정성일 ‘감독’의 데뷔작 <카페 느와르> 등 이들 영화는 한국영화사에서 보기 드문 종류와 시도의 것이었다.
그리고 2010년과 2011년, 주류의 한국영화가 철저히 계산된 연출과 규모의 경제학 속에 고만고만해진 사이, 고전적인 연출에 안주하지 않는 창의적인 영화문법, 사회가 처한 현실에 한눈팔지 않는 의식적인 이야기, 주류에 손 벌리지 않고(?) 자신만의 제작방식으로 개봉에 이르는 전략까지, 눈길을 끄는 한국영화의 목록은 주류 바깥에서 신투차세대(新偸次世代), 즉 장편 데뷔작을 발표한 ‘신진작가’들에 의해 다시 쓰이는 중이다.

참신한 재능이 일군 낯선 이야기

2010년과 2011년의 주목할 만한 데뷔작 중 <빗자루, 금붕어 되다> <이파네마 소년> <반드시 크게 들을 것> <혜화, 동> <파수꾼> 등등, 제목만 봐서는 도무지 무슨 이야기의 영화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모르긴 몰라도, 주류에서였다면 이중 상당수의 영화가 아마도 원 제목을 고수하기가 쉽지 않았을 터. 극중 이야기를 쉽게 함축하는 제목이야말로 관객이 영화를 선택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주류영화계에 팽배한 까닭이다. 바꿔 말해, 대부분의 주류영화가 예상 가능한 이야기 속에 연출을 운용하는 것에 반해 앞서 언급한 작품들은 가늠하기 힘든 제목과 설정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펼쳐가며 관객의 흥미를 돋운다.
예컨대, <빗자루, 금붕어 되다>는 신림동 고시원을 무대로 주인공 장필(유순웅)의 일상을 리얼한 필체로 묘사한다. 얼핏 제목과 극중 이야기가 전혀 연관되지 않지만 김동주의 말에 따르면, “빗자루는 고시원 총무의 상징이다. 빗자루로 늘 복도를 쓸기 때문에 장필의 처지를 빗댄 말이다. 금붕어는 그가 키우는 생명체다. 어항에 담겨있고, 갇혀 있다. 그 두 단어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현실에 발을 디딘 이야기지만 고시원 속에 갇힌 장필의 처지는 초현실에 육박할 만큼 고난에 처한 상황임을 영화를 보면서 깨닫게 된다.
사실 <빗자루, 금붕어 되다>가 보여주는 배경과 말하는 내용은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이지만 그렇기에 또한 외면 받는 현실이다. 그것은 곧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류영화계가 꺼리는 소재로 작용해왔다. 하여 2010년과 2011년의 신투차세대들이 보여주는 영화는 무심히 지나칠 뿐 아니라 마주보기 꺼려하는 현실의 이면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참신한 종류의 재능이라 할만하다. 지금 한창 호평을 받고 있는 민용근의 <혜화, 동>은 18세에 낳은 아이가 살아있는지 모른 채 생활해온 23세의 ‘혜화’(유다인)를 전면에 내세운다. 어린 나이에 낳았다는 이유로 미혼모인 그녀가 ‘아이’(童) 때문에 이 땅에서 겪을 법한 고통과 절망을 ‘겨울’(冬)동안의 사랑이야기로 풀어간다. (이 작품은 또한 미스터리라는 장르적 요소를 취함으로써 끝까지 관객의 흥미를 붙들어 맨다.) 2010년의 가장 충격적인 데뷔작으로 평가받는 장철수의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여성을 착취하는 폭력적인 시스템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방관을 비판한다. 동시에 이를 향한 복남(서영희)의 잔혹한 복수를 하이라이트처럼 전시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들이 스크린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길어 올린다는 사실은 오랫동안 한국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서술의 시도내지는 장르의 부활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백승화의 <반드시 크게 들을 것>,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 홍영근, 장윤정, 오영두, 류훈의 <이웃집 좀비>, 이응일의 <불청객> 등이 속할 텐데 비슷한 구석 하나 없이 그들 각자의 장르와 이야기를 택하고 있어 흥미롭다. 인디밴드 ‘타바코 쥬스’의 드러머 백승화가 연출한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밴드를 다룬 음악다큐멘터리다. 흔히 음악다큐멘터리라고 하면 연상되는 공연 영상 대신 극중 밴드 멤버들의 일상에 더욱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관객과의 정서적인 교감에 더욱 집중한다. 장건재의 <회오리 바람>은 2000년대 초반 귀여니로 대표되는 인터넷 소설의 영화화가 붐을 이뤘다가 빠르게 관객의 외면을 받은 이후 맥이 끊긴 한국 청춘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당대 청소년의 심리를 반영한 영화는 고등학교 2학년생인 태훈(서준영)과 미정(이민지)의 사랑과 헤어짐을 묘사하되 감독의 섣부른 의견 개입 없이 방황하는 사춘기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청춘을 정의하는 것이다. 
<이웃집 좀비>와 <불청객>은 요 몇 년 새 주류영화의 한 축이 된 장르물을 따른다. 다르다면, 두 영화는 흥행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국인의 정서와 괴리됐다는 이유로 오랫동안 무시당했던 좀비물과 SF를 과감히 차용했다. 물론 <이웃집 좀비>의 경우, 한국에서 처음 시도되는 좀비물은 아니다. 다만 이전의 작품들이 장르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벤트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면 <이웃집 좀비>는 장르의 재미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회적 메시지를 녹아내며 관객의 거부감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한다. 좀비바이러스가 퍼진 이후 소수자로써 고통 받고 차별받는 우리 이웃의 ‘좀비’를 다루며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날카롭게 세운다는 점에서 재미와 메시지 사이의 균형 잡힌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이다.

낯선 이야기에 적합한 화용론

 

<불청객>은 <이웃집 좀비>와 장르적 감성을 공유하지만 화용론 자체는 완전히 다른 영화에 속한다. 은하계 저 너머 안드로메다에서 뚝 떨어진 듯한 이응일의 B급감수성과 막장(?)상상력은 그동안 경직된 한국의 토양 위에서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다. 그러니까 <불청객>의 출현은 <고무인간의 최후>와 같은 유의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일종의 사건에 다름 아니다. 자취방에서 고시공부에 열중하던 진식(김진식)과 그의 동생들이 외계로 납치된 후 지구로 돌아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내용의 <불청객>은 빈약한 제작환경을 의도적인 조잡함과 유치찬란함으로 극복한 말 그대로의 독립영화다. ‘고작’ 2천만 원의 제작비와 ‘무려’ 5년의 제작기간이 대변하듯 상영시간 67분에 불과한 <불청객>은 별다른 투자와 지원 없는 각개전투 식 영화 만들기의 지난함과 고통을 능히 짐작케 한다.
그런 감독 이하 배우, 스태프들의 노고 여하에 상관없이 <불청객>에는 험난한 현실을 유희로써 극복하는 지금 세대의 특징적인 정서가 잘 담겨 있다. 영화 시작과 함께 ‘호환마마’ 운운하는 과거 비디오 영상물과 ‘이 영화를 디시인사이드에 바칩니다.’라는 문구만 보더라도 <불청객>의 감성이 맞닿아있는 지점은 분명하다. 청년백수가 양산되는 작금의 현실을 비관으로 일관하기보다 가벼운 유머의 소재삼아 툭툭 털고 일어서자는 젊은 세대만의 일종의 결기가 느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이 세대가 인터넷과 게임으로 세대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들의 사연과 이야기를 공유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그래서 종합예술매체로써 영화 역시 게임과 인터넷에 능한 감독들에 의해 기존의 화용론과 안녕을 고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추세다.
이미 2009년 장르의 경계가 모호했던 중편 <남매의 방>으로 새로운 영상언어의 출현을 알렸던 조성희는 장편 데뷔작 <짐승의 끝>에서도 예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모든 기기가 동작을 멈춘 시골마을에서 탈출하기 위해 안간힘 쓰는 소녀를 내세운 이 영화에서 조성희는 조이스틱을 다루는 것처럼 인물을 조종하고 단계를 넘어가듯 이야기를 작동시킨다. 게임과 다르다면, <짐승의 끝>은 유희를 목적으로 삼은 영화가 아니다. 단지 게임의 작동 방식을 극에 끌어들였을 뿐이다. 여기에는 감독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녹아들어있다. 그가 보건데, 이 세상은 사공이 많은 배가 아니다. 소수의 절대자에 의해 조작되고 은폐되고 은밀하게 운영되는 게임과 같은 곳이다. 다시 말해, <짐승의 끝>은 게이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진정 ‘게임 세대’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인 것이다.


조성희와 함께 한국영화아카데미 제작연구과정 3기생인 윤성현의 <파수꾼>은 올 상반기 한국영화 화제작이라고 불릴 만큼 정의하기 힘든 청춘의 모순된 이미지를 신인답지 않게 노련한 형태로 구현한다. 특히 한 고등학생의 자살 이유를 파헤치는, 어찌 보면 뻔해 보일 수도 있는 이야기를 윤성현은 인물별, 시기별로 장면을 교차하며 복잡한 양태 속에 가려진 진실에 최대한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처럼 진실은 개인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라서 <파수꾼>의 교차 서술은 극중 인물들의 복잡 미묘한 감정의 파장을 잡아내는 가장 적합한 이야기 형태라 할만하다.
이처럼 신인들의 영화에서 유독 두드러진 화용론의 운용은 한편으론 주류영화의 도식화된 서술법에 대한 반발로도 읽힌다. 그리고 이 부분이야말로 이들 영화에게서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감지해내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이야기는 없어서 결국 어떻게 말하는지 그 형식이 중요하게 영화의 만듦새를 결정하는 법인데 주류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작품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약간의 변용을 통해 재생산하기 일쑤였다. 그에 반해, 좀 더 독립적인 방식으로 제작이 이뤄지는 작품들의 경우, 해당 이야기에 적합한 형식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끌어와 영화라는 매체의 본질을 추구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관객의 취향과 타협하기보다는 스스로의 개성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작가주의적인 면모가 강하게 풍기는 것이다.
영화감독을 꿈꾸는 주부와 음악 하는 중학생 아들의 희망과 용기를 다룬 <레인보우>는 소위 클리셰(Cliché)라고 부르는 뻔한 장면이나 기승전결의 서술을 따르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이야기의 자유로움을 획득한 경우다. 정호현의 <쿠바의 연인>은 원래 쿠바의 사회주의와 춤과 노래가 궁금했던 감독이 이를 다큐멘터리로 구성할 요량이었다. 그런데 현지에서 연하의 남자친구 오리엘비스를 만나 결혼에까지 이르면서 갑작스럽게 한국여자와 쿠바남자의 결합에 따른 사회적 편견에 대항한 인생 도전기로 개비되었다. 만약 주류에서 기획된 작품이었다면 촬영 중간 영화의 콘셉트가 바뀐다는 건 불가능했을 터. 애초 영화에 대한 계획 없이 달랑 카메라만 들고 쿠바에 왔던 정호현은 무서운 흡수력으로 촬영 과정에서 발생한 변수와 일탈을 끌어들여 다큐멘터리 특유의 재미로 치환, 희귀한 작품을 완성했다.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


앞서 언급한 작품들의 배경을 살펴본 바, 그 특징을 일러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을 듯싶다. 과거와는 다른 한국영화의 신(新)풍경을 연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미처 언급하지 못했지만 박진성의 <마녀의 관>, 김기훈의 <이파네마 소년>, 김종관의 <조금만 더 가까이>가 보여주는 영화적 전략도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배경으로 뒷받침된 결과다. 러시아 작가 고골의 <비이 VIY>를 각색한 <마녀의 관>은 원작을 가진 여느 영화와 달리 세 가지 에피소드 구성을 통해 다채로운 변형을 가한다. 배우 오디션 현장이 배경인 1막 ‘이상한 여자’는 영화에 대한 영화로, 연극무대를 끌어들인 2막 ‘마녀의 관’은 (3D로 촬영된) 무대극으로, 장님음악가의 환상을 그린 3막 ‘커튼콜’은 기담으로 구성한 것. 공통된 원작에 속하되 각기 다른 장르로 펼쳐 보이는 박진성은 <마녀의 관>을 통해 서사와 형식에 관한 일종의 영화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파네마 소년>과 <조금만 더 가까이>는 두 편 모두 사랑을 소재로 하지만 서술법이나 표현하는 방식은 특색 있는 제목만큼이나 상이하다. <조금만 더 가까이>가 설레는 첫사랑부터 감정의 앙금이 남은 이별 커플까지, 사랑과 우정 사이에 놓은 이성커플부터 권태를 느끼는 게이커플까지, 네 커플의 에피소드식 구성을 통해 무수한 관계의 교류에서 벌어지는 미세한 감정변화의 줄 잇기를 시도하는 현대적인 서술법을 선보인다면 <이파네마 소년>은 첫 사랑의 아픈 기억을 안고 있는 이들의 ‘두 번째 사랑’을 고도로 이미지화한다. 한국과 계절 주기가 정반대인 브라질의 이파네마 해변을 제목으로 차용한데 착안, 주인공 소년과 소녀의 경우를 둘로 나눠 현실과 공상을 오가고,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며 첫 번째 사랑과 두 번째 사랑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이들의 미묘한 심리를 이미지와 형식으로 전달하는데 주력하는 것이다.
사실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최근의 주목할 만한 장편데뷔작들은 이미지를 우선한 서사 전달과 형식 자체로 이야기와의 통일을 꾀하는 영화 만들기로 거칠게 요약이 가능하다. 다만 전략이라고 붙여도 무관한 이유는 주류영화계에서 잊어버린 영화의 본질을 적극적으로 추구할 뿐 아니라 그 결과로 새로운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이와 관련,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3월 22일부터 4월 6일까지, 2010년과 2011년에 데뷔한 주요한 장편 14편을 모아 ‘한국영화, 새로운 작가 전략’이라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거창하게 ‘코리아 뉴 웨이브 Korean New Wave'라고 명명할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국영화계의 기저에서 활발히 모색되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글/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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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작가를 만나다: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

지난 29일 저녁 ‘2001년의 기억!’이란 제하로 2011년 첫 작가를 만나다가 열렸다. 이번 달의 주인공은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 후에는 원래 임순례 감독과의 대화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임순례 감독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함께하지 못하고 허남웅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와의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졌다. 10년 전의 영화를 꺼내어 다시 보며 관객과 함께 감흥에 젖어 호흡했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옮긴다.


허남웅(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이번 작가를 만나다는 개봉 10주년을 맞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선택했다. 이 영화는 일명 ‘와라나고’ 운동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관객들이 자발적인 운동을 펼쳐서 흥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영화를 살리기 위해 나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예정대로였다면 임순례 감독이 함께 자리하여 관객 여러분과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야 했지만 감독님이 부상을 입어 함께 자리하지 못하게 되었다. 감독님도 이 점을 꽤 안타깝게 생각했다. 비록 오늘 함께 하진 못하셨지만 인터뷰를 통한 임순례 감독님의 답변을 잠시 말씀드리며 관객과의 대화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들 당시 솔직히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실제로 개봉해서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 영화는 개인적으로 임순례라는 감독의 브랜드 같은 영화가 되었다. 10년이 지나고 드는 생각은 산업적 환경을 비롯해서 영화 만들기가 힘든 지금과 같은 시기에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려고 했을 때 과연 투자자나 제작자를 만날 수 있을까 싶다. 지금은 산업정인 논리가 너무 강하다보니 영화를 만드는 입장에서는 무척 갑갑한 상황이다. 불과 10년~15년 전 이야기지만 <세 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같은 영화가 나왔던 당시가 영화 만들기엔 조금은 더 괜찮았던 시기라는 느낌이 든다. 그때도 일명 ‘와라나고’라고 해서 관객들이 자발적으로 산업에 대항해 어떤 무브먼트를 보여준 첫 번째 영화이고 감독으로써 굉장히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사실 모든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있어서 리스크는 모두 있기 마련이다. 어떤 영화가 크게 흥행할 수도 있지만 전혀 안될 수도 있다. 흥행이 안 된다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어떤 여지 혹은 흥행 여부과 상관없이 그 영화가 지닌 가치를 인정해 주는 분위기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느낀다.”
이상이 임순례 감독님의 전언이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10년 전 영화이지만 지금 봐도 최근의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의미를 따지기에 앞서서 영화를 보면서 놀라웠던 것 중 하나는 영화의 캐스팅에 관련한 것이다. 류승범, 황정민, 박해일 씨 등이 나오는데 개봉했을 당시 영화를 소개하는 기사 중에는 ‘명필름이 제작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스타는 커녕 마이너한 배우 한명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웃음) 하지만 지금 보면 십년 전에 이미, 이후 한국 영화를 이끌어갈 배우들이 모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이 영화는 청춘에 대한 순수한 감정을 간직하려고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순수를 잃어가는 모습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아련한 느낌이 있다. IMF 이후의 한국 사회의 풍경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마음이 아팠던 대사가 있다. 약국을 하고 있는 친구가 성우에게 너 요즘 뭐하냐고 물어보는데 성우는 제대로 얘기하지 못하고 지나쳐가게 된다. 사실은 이런 모습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단 생각이 든다. 전혀 빛바랜 느낌도 없고 그만큼 우리의 현실 역시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객1:
영화를 보기 전에 예전에 봤을 때의 느낌과 어떻게 다를지, 인상 깊게 느끼는 장면들도 변화가 있을까 생각했는데, 다시 보니 예전에 인상 깊었던 장면들이 여전히 와 닿았다. 고등학교 때를 회상하면서 해변가 장면이 등장하는데, 나중에 성우의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면서 나이트에서 옷을 벗고 기타를 치는 장면에서 그 해변가 장면이 다시 등장한다. 그 순간 뭐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었는데 오늘 다시 보면서도 예전과 같은 슬픔을 느꼈다. 예전과 조금 달라진 것이라면 류승범 씨가 지금은 나이도 들고 스타가 되셨는데 당시에는 정말 어려보이고 굉장히 발랄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시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지금 보니 박해일 씨가 성우의 어린 시절로 나와 놀랐다. 오지혜시가 마지막에 노래를 부를 때, 그 전까지 영화가 내내 담담하게 진행되면서 안타까운 느낌이었는데, 오지혜 씨가 등장하면서 무언가 활짝 열어젖히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허남웅: 아무래도 이 영화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에 전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장면들이 많아 보인다. 처음 장면에서도 와이키키 브라더스 밴드가 공연하는 모습에서 카메라가 팬을 하면서 나이트의 모습이 보이면서 뭔가 초라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오지혜 씨와 함께 밴드가 연주하는 장면이 특히나 중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최소한의 순수를 가지고서 계속해서 살아가는 느낌이다. 황정민 씨가 상갓집에서 술을 마시고 볏집에 널브러져 있다가 불을 내는 모습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초라해 보이는데, 사실 어린 시절의 회상장면에서도 고고장에서 밴드 연습을 하다가 전선이 불에 타서 화재가 나는 장면이 있다. 그 때는 절망하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무모한 열정 하나만으로 청춘을 이어갈 수 있었던 모습이 담겨있다. 계속해서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과거를 환기시키고 그 과거를 현재에 덧붙이고 싶어 하는 그런 모습들을 임순례 감독님이 전해준 게 아닐까 생각된다. 이런 모습들이 사실 자칫하면 현실 비판으로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관객들이 감정적으로 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배우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이 영화가 두 번째 장편영화였던 류승범 씨 같은 경우는 당시의 인터뷰를 보니, 그 전에는 형인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만 계속 출연하다가 이 영화를 선택하면서 자신이 앞으로 배우를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하겠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지금 보니 굉장히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황정민 씨는 당시는 무명이었지만, 이 영화에서 드러머 강수 역할을 맡으면서 처음으로 매니저와 팬클럽이 생기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으로 류승범 씨가 맡은 역할이 상징성을 지닌다고 본다. 사실 그는 음악에 대한 재능은 전혀 없고 옷이나 말하는 것이 영화 안에서 상당히 튄다. 영화의 포스터에서도 빨간 머리의 류승범 씨가 혼자 뒤돌아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시대라고 하는 것은 류승범 씨가 연기한 기태 같은 사람들에게 반응하는데, 이얼 씨가 연기한 성우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떨어진 듯한 모습 같아 보인다. 그래서 당시 이 영화를 두고 나이 든 ‘세 친구’에 관한 영화가 아닌가 하는 얘기도 있었다. 임순례 감독님의 <세 친구>가 당시 한국 사회의 경직된 모습들을 반영했기 때문에 그런 평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세 친구>와는 다르게 유머러스한 면들과 아련한 면들이 있는 것 같다.

관객2:
며칠 전에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추모 공연이 있었다. 많은 20대 초중반 친구들이 모였었고 오늘 이 영화를 재조명하는 자리에 온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이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테고, 해나가야 할 텐데,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유난히 많은 용기가 필요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아지지 않은 현실이 마음이 아프다. 여전히 사회적인 안전망이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 혹시 하고 싶은 일에 대해서 실패를 경험하거나 어려움을 겪더라도 본인의 탓으로 생각하고 너무 자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사람들이 희망을 가졌으면 좋겠다.
허남웅: 아무래도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사람들로 하여금 순수하게 밀고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중요하게 생각되는 장면은 과거 회상 중에서, 네 명의 친구가 바닷가에서 발가벗고 뛰어가는 모습에서 곧바로 노래방 영상의 비키니 입은 여자들이 모습으로 이어지는 장면이다. 순수했던 과거의 모습들이 출세욕, 생활욕 등 때문에 바뀌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도전정신이나 순수한 마음들이 많이 깨어지게 되는데, 한편으로는 사회 시스템이 그런 부분들을 받쳐줄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이 영화 자체를 두고 보더라도 임순례 감독님의 말씀처럼 이런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받쳐줘야 하는데, 한국영화계에서도 도전적으로 만들 수 있는 영화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가 그 자체로서 한국사회의 시스템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씁쓸하면서도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3: 오늘 이 영화를 처음 봤다. 친구가 너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데, 행복하냐고 물어봤을 때 주인공은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그렇게 선뜻 대답할 수 없다면 그는 대체 무얼 위해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영화를 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하고 어떻게 행복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허남웅: 사실 이 영화가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 같지는 않다. 사실은 불행한 모습이 더 많다고 느껴진다. 감독님은 현실에서 순수하게 살았으며 좋겠다고 얘기하시지만, 편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순수를 버려야만 하는 사회의 모습, 2000년대 들어서의 신자유주의 시대의 살풍경한 모습을 담아냈다는 생각도 단다. 그런 현실들을 바꿔보자는 것이 영화에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런 것을 읽을 수 있는 여지가 영화 속 개개인들이 갖고 있는 순수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10년이 지나도 사회가 크게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전 관객 분이 달빛요정 말씀을 해주셨지만 여전히 이 사회가 누군가 하고 싶은 음악만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점에서만도 그렇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만 놓고 본다면, 인물들의 순수와 과거의 패기를 조금이지만 계속해서 모아간다면 마지막 장면의 오지혜 씨처럼 사랑에 대해 관심을 받고, 이얼 씨 처럼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받고, 그렇게 소수이지만 서로 뭉쳐가며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관객4:
일반적인 영화들보다 템포가 느린 편이다. 종종 감정의 최고점에 오르기 전에 장면이 커트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는지 궁금하다.
허남웅: 감독님이 이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뒀던 부분이 감정을 최고점까지 끌어내지 않는 것이었다고 한다. 너무 신파가 되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현실에 대한 비판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 라고 한다. 그런 점에 가장 많이 고심하셨다고 들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마지막의 엔딩 크레딧의 경우를 보면 일반적인 영화들과 다른 것 같다. 감정을 고조시키지 않지만 지속시켜가며 안겨주는 어떤 것들이 있다. 개인적으로 임순례 감독님이 인간에게 사랑을 준다는 생각도 든다. 사실 엔딩 크레딧에 그렇게 배우들과 스텝들의 이름들을 느리고 인상 깊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이 영화는 공연하는 장면에서 끊지 않고 엔딩 크레딧을 함께 보여주면서, 한편으로 감독님이 인간이나 자신의 캐릭터에 대해 가지고 있는 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장면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한다. 첫 장면의 공연 모습과 대조가 되면서 여운이 남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또 하나 재밌는 점이, 박해일 씨나 황정민 씨 같은 경우 영화에서 자신들이 직접 연주하고 노래했던 것에 반해, 이얼 씨 같은 경우는 연주나 노래가 직접 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음악영화라고 했을 때 연주하는 모습에 공을 들이지 않을 경우 관객의 감정을 이끌어내기가 어려운데, 임순례 감독님도 이 영화를 하면서 힘들었던 점 중 하나도 그런 부분이었다고 한다. 이얼 씨의 얼굴이 같은 이미지가, 여전히 순수함을 간직하는 캐릭터로서 적역이긴 했지만 음악적인 면에서는 감독님의 생각과 맞지 않아서 힘드셨다고 한다. 영화에서 유머러스한 부분들이 종종 있는데 감독님의 두 번째 장편영화였기 때문에 좀 더 여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데뷔작인 <세 친구>는 물론 중요한 영화이지만 굉장히 메마르고 타이트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다. 감정적으로 타이트한 것이 아니라 편집에서 딱딱 떨어지는 부분들이 있는데,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그게 비해 시간을 좀 끌 수 있는 여유도 있고 유머러스한 장면들도 있다.


관객5: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오늘 처음 보았는데, 벌써 10년 전 영화란 얘길 듣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얼마 전에 본 <레인보우>라는 영화와 굉장히 비슷한 느낌이 들어서 놀랍기도 했다. 이상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실현할 수 없는 현실을 이야기하면서 마지막에 굉장히 희망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 좋았는데 오늘 본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느껴졌다. 힘든 현실이지만 마지막에 희망을 얘기하는 부분이 좋았고 비슷한 입장을 가지고 있는 다른 분들이 이 영화를 볼 때 서로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허남웅: <레인보우>의 신수원 감독은 본래 학교 교사로 지내다가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에서 영화 <레인보우>에서처럼 계속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투자사들을 찾고 하는 일화들이 있는데, 아마도 임순례 감독님이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만드셨을 때 <세 친구>를 만드시고 몇 년 동안의 공백이 존재하는데, 감독님께도 그런 일들이 있지 않으셨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레인보우>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연결시켜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란 생각도 든다.

(정리: 장지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에디터)


Posted by seoul art cinema Hul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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