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만나다] 이해영 감독의 <페스티발>

지난 4월 23일 저녁 6시,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의 간판 정기 프로그램인 작가를 만나다 상영회가 있었다. 특히 이번 달부터는 단순히 연출자를 모시고 질의응답 형태의 관객과의 대화 형식을 넘어 보다 심도 깊게 영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담과 장면에 대한 해설까지 더한 새로운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대담자로는 김태용 감독이 함께했으며 이해영 감독과 김태용 감독이 직접 선택한 장면을 함께 보며, 해당 장면을 선택한 이유와 더불어 영화작업에 대한 소회를 들어볼 수 있었던 기회였다. 그 현장을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페스티발>에는 다양한 군상이 등장한다. 그들은 어떤 면에서 보자면 골방에 갇혀있는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일종의 ‘커밍아웃 프롬 더 클로젯’을 하게 되고, 후반부에 엄정화씨의 노래가 나오면서 굉장히 흥겨운 순간을 자아낸다. 개봉 때에는 영화에 대해 얘기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굉장히 용기 있는 영화였다고 생각된다.
이해영(영화감독) 사실 용기를 갖고 이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당연히 이 영화가 나에게 엄청난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라 생각했었다. (웃음) <천하장사 마돈나>를 끝내고 <29년>이라는 작품을 2년 정도 준비했었다. 어떤 이유로 그 영화를 만들지 못하게 되자 개인적으로 내 야망의 무게에 스스로 짓눌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29년>과는 완벽히 다른, 굉장히 사적인 영역에서 유희하면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페스티발>은 개인적으로 너무 사랑스러운 영화이고 나의 명찰 같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 이해영 감독이 꼽은 장면들 -
#1 (백진희가 섹스용품을 파는 봉고차에 찾아간다.)

이해영:
크랭크 인하고 첫 날 찍은 씬이다. 봉고차 내부에 생각보다 미술이 많이 들어갔다. 반짝이 천이나 원색의 느낌들이 본의 아니게 영화 전체의 색감을 규정하는 색깔이 되었다. 이 씬은 <페스티발>의 전체적인 이미지와 많은 농담의 질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씬이라고 생각된다. 현장에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무기 중의 하나가 정확한 콘티여서, 첫 작품을 찍을 때부터 콘티를 정확히 준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봉고차가 굉장히 좁아서 동선이 전혀 나오지 않다보니 콘티를 짤 수가 없었다. 크랭크 인 첫날 현장에서 콘티 없이 찍었던 씬이어서 개인적으로는 모험과 같았다.

#2 (오달수가 여자 속옷을 입는다.)
이해영: 코미디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코미디 화법의 본질에 가까운 장면 같다. 이를테면, <천하장사 마돈나>에서 고등학교 남학생이 여자 옷을 입고 등장하는 것이 ‘쎈’ 이미지일 수 있는데, 이것을 호들갑 떨거나 하지 않고 조금 더 거리를 두고 바라볼 때 코미디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그 친구가 갖고 있는 진심을 해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이 장면도 마찬가지로 물론 코미디를 위해 찍은 씬이기는 하지만 이성의 속옷을 입게 되는 행위를 굉장히 호들갑 떨거나 선정적으로 몰고 가지 않고 약간 떨어져서 바라보는 것이 인물을 덜 희화화하는 거란 생각을 했다.

김성욱: 오달수 씨의 캐릭터가 독특한데 이러한 캐릭터를 어떻게 떠올렸는지 궁금하다.
이해영: 몇 년 전 일본에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신주쿠 거리를 걷는 중 정말 평범한 동네아저씨 같은 분이 무지개 색 비키니를 입고 지나갔다. 그 분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했는데 그 분한테는 매우 일상적인 일이었던 것 같다. 주위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서 자신의 세계를 너무나 자연스럽고 태연하게 사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페스티발>을 처음 구사할 때 단초가 되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 분을 목격하고 나서는 복장도착과 같은 정신 병리학적 용어로 말고, 일상에서 그런 분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많은 캐릭터들을 다루고 있지만 사실 어떤 캐릭터에도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분들에 대해서 어떤 깊이를 가지고 다뤘다기보다는 묘사했다 정도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의 입장에서 그런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을 했다.
김태용(영화감독): 이 영화에 나온 커플 중에 가장 인상적인 커플은 오달수 씨 부부이다. 이 영화는 어쨌든 다른 생각과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어떻게 뭉쳐서 잘 살 것인가 하는 이야기를 한다. 류승범 씨는 자신의 취향을 버리고 상대를 만나는 느낌이라면, 심혜진 씨·성동일 씨 커플은 서로 잘 맞는 취향의 사람들이 만남을 시작하는 느낌이다. 신하균 씨·엄지원 씨는 서로가 이미 충분히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이에서 생긴 오해가 풀리는 느낌이었고. 그런데 오달수 씨 커플은 서로의 취향을 존중하면서 해결이 된다. 어떤 실망이든 슬픔이든 가지고는 있지만 그걸로 됐다고 하는 부분이 있다. 예컨대, 심혜진 씨가 밖으로 나가자고 선동을 하고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를 계속 전달하는데, 그것보다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오달수 씨 부부의 에피소드가 훨씬 더 파워풀하게 영화의 무언가를 담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3
(심혜진, 성동일의 목을 짝! 때린다. 그러자 둘 모두 웃음이 터진다.)
이해영: 이 장면을 꼽은 이유는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서다. 이 씬을 보면 아직까지도 반성하게 되고, 헷갈리는 지점들이 남아있다. 연기하신 심혜진 씨나 성동일 씨 모두 선배이시고 아직 어려운 부분들이 있어서 두 분께 ‘이런 식으로 웃으세요’라고 미리 주문을 할 수 없었다. 두 분이 웃는다면 어떤 느낌일 것이다, 상상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런 상태에서 현장에 나갔다. 첫 테이크에 가서야 배우의 연기를 실제로 확인하게 되었는데 이 장면을 찍을 때 촬영 시간이나 조건들이 여유롭지 못했다. 항상 드는 고민은 현장에서 사전에 확인할 수 없는 연기를 어떻게 요구하고 짐작하고 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원래 계획되지 않은 컷을 현장에서 어떻게 배우에게 주문해야 할지이다. 그래서 그런 부분들을 김태용 감독님께 꼭 물어보고 싶었다. (웃음)
김태용: 개인적으로 이 장면이 굉장히 재밌었다. 이해영 감독 특유의 유머를 좋아한다. 이 씬 역시 이해영 감독만이 할 수 있는 코미디인 것 같다. 배우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부분은 잘 모르겠다. 나 역시도 배우와 그리 얘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이해영: 작품들에 대해서 많이 들었던 얘기 중의 하나가 ‘일본적’이라는 것이었다. 이 장면에서의 이런 식의 호흡 같은 것들이 아마도 그런 요소들 중 하나일 것 같다.
김성욱: 아마 ‘일본적’이라고 했을 때의 느낌은 액션을 무화시켜가는 방식들 같은 거다. 그 때 인물들의 표정이 굉장히 중성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성동일 씨나 심혜진 씨, 오달수 씨 같은 분들이 그런 방식의 장면들을 구성하기에 좋은 것이다. 무표정한 느낌이기 때문에 장면이 넘어가면서 시간차가 있고, 행동이 이뤄질 때 이게 무슨 행동인 건지 간파가 잘 안 된다. 그 때 순간적으로 웃음이 발생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웃음’은 사회적이다. 이 장면에서의 웃음은 둘 사이의 교감과 연관된다. 두 사람 간의 어떤 코드에 영화를 보는 사람들도 동참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있다. 어떤 점에서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인물에 접근해 들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저들은 우리들의 입장에서는 완벽하게 설명되거나 이해되지 않는다. 그들만이 공유하는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장면이다 .

#4 (소파에 쓰러져 자고 있는 신하균을 보던 엄지원, 다시 침대에 가서 잠든다.)
이해영: 누군가 <페스티발>을 보고 나서, ‘페티쉬 발’이라고 하는 얘길 들었다. (웃음) 의식하진 않았는데, 실제로 발 인서트가 꽤 많이 나오는 편이다. 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국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에 비해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운 것도 좌식문화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잘 모르는 사이끼리도 식당 같은 곳에서 흔하게 신발을 벗고 함께 할 수 있는데 아무리 완벽하게 갖춰 입은 사람이라고 해도 쉽게 허물어뜨리고 같이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발로 이어지는 이 장면들에 묘한 정서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5 (심혜진의 해금 연주를 시작으로 SM 던전이 만들어진다.)
이해영: 사람들이 가장 낯설어하고, 가장 이해 못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가장 사랑스러워하는 장면이다. SM을 다룰 때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부분은 큰 숙제였다. SM을 단순히 가학과 피학이라는 폭력의 권력구도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영호의 톤에 맞지 않는, 상당히 보기 불편할 수 있는 성향으로 보일 수 있었다. SM을 보다 부드럽고 귀엽게 풀기 위해서 서로 나눠서 하는 역할놀이라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래서 철물점 뒤에 있던 차고의 공간이 SM 던전으로 꾸며진다는 것을 두 사람만의 놀이터를 건설한다는 식으로 풀어갔다. 다른 분들이 보기에는 당황스럽고 기묘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다.
김태용: 다른 에피소드들에 비해서 이 장면은 잘 이해가 안 갔다. 보통의 생각으로는 SM이라고 하면 폭력적인 쾌감인데, 이 영화에서는 너무 즐거워 보인다.
이해영: 보통 SM 커플들 중에 실제 행위에 크게 집착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어떤 역할을 맡느냐, 어떤 관계로 어떤 긴장감을 갖느냐가 행위를 대신하는 경우도 많다.

- 김태용 감독이 꼽은 장면들 -

#6 (차안에서 자위를 하던 류승범, 절정의 순간 신하균에게 걸린다.)
김태용: 여태껏 본 영화중에 가장 지저분한 씬이었던 것 같다. (웃음) 영화를 보다보면, 특히 이 영화처럼 많은 인물들이 나오게 되면 그들이 서로 만나는 장면을 기대하게 된다. <페스티발>을 보면서 가장 기대했던 것은 신하균 씨와 류승범 씨가 만나는 순간이었다.
이해영: 사실 시나리오를 쓸 때 이 씬은 없었다. 두 사람이 캐스팅되고 나서 그들을 만나게 하기 위해서 나중에 쓴 장면이다. 신하균 씨는 재밌는 배우다. 리허설 때는 자신의 연기를 잘 안보여주다가 자신이 준비한 것을 현장에서, 첫 번째 테이크에 터트린다. 이 장면의 시나리오를 쓸 때도 신하균 씨의 연기를 상상하며 쓴 부분이 있는데, 첫 테이크에 정확히 그 부분들을 보여줬다.

#7 (신하균의 상상 속에서 엄지원이 거대한 바이브레이터를 타고 있다.)
이해영: 엄지원 씨가 타고 있는 바이브레이터 안에는 승마기구가 있다. 그런데 기구의 리듬이 너무 희한하다보니 편집할 때 어떻게 컷을 잘라도 잘 붙질 않았다. 다만 이 씬의 목표는 엄지원 씨라는 배우가 가진 섹시함을 잘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김태용: 이 장면은 사실 신하균 씨의 판타지인데, 영화가 진행되면서 조금 애매하게 엄지원 씨의 판타지 혹은 욕망인 것처럼 편집되어 있다.
이해영: 이 장면에서는 단순히 대상화되어있는 여성이 아니라 그 중간에 있는 씬처럼 만들어야했다. 그래서 약간 중의적인 씬이 되었다.

#8
(심혜진과 성동일과 오달수 공원에서 맞닥뜨린 후 신하균에 맞서 싸운다.)
김태용: 이 영화의 인물들이 만나고,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 이 장면이 본질적인 키워드 역할을 한다고 생각된다. 만남의 어색함을 풀어가는 데에 있어서 상상하기 어려운 유머가 발생하고, 다시 공손하게 헤어지게 된다. 무언가가 충돌되어 영화 안에서 힘이 발생됐을 때 이해영 감독은 잠깐 그것을 지연시키고 무화시키는 특징이 있는 것 같다. 영화적인 감정과 사건의 충돌에 맞닥뜨렸을 때, 이해영 감독은 약간 옆길로 새는 느낌이 있다. 어떤 사건이나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보호하려는 연출자의 마인드를 느끼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최근에 본 어떤 한국영화보다도 이만큼 인물들을 사랑하는 연출자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캐릭터를 사랑하고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를 돌보고, 이 영화에서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 영화 밖의 실제 사람들을 돌보는 방식은, 영화가 가져야하는 윤리를 넘어서 어떤 세계의 동질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 용기를 낼 때 보통은 적이 있어서 싸움을 거는 방식으로 용기를 내는데, 이해영 감독은 싸움을 걸지 않고 ‘우리끼리 알아서 잘살래, 우리 지옥가지 뭐’ 하는 대사와 함께 갑자기 뭉쳐지는 이상한 커뮤니티가 있다. 그 커뮤니티가 닫혀져 있기 때문에 힘을 가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떤 점에서는 그 커뮤니티가 행복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싸움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이해영: 인물들이 만났으면 바로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과 감정이 정점을 찍을 때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줘야 한다. 그런데, 개인적인 성향이 비틀거나 돌아가거나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만났을 때 빵 터지는 걸 잘 못한다. 터지려고 하면 내가 약간 부끄러워지고 멋쩍다.


김태용: 영화가 계속 옆으로 가고, 충돌의 지점에서 정확하게 대면하는 걸 겁내하는 게 뭘까 고민하다보면 이 영화의 관객이 바로 이 사람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저 다른 성적 취향을 소개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다는 것이 깊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이 상처받는 것이 그들을 알량한 여유나 교양으로 이해하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두렵다는 태도가 있다고 생각된다.
이해영: 이 영화에 등장하는 어떤 성적 취향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영화를 만들 때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이라고 생각했었다. 해피엔딩이 갑작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이 척박한 우리들의 삶에 이런 기적 같은 해피엔딩이 한번정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정리: 장지혜(관객 에디터) | 사진: 임유정(자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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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토크] 김태용 감독이 추천한 로우 예의 ‘수쥬’

지난 28일 저녁, 로우 예의 <수쥬>를 상영 후 이 영화를 추천한 김태용 감독과의 시네토크 가 이어졌다. 객석을 꽉 메운 관객들은 숨죽이며 김태용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독의 너스레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진지하면서도 화기애애했던 그 현장의 일부를 여기에 전한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램 디렉터): 10년 전에 나온 영화인데, 오늘 다시 보시면서는 어떠셨는지?
김태용(영화감독): 말씀대로 10년밖에 안 된 굉장히 최근 영화이다.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는 헷갈렸지만 10년 전에 느꼈던 정서가 지금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수쥬>는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더라도 정서가 중요해지는 영화인 것 같다.
김성욱: 그 정서는 어떤 것인가?
김태용: 2000년 전까지는 중국 영화감독에 대해 편견 같은 느낌을 갖고 있었다. 장이모, 첸 카이거 감독의 영화에서 느껴지는 원형적이고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일본 영화에도 젊은이들이 갖는 방황, 열정, 좌절을 다룬 청춘 영화가 있었고 한국에도 있었는데 중국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아장커와 로우 예의 영화를 보았다. 그 때 중국에서 9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이렇구나 하는 것을 느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청춘과 시대와 장소를 바라보는 태도가 어쩌면 다른데 이상하게 이 영화가 끌렸다. 왜 그렇게 끌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시대 중국의 영화감독 중에는 지아장커가 제일 유명한데 기회가 되면 지아장커 영화 말고 <수쥬>를 보고 싶다는 느낌이 있었다. 이 영화를 십 년 전에 보고, 오늘 처음으로 다시 보았다. 십 년 전에 <수쥬>를 보고서 상해가 개발되면서 가장 아름다운 강이 가장 더러워지는 곳에서 청춘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중국의 현실을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지적인 접근이 아니라 정서적인 느낌이었다. 더럽다, 처절하다, 변한다, 사라진다, 그리워한다. 영화를 열어주기도 하고 닫아주기도 하는 ‘내가 떠나면 나를 찾을 거냐. 평생’ 하는 대사도 사랑 얘기 같으면서도 현실 얘기 같았다. 정확히 무언가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끌림과 매혹을 정서로 이해했던 것 같다. 저우쉰이라는 여배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당시 신인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 여배우의 힘이기도 하지만 어쨌건 그 시대의 처절함이 많이 느껴진 것 같다.

김성욱:
말한다는 것, 사랑 이야기를 한다는 것과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것의 대비와 충돌이 매혹적이었는다. 이에 대한 생각은 혹은 다른 흥미로운 점이 있으셨는지?
김태용: 그 점 때문에 매혹되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한 것 같다. 로맨틱하고 목숨 건 사랑을 꿈꾸며 순진한 의미의 사랑을 하는 무단이 나오지만, 같은 배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랑에 대한 신뢰가 전혀 없는 메이메이 같은 인물도 등장한다. 메이메이는 마르다의 이야기로 굉장히 흔들리게 되고, 화자에게 내가 떠나면 나를 찾을 거냐고 말하고 떠나버리기도 한다. <수쥬>에서는 사랑 얘기를 계속 하는데 말투를 들어보면 그 사랑 얘기가 정해진 원형의 사랑 얘기가 아니라 각색되는 면이 있다. 그 얘기를 원하는 사람만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고 그 얘기를 누군가에게 얘기할 때는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 영화에서 좋아했던 점은 감상성이 컸는데 감상적인 느낌은 한 끗 차이로 유치해보일 수도 몰입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상적인 것을 무기로 갖고 있지만 감상적이지 않도록 말한다는 것과 찍는다는 것이 계속 ‘흔들리고’ 있다. 카메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처음에 말하지만 거짓말하는 느낌을 계속해서 준다. 또 옛날 얘기라고 하지만 현재에 계속 나타나면서 그 이야기가 갖는 힘을 다시 얘기하기도 한다. 한편 음악이 감상적으로 쓰이는데 감상을 경계하기보다도 감상에 흠뻑 빠지게 하기 위한 것 같다. 층이 계속 깔리면서 생기는 감상성은 지아장커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점이고, 이러한 감상성 때문에 <수쥬>가 저평가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끌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김성욱:
메이메이는 마다의 이야기를 거짓이라 생각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어서 믿지 않는 것처럼. 눈으로 보는 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반면 말로 얘기되는 것은 거짓으로 여기게 된다. 한편 여자가 강에 빠지고 나서 인어가 되었다는 말이 퍼지고 이후 한 선원이 인어를 본 것 같아서 자기 눈을 의심하며 이상한 표정을 짓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한 장면이지만 인상적이다. 말해지는 것과 보이는 것의 충돌이 여기에 있다.
김태용: 말씀을 듣다보니 이 영화의 매혹적인 점이 ‘진실’이란 것도 컸던 것 같다. 오염돼서 쓰레기로 가득 찬 수쥬 강을 보여주고 ‘당장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것을 여러분은 믿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있는 것이다. 메이메이가 무단의 이야기가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니 하고 놀라는 장면이 있다. 비 오는데 시체를 바라보고 나서 갑자기 홱 돌아서서 카메라를 바라보는 메이메이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드라마의 맥락에서 보면 메이메이가 그 얘기가 거짓말인 줄 알았는데 진짜구나 깨닫는 것은 그다지 굉장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엄청난 비밀을 발견했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을 짖는다. 그 격해져있는 감정이 이야기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장면이 갖고 있는 엄청난 파워는 이 이야기가 '진실과 거짓, 눈앞에 벌어져 있는 모든 게 사실인지 아닌지,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는 무엇일지'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지는 데서 오는 것 같다.


김성욱: 여자 배우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특히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는 순간 이후의 표정의 변화와 이어지는 장면의 연결에서 감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김태용: 이 영화의 압권은 무단이 납치돼서 실망하고 분노하고, 도망가서 자살하는 마음으로 뛰어내리는 부분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분방한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뭐 저렇게까지?’ 하고 생각할 여지도 있다. 상황을 모면하는 다양한 방법이 있으니까. 그런데도 엄청난 신뢰에서 엄청난 실망으로 변했다가 자기 파멸에 이르는 것이 와 닿았던 것은 무단의 얼굴 클로즈업이 롱테이크로 이어지면서 ‘아 이게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무표정이 보여지고, 눈물을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가 분노로 바뀌고, 이어서 롱숏으로 무단과 마르다 사이의 거리감을 드러내는 일련의 표현 덕분이었다. 여기서 저우쉰의 연기는 매우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관객1: 사회적인 문제, 진실과 거짓말의 문제 말고, 이 영화의 뼈대인 사랑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하다.
김태용: 이 영화는 사랑 얘기를 기본적인 바탕으로 깔고 있지만, 감독이 영화를 만들 때 ‘어떤 사랑 영화를 하고 싶다. 영원불멸한 사랑 영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수쥬 강으로 찾아간 경우 같지는 않다. 어떻게 <수쥬>라는 영화를 제작하게 됐을까를 추측해보면 이 공간에서 하염없이 강을 바라보다가 사랑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 같다. 이야기가 공간에서 나오지 않았을까 싶은 느낌이 든다. 요즈음은 사랑하는 감정에 의문을 갖는 데서 시작하는 경향이 있는데 <수쥬>는 이와는 다르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있다. 나는 실제로 본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옛날에는 그런 감정으로 살았었대. 그 감정은 도대체 뭘까? 누군가가 떠나면 평생 찾는 감정일까?’ 이렇게 감정을 순수하게 연구하듯이 접근한다. 사랑하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거나 사랑하는 데서 오는 쾌감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에 접근하는 것 같은 영화이다.


관객2: 무단과 마르다는 다시 만났는데 죽어서 시체로 발견된다. 의미가 불분명했다.
김태용: 죽었다는 게 나도 뜬금없었다. 다만 사랑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했던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신화적인 이야기의 완성은 죽음이지 않은가. 무단과 마르다의 이야기를 사랑 이야기의 반석 위로 올리려고 죽음을 가져온 것 같다. 이 영화는 어쩌면 시체는 이미 있고 시체로 발견된 두 명의 이야기를 쫓아가는 내용일 수 있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맞춰서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과정으로써 이야기가 만들어지기보다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서 더 파워풀해지는 것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김성욱: 말씀대로 이미 존재하는 시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죽음부터 시작해서 왜 죽었는지 얘기되다가 죽음으로 돌아가서 죽음이 중간에 삽입되는 것 같다.


관객3: 마르다와 화자가 처음 대면할 때 마르다는 미친 것처럼 보였다. 또 화자가 메이메이와 헤어지고 나서 한 여자가 부담스럽게 노래하면서 등장했는데 이런 특이한 장면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태용: 이 영화는 서사, 이야기의 완결성 이전에 다른 에너지가 있는 것 같다. 영화 10분 보고 나면 무엇으로 만든 영화인지 보이는데 <수쥬>처럼 에너지로 만든 영화는 에너지로 보면 된다. 이 안에서 얘는 누구고 쟤는 누구고 하면서 머리를 쓰게 되면 덜 즐거운 느낌이 있다. 영화가 약간 머리를 써야 되는 느낌은 있지만 정서에 빠져 들어가면 재밌어진다. <수쥬>는 머리를 덜 써야 재밌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굉장히 날 것 같은 느낌으로 에너지 하나로 승부하는 영화이다.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으려면 내가 준비되어있어야 한다. 어떤 영화를 이렇게 보면 된다고 했을 때 다른 방향으로 보려고 하면 우리만 손해이다. 에너지로 보는 영화구나 하면 에너지로 보고 머리를 써야 되는 영화구나 하면 머리를 써서 쾌감을 얻으면 된다. 우리가 준비가 되면 영화가 즐거울 수 있는데 준비되지 않으면 덜 즐거운 때가 있는 것 같다.

(정리: 최용혁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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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클럽] 김태용 감독의 영화연출론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인기 행사 중 하나인 ‘시네클럽’이 28일로 3강을 맞으며 중반에 이르렀다. 세 번째 강사로 나선 김태용 감독은 ‘영화를 찍는다는 것의 의문’이라는 진중한 주제를 친근하게 풀어내며 영화를 만들고자 하는 관객들과 소통했다. 진지한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도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따뜻한 현장을 전한다.


김태용(영화감독): 사실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한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도 갖고 있지 않아서, 답에 대한 이야기 대신 그 의문에 어떤 과정이 있었느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영화 작업을 한지 10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작품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보니 응축되어있던 의문들이 한 작품씩 할 때마다 한 번에 폭발하는 것 같다. 99년에 <여고괴담2: 메멘토 모리>를 만들기 전까지는 영화를 찍는다는 것에 대해서 ‘기회가 안 생겨서 그렇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기회만 생기면 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영화를 만들면서 첫 번째 맞았던 철퇴가 ‘아, 이게 그렇게 되는 게 아니구나’ 하는 깨달음이었다. 영화가 가지고 있는 그릇과 영화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어느 쪽에서부터 시작을 하든지 서로 정말 유기적으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여고괴담2>을 하면서, 문제는 영화의 형식이나 그릇이 어떤 내용을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며 그 형식이 자체적으로 이야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관객1:
<가족의 탄생>에 많은 배우들이 나오는데, 연기의 톤이 잘 맞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을 조율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으신지?
김태용: 영화에서 배우가 연기를 잘하는 것은 분명 배우의 공인데,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것은 분명히 감독의 잘못인 것 같다. 노하우라면 노하우인데, 그 배우가 어떻게 움직이는 사람인지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굳이 따지자면 연기의 콘티뉴이티에 더 민감한 배우들이 있는데, 그 콘티뉴이티는 철저하게 감독의 몫이기도 하다. 반면에 어떤 배우는 전후에 어떤 씬이 있든 당면한 씬의 감정에만 집중한다. 그런 배우와 작업할 때는 감독과 배우가 서로 순수하게 잘 맞아야 한다. <가족의 탄생> 때는 콘티뉴이티가 좋은 배우와 순간 집중력이 좋은 배우가 반반이었다. 그런 부분들이 감독과 잘 맞으면 시너지 효과가 있는 것이고, 그게 아니면 서로 패닉에 빠질 수도 있다. 배우마다 성향이 다르고, 처음 만났을 때는 그 배우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그 조절이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순간에 집중력이 좋은 배우들과 잘 맞는 편이다.

관객2: 일반적으로 ‘감독’이라고 하면 떠올랐던 모습과는 조금 다르게, 확고하다기보다는 여지를 많이 두시는 편인 것 같다. 그런 모습을 유지하면서 스태프들이나 배우들에게 어떻게 신뢰를 주시며, 현장에서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시는지?
김태용: 믿음을 주려고 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도 다 안다. ‘아, 이 사람이 믿음을 주려고 노력하는구나, 애쓴다.’ (웃음) 못되게 이야기하자면 스태프와 배우들이 원하는 건 믿음이나 소통이 아니다. 내가 스태프로 일할 때도 그랬다. 감독이 나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는 게 그렇게까지 기쁜 일은 아니었다. (웃음) 이 감독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한 것이고, 그 비전의 결과를 보고 싶어 하며 그 결과에 동참하는 것이다. 감독 역시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영화를 관객으로서 볼 때를 상정하고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감독이 소통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보다 감독의 비전이 잘 보이는 상황에서 소통이 훨씬 잘 된다.


관객3: 현장에 나가면 자기 마음처럼 준비가 되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하는데, 그럴 때 잘 타협을 하시는 편인지, 아니면 고집을 부리시는 편인지?
김태용: 나는 그냥 잘 타협한다. (웃음) 소품이나 미술이나 촬영의 영역을 그렇게 많이 디테일하게 고민하는 편은 아니다. 담당 감독님들이 하자는 대로 많이 한다. 대신 배우와 관련해서 대사나 감정적인 표현에 대해서는 고집을 부리는 편인 것 같다. 모든 영역에 다 고집을 부릴 수는 없으니까, 무엇이 제일 중요한지 하나는 잡고 가야 한다. 현장에서는 여러 가지 커다란 선택들 중에 하나만 고르고 나머지는 버려야하는 매 순간이 이어지지 않나. 그럴 때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용하는 것 같다.

(정리: 박예하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관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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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로우 예의 <수쥬> 


, 그리고 소년과 소녀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몇 편의 영화들이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영화는 레오 까락스의 영화들이다. <소년, 소녀를 만나다>(1984) <퐁네프의 연인들>(1991)에서 강은 연인들의 내밀한 사랑의 역사를 관통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과도 같다. 로우 예의 두 번째 장편 <수쥬>는 레오 까락스의 연인들처럼 세상으로부터 동떨어진 외로운 소년, 소녀, 그리고 강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황폐한 삶에서 섬광과도 같은 사랑이 솟아오를 때, 이들은 이 유일무이한 감정에 속절없이 사로잡힌다. <수쥬>는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갔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내러티브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결코 영화 속에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며 비디오를 찍는 내레이터의 존재로 인해 시종일관 과거 시제의 느낌을 자아낸다. 이는 영화 속 사랑 이야기를 신화화하는 동시에, 내레이터의 구술로 이루어지는 일종의 메타 픽션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동반자살로 끝을 맺는 두 남녀의 비극은 화자에 의해 의도적으로 다양한 방식의 각색을 거듭한다. 따라서 영화 속에 펼쳐지는 이야기는 어쩌면 화자의 단순한 상상의 소산일수도 있고, 부분적으로 실제와 상상이 뒤섞여있을 수도 있다
.
 


이야기가 추상화될수록, 영화 속의 모든 이미지들은 점점 누군가의 기억 속의 이미지로 변모해간다. 한 여인에 대한 주인공의 죄의식과 사랑이 만들어내는 가짜 이미지에 관한 이야기는 또 한 편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닮은꼴의 두 여성을 한 여성으로 착각하고 이에 사로잡히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중심에 놓고 본다면, 일찍이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이 <수쥬>는 느슨하게 히치콕의 <현기증>을 참조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안개 낀 구불구불한 거리는 <수쥬>의 주인공 마다르와 무단이 오토바이를 타고 달려가는 상하이 뒷골목의 미로와 닮았다. 다만 <현기증>의 스카티가 의도하지 않은 은밀한 범죄의 이용 도구였다면, <수쥬>의 마다르는 무단을 둘러싼 범죄에 좀 더 적극적으로 가담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오염된 강 언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이 영화는 디지털 카메라 특유의 사적인 심상을 극대화한다. 번쩍거리는 자본주의의 금광으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동질감은 이 영화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정서다. 인어는 고사하고 작은 물고기 한 마리도 살아남지 못할, 자본의 찌꺼기들이 밀려드는 회색 강에서 그들은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절망하고, 이별하며, 종국에는 사라진다. 왕가위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는 푸른색과 노란색을 기조로 하는 <수쥬>의 이미지는 몽환적이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처럼 시작된 이 영화는 점점 판타지에 가까운 방식으로 주조된다. 그러나 로우 예 감독은 격정적 사랑의 감정적 수위를 높이는 대신 채 피어나지도 못한 사랑이 파괴되어가는 순간을 마치 오래된 기억처럼 덤덤하게 다룬다. 이러한 감독의 시선은 결국 수많은 아름다운 장면들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을 영화의 첫 장면으로 되돌리게 만든다. 좁고 지저분한 강어귀에서 자신의 일생을 보내는 수많은 사람들의 평범하고 무표정한 얼굴들 속에 감독은 은밀한 감정적 역사들을 읽어낸다. 특별한 한 사람만의 이야기가 아닌, 모두에게 다가왔다 사라져가는 격정의 순간들은 거대한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가장 어두운 곳에서, 가장 비루한 얼굴로 말이다. (최은영_영화평론가)

 
시네토크
1월 28일 수요일 저녁 7시 <수쥬> 상영 후: 김태용 감독과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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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개막, 누구 추천작 볼까? 즐거운 고민의 시작

연초가 되면 어김없이 열리는 성대한 영화 축제가 있다. 영화인들과 관객들이 어깨동무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영화 축제,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가 올해로 제 여섯 번째를 맞이한다.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는 1월 18일 개막하여, 2월 27일 까지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진행된다. '영화의 즐거움'이라는 큰 테마로, 그 어느 때보다 다채로운 상영작과 많은 부대 행사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관객들은 올해 벌어지는 첫 영화축제의 즐거움을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올해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 참여한 친구들의 명단과 그들이 선택한 영화들을 공식적으로 처음 소개하는 자리인 기자 간담회가 2011년 1월 5일 오전 11시에 서울아트시네마 인근 카페인 '카페 신'에서 열렸다. 이준익, 김태용, 이해영 감독이 참여한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고 ‘2011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의 전반적 테마와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송승민(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
2011년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 기자 간담회를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서울아트시네마 사무국장 송승민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기자 간담회에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김성욱(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올해는 영화인들에게 몇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영화에 있어 즐거움이란 것은 어떤 것인가"라는 것이었습니다. 2010년 많은 영화인들과 관객 분들이 상당히 괴로운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2011년은 그 괴로운 시간을 넘어서서, 영화의 즐거운 시간들을 누려보자, 영화의 즐거움을 낙원에서 누려보자. 이것이 2011년 서울아트시네마의 모토입니다. 영화의 즐거움이란 것은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을 누려보는 것입니다.
올해는 친구들의 선택 이외에도 지난 한 해 동안의 시네마테크를 둘러싼 활발한 논의들을 이어나가는 차원에서 특별히 두 기관의 시네마테크에 카르트 블랑슈, 일종의 백지수표를 위임하는 편지를 보냈고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함께 하게 됐습니다. 지난 2010년 2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인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님으로부터 서울아트시네마의 응원의 메시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운영에 있어서의 독립성, 안정적인 재원의 확보, 안정적인 전용관의 확보가 시네마테크에 있어서 가장 필수적이라는 전언이 있었습니다. 올해에는 특별히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함께 했던 12편의 프랑스 영화가 소개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가 복원하고 발굴한 영화들, 시네마테크에서 꿈을 키웠던 고다르의 영화, 그리고 누벨바그 이후의 장 으스타슈, 필립 가렐 등의 영화들이 포진되어 있습니다. 동시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프로그램 디렉터인 장 프랑수아 로제가 2월에 서울 아트시네마를 방문해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역사와 지금 시네마테크가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지에 대한 좌담과 포럼이 열릴 예정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영상자료원에서 새롭게 복원한 한국영화 네 편이 상영됩니다.
시네마테크는 지난해부터 우리 시대의 영화를 상영하는 행사를 벌였습니다. 올해는 특별히 이탈리아 문화원의 협조로 마테오 가로네의 작품들이 소개됩니다. 그동안 <고모라>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되지 못했는데, 이번에 가로네의 3편의 영화를 구매해 상영하고, 이전 작품들도 소개합니다. 또 하나 시네마테크가 사랑하고 또 시네마테크를 사랑했던, 지난해 타계한 에릭 로메르 감독의 영화 여섯 편이 상영되는 '오마주 에릭 로메르' 행사가 열립니다. 동시에 영화가 허락한 욕망 중의 하나는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도 포함되어 있는데, 6명의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고 싶은 젊은이들과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네클럽' 행사가 열리게 됩니다. 지난 10년의 한국영화를 되돌아보는 아주 특별한 행사도 있습니다. 장현수 감독의 <라이방>과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2001년도에 개봉했던 영화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와라나고'라고 해서 한국영화에 있어서의 예술영화, 그리고 이런 영화들에 대한 제작의 활성화, 그리고 이런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예술영화 상영공간에 대한 논의를 촉발했던 영화들입니다. 지원이 중단되고 예산이 50% 정도 삭감된 상태이긴 하지만, 반대로 올해의 친구들 영화제는 예년에 비해 더 많은 작품들과 영화인들이 참여한 행사가 됐습니다. 영화의 즐거움을 함께 누리시길 바랍니다.


이해영(영화감독): 늘 관객으로서 친구들을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친구들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저는 <매드 맥스>를 골랐습니다. 그동안 '친구들 영화제'에서 상영했던 영화들이 주로 영화인으로서, 감독으로서 애정을 가졌던 작품들이었다는 느낌이 있었다면, 저는 이번에는 좀 더 순수하게 관객 입장에서 '가장 순수하게 좋아했던 영화가 어떤 것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청소년기를 보냈던 그 시절에 열광했던 영화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영화의 원초적 즐거움을 줬던 영화들에 대한 상기가 자연스럽게 됐습니다. 그 중에서도, 당시에는 불법 비디오로 밖에 볼 수 없었던 작품을 필름프린트로 극장에서 보면 꽤 특별하고 신선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도 매우 기대되고 설레고 있습니다. 시네마테크가 형식적인 예술영화만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 뭔가 영화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인들, 관객들 문턱 없이 모두가 다 어깨동무하고 이 모든 즐거움을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흔쾌히 재미있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준익(영화감독):
모든 인간이나 동물은 고향이 있습니다. 자기가 태어난, 자기가 자란, 그런 어떤 생리적인 고향이 있습니다. 저 같이 영화로 밥을 먹는 사람들은, 제가 밥벌이 하는 영화라는 문화적인 한 장르의 고향이 있겠죠. 근데 저 뿐이 아니고, 현대인들은 태어나서 TV든 극장이든 어떤 매체를 통해서, 영화라는 문화적인 자신만의 추억과 어렸을 때 혹은 젊었을 때 그 영화를 보면서 이식되었던 어떤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의 고향 같은 게, 저에게는 이 시네마테크입니다. 그런데 보통은 고향에서 태어나서 모든 인간은 고향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저 역시 멀리 도망가려고 달려갔지만, 가끔 문득 영화라는 문화적 영혼이 저의 뒤통수를 간지럽힐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돌아갈 수 있는 고향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시네마테크가 아니고서도, DVD나 다른 매체를 통해서 고향에 있던 추억의 영화를 볼 수는 있겠죠. 하지만 모든 인간이 고향에서는 혼자 있지 않았다는 겁니다. 거기에는 가족도 있었고, 친구들도, 선생님들도 있었죠. 그것처럼 영화의 고향인 시네마테크에서는, 이제는 자주 만나지 않는 친구를 만나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합니다. 그 안에는 동료도 있겠지만, 또한 영화 속에 담겨져 있는, 영화 속의 인물들의 갈등과 관계에서 드러나는 또 다른 인간의 관계성도 있죠. 이런 것들이 저의 심리 구조나 뇌 구조 안에 영향을 주었어요. 인간의 관계성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던, 그리고 지금도 그 연장선상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세상을 보는 눈, 인간을 보는 눈이 계속 자라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지금 시네마테크에서 상영되는 영화들의 감독의 생각이나 인물들이, 미래에 또 다른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에게 영혼에 영감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액체인 눈물을 흐르게 해주고, 또 이를 넘어서는 것으로 신의 가장 위대한 선물인 웃음을 짓게 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고향이 바로 시네마테크라고 생각합니다. 영혼의 고향의 가치를 사랑하는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곳, 그래서 아마 이런 자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를 관람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좋은 고향의 향기를 유지시켜주는 것이 우리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네마테크의 친구들을 사랑합니다.


김태용(영화감독): 친구들 영화제에 몇 번 참여를 했었지만, 작년에는 영화작업 때문에 참여하지 못했고 올해 참여하게 됐습니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준익 감독 말씀대로 고향에는 혼자 있지 않았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며 영화에 대한 꿈을 키웠던 세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골방에서 비디오를 보면서, 그 비디오를 친구들에게 추천해 주고, 어떤 친구가 재밌다고 하면 그 영화를 다시 보고 그러면서 영화를 좋아했었습니다. 저에게 있어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식은, 누군가의 추천을 받거나 제가 봤던 영화를 누군가에게 추천해 줄 때였어요. 시네마테크는 친구들이 계속 무언가를 추천해 주고, 추천받은 영화를 와서 봤더니 그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그런 공간인 것 같아요. 영화를 본다는 게 생각보다 굉장히 즐거운 일이고, 그리고 외로운 일이 아니라는 걸 계속 알려주는 게 시네마테크인 것 같습니다. 영화를 보는 다양한 방식들이 앞으로도 계속 생길 텐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끝까지 남아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는 방식일 것 같아요. 누군가를 계속 만나고 영화를 통해 확장되는 세계라는 생각에 매년 참여하고 싶습니다.
제가 이번에 선택한 영화는 <수쥬>라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즐거움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뭐가 즐거울까 생각했더니 별로 즐거운 일이 없더라고요. 옛날처럼 버스터 키튼 영화를 봐도 별로 안 웃기고, 개인적으로 요즘 즐거움을 잘 못 느껴서, 오히려 처절한 사랑 영화를 하나 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10년 전에 잠시 개봉했다가 사라진 영화인데, 상하이에 흐르는 수주라는 강에서 살고 있는 한 아름다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입니다. 동시대 아시아 영화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가를 같이 느낄 수 있는 영화가 될 것 같아서 절절한 사랑 영화를 꼽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성욱:
가장 궁금해 하는 문제가 있으실 것 같아서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 공간 확보와 재정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2010년에 시네마테크에 대한 일시적인 지원 중단과 예산 삭감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사실 극장의 임대료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영화인들과 배우들의 후원 광고 촬영 덕에 2010년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준익 감독님도 광고를 촬영하셨는데, 아마 영화가 개봉할 즈음에 나올 것 같습니다. 두 차례의 후원광고 촬영이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잡지나 화보, 그리고 직접적인 후원들이 영화인들을 통해 있었고, 2010년의 운영은 그런 후원들로 진행이 됐습니다. 동시에 2010년 말미에 삭감된 예산을 복원하려고 하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이 국회를 방문해 삭감된 지원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벌였지만, 잘 아시다시피 지난 해 예산안이 그냥 통과되어 버리는 사태가 있었습니다. 시네마테크 예산을 복원하는 문제는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2011년에는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구체적인 청사진과 공간 확보와 예산 조정과 관련된 일들이 진행될 예정입니다. 문화관광부와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서울시의 협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2월에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관계자가 방문해 시네마테크와 관련된 좌담과 포럼이 진행되고, 3월에는 시네마테크 지원정책과 관련된 포럼이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그리고 해외 시네아스트 초청 방한 행사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기업의 후원으로 매년 한두 번 진행될 예정입니다. 2012년은 서울아트시네마가 개관 십 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2012년에는 일 년 내내 십주년의 기념행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준익: 맥주 광고에 출현을 했는데, 작년에 많은 감독들과 배우들이 시네마테크 기금 조성을 위한 촬영이 있었고, 저도 요청이 있어서 흔쾌히 찍었습니다. 목표는 "돈을 모으자. 그 돈으로 시네마테크 전용관의 건립을 해내자"였는데, 김성욱 프로그래머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으로는 부족하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영화가 지극히 상업주의로 획일화 되고 있는 상황에서, 여기 있는 두 젊은 작가정신이 투철한 감독들이 점점 가난에 찌들어가고 있습니다.(웃음)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더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에 꿈을 갖고 자신의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희망과 꿈을 제시할 수 있는 근원이 필요합니다. 그 근원 중의 하나가 여기서 상영되는 영화들이죠. 당시엔 그다지 주목받거나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하지 못했으나, 영화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에, 그 가치가 식지 않는 영화들이 시네마테크에서 상영이 됩니다. 그러므로 가장 기본이 되는 상영관의 조성 문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든 선진국에서는 굶어가는 예술가들의 영혼이 부패되지 않도록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후원을 합니다. 시네마테크 프랑세즈 같은 경우는 가장 좋은 모델이 되겠는데, 젊은 영혼들이 상업주의의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거기서 획득되지 않는 어떤 소외된 영화적 가치, 어떤 정서나 사상을 얻을 수 있는 곳입니다. 외로운 영혼의 필수 아미노산 같은 양분이 되는 것들이 시네마테크를 메카로 해서 파생되어 일상의 따뜻함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두가 상업 영화에 열광할 때, 남들과 다르고 싶은 인간 객체의 자존심과 욕망을 달래줄 수 있는 피난처가 필요합니다. 자본주의의 미덕도 있지만, 그 미덕이 유지되기 위해선 그 해악들을 메우는 활동도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모순을 메우는 데 참여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서 이렇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해영: 요즘 많이 잊고 있었던 게 영화의 즐거움이 아니었나 싶어요. 시네마테크에 어울리는 사람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단순하지만 영화를 사랑하고 즐기는 사람이 되는 방법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란 것이 막연하게 설레게 만들고, 왠지 좋은 책을 받아서 첫 장을 넘길 때의 설레임이나 좋은 음반의 재킷을 처음 뜯을 때의 쾌감이 있습니다. 영화에도 그것에 못지않은 굉장히 설레는 순간들, 원초적인 즐거움 같은 것이 있죠. 영화인으로 살든 비영화인으로 살든 마찬가지입니다. 제 영화가 시장에서 크게 환대를 받진 못했지만(웃음), 영화의 즐거움과 영화를 만드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 굉장히 즐거운 일이구나, 하고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죠. 이번 친구들 영화제의 참여도 시의 적절하게 영화의 즐거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김태용: 개봉할 영화가 외면 받고 소외받는 영화가 될지 사랑받는 영화가 될지는 모르겠는데, 매 순간에 친구들을 만나는 느낌이 저한테는 영화를 작업하는데 굉장히 큰 힘이 됩니다. 영화 작업하는 사람들은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은데, 그 시간을 보상받고 싶을 때 극장에 오면 사람들을 만나고, 무언가 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습니다. 이런 느낌은 보통 극장에서는 받기 힘들고, 시네마테크에 오면 받는 거 같아요. 그런데, 매년 시네마테크의 안정적인 지속을 위해 노력하지만, 생각보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2012년을 원년으로 삼고 조금씩 힘을 모아야 할 것 같고, 올 해가 매우 중요할 것 같아요. 안정적인 공간에서, 세상에 생각보다 재미있는 영화도 많고 생각보다 좋은 사람도 많은데, 이런 것들이 의미 있다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삶이 보다 윤택해지는 걸 느낄 수 있는 순간이 많으면 좋겠습니다.
(정리 : 박영석 시네마테크 관객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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